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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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소외 없는 세계화, 연대의 세계화를 위한 조건과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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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7 ㅣ No.409

소외 없는 세계화, 연대의 세계화를 위한 조건과 실천

 

 

1. 머리말

 

오늘날 세계화(globalization)는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인간의 인식과 삶에 대한 가장 큰 변화의 테마로 자리잡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이론적 차원의 담론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의 문제이다. 경제적 국경이 허물어지고 지역주의(regionalism)와 다자주의(multilateralism)가 공존하는 가운데 국가의 입지는 현저히 약화되고 초국적 기업(超國籍企業)들의 거대한 자본력이 국가의 경제력을 앞지르고 있다.1) 최근 세계 100대 경제 주체들의 순서 매김에서 절반 이상은 국가가 아닌 기업들이 차지한다.

 

세계화가 진전되면 될수록 세계 경제는 실물 중심의 생산적이고 자본 축적적인 포지티브섬 게임(positive-sum game) 단계에서 금융 주도적 제로섬 게임(zero-sum game) 단계로 바뀌게 된다. 이러한 단계에서 막대한 단기성 투기 자본이 세계 시장을 교란시키게 되고, 제로섬 게임에 고유한 상호 파괴 과정이 표출되면서 국가 주도의 발전 기반은 더욱 약해진다. 지금 세계는 이미 이 단계에 와 있다. 

 

세계화는 국가간의 차별성은 약화시키지만, 한편으로는 부의 편재를 가속화하여 빈부의 격차를 심화시키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인류 역사상 지금처럼 부와 빈곤이 공존하는 시대는 없었다. 제로섬 게임의 사회에서 상대적 빈부의 불평등이 극도로 심화되면 남북 문제 곧 후진국과 선진국 간의 빈부 격차 문제는 폭력적으로 변할 위험이 있다. 그리고 세계화가 실물 생산과 거리가 먼 금융 중심에 치우치게 되면 절대적 빈곤 상태는 더욱 악화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세계화는 빈곤의 확대 재생산 과정으로 전락될 가능성이 높다. 경제적 국경의 개념이 사라지고 국가 주도의 발전 기반이 약해지는 세계화의 과정에서 국제적 빈곤 문제를 국가적 테두리 안에서 해결하기가 더욱 어렵게 되었다. 따라서 이 문제는 과거보다 더욱더 세계적 차원의 사고와 연대의 시각에서 접근하기를 요구한다. 더욱이 세계화가 빈곤의 확대 재생산 과정으로 전락할 위험마저 안고 있다면 세계 보편주의의 한가운데 서 있는 가톨릭 교회는 소외 없는 세계화와 연대의 세계화를 위해 진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회칙2)과 UN 총회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현대 세계 안에서 자행되고 있는 인간에 대한 체계적 위협의 첫 번째 유형은 물질적 재화의 분배에서 일어나는 불의이며 이것은 반드시 극복되어야 하기 때문이다.3) 특히 하느님께서 명하신 희년(禧年 : 레위 25,8-55)은 빈부 격차를 최소화해야 할 때이다.4) 그러기에 2000년 대희년을 맞는 교회의 사명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2. 세계화의 경제적 의의와 진전

 

오늘날의 세계화는 현대 과학과 정보화 시대의 특징적 추세다. 컴퓨터의 대중화와 컴퓨터 통신의 발달은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만들었다. 그 위에 통신 비용의 대폭적인 하락은 세계적으로 거래 비용을 크게 낮추었을 뿐 아니라 교역 가능 상품화를 촉진시키고 있다.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세계 시장에 상품 정보를 내놓을 수 있고 원하는 상품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교역 가능 상품화의 대상은 재화와 용역뿐만 아니라 정보 그 자체도 포함된다. 그에 따라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세계화의 틀 안에서 행동하기에 이르렀다. 생산자들은 세계 통신 체계를 이용하여 국경의 제약을 받지 않는 생산과 투자 채널을 구축하고 부품과 금융 조달의 효율성을 높인다. 소비자는 시내 전화 이용 요금만으로 인터넷을 이용하여 전세계의 모든 상품과 서비스에 관한 정보를 얻고 중간 무역상을 거치지 않고 직접 거래한다. 이러한 세계화된 경제 관계에서 빈곤층은 더욱 소외될 수밖에 없다. 

 

개념적으로 세계화와 혼동되는 것은 국제화(internationalization)이다. 경제사적 관점에서 국제화는 17,8세기에 이미 제국주의의 식민지 개척 시대에 시작되었다. 그 후에 세계 강대국들의 대외 진출, 교통 통신의 발달, 다국적 기업의 탄생 등으로 국제화는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 절정을 이루었다. 잇따른 전쟁과 경제적 민족주의의 대두로 국제화는 반전을 거듭하면서 20세기까지 이어져 왔다. 거기에 비해 세계화는 20세기 말에 동서 냉전의 갈등 구조가 종식되고 정보 통신 산업의 획기적 기술 혁신과 다국적 기업의 수와 역할의 증대로 지역간의 경제적 상호 의존성이 커지면서 시작되었다. 

 

특히 1995년에 관세와 비관세 장벽이 낮아지는 무역 자유화와 함께 상품 및 서비스의 생산과 유통, 그리고 투자의 자유화를 목표로 하는 세계 무역 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 체제의 출범으로 세계화는 가속화되었다. WTO의 포괄적 통상 자유화는 세계적으로 생산 요소의 이동과 상품 거래를 자유롭게 함으로써 생산, 판매, 제품 개발, 물류 등의 세계화를 촉진시키고 있다. 이와 같이, 과거 국경을 전제로 하여 나라와 나라 사이의 통상 관계로 전개되어 온 국제화는 경제적 국경(economic border)이 없는 세계화로 바뀌었다. 

 

따라서 경제적 세계화는 국경이 없는 세계 경제(borderless world economy)를 뜻한다. 국경의 개념이 사라지고 생산 요소의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되면 부존 자원이나 생산비의 차이는 경쟁력 결정의 요소가 되지 못한다. 이에 따라 국제 무역과 경쟁의 원리로서 정태적(static)으로 보아 온 경성(硬性, hardware) 자원에 따라 결정되는 비교 우위론(theory of comparative advantage)은 점차 빛을 잃고, 그 대신 동태적(dynamic) 관점에서 연성(軟性, software) 자원을 중심으로 결정되는 경쟁 우위론(theory of competitive advantage)이 대두하고 있다.5) 그것은 후자에 따른 부가 가치가 전자에 따른 부가 가치를 크게 능가하기 때문이다. 

 

과거 국제화가 강력한 경성의 물리적 힘을 바탕으로 한 제국주의적 산물이라면, 세계화는 선진국들이 연성의 지적 능력과 과학 기술력에 따른 정보화를 무기로 국민 국가의 경제적 국경을 해체하여 세계를 무대로 부를 창출하는 경제적 패권주의의 산물이다. 따라서 지적 능력과 과학 기술력이 약하고 정보화에 뒤쳐진 나라들은 부의 창출에서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또한 세계화이다. 

 

 

3. 소외 없는 연대의 세계화를 위한 조건

 

소외 없는 연대의 세계화는 가톨릭 교회가 이미 지난 100여 년 동안 사회 교리의 핵심적 가르침으로 삼아 온 연대성의 원리, 공동선의 원리 그리고 보조성의 원리에 따르는 세계적 차원의 경제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일차적으로 후진 지역의 가난 상태 해소와 경제 발전 기반의 형성을 위한 경제 원조와 공평한 세계 후생의 극대화를 보장하는 세계 통상 질서가 확립되어야 한다. 

 

소외 없는 연대의 세계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경제 원조의 조건은 교황 요한 23세의 회칙 [어머니요 스승]과 [지상의 평화]에 잘 제시되어 있다. 그것은 다음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피원조 지역의 문화적 가치 존중. 둘째, 원조 제공 국가의 정치적 또는 신식민주의적 이익 추구 배제. 셋째, 피원조 지역의 경제와 사회 발전에 기여. 넷째, 세계 공동체의 형성에 기여. 그리고 다섯째는 저개발 지역 국민들의 삶을 제도적으로 개선시키기 위한 교회의 역할이다.6) 

 

세계 통상 질서가 공평한 세계 후생의 극대화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확립되는지의 여부는 주요 국가들의 통상 정책으로 결정된다. 국제화나 세계화의 과정에서 국가들이 취할 수 있는 통상 정책의 두 기조는 보호주의 정책과 자유주의 정책이다. 세계적으로 다자간 자유주의 통상 관계가 보편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보호주의 정책을 채택하는 국가는 배타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 특히 교황 바오로 6세가 지적한 바와 같이, 1차 산품의 가격이 공산품의 가격 상승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7) 이러한 협상 가격차(鋏狀價格差) 때문에 공업화에 뒤진 국가들이 국내 경제 균형과 발전을 위한 수출 진흥은 결국 빈곤한 민족은 더욱 빈곤해지고 부유한 민족은 날로 부유해지는 결과로 나타난다.8) 공산품을 주로 수출하는 공업국들이 보호주의 정책을 취할 경우에 국가간의 빈부 격차는 더욱 커진다. 1930년대 세계 대공황의 주범은 극도의 자국 이기주의에 입각한 보호 무역주의였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려니와 1980년대 이후 선진국과 후진국 간의 부의 격차가 더욱 커지게 된 데는 선진국들의 신보호주의 통상 정책의 영향이 크다. 

 

이와 같이 보호주의 통상 정책에는 국가간의 이익과 손실이 뚜렷이 드러나는 ‘제로섬 게임’의 법칙이 작용한다. 제로섬 게임의 결과는 잃는 쪽에 소외감을 증폭시킨다. 지난 세기에 국제적 빈부 격차의 심화에서 비롯한 남북 문제는 이것을 잘 설명한다. 그러므로 소외 없는 세계화를 위한 조건은 모든 나라, 특히 선진국들이 보호주의 정책을 쓰지 않고 공정한 자유 무역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교황 바오로 6세는 자유 시장 가격의 불공평성 때문에 자유주의 통상 원칙만으로는 국제 관계의 조정이 불가능하다고 보았고,9) 자유 통상 원칙은 공업화된 국가들에만 유익하고 조건이 지나치게 다른 국가간에는 그렇지 않다고 선언하였다.10) 그러나 교황의 회칙이 자유주의 통상 원칙을 완전히 부정한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1인당 국민 소득이 100달러 미만이었던 한국과 같이, 무역을 통해 공업화에 성공한 나라도 있었지만 많은 국가들은 빈곤의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리고 WTO 체제 출범 이전의 자유주의 통상 원칙은 GATT 체제의 취약성과 보호주의 통상 정책으로 공평한 자유 무역의 실현에 크게 이바지하지 못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다자간 자유 무역의 실현을 위한 WTO 체제의 출범으로 정부 개입에 따른 보호주의 통상 정책 기조는 상당한 제약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WTO 규정에 따른 제도적 제약뿐만 아니라 자유 무역의 실제 이익의 감소라는 경제적 제약까지 포함한다. 경험적 연구 결과를 보면, 무역 자유화가 이루어지는 경우에 정부의 전략적 개입(strategic intervention)에 따른 무역 이익은 적어지고, 보복적 개입(retaliatory intervention)은 그나마 적은 이익마저도 사라져 버리게 할 수 있다.11) 다시 말하면, WTO 체제 아래서 이루어지는 이른바 ‘글로벌 게임’(global game)은 더 이상 모든 국가의 이익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1999년 현재도 자유 무역주의보다 보호 무역주의를 선호하는 나라가 더 많다. 그러한 나라에는 개발 도상국들뿐만 아니라 호주, 미국, 이탈리아, 영국과 같은 선진국들도 포함되어 있다.12) 

 

이론적으로 자유 무역의 이익이 큰 까닭은 생산 요소와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자유롭게 이동함으로써 세계 시장에서 가격과 한계 생산물 가치(value of marginal product)가 같게 되기 때문이다. 중간 생산물과 자원이 세계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되어 균형이 이루어지면 교역국의 생산 가능 곡선은 바깥으로 이동하고 세계 전체의 산출량이 증가함에 따라 세계 후생도 증가하게 된다. 이러한 결론은 세계 각국의 생산 요소에 대한 보수가 그 생산성을 정확히 반영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경제적 국경이 없는 상황에서 생산 요소 이동이 자유롭게 되면 이 전제는 충족될 수 있다. 생산 요소 가운데 특히 인적 요소, 곧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과 공평한 보수가 보장되지 않으면 소외 없는 연대의 세계화는 이루어질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교황 바오로 6세가 [새로운 사태] 반포 80주년을 맞이하여 근로자들의 국경을 초월한 자유로운 이주권과 합법적 사회권을 주장한 것13)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리고 오늘날 세계화로 실물 거래를 반영하지 않는 비생산적 지대 추구(rent-seeking) 목적의 금융 거래가 실물 거래를 반영하는, 생산적 금융 거래를 압도하는 우려할 만한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대규모의 투기성 단기 자본들은 세계화 추세에 편승하여 세계 각국에 무절제하게 침투하여 지대를 추구함으로써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을 증폭시키고 빈부의 격차를 더욱더 벌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것은 제로섬 게임의 고유한 상호 파괴 과정의 표출로서 그 귀결은 극단적인 부의 불평등과 비대칭성에서 오는 가난한 자의 소외로 나타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비판하는 “경제적 신자유주의”14)는 이러한 유형의 시장 경제를 지적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소외 없는 세계화의 또 다른 조건은 실물 거래를 반영하지 않고 극도의 이윤 또는 지대 추구만을 목표로 하는 비생산적 금융 거래를 절제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실물 생산으로 연결되지 않은 채, 부의 편재만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이번뿐만 아니라 여러 번 교황의 회칙에서 자본주의의 많은 부와 소유가 생산 수단이 되지 못하고 전체 사회의 이익 및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의 옹호와 발전을 위한 재화로 쓰이지 못하는 상황을 비판하여 왔다.15) 

 

 

4. 소외 없는 연대의 세계화를 위한 실천

 

세계화는 경제적으로 국민 국가의 전통적 권위를 약화시키고 있다. 세계화 이전에 국민 국가들은 정치 경제적 국경을 뚜렷이 하고 관세 주권으로 생산 요소의 이동을 통제하였다. 세계화에 따라 국민 국가의 정치적 국경은 존재하지만 경제적 국경의 의미는 퇴색하여 관세와 비관세 장벽이 낮아지거나 없어지고 생산 요소의 이동도 자유로워지고 있다. 세계화의 진전으로 모든 분야에서 정부의 통제와 조정은 약화되고 원산지 기준에 따르던 관리 무역 제도 역시 사라져 가고 있다. 통상에 관한 개별 국가 정부의 통제와 조정은 제약을 받고 원산지 규명이 어려워 관세 부과가 곤란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라 사이에 이루어지는 많은 거래에서 뚜렷이 구분되던 국내 거래와 대외 거래는 세계가 하나의 경제 무역권을 형성하는 과정에서는 의미가 없다. 

 

세계화는 윤리와 가치관에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세계화 과정에서 교회의 중심적 역할이 더욱더 요구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과거 국민 의식 중심적이었던 윤리와 가치관은 국민 의식과 함께 세계 시민으로서의 의무 수행을 요구한다. 그리고 국내 문제로 취급되었던 노동, 환경, 투자, 경쟁 정책, 부정 부패, 가난 등의 문제들이 세계적 과제가 되었다. 

 

오늘날 세계 경제는 외형적으로 미국, 유럽 연합(EU) 그리고 일본에게 지배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금융 지배적 자본의 진원지로서 세계의 부를 거의 독점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부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주체는 국가나 정부가 아니고 기업이다. EU의 경우에 통화 통합으로 개별 국가나 정부의 영향력은 더욱 약해졌다. 그러므로 소외 없는 연대의 세계화를 위한 실천의 주체로서 기업의 역할에 눈을 돌려야 한다. 

 

이에 따라 교회는 기업들을 통하여 세계의 가난을 해소하는 방안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는 세계적 투자 기관의 설립도 포함되어야 한다. 투자 기관의 설립과 정의에 반하는 자본 수익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교회의 전통적 입장이다.16) 그러나 교회가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반대한 적이 없고,17) 특히 교황 비오 12세는 경제 성장과 사회 발전을 위하여 투자나 자본 형성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였으며,18) 세계적 관점에서 지역 경제 단위와 더 넓은 국제 경제 협력을 적극적으로 제안하기도 하였다.19)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현대 세계의 사목 헌장’은 이에 관한 교회의 입장을 명백히 하고 있다. 곧 “오늘과 내일의 국민을 위한 충분한 노동의 기회와 수익을 보장하는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고,20) “세계 공동선의 추구와 실현을 위한 민족들의 공동체”와 궁핍한 지역을 위한 ‘국제 조직’ 그리고 ‘인류의 연대성’에 입각한 ‘국제 경제 협력’이 필요하다고 밝힌 것이다.21) 

 

이 사목헌장에서 우리는 소외 없는 연대의 세계화를 위한 실천 방향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첫째, 국제 통상, 특히 저개발국들과의 교역 촉진과 조정 기능을 갖는 국제 기구의 설립,22) 둘째는 신자들과 교회의 역할이다.23) 국제 기구는 사목헌장이 강조한 바와 같이 저개발 지역의 경제 성장에 기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한 기여는 국제 기구 자체보다 신자들과 교회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원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그 구체적 실천 방안으로서 오늘날 세계화가 기업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에 맞추어 개발 도상국들에게 투자하기 위한 ‘가톨릭 엔젤스 그룹 연합’ 또는 ‘국제 안젤리’(Angeli Internationalis)의 결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엔젤스 그룹은 원래는 선진국에서 유망 벤처 기업 또는 기술 보유자의 장래성을 보고 투자하여 성장을 지원한 다음 높은 투자 수익을 얻는 투자가(엔젤)들의 모임을 가리키는 말이다. ‘국제 안젤리’의 취지도 이와 비슷하다. 세계 각국 가톨릭 신자와 교회들이 가지고 있는 광범위한 인적, 물적 인프라를 국가별로 조직하여 개발 도상국들의 경제 개발을 위한 투자의 원천으로 최대한 활용하자는 것이다. 

 

‘국제 안젤리’ 제도의 구축을 위해서는 각국 가톨릭 교회 산하 대학과 연구 기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이들은 상호 연계성을 가지고 지적 능력을 총동원하여 투자자들(안젤리)의 개발 도상국에 대한 투자 유인 프로젝트를 개발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프로젝트 개발을 위한 연구 기금 조성을 위하여 경제적 여유를 가진 국가에 있는 교회의 조직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이것은 “가톨릭 전문가들이 대학에서 연구와 계획을 꾸준히 계속하여 더욱 발전시키고, 그리스도 신자들의 뛰어난 국제적 활동의 형태인 국가간 협력을 촉진할 목적으로 이미 설립되었거나 앞으로 설립될 기관에서 개인적으로든지 단체적으로 협력”하기를 요청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합치된다.24) 

 

 

5. 맺음말

 

소외 없는 연대의 세계화는 모든 인간이 종족, 종교 또는 민족에 구애되지 않고 온전한 인간적 삶을 사는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다. 특히 대희년과 연관된 소외 없는 연대의 세계화는 절대적 빈곤과 나아가 상대적 빈곤이 최소화하는 세계의 건설이다. 가장 바람직하기는 빈곤의 최소화가 아니라 아예 빈곤이 없는 세계의 건설이지만 그것은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인 미국에도 빈곤층이 존재하고 도심 빈민 지역에 거주하는 180만 인구 가운데서 절반 이상이 빈민층이며, 수도 워싱턴의 주민 23%가 가난하게 살고 있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제일차적 과제는 절대적 빈곤의 최소화이다. 세계 인구 가운데서 절대 빈곤선 이하 인구의 비중이 계속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27%나 되고 수적으로는 오히려 늘었다. 유엔 식량 농업 기구(FAO)는 현재 세계 59억 인구의 14%인 8억 명이 40개 나라에서 만성적 기아의 고통을 겪고 있으며,25) 이 가운데 1년에 1,200만 명이 굶어 죽는다고 발표하였다. 이러한 기아 문제는 엘리뇨나 라니냐와 같은 세계적 기상 악화와 사막화 등 자연 재해에 따른 식량 생산 감소와 인구 증가 때문에 발생한다고 여긴다.26) 

 

그러나 세계화와 연관하여 많은 자본이 물자 생산과는 거리가 먼 소프트 웨어 개발과 부유층의 금융 지대(financial rent)를 확대하는 데 투입되어 생필품 부족을 가중시키고 더욱이 가난한 사람을 외면함으로써 절대적 빈곤을 심화시키는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자본과 기술을 가진 자들의 부를 늘리는 데서부터 슈퍼 쌀과 같은 신품종을 개발하는 데로 돌려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물론 이것은 빈곤을 줄이는 데 도움은 되겠지만 빈곤 문제 해결의 절대적 처방은 아니다. ‘사목헌장’서 지적한 바와 같이, 기술 문명의 심각한 격차가 하루 속히 메워지지 않는 한, 광범위한 국제 원조,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농경 기술의 연구와 응용, 식량 생산을 위한 매우 세밀한 계획도 작은 결과밖에 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27) 

 

앞으로 세계화의 진전은 더욱 가속될 것이다. 그에 따른 기술 문명과 빈부의 격차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이미 세계화된 인간 소외 현상은 더욱 깊어질 것이 분명하다. 그리스도인이 실천해야 할 복음적 사명은 이러한 현상을 막거나 최소화하는 것이다.28) 그 실천은 국제 카리타스를 통한 극빈 지역에 대한 긴급 구호나 마더 데레사가 받은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무상으로 봉사한다.”29)는 영성의 고유성에 입각한 성소의 방법에 국한되지 않는다. 특히 소외 없는 연대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평화와 형제애의 기초 위에 민족들의 공동체를 건설하는 데에 이바지하는”30) 방법의 모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진정한 자유주의의 세계 통상 질서의 확립과 개도국 근로자들이 세계 어디서나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교육과 권리 확보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이제 교회의 당연한 의무가 되었다. 

 

그리고 교회는 한발 더 나아가 연대의 세계화에 앞장서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전세계인들이 “세계적인 연대성과 책임감을 자각하는 데 크게 공헌”31)할 수 있는 새로운 실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 한 방안이 개발 도상국들에 대한 세계적 공동 투자자(엔젤스) 그룹 연합의 형성이다. 가톨릭이 이에 앞장서야 하는 까닭은 어느 종교나 단체보다 세계적으로 강한 결집력을 가지고 있어서 이와 같은 조직화를 비교적 쉽게 이루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이러한 조직화가 끝난 다음 그 운영과 참여를 세계에 개방해 놓는 것만으로도 교회는 개발 도상국들의 발전과 소외 없는 세계화, 연대의 세계화를 위한 큰길을 열어 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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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졸고, “세계 경제의 신지역주의와 다자주의”, [경제논집] 제37권 2, 3호, 서울대학교 경제연구소, 414-419면 참조. 

2) [자비로우신 하느님], 11항 참조. 

3) 이동익, [인간, 교회의 길-요한 바오로 2세의 사회 교리], 성바오로 출판사, 49면 참조. 

4) Herman Hendrickx, [성서와 사회 정의], 정한교 옮김, 분도 출판사, 1978, 31면 참조. 

5) 경쟁 우위론은 포터에 의해서 정립되고 있다 : Michael E. Porter, The Competitive Advantage of Nations, New York, The Free Press, 1990 참조. 

6) Joseph N. Moody, “The Great Human Family”, The Challenge of Mater et Magistra, J. N. Moody and J. G. Lawler(eds.), New York, Herder and Herder, 1963, 217-218면 참조. 

7) 교황 바오로 6세, 회칙 [민족들의 발전](1967.3.26.), 57항 참조. 

8) 위와 같음. 

9) 위의 책, 58항 참조. 

10) 위와 같음. 

11) J. David Richardson, Constant Market Share Analysis of Export, Ann Arbor, University of Michigan, 1989, 1면 참조. 

12) Economist지가 세계 경제에 영향력이 큰 22개 국가를 조사한 결과 절반 가까운 나라가 보호 무역주의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한국, 태국, 중국, 프랑스, 호주, 러시아 등에서 자유 무역주의 선호도가 전년에 비하여 증가하였을 뿐이고 대부분의 나라는 감소 추세를 나타내었다. 

13) 교황 바오로 6세, 교서 [팔십주년](1971.5.14.), 17항 참조. 

14) 교황은 1999년 1월 23일 멕시코 과달루페 성모 대성당에서 발표한 ‘1997년 주교 대의원 회의 아메리카 특별 총회 후속 문헌’에서 극도의 이윤 추구와 사회의 약자들을 소외시키는 ‘경제적 신자유주의’를 비판하였다([가톨릭 신문], 1999년 1월 31일자 참조). 

15) 김춘호, “가톨릭 교회와 자본주의 경제 질서”, [가톨릭 사회 과학 연구소] 제6집, 한국가톨릭사회과학연구회, 1989, 28면 참조. 

16) 이것은 1745년 11월 1일 교황 베네딕토 14세의 회칙 Vix pervenit로 선포되었다. Franz H. Mueller, “The Church and the Social Question”, The Challenge of Mater et Magistra, J. N. Moody and J. G. Lawler(eds.), New York, Herder and Herder, 1963, 45면 참조. 

17) 위와 같음. 

18) 위의 책, 130면 참조. 

19) Moody, 위의 책, 214면 참조. 

20) 사목헌장, 70항. 

21) 사목헌장, 84-85항. 

22) 사목헌장, 86항 참조. 

23) 사목헌장, 87-90항 참조. 

24) 위와 같음. 

25) 이 인구는 1650년의 세계 전체 인구(5억 명)보다 많다. 

26) 이 가운데서 인구 증가가 자연 자원 부존과 과학 기술 진보의 관점에서 진정한 빈곤의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 교회의 입장이다 : [어머니요 스승], 188-189항 참조. 또 이러한 교회의 입장은 일단의 경제학적 관점과도 일치한다 : 졸고, [자본주의 사회와 가톨릭 교회], 223-224면 참조. 

27) 교황 바오로 6세, [세계 식량 회의에 부쳐], 1974.11.9, 10항 참조. 

28) 이러한 사명에 관해서는 성경의 어느 특정 부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모든 주요 부분에 두루 퍼져 있다 : Hendrickx, 앞의 책, 11면 참조. 

29) 이것은 사랑의 선교 자매회의 제4서원이다 : 마더 데레사, [우리는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박재만 옮김, 성바오로 출판사, 1992 참조. 

30) 사목헌장, 90항. 

31) 위와 같음.

 

[사목, 1999년 3월호, 오용석(경성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 국제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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