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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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안(가칭)에 대한 천주교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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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6 ㅣ No.325

"생명 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안"(가칭)에 대한 천주교의 입장

 

 

① 지난 9월 23일 보건복지부는 "생명 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안"(가칭)을 입법 예고하였다. 최근 몇 년간 생명 과학 분야의 눈부신 발전과 함께 야기된 생명 윤리와 안전에 관한 제문제는 책임 있는 생명 과학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도 관련법이 조속히 제정되어야 할 당위성을 제기하였고, 이에 우리 천주교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여러 경로를 통해 조속한 생명 윤리와 안전을 보장하는 법 제정을 촉구하여 왔다. 이러한 때에 정부가 늦게나마 입법 의지를 표명한 데에 대해서는 일단 환영하지만, 막상 입법 예고된 법률안(이하 법안)의 내용을 들여다볼 때에 기대보다는 실망과 함께 걱정이 앞선다. 생명을 바라보는 시각과 수준이 지나치게 상업적이고 경제적인 논리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입법 예고된 법안의 명칭은 "생명 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안"(가칭)이지만, 그 내용은 생명 윤리와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② 법안은 지금까지 생명 윤리와 관련하여 사회 각 분야에서 가장 큰 의견 차이를 보여 왔던 인간 배아 복제와 종간 교잡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대통령이 이를 허용할 수 있다는 예외 규정을 둠으로써, 사실상 이들 행위를 허용하고 있다는 여지를 남기고 있다. 생명인 인간 배아의 지위에 대한 사회 각 분야의 견해를 모두 수용하려는 고심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지만, 인간의 생명은 그 존재의 첫 순간인 수정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윤리적 진리는 어떠한 인간적인 합의로도 변경될 수 없다는 점에서 예외 규정은 반드시 삭제되어야 한다.

 

③ 이 법안은 인간 생명인 배아를 마치 물건처럼 취급하고 있다. '생산', '이용' 등의 단어를 사용하면서 인간 생명을 생물학적 재료의 수준으로 격하시키고 나아가 하나의 도구라는 측면을 부각시킴으로써 생명 윤리법의 역할보다는 생명 공학의 불건전한 진행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질병 치료나 줄기 세포의 획득을 위해 인간 생명체인 배아까지도 파괴할 수 있다는 논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 따라서 임신의 목적으로 생산되어 그 결과로서 존재하는 잔여 배아의 파괴를 의도하는 연구나 실험이라면 마땅히 금지되어야 한다. 잔여 배아도 당연히 인간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이 법안은 배아도 생명체라는 진리를 옹호하지 못하는 비겁함을 드러내고 있으며, 배아를 이용하여 상업적 이익을 도모하는 사람들의 편을 들어주고 있다. 아울러 이 법안은 대한민국의 미래는 생명 공학 산업의 발전에 달려 있다는 논리에 발목이 잡혀 생명을 경제적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길을 앞장서 열어 놓고 있다. 우리는 결코 질병이나 난치병의 치료를 거부하지 않는다. 그러나 질병 또는 난치병을 치료 하는데 하나의 생명을 또 다른 생명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시도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분명한 입장이다.

 

④ 이 법안은 실질적인 내용을 다루는 심의 및 자문 기구로서 국가 생명 윤리 자문 위원회의 구성을 명시하는데 이는 이 법안의 중요성에 비해 그 기능과 역할을 상당히 축소시키는 부분이다. '자문'이라는 용어가 지닌 한계성은 말 그대로 자문에 불과할 뿐이다. 이 위원회가 명실공히 제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심의뿐만 아니라 의결권까지 부여되는 국가 생명 윤리 위원회가 되어야 한다.

 

⑤ 이 법안의 목적은 의심할 여지없이 생명 과학 분야에서 드러나고 있는 무책임한 반생명, 반윤리적 행위들을 경계하면서 책임 있는 윤리 및 안전 의식을 확보하는 데 있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생명 윤리법은 그 목적에 걸맞게 생명의 존엄성 존중과 보호라는 기본 정신을 펼쳐 보이는 내용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인간의 생명을 그 자체로 존중되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로 인식하기보다는 하나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법안이라면, 이는 오히려 생명 윤리를 거스르는 법안과 다름없다. 특히 그 자체로 생명인 인간 배아는 당연히 법을 통해서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확고한 입장이다. 자기 결정권이 없는 약한 생명을 임의로 처리할 수 있다는 사고 방식은 일종의 폭력이며 기득권자의 횡포이다.

 

2002년 9월 25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생명윤리연구회

 

[사목, 2002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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