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홍)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윤리신학ㅣ사회윤리

[사회] 한국의 경제 위기와 교회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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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7 ㅣ No.404

한국의 경제 위기와 교회의 역할

 

 

여기에서 IMF의 개입과 관련된 한국의 ‘경제 위기’를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경제적 관점이 아니라 경제 사회적인 관점에서 보고자 한다. ‘교회의 역할’은 교회가 단독으로 사회를 위해 무엇을 일방적으로 해야 할 것이냐는 관점이 아니라 경제 위기의 현실을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분석 평가해, 같은 국민들인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모든 이들과 함께 협력할 수 있도록 무엇을 제안할 것이냐는 관점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그 근거는 이렇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맡겨 주신 고유한 사명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질서에 관한 것이 아니고, 교회에 정해 주신 목적은 종교적 질서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종교적 사명에서 신법(神法)을 따라 건설되고 견고케 되어야 할 인간 공동체에 이바지할 직무와 빛과 힘이 나오는 것이다.”1) 우선 경제 위기의 상황, 이에 대한 사회/윤리적 분석 평가 그리고 경제 위기 극복의 윤리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1. 경제 위기 상황

 

여기에서 우리는 IMF 구제 금융과 더불어 당면하게 된 경제 위기뿐 아니라, 이러한 구제 금융의 요청에 이르기까지의 경제 위기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1) IMF의 개입을 부른 위기

 

경제 전문가들이 한국의 위기 상황을 진단한 결과를 보면, 그 원인과 해결책들이 다양하다. 그러나 가장 심각하게 보이는 요소를 몇 가지로 요약한다면, 대내적으로 우선 대기업들의 연쇄 도산과 금융의 부실화가 있었다. ‘한보’에서 시작한 대기업의 부도가 다른 부도로 이어져 재계 8위인 ‘기아’의 부도에까지 이르면서 금융 시장이 일대 혼란의 상태로 빠져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상당한 규모의 부실 채권을 안고 있던 금융 기관들의 부실은 겉잡을 수 없을 만큼 불어났다. 그 다음은 정부의 정책 대응 실패였다. 30대 그룹 안에 드는 대기업들의 잇따른 부도를 막기 위해 정부는 ‘부도 유예 협약’이라는 대책을 내놓았으나, 금융 기관의 불신만 조장한 채 오히려 부도를 촉진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경제에 대한 불신으로 외국 자본은 1997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철수하기 시작했다. 끝으로 과다한 외자 차입이다. 국내 금융 기관들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무모할 정도로 외화를 해외에서 차입했으며 특히 종금사들이 차입한 외화는 200억 달러를 넘었다. 설상가상으로 전체 차입 중 중단기 차입 비중이 60%를 넘어섰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국 자본은 주식 시장에서 철수하기 시작했고 국내 금융 기관에 빌려준 돈까지 회수하기 시작했다. 결국 달러가 부족한 금융 기관들은 국내 외환 시장에서 환율 수준과는 상관 없이 달러를 매입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 과정에서 정부의 외환고는 바닥이 난 셈이다. 그뿐 아니라 경제 전문가들은 대외적인 요인으로서 경상수지 적자 시기에 이뤄진 성급한 자본 시장의 개방도 지적했다. 자본 시장이 개방된 경제에서는 해외 자본을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나 금융 기관이 조달한다. 따라서 이것들이 부실화하면 해외 자금은 민감한 반응으로 철수하거나 회수된다. 그뿐 아니라 아시아 지역 내의 환율 불균형도 작용했으며 교역 조건도 악화되었다. 몇몇 업종의 호황에도 업황은 부진을 면치 못했으며, 그런데도 대규모 투자는 지속되었고 수출 감소와는 상관없이 수입은 계속 늘어만 갔다. 그 결과는 경상수지 적자였다.2) 

 

2) IMF 체제 하의 위기

 

IMF 구제 금융 지원 조건은 대부분 금융 구조 조정과 기업 구조 조정에 집중되어 있다. 금융을 구조적으로 조정한다는 말은 금융 기관의 부실 채권을 정리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부실 금융 기관 자체를 정리해서 금융 부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회생 가능성 없는 금융 기관 폐쇄-국제적으로 인정된 회계 법인의 감사 의무화-외국인 은행 현지 법인 증권사 설립 98년 중반까지 허용-건전성 감독 기준을 BIS 감독 핵심 원칙에 맞춰 상향 조정-예금 보장 제도의 부분 보장제로 전환 등을 의미한다. 기업을 구조적으로 조정한다는 말은 국제 회계 원칙 적용으로 재무제표 투명성 제고-정부의 은행 경영과 대출 결정 개입 금지-부채 비율 축소-계열사간 상호 채무 보증 관행 시정-노동 시장 유연성 제고와 고용 보험 제도 기능 강화 등을 의미한다. 이러한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금융 기관들이나 기업들은 그 취약한 경영 구조 때문에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질 우려까지 있다.

 

 

2. 경제 체제의 사회/윤리적 분석 평가

 

우리에게 닥쳐온 경제 위기는 IMF 개입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의 경제 체제 안에 싹트고 있었다. 이것을 재벌 기업 구조, 정부 관료주의 그리고 사유 재산 제도의 관점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1) 산업 지배 경제 구조

 

한국에서는 경제 개발 과정에서 성장 지상주의가 팽배했다. 물론 대기업들이 한국 경제 개발에 기여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고성장의 절대적 목표를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사용해도 괜찮았기 때문에, 정당한 절차가 무시되어도 좋다는 사고 방식이 조성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성장 목적은 기업이거나 개인들이 양적 확대에만 몰두하게 함으로써 사회의 정직성을 무시하는 시대적 정신을 낳게 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상품이 생산되기만 하면 수출되고 판매되는 상황이었으므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료를 확보하고, 무리하게라도 노동자들에게 일을 시키고, 공장 시설을 늘리고, 주문을 확보하여 많이 생산하기만 하면 되었다. 이러한 때에 기업이 정직하게 상품 가격을 정하고, 정당한 노임을 지불하고, 세금을 성실하게 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로 보였다. 적법이냐 또는 불법이냐를 물을 필요없이 소득이 있는 곳을 먼저 찾아 자기 이익만 최대화하면 그만이었다. 개인이나 기업의 부정직한 점이 발견되더라도 법에 따라 엄격한 심판을 받기보다는 뇌물 등의 불법 행위를 통해 적당히 넘어갔던 것이다.3) 이러한 상황에서는 재벌 기업, 곧 자본이 무엇을 생산해야 할지, 어떻게 생산해야 할지 그리고 이윤을 어떻게 분배해야 할지를 혼자 결정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경제 개발 과정에서 그러한 부정직성이 높아진 결과 경제의 효율성은 오히려 낮아졌다.

 

이렇게 재벌-중견 기업들은 한국 경제의 수출 주도형 산업 구조에 따라 그 동안 성장의 주역을 담당해 왔지만, 적극적인 기술 개발과 상품 개발, 정보와 시장 전략을 소홀히 한 결과 그들의 제품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게 되었다. 따라서 현재와 같이 모든 분야에 분할 진출해서는 세계 기업화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우리가 경제 위기를 맞게 되었다는 사실로 미루어보아 그러한 경제 체제, 곧 한국 자본주의 체제에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문제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그 기능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의 자본주의가 그 “경제 발전의 근본 동기는 이윤이고, 경제의 최고 법칙은 자유 경쟁이며, 생산 수단의 사유권은 절대적 권리로서 사회적인 한계도, 의무도 없다는 주장”4)이 아니기를 바라면서도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그 이유는 자본이 모든 분야에서 근로자들의 “인간 존엄성도, 경제 활동의 사회적 성격도, 사회 정의와 공동선도 고려하지 않고” 기업과 경제 체제 전부를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이용”하려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5) 따라서 여기에서는 어떠한 자본주의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만일 자본주의라는 말로 기업, 시장, 사유 재산 그리고 이에 따르는 생산 수단의 책임, 경제 분야에서 자유로운 인간 창의력의 기본적이고 긍정적인 역할을 인정하는 체제를 의미한다면, 기업 경제, 시장 경제 또는 단순히 자유 경제를 논하는 것이 더 적합할 수도 있겠지만, 대답은 분명히 긍정적이다.”6) 그렇지 않으면,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2) 정부 관료주의

 

한국의 경제 개발은 정부의 절대적인 주도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주도가 경제 개발을 조속히 이룩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기업의 사업 참여나 외국 자본의 도입, 공장 건축, 금융 기관으로부터의 차입 등 모든 기업 활동이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가능하도록 되어있었다. 부정한 정치 자금이 그러한 과정에서 조달되었으며 공무원의 부패도 그러한 정부의 허가권에서 비롯된 것이다. 재벌의 업종 진출, 외자의 도입, 은행 대출의 획득, 다른 기업의 인수와 합병, 면세와 감세, 보조금 수출 지원 금융의 사용, 정책 자금의 조달 등은 정부의 결정과 지원으로 가능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기업에 의한 정치 자금의 부담, 뇌물, 부당한 권력의 행사 등 여러 가지 부정 부패가 개입했다. 이렇게 한국 사회에서는 관료 체제가 강력한 이익 집단으로 변했으며, 산하기관 또는 유관 기관은 관료 기구의 인사 적체 해소나 퇴직자들의 직장 제공처로 이용되었다. 관료 체제가 이익 집단화하면 국가 정책도 국가적 차원에서의 이익, 불이익을 판단하기보다는 자기 부처 소속 직원 차원에서 이익, 불이익을 판단하게 된다.7) 한국 경제에서 재벌 기업과 같은 경제 권력의 집중은 지배권 쟁취를 위한 투쟁을 유발했다. [사십주년]도 이미 그러한 폐단을 지적한 바 있다. 첫째는 “경제 영역 자체의 독점을 위한 투쟁”이며 그 다음은 경제적 투쟁에서 “국가의 자원과 권력을 획득하고 이용하기 위한 투쟁”이다.8) 이러한 자유 경쟁은 경제적 독점으로 변했으며 공동선을 책임져야 할 국가는 경제적 독점의 시노(侍奴)로 전락했다. “이윤 추구의 욕망은 과도한 지배욕”으로 이어졌다. “공동선과 정의에 입각해서” 왕과 같이 다스리고 최고의 중재자가 되어야 할 “국가는 인간의 욕망과 탐욕에 사로잡혀 노예”가 되고 말았다.9) 이러한 상황에서 재벌 기업들은 독점적 지위를 누릴 수 있었으나, 중소기업들은 경제적 독립성을 잃고 대기업의 하청업체로 전락했다. 

 

3) 사유 재산 제도

 

한국 경제의 산업 지배 구조는 사유 재산 제도에 기초하고 있다. 소비재가 아니라 생산 수단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사회는 자본이 지배하고 정치 권력이 그것을 비호하고 비소유자들이 지배당하는 사회일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고성장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기업 중심 정책을 펴온 결과로, 소수의 기업들이 거의 모든 산업 부문에 진출하여 재벌을 형성함으로써 재벌 경제는 한국 경제의 특징처럼 나타났다. 이러한 재벌 경제가 보여주는 부의 편재 현상과 재벌 형성 과정의 불공정성은 국민에게 부도덕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동안의 고성장 과정에서 소득 분배도 재벌과 같은 사업 소유자와 부동산 소유자 그리고 일부 부패한 권력 계층에는 매우 유리한 반면, 노동자나 농민, 도시 영세민 등 빈민층에는 매우 불리했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형성되었다. 재벌들의 재산 증식은 땅 투기나 유가 증권 투자 등 비생산 활동이나 탈세, 회사 자산의 유용 등 건전하지 못한 활동이나 부정직한 행위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였다. 재벌들은 그 일가 친족이 소유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경영까지도 족벌이 지배하고 있었다. 물론 한국 사회에서 사유 재산권은 지나치게 행사되는 동시에 정부 권력에 의해 침해되기도 했다. 그러나 사유 재산에 대한 조세나 상속이나 증여 제도 같은 것은 매우 느슨한 편이었다. 실명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상황에서 부의 형성과 거래와 세습 등이 공개되지 않았으며, 소득과 재산에 대한 과세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따라서 불로 소득과 탈세 등이 보편적으로 행해졌다.10) 그 형태가 어떻든 사유 재산에 대한 개인이나 기업의 권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적이고 배타적인 권리가 될 수 없다. 교회는 “사유 재산의 두 가지 역할, 곧 개인들에 대해서는 개인적 역할 그리고 공동선을 목표로 해서는 사회적 역할을 부정한 일이 없다.” 사유 재산의 “사회적, 공적 성격을 부정하거나 감소시키면 개인주의로 변하든가 개인주의에 병행하듯이, 그 사유 재산의 사적, 개인적 성격을 배제하거나 감소시키면 별 수 없이 집단주의에 떨어지거나 그 오류에 물들기” 때문이다.11) 그리스도교 전통은 그러한 사유 재산의 “권리를 절대적이고 침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는 결코 긍정한 일이 없다.”12) 사유 재산권은 지상 재화에 대한 모든 이들의 공동 사용권으로 조절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십주년]은 “사적으로 소유할 수도 있고 후손들에게 유증(遺贈)할 수도 있는” 권리는 ‘자연권’이기 때문에, 이러한 자연권 “자체는 온전하고 불가침적으로 남아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13) 이것은 사회/윤리적 차원에서 ‘자기 고유의 것으로 소유하고 사용할 권리’에는 ‘자기의 것을 후손들에게 유증할 권리’가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권리는 각 사회의 현실을 감안해서 실정법적으로 언제, 어디에서, 누가, 누구에게, 얼마를, 어떠한 조건으로, 어떠한 양식으로 넘겨줄 수 있는지에 따라 행사되어야 한다. 따라서 그러한 사유 재산권이 남용되어서는 안된다.

 

 

3. 경제 위기 극복의 윤리성

 

IMF 개입과 더불어 당면하게 된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다 함께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 위기는 경제적으로만 또는 정치적으로만 극복될 수 없을 것이다. 사회윤리적으로도 동시에 극복되어야 한다. 모든 국민이 함께 고통을 분담해야 하고,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말은 개인이나 집단의 이기주의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1) 기업-자본 : 금융과 기업의 구조 조정

 

IMF 구제 금융 지원 조건은, 이미 앞에서 지적했듯이, 대부분 금융 구조 조정과 기업 구조 조정에 집중되어 있다. 이들이 자신들의 구조조정을 위해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러한 구조 조정과 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해야 할 입장이며, 사실은 우리 모두가 그것 때문에 고심하고 있다. 지난 4월 22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종합 보고서에 따르면, 앞으로 5년 동안 금융 실업 구조 조정을 완료하는 데-부실 채권 정리 29조 9천억원, 은행 증자 17조 4천억원, 정리되는 금융 기관의 예금 대지급금 19조 7천억원 등 67조 8천억원(이자 포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같은 날 상공회의소 초청 강연에서 보스워스 주한 미국 대사는 미국 기업인들은 한국 기업들의 자산 가치가 비효율적으로 높게 책정되어 있고 한국 기업인들이 경영권을 공유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외자 유치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은행 감독과 규제를 강화, 먼저 은행 경영을 개선하고 개선된 은행을 통해 기업들의 부채 조정과 자산 매각 등 구조 조정을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자본 시장의 투명성을 강조해 기업 회계 관행 개혁, 상호 지급 보증 철폐, 소액 주주 권한 강화를 현실화하지 못하면 외국인 투자와 합병, 전략적 제휴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금까지 외환 위기 극복뿐 아니라 그러한 구조 조정을 돕기 위해 전개되거나 시도되고 있는 대책들 중에는 정리 해고 도입, 금 모으기 운동, 40억 달러 규모의 외평채(外平債) 발행, 지주회사제 도입, 공공 부문의 구조 조정, 외국인에 대해 기업 인수 합병(M&A) 전면 허용과 토지 취득 자유와 이에 따르는 세금 감면, 거대 공기업과 기간 산업에 대한 외국인의 자본과 경영 참여폭 확대, 외국 자본 대기업 언론의 유선 방송 참여 허용 등이 알려져 있다. 이러한 대책들이 겉돌거나 남용되지 않고 그 효과를 내야 할 것이다. 물론 30-40년에 걸쳐 이룩한 국부를 제값도 받지 못하고 외국인들에게 팔아 넘길 수 있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느 국적’의 자본이 기업체를 소유하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위해 어떠한 조건으로 어디에 자본이 투자’될 수 있느냐가 아니겠는가? 고용 창출과 직결된 문제이다. 일방적인 이익만을 추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구조 조정과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자금은 필요하다. 자금이 없다면 노동이 있을 수 없고, 노동이 없다면 기업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자본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만들어야 한다. 우리 모두 여기에 동참해야 한다. 그렇지만 자본은 자본주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를 위해서도 투자되어야 한다. 이렇게 자본의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기능이 전제된다면, 자본을 철폐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어야 한다. 인간은 자기가 “처리할 수 있는 소득을 일시적 기분에 의해 처분할 권리가 없다.”14) 오히려 “자기가 처리할 수 있는 더 많은 재원을” 노동 보수의 원천인 “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사용”하는 이는, “실제로 유익한 상품들을 생산하는 데 사용하는 한”, 시대의 요구와 부합하게 “관대한 덕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15) 따라서 자본이 “낭비, 사치, 이기심 그리고 지루한 향락에 손실되든가 혹은 이윤을 얻지 못하고 축적되거나 잠들어 있으면 안된다.”16) 그러나 투자에서 기업주들은 “자본을 반드시 생산에 투자해야 하며 그 투자에 있어서 먼저 공동선을 생각해야 할 윤리적 의무를 지닌다. 공동선은, 참으로 유익한 재화를 생산해 고용을 확충하고 새로운 고용을 창출하기 위한 노력을 요청하고 있다. 공동선에 대한 책임이 없는 사유 재산의 권리란 상상할 수 없다. 사유 재산이라고 하는 재화는 모든 인간을 위한 한층 높은 원리에 속한다.”17) 따라서 “생산 수단을 개인의 재산으로 고립시켜 노동에 대립되는 자본의 형태”로 만들거나 더구나 그것으로 “노동을 착취하려고” 한다면, 이는 바로 그러한 수단과 그 소유의 본질 자체를 거스르는 것이다. 그러한 “수단은 노동을 거슬러 소유될 수 없고 한갓 소유를 위한 소유가 될 수 없다.” 그 이유는 개인 소유이든, 공공 소유이든 또는 집단 소유이든, 소유할 수 있는 “정당한 명분은 오로지 노동에 기여하는 것”이고, 노동에 기여함으로써 그 질서의 첫 번째 원리인 “재화의 보편적인 목적과 재화의 공동 사용권을 성취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적절한 조건 하에서 “생산 수단의 일정한 사회화”를 배제할 수 없다.18) 여기에서 ‘사회화’는 ‘국유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2) 노동 권리 : 실업 대책

 

IMF의 금융 구조 조정과 기업 구조 조정 요청과 더불어 구제 금융이 유입되면서 우리는 긴축 재정과 저성장 정책을 펴야 하며, 고금리에 따른 중소기업 도산, 수입재 가격 인상에 따른 물가 상승, 대량 실업, 사회 복지 서비스 감소 등 견디기 어려운, 피부로 느끼는 고통을 분담해 극복해야 할 것이다. 지난 4월 22일 상공회의소 초청 강연에서 보스워스 주한 미국 대사는 한국의 경제 위기는 최근 IMF 구제 금융, 단기 외채의 중장기 전환, 40억 달러의 국채 발행 등으로 일단 진정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이나 국내 투자와 소비 수요 감소, 생산성 감소, 기업 도산, 실업률 상승, 원화 평가 절하에 따른 인플레이션 효과에 의한 실질 소득 감소 등으로 과거 몇 달 동안보다 더욱 가혹한 시련을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IMF의 개입과 동시에 금융과 기업의 구조 조정에 따라 특히 실업 사태가 발생한다는 것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이것이 한국 경제 위기의 가장 심각한 현상일 것이다. 지금까지 논의되고 있는 것 중에는 실업 대책 예산, 실직자들을 위한 기금 마련, 사람 줄이기보다 일감 나누기, 공공 근로 사업, 삼천만 저축 운동, 정리 해고 남용 방지, 제1, 2기 노사정위원회 등이 알려져 있다. 이러한 해결책들이 겉돌거나 남용되면 안되고, 그 효과를 내야 한다. 노숙자나 실직자에게 숙소나 식사를 제공하는 것도 긴급 구조책으로서 필요하겠지만, 가능하다면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조적 대책 마련이 더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지상의 평화]에 따르면, “본질적으로 사회적 존재인 인간들은 공동으로 살아야 하며, 상호 선익을 도모해야 한다. … 그래서 각자는 그러한 권리들과 의무들이 더욱 성실하고, 더욱 효과적으로 이행되는 사회적 환경을 이룩해야 한다.”19) 이러한 “연대성의 원리에 따라 인간은 그 형제들과 더불어 모든 차원에서 사회의 공동선에 공헌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사회 교시(敎示)는 온갖 형태의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인 개인주의에 반대한다.”20) 국가도 “직접적인 방법으로 연대성의 원리에 따라 더 빈곤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동 조건을 결정하는 집단들의 자립성을 제한하고, 실직한 노동자가 최소한 생계 유지에 필요한 것을 가질 수 있도록 함으로써” 자기 몫을 해야 한다.21) 그리스도교 전통에 따르면, 인간이 사회를 위해 있지 않고 사회가 인간을 위해 있다. 인간은 “사회 생활의 주체, 기초이자 목적이며, 또 그러한 것으로 남아있어야 하기” 때문이다.22) 그런데 인간의 존엄성을 논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인간의 권리와 의무를 논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생존의 권리, 신체 보전의 권리, 생활의 품위를 유지하기에 적합한 수단에 대한 권리가 있으며, 특히 양식, 의복, 주거, 휴식, 의료 행위, 사회 봉사와 관련해서 그렇다. 따라서 … 실업의 경우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생계 수단을 상실하는 경우에는 사회 보장의 권리가 있다.”23) 특히 근로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노동은 모든 이의 “의무인 동시에 권리이다.”24) 노동은 “가정 생활을 이루는 기본”, “가정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조건”이 된다. 그 이유는 가정은 “인간이 정상적으로 얻는 생계 유지 수단을 노동을 통해 요구하기 때문이다.”25) “실업이 거대한 인구, 특히 젊은이들을 한계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사실은 견딜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이유로, 정부는 물론 개인과 사기업이 직면해 있는 최우선의 과업은 고용의 창출이다.”26)

 

3) 정부-국가의 역할

 

경제 전문가들에 따르면, IMF 구제 금융 지원 전까지 정부는 기업의 발목을 잡는 정부로 보였다. 그렇다면 이제는 규제 완화가 기업들의 경쟁력을 키워주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의 경제 활동의 자유에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 규제보다는 사후 감독으로 정부의 정책 수단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 이미 IMF 구제 금융 지원 조건에도 정부의 은행 경영과 대출 결정 개입 금지, 부실 기업 처리 방안으로 기업을 구제하기 위한 정부 보조와 세제 지원 금지 등이 명시되어 있다. 정부의 기능이 바뀌면, 정부 기업의 문제도 민영화로 풀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 노사정위원회의 활동도 있다. 특히 금융과 기업의 구조 조정을 위한 정부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어렵다.

 

「자유의 자각」에 따르면, “보조성의 원리에 따라 어떠한 국가나 사회도 결코 개인들과 중간 집단들이 기능할 수 있는 차원에서 이들의 진취성과 책임을 대치할 수 없으며, 그들의 자유에 필요한 공간을 제거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교회의 가르침은 모든 형태의 “집단주의를 반대한다.”27) 「백주년」에 따르면, 국가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보조성의 원리에 따라 많은 고용 기회와 부의 원천을 제공하는 경제적 활동의 자유로운 수행에 유리한 생산 조건들을 만들어줌으로써” 자기 몫을 해야 한다.28) 이렇게 국가는 공동선을 실현한다. 공동선이란 “집단이나 구성원 개개인으로 하여금 더 완전하고 더 용이하게 자기 완성을 달성할 수 있게 하는 사회 생활상 여러 가지 조건들의 총체를 말한다.”29) 그러나 국가가 공동선을 실현하는 방법이 어떤 때는 좀 극단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으나 필요한 때가 있다. 비오 11세는 “공공 이익을 위해 사인(私人)들 수중에 그대로 둘 수 없을 만큼” 어떤 재산(재벌)의 힘이 막강하다면, “국가에 보유되어야 한다고 당연하게 말할 수 있다.”고 보았다.30) 비오 12세는 “국가는 공동 이익을 위해 사유 재산권의 행사를 규제할 목적으로 개입할 수 있으며, 공평한 해결책이 없을 경우에는 적합한 보상을 주고 공용 수용(公用收用)도 결정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31)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목헌장도 사유 재산의 “공공 재산으로의 이전은 권한이 있는 권위에 의해서, 공동선의 요청에 따라, 정해진 범위 내에서 공평한 보상을 주고 할 수” 있으며, 누가 “공공 이익에 저촉되게 사유 재산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공권력의 소관이다.”라고 재천명했다.32)

 

 

4. 결론

 

IMF의 구제 금융 지원과 더불어 한국의 외채 추가 부담을 논한다면, 다음과 같은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2천억 달러의 총 외채를 환율 1,500원으로 계산할 경우, 국민 1인당 외채 부담액은 700만원이나 된다. 연 300억 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를 달성한다는 가정에서 그 빚을 다 갚으려면 6-7년이나 걸릴 것이다. 이것은 한국 국민에게 가혹한 시련이 될 것이다. 정부, 기업 그리고 개인들은 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로서 이 기회에 한국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생산적 사고 방식’과 ‘절약적 생활 양식’을 취할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 힘을 합하여 현 경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그런데 근로자의 날인 지난 5월 1일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의 과격 시위가 벌어졌다. 그렇다면 앞으로 근로자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노조의 시위나 파업이 예상된다. 물론 다른 방법이 없을 경우 노조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권리는 무조건적 절대 권리는 되지 못한다. 구체적 상황에서 평가되어야 할 권리이다. 현 경제 위기는 이 나라의 경제 위기이기 때문에 일반적 노사 분규의 상황과는 다르며, 노조의 시위나 파업의 목적도 이 나라의 권익이 아니라 근로자들의 권익이다. 그렇다고 해서 근로자들만 희생해야 한다고는 말 할 수 없다. 재벌 기업들도 자신의 기득권만을 주장하지 말고 구조 조정과 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해 과감히 거품을 제거해야 한다. 그들도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 재벌 기업들과 근로자들은 다 함께 이 나라의 공동선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 이러한 공동선을 조금이나마 생각한다면, ‘집단 이기주의’가 아니라 ‘연대성’에 입각해서 양자는 공동선을 위해 희생도 각오하고 협력해야 한다. 이것은 사회 정의의 문제이다. 정부는 이렇게 공동선의 실현을 주도하는 조정자로 나서야 한다. ‘노사정위원회’뿐 아니라 그 이상도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국가는 개인들이나 집단들을 대치하거나 흡수하지 않으면서도 그들 스스로 공동선 실현에 참여하도록 ‘보조성’에 입각해서 개입하는 방법이다. 따라서 국가가 진정으로 공동선의 실현을 위해 노조의 과격 시위나 파업에 대해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말한다면, 공동선의 실현을 위해, 앞에서 이미 사유 재산 사용에 대해 언급했듯이, 재벌 기업에 대해서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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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목헌장, 42항.

2) 권순우 외, “긴급 해부, ’98 IMF 시대 한국 경제 - 현황과 전망” [서해문집], 1998, 17-25면 참조. 

3) 이영근, [한국 경제의 성장과 발전], 比峰출판사, 1997, 140-142면 참조. 

4) [민족들의 발전], 26항. 

5) Utz IV, 148; [사십주년], 40항. 

6) [백주년], 42항. 

7) 이영근, 앞의 책, 1997, 126. 261-262면 참조. 

8) Utz IV, 154-155; [사십주년], 41항. 

9) Utz IV, 156; [사십주년], 42항. 

10) 이영근, 앞의 책, 55. 127. 129면 참조. 

11) Utz IV, 92; [사십주년], 19항. 

12) [노동하는 인간], 14항. 

13) Utz IV, 95; [사십주년], 21항. 

14) Utz IV, 96; [사십주년], 22항. 

15) Utz IV, 97; [사십주년], 23항. 

16) La Documentation Catholique, 1952, 19항. 

17) [자유의 자각], 87항. 

18) [노동하는 인간], 14항. 

19) Utz XXVIII, 124; [지상의 평화], 31항. 

20) [자유의 자각], 73항. 

21) [백주년], 15항. 

22) Utz 3615; Utz IV, 414; 사목헌장, 12항 참조. 

23) Utz XXVIII, 104; [지상의 평화], 11항. 

24) Utz IV, 239; [어머니요 스승], 44항. 

25) [노동하는 인간], 10항. 

26) [자유의 자각], 85항. 

27) 같은 책. 73항. 

28) [백주년], 15항. 

29) 사목헌장, 26항. 

30) Utz IV, 161; [사십주년], 46항. 

31) Utz 807.

32) 사목헌장, 71항.

 

[사목, 1998년 6월호, 김춘호(서강대학교 교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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