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일 (수)
(홍)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죽음의 문화에 맞서 생명의 문화 드높이기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9 ㅣ No.458

'죽음의 문화'에 맞서 '생명의 문화' 드높이기

 

 

1. 생명이 뭐기에

 

새 천년의 화두는 '생명'이다. 왜 새삼 생명인가? 인류 역사의 과거에도 생명에 관한 논의와 해명이 숱하게 있어 온 터에, 오늘날 생명 존중을 더욱 소리 높여 외치고 세계의 이곳 저곳에서 생명 보호 운동을 벌이는 것은 분명 까닭이 있을 것이고, 그것은 무엇인가 지구에서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징표이다. 산업 선진국에서는 이미 수십 년 전에 학문의 여러 분야에서 생명 문제의 연구에 착수했고 국내에서도 이제 연구와 논의의 초점이 되고 있다. 그런데 '생명'은 어느 한 분과 학문에서 내리는 정의만으로 완전히 해명되는 것은 아니다. 각각의 분과학은 방법론적으로 제한되어 생명에 관한 전체적인 이해를 제공할 수 없다.

 

생명 현상에 관해서는 생물학을 비롯한 자연 과학과 의학에서 이러저러하게 설명하고 있고, '생명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는 철학적 이론이나 학설들이 나름대로 해답을 주고 있으며, 각 종교에서도 경전과 교리에 토대를 두고 해명을 하고 있기는 하다. 사람들은 생명을 '살아 있는 목숨', '사물의 존립에 가장 중요한 점', '사물의 유지되는 기간', '무기적(無機的)인 물질적 사물과 구별되는 생물 고유의 특성' 등으로 이해하고 '생명체'와 같은 말로 이해하기도 한다. 더욱 확장된 의미에서는 인간 생명뿐만 아니라 자연 생명, 도덕 생명, 정치적 생명, 심지어는 국가의 생명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생명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우리가 한마디로 대답할 수 없는 이유는 생명이 일회적인 것, 영혼이 깃들어 있는 것, 역동적인 것, 체험으로만 이해될 수 있어 초합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생명은 형이상학적인 개념이므로 만물이 그것에 의하여 살 수 있는 어떤 원리 또는 근본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유기체뿐만 아니라 무기물에도 생명의 활동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걸 보면, 사전에 나오는 정의도 그 의미가 확장되어야 할 것 같다. 또한 생명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무조건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아니다. 예를 들면,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순교한다거나 애국 정신에서 순국하는 경우에 '생명을 버리고 올바름을 택한다'(捨生取義) 하여 칭송받기도 한다. 어쨌든 생명은 죽음의 반대 개념이면서 짝 개념이다. 생명(삶)을 말하려면 죽음이 연상되고, 죽음을 생각하면 생명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생명의 존엄성을 드높이고자 하는 '생명 문화'의 반대 개념인 '죽음의 문화'를 말할 때 '죽음'은 자연적인 생명의 끝이 아니라 '죽임'을 뜻한다. 나에 의해서든, 남에 의해서든 죽임은 여러 가지 모습을 띠고 있다. 죽임은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 식물, 무기물 등 자연계의 모든 사물에도 해당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사람들은 오늘날 생태계 보존 또는 환경 보존을 강조한다. 또 생명을 거스르는 죽음의 문화는 국내외적으로 강요된 죽음, 폭력에 의한 죽음, 잘못된 이데올로기(예: 종족 중심주의, 집단주의)와 사회의 모순된 구조에 의한 죽음 따위가 만들어 내는 반사회적, 반인간적, 반자연적인 문화이다. 죽음의 문화는 온 생명을 경시하는 의식과 풍조에서 싹트고, 이기주의, 쾌락주의, 공리주의, 물질주의, 소비주의가 그 온상이다.

 

이 글에서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생명의 복음]의 내용을 참고하면서, 죽음의 문화를 극복하고 생명의 문화를 우리 사회에 확산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려고 한다.

 

 

2. 죽음은 어디에서

 

생명을 거스르고 죽음을 불러오는 사태의 명세서는 끔찍하고 다양하다. 가난, 굶주림, 폭력, 테러, 전쟁, 온갖 종류의 살인, 집단 학살, 낙태, 고의적인 자살, 육체와 정신의 고문, 심리적 탄압, 불법 감금, 인간의 노예화, 매춘, 부녀자와 연소자의 인신 매매와 청소년의 성매매, 노동자들의 착취 등은 이른바 문명 사회라고 자처하는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에서는 과거 경제 발전 일변도의 정책과 급속한 산업화 추진의 결과로 공해가 만연하고, 전통적인 가치관이 무너져 물신주의, 모든 생명에 대한 경시 풍조가 숨겨지거나 드러난 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존·비속 살해와 상해, 노인 학대, 아동 학대, 부부 사이의 학대, '지존파'와 '막가파' 사건에서부터 성수 대교, 삼풍 백화점의 붕괴 사건, 충주호 선박 사건, 아현동의 가스 폭발 사고에 이르기까지 인명 경시의 종류도 각양각색이고, 잔인함과 무책임의 정도를 보아도 다른 나라가 못 따라올 만큼 잔인하고 엄청난 사고들이 터졌다. 국내에서 꼬리를 물고 일어난 사건의 명세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사형 제도, 무도한 강간 살해, 소년 소녀들의 살해와 실종, 영아 유기, 낙태 등 인간 존엄성과 사회 공동선을 짓밟는 사례를 낱낱이 들기 어려울 정도다. 생명 윤리와 관련하여 의료 종사자의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행위는 마땅히 규탄받아야 한다. 또한 가정 폭력, 식품 공해, 청소년의 약물 오·남용, 영상 매체(영화, 비디오, 텔레비전 등)와 출판물(도서, 잡지, 만화 등)에 넘쳐나는 성 묘사와 폭력 장면은 청소년의 정신을 흐리게 하고 있다. 나아가서 핵무기 실험과 사용, 생화학 무기 사용, 아마존강 일대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원시림 벌목, 축산 오수와 산업 폐수, 배기 가스의 방출, 마구잡이 동물 사냥 등으로 땅과 물이 병들어 가고 공기도 혼탁해지며 생태계의 조화도 파괴되어 가고 있다.

 

거기에다 한국의 교육 현장과 여건을 고려하지 않는 교육 정책과 대학 입시 제도는 청소년들의 숨통을 막고 있다. 이렇게 인간 생명과 자연 생명을 위협하는 여러 현상들의 배후에는 문화의 위기가 자리잡고 있다. 이렇게 위기에 처한 문화가 바로 죽음의 문화이다. 죽음의 문화의 특징은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경향에서 드러날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생활 속에 알게 모르게 스며들고 있다. 신자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예를 들어 낙태율을 볼 때, 가톨릭 신자들의 낙태율이 비신자들의 낙태율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기능주의가 죽음의 문화를 만드는 데 한몫을 한다. 어떤 것을 기능으로 규정하는 것은 그것 자체가 무엇인가를 묻지 않고, 그것이 어떤 기능적 관계에 있는가, 그것이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가 하는 것을 묻는 것이다. 여기서는 잇속을 채우는 결과와 효용만이 중시된다. 기능주의적 사고 방식이 삶에 그대로 적용되면 상호 인격성의 영역, 인륜적 영역, 종교적 영역마저도 기능적 구조 안에서 녹아 버리고 만다. 오늘날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이른바 '삶의 질'도 우선 효용성, 무절제한 소비주의, 쾌락 등으로 해석되어 인간 상호간의 영적, 종교적 차원과 같은 인간 실존의 깊이는 무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와 같은 사회적 비리와 반생명적 의식은 속바탕이 개인의 양심과도 관련되지만, 사회 '윤리 의식'의 문제이기도 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사회가 생명을 거스르는 행위들을 용인하고 조장할 뿐만 아니라, '죄의 구조들'을 만들어 내고 강화하는 '죽음의 문화'를 부추기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언론 매체를 비롯하여 예술도 한몫을 한다. 성을 왜곡하고 폭력을 미화하는 예술적 표현이나 노래 가사 등은 죽음의 문화를 잉태한 허무주의의 곁가지이다.

 

 

3. 생명의 싹은 평화에서 움튼다

 

아우구스티노의 말처럼 평화는 '질서의 평온'이다. 모든 만물이 제자리를 차지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것이 평화이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 없는 상태만도 아니고, 적대 세력 간의 균형 유지만도 아니다. 평화는 정의의 실현이며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국가와 국가, 나아가서는 인간과 자연의 어우러짐을 강화하는 사랑의 열매이다. 평화는 공동선, 곧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조건들이 채워진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전쟁으로부터의 해방, 2) 빈곤으로부터의 해방, 3) 질병으로부터의 해방, 4) 무지로부터의 해방, 5) 비참한 주거 생활로부터의 해방, 6) 자연 환경의 보호, 7) 착취와 억압으로부터 해방, 8) 국가와 사회의 문제 등이다. 이러한 조건들이 충족될 때 진정한 의미의 평화가 실현될 수 있다.

 

공동선은 포괄적인 개념으로서 물질적인 재화뿐만 아니라 도덕적 질서와 법 제도까지도 포함한다. 그래서 공동선은 개인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관계에서도 중요하다. '세계화'(globalization)하는 지구촌에서 고립된 개별 국가 안에서만의 공동선은 상상하기 어렵다. 국제적인 공동선과 관련하여 긴급하고도 어려운 세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후발 국가(저개발 국가)의 빈곤이고, 둘째는 세계 인구의 증가이며, 셋째는 세계 평화의 보장이다. 이 세 가지 문제는 서로 관련되어 있고, 지속적이고 우호적인 국제적 협력으로써 점진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 산업 선진국 또는 복지 국가 국민들의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들은 자신들의 생활이 후발 산업 국가 국민들의 생활 수준의 향상과 연계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의 정의에 부합하도록 자신들이 이룩한 생활 수준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러한 깨달음의 과제는 복지 국가의 정부에만 떠넘길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이익 집단과 시민들도 떠맡아야 할 것이다. 후진국에 대한 선진국의 원조는 자본, 전문가, 완성된 공장 시설의 제공으로 그쳐서는 안 되고, 상호 교역의 형태로 이루어져야 한다. 세계적 관점에서 공동선 정책의 두 번째 근본 문제는 세계 인구의 성장 또는 증가이다. 식량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생명 과학의 연구 성과를 잘 응용한다면 앞으로 인구 성장과 증가에도 효과 있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평화는 국제적 차원에서 볼 때 최상의 공동선이다. 우리는 세계 평화가 중요하므로 후발국, 세계 공동선, 국제적인 사회 정의에 주목하고 그것의 실현을 위하여 함께 노력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전쟁과 폭력에 따른 예기치 않은 불행이 세계를 위협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평화 문제는 지구가 파멸하지 않고 인류가 살아 남기 위해 필요하고 절박한 것이 되었다. 핵무기 사용의 위험은 개별 국가의 존립과 생존뿐만 아니라 전체 인류와 생태계까지도 위협한다. 평화는 특히 오늘날과 같이 기술 문명의 발달로 자연 환경이 오염되고 파괴되는 상황에서는 자연 보전과 생태계의 보호로써 이룩될 수 있다. 환경 보전은 곧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다.

 

 

4. '살리기' 교육과 운동 ― 죽음을 넘어 생명으로

 

죽음의 문화는 무구한 생명을 살상하는 반생명적 문화를 뜻한다. 생명의 문화는 생각과 말과 행위로 인간을 비롯한 피조물을 '죽임'에서 '살림'으로 뒤바꾸는 문화이다. 한국 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가 올해 '똑바로'란 표어를 만들어 도덕성 회복 운동을 벌이는 것은 생명의 문화를 드높이려는 좋은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 세우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을 남을 위해 내어 주고 가진 것을 나누어야 한다. 그래서 죽음의 문화가 판치는 오늘날의 세태에서 사랑의 봉사는 절실하고 절박하다. 생명의 문화가 이룩되고 확산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육과 사회 운동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생명을 파괴하는 구조를 타파하여 생명 문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교육과 사회 운동이 필요하다. 가정, 사회, 학교, 종교 단체, 시민 단체에서의 다양한 교육이 필요하다. 여기서 교육은 아동을 상대로 한 조기 교육에서 청소년의 학교 교육,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평생 교육을 포함한다. 환경 교육에서는 자연과 환경에 대한 과거의 윤리와 사회적 실행이 근본적으로 새롭게 검토되고 방향 잡혀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연 환경을 인간을 위한 이용 대상으로만 인식해 온 과거의 사고 방식과 취급 방식에 대한 반성과 비판이 있어야 한다. 학생들은 자연 관찰이나 학습으로써 인간과 자연 환경의 관계, 생명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학교의 교과서도 전쟁보다는 평화에 관한 내용을 많이 실어야 한다. 장난감과 어린이가 보는 만화, 영화, 비디오에서도 폭력과 잔인한 장면을 없애고, 고운 심성과 맑은 정서를 기를 수 있는 매체가 개발되어야 한다. 청소년들을 불량 간행물에서 보호하기 위해서는 불량 출판물의 발행과 판매가 원천적으로 봉쇄되도록 법규와 처벌이 강화되어야 한다. 청소년을 위한 읽을거리, 볼거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대학에서도 생명에 관한 일반 지식과 소양을 얻을 수 있는 '생명 문화 강좌'가 개설되어야 한다. 생명 문화를 드높이기 위해서는 언론 매체의 역할도 중요하다. 언론 매체는 대중의 계몽에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 하므로, 선정적이고 부정적인 보도보다는 삶의 밝은 면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생명의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정부의 제도 개선과 적극적인 후원이 필요하다. 정부는 반생명적인 사태를 규제하는 법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 한국에서는 인권을 보호하는 법의 개선, 사회 복지 제도의 개선, 교육 제도의 개선 등 정의와 평화의 조건을 마련하는 과제가 산처럼 쌓여 있다. 이 모든 일은 정치가와 정부에게만 맡겨서는 안 되고, 여러 형태의 시민 운동과 종교 단체의 노력으로 추진되고 촉진되어야 한다. 올바른 법 제도와 국내외적 시민 운동으로써, 특히 사회적으로 약자의 처지에 있는 유아, 청소년, 여성, 노인, 빈민, 소수 민족들에게 인간 존엄에 걸맞은 평등한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며, 국제 관계와 국제 분쟁의 경우에도 군사력 행사는 없어져야 한다. 국제적으로는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한 산업 선진 국가들의 착취와 지배 관계의 고리가 끊어져야 하며, 군비 경쟁의 포기, 군산 복합체의 해체, 제국주의적 독점 자본 활동의 금지, 모든 핵시설과 생화학 무기 등의 폐기가 시행되어야 한다. 이것은 국내, 국제 정치가 지속적으로 풀어 가야 할 과제이다. 국내적, 국제적으로 종교 단체들은 각기 본연의 사명에 충실하여 평화와 생명 문화의 정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의 문화를 건설하기 위해 투신해야 할 책무가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아직도 남북이 갈라져 있는 한국에서는 특히 생명의 문화를 드높이는 교육과 운동이 지속적으로 활발하게 벌어져야 한다. 남북한 국민 모두가 통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먼저 증오심에서 비롯한 상호 적대적이며 공격적인 태도를 대화와 만남,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바꿈으로써 민족의 동질성과 일체감을 회복해야 한다. 한국 가톨릭 교회는 주교회의에 분야별로 여러 위원회를 두어 사회 문제에 큰 관심을 두고 있으며, 각 교구도 마찬가지로 사안별로 관련 위원회를 두어 활동하고 있다. 생명의 문화를 확산시킬 목적으로 교육과 활동을 벌이고 있는 대표적 단체로는 서울대교구의 '천주교 한마음 한몸 운동 본부'가 있다. 이러한 교회의 활동은 앞으로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생명 문화의 교육과 확산은 근본적으로는 복음 정신에 기초를 두고 있어야 한다. 생명 문화를 만들어 가고 드높이기 위해서는 특히 가톨릭 지성인들의 노력과 투신이 요청된다. 가톨릭 지성인들은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연구소, 학교, 활동 분야에서 복음으로 의식화된 가운데 생명을 살리는 문화를 만들어 가는 데 봉사하고 투신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가톨릭 지식인들이 그렇게 의식화해 있고 투신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많은 신자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전공 분야에서는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 몰라도, 교회의 돌아가는 사정과 신앙과 관계되는 지식은 '유치원생' 수준이 아닐까 하는 지적도 있다. 신자 지식인들이 앞장서서 교회의 출판물을 읽고 사회 문제에 대한 교회의 공식 태도가 어떠한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한국 천주교회는 신자 지식인을 교육하는 데 힘써야 한다. 이것은 청소년에게도 마찬가지로 해당된다.

 

필자는 그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청소년 사목의 과제와 방향을 글로 제시한 바 있고, 문화의 복음화를 위해 가톨릭 학술 문화원의 설립을 제의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교회 안에서 반응이 없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생명' 문제는 생물학적이고 의학적인 문제만이 아니고 '인간' 문제이다. 때문에 그것은 인간의 삶과 관계되는 모든 영역의 문제를 포함한다. 앞으로 한국 천주교회는 생명 문제를 연구하는 연구소와 활동 단체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한국 교회는 양심 형성을 위한 교육과 사회 운동의 차원에서 '생명의 문화'를 홍보하는 의식화 작업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

 

[사목, 2001년 12월호, 박종대(서강대학교 교수, 생명문화연구원 원장, 철학)]



436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