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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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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국가보안법과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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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7 ㅣ No.433

국가보안법과 양심

 

 

1. 들어가며

 

"요즘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되는 사람이 있습니까?"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일반인뿐만 아니라 변호사들로부터도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국가보안법 사건을 자주 접하는 편인 나에게는 아주 뜻밖의 질문이지만, 그만큼 국가보안법의 존재가 우리들의 생활과 뇌리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음의 반증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정치적·사상적 이유로 박해받는 사람들에 대해 무감해진 탓도 있을 게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반인권 악법을 꼽으라면 열에 아홉은 국가보안법을 지적할 것이다. 그만큼 이 법은 제정 당시부터 지금까지 대표적인 악법으로 지탄받아 왔고 국제 사회로부터도 수차 폐지 권고를 받아왔으며 악법의 대명사로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해묵고 식상한 주제일 수도 있겠지만, 이 법의 개폐는 우리 사회 인권의 현주소를 가늠할 지표라 할 것이고, 참여 정부를 자처하며 새로 등장하는 노무현 정부에 있어서도 새 법과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낡은 법과 제도를 청산하는 것이 순서라는 점에서,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우리 시대에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02년 정기 국정 감사 자료에 의하면, 김대중 정부 출범 후 1998년부터 2002년 8월까지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의 통계는 다음과 같다. 1998년 입건 785명에 구속 465명, 1999년 입건 506명에 구속 312명, 2000년 입건 286명에 구속 130명, 2001년 입건 247명에 구속 126명, 2002년 1월부터 8월까지 입건 151명에 구속 92명으로 나와 있다. 과거 군사 정권 때보다는 많이 줄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매년 200명 가량 형사 처벌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법의 피해자가 국민 전체라는 점이다. 이 법의 과도한 기본권 제한과 운용상 무소불위의 위력은, 사람들의 머릿속에마저 심리적 분단선을 긋고 진보적 정치 활동에 대한 두려움을 깊이 새겨 놓아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 걸쳐 자유로운 사색과 활동을 억압하고 발전을 가로막아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 국가보안법의 악법성

 

국가보안법, 왜 문제이고 무엇이 문제인가? 먼저, 국가보안법은 법률로서의 최소한의 형식을 구비하지 못하였다는 '위헌성'과 '법적 부당성'의 지적을 끊임없이 받아 왔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그 성격과 내용이 반민주, 반민족, 반통일적 악법이라는 점에 있다.

 

1) 반민주 악법성

 

국가보안법은 그 태생, 제정 배경, 실제 운용 등 그 어느 것을 살펴보아도 정당성을 찾기 어렵다. 국가보안법은 일제가 독립 운동을 탄압하며 식민 통치의 수단으로 사용해 온 치안 유지법이 탈바꿈한 것으로, 건국 당시 이승만을 정점으로 하는 친미 극우 세력이 정권을 구축, 공고화하고 정치적 반대 세력을 탄압하며 자주 통일을 염원하는 국민의 진출을 막고 사상을 통제하기 위한 장치로 제정된 것이다. 이에 국가보안법은 지금까지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억압의 도구로 사용되어 왔을 뿐 아니라 정치 민주화 투쟁과 노동자, 농민의 생존권 투쟁, 통일 운동을 탄압하는 도구로 사용되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부문의 진보와 발전을 저해하고 국민의 눈과 귀를 가로막아 민주주의적 의사 소통과 민주적 개혁을 탄압해 왔다. 국가 안보라는 미명 아래 대한민국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거나 북한에 동조, 찬양한다는 딱지를 붙여서 말이다. 이 점에서 국가보안법은 민주주의의 장애물로서 반민주 악법으로 기능하고 있다.

 

2) 반민족, 반통일 악법성

 

한편, 국가보안법은 반국가 단체라는 개념을 체계적쇓논리적 전제로 하는데 그 반국가 단체란 특히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지칭쇓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1) 이와 같이 국가보안법은 특히 북한을 '적'(반국가 단체)으로 규정해온 것인데, 최근의 정세는 '북'을 '적'으로 규정한 국가보안법의 논리적 모순과 현실적 모순을 한층 심화시키고 있다. 특히 2000년 6.15 남북 공동 선언 이후 남북 관계는 대전환이 일어났다. 지금까지 9차례의 남북 장관급 회담과 수차례의 이산 가족 상봉이 이루어졌고, 경의선과 동해선을 연결하는 철도와 도로가 마무리되고 있으며, 다양한 부문의 각종 민간 교류도 날로 확대되고 있고, 지난 해 아시안 게임에서는 북의 응원단이 대거 내려와 전 국민적 관심과 호응 속에 인공기를 흔들며 응원하는 일까지 있었다. 남북 관계는 앞으로도 더욱 발전할 것이다. 이러한 남북 관계의 발전은 한편으로는, '북'을 '적'(반국가 단체)으로 규정해 둔 국가보안법의 논리적 모순과 실제적 모순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곧 국가보안법에 따르면, 반국가 단체인 북한의 구성원들과 만나거나 전화, 팩스 등을 통해 소통하면 회합, 통신죄로, 반국가 단체인 북한 지역을 오가는 행위는 잠입, 탈출죄로, 북한의 체제나 실상을 미화하거나 단순 보도하는 경우에도 찬양, 고무, 동조죄로, 북한의 주장과 유사한 주장을 하는 단체는 이적 단체로 처벌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에 의하면 남북 당국 또는 민간의 화해와 교류, 협력이 있을 수 없고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평화 통일이 지체될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국가보안법은 국민 일반의 상식과 배치되고 남북 관계의 현실 적합성도 잃어버린 시대 착오적인 법이고, 반민족적, 반통일적인 악법이라고 지탄받는 것이다.

 

 

3. 국가보안법의 법리적 부당성

 

국가보안법은 우리나라의 최고 규범인 헌법에 위배될 뿐 아니라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적정성 원칙에 반하고 다른 법률과의 관계에서 모순, 상충되는 등 법리적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1) 헌법의 평화 통일 이념에 위배

 

헌법은 그 전문에서 "대한민국은 ......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 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라며 규정하고, 제4조에서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라고 규정하는 등 평화 통일 이념 및 민족 대단결을 선언하고 있다. 곧 헌법은 북한을 평화 통일의 대상이자 대단결의 대상으로 규정함으로써 그 실체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은 평화 통일의 대상이며 대단결의 대상인 북한에 대해 그 실체를 인정하지 아니한 채 반국가 단체(적)라고 규정하는 것이므로 이는 헌법의 평화 통일 이념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평화 통일을 하자면 상대를 만나고 협의하여야 함이 당연한 전제임에도, 국가보안법은 북한을 방문하고, 협의하고, 북한측의 사람을 만나고 하는 일들을 잠입 탈출죄, 회합 통신죄, 편의 제공죄, 찬양 고무죄 등 범죄 행위로 취급하여 처벌하는 것이니, 이는 결국 국민들에게 헌법이 지향하고 있는 평화적 통일 노력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것에 다름 아니며, 이 점에서 국가보안법은 평화 통일 이념에 정면으로 위배되어 상위법인 헌법에 반하는 위헌 법률인 것이다.

 

2) 상충성

 

1992년 2월 19일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는 제1조에서 "남과 북은 서로 상대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고, 제5조에서 "남과 북은 상대방의 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국가보안법은 남북기본합의서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또한 남북교류협력법이 1990년 7월 15일 제정되었는데 이는 "남북 사이의 왕래, 교역, 협력 사업, 통신 업무의 제공 등"을 적용 대상으로 하며 반국가 단체인 북한과의 교류, 협력 등을 규율, 촉진하고자 하는 것이어서 국가보안법과 상충, 모순된다. 이러한 모순으로 동일한 행위 유형이 양법에 다 저촉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어느 법을 적용할 것인가는 순전히 수사 기관이나 법관의 자의적 판단에 맡겨져 있는 것이다.

 

한편, 남북한은 1991년 동시에 유엔(UN)에 가입하였는데, 이로써 남북한은 국제적 차원에서 국제법상 주권 국가로 공인되어 북한이 반국가 단체라는 논리는 국제법적으로도 더 이상의 존립 근거를 상실한 것이다. 또한 남한이 유엔에 가입함에 따라 조인한 국제인권규약(특히 B규약,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협약)은 헌법 제6조 제1항의 "헌법에 의하여 체결, 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 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는 규정에 의해 국내법의 일부가 되었으며, 남한은 동 규약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일정한 기간마다 정부 보고서를 제출하여 유엔의 심사를 받고 관련 국제 기구가 권고하는 대로 한국의 실정을 개선해야 할 국제법상의 책임을 지게 되었다. 이에 유엔 인권이사회는 한국 정부에게 국가보안법이 국제인권규약에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국가보안법의 개폐를 수차 권고하였는 바,2) 국가보안법은 이러한 국제인권규약과도 배치, 상충된다.

 

3) 죄형법정주의 위배

 

죄형법정주의는 헌법 제12조 제1항 및 제13조 제1항 등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근대 형법의 대원칙으로서 "법률 없으면 범죄 없고 형벌 없다"는 원칙인데, 이는 근대 국가 태동기에 국가 형벌권의 남용과 자의적 행사로부터 개인의 신체의 자유를 지켜내기 위한 투쟁의 역사 속에 형성되어 오늘날 문명 국가 형사법의 최고 원칙으로 자리잡았다. 이는 어떤 행위를 범죄라고 규정할 것인지와 그 범죄에 대해 얼마만큼의 형벌을 가할 것인지는 미리 성문화된 명확한 법률에 의해 확정되어 있어야만 한다는 의미이다. 그 내용은 첫째, 관습 형법의 금지 원칙으로 죄와 형의 내용을 명확히 특정할 수 없는 관습법이나 사회 상규 등 불문법에 의하여 처벌하는 것은 금지된다는 것이고, 둘째, 형벌 효력 불소급 원칙으로 행위시에 처벌 법규가 없는 행위에 대하여는 사후에 제정된 법률에 의거 형벌을 부과할 수 없다는 것이며, 셋째, 유추 해석 금지 원칙으로 법률에 범죄라고 규정되지 않은 행위에 대하여는 그와 유사한 사항에 관한 법률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고, 넷째, 절대적 부정기형 금지 원칙으로 예컨대 단순히 '징역형에 처한다'는 식으로는 규정할 수 없고 형벌의 정도는 한정(예컨대 징역 5년 이상)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다섯째, 명확성의 원칙으로 무엇이 범죄인지를 정하는 구성 요건은 명확하여야 하고 그 해당 여부를 가리기 힘든 불명확한 개념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이고, 여섯째, 적정성의 원칙으로 무엇을 범죄로 정할 것인지는 기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도록 적정하게 규정하여야 하고 형벌의 정도 또한 그 불법성에 상응하는 만큼만 부과하여야지 지나치게 무겁게 부과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은 이러한 죄형법정주의의 여러 내용 중 명확성의 원칙과 적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

 

국가보안법은 죄와 형벌을 규정하므로 죄형법정주의에 의하여 구성 요건이 명확해야 한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은 구성 요건이 너무나 막연하고 불명확한 개념들로 이루어져 있다. 예컨대 제2조의 '반국가 단체', '정부 참칭', '국가 변란', 제3조의 '수괴의 임무', '간부 기타 지도적 임무', 제4조의 '국가 기밀', '기타 주요 시설', '기타 물건', '목적 수행을 위한 행위', 제4조와 제7조의 '사회 질서의 혼돈을 조성할 우려가 있는 사항', '사실을 왜곡', 제5조와 제6조의 '지령', 제6조의 '협의', 제7조의 '찬양·고무·동조·기타의 방법의 반국가 단체를 이롭게 한', '기타의 표현물', 제8조의 '기타의 방법', 제9조의 '기타의 무기', '기타 재산상의 이익' 등 국가보안법 규정의 대부분이 이에 해당한다. 이 점과 관련하여 "국가보안법 규정의 불명확성, 추상성, 불법성은 더 이상 상상하여 만들어 내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대법원은 어떤 경우에는 법에 반하여 더욱 이를 넓히고 있다"는 지적까지 있는데, 이러한 불명확한 개념들로 인하여 어떠한 행위가 이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가늠할 객관적이고 뚜렷한 기준이나 한계를 정할 수 없으며 결국 그 해당성 여부는 수사 기관이나 법관의 주관적·자의적 해석에 맡겨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은 그 자체로서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되는 위헌 법률인 것이다. 예컨대, ① 검찰이 '성화 신국을 칭한 사이비 종교 단체(상제교)'에 대해 국가보안법 상의 반국가 단체로 기소한 사례,3) ② '아람회'를 구성, 활동하였다는 혐의의 관련자들 중 민간 재판을 받은 사람에 대해서는 '반국가 단체'로 처벌하고 군인 신분이어서 군사 재판을 받은 사람에 대하여는 '이적 단체'로 처벌한 경우로 동일한 단체를 '반국가 단체'라거나 '이적 단체'라고 하는 등 모순된 판결을 내린 사례4)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이들은 모두 국가보안법 규정의 구성 요건이 불명확하기에 결국 그 해석이 법운용자의 자의에 맡겨져 있어 빚어진 단적인 예인 것이다.

 

어떤 행위를 범죄로 규정함에 있어서는 기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도록 적정하게 정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은 '죄'라고 규정하는 것들에 정의 관념이나 실질적 측면에서 범죄로 볼 수 없는 것들을 다수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죄를 적정하게 정하지 못한 것이다. 또한 그 형벌의 정도를 그 불법성에 상응하는 만큼만 부과하여야지 지나치게 무겁게 부과하여서는 안 됨에도 국가보안법은 다른 형벌 법규(형법의 내란 및 외환의 죄 등)와 중복되는 처벌 조항을 다수 포함하고 있을 뿐 아니라 행위의 가벌성의 정도에 비해 그 법정형을 매우 가혹하게 가중하고 있는데, 이는 죄와 형의 균형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은 더더욱 일정한 법익 침해나 구체적인 위험성이 없는 경우마저도 국가보안법 구성 요건의 애매 모호하고 불명확한 개념들과 결합하여 엄청난 형량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보안법에서 현재 사형을 규정하고 있는 죄만도 수십 개에 달하고, 실제로도 이 법에 의해 사형을 선고받았거나 35년 이상 옥살이를 계속한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는 점에서 이 법의 과잉입법성(죄와 형의 균형성 상실)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은 죄형법정주의의 적정성 원칙을 위반한 위헌 법률인 것이다.

 

 

4. 국가보안법과 양심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의 책임 아래 자기의 사상 및 신조를 추구하여 자유로운 정신 세계를 구축할 권리를 가진다. 이를 사상의 자유 또는 양심의 자유라고 하며, 인간이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히 누려야할 기본적 인권으로서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자유이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고, 유독 만물의 영장으로 지고의 존재가 되는 까닭은 인간만이 끝없이 깊고 넓은 정신 세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내심, 곧 인간의 정신 세계는 무한하여 그 자체 소우주에 비견되기까지 한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은 그 규정 형식의 광범한 추상성·모호성으로, 인간의 사상과 양심, 인간의 내면을 검증하고 인간의 내면에 간섭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것이며, 결국 그 내면을 통제·처벌할 수 있는 법제이다. 특히, '양심'에 따라 살며 그 '양심'에 따라 고난조차 달게 받는 사람들에겐 더더욱 그 내면의 세계를 검증하거나 훼손하려는 그 어떤 사소한 것에 대하여도 타협하거나 굴하기 어렵다할 것인데, 이 법은 '양심'에 따라 살려고 하는 사람들을 주된 대상으로 하여 그 양심(신념)을 스스로 훼손하게 하거나 처벌하려는 것이어서 대단히 반문명적이며 반인권적인 법제인 것이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10년 이상 복역했고 대학 교수이기도 했던 어느 한 사람은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국가보안법"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는 '악정은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한 공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역대 정권이 정권 유지를 위해 정적을 제거하고 실정을 은폐하며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는 데 있어 국가보안법을 앞세워 왔음을 지적했다. 우는 아이도 울음을 그치게 하는 것이 호랑이요 곶감이었다면, 국가보안법이야말로 분단 상황 및 국가 안보라는 이름 아래 언론, 출판, 학문, 예술, 문학, 교육, 대학, 종교, 노동, 정치 부문 등 사회 전반을 철저히 보수화시키고 그 각 부문에서 진보의 지평을 넓히고 자신의 권익을 지키며 민족을 통일하려는 제반 사회 운동의 숨통을 눌러왔다는 점을 빗댄 지적일 것이다. 또 어느 학자는 모 일간지의 독자 칼럼에서 "국가보안법은 내 손 끝에 있다, 우리 모두가 국가보안법에 대한 두려움 없이 학문을 연구하고 사상과 손끝이 일치하게 글을 썼다면 어찌 반세기가 지나도록 살아남을 수 있었겠는가" 하고 역설적으로 반문한 어느 학술 공개 토론회에서의 발표를 소개하면서 "진리와 정의를 위한 사유의 파장이 손 끝에 와도 스스로 지워버리고 마는 위축감"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국가보안법은 진리를 탐구하고 정의를 실천하며 인간의 존엄과 양심을 지켜감에 있어 반드시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될 장애물이 되어 있는 것이다.

 

국가보안법 50여 년의 역사를 거치며, 국민들은 인간의 무한한 정신 영역을 넓혀 진리와 정의와 지조를 알게 하고 의기를 키워 주는 사상의 참맛과 그 자유를 알기도 전에 국가보안법으로 인한 직간접의 참혹한 경험으로 인해 사상이야말로 집안을 망하게 하고 자신을 망치는 첩경이라 직감하여 정서적으로 사상을 거부하는 것으로 변하고 말았다. 국가보안법을 존치하여 정보를 제한하고 표현을 위축시키는 한 언론은 보수화하거나 제도 언론화할 뿐 사회 비판의 제기능을 다하고 참된 여론 형성의 역할을 다할 수 없다. 공장에서 자기의 존엄을 지키고 생존권을 확보하려 조직하고 단결하며 투쟁하는 것을 용공이니 공산주의니 이적 단체니 하고 막을 수 있는 국가보안법이 있는 한 노동자의 참된 권리 신장은 있을 수 없다. 강단에서 정보가 폐쇄되고 연구가 위축되면 진리의 꽃을 피울 수 없다. 학교에서 새 것에 민감하고 정의감에 투철한 청년들의 기개를 국가보안법으로 눌러 놓는 한 청년들에게 새 것에 대한 사색과 연구를 바랄 수 없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정의롭게 살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신념과 의기를 국가보안법으로 위하하여 변절과 비겁의 나락으로 밀어내는 일이 계속되는 한 정의와 지조가 사회 기풍으로 자리잡기 어렵다. 다양한 사상적 스펙트럼에 따른 정치적 다원성을 인정하고 그로부터 상호 침투의 상승 발전을 보장하지 않는 한 정치가 구태의 늪에서 한발도 벗어나기 어렵다. 이 법의 옹호자들은 남북 분단 상황과 북한의 현실적 위협을 들어 국가보안법을 없애는 것은 자진 무장 해제하는 것과 같다고 반박하면서 이 법이 없어지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금새 공산주의 세상이 되어버리거나 극도의 혼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걱정한다. 그러나, 분단국이었던 서독은 우리와 같은 국가보안법이 없었고 동독과의 자유 왕래를 범죄시하는 법 자체가 없었으며 공산당의 활동마저 허용하였음에도 한국의 옹호자들이 걱정하는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고 오히려 통일을 이루었다는 점이나, 우리보다 더 불리한 분단 상황에 있는 대만 또한 우리의 국가보안법과 같은 처벌 조항을 두고 있지 않으며 '사회주의 및 중국 본토 중심의 통일'을 강령으로 하는 노동당을 합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여 볼 때, 옹호자들의 걱정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이 법 제정 당시부터 제기되었던 주장처럼 사상은 사상으로 대응하여야지 법률로 사상을 규제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과거 서독이나 현 대만과 같은 자신감과 대담성을 갖지 못할 이유가 없고, 국가보안법이 없으면 곧 무너지거나 혼란스러워질 정도로 허약한 사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국가보안법으로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억압함으로써 국민들의 입과 눈, 귀를 막아 형식적인 국가 안보를 이루려 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적 의사 소통을 통해 사회의 다양성과 건강성, 창의성과 자발적 참여를 높여 국가 경쟁력과 보위력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려는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5. 마치며

 

가히 선거 혁명이라고 지칭될 드라마 같은 대통령 선거를 거쳐 개혁적인 새 정부가 출범한다. 그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가보안법의 존폐가 논란이 되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4.19 혁명으로 자유당 독재 정권이 무너진 뒤 집권한 제2공화국에서 그랬고, 6월 민주 항쟁이 성공한 후 폐지 주장이 대두하였고,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직후에도 그랬다. 그러나 제2공화국 아래 1960년 6월 10일 개정에서는 이전에 없던 '불고지죄'가 신설되어 개악되는 측면이 없지 않았고, 김영삼 정부 출범 후의 1991년 5월 31일 개정에서는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 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라는 주관적 구성 요건을 추가하였으나 이후 법 적용상 차이를 볼 수 없었고 오히려 존치 옹호론자들에게 '인권 보호 조항이 마련되었는데 또 무슨 개정이냐'는 구실을 주어 역설적이게도 사실상 '개정하지 아니한만 못한 결과'를 낳고 말았고, 국민의 정부를 자처한 김대중 정부는 자구하나 고치지 못하였다. 국가보안법은 그렇게 번번이 살아남았다. 20세기를 넘기고 21세기 몇 해가 지났다. 더 늦기 전에 국가보안법과 그 악업의 역사를 걷어야 한다. 더 이상 문명 국가의 수치라 할 국가보안법으로 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 위해서도, 이 나라가 최소한의 민주 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서도, 7천만 온 겨레의 한결같은 염원인 분단 민족의 자주 평화 통일의 흐름이 순조롭게 상승 발전하기 위해서도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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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한'이 국가보안법상의 반국가 단체에 해당하는지에 대하여는, 북은 '정부를 참칭하는 단체'가 아니라 정식의 '국가'라는 점에서, 그리고 더 나아가 북은 '연방제'를 줄곧 주장해 왔는데 이러한 '연방제'란 남한의 체제를 부정하고 북한식으로 통일하겠다는 '적화 통일'과는 엄연히 구별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북한에 대해 '대남 적화 통일을 기본 목표로 설정하고 있는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 변란을 목적으로 하는 반국가 단체'라고 해석하는 논리가 잘못된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지만, 이 점은 일단 차치하기로 한다.

 

2) * 1992년 7월 유엔 인권이사회는 한국의 최초 보고서를 검토한 후 한국 정부에게, "이사회는 국가 부문이 규약의 조항에 부합하는 입법을 위해 노력을 강화할 것을 권고한다. 이사회는 협약에 명시된 권리들을 완전히 실현시키는 데 있어 국가보안법이 주요한 걸림돌이라 보며, 기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궁극적으로 국가보안법을 점진적으로 폐지하기 위한 진지한 시도가 있어야 한다."라고 논평하였다.

 

* 1998년 12월 22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된 박태훈 씨가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소한 사건에서, 이사회는 한국 법원이 국가보안법 7조 1항(찬양·고무 등), 3항(이적 단체 가입, 활동) 위반을 이유로 박태훈 씨를 처벌한 것은 국제 인권 규약이 정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결론 내리면서, 박씨 사건에 대한 재심과 피해에 대한 적절한 배상을 해 주도록 권고하였다. 그러나 법무부는 1999년 1월 27일 "이미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난 상태이므로 재심을 통한 무죄 판결이 없는 한 금전 배상은 불가능하다", "유사한 위반 사례 재발 방지도 이미 국가보안법의 확대 해석을 금지하고 있어 국가보안법 개폐 등 다른 조치는 하지 않을 것"이라며 인권이사회 결정의 수용을 거부하였다.

 

* 1999년 2월 8일 유엔 인권이사회는 김근태 씨에 대한 국가보안법 7조(찬양, 고무) 유죄 확정 판결에 대해, "유엔 인권규약 제19조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한국 정부에 금전 배상을 포함한 구제 조치를 권고하였다.

 

* 1999년 11월 1일 유엔 인권이사회는 [한국 정부 인권 보고서에 대한 인권 이사회의 최종 견해]에서, "한국 정부가 국가보안법을 단계적으로 폐지해 나가야 함을 다시금 권고한다. 위원회는 국가보안법 7조 하에서 '반국가 단체'를 고무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행위의 범위가 불합리하게 광범위하다고 생각한다. 검토해 본 결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약이 규약의 제19조 세 번째 문장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국가 안보를 위해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규약은 단지 사상의 표현이 적성 단체의 주장과 일치하거나 그 실체에 대해 동조하는 것으로 보여진다는 이유만으로, 사상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위원회는 검찰의 내부 지침(국보법을 엄격 적용하라는 내부 지침)이 규약과 합치하지 않는 국가보안법 7조의 남용을 억제하는 적절한 방법이 아님을 강조하고자 한다. 한국 정부는 규약에 부합하도록 7조를 긴급히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3) 대법원 1956.6.29. 선고 4289형상60호 판결. 이 사례에서 법원은 무죄를 선고하였다.

 

4) 이 사건은 1981. 5. 17.에 있은 김난수(당시 육군 대위)의 딸 '아람'의 백일 잔치에 참석한 그의 고교 동기 동창인 박해전, 김창근, 이재권 등과 그 고교 은사인 정해숙, 황보윤식에 대해 '반국가 단체'인 '아람회'를 결성, 활동하였다는 혐의로 구속, 처벌한 사건인데, 군부 쿠데타 및 내란으로 집권한 전두환 등 5공 신군부 세력에 의한 대표적인 조작 사건으로 꼽히고 있다. 당시 군사 재판을 받은 김난수에 대한 군법 회의에서는 '아람회'를 '이적 단체'로 판결하였던 것이다. ('아람회' 사건은 현재 '서울고법 2000재노6호'로 재심 재판 계류 중)

 

[사목, 2003년 3월호, 김승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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