2024년 7월 5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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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생명과 인성(인간)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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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6 ㅣ No.345

생명과 인성(인간)교육

 

 

I. 우리사회에서는 지금 모든 국민들을 전율과 공포에 떨게 하는 反生命的 사건들이 봇물 터지듯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인명경시로 말미암은 여러 형태의 살인사건과 각종 사고사의 빈발, 고의적인 자살과 자살방조, 특히 선동에 의한 분신자살소동은 우리 모두를 몸서리치게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주택과 교량 등 각종 토목건축의 부실공사, 불량식품의 제조와 매매, 인신매매, 낙태(태아살인), 안락사와 같이 돈만 벌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겠다고 덤벼드는 인간성을 이미 상실한 사람들의 창궐과 그 행패, 특히 우리나라에서의 한의사와 약사들이 국민들의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해서 저들의 이권을 극대화하려는 더러운 싸움,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자연환경의 오염과 파괴 등등.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현상들이 일시적이고 우연적인 사건들의 발상이 아니라 보다 더 근본적인 조짐, 즉 이 사회의 총체적 붕괴의 조짐으로 보고 있다. 한마디로 말세의 현상이라는 것이다.

 

우리사회를 비관적으로 보건 다소 낙관적으로 보건 아무튼 우리사회가 지금 황금만능주의와 생명경시로 말미암아 윤리의식이 상실되고 있고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고 있고 극도로 사회의 근본질서가 문란하고 극도로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각종 대중매체는 엄청난 인명살상과 독직사건이 터져나올 때마다 우리 국민이 도덕적 가치관과 인간성을 회복할 것을 촉구한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생명존중과 인간성 회복은 일부의 언론과 종교지도자들이 한시적으로 구호를 외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나는 이 문제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연구하고 근본적으로 교육혁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교육은 학교교육이 중심이 되어 있으나 인성교육이야말로 생명을 부여받은 순간부터 죽기까지 인간에게 부과된 숙명적인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인성교육이 무엇인지를 물어 볼 수 있다. 인성교육의 개념은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다. 예컨대, 도덕교육, 도의교육, 인격교육, 인간교육, 인간성 함양을 위한 교육, 全人교육, 품성교육 등 교육학자들은 인간의 바람직한 특성이나 성격을 육성하는 것을 또는 올바른 행동(언어, 태도, 예절)이나 좋은 감정을 배양하는 것을 인성교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교육열이 대단히 높은 민족이다. 부존자원이 부족한 국토에서 우리나라가 이 만큼이라도 살 수 있게 된 중요원인도 배워야만 산다는 생각을 신앙으로 믿고 살아온 한국 父母들의 자녀교육에 대한 열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한국인의 교육열이 올바른 學究熱과 人間답게 사는 人間敎育과 연계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우리의 고민이 놓여 있다. 특히 한국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우리의 청소년의 교육, 즉 한국의 고등학교교육은 지금 비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황금만능주의와 立身出世에 눈먼 대다수의 성인들이 정확한 기준도 없이 임의로 序列을 매겨 놓은 특정한 대학교와 특정한 학과에 그들의 자녀들을 무조건 입학시키는 것을 최대관심사로 삼고 있고 학교교육도 이를 추종하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입시지옥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우리나라의 대학입시준비교육은 주입식이며 암기위주이고 획일적이며 창의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대학교육도 중등교육 못지않게 인간교육을 무시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교육의 근본은 생명을 존중하고 인간이 스스로 자기실현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있으며 자기 분수대로, 제 길수대로 잘 살 수 있도록 자기가 가진 재주와 능력을 길러주는 데 있는 것이다. 따라서 피교육자에게 알맞는 교육만이 인간을 인간답게 대접하는 인간교육이 될 수 있다. 생명존중은 바로 인성교육의 근본과제이다.

 

우리는 먼저 지금까지 왜 우리나라에서 생명을 존중하는 人性敎育이 실패했는가를 규명해보고 그 다음에서 人性敎育이 어떻게 內實化를 거둘 수 있는가를 모색해 보기로 하자.

 

 

II. 人性敎育失敗의 原因

 

우리는 한국에서 인간교육이 실패한 원인을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인간교육실패의 원인을 넓은 의미에서 우리는 근본적으로 한국교육의 방향 상실과 교육철학의 빈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이 걸어온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方向없는 교육이었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한국교육은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데 실패했다. 광복이후 많은 교육이론들이 조수처럼 밀려왔다가 물러났으며 그때마다 교육학자들은 색다른 구호를 외쳤을 뿐이고 어떤 이론도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했고 교육정책이 수시로 바뀌었다. 그동안 이 나라의 교육은 오직 방법과 과정과 제도의 변경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실험주의 내지 도구주의 교육에만 몰두한 나머지 교육의 올바른 방향과 참된 목적을 찾는 데는 소홀히 하였고, 특히 인간을 위한 교육을 외면하여 왔다.

 

그동안의 한국교육은 미국의 실험주의 내지 공리적인 생활적응주의의 영향 아래 個人化와 大衆化의 자극을 받아, 교육의 수단방법과 교육과정과 기술면에서는 다소 발전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을 너무나도 무시하여 왔다. 이른바 행동교육이라든가 새 교육의 방법은 우리나라 교육의 전통, 즉 유가에서 오랜동안 가르쳐 온 人間敎育이나 현실과는 너무나도 유리된 방법이기 때문에 실현성이 희박할 수밖에 없었다. 대다수의 교사들은 이론과 실제의 괴리로 말미암아 심각한 갈등을 겪었고 적당주의에 물들거나 냉소주의에 빠져버렸다.

 

전통적인 교육이 새로운 과학적 교육원리라든가 학습원리에 맞지 않고 또 현대 심리학 내지 사회학의 연구방법과 궤를 같이하지 못한다고 보고 우리나라 교육에 과학적 방법을 도입하려고 애쓴 교육학자들이 많다. 그들은 다른 과학들이 이미 사용해 온 통계와 실험 등의 경험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들은 소위 과학적인 방법에 지나치게 경도하였다. 미국에서 발달한 교육심리학은 기계적인 인간관계와 양적인 관계만을 중요시하였다. 그러나 미국에서와는 달리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교육학은 인문과학과 종교, 특히 그리스도교와의 밀접한 연계 위에서 발전하였는데 한국의 교육학자들은 이를 도외시하였다. 경험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을 교육학에 적용시키는 데는 한계가 명백하다. 왜냐하면 인간의 사고와 행동은 계량적으로 다 설명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교육은 교육현상에 관한 단순한 사실 분석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며 무엇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며 내가 겨레와 인류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배우고 가르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교육의 방향과 목적은 철학적 사고에서 찾아볼 수밖에 없다. 나침반이 없는 기선은 아무리 속도와 그 구조의 견고성과 안전성을 자랑해도 무의미한 것이다. 목적이 없거나 목적이 불분명한 실천은 무의미하다. 지금까지의 한국교육은 너무나도 철학이 빈곤했다. 한국교육은 새로운 교육사조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에 급급했고 모방을 일삼아 왔고 주체성을 상실했다. 특히 미국에서 들어온 실용주의사상과 기능주의적인 행태주의는 우리의 전통적인 인간존중의 교육관과는 조화를 이룰 수 없었고 종내에는 한국인으로서의 주체성과 역사의식을 망각하게 만들었다. 주체성과 역사의식의 상실은 필연적으로 인간성의 상실을 초래한다. 따라서 인간교육이 실패하게 된 것은 불문가지다.

 

우리는 인간교육 실패의 원인을 巨視的으로 현대후기산업사회의 전반적인 인간소외현상과 아노미현상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인간성상실은 한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이며 또 단순히 교육만의 책임이 아니라 보다 더 근원적으로 현대 사회의 구조적 특성과 상관이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유럽 여러 나라의 인간교육은 한국의 인간교육보다 높은 수준에 있음으로 인간교육 실패의 원인을 전적으로 사회의 구조적 현상에만 귀의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나라에서의 인간교육실패의 직접적 原因을 찾아보자. 우리는 이것을 편의상 학교교육과 학교이외의 교육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학교교육의 문제점:

 

첫째, 입시위주의 교육풍토이다. 학교교육이 입시위주의 교육이 되게 된 근본요인은 우선적으로 성인들의 잘못된 교육관과 가치관에 있다. 한국의 대다수의 학부모들은 권력 지향적이다. 그들은 自己補償心理를 가지고서 그들의 자녀들이 지배계층에 속하기를 念願한다. 또 그들 대부분은 황금만능주의에 물들어 있다. 그래서 학부모들은 학교란 그들의 자녀들이 돈 잘 벌고 쉽게 안전하게 출세할 수 있게 해주는 기관으로 간주한다. 그들에게서 명문대학과 명문학과란 그런 기관이다. 문제는 그러한 명문대학과 명문학과(소위 일류대학과 일류학과)가 그 많은 학부모들의 소원을 다 들어줄 수 없는데서 '대학입시지옥'이 생겨났다. 우리나라의 대학입시는 자격시험이 아니라 선발시험이다. 그래서 고등학교교육은 전인교육의 프로그램이 없어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입시위주의 교육풍토에 물들지 않을 수 없게끔 되어 있다. 학부모와 학생과 교사가 온통 입학시험준비에만 매달려 있기 때문에 그들은 입학시험과 직접적으로 상관되지 않는 교육활동, 예컨대 도덕적, 정서적, 신체적 교육활동과 생명존중교육에는 관심을 갖지 않으며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 한다.

 

국민학교 시절부터 대학입시를 걱정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교육풍토이다. 대학입시 출제경향이 실제적으로 학교교육의 지표가 되고 있다. 대학입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국어, 영어, 수학과 같은 도구과목이다. 이러한 도구과목을 잘 해내지 못하면, 이들 과목 못지 않게 중요한 다른 과목은 아무리 잘해도 소용없으며, 어떤 방법으로든지 도구과목을 잘 암기해서 높은 시험점수를 받아야만 한다는 생각을 학생들에게 강요한다. 그 결과 학생들의 인성발달에 더욱 중요한 德育이나 體育이나 生活교육은 학교에서도, 심지어 가정에서도 무시되고 있다. 폭넓은 독서가 어린이와 청소년 시절에 중요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부모나 교사까지도 이를 권장하기는커녕 이를 저지한다.

 

청소년기에 누려야 할 풍부한 삶의 체험을 한국의 학생들은 누릴 수 없다. 가령 친구와의 사귐도 경쟁의식 때문에 진솔한 것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입시위주의 교육풍토는 인간교육의 최대의 장애요소가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학교교육이 교육의 전부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둘째, 인간교육의 또 하나의 중대한 장애요소는 성적우수자 중심의 학교교육이다. 어떤 고등학교에서나 전체 학생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중.하위권에 속하는 학생들은 전체 학생의 5%내지 10%, 많아야 20%정도의 학생의 학업성취를 위해 '들러리'로 희생되고 있다. 그들은 그들대로 고유한 소질과 능력과 적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교과목의 상대적인 규준평가점수가 낮다는 이유만으로 공부 못하는 열등생으로 낙인이 찍히며, 열등생으로 낙인이 찍힌 학생들은 진도를 따라가기도 어렵고 무시당하고 있으므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고 학과공부에 재미를 못 느낀다. 그들은 성적우수자 중심의 학교교육에 반감을 가지며 성적이 좋은 학생과 교사에게 거리감을 가질 뿐만 아니라 비행문화에 심정적으로 동조하게 되고 종내에는 학교의 교사가 가르치거나 권유하는 가르침에 맹목적인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이들은 한편으로 심한 마음의 상처를 받고 인간적인 모욕을 느끼며 다른 한편으로 기성세대에 대해 적개심을 가지게 된다. 이제 학교는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갖게 해 주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학생의 꿈을 앗아가고 정신을 황폐하게 만드는 불쾌한 곳으로 변모되고 말았다. 상당수의 학생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반항심을 갖게 된다.

 

셋째, 학교의 시설과 학급운영이 인간교육의 장애요소가 되고 있다. 학교의 대형화와 過密학급은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의 자연스러운 인격적 만남을 저해하고 기계적인 관료제도의 도입을 불가피하게 만든다. 대규모 학교와 과밀학급은 종내에는 학생 개개인의 적성과 소질에 맞는 교육을 할 수 없게 만들고 획일적인 집단지도를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따라서 학교교육은 현대 산업사회의 대량생산체제의 후유증인 沒個性化와 非人間化를 어린 시절부터 촉진시키고 있다.

 

전인교육을 위한 특별교실, 서클실, 상담실과 예.체능교육을 위한 시설이 아주 부족하다. 따라서 학교는 삭막하기 그지없으며 젊은 학생들의 정열을 올바르게 순화시킬 수 없고 인간교육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

 

넷째, 학교주변의 환경이 인간교육을 저해한다.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대부분의 학생은 이를 그들의 삶과 유리시켜 생각한다. 특히 학과공부에 자신을 잃었거나 취미를 붙이지 못한 대부분의 학생은 욕구불만을 비행문화에 투사하기 쉽다. 그런데 학교 부근에는 어디서나 유해업소가 즐비하다. 장사꾼들은 학생을 주고객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反生命的 殺人과 폭력을 주제로 하는 만화가게, 비디오 대여점, 영화관 및 오락실을 경영하는 어른들은 학생을 사회교육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그들에게 돈을 벌게 해 주는 소비자로 간주한다.

 

학교 이외의 교육의 문제점:

 

우리는 학교이외의 교육을 가정교육, 성인교육, 직장교육, 사회교육, 종교교육 등을 망라한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학교이외의 교육이 부실한 것은 논할 여지도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고, 더우기 거기서 인간교육을 찾아본다는 것은 綠木求魚일런지도 모른다.

 

가정분위기, 직장분위기, 비도덕적 사회의 분위기는 도무지 인간교육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현대산업사회의 관료제도와 기술지배가 가해온 沒個性化와 非人間化현상은 가정과 사회와 직장에서 사람다운 삶을 위한 조치를 무시한다. 현대인은 하나의 도구나 기계의 부속품으로 취급되며 利用性, 效用性이라는 관점에서 計量的으로 취급되고 있다. 사회는 개인의 개성, 창의성을 무시하며 사람들에게 경쟁의식과 소외의식을 심어줄 뿐이다.

 

노동자들은 고향과 가정의 포근함을 상실해 버렸다. 노동자들은 직장에서의 과중하고도 재미없는 기계적인 노동을 하고 나면 기분전환과 휴식(recreation)을 필요로 하지만, 그들을 직장에서 사람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무사려증에 빠져 있기 때문에 가정에 돌아와서도 심각하게 사고하거나 반성을 하지 않는 습성에 익숙해 있다.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지는 여가조차도 자기수양을 위한 독서나 다른 사람들과의 진지한 교제를 하는데 善用하지 않고 완전히 무위와 자기도피를 일삼는다. 그들은 과음과식을 하거나 육체적 건강에 대한 극심한 강박관념 속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들은 호기심이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천박한 잡지나 스포츠신문을 읽거나 바보를 만드는 TV등에게 자기를 맡겨 버린다. 소비경향을 부채질하는 대중매체는 인간이 황금이라는 유령의 노예로 전락되는 것을 더욱 촉진시킨다.

 

우리나라에는 건전한 놀이문화가 발달되어 있지 않다. 등산과 같은 건전한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각종 체육 및 문화시설은 서민들이 이용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사람들을 심심하지 않게 해주는 경마, 프로야구, 프로축구 등이 있으나 이것도 알고 보면 사람을 한갓 구경꾼으로 만들고, 구경꾼을 봉으로 여기고 농락한다. 각종 스포츠는 깨끗하고 공정한 경기를 하지 않으며 구경꾼뿐만 아니라 선수까지도 사람대접을 제대로 해주지 않는다. 노인들은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제대로 사람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며 노인문화란 한마디로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종교를 믿는 사람이 참으로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직자들은 신도들을 인간으로서 키울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신도들을 돈을 갖다 바치도록 철저하게 훈련시키는데만 주력한다. 그들도 다른 장사꾼처럼 배금주의자이고 대체로 가난한 사람들을 철저하게 무시하며, 다른 종파에 속하는 사람을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는다. 일부의 종교지도자들만이 아직도 인간교육을 말로만 떠들 뿐이고, 거의 대부분의 종교지도자들은 그나마 인간교육에 관심조차 없다. 그 많은 신자들까지도 생명존중과 인간교육에는 관심이 없으며 단지 끼리끼리만 교제를 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교육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인간교육의 장애요소를 제거하면서 인간교육의 內實化를 꾀할 수 있겠는가?

 

 

III. 인간교육의 내실화를 위한 몇 가지 代案

 

우리나라에서 인간교육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교육에 대한 범국민적인 의식개혁이 요청된다. 우리의 교육위기는 교육제도를 바꾸는 것으로만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그동안 우리는 입시제도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교육제도를 수없이 바꾸어 보았지만 번번히 실패해 왔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국민전체가 참으로 교육의 가치에 대한 의식의 대변혁(혁명?)을 하지 않고서는 우리 교육문제의 근본적 해결, 특히 인간교육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교육개혁은 충분한 사전 준비없이 일조일석에 이루어질 수 없고 국민적 자각과 이해와 합의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논의를 좁혀 우선 인간교육을 위해서 지금 한국에서 무엇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인간교육의 장애요소를 제거할 수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로, 우리나라 교육의 지표가 선명하게 제시되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실정에 맞고 구호에 그치지 말아야 하며 구체적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의 목적과 교육정책의 근간은 政權이 바뀌더라도 持續性이 있어야함은 물론이다. 어떤 경우에도 교육의 목적은 생명을 존중하는 인간교육을 기본으로 삼아야 할 것이며 모든 교육정책이나 교육계획은 인간교육을 중심원리로 삼고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학교교육과 가정교육은 물론이고 사회교육 또는 평생교육 또는 종교교육 등 각종 교육에서 인간교육의 의의와 그 중요성을 국민들에게 일깨워 주어 잘못된 교육적 가치관의 更正을 과감하게 시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오늘의 입시위주 교육의 파행을 초래케 한 원인제공자가 바로 잘못된 성인들의 가치관과 교육관에서 비롯했기 때문에 우리 국민이 올바른 가치관과 교육관을 갖지 못하는 한 입시제도의 수정만으로 입시 위주의 교육의 풍토가 근본적으로 개선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에 대한 국민적 의식개혁이 모든 교육개혁의 先決要件이다. 그러나 이것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이제까지 우리정부가 일부 사람들의 불평을 일시적으로 입막음하려고 하거나 정치적 배려로 입시제도를 조령모개식으로 바꾸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학교교육은 어떤 외부의 압력이 있어도 굴하지 말고 교육의 지표에 충실하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둘째로 입시위주의 교육풍토를 革破해야 한다. 입시위주교육의 지양은 학부모들의 이기주의로 말미암아 실제로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우선 학교는 전인교육에 필요한 모든 교과를 차별하지 말고 제대로 학생들에게 가르쳐 偏知교육을 하지 말아야 하며 교육행정당국은 이를 철저하게 감독하고 인간교육의 시행을 장학방침의 기본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학교에서 인간교육이 제대로 시행되려면 학교와 학생과 학부모들이 대학입시에 구애받지 않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다시 말해서 고등학교는 진학 지도외에 직업보도에 대해서 학생들이 다양한 직업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할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일반 종합대학교의 교육과정은 학문중심으로 짜여있고 실제로 학자양성에 목표를 두고 있고 대학에 따라 특성도 없고 일률적이다. 그 결과 대학교육도 소수의 학자가 되려는 학생을 위해 절대 다수의 학생이 들러리로 희생되고 있다. 대학의 교육과정 내용은 학생들의 실제적인 요구를 만족시켜 주지 못하며 일반대학의 교육내용은 실제로 사회에서 거의 응용되지 못하는 것이며 이론에 치우쳐 있다. 그러므로 직업에 꼭 필요한 단순지식이나 기술습득들은 일반대학교가 아닌 전문기술대학에서 더 잘 배울 수 있다. 대부분의 청소년은 학자가 되기 위한 복잡하고 어렵고 시간이 많이 드는 공부를 대학에 가서 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참으로 필요한 교육기관은 전문기술을 가르쳐 주는 소규모의 다양한 실업,기술계통의 학교이다. 유럽처럼 기술계통의 고등학교와 전문초급대학에서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공부하는 것이 국가 사회발전을 위해서, 또 청소년과 학부모들에게도 이롭다. 지금처럼 고졸후 진학의 병목현상은 인간교육을 멍들게 하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우리의 청소년들은 자기의 소질과 적성과 능력에 맞는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그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비전을 가질 수 있는 풍토를 우리가 마련해 주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직장교육에서의 인간교육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할 수 있다.

 

교육의 근본은 국가나 경제계가 그때그때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들어 바치는 인간형성공장이 아니며, 교육과정은 곡식이나 과실을 획득하기 위해 적절하게 비료를 주고 제초제를 뿌리고 김을 매고 가지치기를 하거나 솎아내는 일을 하는 재배과정과 같은 것이 결코 아니다. 교육의 근본은 사람을 짐승이 아닌 사람다운 사람으로 일깨워 사람다운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며 끊임없는 인격적 각성조성의 작용이다.

 

우리 사회의 모든 비리의 근본원인은 한마디로 올바른 가치관 교육의 실패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올바른 가치관교육이야말로 모든 교육의 중심내용이 되지 않을 수 없다.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부정부패와 갈등은 황금만능주의와 개인적,집단적 이기주의와 같은 그릇된 가치관에서 생겨나왔다.잘못된 직업관과 직업윤리 의식의 박약, 교육에 대한 편견, 사치와 허영과 낭비, 합리적인 기준도 없이 함부로 자리 매김하는 소위 一流病, 결과 중심주의 등은 가치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는데서 파생된 것이다.따라서 우리 모두에게 참으로 중대한 것은 올바른 가치관을 배우고 가르치는 일이다.

 

인간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모든 사람은 부단한 자기반성을 통해 인간에 대한 풍부하고 올바른 지식을 가져야 할 것이며 자기연마와 풍부한 인간이해를 할 수 있어야 하며, 폭넓은 교양서적의 독서를 통해 미래지향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를 위해 참 인간교육을 위한 다양한 성인교육기관의 활발한 활동이 요청되지 않을 수 없다.

 

[진교훈(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 /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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