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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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경제 난국과 신앙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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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7 ㅣ No.422

경제 난국과 신앙인의 삶

 

 

머리말

 

"나는 매일 같이 여러 교회들에 대한 걱정에 짓눌려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어떤 교우가 허약해지면 내 마음이 같이 아프지 않겠습니까? 어떤 교우가 죄에 빠지면 내 마음이 애타지 않겠습니까?"(2고린 11,28-29).

 

경제 분야에 대해서 문외한인 필자가 도무지 낯설기만 한 주제에 대한 원고 청탁을 받아들인 이유는 문득 사도 바오로의 저 심정이 느껴져 왔기 때문이다. 사목자로서 이웃의 슬픔과 고뇌, 불안과 절망을 강 건너 불 보듯 구경만 할 수는 없어서 그저 짐을 나누어 지겠다는 충심에서, 경제 난국 극복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자세에 대하여 무모하지만 함께 고민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궁색한 자료를 추슬러 당신 백성을 사랑하시는 성령의 도움에 의지하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미리 못박거니와 세계 경제 동향과 한국 경제의 현주소에 대한 전문가적인 분석과 비판 및 전망은 필자에게는 능력 밖의 일이다. 따라서 이 글은 체계적인 분석보다는 언론 매체들에서 소개되고 있는 최근 동향을 종합적인 전망에서 조망해 보고 그에 대한 실천적 극복 방안을 모색해 보는 정도를 과제로 삼고자 한다.

 

 

1. 경제 동향

 

2000년도 하반기부터 들썩거렸던 제2의 경제 위기론은 정부가 잇달아 안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기업, 노동자, 주부에 이르기까지 경제가 어렵다고 야단들이다. 1, 2차 구조 조정 과정에서 이미 타격을 받고 있는 당사자들의 고충도 고충이려니와 설상가상으로 새해 들어 여기저기서 반갑지 않은 분석들이 발표되고 있어서 국민들의 걱정은 도무지 잦아들 기색이 없다.

 

우선, 경기가 침체 국면에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2001년도 2월에 접어들면서 언론은 한국 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저성장 속의 고물가) 경고등이 켜졌음을 일제히 보도하고 있다. 지난해 말에서 올 초에 걸쳐 측정된 여러 실물 경제 지수들은 경기 침체를 예고하고 있고 환율과 국제 유가 반등세는 물가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IMF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되었던 미국 경제의 활황과 국제 경제마저 악화 추세를 보이고 있어서 당분간 한국 경제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을 것이라는 동향 분석을 유수의 경제 전문 연구소들이 내놓고 있다.

 

다음으로, 정책 불신에 따른 시장의 불확실성이 경제 불안정을 지속시키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구조 조정 과정에서 잦은 정책 변화와 남발, 원칙의 결여 등으로 정책에 대한 불신이 초래되었고 이는 시장의 불확실성을 가져와 마침내 시장 위축에 따른 정책 기능의 마비, 대외 신인도의 추락, 국내 자본의 유출 현상이 생겨서 경제가 장기 불황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끝으로, 머지않아 WTO의 뉴라운드(신무역 협상)가 재개될 것이라는 예측이 들려온다. 1999년 12월 미국의 시애틀에서 개최된 뉴라운드, 곧 우르과이 라운드의 연장선상에서 자유로운 국제 통상을 촉진하기 위하여 진행된 국제적인 다자간 협상 노력은 개도국과 국제 환경 단체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일단 실패로 돌아간 지 1년이 지났다. 그러나 최근 들어 중국의 WTO 가입이 가시화되고 미국의 부시 내각이 출범함으로써 뉴라운드 논의 조짐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는 것이다. 대외 무역이 국내 총생산의 65%에 달하는 한국에게는 뉴라운드의 향방이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겠다. 뉴라운드가 타결되면 농업 보조금이 철폐되고 금융, 보험 등 서비스 시장의 개방이 확대되며, 기존의 반덤핑 협정이 재검토되고 노동자의 권리 보호가 강화되고 환경 보호 조항이 강화되며, 전자 상거래에 대한 관세도 유예될 것이라고 한다. 협상의 결과에 따라서 기업인들에게는 분야별로 희비가 엇갈리겠지만, 농업, 수산업 종사자와 서민층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하여 정부의 특별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계층간 부의 불균등한 분배는 더욱 악화되어 가뜩이나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서민층, 약자층에게는 새로운 타격이 될 것이라고 한다.

 

결국, 최근의 구조 조정 여파로 신음하고 있는 실업자 문제는 국내외 경제 동향의 악화로 더욱 심각한 수준에까지 이르지 않을까 염려된다. 가히 위기론이 나올 법도 한 상황이다.

 

 

2. '위기'인가 '증상'(='병증')인가?

 

그런데, 2001년 1월 14일자 [평화신문]의 <시사진단> 칼럼에서 조효제는 "위기론의 허실"이라는 제하로 아주 재미있는 주장을 싣고 있다. 한마디로 그는 이른바 '위기' 담론이 객관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하면서 대강 다음과 같은 견해를 펼친다. "너도 나도 위기론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위기론은 언론, 시민 단체, 정치인, 학자 등 광범위한 계층의 오피니언 리더들에게서 나오고 있다. 위기(crisis)의 현실적 표현은 공황(panic)이다. 위기 담론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만성적 공황 상태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더 심해지면 될 대로 되라는 체념과 자포자기에 근접한다. 실제로 정치 경제학에서 자본주의의 특징적 현상으로서 활황과 불황이 되풀이되는 과정 속에서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경제 위기를 언급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상황을 위기로 규정하는 것은 다분히 주관적이고 자의적이다. 우리는 '위기'의 인플레 시대를 살고 있다. 물론 우리에게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위기와 문제점은 다르다."

 

조효제는 '문제점'을 '위기'와 동일시하기 시작하면 다음과 같은 결과가 생기리라고 본다. (1) 사회 문제의 장기적이고 이성적인 해결보다는 '위기 관리-총체적 해법-대통령의 결단'과 같은 비상 사태적 해결 방식을 찾게 된다고 말한다. (2) 위기 담론은 우리가 사회 문제를 장기적인 추세로 보지 않고 단기적인 '사태'로만 보게끔 한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목전의 상황 전개를 위기로 규정하면서 그때그때의 사태 해결에 급급하게 되어, 주도적이고 주체적이어야 할 우리의 안목이 단순히 대응적이고 객체적으로 전락하고 만다고 한다.

 

필자는 이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현재의 한국 경제는 일시적으로 찾아온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누적되어 온 여러 문제점들이 복합적으로 빚어 내고 있는 고질적인 증상이요 병증이다. 그러므로 이를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몸살 정도로 여겨서 단기 처방으로 극복하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재 노출된 문제들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총체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심층적으로 진단하여 장기적인 수습책을 강구하려는 접근법이 우리에게는 더 필요한 것이다.

 

 

3. 병증의 원인

 

병증을 진단할 때 서양 의학과 동양 의학의 진단법은 크게 다르다. 대체로 서양 의학은 병증이 나타난 부분에 국부적으로 초점을 맞추어서 미시적으로 접근하는 반면, 동양 의학은 병증에 초점을 두지 않고 그 원인을 오장육부의 부조화 관계에서 찾아내려는 거시적인 접근을 한다.

 

경제의 문제를 진단하는 마당에서도 미시적으로 경제만 볼 것이 아니라 거시적으로 사회 전반을 볼 필요가 있다. 물론 경제학에서도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으로 분류하여 시야 조절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좀 더 광범위한 의미에서 거시적 조망을 꾀하고자 한다.

 

1) 외부 요인

 

오늘날 한국 경제가 겪고 있는 진통의 원인으로서 외부 요인을 무시할 수 없다.

 

우선, 미국, 유럽, 일본 등 경제 대국들이 어떤 경기 국면에 처해 있는가가 무역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우리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른바 국제 경제 동향이 우리 경제의 향방을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된다는 말이다.

 

다음으로, 세계화와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확산일로에 있는 '신경제'가 한국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로써 국가간이나 개인간에도 강자가 더 많은 기회를 갖게 되며, 부의 격차도 더욱 심화되고 있다. 초대형 백화점들이 호황을 누리는 반면 재래 시장이나 영세 상점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근래의 현상도 신자유주의자들이 주도하는 '신경제'의 횡포 때문이다. '시장성의 논리'를 충족하는 것이 유일한 생존 방안이 될 수밖에 없는 철저한 약육강식의 무대에서 대기업들은 경쟁력 제고를 위한 통폐합과 혁신적인 구조 조정을 단행해야 하고, 중소 영세 기업들은 살아 남기 위하여 안간힘을 써야 하는 냉엄한 생존 전쟁이 오늘의 경제 현실이다. 앞에서 언급한 스태그플레이션이니 뉴라운드니 하는 문제도 바로 이 '신경제'의 맥락에서 전개되고 있는 현상이라 할 수 있겠다.

 

2) 내부 요인

 

밖에서 아무리 거센 태풍이 불어와도 내부 구조가 튼튼하면 흔들림이 없다. 오늘의 한국 경제가 미국 경제의 콧바람에도 쉽게 흔들리는 이유는 내부에 문제점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첫째, 국내 정치와 경제의 구조적 취약점을 들 수 있겠다. 한국 경제는 이른바 정경 유착을 기반으로 성장하여 오다시피 했다. 기술 혁신과 품질 개선, 서비스 증진 등 정당한 방법으로 기업을 육성하려 하지 않고 정경 유착으로 특혜를 입어서 기업을 확장하다 보니 경영 구조가 부실하고 방만해질 수밖에 없었다. 한국 경제가 거품 경제가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정치가 기업을 좌지우지 하는 관치 경제가 횡행하고, 기업인이 정치인에게 빌붙다 보니 대통령의 출신도에 따라서 하루아침에 흥하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망하는 기업이 줄을 잇게 된 것이다. 원칙과 일관성이 결여된 경제 정책, 정치인의 부정 부패, 특정 지역에 편중된 정치 및 경제적 특혜 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것이다. 전직 대통령의 부정 축재에 대한 역사의 심판을 보고도 아직도 정치권, 권력 핵심부에서는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둘째, 물질만능주의와 도덕적인 해이를 들 수 있겠다. 지나친 물질 추구가 조급한 성공주의, 일회적 한탕주의로 사람들을 몰아붙이고 있다. 그 결과 기업 윤리, 상도덕이 무너지고 남이야 어떻게 되든 자신은 검은 돈과 건강하지 못한 부를 추구하며 살고 있다. 스스로 땀을 흘려 돈을 번다는 근로 정신보다는 일확천금을 바라는 잘못된 풍조가 만연해 있다. 대형 금융 사기 사건, 재벌들의 불법 상속과 탈세, 각종 비리가 난무한다. 돈만 있으면 떵떵거리며 행세할 수 있고 존경받고 대접받는다는 잘못된 자본주의 사상 때문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병들고 황폐해져 있다.

 

셋째, 망국적인 소비 풍조를 들 수 있다. 불의한 소득이 만연하다 보니 1억 원을 호가하는 밍크 코트를 사고 파는 사람들, 하루 저녁에 몇 백만 원 짜리 술상을 즐기는 사람들이 흥청거리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너도나도 분수를 모르고 살고 있다. 사치품 수입에 혈안이 되어 세계에서 가장 돈 잘 쓰는 민족으로 이름이 나 있다. 돈이 생기면 허영을 일삼았고 경제적 풍요 앞에서 교만을 떨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이 석유 소비량 세계 6위, 에너지 소비 증가율 세계 8위, 에너지 소비량 세계 10위, 지난 10년 동안 전기 소비량 160% 증가(미국, 프랑스, 영국의 8배), 산업용 에너지 소비 증가율의 3배에 달하는 가정용과 상업용 에너지 소비 증가율 등이 한국인의 소비 풍조를 대변해 주고 있다. 또한 TV, 냉장고, 세탁기의 각 품목별 판매량의 60-90%에 달하는 대형 가전 제품들, 유럽과 일본보다 월등히 많은 가구당 쓰레기 배출량은 한국인의 무절제한 자기 과시형 소비 행태를 여실히 드러내 주고 있다.

 

넷째, 생태 자원의 남용과 자연 훼손에 따른 부메랑 효과를 들 수 있겠다. 개발과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된 환경 오염과 생태계 파괴는 결과적으로 자원 고갈에 따른 생산의 저하와 자연 재해 등을 초래하여 엄청난 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무절제한 소비 행태가 빚어 낸 수질 오염, 대기 오염, 토양 오염은 기하급수적인 복구 비용 부담을 안겨 주고 있는 실정이다. 자연의 보복이 시작된 것이다. 이를 일찍이 예측한 유럽은 대량 소비 문명에 대한 성찰과 개선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미국식 대량 소비 문화에 중독되어 과소비를 자본주의의 덕목으로 여기면서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다섯째, 열악한 사회 보장 제도를 들 수 있겠다. 경기의 악화에 따른 최대의 피해자들은 실업자와 도산자들이다. 아직도 한국에는 이들을 위한 제도적 구제책이 미흡한 실정이다. 일례로 국민 기초 생활 보장법이 제정되어 근로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도 실업으로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면 실제 소득과 최저 생계비의 차액을 생계 보조비로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그 운용 실태를 보면 정부에서 과다한 추정 소득과 부양비, 재산 면적, 승용차 기준 등을 적용하여 많은 적격자들을 탈락시켰고 설령 수급권자라 하더라도 급여 수준이 낮게 책정되고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는 근로 능력자의 급여는 근로 의욕을 감퇴시켜 장기적으로 경제 발전의 잠재력을 훼손한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유럽의 선례를 들면서 생계 보장 수준의 향상과 자활 사업의 활성화를 통한 생산적 복지 정책이 실업 흡수와 유효 수요의 증대를 가져와 경제 성장에 보탬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이상에서 한국 경제가 심층적으로 안고 있는 대표적인 문제점들을 폭넓게 들추어 봤다. 이 밖에도 여러 요인들이 문제점으로 작용하고 있을 터이다. 오늘날 우리 경제가 겪고 있는 고충과 부작용은 이들 내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곪아서 터지고 있기 때문임을 우리는 인정해야 할 것이다. 앞서서 언급한 외부 요인들은 이미 내재해 있던 이 고질적인 병증을 더욱 악화시킨 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깊이 새겨둬야 할 것이다.

 

 

4. 경제 난국과 그리스도인의 삶

 

그러면, 경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인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인가? 우리는 한편으로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공동선'의 추구라는 큰 명제를 실천 과제로 삼고, 다른 한편으로 복음적인 경제 생활을 위한 원칙들을 구체적인 실행 지침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1) 공동선의 추구

 

교회의 가르침 [어머니와 교사]가 권고하고 있는 공동선의 증진은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우선 명제이다. 교회는 국가를 '공동선'을 달성하기 위한 하느님의 일꾼(로마 13,4 참조)으로 보면서 국가 권력이나 정치 공동체가 특정 시민과 특정 집단을 편애함 없이 모든 이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도록 이끌어야 한다(사목헌장 73-74항 참조). 따라서 국민을 위한 일꾼인 공직자와 정치인들이 당리당략만을 앞세우기를 그치고 공정한 사회 질서를 확립하고 부를 균등하게 분배하여 소수 시민들의 권리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일에 헌신할 수 있도록 교회는 계도하고 촉구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일에 교회는 앞장설 필요가 있다.

 

첫째, 올바른 가치관 확립에 이바지해야 한다. 제도를 바꾸고 구조 조정을 하고 새로운 법과 시행령을 만들고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여도 가치관이 비뚤어져서 삶의 자세가 흐트러져 있으면 소용이 없다. 인권 존중과 박애심 등이 마음속에 깔려 있지 않으면 제도는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복음 정신에 입각한 의식 개선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둘째, 거시적으로 신자유주의 세력이 주도하는 '시장의 지배'에 대한 저항 운동을 전개하고 경제 성장보다는 재화의 사회적 재분배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되도록 사회 운동을 선도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정부가 원칙과 철학, 그리고 안목이 있는 경제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도록 다각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 이는 교구 이상의 단위에서 전문가들을 동원하여 추진해야 하는 사안이다.

 

셋째, 구조 조정의 태풍으로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내몰리는 실업자들에 대해서 효과적인 실업 대책을 강구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실업 대책은 생계 보호 차원을 넘어 생산적인 프로그램이어야 하고 특히 고용 창출을 통한 생산적 복지에 더욱 힘을 기울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정부가 재화의 공정한 분배와 공동선 실현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법 제정과 행정 대책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

 

넷째, 환경이 곧 생명이요 자원이라는 정신으로 친환경적인 소비 구조를 주도할 필요가 있다. 이는 환경 운동임과 동시에 장기적인 차원의 경제 운동이다.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오염을 주로 취급한 전통적인 환경 정책을 넘어서서 대량 소비와 무절제한 욕망 충족을 추구하는 현대 소비 문화에 대한 회개와 대안 운동을 선도해야 한다. 정부가 환경 친화 상품과 환경 친화 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일회용품 생산자에게 환경 부담금을 부과하도록 하는 한편, 쓰레기 감량과 재활용을 추진하여 다각적으로 자원의 낭비를 지양하는 생산과 소비 문화를 전개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협조해야 한다.

 

2) 복음적 경제 생활 원칙

 

경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먼저 할 일은 회개 운동이다. 정국이 어지럽고 경제가 비틀거리고 사회가 여러 가지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성찰과 회개이다.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자신을 돌아보면서 깊이 성찰하고 회개해야 할 때이다. 성서는 우리가 올바로 성찰하도록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1) 범죄한 다음 숨어 있는 아담에게 하느님께서 던지신 질문, "너 어디 있느냐?"(창세 3,9)이다. 자신의 처지, 현재의 삶을 확인하면서 위치 질서를 성찰하게 하는 물음이다. (2) 동생 아벨을 죽인 카인에게 하느님께서 던지신 질문,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창세 4,9)이다. 고통받는 이웃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돌이켜보면서 역할 질서를 성찰하게 하는 물음이다. (3) 사래의 종 하갈이 주인 사래를 피하여 광야를 헤매며 도망할 때 야훼의 천사가 하갈에게 던진 물음,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길이냐?"(창세 16,8)이다. 누구와 어떤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지를 짚어 보면서 관계 질서를 성찰하게 하는 물음이다. 이는 비단 사람과의 관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재물과 환경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성찰하게 하는 물음으로 확대 적용할 수 있다.

 

이제 이러한 성찰을 바탕으로 우리가 돌아가서 붙들고 살아야 할 복음적 경제 생활 원칙을 제시하여 본다.

 

첫째, 건전한 재물관으로 과도한 물질 추구를 경계해야 한다. 재물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유용한 것이지만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된다. 그런데 필요에 따라서 재물을 모으려는 것이 아니라 행세하려고 재물을 모은다. 옷차림새로, 타고 다니는 승용차로, 살고 있는 집으로, 사용하고 있는 가재 도구로 사람을 평가하는 천박한 비교 의식 때문에 재물을 모으려는 경향들이 있다. 올바른 물질관이 정립되면 있다고 거드름 부리지도 않고, 없다고 위축당하지도 않는다. 소유로 평가받지 않고 인격으로 평가받고자 하기 때문이다. 재물은 각자의 필요를 기준으로 적당히 있을 때 가장 좋다. 재물이 많아서 너무 부유하게 될 경우 하느님을 부정할 위험이 있고 너무 없어도 거짓말쟁이와 사기꾼으로 전락할 수 있다. 성서는 말한다.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마십시오. 먹고 살 만큼만 주십시오. 배부른 김에, "야훼가 다 뭐냐?"라고 하며 배은망덕하지 않게, 너무 가난한 탓에 도둑질하여 하느님의 이름에 욕을 돌리지 않게 해 주십시오"(잠언 30,8-9).

 

둘째,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소득을 올려야 한다. 요즈음 우리 주변에는 땀을 흘려 돈을 번다는 근로 정신보다는 불로 소득과 일확천금을 바라는 도둑놈 심보를 가진 이들이 많다. 그리스도인은 건강한 수입의 원천이 노동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땀 흘리는 대가로 생계를 유지하는 행복을 누려야 할 것이다. "네 손으로 일하여 그것을 먹으니, 그것이 네 복이며 너의 행복이다"(시편 128,2). 간디는 우리를 파멸하게 하는 일곱 가지 가운데 하나가 "근로 없는 축재"라고 했다. 잠언은 단호하게 경고한다. "밭을 가는 자는 배불리 먹고 헛된 꿈을 꾸는 자는 배를 곯는다. 꾸준한 사람은 많은 복을 받지만 벼락부자가 되려는 사람은 벌을 받고야 만다"(잠언 28,19). "바른 사람의 집안에는 재물이 쌓이고, 악한 사람의 소득에는 걱정이 따른다"(잠언 15,6). "속임수로 모은 재산은 교수대의 이슬처럼 사라진다"(잠언 21,6).

 

셋째, 사치를 피하고 절약을 생활화해야 한다. 이는 일석이조의 결과를 가져온다. 환경 친화적인 삶과 무리한 지출의 방지가 그것이다. 가정에서는 물론 교회 차원에서도, 가정 차원에서도 종이 한 장, 전깃불 한 등까지 관심을 갖고 절약하고 소중하게 사용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시민은 환경 부하가 낮은 제품을 구매하고 불필요한 물품의 구매를 억제하며 일회용품의 구매와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계획성 없는 시장 보기, 무분별한 사치품 구입 등은 규모 있는 경제 생활을 무질서하게 만든다. 국내 경제 현실을 탓할 것이 아니라 쓸데없는 것을 구입하지 않으면 가정 경제가 안정된다는 사실, 그리고 규모 있는 생활에 훈련되면 만사가 형통하게 된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생활 수준을 뽐내기 위하여 사치와 허영을 일삼고 몇 식구 안되는 살림에 냉장고를 가득 채워 이웃에게 과시하는 소비 행태를 반성해야 한다. 성서는 엄중히 경고한다. "여러분은 머리를 땋거나 금으로 장식하거나 옷을 차려 입거나 하는 겉치장을 하지 말고 썩지 않는 장식, 곧 온유하고 정숙한 정신으로 속마음을 치장하십시오. 이것이야말로 하느님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1베드 3,4). "그 여자는 영화와 사치를 스스로 누렸으니 그만큼의 고통과 슬픔을 그 여자에게 주어라"(묵시록 18, 7).

 

넷째, 건전한 목적을 위해 저축을 생활화해야 한다. 성서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이기적으로 저축하는 것을 경계하여 "재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먹거나 녹이 슬어 못쓰게 되며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그러므로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라. 거기서는 좀먹거나 녹슬어 못쓰게 되는 일도 없고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가지도 못한다.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마태 6,19)라고 깨우친다. 그러나 성서가 저축을 장려하는 세 가지 차원이 있다. (1) 미래의 환난을 대비하여 저축하는 것이다(창세 6장에서 노아에게 방주를 짓게 하시며 방주 생활을 위하여 모든 식물을 저축하게 하심). (2) 고난받는 이웃을 위하여 저축하는 것이다(신명 14장에서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출의 십 분의 일을 저축하여 레위인, 고아, 과부들을 위하여 쓰게 하심). (3) 하느님 사업을 위하여 저축하는 것이다(1역대 29장에서 야훼의 성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미리 저축하게 하심). 최소한의 미래 대책과 이웃을 위한 복지 차원, 하느님 사업을 위한 저축 계획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참으로 숭고한 계획이라 할 수 있겠다.

 

다섯째, 재화를 선용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올바르고 건강한 경제 생활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내가 소유한 모든 재화가 하느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많든 적든 하느님의 뜻에 합당하게 선한 일에 사용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 세상에서 부자로 사는 사람들에게 명령하시오. 교만해지지 말며 믿을 수 없는 부귀에 희망을 두지 말고 오히려 하느님께 희망을 두라고 이르시오. 하느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풍성히 주셔서 즐기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또 착한 일을 하며 선행을 풍부히 쌓고, 있는 것을 남에게 아낌없이 베풀고 기꺼이 나누어 주라고 하시오. 그렇게 해서 자신들의 미래를 위하여 든든한 기초를 쌓아 참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하라고 이르시오"(1디모 6,17-19).

 

우리는 지금까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마태 6,31)에 골몰한 삶을 살았다. 경제 따로 신앙 따로의 삶 아니면, 경제 논리가 신앙 논리를 압도하는 삶을 살았다. 이제는 달리 살아야 한다. 경제 속에 신앙이 녹아 있는 삶, 신앙이 경제를 주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먼저 구하는 삶(마태 6,33 참조)을 살아야 한다. 공동선의 추구와 복음적 경제 생활 원칙을 준행함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이 되고 인류에 유익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일을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십시오"(1고린 10,31).

 

[사목, 2001년 3월호, 차동엽(인천교구 고촌 천주교회 주임 신부, 사목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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