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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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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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6 ㅣ No.342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무엇이 문제인가?

 

 

시작하면서

 

지난 1999년, 우리나라에도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이하 ‘법률’로 약칭)이 제정되어 2000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낙태천국’이라는 오명 아래 인간 생명에 대한 존엄성이 상실되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장기이식을 위한 섣부른 뇌사 판정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기 쉬운 위험을 안고 있다. 시행 초기부터 많은 문제점이 발견되어 수차례 개정을 한 이 법률은 지금도 많은 부분에서 인간 생명의 존엄성보다는 ‘장기의 적출과 이식의 적정성 도모’(제1조 : 목적)를 위한 법률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장기이식 기술의 발전은 많은 사람들의 건강을 되찾거나 죽어가는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아직 많은 부분에서 대체장기나 인공장기를 구할 수 없는 현실에서는 생체이식이나 뇌사자를 이용한 이식이 주로 이루어진다. ‘법률’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인간 존엄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는 것이 바로 장기이식과 뇌사 문제이다. 생체 이식에는 장기 기증자의 자발성과 기증의 순수성에 관련되는 자율성 존중의 문제가, 뇌사자의 경우에는 죽음에 대한 법률적 판단과 의학적 판단 사이에서 사회윤리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이 글에서는 생명-의료윤리의 원칙인 자율성 존중의 원칙, 선행의 원칙, 악행 금지의 원칙, 정의의 원칙에 따라 가톨릭 윤리가 지향하는 인간의 존엄성을 제고하는 방향에서 뇌사 판정과 장기이식에 관련된 문제를 ‘법률’ 안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더 나아가 생명존중을 위한 올바른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할 필요성에서 현행 법률의 문제점도 몇 가지 지적하고자 한다.

 

 

1. 뇌사 판정 문제

 

의학의 발전으로 죽음에 관한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그중에는 뇌사의 등장으로 ‘언제’ 죽음의 순간에 이르는 것인지도 인간이 결정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뇌사란 뇌기능의 비가역적 소멸 이후 길어도 2주일 이내에 심장이 멈추고 소생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의학계의 통설로 인정되는 상황에서, 뇌의 죽음을 전통적인 심폐사 이외에 사망의 시점으로 보자는 것이다. 뇌사 판정의 주된 이유는 소생될 가능성이 없는 뇌사상태에 빠진 사람에게 단지 죽음의 시간만을 연장한다는 것은 여러 사람에게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것 이외에, 죽음 이전에 장기를 적출하여 다른 환자를 살리자는 것이다. 

 

결국 뇌사 판정 기준의 설정은 범죄적인 근거를 피하면서 살아있는 사람으로부터 장기를 ‘합법적으로 적출’해 내기 위한 실용적인 목적으로 제시된 것이다. 뇌사의 출현으로 죽음의 정의와 판정 사이에 마치 두 가지의 죽음이 존재하는 것처럼 커다란 혼란이 생겨났다. 죽음의 정의는 의학적이거나 법률적인 것이 아니라 종교 철학적인 문제요 죽음의 판정에는 사회적 합의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특히 장기적출을 위한 뇌사 판정에는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할 수 있는 여지가 항상 존재하기에 신중하여야 한다. 장기이식으로 다른 환자를 살린다는 선행의 원칙과 장기적출을 위해 뇌사자에게 가해지는 악행금지의 원칙은 뇌사자의 자율성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원칙과 맞물려 어려움이 따른다.

 

이식에만 집중하다 보면 싱싱한 장기를 얻고자 뇌사를 빨리 판정하게 되어 오판할 가능성이 있으며, 더욱이 “실수로서 오판이 아니라 영리를 위한 비양심적인 조작으로서의 오판”1)까지도 존재한다. 이는 생명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뇌사가 확실한 죽음으로 인정될 수 있는지의 여부가 불확실한 현실과 우리나라처럼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의식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악행을 금지하기 위하여 뇌사 판정이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뇌사를 판정하는 자들의 윤리에 맞는 올바른 양심적인 판단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뇌사 판정자들의 양심적인 판단은 법률에 앞선 아니 법률을 넘어선 요구인 것이다. 물론 대다수가 양심적인 판단을 하고 있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오판을 한다면 그것은 한 사람의 생명을 거슬러 판단하는 것이므로 대단히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뇌사 판정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 ‘법률’ 제16조의 별표에 따르면, 뇌사로 인정할 수 있는 징후들의 관찰 시간을 6시간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국제적으로 중요하게 인정되는 1986년 하버드 의과대학 특별위원회의 기준인 24시간을 훨씬 못 미치는 것으로, 싱싱한 장기를 얻기 위한 (신중하지 못한) 규정이라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생명의 복음」은 이식용 장기를 구하기 위한 뇌사 판정의 위험성에 대해 “이식용 장기의 활용 가능성을 높이려고, 기증자의 죽음을 검증할 객관적이고도 적절한 기준을 지키지 않고 장기들을 제거하는 경우”(「생명의 복음」, 15항)에 안락사가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장기이식 때문에 뇌사 판정을 받는다는 것은 그 사망자가 단순한 하나의 목적, 곧 장기이식 때문에 소모품으로 취급되고 전락되어 버리는 위험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죽음의 시간을 판정하는 엄격한 기준이 요구되는 것이며 단순한 뇌 기능의 정지만으로 죽음을 판정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2) 뇌사 이후에도 인공적 수단을 통한 소생은 여전히 가능한 상태이며 뇌사 상태에 빠진 사람은 죽은 사람이 아니라 임종 중에 있는 사람이므로 모든 봉사와 사랑 속에서 평화롭게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보살핌을 받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뇌사 판정에 관한 법률(제16조와 별표)은 먼저 임종자와 그 가족들의 유익을 최대한 배려하여 생명의 존엄성을 드높이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할 것이다.

 

 

2. 장기 문제:기증, 적출(이식), 매매

 

장기기증이 아무리 좋은 뜻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윤리 원칙에 따라 장기기증이나 적출, 이식 행위가 인간 존엄성을 훼손하지 않는지를 윤리적인 관점에서 신중하게 고찰해 봐야 할 것이다. 장기 문제에는 기증 문제와 적출(이식) 문제, 매매 문제 등이 있다.

 

장기기증은 이를 통해 이웃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만 평가할 것이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지 않으려면 장기기증을 통해서 발생하는 기증자의 기증의사의 순수성과 자발성 문제를 살펴봐야 하는데, 이는 생명`-`의료윤리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자율성 존중의 원칙과 관계되는 문제이다. 그리고 수혜자 측에서 볼 때 장기 공급의 기회 균등의 문제는 정의의 원칙에 비추어 살펴보아야 한다.

 

장기기증이 합당한 방식으로만 이루어진다면 지고한 사랑의 행위요 인간 연대성의 실현인 것만은 사실이다. 교황 비오 12세는 건강한 장기기증을 사랑의 행위로 평가하면서 전체성의 원리를 적용하는데, 그 이유는 인간은 서로 아무런 관련 없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연대성을 이루고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확대 해석은 금지했다. 곧 국민 전체를 한 기관의 조직으로 생각하고 개인을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3)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무엇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장기기증이나 뇌사 판정에 대해 별다른 설명이 없는 회칙 「생명의 복음」에서는 ‘윤리적으로 합당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장기기증’은 다른 희망이 전혀 없는 환자에게 건강과 삶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영웅적인 행위로 묘사하고 있다.4) 그러나 흔히 장기이식과 관련하여 발생하는 문제들은 더욱 복잡한 문제가 있으니 윤리와 함께 사회적 분위기라 할 수 있는 사회 통념, 곧 문화와도 관련이 있다. 유교적 사생관을 가진 우리나라는 아직 뇌사를 이용한 장기이식에 그렇게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현행 ‘법률’에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장기기증 등의 문제에서 기증자의 자율성 존중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이다. 특히 정신지체자나 장기기증 동의권자와 수혜자가 일치하는 경우가 그렇다.5) ‘법률’ 제18조는 “살아있는 자의 장기 등은 본인이 동의한 경우에 한하여 이를 적출할 수 있다.”라고 하면서 “16세 이상인 미성년자의 장기 등과 16세 미만인 미성년자의 골수를 적출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본인의 동의 외에 그 부모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라고 했는데, 장기이식에서는 장기의 적합성 문제 때문에 장기 수혜자와 부모가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부모의 치료를 위하여 미성년 자녀의 장기가 적합하다고 판정 났을 경우를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의 정서상 부모를 살리기 위해 당연히 자녀가 희생되어야 한다는 분위기를 미성년 자녀가 얼마만큼이나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것과 거절할 경우 부담감이나 죄책감을 느끼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또한 이들이 과연 충분한 설명을 듣고 나서 순전히 자유로운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내린 결정인가 하는 자율성 존중의 원칙에 관한 문제도 발생한다. 이 경우 미성년자나 정신질환자, 정신지체자의 뇌사 또는 생체기증을 아예 명시적으로 금하고 있는 미국, 독일, 스페인 등의 입법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의 ‘법률’ 제18조는 미성년자(제1항)나 의사 무능력자들(제2항 1.2호)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소지가 많다고 하겠다.

 

덧붙여 장기매매에 대한 논란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신체의 일부를 매매함으로써 발생하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훼손이다. 인간은 그 누구도 자기 신체에 대한 처분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인간 생명은 선물로 주어진 것이다. 생명을 선물로 받은 인간은 그것을 잘 관리하는 존재에 불과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간이 하느님께 받은 생명의 ‘선물’을 ‘사물’로 격하시키는 것은 창조주께 대한 모독이다. 

 

한편, 법적인 단속이 있는데도 ‘사설 매매중개인이 존재’6)하는 현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지가 문제로 남는다. 기증자를 뺀 다른 사람이 기증된 장기로 돈을 버는’7) 일이 발생해서는 기증의 의미가 퇴색하며 기증도 줄어들 것으로 우려된다. 기증 자체로 인해 기증자가 하나의 도구나 수단으로 간주되어서도 안 된다. 기증은 바로 인간의 고유한 생명까지 내어주면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삶의 표현이며 고귀하고 숭고한 사랑의 표현이기에 이러한 기증의 의미를 의학적인 목적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해서는 안 될 것이다.8)

 

장기분배 문제는 정의의 원칙과 관련되어 나타난다. 특히 가난한 자의 장기수혜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식 대상자 문제에서 ‘법률’은 수혜자의 기회균등을 놓치는 잘못을 보이고 있다. ‘법률’ 제5조는 “장기 등의 이식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이 장기 등을 공평하게 이식받을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도록” 하고 있다. 이어 제6조에서는 장기매매를 금지하면서도 동법 제37조 제1항에서는 “장기 등의 적출 및 이식에 소요되는 비용은 해당 장기 등을 이식받은 자가 부담한다.”라고 하여 고가의 의료비가 드는 장기이식에서 이식에 소요되는 비용을 부담할 경제적 능력이 없는 이는 사실상 제외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장기 등을 기증한 기증자의 의도에도 맞지 않는다. 기증은 교환정의가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이 부분의 법률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본다. 숭고한 사랑의 행위인 장기기증의 의미가 변질되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마치면서

 

이상에서 ‘법률’을 중심으로 장기이식과 이에 관련된 뇌사 판정의 문제를 의료윤리의 원칙에 따라 살펴보았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위해 가장 중요한 점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이에 선행하는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이며, 법률 전체에서 이러한 맥락이 흐르고 있어야 할 것이다. 한편, 의료 문제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하게 부딪히는 인간 존엄성의 문제는 고통에 관한 것이라고 본다.

 

의료의 일차적인 목적은 고통당하고 있는 환자를 치료하는 것, 곧 그 고통에서 현실적으로 해방시키는 것이기에 고통의 감소나 제거 또한 무시할 수는 없다. 가톨릭의 의료윤리는 고통을 당하는 환자를 그 고통을 포함하는 전인적인 실존으로 고찰한다. 고통을 제거하거나 감소시키는 것만이 궁극적인 최상의 목적이 아니라 고통을 통한 인간 성숙과 그 고통의 의미를 받아들이는 것 또한 영적인 성숙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삶의 질 문제가 등장하여 어떠한 대가를 치르고라도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대두되면서 고통은 인생에서 그 의미를 상실해 가고 있다. 특히 의학이 발달한 선진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지나치게 효율성에 매달리면서 고통의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9) 근본적으로 인간은 자신의 삶(삶의 시간을 늘리거나 죽음을 연장하는 일 등)에 아무런 개입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고통 그 자체는 제거되어야 할 악이 아니라 극복되어야 할 실재이다. 우리는 고통과 죽음의 의미를 왜곡하고 인간 생명의 가치를 질보다는 양으로 결정해 버리는 단순한 공리주의를 경계한다.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의학의 목적은 고통의 제거와 함께 다른 한편으로는 단순히 죽음을 쳐 이기는 것만이 아니라 질병으로 고통받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임종의 순간까지 도우며 그 고통에 동참하여 봉사하고 존엄한 죽음을 맞도록 준비시키는 역할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의학의 인간화가 필요하다. 따라서 고통의 제거를 빌미로 인간의 존엄성마저 훼손시켜 비인간화하는 모든 처치나 법적 규정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법률’의 내용은 ‘장기의 적출과 이식의 적정성 도모’보다는 뇌사와 장기이식 등에서 초래될 수 있는 인간 존엄성의 훼손을 방지하고 윤리적인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방향에서 보완·정비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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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정우, “뇌사와 장기이식의 입법화에 따른 문제점에 관한 윤리신학적 고찰”, 「현대 가톨릭 사상」 17호, 1997년 가을, 76면.

2) 위의 책, 67면 참조.

3) 위의 책, 69면 참조.

4) 요한 바오로 2세, 「생명의 복음」, 86항.

5) 한영자 외 공저, 「장기이식 현황 및 정책과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02년, 69면.

6) 김상준, “장기이식과 관련된 문제”, 「임상윤리학」,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9년, 172면.

7) R.`Munson, 「의료 문제와 윤리적 성찰」, 박석건 외 옮김, 단국대학교 출판부, 2001년, 385면.

8) 김정우, 앞의 책 참조.

9) 「생명의 복음」, 64항 참조.

 

[사목, 2004년 1월호, 손성호(대구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교목부장 ·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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