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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사회] 가톨릭 사회문헌에 나타난 지상 재화의 사회적 기능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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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7 ㅣ No.415

가톨릭 사회문헌에 나타난 지상 재화의 사회적 기능에 관한 연구

 

 

머리글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상의 재화에 대해 갖는 일반적인 시각은 다음의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곧 사유재산권은 천부적인 권리로서 당연히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과 또 한편으로는 이 지상의 재화가 갖는 목적은 인간에게 봉사하는 것이며, 따라서 이 봉사는 각각의 개인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지상의 모든 사람을 위한 봉사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인간이 재산을 사적으로 소유할 권리가 있다고 확신해 왔으며, 특히 19세기 산업화와 함께 밀어닥친 사회주의 사상에서 주장하는 사유재산 폐지 주장에 맞서 그 이후의 여러 사회 문헌들은 재화의 사적 소유권과 그 자연적 권리를 사회 질서의 불가결한 요소로 강조하고 가르쳐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가르치는 지상 재화의 사적 소유의 문제는 그것이 비록 자연법적 기초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성서가 이 문제에 대해서 일관된 사상을 유지하고 있는 재화의 공정한 분배와 관련된 보편적 목적성이라는 가르침의 범주와 유리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재화의 사적 소유가 각 개인의 책임과 자기 실현, 나아가 창조적 발전을 이루는 중요한 수단이 되며, 또한 인간 각자에게 자립의 영역을 확보해 줄뿐만 아니라 개인의 자유를 보호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이는 반드시 개인과 사회의 필요들에 종속된다는 점도 사유재산이 지니는 중요한 특성 중에 하나인 것이다. 이런 면에서 재화의 사적 소유는 그것이 비록 자연법적인 성격을 가지는 개인의 권리라 하더라도 절대적 권리라기보다는 개인과 공동체의 필요에 따라 한계를 갖는 권리라는 것도 함께 인식되어져야 한다. 

 

지상 재화에 대한 이러한 기본적 인식을 기초로 하여 본고에서는 이 지상의 물질 재화가 지니는 사회적 기능에 대해 가톨릭 교회의 사회 문헌들은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그 내용의 전개에 있어서는 우선 이 지상의 재화가 모든 이가 함께 발전하는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원리의 기초에 대해 설명하고, 그 다음으로 재화가 그 사회적 기능을 다하기 위한 의무로서의 애덕과 정의의 의무에 대해서, 마지막으로는 그러한 사회적 기능에 충실하기 위해 어떠한 방법의 공적 도움을 주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언급할 것이다. 

 

 

1. 사회적 기능의 기초 원리 

 

가톨릭 교회의 사회 문헌들 여러 곳에서는 사유 재산이 지니는 사회적 기능의 원리에 대해서 아주 폭넓게 언급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가톨릭 교회의 사회 문헌들이 언급하는 여러 문장들 중에서 특별히 기억할 문장을 하나 소개한다: "인간 사회의 새로운 여건 하에서 불행히도 그릇된 사상이 머리를 들었다. 경제 발전의 근본 동기는 이윤이고, 경제의 최고 법칙은 자유 경쟁이며, 생산 수단의 사유권은 절대적인 권리로서 사회적인 한계도 의무도 없다는 주장이다. 이런 무제한의 자유주의는 이미 비오 11세께서 직접 비난한 것처럼 '금융상의 국제주의 또는 국제적 제국주의'([사십주년] 42항)를 낳았으며 폭군 같은 독점 상태에로 길을 닦아놓았다. 이같은 재화의 악용은 아무리 비난받아도 넉넉하지 못하다. 다시 한번 엄숙히 지적하는 바이지만 경제라는 것은 오로지 인간에게 봉사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 2차 바티칸공의회의 [사목헌장]은 이 문제에 대해 더 정확한 답을 제공해 주고 있다: "사유재산 자체는 본질상 사회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사회적 성격은 재화의 공동 목적 법칙에 바탕을 두었으므로 이를 무시하면 재산 소유는 가끔 탐욕과 중대한 혼란의 계기가 되며 소유권 자체를 위태롭게 하는 공박자들에게 구실을 제공하게 된다." 

 

사회 문헌들의 이러한 언급을 통해서 볼 때 재화의 사회적 기능에 관한 교의적 기초는 언제나 다음의 3가지 측면이 강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1. 모든 이를 위한 재화 

 

이 문제와 관련하여 파반(Pietro Pavan) 추기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은 세상 모든 것의 정점이며, 바로 이러한 사실에서부터 경제적 재화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생존과 생계 부양이 일차적인 목적이 된다. 즉 온갖 사회적 및 민족적 차이와는 별개로 일차적으로 인간의 생계 문제가 직접적인 목적이 되는 것이다. 경제적 재화에 대한 이러한 본질적 특성은 재화와 인간 사이에 더 심오한 관계를 형성시킨다. 이 관계란 경제적 재화와 관련된 질서를 통해서 곧 인간들 사이에, 더 나아가서는 국가들 간에 제도를 만들 수 있는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 특별히 경제 분야에서 국가의 완전한 조절 기능까지도 포함하는 관계이다." 

 

파반 추기경이 언급하는 제도의 기초에 바로 재화의 보편적 목적성이라는 재화의 사회적 특성이 자리잡는다. 곧 재화의 사용은 온전히 사적 사용에만 머물러서는 안되며, 이 지상의 재화는 모든 이를 위한 재화이어야 한다는 재화의 본성적 특성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비록 사적 소유의 재화라 하더라도 그 재화는 소유한 사람 각자의 능력대로 모든 이를 향해 개방되어야 하며, 특히 개인이나 국가 사이에서도 도움과 원조라는 형태로 서로가 발전할 수 있도록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1.2. 인간을 완성으로 이끄는 재화 

 

인간은 본성적으로 사회적 존재이다. 인간은 그 자체로 매우 복합적인 존재이긴 하지만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사회에서 살면서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을 보호하면서 살아간다. 또한 인간은 사회 안에서 다른 사람과 관계를 형성하며 봉사하기도 하며, 또 삶 자체의 본질적인 필요에 따라 협력하며 살아가는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 인격의 성취를 위해 요구되는 경제적 재화는 반드시 자연법의 요청을 따라야 하는데, 곧 사회의 요구와 관심 그리고 공동 재화라는 톱니바퀴에 반드시 맞물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 인격의 성취라든가 사회의 요구와 관심 등은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매우 다양하고도 긴밀한 관계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홀로 존재하는 존재가 아닌 것처럼 물질 재화도 한 사람의 개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사목헌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누구나 이 재화를 사용함에 있어서 합법적으로 소유하는 외적 사물을 사유물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공유물로도 여겨야 한다. 즉, 자신에게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유익을 줄 수 있도록 사용하라는 뜻이다." 

 

1.3. 소유권과 공동선 

 

재화 소유권의 궁극 목적은 공동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유 재산은 그 자체의 목적으로 보아서라도 일종의 사회적 의무를 지닌다. 인간 생활의 질서를 통해서 우리가 주목할만한 것은 개인적이고도 사사로운 질서가 공적인 질서를 형성하고 또 확립시켜 나간다는 것이다. 곧 개인의 선이 가정의 선, 사회의 선, 나아가 모든 이의 선으로 확장되어 나가는 것이며, 여기서 우리는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재화는 결국은 이 지상의 모든 재화가 지니는 재화의 보편적 목적성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을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재화의 소유권에 대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언급할 수 있겠다. 곧 사유재산권은 재화의 사회적 및 보편적 목적성을 더 확실하게 보증하고 또 강화한다는 것이다. 만일 사유재산이 사회의 선을 위해 장애가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인간이 가지는 권리가 될 수 없을 것이며, 오히려 그것은 재화의 남용이 될 것이다. 

 

바오로 6세 교황은 회칙 [민족들의 발전]에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목헌장]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하느님께서는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모든 사람과 모든 민족이 이용하도록 창조하셨다. 따라서 창조된 재화는 사랑을 동반하는 정의에 입각하여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게 제공되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물질 재화의 사회적 기능을 표현하는 다음의 문장을 하나 만들어 볼 수 있을 것이다: "네 것은 네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적으로 네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여기서 '전적으로 네 것은 아니다'라는 말에 주의해야 한다. '네 것이다'라는 말은 우선적으로 '너'를 위한 봉사에 맡겨져야 한다는 의미이지만 '전적으로 네 것은 아니라'라는 문장의 의미는 주위의 형제적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내 스스로를 조화시켜 나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2. 애덕의 의무 

 

사유재산이 지니고 있는 사회적 기능은 정의의 실천을 통하여 실현될 수 있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애덕의 실천으로써 완성에 이르게 된다. 정의와 애덕이라고 하는 이 두 가지 사회적 덕목은 비록 실정법의 지배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 삶의 현실적 번영과 복지를 위해서는 반드시 요구되는 덕목이다. 정의는 각자에게 속해 있는 것을 바로 그 사람에게 되돌려 주는 덕이며, 애덕은 단순히 '자선'의 의미로 이해되기보다는 광의적 의미에서 인간적 사랑과 연대로 드러나는 가장 고귀한 그 어떤 것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덕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나는 우리들의 일치에서 생겨나는 심오하고도 거룩하고, 생기가 넘치는 덕목이 곧 애덕인 것이다. 

 

이 두 가지 덕목은 본성적으로 동일한 뿌리를 가지고 있다. 첫째, 우리 인간은 서로가 구분된다. 그리고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물질 재화도 마찬가지로 서로의 것으로 구분된다. 곧 '내 것'과 '네 것'으로의 구분이다. 둘째, 우리 인간은 서로가 구분되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동일한 본성을 지니고 있는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가정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 일치되어 있으며, 여기서 사랑은 이러한 일치와 유대를 견고히 하고, 조정하며 또한 거룩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2.1. 레오 13세의 [새로운 사태] 

 

레오 13세의 회칙 [새로운 사태]는 물질 재화가 지니는 사회적 기능으로서의 애덕의 의무에 대해 성 토마스의 가르침을 기초로 하여 매우 확고한 가르침을 제공해 준다. [새로운 사태]는 먼저 물질 재화의 사회적 기능으로서의 애덕이 어떤 원리에 기초하고 있는가를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재화의 사용에 대한 가르침의 바탕은 재산의 부당한 소유와 정당한 사용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원칙에 있다... 사유 재산권은 인간의 천부적인 권리이며, 또한 이 권리의 행사는 특별히 사회 생활에 있어서 합법적일 뿐 아니라 절대 필요한 것이다. 성 토마스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자기 재산을 소유하는 것은 인간의 생활에 정당하고, 나아가 필수적이다.'" 레오 13세의 이러한 언급은 재화가 지니는 자연법적 측면을 강화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레오 13세는 또한 회칙 [새로운 사태]에서 재화의 사용에 대한 기준을 다음의 문장으로 설명한다: "재화의 사용이 어떠해야 하느냐고 질문을 받는다면, 교회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한다. '인간은 물질적 대화를 자신의 것으로뿐 아니라, 공동의 것으로 가져야 한다." "물론 아무도 자기 자신과 자기 가족에게 꼭 필요한 것까지 남들에게 베풀어야 할 의무를 진 사람은 없다. 더욱이 자기 신분에 알맞은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까지 내놓아야 할 의무는 없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자기의 처지보다 못하게 살아야 할 의무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 생활에 필수적인 것과 신분에 필요한 것 이외의 나머지를 궁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은 마땅한 의무이다. '그릇 속에 담긴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새로운 사태]가 물적 재화의 사용의 기본 정신으로 강조하는 것은 물적 재화가 비록 사적인 소유라 하더라도 그것의 사용이 공동의 이익과 유리되어서는 안된다는 점과 주위의 궁핍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사용할 의무가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사태]가 강조하는 물질 재화의 사회적 기능으로서의 애덕의 의무가 왜 중요한가는 다음의 문장이 우리에게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극도의 궁핍한 경우를 제외하고 이러한 의무들은 분명히 정의에 입각한 의무가 아니고 그리스도교 애덕의 의무이므로 법률로 그 실천을 강요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인간의 법과 판단에 그리스도의 법과 판단이 선행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너그러니 베풀어주는 덕행에 관하여 여러 가지 형태로 말씀하시면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사도 20,35)고 가르치시고 또 궁핍한 자들에게 자비를 베푼 것이나 거절한 것은 곧 당신 자신에게 선행을 한 것이나 거절한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회칙 [새로운 사태]는 또한 재화의 소유권이 지니는 본질적 측면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외적이고 물질적인 재화이든 정신적인 재화이든 하느님께로부터 풍성한 은혜를 받은 사람은 자기의 인격 완성에 그것을 활용하는 동시에 하느님 섭리의 봉사자로서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그것을 활용하도록 그 은혜를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재능이 있는 사람은 그 재능을 숨기지 말아야 하고 재물을 많이 가진 사람은 자선을 베푸는 데에 너무 인색하지 말아야 하고 기술을 가진 사람은 이웃 사람의 편의와 이익을 위하여 그것을 나누어야 한다.'(성 그레고리오 대교황, Evang. Hom X, 7)"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이나 건전한 이성에 따르면 물질 재화란 결코 쾌락이나 지배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되며, 오히려 일종의 사회적 소명이고 책임이며 나아가 사회를 위한 봉사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2.2. 회칙 [어머니요 스승] 

 

요한 23세 교황의 회칙 [어머니요 스승]은 물질 재화가 지니는 애덕의 실천적 가치를 크게 강조한다. 병원 봉사,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육, 자선 행위 등과 같이 과거에는 사적 애덕의 차원에 맡겨진 여러 형태의 봉사들이 오늘날에는 개인들에게 일종의 의무와도 같이 인식되면서 사회에서는 이미 다양하게 실천되고 있다. 그러나 순수한 의미에서의 애덕의 영역은 항상 남아 있다. 회칙 [어머니요 스승]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비록 현대에는 국가와 공공 기관이 자기에게 맡겨진 역할을 신장시키고 더욱더 확대해 가고 있기는 하지만,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사적 소유의 사회적 기능이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그 사회적 책임은 소유의 권리 그 자체에서 가치를 얻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가의 여러 가지 정책적인 배려가 미치지 않고 전혀 고려할 수도 없는, 드러나지는 않지만 절박한 빈곤, 그러한 수많은 비극적 참상들이 언제나 존재하리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여기에 개인의 인도적인 행위와 그리스도교적 사랑을 펼쳐나갈 분야가 언제나 열려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신적인 선익을 고취하기 위해서는 개인이나 민간 단체가 추진하는 활동이 국가 권력으로 하는 일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3. 정의의 의무 

 

물질 재화가 지니는 정의의 의무는 이미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다음의 원리에 기초를 둔다: "물질 재화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생존과 생계 부양을 위한 것이다." 경제적 재화에 대한 원리니 가르침이니 하는 수많은 설명이 있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원리는 '모든 땅은 모든 인간을 위한 것이다'라는 원리이다. 곧 경제적 재화의 일차적이고도 절대적인 목표는 인간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일이며, 그 외의 다른 목표들은 이 일차적 목표에 종속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질서를 혼동하거나 부차적 목표들이 일차적 목표 실천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이하에서는 이러한 원리를 중심으로 우선 '필요한 경우'를 위한 해결책과 그 다음으로 재화의 사용을 위한 일반 지침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3.1. 필요성 

 

만일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려야만 하는 상황에 처할 때 그런 상황에서 물질 재화를 사용해야 할 의무를 가진 사람은 누구라도 그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의 요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 만일 생명의 위험에 처해 있는 사람이 생명을 구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재화를 취했다고 해도 그것이 불의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오히려 생명을 구할 의무를 잘 수행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생명을 구해야 할 의무는 그 어떤 의무보다도 더 우선되어야 하는 의무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 있어서 그 사람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화에 대한 권리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할 권리와 대치되면서 생명에 대한 권리가 더 상위의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이다. 곧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물질 재화의 소유권보다 생명권이 더 우선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물질 재화에 대한 권리는 생명권과는 차이가 있으면서 엄격히 말해서는 생명권에 종속되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지상 재화에 대한 정의의 의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국제 관계에서도 요청된다. 바오로 6세 교황은 재화의 불공정한 분배가 가져올 위험에 대해 언급하면서 재화 분배에 대한 국제 관계에 있어서의 정의 구현이 온 민족의 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지적한다: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재화의 재분배에 있어서 더 완전한 정의를 구현해야 하겠다. 국가간의 통상 관계에 있어서도 공동 이익을 위한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서 우선 힘의 관계를 극복해야 하겠다. 힘에 근거를 둔 상호 관계는 때에 따라서 그 입장이 서로 바뀜으로써 가끔 상호 대화를 더욱 쉽게 만들 수 있을지라도 그것으로써 항구하고 진정한 정의를 보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생산으 국제적 분포, 통상 구조, 수익의 감독, 화폐 체계 등에 있어서 인류의 연대성을 감안하여 국제 관계를 재검토할 용기를 가져야 하겠다. 또한 부유 국가의 재화 증가를 문제 삼고, 사람들의 정신을 쇄신하여 국제적 의무를 선행시키도록 하고, 여러 국제 조직을 더욱 효과적으로 재정비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3.2. 일반 지침 

 

물질 재화가 지니는 정의의 의무가 지켜져야 하는 경우는 모든 윤리학자들이 인정하는 한정된 경우이다. 곧 정의의 의무만 강조되면서 재화가 지니는 또다른 기능으로서의 다른 측면들을 소홀히 해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재화가 지니는 권리는 단지 생명권에만 종속되고, 또한 다양한 여러 가치들 사이에서 가치 질서를 존중하는 것은 언제나 필요한 것인가?" "부로써 즐거움을 추구할 의무보다는 건강을 돌볼 의무가 더 가치가 없는 것인가?" "그러므로 만일 가난한 사람을 돌볼 의무는 삶의 즐거움을 추구하려는 것과는 상반되는 것인가?" "따라서 다른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수많은 의무들이 소홀히 되고 또 망각됨으로써 그들이 부를 사용하는 여러 방법들이 부당하다고 판단되어서는 안되는 것인가?" "자기 자신과 가정을 돌볼 수 있는 가능성, 자유를 누리며 살고, 비록 풍족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의 휴식을 가지면서 생활하는 것, 그리고 비록 작더라도 자신과 가정을 위해 집을 하나 장만하는 것 등은 사유재산권에 종속되어서는 안되는 것인가?"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의무는 부유한 사람들이 전혀 예외적인 방법으로 부를 축적함으로써 자주 잊혀지지는 않는가?" 

 

3.3. 의식구조 

 

사회는 항상 자연법을 기초로 한 규범들에 대해 명백한 인식을 가지면서 발전한다. 그러므로 좀더 발전된 국가의 법률들은 인간 인격이 요구하는 모든 정당한 것들을 지향하면서 형성된다. 그러한 법률이 발전되는 과정에는 반드시 확실한 건강, 집, 교육, 휴가, 여가 등을 위한 배려가 포함된다. 실제적으로 이러한 발전은 국가, 정당, 노동조합, 모든 사회사업가 그리고 경제 영역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까지도 묶어주는 정치적 및 경제적 선택과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사회 질서 안에 자리 잡는 과정은 그 사회의 전통이나 환경 그리고 시민들의 의식 구조가 함께 따라 가야만 하는 과정을 동반하기 때문에 자연히 더딜 수밖에 없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러한 사회적 의식의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교회 가르침의 일부요 가장 오래된 관행이, 교회는 - 교회는 물론이요 그 성직자들과 그 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 그 소명으로 말미암아 가깝든 멀든 고통받는 사람들의 비참을 덜어주어야 하며, 단순히 교회의 '남는 것'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요긴한 것'을 갖고서도 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곤궁한 사람들의 처지에 임하여, 하느님께 드리는 경신례를 위해서 피상적인 교회의 장식이라든가 값비싼 비품을 마련한다는 이유로, 그런 사람들을 못본 체 할 수가 없다. 그와는 정반대로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 그리고 지붕이 없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마련하기 위하여 이런 재산을 파는 일이 의무적이 될 수도 있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가치의 서열', 소유의 권리에 관해서 '갖는 것'과 '사람됨' 사이에서 가치의 위계이다. 더욱이나 소수의 '갖는 것'이 다른 많은 인간들의 '사람됨'을 손상시킬 경우에는 말할 나위도 없다." 

 

 

4. 국가 개입 

 

경제 활동을 통해 드러나는 물질 재화의 사회적 기능을 통제하기 위한 국가의 개입은 언제나 연구의 대상이 되어 왔으며, 다양한 형태의 토론 주제가 되기도 하였다. 단순히 원리의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그 재화가 어떻게 씌여지고 또 어떻게 확대되어 적용되며 나아가 어떠한 방법으로 통제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폭넓게 연구되어 왔다. 사회적 기능을 통제하는 방법에 있어서의 다양한 형태는 정치 형태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였다. 순수한 형태의 자유주의는 모든 종류의 공적 개입을 거부하는가 하면 반면에 극단적인 집산주의는 모든 사적 개입을 거부한다. 

 

순수한 형태의 자유주의는 경쟁이 경제적 재화의 생산 흐름을 결정한다는 원리에서부터 출발한다. 따라서 비능률적인 생산을 배척하고 당연히 공동선을 기준으로 하여 더 유익하고 더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늘려서 생산하려는 특성을 갖는다. 이런 의미에서 자유주의는 1) 사유재산을 매우 소중한 것으로 여기며, 사유재산을 통해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진다는 시각을 기본으로 하며, 2) 모든 경제 활동을 자유롭게 맡겨두며, 3) 더 약한 계층에 대해서도 어떠한 형태의 개입까지도 거부하면서 노동의 보상인 임금에 대해서는 자유로운 계약에 맡겨두는 입장을 취한다. 

 

반면에 사유 재산을 거부하고 일체의 사적인 개입도 금지하는 집산주의(혹은 공산주의)에서는 국가가 모든 재화의 직접적인 소유주가 되며, 모든 경제 활동의 사용자가 된다. 반면 시민들은 피고용주로서 자신들의 고용주인 국가에 종속된다. 

 

적절한 국가 개입의 형태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우기도 한다: 통제 경제, 시장 경제, 기업 경제, 자유 경제, 민주주의적 자본주의, 계획 경제 등. 요한 23세의 회칙 [어머니요 스승]은 이러한 국가 개입에 대한 원리들에 대해 언급한다. 

 

4.1. 원리들 

 

요한 23세 교황은 국가 개입의 원칙적인 측면을 다음의 세 가지로 언급한다. 

 

첫째, 공권력은 사회 발전을 위한 기능으로서 모든 시민에게 도움이 되도록 일정한 방식으로 생산성의 증대, 시민 생활 수준의 향상을 목표로 행사되어야 한다. 

 

둘째, 공권력은 보조성의 원리에 기초를 두어야 하며, 반드시 다음의 몇 가지 특성을 포함해야만 한다. 

 

1) 방향 : 전망을 열어주고 어떤 일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일. 

2) 촉진 : 세금 면제라든가 다른 도움들을 통해 창의력 발휘에 도움을 주는 일. 

3) 다양한 생산 방법이나 영역 그리고 지역까지도 서로 연결해 주는 일. 그럼으로써 국가 내의 여러 지역이나 민족들 사이에 존재하는 불균형을 감소하고 예상되는 혼란을 예방할 수 있다. 

 

셋째, 공권력의 개입은 경제 조건들을 더욱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어 주기 위해 긴급하고도 광범위한 영역에서 요청된다. 그렇지만 공권력이 결코 개인의 창의력의 영역을 축소시켜서는 안되며 오히려 더 확실히 보장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회칙 [어머니요 스승]이 잘 언급하고 있다: "경제에서 국민 개인과 국가 지도자들이 공동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결코 질서 있고 번영하는 사회를 이룩할 수 없다는 것은 바로 역사의 과정 그 자체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즉, 서로 화합하는 노력으로 경제 활동이 이루어져야 하며, 그 양편의 노력은 변화하는 시대 상황에서 각기 공동선의 요구에 최대한 부응하여야 한다." 

 

4.2. 국가 개입의 분야 

 

가. 생산 보장 : 국가는 시민들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미리 알고 제공할 권리 및 의무가 있다. 따라서 국가는 땅을 개발하고 경작할 의무도 있으며, 그러한 의무를 수행할 능력이 없거나 원치 않음으로써 다른 사람의 노동을 방해할 경우가 발생한다면 토지의 부당한 남용으로 간주하여 어떤 제한 조치까지도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 가격 통제 : 생산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유통에 있어서도 공동선을 위해 건전한 교환 규칙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규칙에서부터 생산성이 증가되고, 또 화폐 유통이 용이해질 뿐 아니라 화폐 가치도 안정된다.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사적 혹은 집단적인 독점 전매는 엄격히 통제, 금지되어야 한다. 이는 곧 공동선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 

 

다. 가난한 계층의 보호 : 사실상 인류가 경험해온 경제 역사는 돈의 횡포로 인한 슬픈 경험으로 가득 차 있다. 특히 돈이 약하고 힘없는 사람을 착취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고, 그럼으로써 그들을 노예처럼 부릴 수 있는 일종의 힘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프랑스 혁명 후에 경제적 자유주의는 특별히 경제 영역에서 국가의 불개입 원칙을 선언했고, 완전히 자기 방어 능력이 없는 약한 사람들을 외면하면서 독재 권력자의 길을 터놓았다고도 말할 수 있다. 

 

요한 23세 교황은 경제 영역에서의 이러한 현실을 다음과 같이 고발한다: "실제 경험으로 보아, 개인의 창의력이 부족한 나라에서 독재 권력이 지배하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경제에 대한 국가의 의무 이행 활동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거나 잘못 이루어지는 곳에서 그 국가는 왜곡된 구조에서 불치의 혼란으로 빠져들게 되고, 파렴치한 강자들은 자기네 이익을 위하여 부당하게도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게 된다." 

 

4.3. 국가 개입의 방법 

 

국가 개입의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다. 

 

가. 국가가 각 개인들이 가진 재화를 취하여 국가가 그 주인이 되는 방법으로서 이러한 방법의 과정은 다음과 같은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다. 

 

1) 국유화 : 국가의 영역에서 생산된 재화를 국가가 직접 관리, 운영하는 것. 

2) 사회화 : 개인이 관리, 운영하던 것을 사회의 관리, 운영으로 돌리는 것. 

3) 징수 : 국가가 공적 사용을 위해 합법적인 방법으로 개인의 재화를 거두어들이는 것. 

4) 법인 : 국가가 대지주나 대부호로부터 재화를 거두어 일정 목적을 위해 고유한 방법으로 운영하는 것. 

5) 압수 : 국가가 어떤 보상도 없이, 물론 법의 정확한 집행 절차에 따라 재화를 거두어들이는 것. 

 

이러한 방법들은 다음의 두 가지 조건에 부합될 때 합법적이다. 첫째로 사유재산권에 대해 국가가 특별히 개입해야 할 정도로 공동선에 명백하게 관련되는 경우와 둘째로는 일반적으로 합법적인 재화에 대해 적합한 보상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조건이다. 

 

나. 국가는 국가 내의 공적 비용을 위해 각 개인이나 단체에 세금을 부과한다. 세금과 관련하여 다음의 몇 가지 점에 충분한 인식이 필요하다. 

 

1) 세금은 국가가 국민을 위한 봉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고, 또 정당한 것이다. 도로나 학교, 병원, 주택, 시민 생활의 보호, 사회 봉사를 위한 모든 영역은 세금이 기초가 된다. 

2) 특히 현대에는 사회 봉사의 영역이 매우 다양화되면서 세금에 대한 비중은 점점 더 커진다. 

3) 세금의 징수는 각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하여 개인과 가정의 정당한 필요가 고려되어야 하며, 또한 소득에 따라 균형있게 집행되어야 한다. 

4) 세금은 재산을 소유한 사람이나 소득이 있는 시민들이 양심적으로 내야만 하는 하나의 의무이며, 법과 진리에 따라 정확하게 세금을 신고하고 또 내야만 한다. 또한 수입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모든 봉급 생활자처럼 정확하게 세금을 내는 모든 납세자를 보호하기 위한 공권력의 노력은 매우 중대한 의무이다. 

 

다. 국가는 경제 활동을 통제하며 특별히 생산 관계의 구조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특별히 국가는 고용주와 피고용인, 관리자와 노동자 관계라든가 생산을 위한 노동의 조건, 규정 등에 대한 책임이 있다. 이는 오늘날 매우 광범위한 영역으로 확대되어 가고 있으며, 주로 집단 계약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노동 시간, 최소 임금, 가족 수당, 연금과 노후 대책 규정, 산업 재해 보험 등의 문제에 국가가 직간접으로 관련을 갖게 되는 것이다. 

 

 

마치는 글 

 

재화와 관련하여 오늘날 현대의 두드러진 현상은 거대한 물질 재화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한계 영역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국가가 따로 없고 세계가 그야말로 하나의 시장이 되어 버린 것이다. 오늘날의 이러한 현상은 다음의 두 가지 측면을 현저하게 부각시키고 있는데 첫째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거대한 자본이 집중되는 현상이고, 둘째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자본을 빌려서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그러한 재화를 과연 사유 재산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사회가 과연 그러한 자본을 단순히 개인의 사유재산으로 취급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렇지 않다'로 드러난다. 왜냐하면 비록 개인의 사유 재산이라 하더라도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재화의 기능상 사회적인 특성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실상 사유재산권은 각 개인이 가지는 기본권으로서의 자유와도 같이 사회 질서 안에서 그 어느 것과도 대치될 수 없는 고유한 권리이다. 그러나 인간은 반드시 과도한 부를 필요로 하는 존재는 아닐 것이다. 인간 자신이 가지는 자유는 본성적으로 다른 사람과 함께 누리는 자유이며 따라서 반드시 한계가 따르는 것처럼 재화의 사용에 있어서도 비록 사유재산이라 하더라도 그 사용은 타인과의 관계를 전혀 무시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유재산의 사회적 측면이 드러난다. 곧 사유재산이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고유한 필요성에 의해 사용되지만 그 필요성에 종속되는 여러 관계로 인하여 그 사용의 한계가 설정되는 것이며, 이 한계는 사회적 상황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갖게 된다. 비록 개인의 소유라 하더라도 그 소유가 모든 사람의 이익에 직접적으로 관련되기 때문에 소유하는 사람은 더 큰 공동체를 겨냥하는 분배를 통해 정의를 실천할 책임이 부여되는 것이다. 

 

우리는 본고를 통해서 지상 재화가 지니는 사회적 기능의 측면을 살펴보았다. 당연히 사유재산권이 개인의 기본권리로 보호되어야 하지만 이 재화는 개인의 필요뿐만 아니라 동시에 사회의 필요에도 종속된다는 것과 동시에 개인과 공동체의 필요에 따라 한계를 갖는 권리라는 점도 간과될 수 없다는 점이 본고에서 다룬 지상 재화의 사회적 기능의 기본 인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사유재산권의 문제에 대한 정확한 시각을 갖기를 촉구하면서 사유재산권의 특성으로서의 사회적 특성, 사회적 책임감을 특별히 강조하는데 이는 곧 사유재산권 역시 그 기초로서의 재화의 보편적 목적성이라는 특성을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유효하고 필요하지만... 재산의 사유는 사회적 저당권이 설정되어 있는 것이며, 이 말은 사유 재산이 본질적으로 사회적 기능을 갖는 것이며, 재화가 만인을 위한 것이라는 원리에 기반을 두고서, 또 그 원리에 의해서 정당화되는 것이다." 

 

이 지상 재화의 기능이 보편적 목적성이라는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고 하지만 오늘날 이 지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난의 상황에 살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물질적인 재화의 부족뿐 아니라 인간 존엄성의 차원에서도 소외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이러한 현상은 이 지상 재화가 사회적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데서 따라오는 한 결과일 것이다. 만일 한 사회가 불평등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면 그 사회에서 인간적 삶에 대한 억압은 좀더 약한 사람들의 희생을 요구하게 되고, 경제 활동에 있어서도 병자라든가 약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은 결국 제외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이미 긴 세월동안 끊임없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함께 그들과 관련된 문제들에 주목해왔고, 그들을 위한 대변자가 되는 일에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 

 

문제는 결국 재화의 분배 문제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재화의 분배에서 제외된 채로 살고 있고, 이러한 삶이 그들을 가난과 소외, 비인간화의 삶으로 몰고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그들의 비인간적인 비참한 처지에서 벗어나야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라고 할 때 결국 본질적인 의미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을 위한 요청은 정당한 것이고, 이러한 요청은 우선적으로 재화의 정의로운 분배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재화의 정의로운 분배의 기초가 정의와 애덕이다. 인간적 사랑과 연대로 드러나는 정의와 애덕의 정신이 지상 재화의 본래의 기능을 회복시키게 될 것이며, 인간 각 개인을 인간다운 삶으로 이끌면서 개인과 사회를 함께 완성으로 이끌게 될 것이다. 정의의 의미가 각자에게 속해 있는 것을 바로 그 사람에게 돌려주는 덕이라고 한다면 진심으로 타인을 위하는 사랑의 정신으로 떠받쳐지는 정의의 정신만이 이 지상 재화의 본래의 기능으로서의 '만민을 위한 재화'의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이끌어줄 것이다.

 

[가톨릭 신학과 사상, 제29호(1999년 가을), 이동익(가톨릭대학교 교수, 신부, 윤리신학) / 이동익 신부님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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