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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미래의학을 위한 생명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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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7 ㅣ No.378

미래의학을 위한 생명공학

 

 

오늘날 21세기 첨단과학이 발전하고, 인간의 생명현상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과연 우리가 가장 소망하는 미래 인류의 문명은 어떤 형태이어야 하며, 그 사회에서 우리가 누리고자 하는 의학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 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 보다 강하게 제시되고 있다. 특히 한치 앞을 가늠하기 힘들정도로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현대 과학에서, 생명공학이 제시하고 있는 여러가지 가능성과 비전에 대해 그것이 우리 사회가 환영할 만한 청사진을 제시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함께 각각의 청사진에 대한 대차대조표에 따른 비용계산도 함께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위한 몇 가지 전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전제1. 의학은 사회적 문화적 합의의 산물이다.

 

의학은 인간이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가장 원시적 본능의 표현이자, 이를 위한 체계적 노력의 표현이다. 무속신앙에 의한 의학이건, 히포크라테스의 의학 또는 과학적 방식에 의한 의학이건 다양한 모습으로 시대적 신념과 학문적 성과에 의해, 그 사회의 인간이 수긍할 수 있는 도덕적, 문화적, 사회적 합의의 형태를 갖출 뿐 아니라, 다수가 향유할 수 있는 경제성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극단적인 예로, 질병치료를 위해 인간을 냉동보관 한다거나, 과거 소설속에 등장한 것처럼, 나병환자가 어린아이의 간을 먹는 것과 같은 형태가 의료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도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전제2. 생명공학을 통한 난치병치료에는 비용계산이 포함되어야 한다.

 

작금의 생명공학의 미래상에 대한 사회각계 각층의 이견은 인류역사에서 전래를 찾아보기 힘들만큼의 새로운 양상을 띠고 있다. 병든 사람이 질병에서 해방될 수 있는 각 개인의 건강추구권과 생명윤리의 수호를 통한 문명보존권이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줄기세포가 등장한 이래 전분화능을 가지고 있는 배아줄기세포를 연구함 으로써 질환을 정복할 수 있다는 비전과 반면 전분화능에서 다소 떨어지지만, 의학적으로 적용가능하고, 윤리적 부담이 적은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하여 질환을 치료하는데 사용해야 한다는 측의 두가지 의견이 평행선을 그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따라 과연 성체줄기세포가 배아줄기세포처럼 여러가지 세포로 분화할 능력이 있는지, 또는 증식을 통해 원하는 세포를 충분히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이른바 줄기세포 공방이 학계와 관련 단체들 사이에 발생하였다. 이러한 공방에서 제 1라운드의 시작은 성체줄기세포가 과거 생각했던 것처럼 국한된 분화능을 가진 세포가 아니고 훨씬 더 많은 종류의 세포를 생산해 낼 수 있는 능력이 밝혀지기 시작하면서였다. 또 하나의 공방은 배아줄기세포가 미분화 상태에 있다가 체내의 체세포와 융합을 할 경우 이들 세포들이 결합하여 정상적인 2배체가 아닌 4배체로 발생하면서, 다양한 장기의 세포로 분화되는 것이 보고된 이후, 성체줄기세포의 분화의 다양성도 그런 식에 의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과학적 검증후에도 성체줄기세포가 가지고 있는 분화의 다양성이 입증되고, 세포융합과 같은 현상이 성체줄기세포에서 나타나지 않게 됨에 따라 어렵고도 까다로운 성체줄기세포에 대한 검증이 정리되어 가고 있는 추세이다.

 

이제는 이러한 검증이 배아줄기세포에 옮겨지고 있다. 줄기세포의 검증에 관한 제 2 라운드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배아줄기세포가 240 여종의 세포로 분화될 능력이 있다지만 실제 인간의 질병의 치료를 위해 필요한 세포는 당뇨병, 파킨슨, 알츠하이머씨 병, 백혈병등 불과 몇십종이라면 240종이라는 숫자가 얼마나 의미를 갖는 것인지 - 또 배아줄기세포를 체내에 이식할 경우 암이 발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들 세포는 자기자신과 달라 이식을 하면 면역거부반응이 일어나서 이식효과가 떨어지게 된다. 이러한 이식거부반응을 제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유전적 조작에 의한 주조직적합성 항원을 전부 제거하거나, 핵이식을 통하여 유전형이 이식 받고자 하는 사람과 동일한 세포로 만드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인간의 체세포 복제인 것이다. 체세포 복제가 자칫 잘못되어 인간복제를 초래할 위험성에 대한 가능성도 지나치게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이러한 윤리적 고려 이외에도 과학적인 난항이 기다리고 있다. 우선 체세포 복제를 위해서는 이미 만들어진 배아줄기세포에 대해 핵이식을 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대단히 어렵고 세포자체가 비정상적으로 발생하므로, 배아줄기세포가 아닌 난자의 핵을 제거하고 체세포의 핵으로 대치해서 그로부터 배아줄기세포를 유도하는 방법이 쓰인다.

 

그러나 이러한 체세포의 난자에 대한 핵이식 역시, 배아 발생률이 5% 이하로 수백개의 난자가 소요될 뿐 아니라, 발생과정에서도 유전자 발현현상이 정상적인 수정에 의한 것과 거리가 있어 이에 대한 연구가 실용화 단계까지는 거리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기술을 사람에게 적용하는 과정에서 난자의 공급이 문제가 되므로, 이에 대한 대안으로 시도된 것이 소의 난자에 사람의 핵을 치환한 이른바 이종간의 핵치환이다. 그러나 이종간의 핵치환에 의한 경우는 동종간의 경우보다 더욱 어려워, 배아줄기세포를 얻기 위한 배반포 단계까지도 발생이 진행되지 못하고 죽는 것이 현실이다.

 

전제3. 과학적 연구의 효용은 근시안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현재 인간은 줄기세포와 인간생명의 발생신비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는 연구의 초기단계라 할 수 있다. 성체줄기세포나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연구가 초기단계에 있는 것을 고려하면, 훗날 지금 생각되어지는 것과 전혀 다른 결론이 도출될 수 있는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게 된다.

 

연구의 효용성은 근시안적인 판단에서 이루어지지 않아야 하는 것도 간과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마담 퀴리가 방사선 동위원소를 처음 발견하였을 때, 자연계에 있는 이러한 새로운 물질이 어떻게 인간에 의미를 주게 될지 상상할 수 없었지만, 오늘날 현대사회에서 방사선 동위원소는 의학의 치료기술 발전에 있어 중대한 공헌을 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달나라를 탐사하는 것이 달에 가서 살 수 있는 주거공간을 확보한다는 목적보다는 우주의 생성과 역학관계를 연구하기 위한 목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생명현상과 개체발생에 대한 연구자체가 치료목적이 아닌 과학적 연구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과학적 연구가 인간을 위해 진정한 기여를 하는 것은 과학적 성과가 도출된 후 먼 훗날에서나 가능한 과학자체의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제안: 순수연구만으로도 10년은 짧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생명공학의 발전상을 고려한다 할 지라도, 이들 연구들이 가지고 있는 과학적 가능성과 한계, 경제적 비용, 사회적 부담들에 대한 총체적인 요소들은 예상 가능하다. 생명공학이 보다 실현성 있고 합리적인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생명현상에 대한 조절기전과 분자적 원리등에 대한 심오한 기초적 연구가 필수적이다. 이러한 기초적 연구를 동반하지 않은 적용위주 의 접근 방식은 무모할 뿐 아니라 이들이 곧바로 의료행위로 연결될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켜 스스로 오해를 살 수 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인 첨단연구자들도 이러한 현재 생명과학에 있어 산적한 순수연구를 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벅찬 상황이고, 그 과학적 연구성과를 낼 수 있는 그룹조차도 세계적으로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생명공학 발전은 좀더 심오한 기초과학연구를 통해 진일보 할 수 있을 것이며, 핵치환이나 발생에 관한 순수연구는 인간이 직접 모델이 아닌 실험동물을 모델로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과학정책 입안에 있어서도 성과물 위주보다는 기초적 연구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져야 할 것이며, 과학적 연구의 경제적 가치에 대한 분석에서도 보다 현실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20세기 들어 폴 틸리히는 이미 성숙한 인간에 대한 성숙한 접근을 강조한 바 있다. 현대사회에 있어 인간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관념적인 윤리의식도 아니지만, 부풀려진 빵은 더욱 아닌 것이다. 성숙한 인간은 성급한 인간과는 다르기에 기다릴 줄 아는 것이며,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으며, 그에 대한 현명한 결정을 할 능력이 있다. 모든 가능성에 대한 겸허한 공개와 창조적 합의를 통해 우리사회의 미래의학발전 및 생명공학기술 개발이라는 이정표를 제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오일환(가톨릭대학교 의과학연구소) /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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