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홍)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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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양심수에 대한 형사법, 형사정책적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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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7 ㅣ No.405

양심수에 대한 형사법, 형사 정책적 검토

 

 

1. 양심수 논의의 현주소

 

우리 사회에서 ‘양심수’(prisoner of conscience)란 말은 독재 정권의 부산물로 생겨난 것이며, 국제적으로는 ‘국제 사면 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와 ‘유엔 인권 위원회’를 통해 널리 알려진 말이다. 유신과 5공의 절대적 폭력 시대에 독재 정권의 체제 강화의 어두운 그늘이 양심수를 양산하였다. 고문, 조작, 의문사, 제도적 폭력 등이 일상화되었던 시기에 ‘양심수’의 존재는 절망이 아니라 희망의 빛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군사 독재 정권이 물러감과 함께 ‘대통령과 국회 의원, 자치 단체장과 자치 의회 의원을 내 손으로 뽑는다.’는 의미의 제도적 민주화는 1987년 6월 항쟁의 성과로서 어느 정도 보장되었다. 우리 사회는 이제 정권 교체를 이루기까지의 제도적 민주화의 경험을 축적해 왔다. 그러나 양심수의 숫자는 6공 정부, 문민 정부, 국민의 정부에 이르도록 큰 차이가 없다는 주장이 넘쳐난다. 민주화되었다는 나라에서, 더구나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양심수 중의 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나라에서 양심수 문제가 왜 자꾸 거론되어야 하는가.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는 유사 개념인 것 같지만, 실은 매우 많은 차이를 내포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의견을 기초로 하고, 소수에 대한 관용으로 그것을 보완하는 체제다. 그러나 정치 집단과 대중의 이익 동기는 민주주의에서 후자의 측면을 종종 무시해버린다. 이때 민주주의는 ‘다수의 전제’(tyranny of the majority)로 변질되며, 다수의 이름으로 소수의 억압을 정당화한다. 더 심하게 말하면 노예 제도, 유태인 집단 학살도 다수의 전제의 이름으로 행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에 반해 인권 개념은 모든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인정하며, 인격적 자기 결정권을 갖고 있는 존재로서의 존엄성을 평등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인권 개념은 사회적 약자, 소수자, 반대자를 국가 권력 및 사회 여론에게서 옹호하고자 하는 것이다. 

 

민주화가 진전되었다고 하는데도 양심수 문제가 여전히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있다는 것은 그 동안 우리의 제도와 의식을 인권의 거울에 비추어 성찰해 본 적이 없음을 의미한다. 민주화의 주장은 오히려 양심수의 존재 근거를 억압하는 역기능마저 있다. “문민 정부에서는 더 이상 양심수는 없다.”는 오만 앞에 양심수의 존재는 더욱 ‘주변화’되어 버린다. 대통령 후보들은 참으로 유치한 ‘사상 검증’을 받아야 했고, ‘북풍 조작’이라는 국가 테러가 횡행했던 상황 속에서 ‘다른 생각, 신앙, 표현’이 감히 그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겠는가. 

 

볼테르는 말했다. “나는 당신의 생각에 반대한다. 그러나 나를 반대하는 당신의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나는 싸우겠다.”고. 다른 생각에 대한 사회적 관용, 소수자와 약자의 생각에 더욱 무게를 실어주는 행위는 이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의 내적 각성에서 출발할 것이다. 국가가 개인의 양심과 사상 형성에 개입하고, 그것을 변형하려고 간섭하며, 그러한 조치에 응하지 않는 개인을 형벌로 제재하는 체제를 우리는 ‘파시즘’이라 부른다. 양심수와 관련하여 우리 국가의 수준은 ‘자유 민주주의’가 아니라 ‘파시즘 체제’의 연장으로 불릴 수밖에 없다. 인간 존엄을 근본 가치로 삼는 진정한 민주적 기본 질서를 구현하기 위해 현재 시급히 달성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2. 양심수의 기준과 범위

 

1) ‘양심수는 없다.’는 법무부의 말은 우리 나라에 ‘실정법을 잘못 적용하여 처벌된 사례는 없다.’로 읽혀져야 할 것이다. (물론 그 말에도 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양심수의 개념은 실정법 자체의 문제점, 실정법 적용 과정에서 문제점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사람의 생각에서 가장 선량한 부분이 양심(good conscience, 良心)이다. 그 양심은 내심에 간직한 좋은 생각은 물론, 그 좋은 생각을 이웃과 함께하려고 표현하는 행위를 두루 가리킨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라는 본훼퍼의 말을 상기하기만 하면 양심의 자유를 한낱 내심의 자유로 유폐시키는 헌법 해석이 얼마나 일천한지 알 수 있다. 

 

양심의 표현이 (형사)법에 저촉되어 처벌받게 될 때 양심수가 탄생한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쟁점이 대두한다. 첫째,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법규범(헌법, 국제 인권 규범 등)과 그를 처벌하는 실정 법률(형사법)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가? 둘째, 우리 상황에서 어떤 실정 법률이 양심의 자유를 규제하는 데 주로 동원되며, 그 법률은 얼마나 양심적인가? 셋째, 법률의 적용 과정에서 왜곡, 조작, 무리는 없는가? 넷째, 양심수에 대한 행형상의 처벌은 어떠해야 하며, 석방과 관련된 제반 조치(가석방, 감형, 사면, 복권 등)에서 어떤 취급을 받을 수 있는가? ‘생각이 확고한’ 자는 더욱 가혹한 제재를 받아야 하는가, 아니면 더욱 관대한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제까지 우리 법제와 법 적용, 법 실천은 양심적 반대자에 대한 관용이 아니라, 더욱 가혹한 처벌을 겨냥했다고 할 수 있다. 양심의 자유를 소리 높여 외친 사람일수록 헌법상, 실정법상 보호받았던 것이 아니라 자유의 제약과 표현의 억압이란 불이익을 받았다는 것이다. 행형상으로도 일반 수형자와 별개의 존재로 분류되어 차별적 처우를 받았다. 특별 사면과 관련한 혜택을 더 받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는 불합리한 가중 처벌이 정치 권력에 준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로 빈번한 사면이 이루어졌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이다. 요컨대 우리의 법 실천에서 양심이란 말은 존중받기는커녕 무슨 불온(不穩)의 한 표지처럼 해석되어왔던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양심이란 말을 불온하게 여기는 풍토는 본질적으로 ‘사상의 파시즘’을 지향하는 사회이다. 

 

2) ‘양심수’의 개념이 실정법과 별개의, 실정법을 초월하는 기준을 요청한다고 할 때, 그 기준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해질 수 있는가? 자연법 개념도 가능한 기준이겠지만, 그보다는 국제적으로 인정된 규범에서 구하는 것이 더욱 명료할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세계 인권 선언(1948년) 및 유엔 인권 규약(1968년)에서 시민적, 정치적 권리를 들 수 있을 것이며, 구속자의 처우와 관련하여서는 ‘피구금자 처우에 대한 유엔 최저 기준 규칙’(1955년)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앰네스티의 양심수 정의로는 ① 신념, 언어, 국적, 인종, 경제적 지위 등으로 감금된 자 중에서, ② 폭력을 주창하거나 직접 사용하지 않은 자를 가리킨다. 그러나 폭력 주창자나 폭력 사용자라고 해서 앰네스티의 지원 대상에서 무조건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③ 폭력을 써서 처벌 대상이 되었더라도, 국가 기관이 적법 절차를 유린한 경우에는 탄원 대상이 된다. 곧 수사 과정에서 고문이나 불법 구금, 재판의 불공정성, 가혹한 행형 조건에서 비인도적 처우를 강요받을 경우에는 인권 단체의 간섭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①과 관련하여 공산주의적 신념의 표현이 양심수에 해당하는가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국가 보안법은 공산주의적 신념을 처벌하는 대표적인 법이며, 헌법상 자유 민주적 기본 질서에는 공산주의를 용납하지 않는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앰네스티는 물론 유엔 인권 위원회에서는 현재의 국가 보안법이 유엔 인권 규약상의 표현과 결사의 자유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단정한다. 비록 좌경이나 공산주의적 견해라 할지라도 비폭력적 정치적 표현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서독의 경우에도 냉전 중(1958년)에 공산당 위헌 결정이 있었으나, 그 뒤에는 공산당 활동에 대한 법적 제약을 가하지 않았다. 통일 후에도 공산당은 합법 정당으로 활동하고 있다. 북한 정권과 직접 연계하여 대한민국 정부를 전복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면, 그것은 국가 보안법이 아니더라도 형법상 내란죄로 처벌할 수 있는 것이다. 비폭력적인 정치적 표현을 탄압한다는 것이 시민적 자유를 심각히 위축시키고, 국가 안보에 실질적인 위협을 전혀 제공하지 않는 행위까지 얼마든지 처벌해 온 것이 그 간의 실례였음을 반성하면서, 국가 보안법을 그야말로 국가 보안에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을 제공하는 경우에 한해 처벌하는 규정으로 쇄신하든지, 아니면 형법의 일부로 통합시키든지 해야 할 것이다. 

 

②와 관련하여 폭력의 개념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선 (적군파처럼) 처음부터 테러 조직을 만들거나 폭력 혁명을 추구한다면 양심수에서 배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권 자체의 탄생과 유지가 폭력에 기반을 둔 경우에는, 그러한 폭력 정권에 저항하기 위한 물리적 충돌은 ‘양심’적 행위로 볼 수 있다. 5.18 재판에서도 분명해졌듯이, 5공 정권을 위시한 군사 정권은 처음부터 적나라한 폭력 동원 체제였다. 한때 ‘폭도’로 지칭되었던 이들이 ‘민주화 운동자’이자 헌법 수호자로 역전된 점에 비추어볼 때, 독재 정권에 대한 저항권 행사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대항적 폭력의 부분은 양심수로 인정하기에 아무 문제가 없다. 또한 폭력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과 폭력의 행동화는 별개의 것이다. ‘민주주의란 나무는 시민의 피를 먹고 자라며, 시민의 칼로 지켜진다.’는 마치니의 말을 폭력 혁명 옹호론으로 받아들이지 않듯이, ‘폭력 혁명’의 필요성을 운위한다고 해서 그것을 곧 폭력 행위자로 몰 수는 없고, 군사 정권에 대한 ‘적극적 저항’을 강조한 것으로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③과 관련해서, 실정법을 위반하여 처벌되었다 해도 양심수의 문제는 제기될 수 있다. 불법 수사와 형식적 재판은 재판 행위 자체의 정당성에 의문을 던진다. 행한 범죄에 비해 지나친 처벌은 공형벌이 가져야 할 비례성, 인도성의 원칙을 유린하는 것이다. 수사 과정의 고문, 인권 유린은 오히려 형벌 감경의 요인으로 작용해야 마땅할 것이며, 재판상의 문제가 있었을 경우에는 사후라도 재심의 기회를 폭넓게 열어야 할 것이다. 국가가 범죄자에 대해 도덕적 우위에 서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비도덕적 국가에 대해 ‘양심적’인 죄수의 문제는 언제나 대두될 수 있는 것이다. 폭력과 부패에 기반한 정권, 형사상의 적법 절차를 유린했던 정권은 그 폭력과 불법 절차의 희생자들을 ‘양심수화’한다. 그러므로 민주화된 정권에서는 이들에게 가해졌던 형벌상의 ‘과잉 부분을 원상 회복’시킬 당위성을 갖는다. 

 

 

3. 현시점에서 ‘양심수’의 실태와 유형

 

현재 수형자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양심수로 분류될 수 있는지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 기준을 어떻게 설정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권 상황을 토대로 하여 대한변협에서 제시한 양심수에는 

 

㉠ 정치적 이유로 투옥된 자, 

㉡ 위헌적 법률에 의해 투옥된 자, 

㉢ 민주화 운동의 과정에서 불순한 동기 없이 실정법을 위반한 자, 

㉣ 경직된 정치 상황에 의해 특히 형평을 잃은 중형을 받은 자, 

㉤ 국내 실정에 어두운 탓으로 국가 보안법 등 실정법을 위반한 자, 

㉥ 고문을 당하거나 수사 기관에 의한 범죄 날조의 주장이 있던 자, 

㉦ 정치적 강압의 방편으로 처벌되었거나 이에 항거하여 일어났던 사건, 기타 민주화 운동, 노동 운동 등에 관련하여 일어났던 사건의 모든 관련자들이 포함된다.1) 

 

또한 그 동안 민가협 등의 인권 단체에서 집계한 바를 살펴보면 양심수의 유형은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1998년 3월 13일 사면 조치에서는 그 동안 민가협이 양심수라고 주장해 온 478명 가운데 15%에 이르는 74명이 포함되었다. 아직도 석방되지 않은 양심수는 다음과 같다. 

 

㉠ 우용각 씨 등 초장기수 17명 

㉡ 조상록 씨 등 4,5,6공 간첩 사건 관련자 15명 

㉢ 박노해, 백태웅, 남진현, 현정덕 씨(사노맹 관련자 전원) 

㉣ 김성만, 황대권, 강용주, 양동화 씨(구미 유학생 사건 관련자 전원) 

㉤ 김낙중, 손병선 씨 등 남로당 사건 관련자 13명 전원 

㉥ 안재구 씨 등 구국 전위 사건 관련자 6명 전원 

㉦ 박영희 씨 방북 사건 관련자 4명 

㉧ 기타:8.15 연세대 사건 관련자 등 한총련 대학생 다수 

 

그 동안 양심수로 거론되었던 인사들의 유형별 특성을 살펴보면, 

 

- 초장기수의 경우 : 국가 보안법 위반으로 무기 징역 또는 20년 이상의 징역형을 확정받아 복역 중인 자. 이들은 모두 70세를 전후한 고령인데다, 장기간의 독거 수용과 심각한 건강 악화로 고통을 겪고 있다. 행형상으로는 엄중 독거와 노동 기회의 박탈, 가석방 기회의 박탈을 경험하고 있다. 체포와 수사 과정에서 심각한 고문을 당하였고, 영장 없는 장기 수사와 불공정한 재판을 받았다. 북한에서 남파된 인사가 대부분이며, 폭력을 사용한 바는 없다. 이들에게 가해지는 심각한 고통 중의 하나는 전향 강요이며, 이들은 전향 강요 과정에서 자행된 무자비한 폭력(특히 1973, 1980년)으로 말미암은 상흔을 갖고 있다. 세계 최장의 구금 기간이란 오명을 갖고 있어, 국제 사회에서 한국 정부가 양심수를 탄압하는 국가라는 오명을 더해 주고 있다. 3.13사면에서는 6명이 석방되었고,2) 현재 17명이 옥중에 남아 있다. 

 

- 5공 때의 ‘조작 간첩’ 사건 : 5공 초 군사 정권의 기반을 정당화하고 반공 풍토의 인위적 조성을 위해 일련의 용공 조작 및 간첩 사건이 만들어졌다. 납북 어부, 재일 동포, 월남자 사건, 행방 불명자 가족들이 주된 대상으로 되었는데, 이들에 대해서는 당시의 정치 권력의 필요와 특수 수사 기관의 경쟁 심리와 포상욕이 어우러져 심각한 인권 유린 문제가 일어났다. 대체로 영장이 발부되지 않은 상태에서 처참한 고문으로 허위 자백을 강요했고, 이에 이근안 등의 고문 수사관이 관여하였다. 이들에 대해서는 간첩 행위를 인정할 만한 물증이 거의 없으며, 본인의 자백에 거의 의존하고 있다. 간첩 사실에 대한 별 내용도 없으며, ‘국가 기밀’이라는 폭넓은 그물망 속에서 공지의 사실도 포함된 과거의 법 해석에 의존하여 처벌되었다. 남파 공작원 수가 격감했던 시기에, 권력의 필요에 따라 간첩도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례로 종종 인용된다.3) 그들 가운데는 아무리 억압적 시대 상황이라 하더라도 감출 수 없는 정도의 조작과 인권 침해로 대법원이 두 번씩이나 무죄 취지의 파기 판결을 내렸음에도 결국에는 유죄로 확정된 사건이 있었는가 하면,4) 대법관 중에서도 이들 중 일부 사건이 조작되었음을 심각하게 의심했던 경우도 있었으며,5) 재심 개시 결정이 하급심에서 내려지기도 했으나 결국 대법원에서 거부되었던 사례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수사, 처벌에 관련된 특수 수사 기관의 ‘원죄’ 탓인지 사면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공안 기관들의 사면에 대한 저항도 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20여 명이 옥중에 있다. 

 

- 사노맹 관련자 : 사면 논의와 관련하여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사안이다. 그것은 이 사건 관련자들(백태웅, 박노해 등)이 군사 정권에 저항하는 학생 운동, 사회 운동, 노동 운동을 주도해 온 대표적 인사이며, 그러한 일련의 저항 과정에서 사노맹이란 단체를 결성했기 때문이다. 다른 조직 운동과 다른 점은 이들이 조직의 목표와 활동을 뚜렷이 공표했던 점과 ‘사회주의’를 명시적으로 내걸었다는 점이다. 때로 폭력 혁명을 운위하기도 했으나, 어떤 ‘폭력’을 실제로 계획하고 행사한 적은 없다. 북한과의 연계를 명시적으로 거부한 점에서 다른 조직 운동과 질적 차이를 보인다. 국제적으로는 한국 정부의 인권 수준을 재는 바로미터의 하나로 이들의 사면이 자주 거론된다. 

 

- 북한 방문 또는 북한 연계 사건 관련자 : 북한을 직접 방문하였으나 북한 정권과 조직적 연계를 갖지 않은 경우는 이번 사면에서 대체로 석방되었다(서경원, 황석영, 김하기 등). 북한 당국의 ‘지시’를 받고, 자금을 받아 지하에서 조직을 만들어 활동했다고 판결받은 인사들에 대해서는 정부도 사면을 거론하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 한총련 관련자 : 주사파라는 사상적 성향, 폭력을 행사했다는 점, 구속된 시기가 짧아 현재도 단속 중인 단체 관련자라는 점 등이 사면에 장애 요소가 된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 경험이 짧은 학생이라는 점 등이 사면에 긍정적인 요소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4. 양심수와 국가 보안법의 문제

 

‘양심수’를 규제해 온 형사 법률로는 국가 보안법, 집시법, 노동 관계법이 있으며, 연세대 사태와 관련해서는 집시법, 국가 보안법 및 형법상의 특수 공무 집행 방해(치상, 치사)죄가 적용되었다.6) 하지만 양심수와 사상의 자유와 직접 관련되는 대표적인 법률은 국가 보안법임은 말할 것도 없다. 사회 안전법의 후신인 보안 관찰법은 또 하나의 사상 통제 입법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국가 보안법 존폐론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겠다.7) 국가 보안법을 존치한다고 해도, 그 법이 그 동안 심각하게 남용되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1987년 이후 시민 사회 단체와 학계에서는 반민주악법의 대명사로 꼽힌 것이 국가 보안법이었다. 각 정당에서도 국가 보안법 개정론, 폐지론, 대체 입법론이 나왔지, 당시의 국가 보안법이 전면 타당하다는 주장은 제기되지도 않았다. 헌법 재판소에서도 국가 보안법의 완전 위헌론, 한정 합헌론은 나왔지만, 순수 합헌론은 나오지도 않았다. 법원에서도 국가 보안법의 위헌 제청이 몇 차례나 이루어졌으며, 구체적인 법 적용에서도 하급심과 대법원의 의견이 다른 경우가 적지 않았고, 대법원에서도 다수 의견과 소수 의견으로 대립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이는 국가 보안법이 권력에 의한 시민의 양심과 자유를 탄압하는 도구로 이용, 오용, 남용되었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국가 보안법의 적용을 둘러싼 견해의 불일치가 입법과 사법 영역에서 점증함을 의미한다. 최후 수단으로서 형법은 사회적 합의의 반영일 경우에 비로소 정당성을 갖게 된다고 하면, 이렇게 법률 기관 내부의 견해 대립은 국가 보안법의 규범적 정당성이 법적, 사회적 기초를 상실해 가고 있음을 반영한다고 할 것이다. 

 

국가 보안법은 1948년 정부 수립 직후 일제 통치 아래 사상 탄압 입법인 치안 유지법을 모델로 하여 제정되었다. 당시의 국가적 위기에 직면하여 일시적으로 법치주의를 잠시 양보하고 비상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였다. 1953년 형법을 제정하면서 김병로 대법원장은 내란죄의 조문을 포괄적으로 규정하면서 국가 보안법을 폐지하자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 그러한 국가 보안법 폐지론에 대하여 존치론의 논거는 법 이론적 문제보다 국민에게 주는 심리적 영향, 말하자면 보안법이 삭제된다면 보안법에 해당하는 범죄는 죄가 되지 않는다는 정신을 국민에게 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국가 보안법의 존치는 단순히 ‘심리적 영향’을 넘어서 실질적 효과를 갖고 있음이 후일 실증되었다. 그것은 범죄 구성 요건의 확장과 불명확한 개념의 자의적 남용, 중형주의적 형벌관, 형사 절차상의 특례를 통한 피의자/피고인 권리의 제약, 특수 수사 기관의 수사권 인정의 측면으로 현재화된다. 그리고 심리적 영향도 반공을 국시로 하는 상징적 효과에다 ‘빨갱이’라는 낙인의 부정적 효과(상징적, 실제적 효과)를 같이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국가 보안법에 대한 일련의 개정 과정에서 조문 수가 늘어났고, 구성 요건이 세분화되었다. 국가 기밀 개념의 무한정한 확장, 찬양이나 고무 기타 이적 행위의 처벌, 불고지죄 조항 등을 통해 국가 보안법은 반체제 분자뿐 아니라 일반 시민의 제반 활동에 대해 탄압의 촉수를 뻗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둘째, 1948년 국가 보안법은 ‘미증유의 위기 사태’에 대응하여 제정되었음에도 최고형을 무기로 하고 있는데 반해, 1949년 개정부터 다수의 사형 조항을 포함하게 되었고, 1958년 개정에서는 사형 규정을 더욱 확대하였다. 실제로 판결문 가운데도 국가 보안법(및 반공법) 위반 사건에 대하여는 중형주의가 일관성 있게 관철되었다. 

 

셋째, 1948년 국가 보안법에는 절차상의 특례를 두고 있지 않았으나, 1958년 개정부터 피의자, 피고인의 인신 구속에 관한 중대한 제약을 가하게 되었다. 보석 및 구속적부심에서의 석방 결정에 대하여 검사의 즉시 항고를 인정한 점, 사법 경찰관의 구속 기간 연장, 사법 경찰관 작성 조서의 증거 능력 제한에 관한 형소법 제312조 단서의 적용 배제, 심급마다 1차에 한하여 구속 기간 갱신 허용, 증인의 구인 규정 등으로 형사 소송법의 규정은 국가 보안법 위반 사건에 대하여 크게 변질되었다.

 

넷째, 1960년 개정으로 독소 조항의 일부가 폐지되었지만, 다시 5.16 군부 쿠데타 이후 상당수의 독소 조항이 되살아났으며, 거기다 1980년 개정에서는 검사의 구속 기간도 형소법보다 한 차례 더 연장할 수 있게 함으로써, 기소 전 피의자 구속 기간은 최장 50일 이내로 되어 장기간 무한정한 인권 침해를 위한 조건이 만들어졌다. 또한 참고인의 구인, 유치 조항까지 만들어졌다. 그리하여 1980년대를 ‘국보법 시대’로 부를 만큼 군부 독재 정권을 위한 ‘전가의 보도’가 된 것이다. 

 

다섯째, 국가 보안법 위반 사건에 대한 특수 정보 기관의 수사권 인정에 따른 폐해가 크게 문제되었다. 1958년 개정에서는 국가 보안법 중 일부에 대하여 국군 정보 기관의 수사권을 인정하였으며, 5.16 군부 쿠데타 이후 창설된 중앙 정보부는 중앙 정보부법에 따라 국가 보안법 및 반공법에 규정된 범죄에 대한 수사권을 가지게 되었다. 1980년 중앙 정보부는 국가 안전 기획부로 개편되었고, 국가 안전 기획부도 마찬가지의 수사권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러한 특수 정보 기관은 거의 법치주의적 통제를 받지 않았으며, 피의자는 고문과 각종 인권 유린에 시달려야 했던 것이다. 검사의 구속 장소 감찰권은 행사된 바 없고, 변호인 접견권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진술 거부권 등 피의자의 권리는 철저히 유린되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국가 보안법과 특수 정보 기관의 권위는 큰 타격을 받았다. 국가 보안법은 ‘반민주 악법’의 대명사로 끊임없이 개폐의 도마 위에 올라있다. 국회, 헌법 재판소, 법원은 국가 보안법의 적용 영역을 축소시키고, 남용 가능성을 억제하여 법치주의적 틀 속에 편입시키기 위한 나름대로의 노력을 기울였다. 구속 기간의 연장에 대해서도 일부 위헌 결정이 이루어졌다. 변호인 접견권에 대한 사실상의 금지도 변호사들의 용기 있는 문제 제기와 법원, 헌법 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이제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내외의 비판에 시달려 1991년 국가 보안법의 개정(법 4373호)이 이루어졌으나, 이 역시 대단히 미흡하여 국제적 압력과 내부의 비판에 봉착해 있는 실정이다. 1994년 국가 안전 기획부법의 개정에 따라 안기부의 수사권이 이전보다 축소된 점8)을 제외하고는, 국가 보안법은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현시점에서 국가 보안법과 양심수 문제에서 특별한 고려가 필요한 점이 몇 가지 제기된다. 

 

- 현재의 양심수 가운데 국가 보안법에 따른 특수 수사 기관의 무자비한 인권 유린의 피해자들이 적지 않다. 그로써 얻은 악명은 국가 보안법을 제대로 적용한 사건에까지 조작 사건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도 그 사건들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하지 못하고 있다. 시간의 경과와 증거의 산일(散逸)에 따른 재심의 어려움을 감안하여, 사면 조치를 통한 정치적 해결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 국가 보안법의 적용 범위가 시대에 따라 달라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현재 양심수로 구금된 자의 다수는 현시점에서 판단한다면 죄가 안되거나, 경미한 처벌을 받을 것이 대부분이다. 탈북자, 북한 왕래자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해빙의 분위기를 선도해야 할 한국(남한)의 입장에서는 남북간의 교류와 왕래에 대하여 개방적인 접근을 해가야 할 것이다. 그런 기준에서 본다면 과거의 국가 기밀 누설, 회합 통신, 잠입 탈출, 이적 행위, 이적 표현물 등에 대한 재평가의 필요성이 있으며,9) 그런 재평가의 기초 위에서 사면 여부가 긍정적으로 검토될 수 있는 것이다. 

 

- 우리 체제의 우위성이 확보된 상황에서 공산주의자의 위협은 이전과 같이 강력하지 못하다. 수세적 입장에 있는 북한이 반북한적 세력에 대해 관용을 보이기는 어렵지만, 공세적 입장에 있는 남한으로서는 반국가 단체에 대한 관용의 폭을 점차 넓혀가야 할 것이다. 통일이란 결국 공산당까지 감싸 안는 것을 의미할 것인데, 그를 위한 첫 단계로 비폭력적인 급진 사상에 대해서는 이해와 관용의 폭을 점차 넓혀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날 그러한 사상을 금압하기만 했던 시대적 분위기에서 나온 판결들을 현시점에서 재검토하면서 양심수에 대한 관용적 정책을 펴가는 것이 당연히 요청되는 것이다. 

 

 

5. 법 실행 단계(수사, 재판, 행형 단계)에서 문제

 

법 자체의 문제점은 그렇다치고, 그 법의 적용과 집행 과정은 법에 내재한 문제를 더욱 증폭시켜왔다. '양심수'를 양산하게 된 요인으로 다음과 같은 점을 지적할 수 있다. 

 

- 잘못된 법(악법)이거나 남용 가능성 높은 법의 적용 

- 고문과 조작의 사례 

- 특수 수사 기관의 권력 남용 

- 억지로 짜낸 자백을 주된 증거로 하고 있으며, 증거물과 혐의 사실 사이의 내적 연관성 없는 경우 

- 재판권의 위축(공소장의 복사판인 판결문 등) 

- 선고형이 지나치게 높은 점 

- 초장기 구금 : 20년 이상 심지어 3,40년에 이르는 장기간의 구금 과 그로 인한 인격의 파괴, 건강의 파괴 

- 특별 사동에 독거 수용 등 비인도적 특수 처우10) 

- 가석방, 개방 처우 등의 혜택의 제외 대상으로 삼고 있는 각종 규칙들11) 

- 전향 강요 

 

이 중 전향 강요는 양심수의 양심을 다시 한 번 침해하는 조치가 아닐 수 없다. 표현의 자유를 남용했거나 범죄적 ‘행위’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 처벌받으면 그만이지, 그가 가진 내심의 자유인 양심, 사상까지 변화시키기를 강요하는 제도는 파시즘과 공산주의말고는 없다. 사실 전향 강요는 1930년대 일제의 형사 정책으로 기획된 것이다. 이는 ‘특정한 사상’의 보유 자체가 범죄가 된다고 보는 파시즘식 사고의 표현이며, 전향을 하면 형기를 다 채우지 않고도 가석방할 수 있으며 반면 전향하지 않으면 형기를 다 채우더라도 ‘재범의 위험’을 구실로 ‘예방 구금’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12) 그런데 파시즘이 아닌 자유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에서 ‘전향’이란 용어를 쓰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개개인은 언제나 자신의 생각과 행적에 대해 자기 반성을 할 기회를 가진다. 자의식을 갖고 반성이나 전향을 하는 것은 조금도 나쁠 것이 없다. 그러나 전향을 강제하는 것은 개인의 양심과 사상을 폭력의 시험대 앞에 놓는 것이다. 폭력을 두려워하여 전향했다면, 이는 인간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키지 못하는 행위가 될 것이며, 폭력에도 전향하지 않는 자의 명예와 존엄성을 격상시키는 역효과를 자아낸다. 전향 제도의 시행은 또한 양심의 자유의 일부인 침묵의 자유,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추지(推知)당하지 않을 자유를 침해한다. 

 

그 동안 전향 강요를 위해 취해진 조치는 오히려 국가 자체의 폭력성만을 노출시켰다. 전향 강요를 위해 폭력배까지 동원했던 과거의 예13)는 오히려 전향 대상자가 전향하지 말아야 할 확실한 근거를 제공해 주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반성을 요한다.14) 한 가지 더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전향 대상자가 경험한 세계의 협소성이다. 장기 구금자의 경우 외부적 접촉은 물론 교도소 내의 다른 수형자와의 접촉도 차단되어 있다. 이러한 차단 속에서 그의 판단 기준은 몇 십 년 전의 세계상일 것이다. 남한이 북한보다 발전했다면, 그 발전상을 호흡하고 남한 사람들과 접촉함으로써 자기 의식을 스스로 수정해 갈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 사상의 전환은 폐쇄된 공간에서 접촉이 봉쇄된 채 일방적 정보만을 강요할 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새로운 환경 및 새로운 사람과의 접촉과 대화를 통해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장기수들에게는 그러한 기회 자체가 봉쇄되어 있는 것이다. 정보와 기회가 차단되어 있는 상태에서 열악한 대우를 받으면서 남한의 가장 나쁜 면만을 수십 년 경험해온 그들에게 남한이 살 만한 사회이고, 자신의 과거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반성하고, ‘의식을 전향하라.’고 요구할 때 그들이 어떻게 응할 수가 있겠는가. 진실로 그들의 전향을 원한다면 스스로 사고의 전환을 이루어낼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6. 양심수의 사면 문제

 

벡카리아가 지적했듯이 사면권은 사실 군주의 폭정을 가리는 가면이며, 법치의 성장을 가로막는다. 억압적 형벌과 잦은 사면이 아니라, 관대한 형벌과 일관된 처벌이 법치의 기반이 된다. 법률이 정비되고 사법권에 대한 존중심을 가진 정체와 법제에서는 사면권의 남용 현상이 생겨날 수도 없고, 그런 상황에서 사면은 바람직하지도 않다.15) 사면 대상이 된 형벌은 사법 심사를 거쳐 확정된 것이므로 사법권 존중의 차원에서도 사면이 억제되어야 할 것이다. 잦은 사면은 다른 수형자에게 요행심을 불러일으키고, 사면된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에 형평성의 문제를 만들고, 대단히 큰 위화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한편 권력자에 대한 사면은 힘없는 수형자에게 유전무죄, 유권무죄의 인상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법질서에 대한 존중심을 짓밟으며 우리 사회의 법치 문화 형성에 장애를 조성한다. 

 

잦은 사면은 사실 권력의 폭압성의 다른 단면이란 사실도 자각해야 할 것이다. 권력이 폭압적일수록 국민에게 공포감을 조성하고 형벌권을 남용하게 된다. 그로써 국민의 불만이 커질 때, 그 불만을 완화하고 통치자의 관대함을 과시하기 위해 사면이란 조치를 구사하게 되는 것이다. 독재 정권일수록 사면권을 남용하는 것은 우리의 과거, 현재의 예에서 뚜렷이 볼 수 있는 것이며, 다른 나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면 이러한 일반론을 근거로 사면권 행사에 반대해야 할 것인가. 과거 법치주의, 사법권 독립이 확립되지 않았던 상황에서 적절한 사면 조치는 오히려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는다는 긍정적 의미를 갖는다. 법률적 불법, 잘못되었거나 자의적인 법 적용, 지나친 형벌에 따른 과잉 인권 침해에 대하여 개별적 사법 심사로 일일이 대처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으며, 재심 자체가 지극히 까다로운 우리 사법 현실 속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불법적이고, 부당한 바탕 위에서 내려졌던 사법적 결정을 치유하기 위한 적절한 사면권 행사는 현시점에서 매우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의 출범과 함께 이루어진 1998년 3월 13일 사면 조치는 민가협 등에서 양심수로 규정한 인사 478명 가운데 15%에 불과한 74명이 석방되었을 뿐이다. 더구나 사면 제외자에 대해 ‘재범의 우려’, ‘체제 전복의 위험성’, ‘미전향’ 등을 내세우는 것은 과거 정권과 전혀 질적 차이가 없는 주장이었을 뿐이다. 앞으로 포괄적 사면, 석방의 근거를 아래에서 살펴본다. 

 

- 현재의 법률과 법 해석상으로는 처벌되지 않을 많은 행위들이 과거에 정권의 이해 관계 때문에, 또는 사법의 소극적 순응 자세 때문에, 처벌된 경우가 적지 않다. ‘악법’과 ‘잘못된 법 해석’, 그리고 ‘지나치게 확장된 법 적용’의 피해자들을 원상 회복시키는 것은 사회 정의의 회복이란 견지에서 매우 바람직하다. 

 

- 현재 초장기수로 불리는 자는 17명으로 조사되고 있는데, 짧게는 28년 길게는 40년 간 구금되어 있다.16) 이렇게 20년 이상 심지어 30년 이상 인간을 구금하는 사례 자체가 세계적으로 거의 유례가 없음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이들의 범죄란 남파되었다는 사실(거기에 더 있다면 몇 가지의 정보 수집 정도)에 지나지 않으며, 인명 살상 등 폭력 행위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이 같은 초장기 구금은 구금자에게 명예를, 그 형을 집행하는 국가에 수치를 안겨줄 뿐이다. 

 

남북한이 극도의 냉전을 유지했던 상황에서 발생한 행위의 범죄성에 대한 판단은 상호 인적, 물적 교류가 확대되어 가는 현시점에서 재평가할 수도 있다. 재범의 위험성의 견지에서 볼 때도 병약하고 연로한 이들 인사들이 어떤 사회적 위험을 야기한다고 믿을 근거가 없으며, 석방된 자들 가운데 재범 가능성을 실현한 인사도 없다. 오히려 이들을 석방하고, 북한에 있는 국군 포로나 남북 선원들과 상호 교환하는 조치가 인도주의적인 견지에서 필요할 것이다. 

 

- 독재 정권에 대항하여 싸우다 옥중에 갇힌 인사들은 어떤 의미에서도 양심수라 부르기에 어려움이 없다. 독재 정권과의 싸움에서 순전히 무저항, 비폭력적 방법만 사용하라는 것은 우리의 역사적 경험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4.19, 5.18, 6.10 항쟁 모두가 비폭력을 원칙으로 하되, 그것을 물리력으로 진압하는 독재 정권에 대하여는 ‘방어적’ 또는 ‘헌정 수호적’ 의미의 폭력은 일정 부분 사용되었다. 독재 정권이 폭력적일수록 그에 대항하는 세력 역시 저항권 행사의 차원에서의 폭력이 불가피했던 점도 감안되어야 한다. 

 

또한 무저항, 비폭력적 방법을 썼더라도 그들은 국가 전복 세력, 폭력 세력으로 매도되었고, 수사와 재판 기관은 그러한 매도를 법적으로 뒷받침했다. 따라서 법적 결과만 놓고 볼 때, 과연 실정법 위반자들이 실제로 폭력 사범인지, 단지 그렇게 매도당한 것인지 구분되지 않는 측면이 적지 않다. 

 

결국 근본적으로 폭력적이었던 독재 정권 자체와 싸우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폭력은 민주 정권에서는 기본적으로 사면되어야 마땅하다. 다만 그 폭력 중 일부가 특정 개인에 대한 살상을 빚었다면 그것대로 실정법상의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형벌은 보통의 살상 행위와 같은 차원에서 평가될 수는 없을 것이며, 그들의 ‘양심’의 부분만큼 경감된 제재를 받아야 하며,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 사면 여부를 진지하게 검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사면 기준으로 전향서와 반성문 같은 것을 내세우는 것은 양심의 자유에 어긋난다. 물론 전향서, 반성문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제출하면 가석방 및 사면에 특혜를 주겠다는 것이므로 양심의 자유에 어긋나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성, 전향한다는 것과 반성문, 전향서를 제출한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행위다. 반성문, 전향서 제출 행위를 사면의 전제로 삼는 것은 (과거 자신을 부당하게 탄압했고 그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었던) 국가 권력의 정당성을 무조건 인정하라는 것이 되며, 자신의 과거 행위를 ‘잘못’이라고 인정할 것을 상황적으로 강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행위에 대해 법적 비난을 받는다고 해서 그 행위를 잘못이라고 ‘자백’(또는 고백)하는 것은 아니다. 이때 윤리적 양심으로서의 자백이나 고백은 가장 내면의 영역이며, 국가 기관에게 외부적 표현을 강요받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또한 반성문, 전향서 제출 행위가 재범의 위험성과 관련 있다고 볼 근거도 없다. 전향서 요구는 국가의 사면에 대한 명분 쌓기용이거나, 전향서 제출자에게 굴욕감을 주기 위한 조치로밖에 보여지지 않는다.17) 국가가 개인의 양심을 존중하고 내면의 영역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전제를 세운다면, 전향서 작성이 아니라 그 동안 행형 과정에서의 태도, 수형자와의 상담과 대화 등을 종합하여 재범의 가능성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고 해서 반국가적 ‘행위’를 할 것이라는 추측 또한 지나친 것이다.18) 그러므로 반성문과 같은 구차한 형태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각과 행적을 종합적으로 이해한 바탕 위에, 객관적으로 판단되어야 할 것이다. 

 

-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을 견제하기 위해 사면권이 제한되어야 할 사안들이 있을 수 있다. 첫째, 헌정 파괴 범죄에 대한 사면은 억제되어야 한다. 사면이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는 데 기여하는 조치라면, 헌정 파괴 범죄에 대한 사면은 자기 모순일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대량적 살상, 사전에 계획된 고의 살인 행위에 대한 사면은 허용되기 곤란하다. 인간의 존엄성 자체를 파괴한 범죄에 대한 사면은 곧 헌법의 근본 가치를 유린하는 것을 방조하는 결과를 빚어낸다.19) 셋째, 권력형 부정부패범, 선거법을 위반한 사범에 대한 사면은 매우 억제되어야 한다.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이해 관계에 따라 사법적 결정을 번복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으며, 일반 시민들에게 법 집행의 형평성과 법적 정의감을 심각히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실형을 선고받은 비리 공직자라 할지라도 대다수는 가석방, 형 집행 정지, 사면 등의 조치로 석방되었다. 고위 공직자는 대부분 특별 사면 또는 특별 복권으로 형벌 이전의 상태로 회복되었다. 정치 과잉의 시대 속에서 법치의 기본 요소인 법 앞의 평등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대표적인 예가 고위층 범죄에 대한 사면이다. 특히 대형 부패 사범에 대한 잦은 사면은 검찰, 사법권의 행사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범죄 억제 효과를 약화시키며, 법질서 전반에 대한 불신을 야기시킨다. 

 

그런 견지에서 전두환, 노태우 등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은 성급하며,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처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면에 대한 어떤 윤리적, 법적 정당성을 갖지 못한 채 오직 법적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소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20) 군사 독재 정권의 학살과 부패 행위에 대한 사면 여부는 그 피해자들의 원상 회복 조치가 일단락되고 난 뒤, 그리고 군사 독재 정권에 저항하다 결과적으로 실정법을 위반하게 된 인사들의 전면적인 사면과 원상 회복 조치가 선행되고 난 뒤, 국민 화합과 독재의 궁극적 청산이란 단계에서 국민 여론을 물어 최종적으로 검토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7. 맺음말

 

사면권 행사의 필요성은 현행법상으로 이들의 권리 구제와 원상 회복의 방법이 달리 없다는 데 있다. 양심수의 양산에는 검사와 법관의 사법적 결정이 큰 몫을 한 것이 분명하다. 헌법 제103조에 따르면,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한다. 이때 양심은 ‘공정성과 합리성에 바탕을 둔 한 법 해석을 직무로 하는 자의 법조적 양심인 법리적 확신’을 말한다고 해석된다(객관적, 법리적 양심설).21) 법관의 심판이 ‘헌법과 법률’에 배치될 수 없음은 물론이며, 법관의 양심도 헌법 및 법률과 별개 방식으로 작동되어서도 안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실정법의 무조건적, 기계적 적용이 자동적으로 옹호되는 것은 아니다. 법관의 심판은 법적 기계의 자동적인 작동이 아닌, 법관이라는 전문성을 갖춘 인격체의 판단이기 때문이다. 법관의 판결에 승복하는 것은 단순히 헌법과 법률의 적용이 아닌, 인격적 판단을 매개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관이 법에 있어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 양심의 고통을 외면한 채, 기계적으로 실정법을 적용했다면 이는 법관으로서 헌법 규정에도 충실하지 못한 것으로 비난받아야 한다. 

 

헌법이 요구하는 것은 양심이 살아있는 법관이다. 이때 양심은 타자의 의지에 예속되는 것이 아니라 인격 내부의 소리이며 고독 속의 자기 결단이다. 그러므로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할 것을 명하는 것이다. 법관이 사법이라는 (관료적) 조직체의 일원으로, 국가 권력의 한 하부 단위로 자신을 위치시킬 때 ‘독립적’인 ‘양심’은 존재할 곳이 없다.22) 한 사회에서 최후의 판단자로서 법관은 상황의 어려움을 빌려 자신의 왜곡된 판단의 원인을 남에게 전가시킬 수 없다.23) 

 

그런데 지난날 정치적 반대자, 사상적 반대자, 반정부적 행동에 대하여 내려진 검사의 기소와 법관의 판결 중 결코 양심 있는 법조인의 행동으로 볼 수 없는 사례가 적지 않다. 재판부의 구성, 인사권 행사에 대한 통제로 법관들을 선별 배치하였고, 안기부 등 특수 수사 기관의 권한 남용을 검사와 법원이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였으며, 결국 ‘판결로 말해야 했을 때 침묵’하여 오도된 재판이 축적되었다. 그것의 한 단면이 양심수의 양산이었다. 문제는 누가 불충실한, 심지어 왜곡된 판결의 피해자인지 일일이 가려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형사 사건에서 재심의 어려움도 한 문제이지만, 수많은 법관과 검사가 관여한 집단적 문제이기도 하므로 대량 재심에 대한 법조 내의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양심수의 사면과 복권, 과거의 국가 기관에 의한 대량적, 집단적 인권 침해로서의 형사 사법 악용,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을 위한 종합적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개개의 사법적 결정을 바로잡는 것의 어려움을 타개하는 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과거 청산 및 국민 화해의 밑그림을 다시 그려가는 작업이 될 것이다. 그를 통해 우리는 과거의 양심을 불온하게 여겼던 시대를 벗어나, 사상과 문화의 다양성을 수용하는 시대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견해의 차이를 처벌이 아닌 관용과 대화로 풀어가고, 일방적 발언이 지배하는 풍토에서 서로 청취를 격려하며, 모든 사람에게서 인간적 진가와 존엄성을 찾아내는 능력을 키워가는 것은 우리 자신의 존엄과 가치를 드높이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약정 토론 1:윤기원(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변호사)

 

대한 변호사 협회에서도 양심수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 말 자체가 법률적인 용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한 변호사 협회에서 구체적으로 이런 경우는 양심수라 해도 되지 않을까 하고 예시한 것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정치적인 이유로 투옥된 사람, 헌법에 위반되는 법률에 의해서 투옥된 사람, 민주화 운동의 과정에서 불순한 동기 없이 실정법을 위반한 모든 사람, 경직된 정치 상황에서 형평을 잃은 중형을 받은 사람, 국내 실정이 어두운 탓으로 국가 보안법 등 실정법을 위반한 사람, 고문당하거나 수사 기관에 의해서 범죄 날조에 정치적 강압의 방편으로 처벌되었거나 이에 항거했던 사람, 기타 민주화 운동, 노동 운동, 농민 운동과 모든 사건의 관련자, 민가협에서 주장하고 있는 458명의 양심수 대부분이 포함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 한국 사회에는 상당수의 양심수가 있다는 것이 동의되고 인정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많은 양심수가 양산되었을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제도가 양심수를 양산했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양심수가 나오게 된 근거 법령은 국가 보안법입니다. 

 

그 법이 국가 안보보다는 정권 안보에 이용되었고, 수사 기관이나 법원이 엄정한 재판을 한 것이 아니라 국가 권력의 요구에 따라 법 집행을 해왔기 때문에 이러한 양심수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제도의 문제, 국가 권력의 문제를 먼저 정리한 후에야 양심수가 줄어들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렇게 양산된 양심수에 대해서 사면을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단, 양심수 사면은 명망가 중심이 되어서는 안되며 이름도 거론되지 않고 몇 십 년이나 감옥에 갇혀있는 양심수나 고문으로 조작된 양심수들이 최우선으로 고려되어 석방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우리 사회가 인권에 있어서만은 세계적 수준의 선진국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약정 토론 2:박동균(가톨릭대학교 교수, 신부)

 

저는 교회의 입장에서 인권에 관한 문제를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이번 세미나 주제는 “인간 존엄성과 양심수”이고 세계 인권 선언 50주년 기념 행사의 일환이기도 하죠. “인권은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며 천부적이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천부적이란 말은 권위나 권력 또는 정부, 다른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받은 것이므로 천부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권의 개념은 이미 교회 안에서, 성사 안에서 예수님께서 이미 선포하신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인권 발전에 상당히 의미 있는 역할과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우리도 잘 알다시피 유교의 엄격한 반상, 남녀 구별이 있는 사회에서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과 실천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던 것입니다. 남녀 구분, 반상 구분, 빈부 귀천 없이 복음이 선포됐다는 것만으로도 한국 사회에서 인권 발전에 초석을 놓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 분이 말씀해 주신 이런 기초적인 자료들, 기초적인 논고를 전제로 해서 인권의 천부적인 의미를 살릴 수 있고 발전시킬 수 있는 의미들을 교회가 이제 보여주어야 할 때가 오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일반토론

 

사회자 : 참석하신 분들께서 질문이나 의견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참석자 1 : 저는 민가협의 회원입니다. 민가협은 ‘민주화 실천 가족 운동 협의회’로서 양심수를 둔 가족들이고 양심수 석방 운동과 국가 보안법 폐지 운동을 14년이 지나도록 하고 있는 단체입니다. 너무나 감사하여 질문이라기보다 감사하다는 말로 시작해서 감사하다는 말로 끝맺을까 합니다. 50년 만에 정권 교체가 되어서 어느 해보다 희망을 가졌는데 지난 3.13 석방이 저희들에게 좌절과 절망을 주었습니다. 양심수들이 전원 석방되기를 바라는 가족들의 한을 씻어주시고 빠른 시일 내에 나올 수 있도록 힘써주시길 바라며 거듭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사회자 : 민가협에서 겪은 그 동안의 고통은 정말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자리를 마련한 것도 인간의 존엄성이라고 하는 인간의 문제를 교회가 외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를 윤리적으로 판단하고 지침을 내리는 것도 교회의 임무입니다. 

 

참석자 2 : 이런 세미나를 주최해 주신 주교회의 정의 평화 위원회에 감사 드립니다. 

 

우리 나라에서 양심수가 생겨나는 이유는 첫째, 지킬 수 없는 법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안 지키다 보면 양심수가 됩니다. 

 

둘째, 재판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양심수가 생깁니다. 헌법에도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재판한다고 되어있는데 양심에 따라 판결하지 않은 예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양심수를 석방하기 위해서 첫째는 잘못된 법을 고쳐야 하고, 둘째는 잘못한 재판을 고쳐야 합니다. 법을 고치고 잘못한 재판을 고치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고, 그 다음 마지막으로 사면에 기대해야 합니다. 

 

참석자 3 : 두 발표자께서 어려운 주제를 애정을 가지고 연구하시고 확신을 가지고 발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느님께 받은 양심을 잘 살려서 우리 나라에서 양심수를 줄일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두 분 발표자와 두 분 약정토론자의 좋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한 교수님께서 포함시킨 양심수와 민가협에서 말하는 양심수의 숫자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요? 

 

한인섭 : 민가협과 인권 운동 사랑방의 자료를 보았는데 각각 숫자가 달랐습니다. 기타 학생, 노동, 철거민 문제는 증감될 수 있기 때문에 거기서 나오는 유형상의 차이는 없지 않나 생각됩니다. 8.15 특사를 앞두고 우리 민족이 분단 50주년으로 받은 고통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성경을 보면 희년에는 모든 고통을 상실시키고 완전히 거듭나는 절차가 있는데, 이러한 과거 청산과 국민 화합의 정신으로 초장기수의 사면과 상호 교환 프로그램을 실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가톨릭에서 진지하게 프로그램을 짜면 어떨까 생각됩니다. 

 

사회자 : 결론적으로 말해서 우리 나라에 양심수는 분명히 있습니다. 2000년 대희년을 준비하며 양심수 석방은 매우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서 가톨릭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걸으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서 걸어야 합니다. 우리의 잘못을 같이 속죄하면서 가톨릭 교회, 주교회의 정의 평화 위원회는 우리 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도와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사목, 1998년 10월호, 한인섭(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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