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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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인간 배아 복제가 곧 인간복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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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6 ㅣ No.365

인간 배아 복제가 곧 인간 복제이다

 

 

오늘날의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은 참으로 눈부시고 놀랍다. 몇 년 전에는 생식세포의 복제를 통해서 인간 복제가 가능하다고 보도되었는데 이제는 생식세포와는 전혀 상관없이 체세포 복제를 통해서도 무성생식이 가능하다는 보도가 들리고 있다. 그런가 하면 얼마 전에는 인체에 장기를 이식할 때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제거한 이른바 "녹아웃(knock out)돼지"를 복제하는 데 성공했다는 기사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곧 사람 몸에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원인 유전자를 제거해 거부 반응 없이 사람에게 장기를 이식할 수 있는 복제 돼지가 처음 태어난 것이다.

 

이처럼 놀라운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은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생명공학 육성이라는 정부의 방침아래 의학계는 물론 기업들의 막강한 후원과 협력으로 우리나라의 생명공학 기술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이미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라는 이상한 이름의 간판을 내건 연구소에서는 소의 난자를 이용해서 사람의 유전자를 가진 연구용 배아를 복제하는 데 성공했고, 심지어는 사람의 체세포를 핵이 제거된 난자에 이식해 99% 이상 사람의 유전자를 가진 복제 배아를 만들었다. 또한 황우석 교수가 체세포를 이용한 인간배아복제를 통해 특허를 출원한 사실이 이미 보도되었고, 어떤 생명공학 연구소에서는 시험관 아기 시술에 사용되고 남은 냉동배아를 이용하여 배아간세포를 분리하였다는 소식도 이미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생명공학기술의 눈부신 발전 속도만큼이나 인간 생명이 위협을 받고 있는데도 아직 정부에서는 ?생명윤리기본법?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실로 경악을 금치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7월 15일 우리나라 보건복지부가 공청회에서 공개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가칭) 시안의 주요 내용은 2001년 5월 과학기술부가 발표한 "생명윤리기본법 시안" 내용과 별반 차이가 없다. 특히 두 부처의 공통된 시안은 인간의 체세포를 이용한 개체복제의 금지, 임신 목적 외의 배아 생산 금지, 배아 이용은 질병의 예방, 진단, 치료를 목적으로 한 연구와 시술로 제한하는 것 등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이러한 시안들이 인간 삶의 질을 한층 더 높여주는 것으로, 특히 난치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한 획기적인 방법으로 선전하고 있지만 실상은 정 반대이다. 왜냐하면 우리와 똑같은 인간 생명체인 배아를 복제해서 치료로 이용한다는 것은 결국 인간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조작하여 한 인간을 다른 인간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행위로서 근본적으로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인간의 존엄성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가증스럽고도 잔인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인간복제란 핵을 제공하는 원본 인간과 같은 유전자를 가진 새로운 인간복제를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인간배아복제 또한 그와 다른 새로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복제는 엄격히 말하면 인간배아복제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복제된 개체의 생존을 배아상태로 한정하여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배아복제라고 말 할 수 있다. 인간복제라는 말과 배아복제라는 말이 사실 그 의미에 있어서 전혀 차이가 나지 않지만 굳이 말 표현을 달리 하는 것은 어떠면 인간복제 보다는 배아복제라는 표현이 사람들에게 좀 더 부드럽게 들릴 수 있고 그래서 인간의 기본적인 양심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려 결국 인간 배아를 생명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밖에는 달리 해석될 수 없다고 본다. 배아를 인간 생명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부 생명공학자들의 의견은 결국 인간 생명을 발달 단계에 따라서 판단하게 되는데 이는 배아가 태아보다, 태아는 어린이보다, 어린이는 성인보다 가치가 없는 존재로 인정하게 되는 크나큰 모순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또한 배아복제 과정을 통해 수많은 인간배아들이 손상 받으며 상당부분의 배아들은 폐기처분될 것이 뻔하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작은 인간들이 현미경 하에서 갖은 폭력을 당하며 무참히 살해되는 셈이다. 생명윤리학자들이 21세기를 현미경적 폭력의 시대라고 이미 예고한 바와 같이 항거할 수 없는 나약하고 연약한 인간배아는 거대한 폭력 앞에 노출되어 희생될 수밖에 없다.

 

인간배아복제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선물로 주신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부정하고 하느님의 창조적인 권위에 도전하는 어리석은 행위로 엄청난 불행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다 해도 된다"는 것은 과연 과학이 가지고 있는 신념인가? 무엇인가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해서, 그것이 언제나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기술의 진보가 반드시 더 좋은 것만은 아닐 수 있으며 오히려 윤리의 퇴보일 수 있다. 윤리를 상실한 과학은 결국 죽음과 파멸을 초래케 할 뿐이다.

 

[이창영(주교회의 사무차장, 신부) /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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