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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성체줄기세포와 미래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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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7 ㅣ No.373

성체줄기세포와 미래의학

 

 

1. 치유와 회복의 성체줄기세포

 

호기심 많은 19 세기 한 의학자가 이렇게 물었다. 인간의 모든 욕구는 충족되면 없어진다. 식욕은 먹으면 없어지고, 자고 싶은 것은 자고 나면 없어지며 성욕도 역시 만족하고 나면 없어진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만족해서 그만 살고 싶을 때까지 살지 못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수명도 원래는 만족되게 되어있는데 우리는 모두 자기수명보다 일찍 죽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진위여부를 떠나 분명 이것이 더 오래 살고 싶은 우리의 갈등인 것은 사실이고 그런 면에서 의학은 인간이 만족할 때까지 살수 있도록 그 차이를 좁히려는 인간의 처절한 노력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렇게 집요하게 전개되어온 인간과 질병의 줄다리기에서 최근 들어 새로운 변수가 생겼으니 그것은 바로 21세기판 불로초로 여겨지고 있는 줄기세포의 등장이다.

 

1998년 톰슨 박사등에 의해 인간의 배아에서 분리한 배아줄기세포가 체외에서 배양되고 여러 조직으로 분화될 수 있다는 것이 처음으로 보고된 이래, 배아줄기세포를 특정조직으로 분화 환자에 주입하면 조직을 재생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속에, 관련 연구소식들이 마치 아프간 전쟁속보처럼 전해졌다.

 

그러나 줄기세포와 관련하여 21세기 시작을 장식한 더욱 큰 경이는 성인이 된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성체줄기세포가 각종 인간의 난치병을 정복하기 위한 결정적인 단서들을 제공하고 있다는 최근의 연구결과 들인데, 웬일인지 이러한 연구성과들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인간이 성체줄기세포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1958 년 유고슬라비아의 대형 원전사고가 일어난 즈음이었다. 이 사고로 여기서 일하던 6 명의 물리학자들이 대량의 방사선피폭을 당했다. 이로 인해 이들의 골수가 심하게 파괴되어 혈구감소증으로 죽어가고 있을 때, 건강한 사람의 골수를 이식했더니 피폐화된 이들의 골수가 뚜렷이 살아나고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조혈모세포라고 하는 성체줄기세포가 이러한 파괴된 조직을 근원적으로 복구하는 재생작용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의 많은 연구들이 밝혀낸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런 종류의 재생작용을 하고 있는 줄기세포가, 비단 골수 뿐 아니라 우리 몸의 거의 모든 장기에 준비되어 있어서, 심지어 한번 손상되면 다시는 재생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던 신경이나 심장, 간에서도 발견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로 인해 지금까지 우리가 체념했던 많은 질병들이 작은 불씨처럼 살아있는 이들 줄기세포로 말미암아 재생, 치유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성체줄기세포가 가지는 치유와 회복의 능력이 이미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날아든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겠다.

 

 

2. 무너진 천동설

 

지구는 돌고 있다.

 

16세기 코페르니쿠스가 던진 날벼락 같은 주장이었다. 당장 빗발치는 반발이 있었지만 이어진는 거역할 수 없는 증거들로 인해 인류는 수 천년 동안의 환상에서 깨어났다.

 

최근 생물학에서도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주장에 비견되는 사건이 있었다. 줄기세포에 의한 세포 분화 및 장기 발생에 관한 개념의 파괴가 그것이다.

 

지금도 생물학 교과서에는 수정란, 배아반포 단계를 거쳐 외배엽, 중배엽, 내배엽 등 각 배엽이 분화해 장기(臟器)와 조직이 생기는데, 한 배엽의 세포가 다른 배엽의 세포로 분화될 수 없으며 또 일단 특정 세포로 운명이 결정되면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내용이 실려있다.

 

2000년 스웨덴의 조나스 프리젠 박사팀은 이 같은 고정된 세포 운명의 패러다임에 정면 도전했다. 연구팀은 어른 쥐의 뇌에서 다양한 신경세포로 분화될 수 있는 신경줄기세포를 분리하고 이 세포들을 다른 쥐의 배아반포에 주입해서 자궁에 착상시켰다.

 

교과서대로라면 주입된 신경줄기세포는 장차 태어날 쥐들의 뇌나 신경 계통으로만 변해야 옳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 세포는 신경계, 피부 등 외배엽 장기 뿐 아니라 내배엽, 중배엽 장기까지 형성했다. 성체줄기세포의 고정된 운명을 뒤엎는 결론이었던 것이다. 학계에서는 주입한 세포들에 또 다른 세포들이 섞여 있었을 것이라며 이 증거를 반박했으나 2001년 미국 예일대의 다이안 크라우즈 박사는 이 논란에 못을 박았다.

 

그녀는 쥐의 골수에서 뽑아낸 백혈구 적혈구 등 각종 혈액세포로 분화되는 조혈모(造血母)세포를 염색한 뒤 이들을 현미경 아래서 한 개 한 개 씩 분리해서 배아반포에 주입한 후 임신한 어미 쥐의 자궁에 착상시켰다. 그리고 여기서 태어난 쥐들에서 염색된 세포들의 행방을 추적했다. 다시금 이 한 개씩의 세포들은 혈액세포 뿐 아니라 신체를 구성하는 거의 모든 장기로의 분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성인에게서 발견되는 줄기세포의 분화능력이 배엽에 의해 제한되어 있다는 전통적 관념에 대한 거역할 수 없는 반증이었다. 이렇듯 줄기세포 분화에 있어서의 천동설이 파괴됨에 따라 오늘날 줄기세포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던 개념 또한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난치병 치료를 위해 배아줄기세포 만이 다양한 종류의 조직을 공급할 수 있는 유일한 길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과학과 윤리가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성체 줄기세포의 개념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은 이 둘의 갈등을 풀 기막힌 열쇠인 것이다.

 

 

3. 간장을 위한 서곡

 

술독에 빠진 한국, 독주 소비량 세계 1위….

 

한국인의 왕성한 '주(酒)님 모시기'가 예사롭지 않을 정도라 간에 대한 걱정도 그만큼 대단하다. 많은 사람이 효과가 불확실한 각종 간장약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일부는 살아 있는 곰에게 빨대를 꽂아 담즙을 마시기까지 한다. 이 또한 '주(酒)님을 모시다 혹사된'간을 위한 예사롭지 않은 정성이다. 간경변증이나 독성간염 등은 본래 잘 낫지 않고 진행성인 경우가 많다. 말기에 가서는 남에게서 간이식까지 받아야 하는 심각한 질환이다.

 

새롭게 밝혀진 성체(成體)줄기세포의 놀라운 치유능력은 이러한 간 질환자에게도 서광을 비추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간장(肝臟)세포도 줄기세포에 의해 재생될 수 있다는 미국 스템셀 연구소의 에릭 라가세 박사팀의 연구소식이다.

 

이들은 간 대사장애로 인해 단백질 대사 중 발생하는 독성물질이 쌓여 NTBC라는 치료제 없이는 생명이 위협 받는 '타이로신 혈증'이 있는 실험쥐를 통해 이를 증명하였다. 연구팀은 정상 쥐의 골수(骨髓)세포(줄기세포의 한 종류)를 유전자 꼬리표로 표시한 뒤 이들 병든 쥐에 이식하고 3주 뒤 치료제를 끊어보았다. 예상했던 대로 골수세포도 이식하지 않고 약을 끊은 쥐들은 간독성으로 모두 사망하였다.

 

그러나 골수세포를 이식 받았던 쥐들은 약을 끊은 뒤에도 절반 가량이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 7개월이 지나도록 멀쩡한 이들 쥐의 간 기능 검사를 해본 결과 모든 검사수치가 정상에 가까웠다. 곧 해부를 하여 이들의 간을 조사한 연구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이들 간의 수백 군데에서 재생되고 있는 정상 간 세포덩이들 이었다. 바로 이들 정상 간세포가 독성물질을 해독한 것이었다.

 

이들 정상 간세포덩이들에는 모두 꼬리표가 발견되었는데 그것은 처음 골수세포를 이식할 때 붙여놓았던 바로 그 꼬리표였다. 즉, 믿어지지 않지만, 각종 혈액세포를 만들어야 할 골수세포가 위기에 처해 신음하고 있는 간으로 찾아가 간세포로 분화한 것이었다.

 

이 같은 골수세포에 의한 간의 재생은 곧 인간에서도 증명됐다.

 

즉 골수이식을 받은 환자의 간장을 조사해 보면 골수를 제공한 사람의 것으로 확인된 골수세포가 간세포로 변해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찾아 든 줄기세포에 의한 간의 재생소식이 아직 임상적으로 환자에게 적용되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간 재생을 위한 의미 있는 서곡인 것만은 분명하다.

 

 

4. 줄기세포의 궁합 맞추기

 

사람들은 지금도 결혼 전에 궁합을 본다. 얼마나 서로 싸우지 않고 상생공존 할 수 있는지를 알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러한 궁합은 의학에서도 중요하다. 타인의 세포나 장기를 이식하면 서로 다른 세포들끼리 둘 중의 하나만 살아남을 때까지 치열하게 싸우는 이른바 편대숙주거부반응 또는 이식거부반응이 일어나므로 이러한 일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결정적인 관건이 된다. 얼마 전 화제가 되었던, 거부반응유전자가 제거된 돼지의 복제도 이러한 노력의 맥락의 일부인 것이다.

 

사람에서 이러한 궁합을 결정하는 것은 주로 조직적합성 항원이라는 인자들인데 타인으로부터 자신과 딱 맞는 짝을 찾으려면 보통 몇 십만 명중의 하나가 발견된다. 그러기에 골수이식을 할 때 자신과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이고, 몇 년 전 백혈병을 앓던 성덕 바우만 군이 미국에서 짝을 못 찾아 한국에 와서 찾기도 한 것이다.

 

배아줄기세포를 통한 이식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어서 거부반응을 제거하려면 자기 체세포의 핵을 배아줄기세포에 치환함으로써 조직적합성이 동일한 세포를 만들어 내야 하는데, 이 또한 낮은 핵 치환 효율과 그 이후 발생과정에서의 문제들이 지적되고 있다.

 

이처럼 어려운 줄기세포 궁합 맞추기에 대한 대안을 골수 안에 있는 또 다른 줄기세포인 간충직세포는 완전히 독특한 방식으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자신이 아예 그 조직적합성 항원 자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즉, 어느 편도 아닌, 중립을 선언하는 것이다. 그러면 체세포 복제를 안 해도, 아슬아슬한 궁합 맞추기를 안 해도 면역공격을 받지 않고 안전하게 제 3자에게도 이식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한 달 전, 미국 생명공학회사 오시리스의 연구진은 이를 증명하는 연구결과를 세계최초로 공개했다. 그것은 그림에 나타난 바와 같이 크게 잘려나간 원숭이의 뼈를 궁합이 맞지 않는 제 3자 원숭이의 간충직 줄기세포를 통해 재생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전혀 면역 억제제를 투여하지 않고도 어떠한 종류의 면역 거부반응도 일으키지 않은 채, 보이는 바와 같이 커다란 뼈의 공동을 16주만에 줄기세포가 채우고 32주만에 말끔한 뼈가 재생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중립 줄기세포 들은 배양하여 저장해 두면, 조직적합성에 대한 궁합도 볼 필요 없이 어느 환자에게나 필요할 때마다 즉시 꺼내서 이식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호혜 평등적 줄기세포 (universal donor)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소위 줄기세포의 맥도널드화 라고나 할까?

 

 

5. 급박한 심근경색증, 뜻밖의 지원군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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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또는 심장계 중환자실에서 종종 벌어지는 상황이다. 최근 K 씨는 엄청난 통증이 가슴을 강타하는 것을 느끼며 의식을 잃었고, 응급실에 실려가 진단을 받아보니 심근경색증. 심장의 관상동맥 혈관이 막혀, 혈액 공급이 되지 않아 심장 근육이 괴사에 빠지는 이른바 심근경색증이 발병한 것이다. 이제 K씨는 급성으로 오는 부정맥이나 심장 벽이 얇아져 생기는 심부전증에 대해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는 관상동맥 질환에 의한 사망률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으며, 고혈압, 고콜레스테롤혈증, 비만, 흡연의 4 대 선행인자가 있으면 발병할 확률이 높기에 남의 일 같지가 않은 병이다.

 

이처럼 벼랑 끝에 선 것과 같은 긴박한 심근경색증의 치료에 돌연 뜻밖의 지원군이 나타났으니 그것은 바로 2001년 미국 국립보건원의 도날드 올릭 박사팀이 보고한 줄기세포에 의한 심근 재생 소식이다. 이들은 쥐에서 관상동맥을 막아 심근경색 을 일으킨 후 다른 쥐의 골수에서 줄기세포를 분리하여 표지를 단 후 괴사 된 심근의 근처에 주입하였다. 그 후 3주 뒤, 괴사에 빠져 얄팍해졌던 심장벽이 두툼해 졌는데, 그 부위는 꼬리표 달린 세포들로 가득 차 있었다. 즉 골수에서 뽑아 괴사부위 근처에 주입되었던 그 꼬리표를 달았던 조혈모 세포가, 위기에 빠진 심장을 구하기 위해 괴사부위로 이동하여 혈액세포가 아닌 심장근육세포로 분화하여 60% 가량의 심근을 회생시킨 것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여기서 재생되고 있는 것은 괴사에 빠진 심근뿐이 아닌 심장의 내벽 및 막힌 부위에 혈류를 공급할 수 있는 혈관까지도 다시 만들어 지고 있었다. 즉, 심근경색으로 손상된 심장을 재생하기 위한 총체적인 재건축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 결과 심장의 기능도 개선되어 이식치료 받지않은 동물들은 심부전의 증세를 보이는 반면, 이들 재생된 심장은 심근의 수축 및 이완능력이 40% 이상 향상되는 것을 발견하였다. 최근에는 이러한 심근재건의 능력이 비단 조혈모 세포뿐 아니라 배아줄기세포나, 간엽줄기세포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더욱 반가운 것은 자신의 골수에 있는 줄기세포를 지-씨에프(G-CSF)라고 하는 주사를 통해 말초혈액으로 불러낸 다음 채혈한 세포에서도 비슷한 효과가 있어 장차 환자 자신의 줄기세포를 통해 자신의 심장 재생을 할수 있는 가능성이 보고되었으며, 이에 대한 임상실험이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급박하기만 했던 심근경색증이 전혀 예기치 못했던 지원의 손길을 줄기세포가 내밀고 있는 것이다.

 

 

6. 백혈병 세포의 죽음과 사순절의 기적(비대칭 분열의 미학)

 

러브스토리를 비롯해서 많은 영화의 여주인공들은 사랑이 깨어질 때 꼭 백혈병으로 죽어서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한다. 그래서 미인병 이라고 까지 하는 이 백혈병은 흰색인 백혈구들이 무제한으로 증식하여 골수와 혈액이 거의 하얗게 된다고 하여 백혈병이라 한다. 결국 치료하는 과정은 항암제나 방사선조사를 통하여 골수와 혈액에 있던 백혈병 세포들에 대한 대대적인 섬멸작전이 불가피 하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 골수의 세포들을 파괴하고 나면 환자는 빈혈에, 혈소판 부족으로 출혈이 일어나고 면역구를 만들지 못해, 공기 중에 떠도는 미생물에 대해서도 전혀 저항을 못하게 된다. 이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골수를 재건하기위한 줄기세포들의 이식, 이른바 골수이식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이식 받는 골수의 양이라는 것은 기증하는 사람의 약 20% 정도에 불과한 데다, 많은 경우 줄기세포를 이식한 후 시간이 지나면 수명이 다하여 사멸, 소실되므로 얼마나 오래 갈까 걱정이 되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한 대답이 최초로 주어진 것은 비로 두 달 전, 1960년대부터 골수이식을 시작했던 미국의 프레드 허친슨 암센터의 쟌 스토렉 박사를 비롯한 골수이식팀에 의해서 였다. 즉 연구진은 20-30년 전 당시 골수이식치료를 받았던 환자 33 명을 추적하여 그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조사한 것이다. 그 결과 연구진은 그토록 오래 전에 골수의 줄기세포를 이식 받았던 환자들이 혈액 및 면역반응이 거의 모든 면에서 정상에 가깝게 회복된 상태로 지금도 살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성체줄기세포가 가지고 있는 이처럼 놀라운 복원력의 배후에는 비대칭 세포분열 이라는 부조화의 미학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않은 것 같다. 이는 한 개의 줄기세포가 분열하여 두개의 세포가 나올 때 대부분 분화된 세포가 나오지만 이따금씩 전혀 색다른 세포를 만들어 내는데, 이것은 모든 면에서 자신과 똑 닮은 또 하나의 줄기세포인 것이다. 이러한 비대칭 세포분열에 의한 자가재생산을 통하여 몇 안 되는 이식된 줄기세포에서 당장에 필요한 모든 종류의 혈액 및 면역구로 분화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들이 다 써버려 고갈되지 않도록, 마르지 않는 샘처럼 자기와 똑 같은 줄기세포를 계속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마치 그 옛날 예수가 사순절에 군중에게 떡을 나누어 줌에 아무리 떼어줘도 조금도 줄지 않아 떡 다섯 개로 오 천명을 먹이고도 남았다고 하는 신화와 같은 일이 성체줄기세포의 비대칭의 미학을 통하여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7. 줄기세포 미사일, 뇌신경질환을 공략하라

 

날카로운 굉음과 함께 허공을 가르는 한 대의 미사일, 그러나 즉각 저쪽에서 튀어나온 또 하나의 미사일은 찢어지는 포효를 내며 반대편미사일을 향해 돌진, 상대의 미사일이 공격목표에 도달하기도 전에 요격, 거대한 허공의 불덩이가 되고 만다. 이처럼 걸프전 당시 맹위를 떨쳤던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첨단 과학 못지않은 추적능력이 우리 몸 안에서 뇌와 척수를 재생하는 새로운 줄기세포인 신경줄기세포에서 발견되고 있어 놀라움을 자아내고 있다. 이들은 몸 안의 각 부위에 골고루 퍼져있는 신경계중의 어디엔 가 손상이 생기면 멀리 밖에서도 그 신음소리를 듣고 추적해 간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알쯔하이머씨 치매에 연루되어 있는 아밀로이드 라는 단백질을 한쪽 뇌에 주입하면 신경줄기세포를 그 반대쪽에 주입해도 이 독성 단백질을 찾아 반대쪽으로 건너가지만, 무독성 단백질을 주입한 경우에는 줄기세포가 그냥 무시한다는 것이다. 또, 외상에 의해 뇌 손상을 받은 경우에도 비슷해서, 외상을 준 반대쪽에 줄기세포를 주입해도 줄기세포는 외상이 있는 부위를 찾아 건너편으로 이동한다. 즉 이들 줄기세포는 마치 미사일처럼 어디에서 어떤 위험이 발생했는지를 정확히 감지하여 추적하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최근 미국 하바드 의대의 에반 스나이더 교수가 이끄는 팀은 교모세포종 이라고 하는 뇌암을 치료하기위해 이러한 줄기세포 미사일 요법을 십분 활용했다. 이 암은 뇌에 생기면 워낙 빠르게 퍼지고 뇌조직에 넓게 침투하는 까닭에 수술도 어렵고 예후가 매우 불량한 암이다. 연구팀은 우선, 쥐에 이 뇌종양을 일으킨 다음, 성체뇌세포에서 얻어진 신경줄기세포를 주입 하였다. 그 후 뇌조직을 조사했을 때 스나이더 교수팀을 가장 놀라게 한 것은, 너무도 철저하게 신경줄기세포가 뇌의 구석구석에 퍼져있는 종양세포, 심지어 아주 미소한 양의 뇌종양세포가 암괴에서 떨어져 나가 다른 곳으로 퍼지려 하는 것까지 놓치지 않고 따라가서 엉키고 이들을 포위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렇게 미사일과 같은 신경줄기세포에 암을 죽일 수 있는 싸이토신 디아미나제 라고 하는 독성유전자를 삽입한 후 이 탑재된 줄기세포 미사일을 뇌에 주입하였다. 독성유전자를 탑재한 신경 줄기세포는 곧 뇌종양부위로 몰려들었다. 거기에 집결한 신경 줄기세포들은 일제히 독성 유전자에 의해 만들어진 항암제를 쏟아 부었다. 그토록 맹위를 떨치던 이 뇌종양은 이처럼 집중적으로 몰려든 줄기세포들에 의해 견디지 못하고 결국 2주만에 80% 가 와해되고 말았다. 패트리어트 미사일에 보냈던 감탄사를 이제 우리 몸 안에 있는 줄기세포에 보내봄이 어떠할까?

 

 

8. 당뇨병으로부터의 해방

 

당뇨병은 한번 걸리면 평생을 지고 가야 하는 무거운 짐과 같은 질병이다. 일단 당뇨병에 걸리면 식이요법과 인슐린주사로 더 나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정성스레 몸조리를 하지만 완치되지는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 같은 당뇨병에 좀더 속 시원한 치료법은 없을까? 지금까지 인슐린을 만드는 췌장의 도세포를 당뇨병 환자에게 이식해서 환자 스스로 인슐린을 만들도록 시도해왔지만 성공률은 20% 이하에 그치곤 했다. 이식을 위해 얻어낼 수 있는 도세포의 양이 워낙 적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날 돌파구가 발견됐다. 바로 췌장에도 줄기세포가 있어 이들을 증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의 존 오닐 박사팀에 이어 플로리다 대학의 아몬 펙 박사팀이 이룬 이 연구는 췌장의 줄기세포를 배양하면 무려 150차에 걸친 배양 과정에서도 계속 도세포를 만들어 낼 수 있으며, 이들로부터 인슐린을 분비하는 베타세포의 분화가 가능하다는 점에 착안했다.

 

과연 이 세포들이 체내에 이식되면 정상적 췌장 도세포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인가? 펙 박사팀은 당뇨병으로 인해 인슐린 주사로 연명하고 있는 쥐에게 이렇게 만들어진 세포를 콩팥 안에 주사한 후 인슐린 주사를 끊어 보았다. 이식을 받지 않은 쥐들은 예상대로 즉시 혈당이 증가해 불과 몇 일내 400mg/ml의 고혈당 상태가 되고 2주 만에 700mg/ml 에 도달해 결국 죽었다.

 

주사를 끊은 후의 혈당 증가는 도세포를 이식 받은 쥐에서도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 쥐의 혈당 곡선은 며칠 오르다가 서서히 둔화되는가 싶더니 마침내 반전되며 감소하기 시작하여, 불과 일주일 만에 거의 정상치로 돌아왔다. 이대로 계속 인슐린을 분비하면 오히려 저혈당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쥐의 혈당은 더 이상 떨어지지 않고 5개월이 넘도록 정상치에 가깝게 잘 살아가고 있었다. 즉 이들 '당뇨병 쥐'에 이식됐던 도세포는 혈당이 높을 때만 분비되고 낮을 때는 멈추는, 우리 신체내의 거대한 생리적 조절작용에 완벽하게 적응을 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당뇨병 걸린 쥐들이 이처럼 인슐린 의존 상태에서 독립한 것처럼, 인간이 당뇨병으로부터의 해방을 선포할 날도 멀지 않았다는 것은 지나친 낙관주의일까?

 

 

9. 살도 빼고 줄기세포도 얻고

 

다이어트 열풍이 한창이건만, 어떤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건재하고 있는 지방질을 쳐다보며 원망한다. 누가 이 살 좀 가져가는 사람 없을까? 하고. 이런 푸념을 웃어넘기지 못할 일이 최근 발생했다. 그 원망스런 지방질안에 고급 줄기세포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막크 헤드릭 교수팀에 의한 이 보고에 따르면 이들 지방의 줄기세포들은 골, 연골, 근육 등으로까지 다양하게 분화될 수 있는 능력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내용이 발표되자, 배아줄기세포의 연구를 철저히 금지하고있던 독일의 어느 정치가는 자신이 최초의 줄기세포 채취를 위한 지방제거술을 받겠다고 자원하여, 살도 빼고 줄기세포도 얻겠다는 정치가다운 재치를 보이기도 하였다.

 

문제는 지방세포 뿐이 아니었다.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성체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들이 계속 밝혀지고 있다. 특히 대표적인 예가 산후 태반에서 나오는 제대혈인데, 이것은 1990 년대 이전까지는 병원 적출물이라 하여 폐기처분 되어지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 제대혈에서 성인의 골수에 뒤지지 않는 훌륭한 조혈모 세포들이, 그것도 골수에 비해 10 배 가까운 고단위로 발견됨에 따라 의학자들 사이에서 우리는 여태껏 이 귀한 세포들을 쓰레기통에 넣어왔단 말인가? 라는 탄성이 흘러나오게 되었다. 이러한 제대혈의 조혈모세포들은 곧 골수대신 활발히 환자에게 이식되기 시작해서 1999년 미국과 유럽 제대혈 연합 (유로코드) 에서 발표한 임상사례만도 각각 500례 이상을 발표하기에 이르러 이제는 골수이식 이란 용어 자체를 조혈모 세포 이식이란 용어로 바꾸기에 이르렀다.

 

그 뿐 아니라 캐나다의 프레더 밀러 박사팀은 작년 9월 동물이나 사람의 피부에서도 각종 신경세포나 근육, 지방 등으로 분화할 수 있는 줄기세포가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렇게 되면, 만약 척수손상을 입었을 경우, 자신의 남는 피부 몇 조각을 떼어 신경세포로 분화시킴으로써 면역거부반응이 전혀 없는 자가유래성 이식을 통해 신경 재생이 가능하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쨌거나 성체형 줄기세포는 여러 가지 의학적 적용상의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얻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하는 우리의 볼멘소리가 어쩌면 쏙 들어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앞으로의 연구에 따라서는 살도 빼고 줄기세포도 얻는 날이 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10. 마비된 스타의 탄원

 

얼마 전, 미국의 상원의원 회의실에 한대의 휠체어가 등장했다. 거기에는 꽤 준수한 외모의 중년 남자가 실려 있었으니 그는 바로 1995 년 오토바이 사고로 척수마비가 된 왕년의 영화 스타 크리스토퍼 리브 였던 것이다. 그가 나타난 것은 자신이 척수마비로부터 회복될 수 있도록 줄기세포에 자신의 체세포를 넣어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이른바 치료용 인간복제를 허용해 달라고 탄원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종류를 불문하고 모든 인간복제 자체를 금하는 법률이 미국 하원에서 통과되자, 이 분야의 과학자들과 지지자들이 이 법안이 상원에서도 통과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대규모 총력투쟁에 그가 앞장을 선 것이다. 그는 또 최근 영국에서 치료용 인간복제를 허용하는 방안을 발표하자 이번에는 자신의 치료복제를 위해 영국으로 가겠다고 나서고 있다.

 

배아 줄기세포나 성체의 신경줄기세포를 이식함으로써 척수손상에 따른 마비증세에 호전을 가져올 수 있다는 동물실험결과가 최근 잇따라 발표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소식들이 그들에게 의미 있기 까지 해결해야 할 문제는 너무도 많아서 복제를 통해 배아줄기세포를 얻는 것은 너무나도 낮은 성공률과 복제 후에도 비정상적인 발생과정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많은 성체형 신경줄기세포 역시 주로 태아에서 얻어지므로, 결국 자기자신의 세포가 아니기는 마찬가지다.

 

진퇴양난의 답답한 상황에서 창조적 해결방안이 제시되었으니 그것은 바로 지난달 미국 튤레인 대학의 프록콥 박사팀에 의해 보고된 바 골수의 줄기세포를 이식하면 이들이 손상부위로 가서 주변상황에 맞춰 신경계 세포로 분화된다는 것이다. 이 방법으로 얼마나 효과를 볼수 있는지 보기 위하여 연구팀은 동물의 허리에 충격을 주어 하체마비를 일으켰다. 그리고 배양하고 있던 골수의 간엽줄기세포를 척수손상부위에 주입한 후 경과를 관찰하였다 이식치료 5주뒤, 이들을 끌어 일으켜 보았을 때 이식치료를 받지 않은 쥐들은 다리가 자기자신의 체중을 지탱하지 못해 몇번을 시도해도 털썩 주저앉기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골수줄기세포를 척수손상부위에 이식받은 쥐들은 대부분이 발딱 일어나 두 다리로 빳빳이 서고, 심지어 아장아장 걸음마 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더욱 반가운 것은 이들 골수줄기세포는 척수손상 뒤 바로 이식한 것 보다 일주일 지난 뒤 이식한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누군가 사고로 척수를 다쳐도 자신의 골수를 뽑아서 배양을 한 후 이식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는 것이다.

 

불쌍한 왕년의 스타가 영국까지 가지 않고도, 오랜 세월 타고 다니던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나는, 성경 속에서나 보았던 그 역사적 장면이 재현될지도 모르겠다는 설레임이 든다.

 

 

11. 동물에서 사람에게로

 

간혹 뉴스에서 아기가 고층아파트에서 떨어졌는데 하나도 다치지 않고 말끔했다는 기적 같은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그래서 옛말에 아기들이 높은 데서 떨어질 때는 천사가 아이를 받쳐 다치지 않게 한다는 말도 있다. 아기들의 뼈는 한창 성장하므로, 어른의 뼈보다 물렁하고 탄력성이 더 좋은 편이니 한창 걸음마를 배우고, 잘 넘어는 아기들에게는 너무나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아기들만이 누릴 수 있는 천사가 받쳐주는 이러한 특권을 누리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으니 바로 불완전 골형성증 이라고 하는 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이다. 이병은 뼈의 탄력성을 받쳐주는 콜라젠을 생산해 내는 유전자에 변이가 와서 발생한다. 이 아이들은 뼈를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그나마 만들어진 뼈가 푸석푸석하여 자주 골절이 발생하며, 생후 1년이 지나면 아예 기형인 상태로 성장이 멈추게 된다.

 

속수무책인 이 병에 대한 새로운 해결의 실마리가 제시된 것은 1998 년의 동물실험을 통해서였다. 즉, 뼈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줄기세포가 풍부한 골수기질세포를 이식하면, 새로운 뼈의 재생으로 증세가 호전된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불과 1년 뒤, 세인트 쥬드 병원의 에드윈 호로비츠 박사는 이 병을 앓고 있는 세 명의 환자를 만나게 되었다. 이제 13 개월 밖에 안된 이 아기들은 그사이에 만도 자그마치 스무 번에서 서른 일곱번에 걸친 골절이 일어나 있었다. 장정들도 견디기 힘든 뼈의 골절, 그것도 수십 군데가 부서지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들로, 축복 속에 시작해야 할 젖먹이 인생들이 처참히 일그러지고 있는 것이었다. 이 아기들에게 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한 연구팀은 동물실험 결과를 토대로 이 아기들에게 골수이식을 시도 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로부터 6개월 지난 후, 이 아기들의 골조직 검사를 해본 연구진은 뒤숭숭하게 얽히고 조골모 세포들도 찾아보기 힘들던 골조직이, 이식 후에는 빽빽이 속이 차고 가지런히 정돈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아기들의 뼈가 재생되고 있는 것이었다. 그토록 잦던 골절도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자신을 얻은 연구팀이 더 많은 환자를 대상으로 치료하여 3년간 관찰한 결과 역시 이들의 뼈는 옛날과 달리 좀처럼 부서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치료 받지 않은 아이들의 골이 일년 내 0.5 센티미터 자란데 반해 치료 받은 아이들은 무려 6 센티나 자란 것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동물에서 이루어 진 연구 결과들이 사람에게 적용되기 위해서는 준엄한 검증과 당위성이 있어야 하겠지만, 고통 받는 많은 이들이 활짝 웃는 모습을 얼른 보고 싶어지는 것은 의사로서의 본능 때문일까?

 

 

12. 트로이의 목마로서의 줄기세포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 목마이야기 가 있다. 그리이스가 트로이를 함락시키기 위한 계략으로 많은 무장된 병사들을 속에 감춘 트로이 목마를 갖다 놓자, 위험한 줄도 모르고 트로이 병사들이 목마를 성 안으로 끌고 들어갔고, 결국 트로이성이 함락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처럼 기발한 게릴라 전법이 줄기세포를 이용한 난치병정복에서도 유감없이 이용되고 있다. 그것은 줄기세포를 목마 에 실어 암 환자의 몸 속에 먼저 들여보내고 그 후 들어간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는 이른바 암의 면역치료 요법이다. 평상시 우리 몸은 암이 발생하면 면역 세포들이 이를 즉각 발견하고 조기에 퇴치하는 감시장치가 되어있다. 그러나 암 환자에서는 환자자신의 면역계가 암세포와의 싸움에서 기진맥진 지쳐 더 싸울 능력이 없게 된다. 이때 다른 사람의 싱싱한 면역구가 들어 오면 도와줄 수 있겠지만, 거부반응 때문에 그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 문제이다.

 

이런 상황에서 환자의 골수체계의 일부만을 약간의 항암제로 살짝 파괴시키고 난 후 타인의 조혈모세포를 이식하면 이들이 트로이 목마 구실을 하게 된다. 이 줄기세포들은 처음에는 경계대상이 아니므로 환자의 몸 속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이식된 줄기세포들은 혈액뿐 아니라 면역계도 새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세포이므로 이들은 곧 자신의 후예를 만들어 내기 시작할 뿐 아니라 암 환자의 몸 속에 터를 잡아서 곧 들어올 지원군들, 즉 공여자의 임파구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닦아 놓는다. 이렇게 해서 몸 속에 들어오는데 성공한 타인의 임파구는 닥치는 대로 암세포들을 공격하여 상황을 역전시키는 것이다.

 

미국 프레드 허친슨 연구소의 스토브 교수 등에 의해 처음 개발된 이러한 방법은 일명 미니 이식 이라 불리는데 이를 만성골수성 백혈병에 처음 사용해본 연구진들은 인간이 개발해 낸 어떠한 항암제나 방사선 치료에 못지않은 강력한 치료효과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치료법은 곧 백혈병 이외의 다른 암에도 적용되기 시작하여 최근 미국립보건원의 리챠드 챠일즈 박사팀은 예후가 불량하기로 이름난 전이성 신장암 환자에도 이 방법을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이 암은 항암제에도 듣지 않고 일단 전이가 일어나면 남은 생존기간이 1년 이하가 되는 무서운 암이다. 19 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시험한 결과 절반이 넘는 환자가 치료를 받은 지 1-3년 이 넘도록 살아 남았고 그 중 일부는 완전치료까지도 보이고 있었다. 그토록 무서운 암에 대해, 과거엔 상상도 못했던 치료효과를 거둔 것은 뜻밖에도, 우리의 몸 안에 이미 가지고 있는 면역세포와 줄기세포의 협공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태어난 치유의 능력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사뭇 새겨볼 만한 일이다.

 

 

13. 기억력의 회춘 가능할까?

 

동화에 보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착한 사슴이 일러 준대로 산속의 신비한 옹달샘 물을 마셨더니 다시 젊어져서 행복하게 살았는데, 이웃집 노인은 그만 너무 많이 마셔서 옹달샘가의 갓난아기가 되어 울고 있더라는 얘기가 있다.

 

큰 병치레 한번 없이 살아온 운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노화는 막다른 골목길처럼 부딪치게 되는 누구에게나 예정된 코스다. 노화가 진행되면 두 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하고 기억도 점점 가물가물해 진다. 안타깝지만 어찌할 길 없는 생로병사의 법칙이기에, 정말로 다시 젊게 만드는 신비한 옹달샘 같은 것이 없을까도 상상해 보게 된다. 많은 난치병에 희망을 주고 있는 줄기세포인데, 질병이라면 질병일 수 있는,모두가 걸리게 되고 누구도 회복되어 보지 못한 가장 어려운 난치병이라고도 볼 수 있는 노화 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일까?

 

이러한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타진해본 과학자들이 있었다. 영국 왕립대학 정신과의 톨지스 박사팀 이었다. 이들은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부위인 해마에서 얻어진 젊은 신경줄기세포를 이식하면 노화에 빠진 뇌기능이 다시 회복되는지 알아 보는 연구를 고안하였다. 즉 노년에 든 쥐와 젊은 쥐를 대상으로 학습능력과 기억력을 시험하는데 수영장안의 어딘가에 사다리를 살짝 잠기게 놓고 1주일 정도의 반복훈련으로 여기를 찾아가는 학습능력과, 이것을 제거한 후 기억에 의해 그 자리를 다시 찾아가는 능력을 시험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젊은 쥐들과 달리 상당수 노년 쥐들은 목표를 찾아가는 법을 배우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그렇게 배우고 난 뒤에도 금방 까먹기 일쑤였다. 연구팀은 그 중 특히 기억감퇴가 심한 늙은 쥐들 중 일부에게 해마에서 유래된 신경줄기세포를 뇌 이식하였다. 이식 받은 지 두 달 뒤, 같은 시험을 반복하여 보았는데 다른 노화된 동물들은 여전히 가물가물 하고 있는데 이식 받은 노화 쥐들은 목표가 있는 곳을 배우는데 훨씬 빨라 젊은 쥐들의 점수에 근접했다. 더 놀라운 것은 사다리를 제거하고 기억능력을 테스트 해보았는데, 이식 받은 쥐들은, 동료 노화 쥐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팔팔한 젊은 쥐들보다도 더 정확히, 더 신속히 목표를 찾아가는 놀라운 기억력을 과시한 것이었다. 연구팀은 이식된 신경줄기세포가 이식 후 이들 뇌의 구석구석을 재생하고 있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노화라고 하는 돌이킬 수 없는 질환도 재생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발견하였다. 적어도 노화에 따른 기억감퇴에 있어서는 시간의 흐름을 역행하여 다시 젊어진다는 신비의 옹달샘이 아주 불가능 한 것만도 아닌 듯 싶다.

 

 

14. 결론: 줄기세포에서의 두 가지 오류

 

영화 쥬라기 공원을 다시 보면 줄기세포의 명과 암 속에서 몸살을 앓고 있는 오늘날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룡의 유전자를 모기의 피에서 뽑아내어 난자에 이식한 후 이들을 복제한다. 복제된 공룡들에 의한 빙하기 이전의 생태계를 복원하여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복제동물 들의 세상을 이룬다.그러나 그러한 과학적 실험과정에 불순세력이 끼어 든다. 이것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려는 사람들이다. 결국 한 과학자가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해 돈으로 매수되고 거대한 과학적 실험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재앙까지 불러온다. 다행히 시스템이 극적으로 복원되어 주인공들만 간신히 살아 남는다.

 

그 상황이 단순히 영화 속의 허구라고 웃어넘기지 못하는 것은, 이미 거액의 부를 축적한 이탈리아의 안티노리 박사가 진행중인 복제인간의 임신 8주째 소식이 들리는 요즘 더욱 그렇다. 많은 과학이 인간에게 득이 되는 면과 해가 되는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은 과학 자체의 속성이다. 문제는 그 과학이 노출되어 있는 사회적 여건과 과학의 남용을 막을 수 있는 사회적 윤리적 안전장치가 더 관건이다.

 

그러기에 얼마 전 캐나다의 코니 이브스 박사가 내한 때 토로한 것처럼, 과학자는 자신이 속한 사회로부터 전적으로 자유로운 것은 아니며,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자신이 속한 사회와 정직한 대화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희망도, 우려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버린 오늘날 세계각국이 이러한 대화와 합의과정을 유추해 내느라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안으로 등장하고 있는 성체줄기세포의 실상과 가능성에 대한 객관적 검증은 보다 균형있는 우리사회의 역사적 합의점 도출을 위해 그 어느 때 보다도 중요하게 느껴진다.

 

그 동안 본 칼럼에서 생생하게 소개된 바와 같이 성체줄기세포는 난치병과의 전선의 곳곳에서 이미 의학적 효용을 발휘하고 있다. 이들은 몸 안에 이식되어도 암을 유발할 가능성도 없고, 신체의 손상에 대해 자체적인 응급구조대와 같은 기능도 하고 있으며, 자기자신의 세포를 포함하여 가족이나 형제간의 세포를 이식할 수 있으므로 면역학적 거부반응을 극복하기가 용이하다. 이런 맥락에서 복제양 돌리의 생산으로 유명한 영국의 생명공학 회사 PPL이 최근에는 성체줄기세포에 대한 연구를 대규모로 시작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1년전 영국의 닐 스칼딩 박사가 상원청문회에서 이미 이렇게 경고했다. 지금 세상에는 줄기세포에 관한 2가지 큰 오류가 존재하고 있다. 그 하나는 배아줄기세포에 의한 인간의 난치병 정복이 곧 도래할 것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체 줄기세포가 배아줄기세포에 비해 떨어진다고 하는 것이다.

 

21세기판 불로초 라고도 할 수 있는 줄기세포가 우리를 어디로 이끌어 갈지 지금은 알 수가 없으나 우리 의학 교과서의 첫 마디는 이렇게 시작한다. 병은 하늘이 고친다. 단지 의사는 환자가 가지고 있는 치유의 능력이 나타나도록 도울 뿐이다.

 

[오일환(의사, 이학박사) /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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