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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인간 배아 복제에 대한 윤리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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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6 ㅣ No.327

인간 배아 복제에 대한 윤리적 고찰

 

 

1. 서론

 

2002년 12월 26일, 세계 최초로 인간 복제 아기가 만들어졌다는 보도는 온 인류에게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발표처럼 이 아기가 실제로 인간의 체세포 핵이식에 따른 배아 복제로 만들어졌는지는 검증되지 않았다. 그러나 복제 양 ‘돌리’의 출현 이후 생식학자들은 인간 복제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예견해 왔기 때문에 언젠가 인간 복제가 시도될 것이라는 것은 주지해 온 일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 복제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비인간적인 만행이며, 반인륜적인 작태이고, 하느님의 섭리에 어긋나는 죄악이라는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 결국 인간 복제가 실현된다면, 이것은 인류 역사에 전례가 없는 파장을 몰고 올 것이고, 종내에는 인류 사회의 종말을 초래할 참극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복제된 인간의 출현은 인간 존엄성을 파괴하고 기존의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천인공노할 인간 복제가 바로 우리가 문제 삼는 인간 배아 복제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생명 현상을 이용하여 경제적 이득을 얻으려는 생명 공학에 종사하는 자들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세계 도처에서 인간 배아 복제를 집요하게 획책하고 있다. 그들은 인간의 배아 복제가 난치병 치료 연구에 돌파구를 제시해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들은 치료나 연구를 위한 인간 배아 복제를 허용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우리는 20세기 초반에 들어와서 인간의 생체를 실험 대상으로 삼아 무수한 사람들을 희생시킨 역사적 사실들을 잊을 수 없다. 독일 나치 정권 시대의 강제 수용에서, 일본 군국주의 시대의 관동군 산하 731부대에서, 스탈린 정권 시대의 오파린 연구소에서, 이보다 앞서서 미국의 인종 차별주의자들의 연구소 등에서 수많은 살아 있는 인간의 신체와 생명이 생명과학자들에게 실험 대상이 되었었다. 아직도 이 세상에는 유물론적 환원론과 인간 기계론을 신봉하고 법만 허용한다면 인간의 신체를 기계의 부속품처럼 실험 대상으로 삼으려는 생명과학자들이 적지 않다. 그들 중에는 돈만 벌 수 있다면 무슨 짓도 할 수 있는 무책임한 도덕 불감증 환자들이 있다. 심지어 인간 복제도 기술적으로 할 수만 있다면 어떤 구실을 내세워서라도 하려는 자들도 있다. 우리는 소극적으로는 그들의 비인간적 만행을 사전에 막아야 할 것이고, 적극적으로는 그들에게도 올바른 생명 윤리적 의식을 갖도록 일깨워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생명공학자들이 어떤 논거를 가지고 인간 배아를 실험 대상으로 삼고 심지어 인간 배아 복제까지도 서슴지 않고 하려는가를 이해하고 그들의 오류가 무엇인지를 지적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 글에서 인간 배아의 도덕적 지위를 여러 관점에서 살펴보고, 인간 배아의 실험 및 복제의 윤리적 문제점들을 파헤쳐 보며, 다른 나라들은 인간 배아 실험 및 복제에 대하여 어떤 정책을 가지고 있는가를 살펴본 다음 끝으로 우리가 왜 인간 배아의 생명을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되며, 더 나아가 어떻게 우리가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인가를 규명해 보려고 한다. 

 

 

2. 인간 배아의 도덕적 지위

 

윤리적으로 아무런 문제 없다면 인간의 신체는 생물학자나 의학자의 연구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인간 배아도 훼손만 되지 않는다면 연구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인간 배아가 도덕적으로 성인과 동등한지 여부의 문제와 더불어 인간 배아의 도덕적 지위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남녀 두 사람의 인격적 교제와 상호 간의 책임과 희생을 감수하는 사랑의 행위, 곧 성교를 통하여 자궁 속에서 정자와 난자가 융합하여 수정된 배아 그리고 태아는 완전한 생명체이다. 따라서 이러한 배아의 도덕적 지위는 성인과 같은 도덕적 지위를 갖는다는 것은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이러한 태아를 죽이는 것은 엄연한 살인이다. 한 때 생명의 영속성을 무시하고 임신 기간에 따라 태아가 온전한 인간이냐 아니냐 하는 논의가 있었고, 인구 조절이라는 미명 하에 낙태를 합법화하기 위해서 일정한 기간 내의 낙태는 살인이 아니라는 궤변까지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는 인간의 생명의 시작을 수정된 순간부터라고 확언한다. 도대체 자궁 속에서 계속 성장하고 있는 생명체에서 배아와 태아의 차별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체외에서, 곧 시험관에서 아기를 만들다 보니까 수정란을 산모의 자궁에 착상하기 ‘전’과 ‘후’라는 시간 차이가 생겼고, 자궁에 착상하기 전을 초기 배아(preembryo)라고 부르고, 자궁에 착상한 후를 태아(fetus)라고 부르는 생명공학자들이 나타났다. 어떤 생명공학자는 수정 후 2주까지, 곧 이른바 원시선(primitive streak)이 나타나기 전까지를 배아, 3개월 후부터 출산될 때까지를 태아라고 구분해서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배아 훼손 또는 파괴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임의로 조작해 낸 구분일 따름이며 과학계에서 공인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생명공학자들의 요구에 따라 척추와 뇌로 발전하기 시작한다고 알려진 원시선이 나타나기 이전의 배아를 완전한 생명체로 보지 않고 연구를 허용하는 나라들이 있다. 그러나 2002년 7월 4일에 발간된, 자연 과학계에서 권위를 자랑하는 Nature지에 헬렌 피어슨(Helen Pearson)은 난자와 정자가 수정된 후 24시간 이내에, 지금까지는 원시선이 나타난 이후에야 결정되는 것으로 간주된 현상들이 이미 결정된다는 것을 밝혀냈다.1) 그는 수정된 배아의 어느 한 부분에서 머리와 다리가 생기며 또 어느 부분이 등이 되고 배가 될 것인지는 정자와 난자가 결합한 지 수분 또는 수시간 내에 결정된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따라서 원시선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수정된 지 14일 이후에야 비로소 인간 배아가 완전한 생명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할 것이라는 종래의 가설은 비윤리적일 뿐만 아니라 과학적인 것이 못된다고 하겠다. 오히려 어떻게 보면 자연과학적으로 입증되기 이전부터 인간의 생명의 시작점을 수정의 순간으로 본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이 더 과학적인 것으로 밝혀진 셈이라고 하겠다. 지금까지 원시선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수정 후 14일 이전의 배아는 생명체가 아니라 세포 덩어리에 불과하기 때문에, 다른 실험용 세포와 마찬가지로 얼마든지 실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견해가 생명공학자들 사이에서는 널리 주지되어 왔다. 그리고 생식 과정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없는 정치가들과 일반 시민들은 생명공학자들이 일방적으로 생명체라고 볼 수 없다고 역설하는 인간 배아의 실험과 복제를 통해서 난치병 퇴치를 할 수 있다는 주장에 현혹되어 왔다. 

 

인간 배아의 도덕적 지위에 관한 논의를 세 가지 견해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인간 배아는 그 창출 순간부터 완전한 인간의 지위(full personhood)가 부여된다. 따라서 자궁에 착상되기 전의 인간 배아도 성인과 도덕적으로 동등한 존재라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의 공식 입장과 대부분의 개신교 교회의 견해와 생명 윤리학자들의 견해이다.

 

둘째, 자궁에 착상되기 전의 인간 배아는 단순한 세포 덩어리(cell mass)에 불과하므로 특별한 도덕적 지위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배아는 체세포의 DNA를 제공한 자의 소유물(property of progenitors)일 따름이며, 따라서 배아는 배아를 만든 자의 의도에 따라 처분될 수 있으므로 과학적 실험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실험 과정에서 배아가 파괴되더라도 실험 동물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윤리적 문제가 수반되지 않는다고 주장된다. 이 견해는 유물론자와 기계론자들의 지지를 받는다. 

 

셋째, 인간 배아는 ‘잠재적 인간 존재’(a potential human being)로서의 특수한 지위를 지닌다는 것이다. 인간 배아는 성장하면서 점차적으로 도덕적 지위를 얻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초기 단계의 배아의 경우에, 그것에 대한 연구에서 얻을 수 있는 잠재적 이익을 배아에 대한 존중과 비교하여 평가할 수도 있다고 본다. 이 견해는 공리주의자들의 지지를 받으며 많은 생명공학자들이 이러한 견해에 동조한다. 앞에서 살펴본 인간 배아의 지위에 대한 두 번째 견해는 논의할 만한 가치가 없다. 과학기술부 산하 생명윤리자문위원회 위원 20명 가운데에서 단 1명도 이 견해에 찬동하지 않았으나 자연 과학 계열 11명과 사회 과학 계열의 위원 가운데 과반수가 세 번째 견해를 지지했다. 그들은 주로 조만간 폐기될 수밖에 없는 냉동 잔여 배아에서 추출해 낸 인간 배아 줄기 세포의 활용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아래 ‘3. 인간 배아 복제 및 실험의 문제점’에서 상론하겠지만, 아무튼 어떤 경로로 배아가 창출되었든지 간에 냉동 잔여 배아도 엄연히 생명체이므로 생명권을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냉동 배아도 해동(解凍; thaw) 후 자궁에 착상되면 인간으로 출생할 수 있으므로 모름지기 냉동 배아는 도덕적 지위가 부여되어야 한다. 성인이나 신생아를 살해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면 또한 생명권을 가진 배아를 살해하는 것도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설사 냉동 잔여 배아가 조만간 폐기될 운명에 있다고 할지라도. 냉동 잔여 배아를 소모품처럼 함부로 취급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우리가 임종이 가까운 난치병 환자를 함부로 안락사 시키거나 장기 이식이나 실험용으로 생체 해부를 허용할 수 없다면, 곧 폐기될 운명에 놓여 있는 냉동 배아도 마찬가지로 함부로 죽일 수는 없다. 

 

우리는 또한 체외 수정을 통해서 만들어진 배아와 체세포 핵이식을 통해서 만들어진 배아, 곧 복제 배아도 정상적으로 수정된 배아와 마찬가지로 생명권과 도덕적 지위를 인정해 주어야 할 것이다. 

 

 

3. 인간 배아 복제 및 실험의 문제점

 

우리나라에서는 인간 개체 복제를 공공연하게 지지하는 생명과학자는 아직까지 나타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수의사들을 필두로 인간 배아 연구자들 중에는 인간 배아 복제의 허용을 강렬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난치병 치료에 이용할 수 있는 줄기 세포를 얻기 위해서는 인간 배아의 복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생명과학자들이 줄기 세포 획득에 열광하는 이유는 배아 줄기 세포가 인간의 어떤 기관 조직도 만들 수 있는 만능 세포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되기 전 초기 배아기, 곧 포배기의 단계에 있는 배아 줄기 세포는 장차 분화 조절하는 인자만 밝혀진다면 인간의 모든 신체 조직의 부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명공학자들은 앞 다퉈 되도록 많은 줄기 세포를 얻어 내려고 진력하고 배아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배아 복제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줄기 세포는 여러 가지 출처로부터 추출해 낼 수 있다. 

 

1) 줄기 세포의 다양한 출처

 

① 유산이나 낙태로 말미암아 사망한 태아의 조직(cadaveric fetal tissue)에서 추출해 낼 수 있다. 

 

② 불임 치료를 위해 체외 수정을 할 때 사용하지 못하고 남은 잔여 배아에서 추출해 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8년 11월부터 박세필 박사가 시도해 오고 있다. 

 

③ 연구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창출된 배아에서 추출해 낼 수 있다. 

 

④ 체세포 핵이식(somatic cell nuclear transfer, SCNI라고 부름)을 통해 생성된 배아에서 추출해 낼 수 있다. 이것은 흔히 ‘배아 복제’라고 불린다. 우리나라에서는 황우석 박사가 시도하고 있다. 

 

⑤ 출생시의 탯줄에 있는 혈액 세포에서 추출해 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톨릭 의대 부속 병원에서 시도되고 있고, 가톨릭 교회가 적극적으로 이를 지지하고 있다. 

 

⑥ 일부 성인 조직, 예컨대 골수에서 추출해 낼 수 있다. 가톨릭 교회가 이를 적극 지지한다. 

 

⑦ 성숙한 성인의 조직 세포를 리프로그래밍(reprogramming)하여 줄기 세포의 역할을 하게 한다. 이론상 가능하나 아직 초보 단계에 머물러 있다. 

 

흔히 ‘배아 줄기 세포’(embryonic stem cell)로 불리는 것은 위의 ①부터 ④까지의 출처에서 얻은 줄기 세포를 말하며, ⑤로부터 ⑦까지의 출처에서 얻은 줄기 세포는 ‘성인 줄기 세포’(adult stem cell)라고 불린다. 문제는 배아 줄기 세포는 배아 복제를 통하거나 배아의 훼손으로 얻어질 수 있기 때문에 윤리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볼 때 심각한 생명권의 남용을 초래한다는 점이고, 성체(성인) 줄기 세포의 경우에는 배아를 따로 만들거나 배아를 파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윤리적으로나 종교적으로 거의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2) 배아 줄기 세포 연구에 대한 윤리적 문제점

 

첫째, 죽은 태아의 조직에서 배아 줄기 세포를 추출하는 방법은 낙태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 설사 의도적으로 낙태를 조장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낙태와 같은 부도덕한 행위를 이용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낙태에 대한 윤리적·정치적·법적 반대를 점차적으로 무력화하고 종내에는 반생명적인 낙태를 정당화하는 구실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잔여 배아들에서 만들어진 배반포(blastocyst)에서 줄기 세포를 추출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해당 배아를 파괴하게 된다. 배아가 인간 존재와 동등한 도덕적 지위를 갖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방법을 이용할 수 없다. 이 방법은 배아 공여자가 상업적으로 자신들의 배아의 이용권을 주장할 수도 있고, 잔여 배아를 고의로 많이 만들어 낼 수도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셋째, 연구를 목적으로 배아를 창출하는 행위는 배아를 과학 연구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게 되므로 비윤리적이다. 폐기될 잔여 배아를 사용하는 연구자들조차 대부분 이 방법이 비윤리적이라고 반대한다. 

 

넷째, 체세포 복제 기술을 사용하여 복제된 배아를 창출해 내는 것은 수정의 과정을 실제로 거치지 않으며, 체세포 핵을 제공하는 환자 자신의 세포를 이용하여 줄기 세포를 배양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식한 후의 조직 거부 반응의 문제를 극복하기 쉬운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복제된 배아를 자궁에 착상시키면 바로 인간 복제가 되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배아를 복제하는 이유가 인간 배아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취급하는 것이므로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것이 된다. 생명공학자들은 이러한 배아를 자궁에 착상시켜 복제 인간을 만들지 않고, 치료와 연구 목적으로만 사용한다면 비윤리적이 아닐 수 있지 않느냐는 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인간 배아는 이미 생명을 지닌 온전한 생명체이고 완전한 인간으로 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인간 배아를 실험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은 분명히 성장한 인간을 실험 도구로 이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극악무도한 만행이다. 

 

엄밀히 말하면 모든 인간 복제는 인간 배아 복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복제된 개체의 생존을 배아 상태로 한정하여 사용하는 것을 일컫는 인간 배아 복제도 실상은 일종의 인간 복제라고 윤리신학자들은 주장한다. 이것은 인간을 죽인다고 말하는 것보다 태아를 낙태시키거나 인공 유산을 시킨다는 말이 듣기에 덜 끔찍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인간 복제보다 배아 복제라는 표현이 인간의 죄의식을 조금 누그러뜨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도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인간 배아 복제 실험에 관한 연구 논문은 조건부이긴 하지만 인간 배아 복제 실험을 허용하고 있는 영국과 일본을 포함하여 전세계 어디에서도 발표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인간 배아 복제에 관한 연구 논문이 발표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이미 양이나 소와 같은 동물 복제 실험에서 드러난 것처럼 배아 발생률이 매우 낮으며, 유산율, 기형률이 매우 높아서 배아 세포의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인간 배아 복제에서 얻을 수 있는 인간 배아 줄기 세포는 윤리적 문제를 수반하지 않는 인간 성체 줄기 세포와는 달리 럭비공이 튀는 것처럼 분화 과정이 쉽지 않고 분화 후 다시 역분화되어 기형화하거나 종양 세포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인간 배아 복제를 치료에 이용하고자 시도할 경우, 매번 제3자의 수백 개의 난자를 빌려야만 하는 불편함과 고비용과 윤리적 문제가 발생한다. 난자 매매, 복제된 배아의 소유권 문제, 난자 확보를 위해 불임 클리닉들에 가해질 압력, 난자의 과배란 유도, 난소 절제술의 남용 등, 여성의 몸의 도구화, 또 구하기 어려운 인간 난자 대신에 쉽게 구할 수 있는 동물 난자를 이용하는 이종간 교잡 행위에 단순한 생명공학자는 쉽게 말려들 수 있는 위험성 등이 발생한다. 

 

필자는 배아의 도덕적 지위를 논하면서 줄기 세포의 출처로서의 냉동 잔여 배아 사용의 비도덕성을 간단히 지적했으나 이제 냉동 잔여 배아 실험의 문제점을 윤리적 관점에서 좀 더 살펴보려고 한다. 1978년 체외 수정 성공 사례가 처음 발표될 때부터 오늘날까지 30만이나 헤아리는 시험관 아기가 출생했음에도 가톨릭 교회는 여전히 체외 수정을 반대해 왔다. 그 이유가 무엇이며, 체외 수정을 허용한 후에 생긴 풀기 어려운 냉동 잔여 배아 처리의 딜레마를 살펴보기로 하자.

 

- 냉동 잔여 배아 처리의 딜레마 -

 

냉동 잔여 배아 처리는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되어 있다. 가톨릭 교회는 근본적으로 체외 수정(시험관 수정)이나 대리모 출산 등 인간 생명의 인위적인 조작을 반대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전국 20여 개 이상의 불임 클리닉에서 체외 수정에 사용하고 남은 배아, 곧 잔여 배아(잉여 배아)가 수십만 개 이상 냉동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잔여 배아들은 보통 3-5년이 지나면 폐기 처분되고 있다. 어차피 폐기될 이 잔여 배아를 연구 실험용으로 활용하고 줄기 세포를 만들 것을 제안하는 생명공학자들이 국내외에 있다. 실제로 2000년 우리나라에서도 폐기 처분될 처지에 있던 냉동 배아를 이용해 줄기 세포주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는 발표가 있었고, 지난 해 미국 국립보건원에서도 도합 8개의 줄기 세포주가 한국에 있다는 것이 공식으로 통보된 바 있다. 우리나라의 생명공학자들은 체외 수정에 사용하고 남은 배아를 흔히 ‘잉여’ 배아라고 부르는데, 존엄한 인간 생명체에 ‘쓰고 난 나머지’를 뜻하는 잉여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배아를 일종의 물건처럼 취급하는 저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설사 체외 수정이 합법적일지라도 난자 사용은 반드시 수정에 꼭 필요한 최소 한도를 지킴으로써 잔여 배아가 생기지 않도록 엄격한 제한을 두어야 할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와 같은 나라에서는 체외 수정의 규정이 엄격하여 잔여 배아가 거의 발생하지 않도록 법적 조치가 되어 있다. 

 

가톨릭 교회는 배아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또한 배아를 냉동 보관하는 것에 대해서도 비윤리적이라고 비판한다. 한번 생성된 인간 생명은 어느 누구도 개입해서는 안 되는 자연적인 진행 과정을 가지는데, 배아를 냉동으로 보관함으로써 배아의 성장을 인위적으로 중지시키는 행위는 인간 생명의 주기에 대한 부도덕한 남용이라고 지탄한다. 가톨릭 교회는 더 나아가 냉동 보관된 잔여 배아일지라도 인간 생명체라는 점에서 복제 실험 연구에 결코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천명하고 있다. 그리고 체외에서 얻은 배아일지라도 인간 생명체이므로 의도적으로 죽도록 방치하거나 폐기하는 것도 결코 생명을 존중해야 할 도덕률에 모순되므로 모름지기 배아의 생존 보존을 위한 안전 수단이 사전에 준비되어야 했었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이미 만들어진, 최소한 수십만 개로 추정되고 있는 잔여 배아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 이와 관련하여 마치 아이를 입양하는 방식처럼 배아를 불임 부부에게 나눠 주는 방법, 또는 이미 냉동 보관되어 있는 배아들에 대한 냉동을 연장시켜 영구 보관하는 방법 등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어떤 방법도 잔여 배아를 윤리적으로 올바르게 처리할 명료한 방법이 나오지 않고 있다. 결국 잔여 배아 문제는 부자연스러운 체외 수정을 함부로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윤리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잔여 배아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확실하고 안전한 제도적 장치가 먼저 마련되어야 했었고, 이제라도 비윤리적인 체외 수정을 금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잔여 배아 처리의 어려운 문제는 인간의 생명체나 배아의 연구와 실험 및 복제 문제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가톨릭 교회는 배아 연구와 관련하여 이렇게 가르친다. 

 

“배아(배자)에 대한 치료적 기술 조작은 배아의 생명과 온전함을 존중하고 배아에 부당한 위험을 주는 일이 없이 치료적인 의도만으로 시행된다면, 그 사용은 도덕적으로 타당하다. 그러나 이 일이 인간 배아의 완전성과 개별적 생존에 위협을 주는 조작일 때는 부당하다.”(인간 생명의 기원과 출산에 대한 훈령 1.3)라고 말한다.

 

 

4. 인간 배아의 실험 및 복제에 대한 규제의 국제적 동향

 

영국, 스웨덴, 호주, 중국, 일본, 이스라엘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인간 배아 복제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영국은 1990년 원시선이 출현하는 14일 이전의 배아 연구를 국가생명윤리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할 수 있도록 허용했고, 2001년 1월 세계 최초로 인간 배아 복제 연구까지도 허용하는 법률을 제정했으나, 반드시 인간 배아 복제 방법 외의 다른 연구 방법이 없음을 증명해야 하는 단서가 붙어 있어서 2002년 12월까지 단지 1개 연구 기관만이 연구 신청을 냈으나 아직 승인되지 않아서 시행되지 않고 있다. 스웨덴과 핀란드와 그리스 등은 원시선이 나타나기 이전의 초기 배아 연구만을 허용하고, 연구용 배아를 만드는 것을 엄금하고 있다. 미국은 2001년 8월 국립보건원(NIH)이 5년 이상 보관된 폐기될 냉동 배아에서 추출한 줄기 세포주의 연구에 연방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으나 인간 배아 복제에 대한 연방 자금 지원을 금하고 있으며, 2001년 7월 하원에서 배아도 인간임을 가결하고 인간 배아 복제금지법안도 통과시켰으나 상원에서 계류 중에 있다. 2002년 10월 30일 부시 행정부는 인간연구보호자문위원회의 규정을 고쳐 실험용 인간 배아도 태아, 아동, 성인과 함께 보호받아야 할 인간임을 천명했다. 

 

유네스코 국제생명윤리위원회의 “인간 배아 줄기 세포 연구의 윤리적 측면에 관한 연구 보고서”(2001년 4월)는 인간 배아 줄기 세포 연구는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유럽 의회 연구를 위한 지침서의 “인간 배아를 포함하는 연구의 윤리적 함의”의 최종 연구 보고서(2000년 7월)와 유럽 의회의 “생명윤리협정”(1998년 8월, 2001년 수정 보완)에서도 모든 나라가 인간 배아 복제를 금지하고 인간 배아에 대한 연구 자체를 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 2002년 6월 독일에서 독일 외무성과 프랑스 외무성이 공동 개최한 국제 정책 포럼, “하나의 지구적 생명 윤리를 향하여”에서 인체 연구 결과물의 상업화, 특히 배아의 상업 거래 금지를 선언했다. 이 포럼의 목적은 10월 유엔 총회를 대비하여 세계의 저명한 생명윤리학자를 초청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헌장 제정을 위한 준비 작업이기도 했다. 필자도 참석하여 전세계가 인체 연구 결과에 특허권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요지의 논문을 발표했다. 유럽 특허청은 2002년 7월 인간 배아 줄기 세포에 대한 상업적 목적의 이용을 전면 금지했다. 유럽 특허청은 1999년 12월 호주의 줄기 세포학자에게 부여한 “유전자 조작을 위한 배아 세포 응용”에 관한 특허권을 취소했다. 이것은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정부와 국제 환경 단체인 그린피스가 유럽 특허청에 연구용 특허권 규정 수정을 청원한 결과였다. 

 

 

5. 결론

 

인간 개체 복제를 허용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 그러나 인간 복제에 대한 어떤 설문 조사에 따르면 놀랍게도 20% 정도의 사람들은 인간 복제에 동의하고 있다고 한다. 오늘도 외신에서 인간 복제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공언하는 생명공학자들이 있음을 읽을 수 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에는 인간 배아 복제와 이종간 교잡 행위까지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심지어 연구 활동에 아무런 제재도 없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중에는 과학기술부의 생명윤리자문위원회가 그토록 애써서 만든 생명윤리기본법안과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생명윤리안전법안을 무산시키려고 획책하는 무서운 생명 산업자들이 있다. 

 

생명 산업자들은 돈을 벌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인간 복제도 인간 배아 복제도 한마디로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인간 배아 복제가 허용되면 인간 복제도 필연적으로 허용되는 방향으로 가게 되어 있다. 이것은 바로 인류 사회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를 저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배아 복제를 막을 법을 빨리 만들어 생명 산업자의 준동을 저지해야 하고, 특히 전국민을 상대로 생명 윤리 교육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1) Helen pearson, “Developmental biology: your Destiny, from day one”, Nature (2002.7.4.), vol.418, 14-15면.

 

[사목, 2003년 2월호, 진교훈(서울대학교 교수, 국민윤리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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