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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생명공학을 바라보는 교회의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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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6 ㅣ No.344

생명 공학을 바라보는 교회의 시각

 

 

인류의 미래는 유전자 안에 있다는 사고가 등장하면서 21세기를 생명 공학 또는 유전 공학의 세기로 전망하는 시각이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시각은 생명 공학에 대한 언론의 기사가 늘어나고 있는 현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생명 공학에 대한 기사를 다루는 언론 매체는 생명 공학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아주 피상적으로 다루고 있다. 생명 공학에 수반되는 위험성과 함정에 대해서는 별로 무게를 실어 기사화하지 않고 있다. 그 대신 생명 공학자 또는 관련 업계의 주장을 보도하는 데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생명 공학의 기술은 생명체를 원하는 대로 디자인하는 방법을 확립하고, 이를 실현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인간의 지배력을 뜻하며, 우리 자신과 우리의 후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하는 이른바 '꿈의 기술'이다. 그래서 생명 공학의 기술을 소수 집단의 점유물로 방관해서는 안 된다. 생명 공학을 대중의 관심사로 만드는 것이 현시점에서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이다. 그러기 때문에 생명 공학에 대해 공개적인 찬반 논의와 토론을 확산시켜야 한다. 토론과 논의 과정에서 생명 공학이 이미 있는 사실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임이 드러나야 한다. 곧 생명 공학 기술을 받아들일 것인가? 받아들인다면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생명 공학 기술만큼 갑작스러운 기술적, 경제적 기회와 도전 그리고 위험을 가져온 기술은 없었다. 생명 공학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은 근본적으로 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변화는 생명 공학이 유전자 단계에서 생명을 조작하는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가능하게 되었다. 예상되는 변화를 몇 가지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생명 공학 회사, 연구 기관 또는 정부가 인간의 유전자에 관한 정보를 해독하고 특허를 소유할 것이다. 또한 수많은 미생물, 식물, 동물에 대해서도 특허를 소유할 것이다. 이들은 우리 삶의 조건을 좌우할 수 있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2) 유전자를 이용한 질병의 치료, 그리고 대체 연료의 생산에 이르기까지 경제적 이익과 상업적 목적을 위해 새로운 유전자, 박테리아, 바이러스, 식물, 동물들이 지구 생태계에 방출될 것이다. 이러한 방출은 지구 생물권의 불안정을 초래하거나 매우 치명적인 유전자 오염을 확산시킴으로써 지구의 생물권 또는 생태계를 파괴할 것이다.

 

3) 생명 공학 기술을 군사 목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지구와 지구 안에 살고 있는 생명체를 황폐화시킬 수도 있다. 오늘날 핵무기가 지구와 인류의 안전에 위협을 가하는 것처럼 미래에는 생명 공학 기술로 생산되는 생물 병원균(세균)이 세계 안보에 심각한 위협으로 등장할 것이다.

 

4) 성에 의한 생식을 대체하는 복제가 가능하여 동물이나 인간의 복제가 일상화될 것이다. 소비자의 주문에 따라 유전자가 조작된 동물을 대량으로 복제 생산하여 화학 약품이나 의약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대량 생산하는 수단으로 이용할 것이다. 아울러 인간과 동물을 혼합한 잡종 키메라(반인반수)의 생산도 가능할 것이다. 키메라는 실험 대상이나 장기 제공의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 이처럼 유전자 이식 또는 조작으로 동물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냄으로써 자연과 야생 세계의 종말이 다가올 것이다. 그 대신 이른바 새로운 생물 산업 시대로의 진입이 가능할 것이다.

 

5) 수정란, 인간 배아, 자궁의 태아 등의 유전자를 조작하여 질병과 유전자 결함을 치료하거나 기질, 행동, 지능 또는 신체적 특징(머리카락 색, 피부색, 눈동자 색, 얼굴 생김새, 키 등)을 미리 디자인하는 맞춤 인간 시대도 도래할 것이다. 부모의 주문에 따라 맞추어진 아이들을 생산함으로써 이른바 우생 문명 그리고 유전자 차별이 출현할 것이다.

 

6) 사람들은 자신의 유전자 정보를 상세히 알게 되고 자신의 생물학적 장래까지 미리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유전자 정보를 알게 됨으로써 예전에는 불가능했던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예측하고 설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 고용주, 보험 회사 그리고 정부 기관이 교육 방식, 채용 여부, 보험료 납부와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 데 개인의 유전자 정보가 이용될 것이다. 그 결과 새로운 인종 차별도 출현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회성이나 평등의 개념이 바뀔 것이고, 개인, 인종, 민족이 유전자형에 따라 유형화되고 고정됨으로써 유전자형에 따른 계급 사회가 출현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생물학적 계급 제도의 출현이 발생할 것이다.

 

20세기가 물리학과 원자력 기술의 시대였다면 다가오는 새로운 세기는 생물학의 세기가 될 것이다. 생물학의 세기가 가져다줄 기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기술은 생명 공학 기술이 될 것이다. 생물학의 세기가 다가오면 우리가 얻은 지식을 다양한 형태로 응용할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인간은 그 속성상 도구 제작인이다. 인간은 지속적으로 환경을 배열하고 바꿈으로써 우리의 복리를 보장하고 좀더 나은 삶을 추구한다.

 

새로운 생명 공학 기술이 가져올지 모르는 잠재적인 결과들을 모두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고뇌가 깃들여 있다. 우리의 고뇌는 생명 공학 기술 그 자체의 이용을 찬성할 것인가 또는 거부할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고뇌는 다가오는 생명 공학의 세기에 어떤 종류의 생명 공학 기술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데 있다. 예측을 불허하는 불확실성을 두고 선택해야 하는 사실에 우리는 고뇌하고 있다.

 

지금까지 생명 공학을 둘러싼 대부분의 논의는 유전 공학자들의 주장을 소개하고 선전하는 정도에 머물러 있다. 우리의 미래를 이들 유전 공학자들의 손에 맡겨 놓아도 괜찮은가라는 중요한 문제에 대한 논의는 아직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 우리 각자가 공유해야 할 책임이 있다. 생명 공학 기술은 다른 어떤 기술보다 우리 개개인에게 직접적으로 그리고 강력하게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다가오는 세기의 생명 공학이 진행되는 방향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생명 공학을 둘러싼 토론과 논의에는 생명 공학 기술자, 기업가, 정책 입안자 등 일부 소수만이 참여해 왔다. 이제부터는 생명 공학을 둘러싼 토론과 논의에 입장을 달리하는 전문가들 이외의 사회 구성원 전체도 참여해야 한다.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고 맞이할 것인지에 대해 사회 각계각층이 활발한 토론과 논의의 전면에 나서야 한다. 그 미래는 우리와 우리의 후손을 위해 그리고 인간과 함께 이 지구를 공유하는 다른 생물들을 위해 존재하는 미래이기 때문이다. 생명 공학은 우리 각자가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거기에 기대어 살아온 가치에 대해 다시금 숙고하고 성찰하게 만들고 있다. 곧 생명 공학은 인간 존재의 의미와 목적에 관한 궁극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과학과 기술의 진보는 속성상 스스로 중단하거나 통제하지 않는다. 일단 발동이 걸리면 제동이 걸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과학과 기술의 과속을 통제할 방법에 대한 논의가 요청되고 있다. 물론 과학 기술을 통제하는 제도와 법규의 제정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과학의 건전한 양식과 건강한 상식에 호소하는 것도 중요하다. 과학은 제도와 법규의 제정을 과학의 연구를 위한 자유와 자율성을 침해한다고 주장하여 왔다. 하지만 과학 역시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 학문의 자유와 자율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과학의 자유와 자율성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건전한 양식과 건강한 성숙이 전제되어야 한다. 공명심이나 상업성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한 건전한 양식과 건강한 성숙을 기대할 수는 없다. 과학 기술이 인간의 존엄성을 목표로 삼을 때 그 도덕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고 말살하는 과학 기술은 결코 지지할 수 없다. 더구나 인간을 위한다고 하면서 인간을 수단으로 삼는 과학 기술은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

 

과학 기술은 진보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진보할 것이다. 과학 기술은 지금까지 자신이 이루어 놓은 눈부신 업적과 결과에 자만하지 말고 자신의 정체성을 거듭거듭 확인하는 철학적인 고뇌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고 있다. '할 수 있다'고 아무것이나 해서는 안 된다.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그 '할 수 있음'을 자제하고 통제하는 능력을 키워 낼 때 그리고 그 '할 수 있음'을 필요할 경우 기꺼이 포기하는 용단과 결단을 내릴 때 과학은 도덕성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우리 역시 과학과 기술이 가져다준 업적의 수혜자로서 과학의 도덕성과 신뢰 회복을 위해 그리고 '과학의 인간화'와 '과학의 그리스도화'를 위해 함께 고뇌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생명 공학이 가져올 긍정적 결과와 부정적 위험에 관한 논의는 아직 초보 단계에 머물고 있는 동안 생명 공학의 기술적 진보는 상당한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므로 생명 공학의 기술에 대한 허용과 제한에 대한 논의 역시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하고, 이를 위한 일반 대중의 의식화, 교육, 여론의 환기와 형성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생명 공학 기술을 완전히 금지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부의 허가권 행사나 사회적 또는 정치적 압력으로써 다양한 생명 공학 기술 가운데 어떤 기술을 선택하고, 어떤 기술을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과 민주적인 여론 수렴이 매우 절실하게 요청된다.

 

[안명옥 주교 /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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