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일 (수)
(홍)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윤리신학ㅣ사회윤리

[환경] 창조질서 보전을 위한 신앙인의 역할과 자세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0 ㅣ No.460

창조질서 보전을 위한 신앙인의 역할과 자세

 

 

1) 환경에 대한 관심

 

70년대부터 산업화 전략에 따라 고도의 경제성장만을 거듭해온 우리에게 80년대 중반이후 '환경'이란 단어가 들려왔다. 이는 산업화의 결과로 삶터가 오염되고 황폐화되어 우리의 생존이 직접적인 위협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최근에는 그린, 바이오 라는 단어들이 유행처럼 번지고, 급기야 작년 6.27지방선거에서는 선거에 나선 대부분의 후보가 환경 친화적인 공약을 내걸었다. 삶의 질을 추구하는 시대적 추세에 비추어 볼 때  환경에 대한 관심은 늦은 감이 없진 않으나 다행스러운 일이기는 하다. 허나 얄팍한 상술, 표를 얻기 위해 환경을 파는 일이 황폐화된 자연과 생명을 되살릴 수는 없는 일이다.

 

 

2) 환경과 생태계, 그리고 창조질서

 

많은 사회, 교회 단체가 환경을 살리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해도 환경보호, 환경보존, 자연보호, 생태계보호 등의 기치를 내걸고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런 슬로건들은 중요한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 즉 환경의 파괴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로 인한 생명(인간을 포함한 모든 유기체를 일컫는다)의 파괴로 이어지는 것인 바 환경운동의 최종목표점은 생명수호운동과 연결되어야 한다. 

 

사전적 의미에서 ‘환경’이란 낱말은 ‘유기체에 직접, 간접으로 영향을 주는 모든 주위의 정황’이라고 뜻풀이를 하고 있다. 즉 유기체(생명)를 뺀 나머지 주위의 정황만을 일컫고 있기에 우리의 운동을 설명하는 낱말로는 부적절하다. 이보다 더욱 적절하다고 여겨지는 낱말로 '생태계'란 것이 있다. 이는 '생물과 외계와의 관계, 곧 생명과 생명을 둘러싼 바깥 세계와의 관계'를 뜻한다. 이와 유사한 의미를 담고 있으면서 우리운동의 목표를 본질적으로 밝히는 낱말이 바로 ‘창조질서’라는 것이다. 하느님의 창조역사를 역사로 인정하든, 상징으로 인정하듯 성서에서는 하느님이 하늘과 바다, 땅, 사람, 새, 나무 등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창세 1-3장)라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창조질서'라는 낱말에는 생명과 생명이 거처하는 공간, 생명과 생명의 관계, 생명을 포함한 모든 자연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운동을 총칭하여 '창조질서 보전운동'이라 할 수 있고 이는 생명살림운동을 기저에 깔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3) 환경파괴의 실상

 

인천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현재 인천은 항구도시, 공업도시로 전국 최고의 공해와 오염지역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이미 주안과 부평지역의 대기오염은 위험수치를 넘어섰고, 무분별한 도시계획과 신도시건설로 인해 교통과 주택, 인구문제가 골칫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민선시장의 등장이후 대규모 개발사업으로 인한 환경파괴의 정도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대표적인 것으로 아암도 위락단지화 계획, 송도신도시건설을 위한 송도 앞 바다 갯벌 매립, 소래산, 문학산, 청량산 등 인천의 진산 파괴, 영종도 신공항 건설로 인한 갯벌의 파괴, 영흥도 화력발전소 계획, LNG기지 건설 등이 잇달아 계획되고 있는 실정이다.

 

청량산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청량산은 송도유원지를 병풍처럼 둘러싼 해발170M에 지나지 않는 조그만 산자락에 불과하지만 지리산의 축소판이라 할 정도로 아주 재미있는 산이다. 송도 쪽의 바위능선은 산을 타는 즐거움을 주고 반대쪽 산자락은 숲 속에 파묻혀 잠시 길을 잃었다고 착각할 정도로 숲이 우거져 있는가 하면 온갖 나무와 새들이 군집해있는 생태계의 천혜보고이다. 송도가 오랜 옛날부터 명성을 드날릴 수 있었던 것은 청량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이 청량산이 절단의 운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인천시 당국은 문학종합경기장이 들어서고 아파트촌이 조성된 연수구의 교통을 원활히 한다는 명목으로 문학산에 터널을 내고 그 도로를 곧장 청량산을 통과시켜 송도신도시로 연결시킨다는 개발계획을 세우고 있다. 녹지공간이 절대 부족한(녹지비율 21%로 전국최하위) 인천에서 문학산, 청량산의 파괴는 우리의 숨통을 스스로 죄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생태계를 복원불능지경으로 몰고 가는 죄악이다. 송도신도시 건설을 위한 갯벌 매립도 마찬가지이다. 오는 2002년까지 5백35만평 즉 여의도의 6배 크기를 매립하여 그곳에 첨단기능을 갖춘 텔레포트를 건설한다는 발상이지만  그로 인한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우선 엄청난 생산력을 가진 갯벌이 파괴되고, 나아가 신도시 건설 후 야기될 엄청난 교통, 생활오염, 인구문제를 어떻게 감당해낼지 아무런 계획이 없다.

 

 

4) 지속적인 개발, 경제성장과 삶의 질은 양립될 수 있는가?

 

우리 나라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로 손꼽힌다. 가장 최단시간에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나라로 아시아의 떠오르는 용이라는 찬사를 듣고 있다. 모든 국민이 허리를 졸라매고 열심히 일해온 결과이다. 그런데 정부관료들은 국민총생산이 얼마이고 개인소득 만불 시대가 되면 어떻고 수출이 몇백 억불이면 우리생활은 나아질 것이라고 선전했다. 그러나 정부의 선전처럼 우리의 삶의 질이 높아지고 행복하고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일반적으로 나라의 경제규모가 어느 정도인가를 나타내는 지표로 국내총생산(GDP)를 사용한다. 그런데 이것은 2차 세계대전 중 전쟁이 경제적으로 수익성 있는 것인지를 밝히기 위해 고안된 개념으로 이후 유엔국가회계체제(UNSNA)에 의해 모든 국가경제의 성장을 측정할 수 있도록 보편화되었다. 이 지표는 여성의 가사노동과 같은 무임 노동이나 자연(햇빛, 물, 공기, 땅, 자원과 같은)자원을 무한대로 쓸 수 있는 '자유재'로 보고 있다. 즉 아무리 사용해도 없어지지 않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즉 경제성장으로 인한 자연의 파괴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예컨대 영종 신공항을 건설한다고 할 때 매립되는 갯벌의 경제적 비용, 생계수단을 잃은 어민의 고통, 경제적 피해 등은 고려하지 않는다. 다만 자연의 파괴에 대한 복구가 더 많은 투자와 산업, 이윤을 남길 경우에만 국내총생산지표에 잡히는 것이다. 핵발전소를 짓는 것도 성장지표를 높이는 것이고, 다 쓴 핵발전소를 부수는 것도 성장지표를 높이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핵발전소를 짓고 부수는 일이 생명을 죽이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지속적인 개발과 경제성장이 치러야 할 대가는 생명의 자연적 토대를 파괴하는 일이다. 공기와 물의 오염, 도시 스모그, 산성비, 계속되는 거대 도시화, 스트레스로 인한 사망률의 증가, 토양오염과 부식 등이 자연자원을  무한대로 이용할 수 있다고 착각한 성장지향의 경제모델이 낳은 부산물이다. 따라서 이런 생명의 자연적 토대가 파괴된 상태에서 삶의 질을 논의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일부에서 말하길 지금과 같은 경제성장만을 계속하자면 지구는 최소한 두 개의 행성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하나는 더 많은 자원을 가진 자원용 행성하나와 쓰고 난 쓰레기를 버리는 쓰레기하치용 행성하나를…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건강한 환경,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들과 후세를 위한 미래가 병존할 수는 없다.

 

 

5)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고정관념은 무섭다. 특히 경쟁과 이기심이 충만한 사회에서 '돈'이 최고고 '편리하고 안락하게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남보다 많이'가지고 '남보다 빨리' 움직이고 '남보다 높이'올라가야 성공한 인생이라고 믿는 고정관념이 세상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진정으로 행복한 삶, 삶의 질이 보장되고 생명이 보전되는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고정관념과 편견을 벗어나 대대적인 인식의 전환을 필요로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환경파괴의 주범은 유대-그리스도교 문명(서구문명, 혹은 백인문명)권이다. 이들은 성서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할,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라는 구절대로 자연 환경에 대한 광범위한 파괴행위를 '정복''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했다. 원래 성서의 히브리적 세계관은 창조주 하느님으로부터 만물을 풀어 설명하는 일원론적 세계관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로마의 승인을 거치면서 서구유럽에 토착화되는 과정에서 그리스(희랍)적 세계관인 이원론을 수용하게 된다.

 

이원론은 세계를 둘로 나누며 이 양자들을 서로 대립시키고 투쟁과 갈등 속에서 승리와 패배라는 극단적인 양상으로 치닫게 만드는 위험한 세계관이다. 희랍철학의 최고봉이라고 일컫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은 신을 실재의 맨 위에 놓고 그 다음에 영혼 그 다음에 인간(이것도 남자- 여자-노예 순으로), 동물, 다른 생물(식물), 무기물 순으로 파악하였다. 신과 영혼, 남자는 고귀한 것이고 나머지는 천한 것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성(聖)과 속(俗)이 나뉘고 남자와 여자가 나뉘고 빛과 어둠이 나뉘고 선과 악이 나뉘고 사랑과 미움이 나뉘고 생성과 죽음이 나뉘고 영혼과 육신이 나뉘고 인위와 자연이 나뉜 것이다. 하지만 성과 속은 애초부터 구별되어 있지 않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은 거룩하다. 하나의 칼로 미사초를 깎느냐, 도둑질을 하느냐에 따라 구별되듯 어떤 지향을 갖느냐의 차이에 따라 거룩한가, 속된가라는 것으로 나뉘어질 뿐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연을 다스리는 행위(개발, 정복, 경제성장)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자랑스러운 승리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자연과 인간은 서로 평등하며, 하나가 파괴되면 또 다른 하나가 무너진다는 순환론적, 일원론적 세계관을 가질 때 자연을 살리고 창조질서를 보전하는 행위가 가능해진다.

 

똥을 예로 든다면 이원론적 세계관에 입각한 사람은 똥을 더럽고 속된  쓰레기이고 우리의 몸은 그런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소비체로 보겠지만 일원론적, 순환론적 세계관에 입각한 사람은 똥은 땅을 살리는 자원이고  우리의 몸은 자원을 생산하는 생산체로 생각하게된다.

 

 

6) 생명공동체건설에 나서야 한다.

 

사도 요한은 '하느님은 사랑이시다(요한 4,8)'라고 선포하셨듯이 하느님은 사랑이다. 그러므로 모든 생명이 파괴되고 죽음으로 치닫는 현실에 이르러 우리는 모든 피조물은 생명이고 사랑인 하느님의 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한다. 그리스도인은 생명이고 사랑인 하느님의 편에 서서 당신의 창조질서를 보전할 임무를 부여받았다.

 

프랑스의 환경운동가인 르네두보라는 사람은 '생각은 세계적 차원에서, 행동은 지역적 차원에서'라고 말했다. 즉 우리의 사소한 행동이 생태계파괴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되 창조질서 보전을 위한 실천은 구체적으로 우리가 사는 생활로부터 출발해야한다는 말이다. 지방자치의 근본요체가 바로 내가 살고있는 삶터에서 우리의 삶의 질을 스스로 높이기 위한 참여정신에 있다고 볼 때 창조질서보전운동 역시 자신의 삶터로부터 출발해야한다.

 

생명을 살리는 일은 추상적인 언급으로는 불가능하다. 또 소수의 각오와 결단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행위들을 전개해나갈 때 생명을 살리는 일이 가능해진다. 

 

그런 뜻에서 교회에서 전개하고 있는 공동체운동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결정하고 있는 상품소비관계와 경쟁 및 이기심을 생명을 살리는 관계로, 즉 공동체관계로 바뀌어져야 한다. 교회가 죽음의 세력을 극복하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생명공동체이듯 소공동체가 교회와 지역에서 생명을 살리는 일에 보다 직접적으로 관여할 때 내적으로는 창조적인 영성이 회복되고 풍요로워지며 외적으로는 자연을 착취하는 대신 상호부조나 직접교환, 자조와 협력이라는 비상품화 된 방식의 발현으로 나타날 것이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모두 한 형제이다. 죽임의 문화가 아닌 살림, 생명의 문화를 건설하는 것이 바로 공동체의 최종목표가 되어야 한다.

 

 

7) 실천적인 노력을 기울이자.

 

- 자기 생명을 살리자.

 

자기 생명을 살리자는 것은 언뜻 들으면 매우 이기적인 발상일 수 있으나 이는 생명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이 된다. 자기 생명을 살리자고 보약이나 온갖 강장제를 먹는 것이 아니라  유해한 먹거리와 무절제한 생활을 중단하고 건강한 먹거리와 자연친화 적인 건강 지키기를 말하는 것이다.

 

- 생명수호운동을 전개하자

 

생명을 최고의 가치로 고백하고 모든 생명(인간 생명뿐만 아니라 자연생명까지를 포함하여)을 위협하는 반생명적 가치들을 단호히 거부하며 생명권 수호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95년 인천지역의 최대이슈였던 굴업도 핵 폐기장 반대투쟁 역시 생명수호운동의 하나였다.

 

- 생태계보전운동을 전개하자

 

자연생태계는 인간과 공존하는 순환관계에 있다. 인간은 자연을 정복하고 유린하는 군주와 같은 존재가 아니다. 자연이라는, 창조질서라는 거대한 테두리내의 한 부분일 뿐이다. 생태계를 보전하고 살리는 일은 생명을 살리는 일과 마찬가지이다.

 

- 더불어 사는 삶의 자세를 갖추자.

 

교회 내에서는 공동체운동의 활성화를 꾀해야 한다. 신앙쇄신과 더불어 실천적인 행위들을 함께 전개해야한다. 뿐만 아니라 현재 창조질서보전운동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제 교회, 사회단체에 가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룡화 된 국가권력과 관료집단은 환경 친화적이기 보다 환경 파괴적이다. 그러므로 환경단체에 가입하여 이들의 환경 파괴적 행위들을 막아내는 일을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당장 실천하여야 할 필요의 문제이다.

 

[박흥렬(가톨릭환경연구소 사무국장) / 인천 가톨릭 환경연구소 홈페이지 자료실]



371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