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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생명공학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 인간유전체연구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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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7 ㅣ No.375

생명공학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 - 인간유전체연구를 중심으로

 

 

최근 급속한 발전 속도를 보이고 있는 생명공학은 지금까지의 그 어떤 과학기술보다도 시민들의 일상적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심지어 21세기는 생명공학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도 이제 보편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제레미 리프킨은(Jeremy Rifkin) 이미 수 천년 동안 생명체를 이용하는 기술을 발달시켜온 인류가 마침내 필요에 따라 생명체를 창조하는 "제2의 창세기"를 만들어가고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과학자들이 생명의 신비의 열쇠를 신으로부터 넘겨받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향후 25년 동안에 우리의 생활양식은 우리가 과거 200년 동안 겪었던 것보다도 더 근본적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Rifkin, 1998).

 

생명공학을 포괄적으로 정의하자면 산업적으로 유용한 제품을 만들거나 만드는 과정을 개선하기 위하여 생명체 또는 생체기능을 이용하는 기술을 의미하는데, 1970년대 이후 새롭게 발전하고 있는 생명공학은 세포생물학이나 분자생물학의 발전에 힘입어 유전자를 변형하거나 유전자를 재조합하는 기술, 이른바 유전자재조합기술(recombinant DNA technology)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유전자재조합기술이란 유전자의 기능과 속성을 밝혀서 바람직한 형질을 가진 유전자를 찾아내고 다양한 방법을 통해 식물이나 동물, 그리고 미생물에 유전자를 주입하여 변형하는 기술을 말한다. 이러한 기술을 통해 암수의 교배를 거쳐 여러 세대에 걸쳐 바람직한 형질을 개량하는 전통적인 육종법에서는 얻기 어렵거나 종간의 경계로 인해 불가능했던 새로운 생물까지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 새롭게 발전하고 있는 생명공학은 이러한 유전자재조합기술과 더불어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생물을 무제한적으로 복제하는 유전자복제(cloning) 기술을 핵심적인 내용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생명공학은 보건의료, 환경, 농축산, 에너지 등 산업적 응용범위가 넓고, 소량 다품종의 고부가가치 제품의 창출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시장 잠재력이 매우 크기 때문에 이미 1970년대부터 각국 정부와 수많은 바이오 벤처기업들 및 대기업들이 생명공학 연구에 자금을 쏟아 붓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명공학의 발전은 사회적으로 기회와 동시에 위험을 던져주고 있기 때문에 격렬한 사회적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동물과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생명공학 연구는 주로 윤리적 차원의 논란들을 야기해 왔다(김상득, 2000a; 박은정, 2000; 박희주, 2002; 이영희, 2002). 물론 생명공학에 대한 이러한 윤리적 차원의 문제제기와 토론은 매우 적절하고 중요한 것이지만, 이러한 윤리담론은 생명공학이 지니고 있는 사회학적 함의에 대한 논의와 결부될 때 더욱 풍부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이 글에서는 생명공학이 던져주고 있는 사회학적 문제들을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과학기술의 사회학은 통상 과학기술(지식) 창출과정의 사회적 성격을 강조하는 과학기술의 '사회적 배경(구성)' 연구, 이렇게 창출된 과학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사회적 영향' 연구, 그리고 보다 실천적인 관점에서 과학기술의 바람직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사회적 통제' 연구로 이루어진다(이영희, 2000). 이 글에서도 먼저 생명공학의 사회적 형성과정을 생명공학의 자본화 측면에서 살펴보고, 이어 생명공학이 제기하는 다양한 사회적 영향과 함의들을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생명공학이 보다 인간적이고 생태친화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유도하는 사회적 통제 방안을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1. 생명공학 발전의 사회적 배경: "산학협동"과 생명공학의 자본화

 

서구의 경우, 대부분의 다른 기술들과 마찬가지로, 생명공학의 발전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것은 이윤극대화를 최고의 목표로 삼는 자본이었다(Krimsky, 1991; Kenney; 김환석, 1999). 1944년에 DNA가 발견되고, 1953년에 DNA의 이중나선구조가 밝혀졌지만 생명공학이 급속하게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에 이르러서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시기는 사실 생명공학의 상업적 잠재력을 일찌감치 간파한 자본가들과 기업가들에 의해 생명공학이 상업적으로 포섭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미국의 경우 벤처 자본가들은 1970년대 중후반부터 생명공학 분야에 적극적으로 투자를 시작하였다. 예컨대 1976년에 설립된 제넨테크(Genentech)의 경우 벤처자본가에 의해 투자를 받았는데, 공동창업자중의 한 명은 바로 유전자재조합기술을 개발한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프란시스코분교(UCSF)의 허버트 보이어(Herbert Boyer)였다.

 

이러한 생명공학의 자본화, 넓게는 생명의 산업화가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사회적 기반으로서 생명특허 문제도 이 시기에 제기되었다. 1971년에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사에서 근무하던 인도 출신 미생물학자 아난다 차크라바티(Ananda Chakrabarty)는 미국 특허청에 유전자 조작 미생물을 특허 출원함으로써 생명공학 산업화의 물꼬를 텄다. 최종적으로 1980년에 미 대법원에서 5:4라는 근소한 차이로 차크라바티가 승리함으로써 최초로 유전자 조작된 생물에 대해 특허가 부여된 것이다. 이러한 대법원의 판결은 사실상 생명체를 사유화하여 상품화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 준 것에 다름 아니었다. 이처럼 대법원이 생물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지 몇 개월 지난 뒤인 1980년 10월, 제넨테크사는 1주당 35달러에 약 1백만 주를 주식시장에 내놓았는데, 거래 개시 후 처음 20분 동안 주가는 주당 89달러로 치솟아 3천 6백만 달러 어치의 주가가 오후 늦게 거래 마감 벨이 울릴 때는 5억 3천2백만 달러로 평가되었다. 놀라운 것은 그 회사가 이제껏 시장에 내놓고 있던 상품은 겨우 하나뿐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이처럼 생명특허의 형식으로 생명공학의 자본화가 사회제도적으로 뒷받침됨에 따라 대학에서 연구되는 생명공학에 대한 자본의 포섭은 더욱 활발히 전개된다. 미국의 경우 1971년부터 1978년까지 단지 19개의 바이오 벤처기업들이 탄생했지만 1979년에는 9개, 1980년에는 18개, 그리고 1981년에는 33개의 기업들이 새롭게 탄생하였다. 1994년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는 당시 약 700여 개의 생명공학 기업들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생명공학의 자본화는 대부분 "산학협동"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다(Hubbard &Wald, 1999). "책임있는 유전학회의"(CRG: Council for Responsible Genetics)에서 펴내는 Genewatch라는 잡지(1991년도)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 Tufts대학 정책학 교수인 크림스키(Sheldon Krimsky)는 권위 있는 미국립과학원(National Academy of Sciences)의 회원인 생명공학자 중 무려 37%가 기업과 밀접한 협력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밝혀 냈다. 이 잡지는 또한 MIT 생물학과 교수의 거의 1/3이, 그리고 하버드대 생물학과 교수의 1/5이 생명공학 기업과 공식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공식적 관계란 과학자들이 생명공학 기업의 이사회에 참여하거나 지분을 소유하거나 고문역할을 맡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허버트 보이어처럼 과학자가 직접 창업에 참여하는 경우도 많다.

 

그 결과 대학에서의 생명공학 연구는 이제 시장에서 돈과 바로 교환될 수 있는 상품이 됨으로써 과학기술지식의 자본화, 상품화를 더욱 촉진하게 되었다. 심지어는 기업이 대학에 자금지원을 해주는 대가로 연구결과를 포괄적으로 통제하는 방식도 등장하였다. 예컨대 1981년도에 하버드대 의과대학에 소속된 한 종합병원(Massachusetts General Hospital)은 독일 제약회사 Hoechst AG와 10년짜리 계약을 체결하였는데, Hoechst는 병원에 천문학적인 연구비를 지원해주는 대신에 병원에 근무하는 연구자들은 그들의 모든 연구결과를 다른 곳에 발표하기 전에 Hoechst 측에 먼저 보여주어야 하고, Hoechst는 잠재적으로 상업성이 있는 발견결과에 대해 배타적인 소유권을 행사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제 과학자들 스스로가 과학사회학자인 로버트 머튼(Robert Merton)이 이야기한 과학자사회의 규범(공유주의, 보편주의, 불편부당성, 조직화된 회의주의)을 부정하고 "기업가적 과학자"를 바람직한 역할 모델로 삼게됨으로써 이른바 "Academic capitalism"(Slaughter &Leslie, 1999)을 공고화한다. 이 체제하에서는 단순히 동료 과학자들의 존경과 칭찬, 그리고 지식의 진보에 대한 공헌이 더 이상 연구업적에 대한 보상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상업적으로 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는 시장적 전망과 특허 등이 그 보상이 된다. 결국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공공적 지식생산의 보루여야 할 대학이 사적 자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산학 결합관계는 바로 "이해갈등"(conflicts of interest)의 문제를 야기한다는 점도 많이 지적되고 있다. 왜냐하면 이처럼 특정 기업과 경제적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들이 과연 연구제안서나 연구결과의 심사과정, 정부정책결정의 자문과정 등에서 과연 공정성과 객관성을 견지할 수 있겠는가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매우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떠한가?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초창기에는 서구와는 달리 정부가 생명공학 진흥의 일차적인 행위자로 기능하였다. 기술수준이 상대적으로 낙후하였던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까지는 정부가 '유전공학육성법'이나 '생명공학기본계획' 등을 수립하여 생명공학 진흥을 직접적으로 주도하였고, 대기업과 벤처기업을 중심으로 많은 민간기업들이 생명공학 분야에 뛰어들어 바이오벤처로 등록된 회사만해도 약 400개에 이르게 된 현재에도 정부는 생명공학 진흥을 위한 기반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물론 최근에 들어와 정부의 이러한 지원에 힘입어 생명공학 관련 기업들이 다수 생겨나면서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생명공학의 자본화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 실제로 바이오벤처기업들의 많은 수가 현직 대학교수에 의해 설립되었고, 구체적인 자료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과 마찬가지로 생명공학 분야에 종사하는 대학교수의 상당수가 기업체와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학협동"을 부추기는 정부의 정책이 여기에 일조하고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2. 생명공학의 사회적 영향 및 함의

 

생명복제를 둘러싸고 제기되는 문제가 주로 윤리적 차원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면, 인간유전체 연구는 주로 사회적 차원에서 논란을 야기한다. 인간유전체 연구가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르게 된 것은 지난 1980년대 말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하여 전세계적인 규모에서 진행되었던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일차적 성과가 2001년 2월에 발표되면서부터이다. 2001년 2월에 인간게놈프로젝트의 결과로 인간게놈의 지도가 밝혀지고 DNA 염기서열의 위치가 해독되었음이 알려지자 우리나라 정부도 향후 인간유전체 연구에 막대한 지원과 육성을 아끼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하였다. 정부와 이 분야의 과학자들은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일차적인 성과에 바탕하여 이제 인간유전체 연구는 DNA 서열 정보를 이용하여 그 속에 담겨있는 유전자들의 기능을 밝혀내고 이를 생명현상 이해에 적용하여 생로병사의 기전을 밝혀냄으로써 인류가 안고 있는 질병문제를 해결하고 수명연장 등을 가능케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향후 10년 내에 인간의 게놈 속에 담겨있는 유전자들의 세포 내 기능을 밝히고 이를 활용하여 한국인에 주로 나타나는 질병과 관련이 있는 유전자들을 발굴하고 이의 기능분석을 통해서 질병을 조기에 진단하여 치료할 수 있는 신의약품을 개발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유전체 연구에 대한 장밋빛 전망에도 불구하고 사회학적 측면에서 볼 때 인간유전체 연구는 다음과 같은 커다란 문제점들을 내포하고 있다. 유전자정보를 이용한 사회적 차별과 프라이버시 침해 가능성, 새로운 우생학의 등장 가능성, 그리고 유전자 결정론의 확산 가능성이 바로 그것이다.

 

1) 유전자정보에 기반한 사회적 차별과 프라이버시 침해의 문제

 

생명공학의 발달은 인간유전체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도 상당한 진전을 가져왔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유전체 연구의 진전은 유전자검사를 통해 도출되는 유전자정보의 이용이 초래할 수 있는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먼저 유전자정보에 기반한 차별문제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유전자정보 차별은 개인의 유전자정보를 이용하여 고용이나 보험 등에서 불이익을 주는 것을 말한다. 1996년에 하버드대학의 한 연구팀은 미국 내에서 이루어지는 유전자 차별 실태를 조사한 바 있는데, 이 연구는 유전자 차별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널리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Rifkin, 1998). 유전자정보에 기반한 차별은 보험회사, 건강관리 회사, 정부기관, 입양기관, 그리고 학교를 포함한 광범위한 기관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었다. 먼저 고용의 경우, 고용관계를 개시하는 계약을 체결하려 할 때 고용주는 피고용자에게 유전자정보를 제공할 것을 요구하거나 유전자정보를 이유로 고용관계의 개시 단계에서 차별할 수 있고, 이미 고용관계가 성립되었다고 할지라도 노동자가 질병이나 특정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음을 이유로 하여 고용관계를 해지하거나 장래의 고용관계에서 차별을 가할 수 있다(정규원, 2001).

 

예컨대 어떤 화학 회사들은 매우 유독한 작업 환경에 유전자적으로 예민한 노동자들을 찾아내기 위하여 피고용자의 유전자정보에 관심을 갖는다. 높은 건강보험 비용, 장애 보상 청구, 장기결근을 우려하는 회사들도 병에 더 쉽게 걸릴지 모르는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데 관심을 갖는다. 항공관제회사, 항공사, 경찰서와 같이 고도의 정서적 안정을 요하는 어떤 기관들은 알콜 중독, 우울증, 그리고 기분과 행동상의 이상을 유발하는 유전자 소인을 찾아내기 위한 유전자검사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실제로 유전자 차별에 관한 1996년도 조사보고서는 고용에서의 유전자정보에 기반한 차별이 점점 증가하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 중 한 예를 들면, 어떤 여성 노동자는 헌팅톤무도 병이 발병할 위험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 갑자기 해고되었다. 그녀는 여러 번 승진도 하였고 높은 업적 평가도 받았다. 그녀는 이 질환의 징후가 나타나지 않았고 이 질환에 대한 검사조차 받아본 적이 없었지만, 단지 그녀의 가족 중 한 명에 이 질환이 발병했다는 이유만으로 해고된 것이다. 한편 1982년에 미 의회산하 기술영향평가국(OTA)은 자체적으로 미국 내 기업을 조사했는데, 조사 대상기업의 거의 반 이상이 유전자검사를 하고 있으며, 이 검사 결과를 토대로 '위험한' 노동자를 전보하거나 해고했다고 한다.

 

보험에서의 차별도 마찬가지이다. 보험회사는 개인의 유전자정보를 이유로 특정 개인에게 보험 가입 내지 보험료에서 차별을 가할 수 있다. 예컨대 미국에서 24세의 어떤 여성은 생명보험 가입을 거부당했는데, 그 이유는 그녀의 가족 중에 헌팅톤무도 병으로 사망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뉴스위크>는 미국 보험업계의 차별 실태를 조사한 적이 있는데, 여기에서도 유사한 남용 사례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떤 가정은 네 명의 아이 중 한 아이가 취약 X염색체병으로 고통받고 있었는데, 보험회사는 이 사실을 알고는 가족 전체에 대해여 이 질환을 보험적용 대상에서 제외해 버렸다는 것이다. 그 나머지 아이들은 그 질환을 앓고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관계없이 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한편 범죄 수사용 유전자은행의 설립이나 보호시설 아동들에 대한 미아찾기를 명분으로 한 유전자검사는 유전자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일단 DNA가 채취되면 그 안에 내장된 정보의 풍부함으로 인해 다른 용도로 은밀히 사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DNA의 채취 자체는 항상 프라이버시 침해의 개연성을 안고 있는 것이다. 특히 유전자은행이란 유전자 샘플 및 이로부터 획득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 관리하는 것을 말하는데, 적절하게 제어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가기관이 유전자은행을 통해 개인의 유전자정보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것 자체가 개개인의 유전자 프라이버시 침해를 통해 궁극적으로 국민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게 될 가능성을 높여 주는 것이다(원혜욱, 2001).

 

2) '유전자치료'와 새로운 우생학의 등장

 

생명공학의 발달과 더불어 등장한 인간 유전자검사 및 유전자치료법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류의 유전자 구성을 다시 조작하여 인류의 생물학적 진화 과정을 직접 제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던져주고 있다. 어쩌면 이제 우생학적으로 개량된 새로운 우생 인간의 창조는 더 이상 몽상에 불과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재조합 DNA, 세포융합 등의 기술을 사용하여 인간의 유전자 구성을 개량한다고 할 때, 그 과정 자체에는 이미 우생학적 고려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새로운 우생학적 사고방식은 '유전자치료'(gene therapy)라는 이름 뒤에 숨어서 은밀하게 퍼져나갈 가능성이 높다. 유전자치료는 통상 "세포 내의 결손된 유전자를 정상의 유전자로 치환하거나 새로운 유전자를 제공하여 체내에 신기능을 부여하거나, 또는 기능 이상을 보이는 유전자의 기능을 조절함으로써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정의된다(이제호, 2000). 1990년에 체세포 치료를 통해 ADA결핍증을 성공적으로 치유한 것을 시점으로 하여 유전자치료기술은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개인의 유전적 장애를 바로 잡아주는 것이 유전자치료라면, 그 유전적인 장애가 병이냐 아니냐에 따라 치료(therapy), 또는 향상(enhancement)으로 나눌 수 있고, 치료방법에 따라 체세포 치료와 생식세포 치료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치료와 향상을 구분할 수 있는 분명한 선은 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단 유전자 결함을 교정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하게 된다면, 과연 건강, 외모, 지능 등과 같이 바람직한 형질을 주는 추가적인 유전자 교정 행위를 통해 인간의 기질이나 능력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당뇨병, 겸상적혈구빈혈증, 암이 유전자 구성을 변경함으로써 예방될 수 있다면, 근시, 색맹, 독서장애증, 비만증, 왼손잡이, 작은 키 등과 같이 이보다 훨씬 덜 심각한 '이상'에 대해서도 유전자 조작을 통하여 예방하려 하지 않겠는가? 앞으로 수년 내에 생식세포 계열의 치료가 실용화되면, 점점 더 많은 부모들이 의료기술이 허용하는 한 최선의 아기를 낳기 위하여 난자, 정자 또는 배세포 단계에서 외모와 관련된 유전자 '결함'을 교정하려 할 것이라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호기심 유전자', '롱다리 유전자' 등과 같은 유전자검사를 통해 아이들의 미래를 알려주겠다는 유전자 점쟁이들이 바이오벤처라는 이름을 내걸고 어린 자녀들을 둔 부모들을 현혹하고 있어 사회적 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한태희, 2001).

 

실제로 미국에서 일어났던 다음의 사례는 상업화된 생명공학이 유전적 향상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를 어떻게 자극하고 있으며, 동시에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어떻게 의도적으로 재구성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1980년대에 제넨테크(Genentech)사와 일라이 릴리(Ely Lily)사는 왜소발육증으로 고통받는 수 천명의 미국 어린이들을 치료하도록 유전자 조작 기술로 개발한 새로운 성장 호르몬을 판매할 수 있는 독점적 권리를 취득하였다. 이 유전자 조작 성장 호르몬의 시장규모는 초기에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커져서 이 약은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약 중의 하나가 되어 제약산업의 역사상 가장 커다란 상업적 성공 사례의 하나로 꼽힐 정도이다. 그 성공의 비밀은 단순하다. 의사들이 또래의 나이보다는 다소 키가 작지만 그렇다고 성장 호르몬의 결핍으로 고통받는 것도 아닌 정상적인 아이들에게까지 새로 개발된 성장 호르몬을 처방했던 것이다. 부모와 아이들 스스로도 성장 호르몬제 사용을 원하기 시작했다. 한편 유전자 조작 성장 호르몬제 시장의 지속적인 확대를 꾀할 목적으로 제넨테크사와 일라이 릴리사는 일부 의사들의 도움을 받아 정상적인 작은 키를 '병'으로 다시 규정하기 위한 적극적인 홍보활동과 판촉 운동을 전개하였다. 재정적 지원을 앞세운 두 제약 회사의 이러한 노력의 결과 많은 과학자들과 소아과 의사들은 같은 또래 아이들 중 키가 하위 3%에 드는 아이들은 비정상으로 규정될 수 있으므로 같은 또래 아이들의 키를 따라잡으려면 성장 호르몬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Rifkin, 1998).

 

아울러 유전자치료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는 그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야기할 상대적 박탈감이다. 즉, 유전자치료는 만인에게 골고루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치료에 소요되는 값비싼 경비를 지불할 능력이 있는 자에게만 활용됨으로써 지불능력이 없는 대다수 사람들은 그것으로부터 소외되고 박탈감을 느끼게 되어 결과적으로 유전자치료를 받을 수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들 사이에 사회적 위화감만 더욱 증폭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유전자치료가 '유전적 향상'을 목적으로 활용될 경우 이제 사회적 불평등은 유전적으로 재생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동시에 사회계급도 단순한 경제적 상층계급과 하층계급의 구분을 뛰어넘어서 유전적 상층계급과 하층계급으로 나뉘게 될 것이다. 앞에서 생명공학 발전의 사회적 배경으로서 언급한 바 있는, 생명공학의 자본화 경향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전망이 결코 공상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유전자치료기술의 발전은, 비록 그것이 유전병의 치료와 같은 긍정적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새로운 우생학의 등장을 동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적절한 통제가 뒤따라야 한다고 보여진다. 하버드대학의 생물학자로서 "책임있는 유전학회의"(CRG)에서도 활동하고 있는 루쓰 허버드(Ruth Hubbard)가 유전자치료라는 용어에서 '치료'라는 개념은 건강에 그 어떤 편익을 가져다 준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내포함으로써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하려는 특정한 이데올로기적 함의가 들어있다고 비판하면서 유전자 변형, 혹은 조작, 혹은 처치 등과 같은 용어를 써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바로 이러한 통찰력 있는 문제의식에 기반한 것이었다(Hubbard &Wald, 1999).

 

3) 유전자 결정론의 확산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생명공학의 발전이 가져오는 다양한 사회적 영향, 혹은 함의는 결국 유전자 결정론적 사고방식의 확산이라는 개념으로 요약될 수 있다. 유전자 결정론은 이미 1970년대부터 사회생물학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주장되었지만, 특히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시작된 이후에 그 목소리가 더욱 높아져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유전자 결정론이란 질병뿐만 아니라 알콜중독이나 동성애, 홈리스와 같은 사회적 행동이나 성향에 있어서의 개인적 차이까지도 각 개인에 고유한 유전자가 결정한다고 하는, 다시 말해 개인의 성향과 행동의 차이를 유전자의 차이로 환원하여 설명할 수 있다고 보는 유전자 환원론적 입장이다. 이처럼 개인 사이의 모든 차이를 유전자로 환원하는 유전자화(geneticization)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을 기계나 컴퓨터로 간주하고, 그 설계도나 프로그램에 해당하는 유전자를 분석하기만 하면 복잡한 인간의 정신적·행태적 특성까지도 밝힐 수 있다고 보는 점에서 기계론적 인간관에 기초해 있다고 평가된다(강신익, 2001).

 

예컨대, 유전자 결정론은 아동들의 학습과 행동상의 문제가 주변 환경과 사회적 환경보다는 그 학생의 생물학적 결함을 반영한다는 가정에 더 많은 힘을 실어주고 있다. 즉, 독서 장애, 주의력 산만, 그리고 행동상의 문제를 점점 더 생물학적 결함으로 보고 약물이나 다른 의료 수단으로 치료할 수 있는 병으로 간주하게 되는 것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활동항진'(hyperactivity; 비정상적인 활동 과다)을 심리적이고 사교적인 문제로 간주하여 어린이를 이해하고 주변 환경을 바꿈으로써 해결하려 했지만, 1980년대에 들어와서는 이러한 행동상의 문제가 뇌의 화학적 구조와 유전된 유전자에 있으므로 병으로 취급되어야 한다는 새로운 유전자 결정론적 믿음을 반영하여 '활동항진'이라는 용어가 '주의력 결핍증'(attention deficit disorder)이라는 새로운 용어로 바뀌게 되었다. 실제로 활동항진 행동을 보이는 수백만명의 어린이들이 주의력 결핍증을 가진 것으로 분류되어 이제는 약물로 이들의 병을 치료하고 있다고 한다. 동성애와 알콜중독, 그리고 노숙자와 같은 개인적 성향이나 사회적 행동 등을 설명함에 있어서도 유전자 결정론은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1990년대에 들어와 동성애와 알콜중독, 그리고 노숙자 모두 유전자적 소인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제기된 바 있다. 기술사회학자인 넬킨(Dorothy Nelkin)이 잘 지적하고 있듯이, 이처럼 이제 유전자라는 개념은 그것이 지닌 원래의 생물학적 의미와는 상관없이 거의 마법적인 힘을 행사하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문화적 아이콘"으로 변모하고 있음을 우리는 도처에서 확인할 수 있다(Nelkin &Lindee, 1999).

 

비록 과학계 내부에서조차 이러한 단순한 유전자 결정론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인 흐름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지만(Lewontin, 1991), 이러한 조잡한 결정론이 일부 과학자들과 언론에 의해 '과학'의 외피를 두르고 대중들을 현혹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는 심각해진다. 그러면 이러한 유전자 결정론은 어떠한 사회적 문제를 가져오는가? 이 질문과 관련하여 한 생물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질환과 사회 문제를 설명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유전학에만 주의를 집중하게 되면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른 수단에는 주의를 돌리지 않게 된다.... 지능, 성별 역할의 차이, 적극성 등을 유전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그 불평등에 대한 사회의 책임을 면제시켜 주는 결과를 가져오며, 이러한 불평등 관계를 유지하는 데 관심을 가지 사람들을 지원하는 것이다." 요컨대 질환과 사회 문제에 대한 논의가 사회제도나 환경개선에 대한 논의로부터 '유전자 에러'를 가진 개인의 문제에 대한 논의로 뒤바뀌게 되는 것이다.

 

 

3. 생명공학에 대한 사회적 통제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생명공학의 발전은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영향 못지 않게 부정적인 영향도 초래하고 있으므로, 긍정적 측면을 보존하고 부정적 측면을 극소화하기 위해서는 생명공학의 발전과정에 대한 사회적 통제가 요구된다. 물론 이 때의 사회적 통제는 민주적인 방식의 통제여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생각할 때, 질주하는 과학기술을 적절히 통제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1970년대부터 미국과 유럽에서 시작된 생명공학에 대한 사회적 통제의 시도(유전자 재조합 기술에 대한 가이드라인 등)가 과연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견해를 피력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생명공학에 대한 사회적 통제의 효과에 대한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생명공학의 급속한 발전에 따른 사회적 문제들 역시 그 어느 때보다 더 심각하게 대두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으므로 생명공학에 대한 적절한 사회적 통제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절실히 요청된다. 그러면 생명공학을 사회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여기서는 제도적 형태의 통제와 비제도적 형태의 통제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1) 제도적 형태의 사회적 통제: 기술영향평가제도

 

넓은 의미에서의 과학기술을 통제하기 위해 활용되는 사회적 제도로 가장 오랜 기간 지속되어 왔고 또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은 행정부나 입법부의 정책결정에 조언하는 자문위원회, 공청회, 청문회 등이다. 이 자문위원회, 공청회, 청문회에서는 대체로 미리 설정된 의제에 대해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중심이 되어 논의를 이끌게 되는데, 이러한 논의들은 대부분 예방적·사전적 성격보다는 사후적인 대책수립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고전적 제도들 외에 과학기술을 사회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제도로서 가장 주목할만한 것은 기술영향평가제도라고 할 수 있다(이영희, 2000).

 

기술영향평가(technology assessment)란 1970년대 초반에 미국을 중심으로 생겨난 과학기술정책의 한 조류로서, 현재 개발되고 있는, 혹은 향후 개발하려고 하는 과학기술의 도입과 활용이 가져올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환경적 영향들을 체계적으로 판별·분석·평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활동이다. 이러한 기술영향평가는 과학기술은 기본적으로 긍정성과 부정성의 양면을 지니고 있다는 전제에 기반하여, 부정적 측면을 최소화하고 반대로 긍정적 측면을 극대화함으로써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고자 과학기술 개발과정에 개입하여 사회적 통제를 가하는 정책적 시도라 할 수 있다. 기술영향평가는 평가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크게 보면 전문가주의적 기술영향평가와 참여적 기술영향평가로 나누는데, 전자에서는 기술에 대한 평가의 주체가 주로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로만 구성되고, 후자에서는 기술에 대한 평가과정에 그 기술에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관련되는 일반 시민들이 대폭 참여한다. 이러한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적 통제 수단으로서의 기술영향평가 활동은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에서는 1972년에 미국 의회가 기술영향평가국(OTA: Office of Technology Assessment)을 설립함으로써 제도화되었고, 유럽에서는 1980년대에 들어와 제도화되기 시작하였는데, 미국에서 수행된 기술영향평가 활동들은 대체로 전문가주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던 반면에, 1980년대 중반 이후 유럽 지역에서 활성화되고 있는 기술영향평가 활동들은 시민참여적 성격을 띤 것들이 많다. 합의회의(consensus conference), 시민배심원제(citizen jury), 포커스그룹(focus group), 시나리오 워크샵(scenario workshop) 등이 대표적인 시민참여적 기술영향평가 제도들이다(참여연대시민과학센터, 2002).

 

이미 미국과 유럽에서는 1970년대부터 생명공학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위한 다양한 제도적 활동들이 전개되어 왔다. 수많은 자문위원회와 공청회, 청문회가 열렸으며, 전문가 중심의 기술영향평가뿐만 아니라 시민참여적 기술영향평가 역시도 활발히 수행되어 왔다. 특히 생명공학과 관련된 기술영향평가의 경우, 초기에는 전문가 중심의 평가가 지배적이었으나 근래에는 시민참여적 평가가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중요시되고 있다.

 

2) 비제도적 형태의 사회적 통제: 시민사회운동과 대항담론

 

앞에서 살펴본 제도적 형태의 사회적 통제와는 달리, 비공식적이고 비제도적인 형태이기는 하지만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적 통제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것은 주류, 혹은 지배담론에 도전하는 대항담론의 확산이다. 이러한 대항담론은 주로 시민사회운동세력들에 의해 조직·동원되고 확산되는데, 대개 문제가 되는 과학기술을 둘러싼 사회적·대중적 논쟁이 이러한 대항담론 확산의 계기로 작용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학기술논쟁은 시민사회운동세력에 의한 직접행동(시위, 불매운동, 저항운동 등을 포함한)과 결부되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과학기술논쟁이 단지 과학기술자들 내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까지 참여하는 사회적 논쟁으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 이후의 일이다. 당시 과학기술의 발전이 초래했던 환경문제, 현대적 과학기술을 활용한 대량살상용 군사무기의 가공할만한 위력 등이 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과학기술의 가치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확산되었던 것이다. 대체로 이러한 사회적 차원의 과학기술논쟁을 구성하는 한 축은 과학기술 연구개발을 주도하는 과학자사회와 기업, 또는 정부이고 다른 한 축은 이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행사하려고 하는 시민사회이다. 논쟁과정에서 시민사회는 적극적으로 대항담론을 주창하고, 대항담론의 공론화를 도모한다. 대항담론의 공론화가 이루어지고 대항담론에 호의적인 여론이 형성되면, 이러한 대항담론은 이제 문제가 되는 사안에 대한 사회적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서구나 한국 모두, 시민사회운동세력에 의한 이러한 대항담론전략이 국가로 하여금 생명공학에 대한 크고 작은 사회적 통제에 나서도록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점은 주지하는 바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과학기술을 사회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편의상 제도적 형태의 통제와 비제도적 형태의 통제로 나누어 살펴보았지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문제가 되고 있는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적 통제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운동에 기반한 대항담론의 확산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기술정치학자인 딕슨(David Dickson)이 잘 지적하고 있듯이(Dickson, 1988),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둘러싼 갈등은 결국 과학기술을 둘러싼 권력의 분배문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시민사회의 강력한 대항운동과 대항담론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앞서 살펴본 기술영향평가와 같은 제도적 형태의 사회적 통제는, 비록 그것이 겉으로는 시민참여적 형태를 취할지라도, 결국 기술관료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틀에 포섭되어 버림으로써 오히려 기술관료적 정책결정에 대한 절차적 정당성만을 부여해줄 위험이 높아지게 될 것이다.

 

 

4. 보건복지부 법률안 검토

 

그럼 이제 우리가 앞에서 제기한, 인간유전체 연구가 가져올 수 있는 제반 문제점들에 대해 이번에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안)]은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를 검토해 보기로 하자.

 

먼저 유전자정보 보호 및 이용과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자. 보건복지부의 이번 법률안에도 유전자정보 보호와 관련된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제28조는 "누구든지 유전정보 등을 이용하여 교육, 고용, 승진, 보험 등 사회 활동에 있어서 타인을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내용을 담아 유전정보 등에 의한 차별 금지를 명문화하고 있다. 앞에서 우리가 살펴본 유전자정보와 관련된 다양한 우려들을 감안해 볼 때 인간 유전정보 보호 및 이용과 관련된 법률안 부분은 현재로서는 특별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다만, 제29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유전자은행의 설립주체가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지 않은데, 유전자은행이 가지게 될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유전자은행은 반드시 국가가 운영하여 공공성을 담보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법률안의 제5장은 유전자검사를 다루고 있는데, 유전자검사와 관련된 조항들에도 비교적 일반국민들의 우려를 씻어내려는 노력이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꼼꼼히 살펴보면 아직 모호한 규정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효과적인 규제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보완이 요구된다. 우선, 현재 많은 바이오 관련 기업들이 앞다투어 유전자검사의 상업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학적 입증이 불확실한 유전자검사의 경우에는 상업적 이용을 엄격하게 금지시키는 방향으로 입법화가 되어야 한다(제21조 ①항 관련). 아울러 제22조 ③항에서 "전항의 규정에 의한 동의가 미성년자, 심신미약자 또는 심신상실자 본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침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본인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지만, "본인의 이익"을 어떻게 최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는 자문위원회가 판단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또한 제25조는 유전자검사에 대한 기록의 관리 및 열람 조항인데, 기록이 잘못되었을 경우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은 제시되어 있지 못하다. 따라서 기록 수정의 여지를 이 조항에 덧붙여야 할 것이다. 제26조는 유전자검사기관의 신고 및 정도관리에 대한 조항을 다루고 있는데, 유전자검사를 실시하고자 하는 기관은 보건복지부장관에게 신고만 하면 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물론 정도관리에 대한 후속조항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유전자검사와 같이 중요한 개인정보를 다루는 기관은 사전 허가제로 될 필요가 있다.

 

법률안의 제5장은 유전자치료를 다루고 있다. 사실 유전자치료의 안전성 문제는 1999년도에 미국에서 발생한 젤싱어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현재에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기 때문에 치료방법이 없는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그러한 점에서 보건복지부장관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범위가 확대될 수 있도록 한 모호한 규정(제32조 ①항 3.)은 삭제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한편 생명공학에 대한 사회적 통제와 관련하여 이번 복지부 법률안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은 '국가생명윤리자문위원회'의 설치이다. 대통령 소속하에 설치되는 자문위원회는 국가의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정책의 기본방향 결정에 관한 사항, 체세포 핵이식연구의 허용범위에 관한 사항, 인간 배아 이용의 허용범위에 관한 사항, 유전자검사의 허용범위에 관한 사항, 인간 유전정보 등의 보호에 관한 사항, 그리고 유전자치료의 허용범위에 관한 사항 등을 심의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법률안 제6조는 자문위원회의 구성원칙을 밝히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자문위원회는 생명과학 또는 의과학분야에 전문지식과 연구경험이 풍부한 학계, 연구계, 산업계를 대표하는 위원 9인 이내와 종교계, 철학계, 윤리학계, 법조계, 시민단체, 여성계를 대표하는 위원 9인 이내, 그리고 보건복지부, 과학기술부 소속 관계공무원 각 1인으로 구성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구성원칙은, 비록 시민단체 몫을 인정하고는 있지만, 상대적으로 시민참여의 여지를 별로 열어두고 있지 못하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 자문위원회에서 심의하는 사항들은 모두가 일반 시민들의 일상적 삶에 매우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논의과정에 보다 많은 수의 시민(대표)들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소수의 대표들로 구성된 자문위원회에서의 심의만으로 의견수렴절차가 끝난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되고, 보다 다양한 방식들(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각종 시민참여적 기술영향평가방법들)을 동원한 여론수렴 절차가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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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 /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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