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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이웃 종교의 환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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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0 ㅣ No.468

이웃 종교의 환경 운동

 

 

* 피조물과 함께 걸어온, 개신교 환경 운동 20년 - 유미호(기독교환경운동연대 기획실장)

 

세계 교회가 생태계 문제를 신앙적 관심과 신학적 사유의 대상으로 삼게 된 것은 1960년대였다. 그리고 창조 신앙과 관련하여 공식적으로 신학적 과제로 삼게 된 것은 1975년 나이로비에서 열렸던 세계교회협의회(WCC) 5차 총회에서였다. 1983년 밴쿠버에서 열린 제6차 총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세상의 생명'이라는 주제 아래 '창조 질서의 보전'이라는 실천적 과제가 정해졌고, 1990년에는 서울에서 세계교회협의회의 '정의, 평화와 창조 질서의 보전'(Justice, Peace, Integrity of Creation, JPIC) 세계 대회가 개최되었다. 그리고 1994년에는 진보와 평등성이라는 지구적 가치에다 '삶의 질', 또는 '지속 가능성'이라는 가치를 접목한 '생명 신학' 프로그램이 시작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세계 교회들의 움직임은 생태적 관심을 신학적 주제로 다루게 하여 개신교 환경 운동을 구체화하는 실천적 배경이 되었다. 사실 1970년대 서남동 교수의 생태학적 신학론의 태동 이후 1980년대 후반 들어 신학의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전개된 다양한 환경 논의들은 개신교 환경 운동에 큰 활력을 불어넣었다.

 

개신교 내의 환경 운동은 1970년대에 크리스챤 아카데미나 YMCA가 근대화에 따른 환경 파괴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시작되었다. 환경 문제가 사회적으로 고개를 들기 시작했던 1980년대에 접어 들면서는 기장 여신도회 전국 연합회 등을 시작으로 교회 여성들의 관심과 실천이 서서히 싹을 틔웠다. 그리고 1982년 들어서 비록 사회 단체의 형태를 띠기는 했지만 환경 운동을 부문 운동이 아닌 전체 운동으로 펼치게 될 '한국공해문제연구소'(현 기독교환경운동연대, http://kcems.peacenet.or.kr, 전화 (02)365-8900)가 설립되면서 본격화되었다. 초창기 연구소는 반정부활동이라는 오해를 받으면서까지 공해 문제를 폭로하고 그에 대한 대응책들을 마련해 갔다. '온산 공해병'과 '소각장 건설의 문제점', '핵 발전소의 위험성'을 밝혀 내고 사회 문제화함으로써 사회 전반에 공해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것을 대표적 업적으로 꼽을 수 있다.

 

물론 기독교 신앙을 바탕에 둔 실질적인 개신교 환경 운동의 시작은 1990년대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이 시기에 태백, 인천, 광주, 부산 등지에서는 기독 환경 단체들이 속속 조직되었으며, 운동의 주체들이 서서히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들 단체들은 짧지 않았던 기독교환경운동연대의 경험을 토대로 하였기에 그 운동에 힘이 있었다. 사회 속의 환경 운동은 물론이고 교회 속의 신앙적 환경 운동도 전개되었다.

 

특히 1984년에 세계 환경의 날(6월 5일)을 기념하면서 6월 첫 주일을 '환경 주일'로 정하여 지켜온 것은 교회 연합 사업에도 한 몫을 하였다. 리우 회의 이후 환경 문제가 전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던 1992년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각 교단에서는 환경 위원회를 구성하고 첫 연합 사업으로 환경 주일 공동 예배 자료를 발간하였던 것이다. 이후 각 교단에는 교단적인 차원에서 '환경 주일'을 정하고, 지금까지 해마다 환경 설교와 기도문, 예배 자료 등을 만들어 전국 교회로 보급해 오고 있다.

 

이외에도 물질 문명에 흠뻑 젖어 있는 삶을 하느님 중심, 말씀 중심의 삶으로 돌아서게 하는 회개 운동인 '생명 길 좁은 문' 운동,1) 교회가 지역 사회의 환경 센터로서의 기능을 담당하도록 하는 '녹색 살림터'2) 모델 개발과 보급, 매일 정오에 1분씩 공동의 환경 기도문을 놓고 기도하게 하는 '창조 보전을 위한 기도 운동'3), 창조 신앙 사경회, 환경 전도 활동 등은 이 시기 적잖은 기독교인들이 환경 문제를 신앙적 차원에서 받아들이고 신음하는 피조물들을 위해 헌신하는 길을 걷도록 해주었다. 생태적 관점에서 성서를 다시 보면서 환경 문제를 체계적으로 학습시킨 '환경 통신 강좌'4)와 '단순한 삶을 위한 생활 훈련'5)은 교회와 지역 사회 내 선한 청지기를 세울 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생태적으로 사고하며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게 하는 기초를 놓았다.

 

이후 운동에 새로운 변화가 시도된다. 일회성 행사에 그치던 교회의 환경 운동이 '환경 위원회'를 두는 등 단순한 차원의 실천을 뛰어넘게 된 것이다. 곧 개인뿐 아니라 교회들이 체계를 갖추게 되었고, 또 자기 중심에서 벗어나 내면을 깊이 성찰하면서 대안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1998년에 기독교환경운동연대가 교회의 환경 운동과 생명 신학의 접목하는 차원에서 제정한 '녹색 교회 21'6)이 그러한 노력의 결실이다.

 

그리고 19개 지역을 순회하면서 연 '녹색 교회 21' 교육은 죽어가는 생명, 신음하는 피조물을 돌보아야 할 교회들이 해야 할 구체적인 과제들을 찾게 하였다. 특히 구체화의 첫 단계가 2000년 들어 시작된 '교회를 푸르게' 하는 일이다. 이 운동은 교회가 회색 도시에 나무를 심어 푸르름을 회복하고 분열된 세상을 하나로 감싸 안게 하였다. 이는 기독교인들이 창조 신앙을 회복하여 온전한 인간성을 갖게 하여 피조물과 더불어 온전한 구원에 이르도록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일구게 하였다. 또 최근 들어서는 10여 개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생명 밥상 운동'이 준비되고 있는데, 우리의 밥상을 살리고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를 최대한으로 줄이는 것이 그 목적이다.

 

또 이 시기 (사)한국교회환경연구소를 중심으로 1998년 이후 매년 실시된 '생태적 삶을 추구하는 영성', '21세기 생태 위기와 인간의 삶', '생태 감수성 회복을 위한 교회 지도자 교육'은 운동의 질적 전환을 가져오게 하였다. 곧 단순히 이웃으로서의 자연을 사랑하자고 하는 차원이 아니라 기독교의 구속적 사랑(아가페)과 함께 그 동안 잊혀졌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서도 우주의 신비와 하느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창조의 영성을 회복해 가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목표로 삼도록 하였다. 또 기독교환경운동 연대가 개신교 수도 공동체인 '동광원'의 땅을 빌려 운영하는 환경 농장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실시되고 있는 주말 농장 프로그램들은 땀 흘려 농산물을 일구어 먹는 기쁨을 누리며 하느님의 창조에 대해 깨닫게 하는 커다란 베풂이 되고 있다.

 

이 시기, 또 다른 특징은 인적 물적 자원은 물론이고 이미 탄탄한 조직을 갖추고 있는 교회들과, 지역의 운동 조직들(여덟 곳: 서울, 광주, 대구, 부산, 인천, 전북, 태백, 함양)이 환경 문제에 공동으로 대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리산 식수 댐 건설 반대 성명 및 대정부 건의', '영월 동강 댐 반대 및 물 사랑 서명 운동', '새만금 갯벌의 생명과 평화를 위한 기도회' 개최, '2001 기독인 환경 선언문' 공동 발표 등은 대표적인 연합 사업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연대 운동은 핵에너지 위주의 에너지 정책 반대, 유전자 조작 식품 반대, 새만금 간척 사업 백지화를 위한 활동 등 일반 환경 운동 단체와 종교 환경 단체와의 연대로까지 닿아 있다.

 

현재 개신교 환경 운동의 주체는 개인, 지교회, 지역 교회 연합, 교단, 전문 환경 단체 등 여러 가지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개인 실천의 경우 그 동기가 신앙적인 것이든 대응적인 것이든 간에 교회, 기독 시민 단체, 기독 환경 단체, 사회 단체 속으로 파고 들어가 그 수나 힘을 가늠한다는 것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개신교인이 남한 인구의 25%에 달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지금의 실천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라는 사실이다. 여기에 운동을 대중화해야 하는 필요성이 있다.

 

이를 위해서는 환경 운동의 신앙적인 동기를 강하게 부각시켜야 한다. 성경 공부에 환경 교육을 접목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또 목회자의 관심과 확실한 문제 의식을 끌어내는 것도 시급하다. 환경 운동은 목회자의 솔선수범 없이는 불가능하다. 주일 설교를 통한 영적인 각성과 환경 의식을 고취시키는 것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둘째로 교회 실천의 경우 참여의 폭이나 운동의 내용이 많이 발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까지도 한 부서의 실천에 머물거나 지역 사회의 문제에 적극 나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교회는 사회적인 면에서 각종 사회 단체들과 비교해서도 상대적으로 풍부한 인적, 물적 자원 및 강력한 조직체를 지니고 있어 어떠한 시민 환경 단체보다도 더 효과적으로 환경 보전 운동에 기여할 수 있다. 그 동안 교회들이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해 온 것도 사실이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실제적인 열매 또한 크지 않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를 뛰어넘으려면, 환경 운동을 더욱더 신앙 운동으로 심화시켜 가야 할 것이다. 환경 운동이 단순히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운동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과 관련된 운동이라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게다가 환경 문제는 어느 한 가지 이론이나 처방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결코 아니라는 점에서, 자기 중심성(개교회주의, 성장 제일주의)을 탈피하고 다양한 신학적 모색과 더불어 녹색 교회로의 전환을 위한 다양한 실험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만약 과거의 틀에 매여 자기 갱신의 기회를 놓친다면 머지 않은 미래에 '낡은 옛 종교'의 하나로 취급될지도 모를 일이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교회 조직을 환경 실천 조직으로 발전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또 그 동안의 경험과 논의를 모아 신학적, 목회적, 예배적, 선교적, 교육적 차원에서의 생태적 대안을 마련하고, 적용 가능한 실천 프로그램과 교재를 개발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것이 가능하면 이 땅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피조물을 존중하고 양육하는 '섬김과 돌봄'의 삶을 살 수 있으리라. 그들이 하느님의 형상을 기억해 내고 창조 동산의 아름다움을 세우기 위해 필요한 도움을 아끼지 않을 것이며, 그러면 죽어가는 세상에 새 하늘과 새 땅(묵시 21,1)이라는 하느님의 상급이 주어지리라 믿는다.

 

 

* 생명 운동으로서의 불교 환경 운동, 성찰과 전망 - 박석동(한국불교환경교육원 사무국장)


들어가는 말:깨달음과 마음의 시대

 

환경 문제는 단순히 자연 환경 문제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사고와 가치관, 사회의 구조를 이루는 패러다임의 문제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음, 깨달음, 수행, 영성이라는 영역의 용어들이 중요하게 인식되는 것은 매우 반갑다. 환경 운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환경 활동가들마저도 깨달음과 수행이 환경 문제 해결에 있어서 왜 중요한가를 이해하지 못 했었다. 환경 문제는 결국 무엇이 행복한 삶이냐에 대한 성찰, 궁극적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태도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석가모니가 이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는 전 지구적인 위기의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되고 있다.

 

엔드류 돕슨은 현재의 환경 운동을 생태주의 운동과 환경주의 운동으로 구분하고 있다. 환경주의 운동은 환경 문제를 일으킨 근본 문제보다는 환경 오염의 정화에만 관심을 쏟는다. 그러나 생태주의는 환경 문제를 일으킨 사회 구조, 인간의 정신과 가치관을 문제 삼고 있다. 요컨대 환경 문제는 인간의 의식과 사회 구조 및 경제, 정치, 시스템 등 패러다임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문명적 변화, 산업 사회의 변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환경 문제는 엄밀하게 말하면 지구의 위기라기보다는 인간 생명에 위기를 느끼게 하는 문제이다. 공룡이 멸종했을 때 공룡의 입장에서 보면 지구가 멸망한 것이지만, 미생물이나 다른 작은 생명의 입장에서 보면 지구의 수많은 생명 중의 하나가 멸종했을 뿐 지구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대로이다. 결국 환경 위기가 사회 위기로 귀착된다. 따라서 환경 문제의 해결은 인간 내면의 변화에서 시작되어야 하고, 동시에 사회 구조에 대한 변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개인의 변화, 깨달음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불교는 환경 문제 역시 깨달음에 이르는 시대적 방편이라 생각한다. 환경 문제는 자기 중심적 탐욕으로 얻는 업보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존재나 사회적 사건 등 삼라만상(森羅萬象)은 개별적 존재로서의 독립 개체가 아니라 서로 연관되어 있고, 관계 맺고 있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인간은 마치 자연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존재하는 것으로 전도된 생각에 빠져서 살고 있는 것이다. 환경 문제는 이렇듯 전지구적 생명 위기의 시대에 본래의 자리를 찾아가는 깨달음의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

 

불교 환경 운동을 돌아보며

 

불교는 '환경 운동'에 있어 다른 종교에 비해 일천한 경험과 역사를 갖고 있다. 불교적 가르침으로 볼 때 무엇이 생명 운동이고 무엇이 환경 운동인지 사실 크게 차이를 두기는 어렵다. 환경 운동은 결국 적게 먹고 적게 소비하고 자기 몸과 마음 자리를 잘 닦는 것으로 그 자체가 훌륭한 생명 운동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 사회 운동과의 차별적 변화를 예고하는 시민 운동의 등장과 더불어 생명 운동과 생태적 사유, 녹색적 가치와 이념들이 점차 새로운 비전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생태 위기를 앞두고 우리 사회에는 서구적 가치에 대한 문제 의식과 동양적 사유에 대해 동경하는 경향이 생겼다. 모든 영역에서 정신적 가치에 대한 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욕망을 기반으로 한 경제 중심의 사회가 지금 행복을 줄 수는 있지만, 결국 인간성 상실과 공동체의 붕괴를 초래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생명 운동이라는 말은 이미 일상화되었다. 불교에서는 환경이라는 용어를 기피하는 편이다. '환경'이라는 말이 주체인 자기를 제외한 상태에서 제반의 주변 상황이나 여건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불교 생명 운동은 인간과 사회와 자연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고자 하는 이념적 목표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분법적인 논리는 적당하지 않다. 그리고 이미 환경 운동이라는 것은 자연 환경의 복원과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와 저항 운동이라는 굳어져 버린 이미지를 갖고 있다. 모든 종교 환경 운동이 마찬가지이지만 불교 생명 운동 또한 이러한 범위를 초월하고 있다.

 

불교계의 생태 운동은 이러한 사회 현상들 속에서 점점 발전해 왔다. 특히 1990년대 불교 내 분규로 인해 종단 권력에 대한 실망감을 갖고 있던 불교의 건강한 사회 세력들은 일반 민주주의를 뛰어넘는 새로운 운동을 기대하면서 환경 운동으로 대표되는 생명 운동과 생태주의 운동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생명 운동은 물론 그 이전부터 있어 왔지만 구체적인 조직 운동 양상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한국불교환경교육원'(이하 환경교육원)이 출범한 1988년부터이다. 환경교육원은 생태주의와 공동체를 비롯한 생태적 대안 사회 운동, 생명 운동 이념 확산 운동, 환경 단체 간의 네트워크 운동 및 대중과 전문가를 위한 환경 교육 프로그램을 지금까지 꾸준하게 진행해 왔다. 이후 1992년에는 '청정국토만들기국민운동본부'의 전신인 '공해추방불교인모임'이 출범하였다. 1994년에는 '맑고 향기롭게'가 활동을 시작했고, 1995년 3월 경불련에 환경 모임이 만들어졌다. 그 해 6월 5일 환경교육원을 비롯한 불교계 환경 단체들이 연합하여 제1회 청정 국토 한마당 행사를 조계사 마당과 인근에서 이틀에 걸쳐 진행하였다. 이는 한국 불교 내에서 벌어진 최초의 연합 환경 행사이자, 최초의 '환경의 날' 행사였다. 이러한 활동에 힘입어 각 지역과 사찰에서는 환경 활동을 하는 작은 단체들이 만들어졌다.

 

1996년 11월 22일에 개최된 '사찰 환경 보존과 민족 문화 수호를 위한 전국 본말사 주지 대회'를 필두로 종단 내에서는 개발에 대한 본격적인 대응을 하기 시작했다. 그 여세로 1996년 12월 조계종 총무원에 20여 명의 전문 위원으로 구성된 '사찰 환경 보전 위원회'가 출범하였다. 또한 1998년 부산에서는 정각 스님이 중심이 되어 부산불교환경운동연합을 설립하였지만 활력을 갖지는 못하고 있다.

 

1999년 9월에는 인드라망 생명 공동체가 창립되어 불교 귀농 학교, 실상사 귀농 전문 학교, 도농 공동체 운동으로서의 생협, 생명 운동의 이념 확산과 교육 사업으로서의 화엄 광장, 대안 교육 운동으로서의 실상사 작은 학교 등의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2000년 7월 13일에는 대한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직속의 '환경 위원회'가 새롭게 발족되었다. 그 며칠 전인 6월 29일 '지리산 살리기 댐 백지화 추진 범불교 연대'가 창립되었고, 8월 30일에는 '지리산 살리기 국민 행동'이 만들어졌다. 이 단체에서는 지리산을 지키고 댐 개발 문제를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해 '낙동강 1,300리 도보 순례'를 추진 하였다. 중앙 신도회와 불교 직능별 법회에서도 환경 운동에 대한 적극적인 활동을 구상하고 있다. 그리고 정토회의 1,000여 명의 회원들은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생활 실천을 전개하고 있으며, 진각종에서는 진각종 청정 국토 가꾸기 운동을 종단 차원에서 전개하고 있다.

 

그리고 지리산 살리기 댐 백지화 범불교 연대는 향후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녹색미래 등 수많은 일반 시민 환경 단체도 참여하면서 지리산 살리기 국민 행동을 결성하여 2001년 3월 26일 건설교통부가 '지역 주민들의 반대가 심한 공사는 더 이상 추진하지 않는다.'라는 지침을 발표하게 만들었다. 불교계가 주도적으로 이슈와 정책 개발에 참여하고 주된 실무력을 동원하여 활동을 전개한 운동으로서 큰 의미를 갖는다. 새롭게 등장한 리더십과 각계의 관심과 열정을 발전적 에너지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바탕으로 2001년 9월 불교 환경 연대를 창립하게 된다.

 

그 외에도 사찰 수행 환경이 파괴와 침해의 과정을 거치면서 사찰과 스님들이 중심이 되어 개발을 막아 내고 자연 환경을 보전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는 등 많은 활동들의 성장이 있었다. 그럼에도 비난을 면치 못하는 것은 사찰 스스로가 대형 불사를 통해 환경 파괴의 주체로 부각되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목이 쉬어라 호소해도 남의 일로 여기다가 개인에게 구체적인 피해가 닥치면 다른 사람이 자신의 사안에 관심을 갖지 않는 무관심을 원망하고 비난하는 경우를 많이 보인다.

 

불교 생명 운동의 새로운 발걸음을 내다보며

 

불교는 생태 친화적인 사상 체계를 갖춘 종교로서, 인류에게 희망의 불빛을 비춰줄 가능성만으로 많은 생태학자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깨달음으로서 불교가 미래의 희망임에는 분명하지만, 조직으로서의 불교가 이러한 기대를 만족시켜 줄 지는 회의적이다. 그것은 아직도 불교 내에서 환경이나 생명 문제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지 못하고 적극성을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무소유의 의미가 더욱 부각되는 지금, 불교가 오히려 자본주의에 포섭되고 있으며, 근본을 유지하면서도 합리성을 띠는 파격과 직관의 가치를 발흥할 씨앗이 아직 꽃을 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불교 사상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생명 운동이나 환경 문제에 대해서 실질적이고 깊이 있는 논문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불교학에서는 생태주의나 환경 문제에 대해 실사구시한 논의가 거의 없다. 해인사 해인 골프장 건이나 경주 고속 전철, 봉은사 및 기타 사찰 주변의 환경 파괴와 개발과 관련된 대응이 피해에 대한 저항의 수준을 뛰어넘어 불교적 토대를 갖는 가치 지향의 활동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이 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스님들의 의식의 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운동이 운동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가지려면 이념성, 조직성, 지속성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불교의 운동은 지속성과 조직성을 갖추는 데 익숙하지 못한 편이다.

 

그리고 환경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사찰이 있는 지역의 시민 환경 단체들과 평소에 꾸준하고 긴밀한 연대와 공동 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그러한 사회적 활동을 토대로 지역의 건전한 시민 단체들이 사찰 환경 보호를 자신의 지역 운동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사찰별로 환경 위원회를 결성해야 한다. 조직화를 이루고, 교육을 통해 활동 주체를 형성하며, '우리 사찰 알기 운동', '우리 사찰 가꾸기 운동' 등 다양한 실천을 할 수 있다. 사찰별로 생활 협동 조합 운동을 만들어야 한다. 생협 운동은 단순히 중산층의 건강한 무공해 직거래 운동이 아니다.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유기농 생산 농민을 살리는 길이며, 우리 가족의 건강을 위하는 일이며, 또한 도시와 농촌을 잇는 운동이며 새로운 고향과 흙을 느끼는 운동인 것이다.

 

사찰 스스로 무분별한 대형 불사를 지양해야 한다. 우선 환경의 부담을 줄이고 자연의 정화 능력을 벗어나지 않는 작은 규모여야 한다. 그리고 그 지역의 문화적 특성과 자연적 특성에 어울려야 한다. 일반적으로 큰 불사를 진행하는 것에 대해 많은 문제 제기와 비판을 한다. 물론 단순히 크다는 이유로만 비판될 수는 없다. '크다, 작다'라고 여기는 것은 결국 인연에 의한 분별이고 수요의 측면을 고려한다고 할 때 이해를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렇다고 대형 불사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자연을 이용하는 것은 자연의 복원 능력, 정화 능력을 벗어나지 않는 규모로 국한되어야 하듯이, 개발의 규모도 인근 지역의 복원 능력, 정화 능력을 벗어나지 않는 수준에서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불교의 방생(放生) 문화에 대해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것이라고 비난하는 사회의 여론이 높다. 그러나 그것 역시 대규모 방생이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생명을 살린다는 방생의 정신을 되살려 소규모로 진행되며 이웃을 돌보고, 제3세계의 아픔을 치유하는 방식의 생태 방생을 진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새롭게 살려야 할 불교의 전통 문화에는 방생의 문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찰에서 스님들이 수행 생활하던 사찰 청규 또한 오늘날 인간성을 회복하고, 파괴된 공동체성을 살리며 세상 만물을 대하는 태도를 새롭게 하는 큰 실천적 지침이 된다.

 

글을 닫으며 : 소욕지족의 삶을 꿈꾸며

 

환경 문제는 궁극적으로 깨달음의 문제이다. 자신만이 아니라 자연을 비롯한 삼라만상이 모두 연관되어 있다는 연기적 관계를 깨닫는 것이며, 미래 세대와의 관련성을 통찰하는 지혜를 요구받는 것이다. 불교가 불교인 것은 수행과 정진의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제도화된 종교로서의 불교는 자신의 피해에만 민감하게 반응할 뿐 사회 참여와 기여에는 둔감해 왔다. 이것이 극복되어 인간뿐 아니라 많은 생명에 대한 깊은 애정과 자비심을 갖고 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주도적인 흐름은 '개발과 성장'이었다. 이를 뒷받침하는 '자본주의적 경제 성장 이데올로기'는 오랫동안 개발론자들의 선동과 다수 대중들의 동의를 통해 강력하게 이 땅에 구현되어 왔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가해는 정당화되었고, 인간 사이의 공동체성은 대립과 경쟁으로 파괴되었으며 이 또한 '정글의 법칙'이 연장된 당연한 논리로 받아들여져 왔다. 이것들은 현재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제 '생태 위기의 시대'로 진단되는 21세기를 살아가면서 우리 불교계는 분명히 참회해야 한다. '잘못된 세계관과 삶의 철학'에 입각한 기존의 삶의 결을 새롭게 바꾸어 내는 일에 적극 나서지 않는다면 우울한 상상이 현실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비록 아주 어려운 일일지라도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결국 가난을 거룩하게 여기는 삶, 자발적인 청빈인 것이다. 나아가 오히려 그 속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종교가 주장하는 내용이 결국 자비의 실천이라면 분노와 증오를 동력으로 해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들에게 몸으로 말해야 하며 삶으로 주장해야 하는 것이다.

 

불교계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의 것만을 지키기 위한 소극적인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지킬 수 없다. 우리가 부처님의 '연기법' 사상을 지키기 위한 힘은 사람들 속에서 '관계성과 삶의 철학'을 구체적으로 살려내는 데서 생겨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불자 대중들이 생태·생명 운동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참여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시도가 장기적으로 정착되기 어려울 것이다. '불살생' 계율을 지켜가는 것이 살생을 금하면 된다는 소극적인 개념에서 생명이 살아가는 터전을 지켜가고자 하는 적극적인 개념으로 발전시켜 내는 데 더 많은 참여를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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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명 길은 좁은 문으로'(마태 7,14)라는 말씀에 기초하여, 다음 열 가지 계명을 정하고 실천 운동을 전개하여 왔다. ① 하느님만을 섬기며 청빈하게 산다(마태 6,24), ② 경건한 신앙 생활을 한다(1디모 4,7-8), ③ 절제하는 생활을 한다(2베드 1,5-7), ④ 가난한 이웃과 나눈다(잠언 19,17), ⑤ 남녀가 서로 돕고 존중한다(갈라 3,28), ⑥ 자연과 친숙해진다(사도 11,6-9), ⑦ 작고 단순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사도18,3-4), ⑧ 불편함을 즐기며 부지런한 생활을 한다(잠언 10,4), ⑨ 더러움과 친해진다(마르 7,15-16), ⑩ 생명 길 좁은 문의 전도자가 된다(사도 1,8).

 

2) 녹색 살림터의 기능으로는 중고품, 환경 상품, 유기 농산물을 보급, 환경 교육과 환경 감시 활동 등이다. 현재까지 광명(이완홍), 대봉(김정일), 연동, 평강(허성환), 장안원(민선규), 황지 중앙 교회(이상진) 등에서 시도되었다.

 

3) 정오에 1분씩 기도하도록 하고 매월 기도 제목 우송함.

 

4) 성서 묵상, 환경 이론, 환경 실천의 순서로 구성된 교재를 6개월 동안 우편으로 받아 보면서 교육 받도록 함. 덕수 교회(손인웅)의 경우 170여 구역 모임이 주일마다 이 교육을 받도록 하였다.

 

5) 물질주의에서 해방되기 위하여 단순한 삶을 훈련하는 프로그램으로 매년 1회씩 3박 4일 동안 진행된다.

 

6) '녹색 교회 21'은 생명 위기 시대에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해 교회가 해야 할 일을 초대 교회의 신앙 양식(예배, 친교, 교육, 봉사) 등을 빌어서 표현한 것이다. 그 내용을 압축한 것이 녹색 기독인 십계명과 녹색 교회 십계명이다. '녹색 기독인 십계명'은 다음과 같다. ① 일회용품을 쓰지 맙시다. ② 이용합시다, 대중 교통. ③ 삼갑시다, 합성 세제. ④ 사용합시다, 중고 용품. ⑤ 오늘도 물, 전기를 아껴 씁시다. ⑥ 육식을 줄이고, 음식을 절제합시다. ⑦ 칠일은 하느님도 쉬셨습니다. 시간에 쫓기지 않게 삽시다. ⑧ 팔지 맙시다, 소비 광고에 한눈을. ⑨ 구합시다, 작고, 단순하고, 불편한 것! ⑩ 십자가 정신으로 가난한 이웃을 도웁시다. 이어서 녹색 교회 십계명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① 환경 주일(6월)을 정하여 지킵시다. ② 신음하는 피조물을 위해 기도합시다. ③ 하느님의 창조 세계 보전을 위해 설교합시다. ④ 창조 보전을 위한 교육과 훈련을 합시다. ⑤ 환경 전담 부서를 둡시다. ⑥ 환경을 살리는 데 예산을 사용합시다. ⑦ 불필요한 행사를 줄이고 소비를 절제합시다. ⑧ 냉난방을 절제합시다. ⑨ 중고품, 재활용품, 환경 상품을 애용합시다. ⑩ 지역 사회, 교회들 간에 환경 보전을 위해 연대합시다.

 

[사목, 2002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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