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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헌법에 표현된 그리스도교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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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3 ㅣ No.471

헌법에 표현된 그리스도교 정신

 

 

1. 글머리에

 

한 권의 책이라면 몰라도 원고지 50장 내외의 분량에 헌법에 표현된 그리스도교 정신을 다 담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만큼 우리 헌법에는 그리스도교 정신이 많이 들어 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교가 세속적인 국가 생활과 관련하여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일반적인 도덕 원칙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그리스도교 정신을 복음서와 (진정한)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졌던 모든 사람들의 생각으로 아주 넓게 이해하고 헌법에 표현된 그리스도교 정신에 대하여 요약하기로 한다. 이를 위하여 헌법, 헌법과 종교, 헌법에 표현된 그리스도교 정신의 순서를 취한다. 주제가 광범위하고 지면은 제한된 만큼 그 내용이 자세할 수는 없다.

 

 

2. 헌법

 

헌법은 한 국가의 기본법을 말한다. 이에 대해서는 전혀 이의가 없다. 그러나 정작 실정 헌법 규정의 내용과 의미를 파악하고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을 그 과제로 하는 헌법 해석학에서는 헌법을 보는 관점에 따라 헌법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각각 다르다. 우리의 헌법 해석학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거나 미치고 있는 헌법관으로는 법실증주의적 헌법관, 결단주의적 헌법관 그리고 통합론적 헌법관을 들 수 있다.

 

수많은 법실증주의 헌법학자들을 대표하여 옐리네크(G. Jellinek)는 헌법을 "국가의 최고 기관을 정하고 그 구성 방법과 상호 관계 및 권한을 확정하며 국가 권력에 대한 개인의 기본적 지위를 정한 법규"라고 정의하였다. 결단주의적 헌법관의 대표자인 슈미트(C. Schmitt)는 헌법의 개념을 절대적 헌법 개념, 상대적 헌법 개념, 실정적 헌법 개념, 헌법의 이상(理想) 개념의 넷으로 나누고, 그 자신은 실정적 헌법, 곧 실존하는 정치적 통일체의 종류와 형식에 관한 근본 결단을 헌법이라고 본다. 통합론적 헌법관의 창시자인 스멘트(R. Smend)에 따르면 국가는 정태적으로 이미 선존(先存)하는 전체가 아니다. 국가는 지속적인 갱신(更新)의 과정, 지속적으로 새롭게 경험되는 과정에서 그 생명력을 얻는다. 곧 국가는 날마다 반복되는 국민 투표를 통하여 생명력을 얻는다. 국가는 과정이며, 그것도 통합의 과정이다. 헌법은 이러한 과정의 법적 질서로 생각된다. 곧 "헌법은 국가의 법질서이며 좀더 정확히 말하면 생활의 법질서, 곧 국가의 통합 과정의 질서이다. 이 과정의 의미는 국가의 전체적 생활을 항상 새롭게 형성하는 것이며, 헌법이란 이 통합 과정의 개별적 측면을 법적으로 규정한 것이다."우리나라의 경우 1960년 이전에는 법실증주의적 헌법관이,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결단주의적 헌법관이 그리고 197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는 통합론적 헌법관이 헌법학계의 다수설을 이루어 왔거나 이루고 있다.

 

그러나 필자로서는 우리 헌법을 일정한 헌법관이나 특정의 체계에 좇아 서술하는 것으로 충분한가에 대하여 커다란 의문을 가지고 있다. 법실증주의 헌법관은 대략 130년 전의 비스마르크 헌법을 근거로 전개되었다. 그리고 결단주의니 통합론이니 하는 용어로써 표현되는 헌법관들은 대략 7-80년 전에 바이마르 공화국이라는 특정의 역사적 상황을 제약 요건으로 성립되었다.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이 헌법관들을 수정 없이 현재의 우리 헌법을 해석하는 척도로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1) 더구나 현대 우리 사회는 이러한 헌법관들이 성립되던 당시에는 알려져 있지도 않은 문제(예컨대 환경 문제와 핵 문제와 같은 인류의 사활이 걸린 문제들), 당시에도 알려져 있었지만 현재는 과거와는 다른 형태로 제기되는 문제(이른바 선진국과 개발 도상국 사이에서는 물론 한 국가 내에서도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에서 발생하는 부의 재분배와 사회적 정의의 문제)와 우리에게 특유한 과제(남북 분단의 평화적 해결)들을 해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헌법학은 이제 결단이니 통합이니 하는 말만으로는 아우를 수 없는 많은 문제들을 조화롭게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을 제시하여야 할 과제 앞에 서 있는 셈이다.

 

따라서 필자는 국가를 '국민과 영토로 구성된 조직인 동시에 제가치의 질서'로 보고, 국가에게는 국민의 공통된 바람(정치적 통합과 사회적 정의의 실현을 통한 인간의 존엄의 확보)을 충족시켜야 할 과제가 있는 것으로 본다. 그러한 한에서 필자는 헌법을 국가의 기본법으로 보며, 또한 국가 공동체 내에서 인간의 존엄을 확보하기 위한 기본법으로 본다.2)

 

 

3. 헌법과 종교

 

종교란 신과 피안의 세계에 대한 우주관적(형이상학적) 확신을 의미한다. 종교는 신과 피안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그렇지 않은 사상과 구별된다. 또한 종교는 초과학적이라는 점에서 비과학적인 미신과 구별된다. 또한 종교는 신앙적 양심의 표현으로서 신앙 외의 것까지를 포함하는 양심보다는 좁은 개념이다.

 

우리 헌법은 제20조 제2항에서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라고 하여 정교 분리의 원칙을 선언하고 있다. 정교 분리의 원칙이란 국가는 국민의 세속적인 생활에만 관여하고 국민의 신앙 생활은 국민의 자율에 맡겨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곧 가치 관련적인 또는 합리적인 법은 가치 초극적인 또는 논리 초월적인 종교 문제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겠다는 원칙이다. 이를 달리 말한다면 정교 분리의 원칙이란 국가의 종교적 중립성을 말한다.

 

이처럼 헌법은 세계관에 대해서는 중립적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보았듯이 헌법을 제가치의 질서인 국가의 기본법이라 한다면 국가는 가치에 대하여 무관할 수는 없다. 곧 헌법은 가치 구속적인 규범 체계일 수밖에 없다. 헌법은 국민의 공통된 바람을 법규범으로 체계화해 놓은 것이며, 국민은 인간의 존엄을 향유하기 위하여 국가가 과거에 이룬 바를 계속하여 유지해 줄 것과 국가가 과거에 이루지 못한 것과 지금 이루어 가는 과정 중에 있는 것을 현재와 미래에 이루어 주기를 바란다.

 

우리 헌법은 이러한 과제에 상응하기 위하여 자유 민주주의, 법치주의, 사회 국가, 평화 국가, 문화 국가를 헌법의 기본 원리로 채택하고 있고, 국민에게 천부불가양의 인권에서 유래하는 여러 가지 기본권을 보장하고 있으며, 이들 기본권을 국가 권력의 남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권력을 분립시키고 있다.

 

 

4. 헌법에 표현된 그리스도교 정신

 

1) 이웃 사랑

 

그리스도교 정신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나의 이웃을 나와 같이 사랑하라는 이웃 사랑'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기에는 박애 또는 형제애라고 불리었고, 오늘날에는 연대성으로 불리는 이웃 사랑의 계명은 헌법에서는 아주 부분적으로만 표현되고 있다. 그 이유를 독일의 헌법학자이자 법 철학자인 크릴레(M. Kriele)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자유, 평등 그리고 형제애의 세 가지 이상 중에서 형제애는 프랑스 혁명에서 - 상투어와 친목을 맺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실제적, 정치적 역할을 하지 않았고 또한 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형제애는 평등과 자유를 이미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형제애는 평등을 전제로 한다. 왜냐하면 형제애는 평등한 권리와 의무를 전제하는 상호성의 토대 위에서의 협력, 상호 고려, 상호 옹호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주종 관계와 상하 관계와는 결합될 수 없다. 다음으로, 형제애는 자유를 전제한다. 왜냐하면 형제애는 모든 형제는 같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동기에서 비롯되는 자유 의지에서의 협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히 외부적 행동만을 명령할 수 있고 동기를 명할 수 없는 강제와는 결합될 수 없다. 정치 원리로서의 형제애는 간단히 말한다면, 동등한 권리와 자유의 토대 위에서 협력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음을 뜻한다. 이러한 의미의 형제애는 지금까지 단지 소규모의 공동체, 예컨대 가정, 교단, 그리스도교적 공동체, 키부츠에서만 실현되어 왔다. 형제애적인 공동체의 이념을 전체 공동체에 전용(轉用)하려고 하는 곳에서는- 예컨대 나치의 민족 공동체나 현실의 사회주의 또는 사회주의적 국가 공동체에서의 형제애적 원조에 있어서와 같이 - 예속과 강제를 초래하게 된다. 즉 평등과 자유 그리고 동시에 형제애의 기초를 부인하는 결과에 이르며, 인간은 인간에 대하여 이리가 된다."3)

 

헌법을 포함하는 법은 원칙적으로 인간의 내심 작용을 규율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적 행동만을 규율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이웃 사랑에 대해서는 강제할 수가 없다. 이웃 사랑은 우리 헌법에서는 사회 국가 원리에서 부분적으로만 표현되고 있다.

 

2) 가톨릭 사회 교리

 

(1) 가톨릭 사회 교리

 

가톨릭 사회 교리를 넓게 이해하면, 가톨릭 사회 교리는 그리스도교와 함께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의 복음과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행하신 바는 인간 사회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쳤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나라가 아닌" 나라를 세우셨다는 사실은 이론적, 현실적으로 현세적 구원과 사회적 세력에 의한 인간의 전적인 구속을 부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세례와 혼인 같은 성사(聖事), 특히 이웃 사랑의 계명과 같은 도덕률은 본질적으로 사회를 창설하고 사회에 질서를 부여하는 의미를 가졌다.

 

초기 교회에서는 부제직의 도입, 교부들의 사회 원칙들, 여러 공의회에서 선포된 규정들과 같은 이론적, 실천적인 유형의 사회 관련적 조치들을 행하였다. 이러한 조치들을 아우구스티노가 이론적으로 정리하고, 그후 특히 토마스 데 아퀴노가 더욱 발전시켜 광범위한 사회 이론, 국가 이론, 경제 이론의 체계가 성립되었다. 이러한 이론을 근대 초기에 수아레즈(Suarez), 벨라민(Bellarmin), 비토리아(Franz von Vitoria) 등이 풍성하게 전개시켜 앞으로 도래할 사회적 변동의 정치적 측면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오늘날 우리가 좁은 의미에서 사회 교리라고 부르는 것은 19세기 산업 경제에 대한 대답으로 등장하였다. 산업 경제의 결과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정신 문화적 대변혁이 뒤따랐으며, 이는 가톨릭 교회에 대하여는 도전을 의미하였다. 당시의 교회는 이러한 대변혁에 직면하여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라는 이중적 사조에게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는 사회 영역에서 가톨릭 교회의 역할과 권한을 부정하였기 때문이다.

 

가톨릭 교회 내부의 자기 이해에 따르면, "전체적 부분적 영역에서 현세적 인간 사회의 질서 구조에 관하여 가능한 인식을 그리스도교적으로 구제하는 모든 것을 종합한다는 의미에서"(Gundlach) 가톨릭 사회 교리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는 의문이 없다. 1931년에 교황 레오 13세의 사회 문제에 대한 회칙 [새로운 사태]의 40주년을 기념하여 비오 11세가 반포한 회칙 [사십주년]은 가톨릭 사회 교리의 목표를 "건전한 사회 철학의 제원리에 따라 사회 질서를 재건하고 복음의 고매한 명령에 따라 완성하는 것"으로 요약하고 있다. 가톨릭 사회 교리의 주요 대상은 사회, 국가와 법, 경제, 사회 질서와 정신적 자세의 변혁이며, 그 중심 원리는 인간 존엄성의 원리, 보조성의 원리, 정의의 원리이다.4)

 

(2) 헌법과 가톨릭 사회 교리의 관계

 

교황 비오 11세는 회칙 [사십주년]에서 가톨릭 교회는 사회적 문제에 대하여 교도권(Lehrautoritat)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는 이러한 교도권을 "교회가 적합한 수단을 가지고 있지도 못하며 또 사명도 가지고 있지 않은 기술적 문제가 아닌, 도덕률이 관련되는 모든 문제에 대하여"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비오 11세의 이야기는 가톨릭 사회 교리가 어떻게 하면 경제, 사회, 국가가 구체적인 상황에서 그때마다 목적에 가장 적합한 수단을 제시할 수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경제, 사회, 국가를 고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오히려 그러한 일은 해당 전문가의 몫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가톨릭 사회 교리에게는 일련의 변하지 않는 도덕 원칙(또는 원리)에서 결과하는 사회 질서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 문제된다.

 

이렇듯 가톨릭 사회 교리가 일련의 변하지 않는 도덕 원칙에서 결과하는 사회 질서상을 만들어 내는 것을 그 과제로 삼고 있다면, 이러한 사실에서 가톨릭 사회 교리와 법의 일정한 관계를 추론해 낼 수 있다. 켈젠(H. Kelsen)과 같이 법과 도덕의 관계를 부정하는 학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도덕으로부터 법이 만들어진다는 데에는 현재 이의가 없는 듯하다. 일련의 변하지 않는 도덕 원칙의 표현인 가톨릭 사회 교리는 헌법과 국가의 세계관적 중립성과 무관하게 헌법 제정 당시의 국민의 상식으로서, 곧 국민들 속에서 생동하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윤리로서 헌법에 표현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가톨릭 사회 교리의 기본 원리인 인간 존엄성의 원리와 보조성의 원리 그리고 정의의 원리는 우리 헌법에도 그대로 표현되고 있다.

 

(3) 헌법에 표현된 가톨릭 사회 교리

 

가) 인간 존엄성의 원리

 

우리 헌법은 1962년의 제3공화국 헌법 이래 헌법의 최고 구성 원리 또는 헌법에 실정화된 근본 규범으로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규정하고 있다. 곧 우리 헌법은 제10조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존엄을 규정하고 있는 헌법은 세계를 통틀어 그 숫자가 몇 되지 않으며, 그것도 그리스도교 국가가 아닌 국가의 헌법에서 인간의 존엄을 최고 원리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우리 헌법이 유일한 경우이다.5)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헌법 국가를 구성하고 통제하는 원리로서 기능하며, 그러한 한에서 우리 헌법에 표현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개인인 인간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국가 생활의 질서를 형성할 것을 요청하며, 그와는 반대되는 모든 경향, 추세, 노력, 시도들을 저지하는 성격을 가진다. 또한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인권에서 유래하는 모든 기본권의 이념이 되며,6) 생명권의 헌법적 근거가 된다.7) 따라서 임신 중절,8) 사형 제도, 안락사 등은 헌법의 최고 원리인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반하여 위헌이다.

 

나) 보조성의 원리

 

이 원리의 고전적인 표현은 교황 비오 11세의 회칙 [사십주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이 원리는 과거에는 소규모 공동체가 해결할 수 있었던 과제들이 이제는 더 커다란 공동체로만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하더라도, "개인이 스스로의 주도하에 그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개인에게서 박탈하여 공동체의 활동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9)라는 것을 뜻한다.

 

보조성의 원리를 헌법학에서는 보충성의 원리라고 부른다. 이 원리는 기본권 목록과 법치주의 원리에서 연유하는 헌법의 내재적 구성 부분이며, 일반 법정책적, 자연법적 그리고 심지어는 헌법적 원리로 생각된다. 특히 보충성 원리는 우리 헌법의 전문, 제10조, 제23조 제2항(재산권 행사의 공공 복리적 합성), 제31-36조(사회적 기본권), 제129조 제2항(사회적 시장 경제 질서) 등의 규정에 간접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사회 국가를 전체주의적 복지 국가 또는 급양 국가와 구별되게 하는 중요한 표지가 된다. 곧 사회 국가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인격의 자유로운 발전과 사회의 자율을 우선하며, 이러한 개인과 사회의 노력이 기능하지 않을 때에만 국가는 부차적으로 도움을 제공하고 배려하며 조정한다는 기본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에서 보충성의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10) 다만 구조적인 사회적, 경제적 약자에게는 보충성의 원리를 적용하기가 곤란할 것이다. 따라서 헌법은 이들에 대해서는 제34조 제5항에서 "신체 장애자 및 질병, 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 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다) 정의의 원리

 

가톨릭 사회 교리의 기본 원리 중 하나인 정의의 원리는 법학에서는 법의 이념 가운데 하나로 이해되고 있다. 법학에서 정의의 문제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평등의 문제로 환원되며, 평등은 절대적 평등과 상대적 평등으로 구분된다. 보통 헌법학에서는 평등 사상의 연원을 고대 그리스 사상(특히 아리스토텔레스)과 중세 그리스도교의 '신 앞의 평등'에서 찾으며, 이것이 17, 18세기의 근대 합리주의적 자연법 사상의 영향을 받아 '법(률) 앞의 평등의 원칙'으로 발전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우리 헌법은 근대 이후의 거의 모든 헌법들과 마찬가지로 헌법 제11조 제1문에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라고 하여 평등 원리를 선언하고, 동 제2문에서는 차별 금지 사유와 차별 금지 영역을 예시하고 있다. 그 밖에도 우리 헌법은 헌법 전문, 제31조 제1항(교육의 기회 균등), 제32조 제4항(여자의 근로에 대한 부당한 차별 금지), 제36조 제1항(혼인과 가족 생활에 있어서의 양성의 평등), 제41조 제1항 및 제67조 제1항(평등 선거), 제116조 제1항(선거 운동에 대한 균등한 기회 보장) 등에서 평등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다.

 

우리 헌법 제11조 제1문에 규정된 평등의 원리는 정의라는 객관적 원리의 표현이며, 우리 법질서의 기본 명제라고 할 수 있다. 또 평등의 원리는 우리 헌법상의 모든 기본권 보장의 당위적 상태를 규정하며, 인간 존엄과의 관계에서는 인간의 존엄이라는 헌법의 최고 이념을 실현하는 데 따라야 할 방법상의 지침을 제공한다. 더 나아가서 평등의 원리가 정치적 영역에 적용되는 경우(곧 평등한 선거권, 평등한 투표권, 평등한 공무 담임권 등으로 표현되는 경우) 그것은 민주 국가의 구성 원리로서 기능하며, 평등의 원리는 모든 생활 영역에서 기회의 균등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특히 현대 사회 국가에서는 사회적 평등을 요구하고, 국가적 급부에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11)

 

3) 기타

 

그 밖에도 그리스도교 정신이 헌법에 표현된 것은 더 있다. 예컨대 오늘날 그 전제와 한계에 대한 인식 없이 민주주의 그 자체로 오인되고 있는 다수결 원리도 고대 아테네 민회의 거수 표결 등에서 그 오래된 형태가 발견되기는 하지만, 중세의 수도원에서 보존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다.12) 그런가 하면 인권과 기본권사에 미친 그리스도교의 영향 또한 대단한 것이었고,13) 우리 헌법의 전문, 제5조(침략 전쟁의 부인), 제6조(국제법 존중) 및 제4조(평화적 통일) 등에 간접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평화 국가 원리14)의 전개에 비토리아나 수아레즈가 끼친 영향 또한 간과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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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홍성방, [헌법 I], 현암사, 1999년(3쇄 2001년), 11-15면 참조.

2) 위의 책, 15-18면 참조.

3) M. Kriele, [해방과 정치 계몽주의 - 인간의 존엄에 대한 변론], 홍성방 옮김, 가톨릭 출판사, 1988년, 80면.

4) J. Schasching, "Katholische Soziallehre", in Katholische Sozialakademie Osterreichs(Hrsg.), Katholisches Soziallexikon, Innsbruck-Wien-Munchen, 1964년, 499면 참조.

5) 홍성방,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인간의 존엄에 대한 헌법적 고찰", [가톨릭사회과학연구], 제11집, 1999년, 61면 이하, 특히 62면 참조.

6) 홍성방, 앞의 책, 186-197면 참조.

7) 홍성방, 앞의 논문; 홍성방, [헌법 II], 현암사, 2000년(2쇄 2001년), 10-28면 참조.

8) 홍성방, "낙태와 헌법상의 기본 가치", [서강법학연구] 제3집, 2001년, 25-54면 참조.

9) 비오 11세, "Enzyklika Quadragesimo anno, Nr. 79", in A. Utz(Hrsg.), Die Katholische Sozialdoktrin in ihrer geschichtlichen Entfaltung, 1976년, 554면(602면).

10) 홍성방, [헌법 I], 129-131.134면 참조.

11) 홍성방, [헌법 II], 44-62면 참조.

12) 홍성방, [헌법 I], 94-104면 참조.

13) J. Hofner, Christentum und Menschenwurde, Trier, 1947년 참조.

14) 홍성방, 앞의 책, 144-150면 참조.

 

[사목, 2001년 7월호, 홍성방(서강대학교 교수, 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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