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홍)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윤리신학ㅣ사회윤리

[사회] 실직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사목적 책임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7 ㅣ No.423

실직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사목적 책임


- "일어나 요를 걷어 들고 걸어가거라"(요한 5,8) -

 

 

들어가며

 

희망과 도약의 새 천년 아침이 밝았다. 지난 한 해 동안 교회는 은총의 대희년을 맞이하여 병자,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농민, 재소자 등 우리 사회에서 고통받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자유와 해방의 잔치를 열었다. 그러나 대희년의 행사가 일회적인 행사로 끝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오늘의 경제 위기를 딛고 일어서기 위해 몸부림치는 실직자와 그 가족에게 진정 기쁨과 은총의 대희년이 되었는지 되짚어 보아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불황과 호황을 반복하면서 이윤의 가치를 창출하는 특성 때문에 낙오자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경쟁에서 낙오된 실직자와 그 가족이 겪는 아픔은 참담하기만 하다. 교회는 이러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제직, 왕직, 예언직을 수행하며 물질적 가치가 아닌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를 지향하며 봉헌된 삶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부의 독점과 가난의 악순환을 부추기고 있는 구조적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되며 가난한 이들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를 따라 실직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를 해야 한다.

 

실직자와 그 가족에게 주님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고 공동체 안에서 따뜻한 위로와 격려로 참다운 인간 존엄성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하여야 한다. 이는 교회가 실직자와 그 가족의 아픔에 대해 사회적 사명과 책임의 관점1)에서 접근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 글을 통해 실직자와 그 가족에 대해 교회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찾아보고자 한다.

 

 

1. 실업과 실직자, 그리고 가정 공동체의 해체 위기

 

1) '세계화'와 '구조 조정'에 대한 식별

 

현대 사회에서 절대 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자본주의는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망령과 함께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를 누비고 있다. 과거 자본주의가 국가의 불간섭을 원칙으로 자본의 독점과 경쟁을 위한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는 것이었다면 현대 자본주의는 정보 과학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세계 시장을 이윤 축적의 마당으로 삼고 있다. 지난해 독일에서 개최된 '콜로퀴움 2000 선언'(Colloquium 2000 Declaration)2)은 세계화에 따른 금융 자본의 투기적이고 모험적인 흐름을 주목하면서 그러한 흐름을 무기 수출과 군비 경쟁(이는 사회 복지 예산의 감축과 노동 조합 활동을 억압하는 현실로 나타난다)을 불러오고 결론적으로 인간적 삶의 물질적 기반을 붕괴시킬 것이라고 경계하고 있다. 실제적으로 금융 자본의 대부격인 IMF나 세계 은행 등은 남미와 동남 아시아, 아프리카 나라들에게 자본을 볼모로 구조 조정 프로그램에 강제적으로 참여시킴으로써 대다수의 서민들을 가난과 실업으로 몰아넣고 있다.

 

'세계화'의 여파는 우리 사회에도 IMF 구조 조정 프로그램을 강제적으로 수용하고 중산층의 붕괴, 비정규직 노동자의 증대,3) 나아가 대량 실업과 실직 가정의 해체 위기, 생계형 범죄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외적 요인만이 아니라 IMF 경제 위기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병폐의 집합체였다. 독점 재벌의 빚더미 경영과 방만한 투자에 따른 연쇄 부도와 금융 기관의 부실 대출이 금융 불안으로 이어지고 결국 주가 폭락과 환율 폭등으로 외환 고갈이 나타남으로써 우리 경제가 총체적 위기로 발전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IMF 경제 위기에 대처하면서 오로지 외환 보유고 늘리기에만 급급하고 구조적 병폐에 대한 진단과 적극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구조 조정'이 노동의 유연성이라는 미명 아래 노동자들을 계약직, 임시직, 파트 타임 등으로 재고용하고 있다. 소수의 정규직 노동자들을 통해 효율성을 극대화시킨다는 논리야말로 지붕 개량하면 새 집 된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현 정부는 과거 개발 독재 논리에 따른 장밋빛 환상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와 생태를 존중하는 인류 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이바지해야 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작게는 우리 사회에 만연된 빈부간의 극심한 격차, 소수 독점의 강화, 소외 계층의 물질적 토대 박탈(실업이나 농경지 박탈) 등에 대한 새로운 가치 체계와 개혁적인 제도를 제시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복지, 주택, 의료, 교육 등도 모든 국민이 골고루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노동의 창조와 기쁨을 만끽하도록 해야 한다.

 

 

2. IMF 경제 위기와 교회

 

1997년 12월 초 IMF 구제 금융을 받게 되자 각 교구장들은 성탄절 메시지 등을 통해 나름대로 경제 위기를 진단하며 사회의 사치와 낭비, 이기주의, 잘못된 의식 구조와 도덕성의 약화에서 기인한 것으로 식별하였다. 당시 수원교구에서는 교구장의 "위기를 기회로 삼읍시다"라는 특별 담화문을 통해 IMF 경제 난국의 원인을 "고비용 저효율의 산업 구조, 해마다 누적된 국제 수지 악화, 과다한 외채, 힘들고 위험하고 더러운 일은 기피하면서 흥청망청 먹고 마시고 즐기는 과소비 생활, 끝을 모르는 부정부패, 위기에 대처할 능력을 상실한 정부 등 복합적"이라고 진단하였다.

 

이에 대한 해결 방안으로 산고는 옥동자를 잉태한다는 정신과 삶의 새로운 틀을 짤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에 만연된 거짓과 과장, 부정 등 비윤리적인 정신을 버리고 복음 정신으로 돌아가 사회의 신뢰성과 인간성을 회복하자는 것이었다. 경제 위기를 디딤돌로 삼아 교회의 참모습을 실현하고 고통받고 있는 이들과 깊은 연대 의식, 공동체 의식을 강조함으로써 전화 위복의 기회로 삼는다는 것이었다.

 

일종의 내핍과 절약 차원에서 전국 100여 개 본당에서는 '금모아 수출하자'는 운동에 동참했다. 그러나 이러한 내핍과 절약은 건강한 소비 생활을 해 온 다수의 서민들에게는 큰 짐이었다. 그 후 100만이 넘는 실직자가 쏟아져 나오면서 '실직자를 위한 사랑 나누기' 유형4)과 '아나바다 운동'이 대부분의 본당에서 벌어진다. 아래 표는 지난 IMF 이후 수원교구 내 본당에서 IMF와 관련한 활동 내용을 분류한 것이다. 대체로 실직자 돕기와 아나바다와 같은 절약 운동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활동 내용

본당 수 

활동 내용 

본당 수 

 실직자를 위한 봉급 나누기

 실직자를 위한 헌금, 성미

18 

 실직 자녀 학비 지원

 로사리오 기도, 정신 운동

 동전 모으기

 "청빈의 삶" 결의 대회

 승용차 타지 않기

 실직자 쉼터

 외화 통장 갖기

 금 모으기

 실직자를 위한 식당 운영

 구인 구직 정보 센터(안내)

 바자회 및 아바나다 시장

25 

 실직으로 고통받는 이웃들을 위한 IMF 커피숍

 사교육비 절감을 위한 공부방 운영

 실직자 조사

 무료 법률 및 노동 상담

 헌혈, 장기 기증 등

 

<표> 교구 본당별 IMF 관련 활동 집계(1999년 6월 말 현재, 천주교 수워교구 사회 복음화원 발표)

 

위 활동의 대부분은 본당 사회 복지 분과에서 일상적으로 해 왔던 활동임을 전제할 때 외양만 IMF 상황으로 포장한 데 불과하다. 또한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프로그램보다는 일회성 행사나 자선적 활동에 제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체 111개 본당5) 중에 80여 개 본당에서 IMF 관련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이 중에 구직 안내나 아나바다 장터 등 1가지 이상의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 본당이 40여 개, 2개 이상의 프로그램을 실시한 본당이 24개, 3개 이상은 8개 본당, 4개 이상의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는 본당은 3개다. 그런데 IMF로 더욱 황폐화된 농촌 본당의 활동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IMF 관련 활동은 본당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교구나 지구 차원에서 근본적이고 중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진행되어야 한다. 그 동안 사제 연수, 사목 위원, 사무장 연수 등을 통해 'IMF와 교회의 역할'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실직자 쉼터, 아나바다, 공부방 운영에 관한 프로그램을 제안한 바 있다. 또한 주보 등을 통한 지속적인 캠페인, 귀농 학교, 실직 자녀 장학금 지급 등의 활동을 하고 있으나 교구 차원의 IMF(또는 실업) 대책 위원회6)는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지구와 본당별로 실시하고 있는 IMF 관련 사업의 한계는 첫째, 경제 구조나 노동에 관한 영성, 신학에 대한 계발 노력이 부족하다. 1990년대 들어 노동 사목과 실직자 사목은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음에도 이를 통합하는 노력보다 자선적 차원의 실직자 구제에 머물고 있다. 둘째로 사랑과 신앙의 공동체인 본당에서 실직자 가정에 대한 파악조차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전례의 공동체이며 신앙과 사랑의 공동체였던 초대 교회(사도 4,32-37)와 상반된 모습이다. 셋째, 가톨릭 실업인들의 적극적인 고용 확충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IMF 경제 위기가 가톨릭 실업인에게도 많은 타격을 주었지만 본당 공동체 내 실직자들에게 일할 기회를 줄 수 있도록 상호간의 친교와 나눔의 장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 농촌 본당에서 IMF 대책 활동이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그 외에도 사제들의 IMF에 대한 몰이해나 안이한 사목 태도, 신자들의 무관심 등은 IMF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는 애초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였다.

 

 

3. 자활과 공생의 대안을 찾아서

 

1) 나눔과 섬김의 본당 공동체

 

IMF 경제 위기에 서울대교구의 어느 본당에서는 경제난과 실직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신자들을 위해 신자 상호간 도움을 주고받는 '나눔의 생활 공동체'를 설립7)하였다. 이는 신자 업체와 신자들 간의 거래를 통한 가계 부담을 줄이고 구인 구직을 위한 인력 은행(구인 구직 방), 창업과 경영 컨설팅, 매장과 고객 관리 등의 교육 프로그램, 무료 검진 등을 통해 IMF를 극복해 보자는 것이다. 이 본당의 경우 서울 지역에서 고학력층과 중산층이 집중된 본당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나름대로 IMF로 고통을 겪고 있는 신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 형태이다.

 

경제 위기는 곧 자본의 위기이므로 자본주의의 총체적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세상 안에 있는 본당 공동체 운영8)의 구조 조정도 불가피하다. 본당 공동체는 단지 전례의 공동체만이 아니라 세상에 열려진 사랑과 희망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본당이 교회적 사명과 기능을 다하지 못할 때 전체 교회에 대한 인식도 그릇되게 형성된다. 그러므로 본당의 복음화 계획은 지역 사회의 특성이나 요구에 맞는 복음적 응답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되어야 할 과제는 본당 내 성직자-수도자-평신도 간의 공동 합의에 입각한 유기적인 운영 구조나 재정의 공개, 소공동체 운동의 활성화 등이다. 그 외에도 지역 사회 문제의 적극적인 대안 모색과 해결이 이루어져야 한다. 도농 직거래, 환경 생태계 보존, 쓰레기 분리 수거나 재활용, 생명 수호, 민족의 화해와 일치, 정직성과 도덕성 회복, 공정 선거, 언론이나 TV 등 대중 매체에 대한 모니터 활동 등 생활 공동체 운동은 공동선을 실현하는 일이며 인간 존엄성을 회복하는 운동이다.

 

2) 자활과 자립을 위한 공동체

 

실직자들에게 가장 큰 바람과 희망은 일자리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적성이나 능력에 맞는 일자리를 찾아 안정적인 생계 기반을 확보하고 가족들을 부양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권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보건복지부 등 각 정부 부처나 실업 극복 국민 운동 본부 등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아직도 이렇다 할 자활 모형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월 1일부터 국민 기초 생활 보장법이 시행되면서 저소득층에 대한 자활, 자립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이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수백억 원에 이르고 있다. 현재 보건 복지부에서 추진 중인 국민 기초 생활 보장법에 근거한 시군구 자활 후견 기관은 자활 능력과 자활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 민간 종교 단체를 지정9)하여 공공 부문과 함께 지역 사회 내 조건부 수급권자(근로 능력이 있는 수급권자) 등에게 세부적인 자활 사업 계획을 지원하여 자활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공공 복지-민간 복지 서비스를 담당하는 민간 기관이다.

 

그러나 아직 교회 안에서의 자활 프로그램이나 생산 공동체에 대한 관심은 미미한 실정이다. 서울대교구나 부산교구 빈민 사목(위)을 통하여 이에 대한 가능성을 시도하고 있으나 법적, 제도적 한계나 자본의 취약성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직 교우들이나 조건부 수급자들이 모여 자활 공동체를 만들고 이를 교회 공동체에서 적극적으로 소비-유통해 주는 공동체의 모델을 제시해 줄 수 있는 교회의 관심과 배려가 절실히 요청된다.

 

3) 지역 화폐 운동10)

 

지역 화폐 운동은 1980년 초 캐나다의 코목스라는 작은 마을에서 '레츠'(LETS = Local Exchange and Trading System)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코목스 지방은 당시 심한 경기 침체와 높은 실업률로 고통받고 있었다. 이 레츠 시스템을 창시한 마이클 린턴은 중앙 은행이 발행한 돈이 없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그저 빈곤하게 맥없이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라는 의문을 갖고 독자적인 통화를 만들게 되었다. 돈을 갖고 있지 못한 사람들이 각자 가진 잠재적인 소질과 기술을 발휘하여 삶을 활기 있게 되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었다.

 

처음 여섯 명의 가입자에서 출발한 이 지역 통화 시스템은 점차로 커져 미국, 호주, 뉴질랜드, 영국과 아일랜드 등에서 최근에는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을 포함한 유럽 여러 나라와 일본으로도 보급되어 현재 1,600여 개의 지역 화폐가 통용되고 있다. 이 운동은 만성적인 고실업률로 시달리고 있는 공동체들에서 쉽게 확산되고 있지만, 임시적인 재난 구제 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사회 주민들끼리 물품과 서비스를 주고받는, 연대에 기초한 협동적 자립적 경제 활동 방식이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도 소규모이긴 하지만 시험적인 모델이 시도되고 있다.

 

본당 공동체를 중심으로 발기인을 모집하고 지역 화폐 운동에 필요한 통용 화폐의 명칭, 통용 방식,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에 따른 조정 등을 정하고 본당 사무실(또는 홈페이지)에 물품과 서비스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무실을 개설하면 거래는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본당-지구, 지구-교구 간의 지역 화폐간 거래가 용이할 수 있도록 창구를 개설하고 물품과 서비스를 확대할수록 회원들의 지역 화폐 운동에 대한 참여도는 높아질 것이다.

 

4) 유산 유품 기증 운동

 

또 하나는 유산 유품 기증 운동이다. 몇 년 전부터 개신교 교단에서 선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을 실천하기 위해 캠페인을 하고 있다. 우선 재물의 사회적 환원이라는 측면에서 사회성과 공익성을 강조한 것이었다. 직접적으로 재벌들의 상속 분쟁이나 재벌 2세들의 경영 승계를 탓하기보다 솔선해서 재화에 대한 나눔을 실천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여러 회칙을 통하여 "재화는 단지 사유할 수 있는 권리만이 아니라 사회적 의무를 지니고 있다."11)라고 강조해 왔지만 실제적인 사회 환원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지금 우리는 '가난의 대물림' 못지않게 '부의 상속'이라는 또 하나의 장벽을 체험하고 있다. 이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과 위화감은 서민들의 근로 의욕을 떨어뜨린다.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두고 있는 옥스팜(Oxfam:Oxford Community for Famine)12)이라는 국제 원조 단체는 중고 재활용 생활용품 거래를 통해 재원을 마련하고 이 재원을 제3세계 국가 기아와 빈민 구제, 인간 개발 사업의 원조에 쓰고 있다. 중고 생활용품의 상당수는 유럽 각지에서 죽음에 직면한 노인들이 자신들의 유품을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있는 옥스팜에 기증하여 각 나라 매장에서 거래된다. 현재 옥스팜은 오스트레일리아, 벨기에, 캐나다, 홍콩, 아일랜드, 네덜란드, 스페인 등 각 나라에 지부를 두고 북한이나 필리핀, 인도, 아프리카 등의 기아와 빈민 구제에 힘쓰고 있다.

 

이러한 유산 유품 기증 운동은 교회 내 공신력 있고 도덕성을 갖춘 단체를 설립하여 모든 교우들과 비신자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범국민적 캠페인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으며 이를 올바르게 분배하여 나눔과 평등의 공동체를 실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 밖에도 불우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노인들과 사회와 소외된 채 살아가는 장애인, 노숙자 등이 진정으로 사회 안에서 더불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한 보고서13)에 따르면, 외환 위기 이후 최소 생계비를 밑도는 빈곤의 규모가 약 870만 명에서 1,2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997년에 590만여 명에서 한 해 동안에 무려 410만여 명이 늘어난 숫자다. 외환 위기 이후 서민층의 빈민화가 얼마나 급격히 진전되었는가를 여실히 알 수 있는 자료다. 전체 인구의 20%가 넘는 빈곤층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긴급한 과제다. 이를 위해 다양한 형태의 자활 생산 공동체를 육성하는 것은 교회가 인류 사회의 요구에 응답하는 길이다. 이 대안 운동이 올바로 자리 매김하기 위해서는 복음 정신에 따라 교회가 사목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마치며

 

교회는 오늘 이 시대의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이 누구인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실직자나 그 가족의 아픔이 교회의 아픔이 되어야 한다. 착한 사마리아인들이 고통받는 이를 외면하지 않고 돌보았듯이 우리도 실직자와 그 가족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하여야 한다. 실직자와 그 가족들에게 사회 복귀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거나 생산 공동체를 통하여 자립하도록 모든 인적·물적 자원을 아낌없이 제공하여야 한다.

 

교회가 실직자와 그 가족 그리고 생계 문제로 가슴앓이를 하는 이들에게 자활 자립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는 것이 바로 사목적 책임이다. 각자가 갖고 있는 재화와 능력, 시간, 심지어는 미래에 대한 희망까지도 함께 나누어야 한다. 이럴 때 교회는 사랑과 믿음과 희망의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다. 교회가 지하도와 역전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노숙인들에게 당당하게 "일어나 요를 걷어 들고 걸어가거라."(요한5,8)라고 외치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

1) 교회는 모든 세대를 통하여 그 시대의 특징을 탐구하고 복음의 빛으로 그것을 해명해 줄 의무를 지니고 있다(사목헌장, 4항 참조). 또한 교회는 개인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인류 사회에게 종교적 사명에 따라 인간 공동체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직무와 빛과 힘이 나오며 그리스도인들에게 현세적 모든 활동을 복음의 빛으로 밝혀 주도록 요청하고 있다(41-43항 참조).

 

2) '콜로퀴움 2000 선언'은 2000년 6월 9일부터 16일까지 독일의 호프가이스마 크리스챤 아카데미에서 50여 개국의 시민 활동가, 성직자, 경제학자, 환경 전문학자 등 150여 명이 모여 "세계화에 직면한 신앙 공동체들과 사회 운동들"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3) 2000년 3월 현재 임시 일용직의 규모가 전체 임금 노동자 1300만여 명 중 52.6%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수는 680여 만 명이 넘는다.

 

4) 실직자를 위한 사랑 나누기 운동은 봉급 10%, 매월 1만 원(또는 5천 원), 헌미 등의 가계가 어려운 실직자 가정을 돕기 위한 운동이다.

 

5) 1997년 12월 31일 현재 수원교구 관할 내 인구 5,355,713명 중 신자 수 420,653명.

 

6) 광주대교구와 인천교구에서는 사제 평의회 내 대책 위원회를 중심으로 각 본당과 지역의 IMF 활동을 지원, 지도하고 있다.

 

7) [평화신문] 제490호(2000.8.2.), 17면.

 

8) [200주년 사목회의 의안], 교회 운영, 48항 참조.

 

9) 현재 추진 중인 보건복지부 지정 자활 후견 기관은 2001년 1월 현재 70개소에 불과하나 2001년도까지 최대 130여 개소를 추가로 지정하여 단계적으로 시, 군, 구 기초 자치 단체에 1-2개의 자활 후견 기관을 설치할 계획으로 있다.

 

10) http://www.overmoney.or.kr(관악 지역 화폐), http://snpd.net/fm/(성남 지역 화폐) 사이트 참조; 김종철, "달러로부터 벗어나는 길, 지역 통화 운동", [말], 1998년 6월.

 

11) 레오 13세, 교황 회칙 [새로운 사태], 1891년, 34항 참조. 요한 23세, 교황 회칙 [어머니요 스승], 1961년, 19항 참조.

 

12) 1942년도 창립한 국제 NGO로 제3세계의 기아와 빈민 구제, 인간 개발 사업 등에 힘쓰고 있다.(홈페이지 http://www.oxfam.org.uk/)

 

13) 류정순·이선형, "외환 위기 이후 한국의 빈곤 규모 추정", [사회 복지] 2000년 겨울 호, 한국 사회 복지 협의회, 145면.

 

[사목, 2001년 3월호, 홍창진(수원교구 정의평화위원장, 신부)]



356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