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홍)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생명존중과 법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7 ㅣ No.370

生命尊重과 法

 

 

I. 글 머리에

 

법의 존재의의는 인간의 가치를 고양시키는 사회를 만드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법은 자주 이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남용 혹은 악용되고, 정치적 목적달성의 도구로 전락하거나 이윤추구라는 경제적 목적에 동원되기도 한다. 또한 현대사회에서 과학 발달은 인간의 삶에 안전과 안락함을 제공해주기도 하지만 불안감도 증진시키기도 한다. 특히 과학이 진보 그 자체만을 즐길 때에 과학은 인간사회를 더욱 더 위험스럽게 변질시킬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존재가 된다. 이와 함께 과학의 발달에 경제적 이해관계가 개입되면 공익과 배치되는 방향으로 연구하고 이용되는 일이 허다하다. 인간의 생명은 물리와 화학, 그리고 경제학의 언어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다원주의 사회에서 법이 모두를 만족시켜주는 방향으로 제정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발전하는 사회라면 지향하는 가치가 인간생명을 포함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더욱 높이고, 인간성을 제고하는 방향이어야 함은 당연하다. 아래의 쟁점들은 이러한 문제가 가장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경우이다.

 

 

II. 死刑制度


1. 과도한 사형규정

 

사형제도는 국가형벌권의 최후수단이며 국가의 형사정책적 시각을 나타내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특별형법이 많은 한국의 현행 법령 가운데 통상적 의미의 흉악범죄라고 할 수 없는 살인범죄가 아닌 범죄의 경우에도 사형이 규정된 구성요건이 너무 많다. 군형법의 경우 사형을 규정하고 있는 총 34개 규정 가운데 27개의 죄가 사람을 살해하거나 사람이 사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형을 규정하고 있다. 그 밖의 예는 아래와 같다.

 

(1) 형법: 내란죄(제87조 제1, 2호), 외환유치죄(제92조), 여적죄(제93조), 모병이적죄(제94조 제1항), 시설제공이적죄(제95조 제1, 2항), 시설파괴이적죄(제96조), 간첩죄(제98조 제1, 2항), 폭발물사용죄(제119조 제1, 2항), 해상강도강간죄(제340조 제3항).

 

(2)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 상해목적 약취 유인죄(제5조의 2, 제1항 2호), 상습강도 절도죄(제5조의 4), 강도상해등 재범자의 가중처벌(제5조의 5), 절도목적 단체조직(제5조의 8), 통화위조죄의 가중처벌(제10조), 마약사범의 가중처벌(제11조), 해상강도강간죄(제 조).

 

(3) 국가보안법: 반국가단체조직죄(제3조 1, 2호), 반국가단체 구성원의 국가기밀탐지 수집 누설 전달 중개죄(제4조 1항 2호), 반국가단체 관련 잠입 탈출죄(제6조 2항), 특수가중(제13조).

 

(4)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등에 관한 법률: 특수강도강간죄(제5조 2항).

 

(5) 보건범죄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보건범죄 재범자의 특수가중(제3조의 2).

 

(6) 한국조폐공사법: 화폐 유가증권등 강취죄(제19조 1항).

 

(7) 전투경찰대설치법: 근무기피목적 자상행위(제9조 5항).

 

(8)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영리목적 또는 상습마약류 수출입 제조 매매 등 죄(제58조 2항).

 

(9) 마약류불법거래방지에 관한 특례법: 직업적인 마약류 불법수입등의 죄(제6조 1항).

 

2. 政敵除去, 정치권력 강화와 이데올로기 투쟁의 道具性

 

동족간에 전쟁을 경험한 한국에서 사형제도는 이데올로기적인 적을 말살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기능하였다. 6 25 전쟁이 끝난 이후 사상범으로 몰려 사형집행을 당한 정치인이나 언론인, 학생 등이 많았음은 이를 반증한다. 대표적인 사건만 예로 들더라도 1958년 이승만 정권하에서 진보당사건으로 사형 당한 정치인 조봉암, 1961년 5 16 군사쿠데타 직후 사형 당한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 '사법살인'이라고 불리우는 1974년의 인민혁명당 사건(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1975년 4월 8일 8명의 피고인들에 대해 사형을 선고하였다. 그리고 사형선고일 밤부터 다음날인 1975년 4월 9일 새벽까지 8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한 사실은 유명하다), 1980년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특별사면된 김대중 대통령처럼 유명한 인물은 물론이고, 이름 없는 시민들이 사상범으로 사형 당한 예는 그밖에도 많다.

 

헌법재판소의 합헌이유도 사형제도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사실상 인정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헌법재판소가 사형이 비례의 원칙에 따라서 최소한 동등한 가치가 있는 다른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불가피하다는 입장은 흉악범에 대한 사형규정의 합헌성을 지지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헌법재판소는 '생명권에 못지 않은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성이 충족되는 예외적인 경우에도 사형은 본질적인 기본권 침해를 금지한 헌법 제37조 제2항 단서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생명침해에 못지 않은 중대한 공익을 침해하는 경우에는 국민의 생명·재산 등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국가는 어떠한 생명 또는 법익이 보호되어야 할 것인지 그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고 하면서 사형제도에 대하여 합헌결정을 하였다.1) 이는 사형제도가 흉악범죄 이외의 범죄에 대해서도 '공익보호'를 이유로 부과될 수 있다는 것을 내포하는 것이다.

 

대법원 역시 "우리나라의 실정과 국민의 도덕적 감정등을 고려하여 국가의 형사정책으로 질서유지와 공공복리를 위하여 형법 등에 사형이라는 처벌의 종류를 규정하였다 하여 이것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2)

 

공익보호,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서 사형선고가 허용될 수 있다는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의 시각은 한국의 법관들이 얼마나 위험한 형사정책적 시각을 지니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법원이 여론과 도덕감정이라는 추상적 근거를 들어 국민의 생명권 박탈을 허용할 수 있다는 허용하기 어려운 논리를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이 생명권의 박탈에 상응하는 다른 생명권 보호를 위한 경우에만 사형제도를 합헌이라고 본다면 흉악범죄를 제외한 사형규정은 위헌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사형제도의 악용이 결과적으로 한국에서의 刑事司法에 대한 불신은 물론이고 정치권력에 대한 정통성의 문제,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소위 '색깔론' 내지 매카시즘의 위력을 초래하게 한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생명권의 경시 사상도 마찬가지이다.

 

사형이라는 형벌위협을 통한 政敵除去와 政治權力 强化는 한국민주주의의 발전에 장애요인이 되었으며, 한국사회에 진보적 사상을 가진 지식인이나 정당의 출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었다. 그리고 한국인들에게 사상의 다양성이 아니라 획일성을, 그리고 사상과 표현의 자유의 자기검열이라는 정치권력과 이데올로기에의 순종하는 자세를 사실상 강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3. '경제적'인 형사정책적 대안

 

형사정책도 경제적 성과분석을 필요로 한다. 형사정책의 비용-효율계산은 이미 형벌의 효과에 대한 전통적 논의에 내포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가가 가장 손쉬운 - 그러나 언제나 가장 값싸다고는 할 수 없는 - 방법을 통하여 형사정책적 정치권력적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목표와 관련된 예를 들어보면 상습범 재범자, 성범죄자, 조직범죄, 상관에 대한 범죄 등이다.

 

그러나 상습범이나 재범자의 경우 범죄의 반복이 형벌을 가중할 사유인 것은 분명하지만 반복된 범죄의 성격을 도외시하고 단순한 반복을 이유로 사형을 규정한 것은 지나치게 범죄인 개인의 범죄적 성향에 집착한 논리이다. 성범죄자의 경우 한국사회에서는 윤리적 평가에 의해 단죄되는 경향이 강하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피해자의 사망을 초래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특수강도강간 강제추행죄(제5조 2항)에 대해 사형을 규정하고 있음은 그 예이다. 그밖에 조직범죄나 범죄단체조직죄에 사형을 규정함으로써 개별책임보다는 공동의 연대책임을 묻는 한국형법의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상관에 대한 범죄자에 대해서 사형을 규정함으로서 엄격한 위계질서를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예는 한국형법이 사형제도에 대한 신중한 접근보다는 가혹한 형벌을 통한 가장 값싼 '사회방위'를 시도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4. 한국의 형사사법 현실과 사형제도

 

형사절차는 공정하고 신중한 수사와 심리, 그리고 합리적 양형기준의 적용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의 경험은 과거 사형제도 자체의 문제점뿐만 아니라 무고한 사형선고라는 의심이 드는 사건들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치적 사건의 경우는 물론이고 일반 형사사건의 경우에도 이러한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하에서는 우리 현실에서 형벌로서 사형제도의 문제점을 앞으로 어떻게 제거하여야 할 것인지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1) 사형제도를 바라보는 시각

 

사형제도 폐지에 대한 여론은 아마도 유보적이거나 부정적인 의견이 다수일 것이다.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사형제도를 바라보는 시각이 단순하기 때문이다. 즉 흉악범이나 '빨갱이'는 죽여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식이다.

 

사형제도가 범죄예방에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별 효과가 없는지에 대한 논쟁은 검증되기 어려운 부분이다. 물론 형벌이 범죄 억지력을 갖는 것은 명백하다. 형벌 없는 세상을 상상하면 쉽게 이해가 간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사형제도가 어떠한 정도의 범죄 억지력을 갖는지 평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또한 사형제도가 정의에 부합하는 제도인지, 아니면 응보적 사고의 소산에 불과한지를 판단하는 것 역시 법철학적 논쟁의 대상이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 사형제도에 대한 존속과 폐지 논쟁이 있지만 사형제도의 폐지를 궁극적 목표로 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문제는 즉시 폐지인가, 아니면 점진적 폐지인가의 차이점이다. 폐지론자는 사형제도의 즉시 폐지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주장을 한다. 대안으로서 절대적 종신형 혹은 가중된 종신형을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여론을 극복하는 것이 쉽지 않은 만큼 사형제도가 야기하는 심각한 문제점을 제거하는 방안부터 논의하는 것이 실익이 클 수 있다.

 

(2) 현실적 대안마련의 필요성

 

사형제도에 대한 한국사회에서의 폐지운동은 이제 구체적 결실을 맺을 시점이 되었다고 판단된다. 존치와 폐지라는 원칙론이나 본질적 논쟁에서 벗어나 실현가능한 대안을 마련하여야 한다. 사형제도는 순수한 형법적 문제점이 아니라 정치적 문제점이고, 사회적 문제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선적으로 추진하여야 할 대안은 흉악범죄를 제외한 일체의 범죄에 대해서 사형규정을 삭제하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한편 사형폐지론 가운데에는 현행 사형규정을 종신형이나 가중된 무기형으로 대체하자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사상범에 대해서는 무기형도 가혹한 형벌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한 점에서 현행 사형규정을 단순하게 종신형으로 대체하는 법개정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므로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각 구성요건에 대한 개별적인 검토가 필요한 것이다.

 

수사와 재판이 적법절차를 준수하고 신중하게 운용되는 선진국의 경우사형제도가 폐지되었거나 극히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반대로 형사사법의 후진국일수록 사형이 넓게 인정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악용의 위험성이 크다는 점을 나타낸다. 사형이라는 국가형벌권의 최후수단을 사용하여 국가권력의 위엄을 과시하고 이를 강화하려는 시도야말로 사형이 폐지되어야 하는 가장 강한 이유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악용의 대표적 사례를 제거하는 것이 우선적이라고 본다.

 

(3) 적법하고 신중한 수사와 재판

 

수사기관은 사형이 규정된 범죄사건의 수사는 적법절차를 지키는 수사관행을 확립하여야 한다. 그리고 피의자와 피고인이 변호인의 성실한 도움을 현실적으로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부분에 대한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형제도는 너무나 위험한 형벌이다.

 

수사기관은 흉악범죄 일수록 처벌의지가 강하게 발동하여 엄격한 증거위주의 수사관행을 벗어나기 쉽다. 국가보안법위반사건의 경우에도 피의자들에 대한 가혹수사를 통한 자백강요가 문제된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수사서류 중심의 현행 공판절차의 특성상 사형해당 범죄에 대한 수사가 얼마나 신중하여야 하는지는 자명하다.

 

법원은 사형선고에 특히 신중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수사기록에 의존하는 재판을 지양하고, 피고인에 대한 유죄의 확신이 섰을 때에 유죄판결을 하는 신중함이 요구된다. 또한 공범사건에서 구체적 범행사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공범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두를 동일하게 처벌하려는 판결태도를 버려야 할 것이다.

 

또한 사형선고를 받은 피고인에 대한 再審請求理由(형사소송법 제420조 이하)도 완화하여 폭 넓게 재심을 허용하여야 한다. 이를 통하여 형사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감을 높이고 민주주의적 사법절차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사형선고를 내린 동료판사의 재판이 오판이었음을 인정하는 재심개시결정을 할 용기 있는 법관이 필요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III. 腦死와 臟器移植

 

현행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장기이식 목적인 경우에만 뇌사를 한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동 법 제17조, 제18조 제2항 참조). 그러므로 형법상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 의한 경우가 아닌 이상 뇌사상태의 환자를 사망판정하고 치료중단을 하거나, 의학적 시술을 통하여 심장사에 이르게 할 경우 살인죄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에 '의사윤리지침'은 뇌사를 심장사와 더불어 죽음의 기준으로 인정하고 있다(제61조). 뇌사자도 회복 불가능한 환자로 규정, 무의미한 의료행위를 줄이자는 취지로 보인다.

 

뇌사를 사망시점으로 인정하자는 주장은 장기이식의 목적 때문만은 아니다. 불필요한 치료중단으로 통하여 환자는 물론이고 가족을 정신적 경제적으로 도와주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성공적인 장기이식을 위하여 뇌사자의 신선한 장기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고, 뇌사인정의 가장 구체적인 효과는 장기이식에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는 점도 뇌사설 주장의 근거임을 부인할 수 없다. 비교법적으로 볼 때 독일에서는 뇌사를 사망시점으로 인정하는 것이 학계의 다수설이다.3) 그리고 독일의 장기이식법(§ 3 II Nr 2 Transplantationsgesetz) 역시 뇌사를 사망시점으로 인정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70년에 캔사스(Kansas) 주에서 최초로 전통적인 심폐사(heart-lung definition of death) 이외에 뇌사를 선택적으로 사망의 기준으로 인정하였다.4)

 

인간생명의 시작과 끝을 정의하는 문제는 종교, 철학, 의학 등 다양한 분야와 상관성을 갖는다. 그러나 법적인 측면에서 보면 법률적 판단에 해당한다. 즉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법적 효과를 부여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는 형법에서 사람을 진통설에 입각하여 진통이 시작되면서부터 태아가 아니라 사람으로 인정하고 있는 반면에(그러므로 낙태죄가 아니라 살인죄가 적용된다), 민법에서는 완전노출설에 따라 태아가 산모의 몸에서 완전히 노출된 시점을 기준으로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망의 문제 역시 종교적, 철학적, 의학적 견지에서 다양한 논의가 있지만 현단계에서 법적인 측면에서는 불가역적인 뇌사시점을 사망시점으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본다.

 

 

IV. 安樂死

 

안락사는 사망이 임박한 불치병 환자를 고통을 감소시키면서 사망하도록 하는 것을 가리킨다. 안락사는 살인행위와 법적으로 구별하여 취급되지 않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처벌되는 행위이다. 다만 의학발달에 의하여 불치환자가 임종이 가까운 상태에서 고통 없이 생을 마감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정당화가 논의되기 시작한 것이다.5)

 

법적인 관점에서 문제되는 경우로는 적극적인 방법으로 생명단축을 하는 적극적 안락사와 환자치료를 중단함으로써 사망을 초래하는 소극적 안락사의 방법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적극적 안락사는 법적으로 인정되기 어려운 살인행위이다. 반면에 소극적 안락사에 대해서는 허용가능성이 높은 만큼 논란이 많은 유형의 안락사이다. 이 밖에 간접적 안락사와 직접적 안락사로 분류하기도 한다. 전자는 임종시에 도움을 주는 행위를 의미하고, 후자는 생명단축을 위한 조력을 의미한다. 전자는 환자의 요청이나 동의에 의하여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행위로서 생명단축을 수반할 수 있지만 형법상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정당행위(제20조)로서 허용될 수 있다. 반면에 직접적 안락사는 우리 형법상 자살방조죄나 촉탁살인죄에 해당할 수 있다. 미국 오리건주와 네덜란드에서는 안락사를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지만 아직 많은 국가들이 안락사를 불법행위로 보고 있다.

 

안락사의 문제점은 오진, 자의성을 포함하여 환자의 의사판단의 어려움, 남용가능성, 장애자에 대한 남용 위험성, 의료행위 및 의료인에 대한 불신초래 가능성, 생명연장장치의 사용거부를 증가시킬 것이라는 점등이다.6)

 

대한의사협회는 11월 15일 선포한 '의사윤리지침'에서 안락사의 개념을 "'안락사'라 함은 환자가 감내할 수 없고 치료와 조절이 불가능한 고통을 없애기 위한 목적으로 환자 본인 이외의 사람이 환자에게 죽음을 초래할 물질을 투여하는 등의 인위적·적극적인 방법으로 자연적인 사망 시기보다 앞서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58조). 이는 적극적 안락사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동시에 의사는 안락사에 관여할 수 없다고 하여 적극적 안락사를 금지하고 있다. 반면에 동 윤리지침은 "의사는 죽음을 앞둔 임박한 환자가 자신의 죽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다”(동 지침 제57조 제2항)고 규정하였다. 의협은 이를 필요한 치료를 제대로 하지 않아 환자가 사망하는 '소극적 안락사(부작위에 의한 안락사)’와 다르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소극적 안락사와 동일한 것으로서 형법상의 촉탁 승낙에 의한 살인죄(제252조 제1항)에 해당한다. 비록 환자나 가족 등 대리인의 문서 요구를 전제로 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소극적 안락사’와 큰 차이가 없다. 동 윤리지침은 또한 의사의 조력에 의한 자살을 금지하고 있다.7) 형법상의 자살방조죄(제252조 제2항)를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금지규정에도 불구하고 윤리지침은 의학적으로 의미 없는 치료의 보류나 철회를 허용함으로써8) 근본적으로는 소극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입장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소극적 안락사가 선진국에서 허용하는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소극적 안락사가 필요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환자의 상태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확실한 본인의 의사가 전제되면 인위적인 생명연장 대신에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조금이나마 제거하는 안락사의 방법을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구와 달리 안락사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안락사의 법적 허용을 주장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다. 또한 환자의 회생불능상태에 대한 명확한 판단기준의 설정이라든가 생명경시풍조로 확산될 수 있는 남용가능성에 대한 차단책을 우선적으로 마련하지 않고 현실만을 인정하려는 것은 극히 위험한 시도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 외국의 안락사 허용 사례와 범위

 

◇ 미국

 

워싱턴주에서는 지난 91년 11월 `의사의 도움에 의한 자살'을 허용하는 법안이 처음으로 주민투표에 부쳐졌으나 반대표가 더 많아 무산됐다. 이듬해인 92년에는 캘리포니아주에서 유사한 내용의 법안이 주민투표에 부쳐졌으나 근소한 표 차로 법제화되지 못했다. 그러나 오리건주는 지난 94년 주민투표를 통해 의학적 도움에 의한 자살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미국 내에서 처음 안락사를 합법화했다. 현재 미국 51개 주 가운데 안락사를 주법으로 합법화한 곳은 오리건주뿐이며 뉴욕주와 오하이오주 등 47개 주에서는 주법이나 관습법으로 안락사를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 유럽

 

네덜란드는 2001년 4월초 안락사 허용 법안을 상원에서 통과시킴으로써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한 나라가 됐다. 네덜란드에서는 지난 80년대부터 안락사가 암암리에 이뤄졌으나 안락사에 관여한 의사를 처벌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네덜란드의 안락사 법은 환자 본인의 동의, 치료방법이 없고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격심한 경우, 의사 2명 이상의 소견서 등 6가지 요건이 충족되면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

 

네덜란드에 이어 벨기에의 제한적 안락사 허용 법안은 지난 3월 상원을 통과한 뒤 현재 하원에 계류돼 있다.

 

그밖에 덴마크는 완치 불가능한 환자가 스스로 치료를 거부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으며, 스웨덴에서는 의사들이 극단적인 경우 환자의 산소호흡기를 뗄 수 있도록 허용된다.

 

◇ 아시아

 

일본에서는 안락사 대신 `존엄사'라는 용어가 사용된다. 회복 가능성이 없이 장기간 식물인간 상태에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에 대해 생명유지장치 등에 의한 인위적 생명연장진료를 중단, 인간적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죽음을 맞이하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일본에서는 안락사를 관습적으로 용인되는 분위기도 있으나 아직 법제화되지는 않았다.

 

대만에서는 지난해 5월 안락사 법안이 입법원을 통과, 행정원 승인절차를 남겨 놓은 상태다. `안락하고 평화로운 치료에 관한 법'이라는 명칭의 이 법안은 자연사를 원하는 말기 환자에게 생명연장 보조시술 거부권을 인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V. 落胎

 

法과 現實의 극단적 이중성이 나타나는 경우가 낙태이다. 즉 낙태행위에 대하여 한국처럼 엄격하게 법으로 금지하고 형사 처벌을 규정한 국가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처럼 1년에 150만 건이 넘을 것이라는 추정치에서 알 수 있듯이 낙태가 일반화된 사회도 없는 극단적 이중성을 띠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의 경우 형법(제269조, 제270조)은 임부를 포함하여 이를 도와준 의사 등 모두를 처벌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모자보건법(제14조)9)이 일정한 경우의 낙태를 정당화해주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은 낙태행위가 형사처벌의 대상인 사실조차도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할 정도의 낙태죄에 대한 형법의 규범력은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대한의사협회가 미성년자의 낙태를 허용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의사윤리지침까지 선포되기에 이르렀다.

 

많은 법 가운데에서도 형법은 국가의 최후권력이라고 할 수 있는 형벌권을 통하여 가장 강력한 규범력을 갖는다. 그리고 형법은 법 공동체 내에서 어떠한 법익이 어느 수준으로 보호받게되는지를 나타내주는 지표적 기능을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형법은 태아의 생명가치를 존중하여 낙태를 형사처벌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키지 않고 오히려 낙태가 거부감 없이 행하여지는 현실을 인정하는 방향에서 해결책을 구하려는 자세는 인간생명을 존중하는 국가의 법 정책이라고 할 수 없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낙태의 허용범위에 대한 진지한 검토와 함께 낙태행위에 대해서는 검사의 기소편의주의에 입각한 불기소처분과 같은 방관주의에서 형사처벌을 원칙으로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특히 상습적이고 임신 후 일정기간(예를 들어 3개월 이상)이 지난 낙태행위만이라도 중점적으로 처벌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처벌이 목적이라기보다는 이를 통하여 낙태의 범죄성을 인식시키고, 합리적인 피임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 사회의 값싸고 손쉬운 낙태시술이 합리적 피임을 불필요하게 생각하는 풍조를 낳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VI. 生命工學과 法

 

인간을 질병과 사망으로부터 지켜주기 위한 생명공학의 발달이 인간생명의 가치를 상대화시켰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그리고 인간생명을 배아단계에서부터 기술개발과 경제발전의 도구로 삼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특히 생명공학 가운데 인간의 배아에 대한 연구가 가장 문제된다.

 

1. '생명공학육성법'

 

우리나라의 경우 독일의 '배아보호법'(Embryonenschutzgesetz, 1991)이나 영국의 '인간수정 및 발생학법'(Human Fertilization and Embryology Act, 1990), 일본의 '인간에 관한 복제기술등의 규제에 관한 법률'(2001.6.1부터 시행)과 같은 인간복제와 관련된 입법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다만 관련법령으로는 1990년에 제정된 '생명공학육성법'이 있다. 이 법의 목적(제1조)은 생명공학연구의 기반을 조성하여 생명공학을 보다 효율적으로 육성·발전시키고 그 개발기술의 산업화를 촉진하여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 법에서 "생명공학"이라 함은 산업적으로 유용한 생산물을 만들거나 生産工程을 개선할 목적으로 생물학적 시스템, 生體, 遺傳體 또는 그들로부터 유래되는 물질을 연구·활용하는 학문과 기술을 말한다(제2조). 현재 이 법에 대한 개정안이 의원입법안으로 제출된 바 있다. 1997년 개정안에 포함되어 있던 1) 유전자요법을 통한 인간의 정자·난자·배반포를 변개하는 행위, 2) 그 영향이 다음 세대로 이전될 여지가 있는 인간 유전자조작행위가 금지행위에 포함되었지만 1998년 개정안에서는 제외되어 있다.

 

2. 생명과학보건안전윤리법(안)

 

동 법안은 생명복제와 직접 관련된 법안으로서 인간의 개체복제는 금지하되, 임신목적의 수정란생산은 허용하는 것, 그리고 이 과정에서 생산된 잉여배아(수정란)는 연구목적으로는 허용하였다.

 

(1) 구성

 

동 법안은 국가생명안전윤리위원회의 구성(제2장), 인간복제의 금지, 인간과 동물의 상호융합행위 등 금지, 배아이용의 제한적 허용, 배아 연구계획서의 승인, 배아의 생산·관리, 배아의 유전정보변경 등 금지(제3장), 유전자 검사 실시기관 등, 유전자 검사의 동의, 유전정보의 보호 및 부정이용 금지, 유전정보에 의한 차별금지(제4장), 세포치료 및 유전자치료 기관의 지정, 세포치료 및 유전자치료 시술범위, 세포치료 및 유전자치료 기관의 준수사항(제5장), 벌칙, 과태료(제8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2) 인간복제, 배아 이용 등에 관한 내용

 

본 법안에서는 외국의 입법 사례와 전문가 의견조사, 국민의견조사 등의 결과를 종합하여 생식세포나 체세포를 이용한 인간 개체의 복제와 인간과 동물의 상호융합 및 이의 이식 행위는 금지하였고, 이의 위반사항에 대해서는 자유형과 벌금형의 벌칙을 부과하였다. 그러나 불임치료의 목적으로 인간의 정자를 동물의 난자와 수정시키는 행위는 허용하고 있다.

 

다음으로 배아 이용에 대해서는 임신 이외의 목적으로 배아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행위는 금지하되, 불임시술을 하고 남은 배아의 잉여분을 이용하여 원시선이 출현될 초기적 징후가 나타나기 이전에 한하여 다음의 목적으로 배아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제한적으로 허용하였다.

 

- 불임치료법 및 피임기술의 개발을 위한 연구

- 선천적 질병 및 난자 세포 내에 생기는 유전적 질병 치료를 위한 연구

- 질병치료를 위한 배아간세포 연구

- 기타 국가생명안전윤리위원회가 국민 건강증진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이러한 경우에도 배아를 연구하고자 하는 자는 사전에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부터 배아 이용에 대한 승인을 받도록 정하였다. 또한 배아를 이용하고자 하는 자는 정자제공자 및 난자제공자가 서면 동의한 배아만을 이용할 수 있으며, 배아의 양도·양수·폐기 등에 대한 기록을 보존하도록 하였다.

 

3. 결론

 

생명공학 가운데 특히 인간복제와 관련해서는 인간 자체의 복제를 시도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대체로 반대하는 의견이 많다. 이와 달리 치료목적의 복제에 대해서는 견해가 나뉜다. 이 경우의 윤리적 문제제기에 대해 법이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앞으로의 과제라고 볼 것이다. 경제적 이익추구의 방편으로 생명공학을 이해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근본적인 침해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와 가정, 사회체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 가능성이 있는 문제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생명복제에 관한 법령이 제정되지 않고 있어서 사실상 이에 관한 연구와 실험이 제한 없이 실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태의 방치는 결과적으로 무분별한 배아관련 실험을 제한하려고 할 경우에 지금까지 연구성과나 이익에만 관심을 두었던 일부 관련 연구자들의 반대를 야기하는 원인이 될 것이다. 배아와 관련된 기존의 실험이나 연구를 중단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무분별한 배아실험이 일상화되고 과학적 성과로만 알려질 경우 일반 국민들의 생명가치에 대한 사고가 왜곡될 위험성도 있다. 생명복제를 제한하는 법령의 정비가 반드시 그리고 조속히 필요한 이유이다.

 

 

VII. 글을 맺으며

 

현재 한국사회에서 인간생명은 여러 측면에서 위협을 받고 있다. 예를 들면 자녀를 갖기 원하는 불임부모에게 대리모를 인정하고, 부모의 알 권리를 내세워 성감별을 허용하는 '의사윤리지침'은 인간생명을 존중하는 데에 가장 앞장서야 할 의사협회가 왜곡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바탕 위에서 해결책을 구하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고의 저변에는 인간의 이기심과 경제논리가 자리잡고 있다. 우리가 지향하는 풍요로운 사회가 결국은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의미할 뿐 인간성이 고양되고 이에 따라 인간생명의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우리사회에 생명가치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기 위해서는 생명가치에 대한 학교교육과 의료윤리에 충실한 의료인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본다.

 

-----------------------------------

1) 헌법재판소 1996.11.28, 95헌바1.

2) 대판 1991.2.26, 90도2906.

3) Wessels/Hettinger, Strafrecht/BT(23. Auflage, 1999), § 1 Rn 21 등 참조.

4) 미국의 경우 1980년의 Uniform Determination of Death Act를 제정하여 26개주에서 이를 인정하고 있으며, 다른 주에서도 이 법의 뇌사정의를 모델로 삼고 있다. 한편 higher brain death(혹은 neocortical brain death)를 인정하자는 견해도 있다. 이는 뇌의 일부가 기능을 하더라도 사망을 인정하자는 견해이다. B.R.Furrow, Health Law, 1995, 674면 이하.

5) 안락사는 그리스어로 Euthanasia이며, good death를 의미한다.

6) B.R.Furrow, Health Law, 757면 참조.

7) 제59조 ① '의사조력자살'이라 함은 환자가 자신의 생명을 끊는 데 필요한 수단이나 그것에 관한 정보를 의사가 제공함으로써 환자의 죽음을 촉진하는 것을 말한다. ② 의사는 '의사조력자살'에 관여하여서는 아니 된다.

8) 제60조(의학적으로 의미 없는 치료) 의사가 회생 불가능한 환자에게 의학적으로 무익하고 무용한 치료를 보류하거나 철회하는 것은 허용된다.

9) 1. 임신부나 배우자가 간질 혈우병 등 유전성 질환자인 경우, 2. 임신부나 배우자가 에이즈 간염 등 법정전염병 환자인 경우, 3. 성폭력에 의한 임신, 4. 친족간 임신, 5. 임신이 모체의 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주는 경우에만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朴相基(연세대 법대 교수, 형법학) /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홈페이지에서]

 

 

'생명존중(生命尊重)과 법(法)' 논평

 

 

I. 이끔 말

 

오늘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정기 세미나를 통해 '생명존중과 법'이라는 훌륭한 논문을 발표하여 준 박상기 교수께 논평자로서 깊은 감사와 존경을 드린다.

 

발표자는 법이 인간의 가치를 고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러 모습으로 남용되는 현실을 현행 헌법과 형사법의 해당조항을 근거로 제시하였고, 반드시 지켜야 법의 엄정한 집행, 개정의 필요성이 있는 법의 정비, 법 제정의 바른 방향 등을 언급하고 있다. 아울러 과학발달이 가져오는 폐해를 우려하면서 인간의 생명과 그 존엄성이 보장되는 방향에서 법이 제정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논평자는 이 논문이 법이 소수집단의 특정한 이익을 배제하고, 정의롭고 복지적인 사회건설을 위해 건실하게 제정되고 바르게 집행되어야 하며 인간생명을 살리고 존중해야 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기술되었다고 생각한다. 시종일관 뚜렷한 인간존중의 사상과 이념을 바탕으로 개진된 발표자의 논지에 대해 공감하며 이의를 제기해야 할 부분이 없다고 본다. 발표자가 전개한 내용을 중심으로 순서에 따라 윤리신학적인 관점과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을 통해 각 사안들을 살펴 보겠다.

 

 

II. 윤리규범(倫理規範)과 법(法)

 

발표한 논문의 내용을 논평하기에 앞서 규범과 법에 대한 교의적, 신학적 관점을 살펴 보려고 한다. 그리스도교는 윤리행위의 최종적 규범, 곧 윤리선의 원형을 하느님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인간이 개개의 윤리적 당위성을 고찰하지 않을 수 없다. 법이라는 개념안에 규범이 포함되어 있고, 법은 한 규범이 있음을 고지해 주고 있다. 동시에 규범속에는 구속력을 부여하는 어떤 의지가 있다. 법은 질서를 세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이 질서를 정립하는 일은 이성(理性)의 영역이다. 한편 법은 공동선을 위해 자격을 갖춘 공권력으로 공포된 행동 규칙인 것이다(가톨릭교리서<이하 '가교'로 표기> 1951). 그런데 모든 법의 기본적이고 궁극적인 진리는 영원한 법에서 비롯된다.

 

윤리적으로 모든 권위의 바탕은 영원법이고, 모든 교회법과 국법에 구속력을 행사한다. 여기서 말하는 영원법은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본질속에 자리잡고 있고, 창조와 계시를 통해 시간안에 선포되고 있기에 다른 모든 법의 원천으로 자리잡게 된다. 또한 하느님의 의지를 반영하는 자연법은 도덕 규범의 체계를 세우고, 인간 공동체들을 건설하는데 불가피한 기초가 된다. 자연법은 국법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고, 국법의 필수적 토대가 된다. 주지하는 대로 자연법은 인간에게 선과 악이 무엇이며, 진리와 거짓이 무엇인지를 이성을 통해 식별할 수 있게 해 주는 선천적 도덕의식이기에 모든 인간의 양심에 적혀있고 새겨져 있는 것이다(가교 1952.1959).

 

 

III. 발표한 논문에 대한 논평

 

1. 사형제도(死刑制度)

 

논평자는 발표자의 논지에 대해 동의하면서 교회의 입장을 언급하겠다. 그리스도교는 과거 오랫동안 사형제도의 이론적인 바탕을 신학적으로 제시하였고, 실제로 사형제도를 지지하였다. 그런데 오늘날 사형제도는 비인간적이고 부당하게 시행되고 있다. 인지(人智)가 고도로 발달하고 인권과 인간의 생명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현대 문명사회에서 아직도 잔존하고 있는 잔인하고 혹독한 방법의 사형제도는 근본적으로 하느님의 의지를 거스르는 죄악이며 인간성을 거스르는 제도적인 살인행위이기에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다.

 

사형존치론자는 사형제도는 극악범죄에 대한 합당한 벌이며, 범죄억지 효과가 있고, 정의를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형폐지론자도 흉악범죄 사건을 접하면 사형존치론의 입장에 가담하기 쉽다. 이는 사형제 폐지에 대한 시대적 추이에도 불구하고 사형제도가 건재하는 현실적 토대가 된다. 가공(可恐)할 범죄행각이 드러나면 범행을 저지른 천인공노(天人共怒)할 범죄자는 사회에서 영원히 제거해야 사회질서가 안전하게 유지된다는 인식이 확산된다.

 

사형은 정량화와 등급화가 불가능한 특이한 형벌이다. 단순하고 동일한 처벌, 곧 범죄자의 생명만을 차등없이 박탈한다. 이는 법치국가의 목표이며 지향인 교화와 개선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처사이다. 더구나 정신개조와 종교적 귀의로 인해 질적으로 새롭게 변화된 모범적인 사람을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것은 부조리한 일이다. 그리고 사형수는 사형집행전까지만 벌을 받고 있다. 사형집행의 종료와 함께 모든 불안과 공포는 사라진다. 따라서 사형은 집행전까지만 사실상의 처벌, 응징, 보복이 이루어지는 특수한 형벌이다. 한편 사형수는 생명박탈의 형벌만을 이행하면 되지만, 사형집행의 연기와 대기로 인해 인권침해가 나타난다. 이는 법리적 모순이기도 하다. 범죄억지 효과도 의문점이 있다. 범죄자가 사형을 순교나 영웅적 행위로 여길 경우 사형의 의미는 퇴색한다. 사형제도는 범죄양상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완전범죄를 위해 증거인멸의 최대화를 꾀하기도 한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교회는 죄의 경중에 따라 가해자들을 적절히 처벌하고, 극심한 경우 사형으로써 처벌할 수 있는 합법적 공권력의 권리와 의무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가르쳐 왔다. 그러나 형벌의 첫째 목표는 발생한 폐해의 시정과 교화이다. 형벌은 그 자체보다 인간교회에 역점을 두고 있다(루가 23,40-43). 교회는 사형제도에 대해 다각적인 논의가 벌어지는 상황을 직시하고 있다. 사형제도의 모순점이 드러나고 있어 선진국은 사형을 폐지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교회는 사형제도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와 분석을 통해 공식적인 입장표명을 할 시기가 되었음을 인식하고 있다(가교 2266).

 

2. 뇌사(腦死)와 장기이식(臟器移植)

 

발표자는 형법상 뇌사판정이 살인죄를 구성할 수 있으나, 법적으로 뇌사는 죽음의 시점이 될 수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이런 전망은 뇌사판정의 절차와 과정이 철저하고 신중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논평자는 이 문제에 대한 관련자들의 의식변화를 촉구하고 싶다.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안'이 1999년 1월 6일 국회에서 통과되었고, 2001년 2월 1일 국무회의에서 동일한 내용을 중심으로 한 '동 법률시행령 개정안'이 의결되었다. 이로써 뇌사를 죽음으로 인정할 수 있게 되었으며, 뇌사판정위원회의 판정에 따라 뇌사자의 장기이식이 합법적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교회는 뇌사판정이 공정하게 이루어져 건전하게 장기이식 풍토가 조성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병원관계자와 알선업체가 밀착되어 이루어지고 있는 장기의 상업적 밀거래를 불식시키고, 의료인이 진정으로 존중받는 사회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동시에 국민 모두는 올바른 장기이식 문화를 정착시키는 감시자와 파수꾼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엄정한 법률의 집행이다. 법률 시행안의 내용이 완벽하고 훌륭하더라도 지키지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생명을 담보로 하여 경제적 이익과 욕망을 채우려는 자는 사법적 차원에서 엄중히 통제해야 할 것이다. 장기기증을 통해 이웃의 생명을 살리는 일은 하느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정부와 의료인, 장기기증자와 수혜자의 양심적이고 정직한 태도와 실천이 요청된다. 교회는 뇌사에 대한 교리적 가르침을 선포하지는 않았지만, 교황의 말씀, 신학자들의 견해에 따라 뇌사를 죽음으로 인정하고 있다. 뇌사인정은 가족들의 정신적, 경제적 고통과 부담을 덜어주는 그리스도교적 사랑의 연대성과도 일치한다.

 

교회는 장기이식에 대해서는 교리적으로 긍정적인 가르침을 펴고 있다. 장기이식이 장기 제공자나 그 보호자의 분명한 동의없이는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음을 밝히면서 장기 제공자가 겪는 신체적, 정신적 위험이 장기를 받는 사람이 얻는 선익과 조화를 이룰 때 도덕률에 부합하며 칭송받을 만한 일이라고 본다. 다른 사람의 죽음을 연장시키기 위한 것이라도 해도 제공자를 불구로 만드는 절단, 또는 죽음을 직접 유발하는 행위는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가교 2296).

 

3. 안락사(安樂死)

 

논평자는 발표자와 의협의 윤리지침, 교회는 공히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안락사에 대해 부당한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소극적, 간접적인 안락사에 대해서는 형법과 교회는 비윤리적인 것으로 보는 입장이며, 의협은 품위있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 보고 허용할 수 있다고 본다. 선진국은 적극적 안락사까지 허용하는 나라도 있다. 교회는 모든 안락사를 거부하나 존엄사에 대해서는 관대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소극적 안락사와 품위있는 죽음, 존엄사에 대한 개념은 명확하지 않다고 본다. 교회는 의도적 살인으로 이끄는 안락사 형태는 결코 수용할 수 없음을 밝히고 있다.

 

신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안락사의 모든 형태들은 환자의 동의 유무를 불문하고 불법적인 것이며, 하나의 의도적 살인행위이다. 자살, 자살방조, 무죄한 자의 단순 살인(殺人)인 것이다. 교회의 교도권은 안락사를 절대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 교회는 인간의 생명을 하느님의 선물로 보고 있기에 무죄한 자의 생명을 박탈하는 것은 하느님의 근본권리를 침해하는 극도의 중죄(重罪)로 보고 있다. 안락사가 입법화가 된다면 환자와 노인들은 가족들에게 안락사를 선물로 주아야 한다는 비통한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자녀들에게 부담을 주지않기 위해 스스로 자살을 결행하는 노인들이 증가하고 있다. 젊고 유능하고 기력있는 자들만이 살 권리가 있는 사회에서는 비극적이고 비인간적 모습만 난무할 것이다. 현대 문명사회에서 안락사와 같은 반인륜적인 법은 끊임없이 심각한 저항을 받을 수 밖에 없다.

 

환자의 고통을 없애기 위한 목적으로 인간을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죽게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크게 해치는 일이며,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는 행위이다. 이런 행위는 선의라고 해도 본질적으로 살인행위이다. 특수치료나 경제적으로 과도한 의료기구의 사용중단은 정당할 수 있다. 이는 막을 수 없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존엄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죽음이 임박하였어도 환자에게 일반적 치료행위는 계속해야 한다. 환자의 죽음이 예견되더라도 진통제 사용은 인간 존엄성에 윤리적으로 부합할 수 있다. 이는 사심없는 사랑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 이런 치료행위는 장려되어야 한다(가교 2276-2279).

 

4. 낙태(落胎)

 

논평자는 낙태의 허용범위를 분명히 정하여 형사처벌하고, 낙태의 범죄성과 윤리성을 일깨워야 한다는 발표자의 견해에 동의한다. 그리고 피임과 관련해서 교회는 여러 이유에서 자연적 피임법을 허용하고 인공적인 방법은 부당하다고 가르치고 있는데, 대부분 신자들은 자연피임 실시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고, 불임시술까지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과연 어떤 것이 합리적 피임일까? 피임과 낙태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지 않는가? 교회가 보다 관대해 져야 하는가? 낙태보다 인공피임이 훨씬 덜한 악이 아닌가? 지난 11월 12일부터 판매가 허용된 조기 낙태약 '노레보'의 선택이 산부인과의 낙태시술보다 덜한 악이 아닌가? 등에 대한 질문이 제기된다.

 

가톨릭 윤리신학은 어떤 이유의 낙태도 절대적으로 거부한다. 낙태를 무죄한 자에 대한 살인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치유적 낙태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교회는 공식적으로 치유적 낙태의 정당성을 가르치고 있지 않다. 신학자들은 직접적인 치유적 낙태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있으나, 간접적인 치유적 낙태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본다.

 

낙태를 통해 한 생명을 일상용품 처럼 버릴 수 있는 사람과 사회는 모든 인간생명을 그렇게 취급하게 된다. 낙태를 시민의 권리로 선포하는 경우 그 사회와 국가는 무책임한 성관계와 생명전수를 부추기게 된다. 낙태반대 운동에 앞서 가장 우선적인 과제는 바른 성윤리의 정립과 건전한 남녀관계이다. 아무리 먹는 낙태약 '노레보' 시판이 부당하다고 외쳐도, 낙태는 생명살상 행위라고 호소해도 효과없이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 올 것이고, 성윤리의 문란과 낙태는 더욱 성행할 것이다. 가정, 학교, 교회, 사회는 강한 의지력을 갖고 성윤리 전반에 관한 교육과 정책을 수립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초세기부터 모든 인위적 낙태를 윤리적인 악으로 단정하였다. 낙태에 대한 협력도 중죄로 보고 있다. 교회는 인간생명을 거스르는 낙태죄를 교회법적인 벌인 파문으로 제재한다(교회법 1314. 1323-1324). 인권의 보호를 실정법이 박탈하면 국가는 법 앞에 모두 평등하다는 사실을 부정하게 된다. 국가가 보다 힘이 없는 사람들, 곧 태아의 권리를 보호해 주지 않을 경우 법치국가의 존재이유를 상실하는 것이다. 법은 출생 전 태아나 출생한 모든 인간의 권리를 박탈하는 행위에 대해 적절한 법적 제재를 가하여야 한다(가교 2270-2273).

 

5. 생명공학(生命工學)과 법(法)

 

발표자는 인간복제와 관련한 입법은 현재 마련되지 않았지만 무분별한 생명복제에 대한 연구와 실험을 제한하는 법령이 절박하게 요청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그 관련 법령으로 '생명공학육성법'과 '생명과학보건안전윤리법'을 소개하였다. 모두 교회의 입장과는 크게 차이가 난다. 교회는 인간복제, 잉여배아의 연구와 실험, 인간배아 간세포(幹細胞) 활용 등을 일체 반대한다. 그 이유는 인간 생명의 직접적 파괴인 살인행위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성체(成體) 간세포를 이용한 연구와 실험, 치료만을 인정하고 있다. 성체 간세포의 연구와 활용은 윤리적이고 합리적이며 인간적인 방법으로 수많은 고통받는 사람들을 치유할 수 있다고 본다. 태반이나 탯줄은 인간배아처럼 생명은 아니기에 이것을 활용하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학연구는 윤리적인 규범과 한계안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비윤리적이고 반사회적으로 인간생명을 조작하는 생명공학의 전체 과정안에서는 인간생명의 존엄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사회윤리적, 종교적 차원을 망라하는 인간생명의 존엄성에 근거하여 비윤리적인 인간생명의 조작을 금지하는 국가적, 세계적 차원의 입법 조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가톨릭 교회는 '시험과 아기'와 '복제인간' 등의 행위를 비윤리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교황청 생명학술원 2000년 8월 24일 발표한 '인간 배아 간세포의 생산과 과학적 및 치료적 활용에 관한 선언'에서 가톨릭 교회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곧 인간배아 복제에 대한 합리적이고도 윤리적 대안이라고 할 수 있는 성체 간세포 생산을 위한 구체적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가톨릭 교회는 1987년 신앙교리성 훈령 '생명의 선물'을 인용하여 불임극복을 위한 인공수정과 정자나 난자의 제공, 시험관 아기, 자궁대여 등을 파렴치한 수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부부간 인공수정, 시험관 아기 시술이라고 해도 윤리적으로 부당하다고 본다(가교 2275-2377). 또한 생물학적 실험재료로 쓰려고 태아를 만들어 내는 일과 치료목적이 아닌 특정 성(性)이나 미리 정한 다른 기준에 따라서 우수한 인간을 선택적으로 만들어 내려는 목적으로 염색체나 유전 물질을 변화시키기 위한 일부 시도들에 대해서도 윤리적 부당성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조작들은 인간존재의 개별적인 존엄성과 온전성, 주체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기 때문이다(가교 2275).

 

 

IV. 맺는 말

 

어떻게 법이 제정되어야 하는가? 하느님 의지에 반대되는 법도 효력을 갖는가? 한국사회는 과거에 하느님을 최종적이고 궁극적 규범으로 삼지 않는 법이 얼마나 인권을 유린하고, 백성을 정치도구화 하였는지를 뼈저리게 체험하였다. 따라서 올바른 법 제정(制定)과 준법(遵法), 사법(司法)을 위한 신학적인 토대와 기준을 제시하는 일이 절박하다고 생각한다. 신법(神法)은 보편타당하고 불변하는 기본법을 제시한다. 이 기본법을 구체적, 사회적, 역사적 상황에 적용시키는 일은 자연법의 영역에서는 사회 또는 국가가 맡고, 신적 실정법의 영역에서는 교회의 임무가 된다. 앞에서 기술한 대로 모든 국법 또는 사회법은 신법에서 구속력을 얻는다.

 

국법 또는 사회법은 이미 신적(神的) 계명에 포함되어있는 것을 강제규정하여 형벌을 부과하는 형사처벌법과 그 형벌규정을 제정하고, 사유재산제도와 그 특별법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신법에 모순(矛盾)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법률은 신법에 따라 공동선에 기여하며, 물리적, 관례적으로 준수가 가능해야 하며, 효력을 내기 위해 공포되어야 한다. 이런 조건을 갖춘 정당한 법은 준법자의 양심을 구속하고 의무를 지운다.

 

한국사회를 주도하는 정치인들의 권력유지의 수단과 방편, 안이하고 값싼 '사회방위'의식 등이 맞물려 사형제도의 폐해가 나타나고 있다. 이제 우리사회는 과거의 악습과 구태에서 벗어나 인간생명의 존엄성과 평화롭고 안정된 복지사회의 실현을 위해 사형제도의 폐지 내지 탄력적 운영, 뇌사와 장기이식에 관한 관련법규의 미비점 보완, 안락사 입법방지, 낙태를 용이하게 조장하는 법규의 폐지와 낙태범죄의 엄중한 처벌, 생명공학과 관련한 건전한 연구와 실험에 대한 입법 등에 국민적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건전한 윤리관과 가치관의 확립은 우리 사회에서 절실히 요청되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논평을 마치면서 발표자께 질문하고 싶은 것이 있다. 고견을 들었으면 한다. 우리사회에서 인간생명과 관련된 법을 여러 가지 제정해야 하는데, 어떤 과정을 거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가? 한국사회에서 인간생명과 관련하여 지켜지지 않는 법이 많습니다. 국민의 준법의식 개혁과 사법의 효율적인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생명존중의 고양을 위해서 가톨릭 교회가 우선적으로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발표자에게 하느님의 뜻에 부합하는 생명존중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와 활동을 기대한다. 오늘 발제에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용훈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윤리신학) /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홈페이지에서]



359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