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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그리스도인들의 사회 참여, 시민단체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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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5-01-07 ㅣ No.496

그리스도인들의 사회 참여, 시민단체 활동

 

 

머리말

 

그리스도인(신자)들의 ‘사회 참여’를 논하려면, 그들이 사회 참여를 ‘할 수’ 있느냐, ‘해야’ 하느냐 또는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무엇을 기준으로’ 할 것이냐에 대해서도 설명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그 기준이 되는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사회교시)’을 전제로1) 그리스도인들의 사회 참여 방법만을 간단히 논하면서 시민단체 활동방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1.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의 사회 참여

 

1) 전통적 사회 참여 양식

 

(1) 참여 무대: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의 복음 선교활동 무대는 바로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예술, 학술, 국제활동, 대중매체 등 한마디로 광범위하고도 복잡한 현실 세계이다.2) 왜 그래야 하는가? 자신의 성화(聖化)의 사명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데서가 아니라 ‘일상이나 직장 그리고 사회생활에서 자신을 성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일상생활을 하느님의 뜻을 완수하는 기회처럼’,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 하느님과의 친교에까지 인도하면서 ‘그들에게 역시 봉사하는 기회로’ 생각해야 한다.3)

 

(2) 참여 목적: ‘평신도 교령’이 선언하듯이 “그리스도의 구원 성업은 본래 사람들을 구원할 목적을 가졌지만, 현세 질서를 개선하려는 목적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교회의 사명도,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의 은총을 사람들에게 전할 뿐 아니라, 현세 질서에 복음을 침투시켜 현세 질서를 완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목적은 동시에 달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평신도들은 교회의 사명을 완수하며 교회와 세계 안에서, 영적 질서와 현세 질서 안에서 자기 사도직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질서는 구별되지만, 하느님의 한 계획 안에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4)

 

(3) 참여 방법: 그러면 무엇을 근거로 그리스도인들이 그 두 가지 질서 안에서 사명을 완수할 수 있다고 보는가? 하느님의 계획은 현세 질서의 자율성이나 고유의 목적, 고유의 법칙, 고유의 수단, 인간 행복을 위한 그 중대성을 상실하게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현세 질서의 의의와 가치를 완성하는 동시에 지상에 있는 인간의 사명 전체에 알맞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신도 그리스도인은 현세 질서의 쇄신을 고유의 임무로 알고, 현세 질서 안에서 복음의 빛과 교회 정신의 인도를 받아 그리스도교적 사랑으로써 구체적으로 활동해야 한다.

 

 

2. 평신도 사도직 수행인 사회 참여5)

 

1) 평신도 사도직 수행 방법

 

(1) 조직적 활동: 그리스도인들의 사회 참여는 그들의 평신도 사도직 수행과 분리될 수 없다. 그러한 사도직 수행을 위해 그들은 그 삶과 활동의 조직과 방법에서 특별한 자극을 받아 협회, 단체, 공동체, 운동 등 무수한 형태의 집단이 형성되고 전파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현대사회에서 효과적인 활동을 공동으로 전개하는 데 꼭 필요한 조건이다.6)

 

(2) 조직적 활동의 효과: 물론 평신도 사도직은 개인적으로 수행할 수도 있겠으나 현대사회에서는 조직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조직적 사도직은 평신도들의 인간으로서의 요구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요구에 잘 부합하는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의 교류와 일치를 나타내는 표지이기도 하다. 현대 평신도들의 활동분야에서 ‘일치된 조직적 사도직을 강화하는 것은 매우 필요한 것이다.’7)

 

(3) 다양성: 그런데 사도직을 수행하는 결사체들이나 단체들은 매우 다양하다. 어떤 단체는 교회 사도직의 일반적인 목적을 추구하고, 어떤 단체는 특별히 복음화와 성화를 그 목적으로 삼고, 어떤 단체는 현세 질서의 그리스도화를 그 목적으로 추구하며, 어떤 단체는 특히 자선활동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증언한다.

 

그러나 평신도들의 힘을 분산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 “충분한 이유도 없이 새로운 회(결사체)나 사업을 시작하거나, 이미 시대에 맞지 않는 회(결사체)나 방법을 필요 이상으로 존속시킬 때 평신도들의 힘은 분산될 것이다. 또 다른 나라에 설립된 사도직 형태를 아무 비판도 없이 받아들이는 것도 옳지 못한 일이다.”8)

 

2) 평신도 그리스도인의 ‘정치 참여’

 

(1) 정치: 평신도들의 정치 참여를 논할 수 있는가? 여기에서 논하는 ‘정치’는 정당 정치에 직접 참여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공동선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정치라는 의미로 알아들어야 할 것이다.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은 결코 ‘정의(正義)’ 문제와 분리될 수 없을 것이다. 평신도들은 인간과 사회에 봉사한다는 의미에서 현세 질서에 그리스도교 정신을 불어넣는 ‘정치’ 참여를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면 ‘경제, 사회, 입법, 행정, 문화 등 수없이 많은 분야에서 조직적으로 제도들을 통하여 공동선을 증진시키는 일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참여의 형태, 차원, 임무, 책임의 다양성과 보완성 안에서 모든 이와 각자는 정치생활에 참여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말이다.

 

(2) 공동선: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과 사회를 위한 정치는 공동선의 추구에 그 근본적인 기준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 ‘공동선’이란 무엇인가? 공동선이란 모든 사람과 각 사람의 선으로서,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사람들이 자유롭고 책임 있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제공되고 보장되는 선이다. 더 나아가서 ‘인간과 사회를 위한 정치는 정의의 수호와 증진에서 그 부단한 활동 노선을 찾는다.’

 

그러한 의미에서 정치에 투신하는 평신도들은 지상 현실의 자율성을 반드시 존중해야 한다. ‘특히 다원적 사회에서는 정치 공동체와 교회의 관계를 올바르게 보아야 하며, 신자들이 개인적으로나 단체적으로, 그리스도교적 양심을 따라, 시민으로서 자기 이름으로 행하는 일과 교회의 이름으로 사목자들과 함께 행하는 일을 명백히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 그래야 하는가? ‘교회는 그 직무와 권한으로 보아 절대로 정치 공동체와 혼동될 수 없으며, 아무런 정치체제에도 얽매이지 않는 동시에 인간의 초월적 성격의 표지이며 수호이기’ 때문이다.9) 만일 여기에 혼동이 있게 되면, 교회가 직접 정치를 한다는 비난을 받게 된다.

 

3) 평신도 단체들의 ‘정치 참여’

 

그리스도인들의 단체적 정치 개입 문제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구성하는 단체들의 종류를 구별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일정한 양식으로 그리스도교 백성의 일부를 표현한다면, 그들은 교구 수준에서나 지역 또는 국가 수준에서 교회가 똑같이 책임지게 하는 것도 아니고, 똑같은 정도로 책임지게 하는 것도 아니다.

 

첫째, 공식적 신분(법률상 제도)이나 역할이 있는 또는 특권적 방법으로 교회를 대표하는 그룹이 있을 수 있다. 가톨릭 운동이나 평신도 사도직 단체, 지속적이거나 일시적 운동단체들, 사목자들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이 그것이다.

 

둘째, 국가적 조직(구조)으로 설정되어 직접 또는 간접으로 가톨릭 정신을 따르며, 다소 분명하게 사회 모델을 위해 좌-중-우도 가운데 구체적인 선택을 한 그룹이 있을 수 있다.

 

셋째, 같은 관심으로 형성되어 정보를 보급하며 뚜렷한 활동을 전개하는 그룹이 있을 수 있다(평화, 비폭력, 발전, 이민자들과의 연대, 가톨릭 학교, 가정 등).

 

넷째, 어떤 영성가족에 의거하거나 어떤 만남이나 종교적 반성을 중심으로 모이면서 실제로 정치적 영향을 미치는 그룹이 있을 수 있다.

 

다섯째, 교회의 형성 원리가 사회에 대한 비판이고 사람들이 이의를 제기하는 교회와 사회 간의 관계에 대한 비판이라고 생각하는 기초 공동체들이 있을 수 있다.

 

특히 국가단위 조직(구조)을 가진 운동일 경우에는 그러한 개입의 정치적 관련성의 정도를 생각해 보는 것도 역시 필요하다. 여기에는 세 가지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

 

첫째, 어떤 운동들은, 운동으로서는, 모든 정치적 입장 선택이나 정치적으로 보이는 것 같은 것을 금한다. 그 운동들의 구성원들은 정치적으로 투신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그들의 운동은 비정치적이거나 비정치적이기를 원한다.

 

둘째, 다른 운동들의 경우, 결정적으로 비정치적인 전망이 그 착상에서 복음적이려면 구성원들의 정치적 행동과 일정한 계층 사람들의 대부분이 교회를 인식하는 방법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는 공적 격려와 반성으로 그러한 운동을 이끌어간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종류의 어떤 운동은 특정 그룹이나 연합단체들이 자신들만이 참여한다는 조건 아래, 정치적 성격을 띤 입장을 취하게 된다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본다.

 

셋째, 끝으로 다른 그룹들, 공동체들, 운동들은 그들의 정치적 입장 선택에서 더 멀리 간다. 그들은 특징적인 선택을 한다. 그들은 가능한 다른 선택들의 정당성을 부인하지 않고 이러한 선택에서 자신들의 충실성을 최선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10)

 

4) 그리스도인들의 사회 참여에 대한 평가

 

(1) 실천적 행동: 교황 바오로 6세는 이렇게 강조했다. “이제 나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다시 한번 행동에 나서라고 요청하는 바이다.” 평신도들은 “현세적 질서의 쇄신을 자신들의 의무로 알아야 한다.” 이러한 일에서 따라야 할 윤리법칙을 가르치고 해석을 내리는 것은 교회의 의무이겠지만 “평신도들은 피동적으로 지침이나 명령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구상과 계획으로 사람들의 정신적 풍습, 사회 공동체의 법제와 조직을 그리스도화하는 것을 자신의 의무로 생각해야 하겠다.” 이러한 원칙을 전제하면서 바오로 6세는 “이제 각자는 스스로 그동안에 한 것이 무엇이며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반성해 보기 바란다.”고 요청했다.

 

실제로 ‘사회질서를 쇄신하고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려면’, 원칙을 상기시키거나, 뜻을 굳히거나, 비참한 부정을 단죄하거나, 예언자적 용기로 비판을 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러면 무엇이 더 필요한가? 이 모든 것은 동시에 ‘각자의 절실한 책임과 확실한 구체적 행동과 결부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이다’.11) 따라서 평신도들이 어떻게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는지, 어떻게 행동에 나설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2) 정치적 참여: 여기에서 ‘정치’란 정당정치를 한다는 의미에서 정치가 아니라 공동선을 추구한다는 광의에서 정치를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을 전제하고도 ‘가톨릭 운동’을 포함하는 ‘교회단체들’의 ‘정치적 선택’ 또는 ‘정치적 개입’은 좀 복잡한 문제이다. 물론 교회문헌에 정치 참여의 당위성은 강조되어 있다. 그러면 어떠한 방법으로 정치 참여를 하라는 말인가? 때로는 막연하고 때로는 애매하기도 하다.

 

우선 이렇게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다.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안에서 교회단체를 구성하고 활동할 경우, 그들이 사회적으로 정치 참여를 할 때는, 그들이 교회 내에서 구성하고 있는 ‘교회단체’와는 상관없이, ‘시민 개인의 자격’으로 자신들의 양심적 결정에 따라 자신들이 원하는 ‘사회단체’를 선택하여 정치 참여를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회는 평신도들에게 능동적으로 활동에 나서라고 권장하는 것으로 알아들을 수 있다.

 

 

3. 시민단체적 사회 참여

 

그리스도인들의 전통적인 사회 참여 방법을 재검토해 보자. 지금까지 무엇이 문제였는가? 그것은 ‘정치적-현세적인 것’과 ‘종교적-교회적인 것’ 간의 관계가 적극적으로 사회 참여를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극단적 분리나 혼동을 초래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론상으로는 그것들을 구별한다고 하나 실제로는 분리하거나 혼동하기 쉽다는 말이다. 과거에 가톨릭 교회에서 시작하여 실시해 오던 ‘가톨릭 운동(Action Catholique)’의 역사만 보아도 그 활동방법이 얼마나 까다로웠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새로운 사회 참여 방법을 생각해 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시민단체의 활동’이나 ‘시민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시민단체적 사회 참여 양식을 말하고자 한다. 여기에서 시민단체는 ‘사회 서비스적’ 조직이 아니라 ‘사회행동적’ 조직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뿐 아니라 여기에서 말하는 시민단체 활동은 단순히 ‘도덕주의적’ 운동이 아니라는 것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로서, ‘교회단체’로서, ‘교회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단체’로서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사회를 변혁하고자 시민단체를 형성할 수도 있고 시민운동을 전개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1) 가칭 ‘공동선(共同善) 연대’라는 시민단체

 

우선 이러한 시민단체가 다른 단체들과 구별되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 같다. 그러한 시민단체를 일반 시민단체와 구별할 필요가 있으므로 우선 그 시민단체를 가칭 ‘공동선 연대’라고 부르겠다.

 

(1) 공동선 연대와 교회단체(가톨릭 청년회, 가톨릭 학생회, 과거에 있었던 가톨릭 노동청년회, 가톨릭 농민회 등 가톨릭 운동단체들과 레지오 마리애, 성모회 등 ‘지도신부’가 있는 단체들이 포함된다.): 여기에서 말하는 시민단체로서의 ‘공동선 연대’는 ‘교회단체’와 구별된다. ‘교회단체’는 평신도 그리스도인들로만 구성되며 그 단체 자체가 교회단체인 반면에, ‘공동선 연대’는 그리스도인들로만 구성되지도 않으며 그 단체 자체도 ‘교회단체’가 아니다.

 

(2) 공동선 연대와 일반 사회단체: ‘공동선 연대’는 일반 ‘사회단체’와도 구별된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영역이 고유한 활동영역인 ‘사회단체’는 일반 시민들로 구성되며(그리스도인을 배제하지 않음) 그 단체 자체도 일반 ‘사회단체’인 반면에, ‘공동선 연대’는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되지만(비그리스도인을 배제할 필요 없음) 그 단체 자체는 ‘교회단체’가 아니다.

 

그러면 공동선 연대와 ‘그리스도교’ 사회단체(‘교회단체’는 아닌데 직접 또는 간접으로 가톨릭 정신을 따르며, 다소 분명하게 사회 모델을 위해 좌-중-우도 가운데 구체적인 선택을 한 그룹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사회적으로 ‘그리스도교적’(어떤 지역에서는 ‘가톨릭’ 또는 ‘천주교’ OOO라고 불리는) 사회단체는 그 주도 이념이 간접적으로 그리스도교적일 뿐 그리스도인들로만 구성되지도 않으며 그 단체 자체도 교회단체가 아니다(‘준교회단체’의 성격을 띠는 정도이다).

 

그러나 ‘공동선 연대’는 그 주도 사상이 가톨릭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사회교시)이며,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되기는 하지만(비그리스도인을 배제하지 않음) 그 단체 자체는 ‘교회단체’가 아니다. 따라서 가칭 ‘공동선 연대’는 가톨릭 교회의 사회교시(사회적 가르침)를 기본으로 삼고 사회 비판적으로 활동하는 비정부기구(NGO)의 성격을 띨 것이다.

 

2) 가칭 ‘공동선 연대’ 결성

 

(1) 구성과 활동

 

‘공동선 연대’는 교회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지도신부’도 없다. 특히 그러한 시민단체는 성직자들이나 수도자들로 구성되지 않고 평신도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된다. 이들의 시민단체는 본당이나 교구에 소속되지도 않고 ‘교회단체’의 권리나 의무도 없다. 외적으로 보나 법적으로 보나 ‘공동선 연대’는 하나의 시민단체이다. 따라서 시민단체로서의 모든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① 조직 단위: ‘공동선 연대’의 체제 문제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시민단체의 구성원 수가 적으면 그들의 활동을 무시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구성원의 수, 곧 시민단체의 양적 위력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대규모의 조직과 운영이 필요할 것이다. 그뿐 아니라 ‘공동선 연대’를 이끌어갈 전문가도 필요하다. 정보 제공이나 사회 분석 전문가 없이, 활동 목표나 조직적 행동방식의 효과를 사회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전문가 없이 ‘공동선 연대’의 활동은 한계에 부딪히고 말 것이다.

 

② 활동 방법: 활동에서 ‘공동선 연대’는 가톨릭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사회교시)을 그 사회비판과 사회활동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한 시민단체의 사회비판과 활동 기준은 직접적으로 복음이 아니라 가톨릭 교회의 사회교시이다.

 

이러한 시민단체를 구성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일반적인 신앙생활 양식으로만 살지 않고 특별히 직장생활을 통한 사회 참여 양식, 곧 사회적 활동으로 산다. 이들은 전통적 사회 참여 양식에 따라 ‘교회 안에’ 있으면서 사회문제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적을 두었지만 ‘사회 안에서도’ 사회문제를 관찰하고 분석하고 비판하고 평가하면서 좀 더 인간다운 사회를 건설하고자 행동에 나선다.

 

가칭 ‘공동선 연대’는 정치단체나 경제단체는 아니지만, 과거처럼 정치와 종교 간의 경계를 지키기 위해 갈등을 겪지 않고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나서서 새로운 사회건설을 위해 시민단체로서 비판할 수 있고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

 

(2) 한국 시민단체들 가운데 하나인 ‘공동선 연대’

 

가칭 ‘공동선 연대’와 같은 시민단체는 모든 시민단체가 한국사회에서 누리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하고 거기에 따르는 의무도 이행해야 한다. 그들의 결정이나 취소에 교계는 간섭할 필요가 없다. 시민단체는 교회단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공동선 연대’는 교회의 사회교시가 가르치듯이 그러한 사회정의를 이룩함으로써 사회의 공동선을 실현하는 것이 급선무가 될 것이다.

 

필요에 따라 토론을 벌이고 시위와 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에도 그 방법은 이 사회에서 시민단체들에게 부여된 권리를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도 투쟁하는 것은 교회가 아니라 시민단체인 ‘공동선 연대’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공동선 연대’를 교회와 혼동하거나 동일시하면 안 될 것이다. ‘공동선 연대’의 사회활동에서 계속해서 강조되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가톨릭 노동청년회’나 ‘가톨릭 농민회’의 역사는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

 

가칭 ‘공동선 연대’가 다른 시민단체들과는 달리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을 기준으로 사회 변혁을 목표로 세운다면, 현 사회현실을 관찰하고, ‘교회의 사회교시’를 기준으로 그 현상과 구조를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타당한 방법으로 그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우선 사회와 경제 분야에 집중한다고 해도, 많은 전문가들을 필요로 할 것이다. 또한 전국적 또는 교구 단위의 연합회 체제를 갖추려면 그 조직과 운영뿐 아니라 재정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전문가들이 필요할 것이다. 교회 내 활동단체들에 대해서 생각하듯이 그렇게 쉽게 생각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불가능하게 보이지도 않는다.

 

여기에서 논하는 가칭 ‘공동선 연대’의 사회활동은 친정부적인 것도 아니고 반정부적인 것도 아니다. 특정 정당을 위해 친화적인 것도 아니며 특정 정치인들이나 경제인들에 대해 정치보복적인 것도 아니다. ‘공동선 연대’의 사회비판과 사회활동 대상은 정부, 정당, 자본주의, 사회주의 등이 아니라 사회현실이다. 또 그 사회비판 기준은 가톨릭 교회의 사회교시이다.

 

3) ‘교회단체’ ← 평신도 그리스도인 → ‘시민단체’

 

(1) 평신도 사도직(단체) 협의회

 

현재 한국교회에는 ‘평신도 사도직(단체) 협의회’(이하 ‘평협’) 또는 ‘사목평의회’가 있다.

 

그러나 교회단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평협’은 단순히 여러 ‘교회단체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고 본다. 평협은 교회 내 모든 활동단체가 평신도 사도직 수행을 위해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그들의 조직이나 활동을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 같다. 평협 자신이 단순히 여러 교회단체 가운데 하나로서 활동하겠다고 한다면, 그 이름은 ‘평협’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교회 내 모든 활동단체의 활동이 기본적으로 ‘평신도 사도직을 수행’하는 것이라면, 그중에서 평협만이 그 사도직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시민단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미 교회 내 모든 활동단체가 평협 없이도 각자 자립적으로 자신의 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교계에서도 특별한 지시나 제안이 없는 것 같다. 만일 평협이 교회단체 가운데 하나로 남아있을 뿐 고유한 역할이 없다면, 교회 내에서 모든 활동단체를 조직적이고 유기적으로 활동하도록 하는 그 고유한 역할을 찾아야 할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조직과 활동이 이루어질 수 없다면, 가칭 ‘공동선 연대’와 같은 시민단체를 결성하여 가톨릭 사회교시에 입각한 평신도 사도직을 수행할 수도 있다고 제안하고 싶다.

 

교구나 본당에서는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단체’를 구성하여 교회가 책임지는 교회단체로서 활동하고 있지만, 동시에 시민단체도 결성하여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이 직접 책임질 수 있는 사회적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일은 없는 것 같다.

 

(2) 레지오 마리애

 

한국에서 그 역사로 보나 회(단)원 수로 보나 레지오 마리애를 능가할 교회단체는 없지만, 레지오 마리애 자체도 근본적인 쇄신 없이는 평신도 사도직 수행에 앞장서기 어려울 것이다. 여기에서는 전국, 교구, 본당 차원의 ‘레지오 마리애’를 구성하는 평신도 그리스도인들도 가칭 ‘공동선 연대’라는 시민단체를 형성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레지오 마리애는 분명히 ‘교회단체’이다. 그리고 『레지오 마리애 공인교본』(2000년 3월 15일)에 따르면 레지오 단원인 평신도 그리스도인은 ‘평신도 사도직’을 수행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물론 레지오 마리애가 창설될 때는 오늘과 같이 평신도 사도직이 강조되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현재 그 교본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말씀을 이렇게 인용하고 있다. “평신도는 진정으로 ‘선택된 백성, 거룩한 사제’이며, 아울러 ‘땅의 소금’이며 ‘세상의 빛’이 되도록 불리었습니다. 평신도들에게 주어진 명확한 성소와 사명은 그들의 삶을 통하여 복음을 선포하고, 그들이 살아가며 일하고 있는 세상의 현실 속에 복음의 누룩을 집어넣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레지오 마리애가 ‘교회단체’로서 세상의 현실 속에 복음의 누룩을 집어넣기는 너무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은 ‘레지오 마리애’ 단체로서가 아니라 사회에서 결성할 수 있는 ‘시민단체’로서 세상의 현실 속에 복음의 누룩을 집어넣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묻게 되는 것이다. ‘영적인 것’만을 너무 주장하는 레지오 마리애가 한번 생각해 볼 만한 일이다.

 

여기에서도 레지오 마리애의 자립성과 고유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단원들인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단체’로서가 아니라 시민단체(가칭 ‘공동선 연대’)로서 시민활동이나 시민운동을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지 않느냐고 제안하는 것이다.

 

 

4. 결론

 

우선 확실한 것을 두 가지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가톨릭 교회는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좀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고자 적극적으로 사회 참여를 하도록 권하고 있다. 둘째, 그러나 현실적으로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통하여 거기에 응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사회 참여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물론 이유는 여러 가지이겠지만 그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신자들의 성격을 세 부류로 나누어보면, 첫째, 개인기도, 미사, 성사가 중심을 이루는, 주로 개인의 구원을 목적으로 하는 신앙생활로 만족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둘째, 그러한 정도 이상으로 교회단체를 결성하여 교회를 활성화하며 사회를 좀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로 만들고자 개인적으로 사회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셋째, 그러한 정도 이상으로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교회단체로서가 아니라 준교회단체로서(그리스도교 OOO, 가톨릭 OOO, 천주교 OOO 등) 단체를 조직하여 새로운 인간사회를 건설하고자 활동하는 그리스도인들도 있다.

 

그러면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의 더 적극적인 사회 참여 방법은 없는가? 위에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평신도 사도직 수행인 사회 참여 양식’을 분석 평가하여 새로운 사회 참여 양식을 찾아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필자는 ‘시민단체적 사회 참여 양식’을 제안했다.

 

그러나 시민단체적 사회 참여 양식을 논했다고 해서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이 필요로 하는 새로운 사회 참여 양식이 이미 나왔다는 말은 아니다. 이제 시작해야 할 일이다. 모든 이의 협력이 필요하다.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려면 신학자, 사목자, 사회학자, 사회활동가, 시민운동가 등 이론과 경험이 있는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구체적인 연구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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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춘호, 『가톨릭 사회와 사회 변혁』, 분도 출판사, 1998년, 207-394면(가톨릭 교회의 사회교시) 참조.

2) 『현대의 복음 선교』, 70항과 『평신도 그리스도인』, 23항.

3)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사도직 활동」, 4항.

4) 평신도 교령, 5항.

5) 김춘호, 『세상에 사는 그리스도인』, 가톨릭 출판사, 2002년 참조.

6))『평신도 그리스도인』, 29항.

7) 평신도 교령, 18항.

8) 평신도 교령, 19항.

9) 현대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 76항.

10) La Documentation Catholique, 1972년, No.1620, 1016(프랑스 주교회의 1972년). 

11) 『팔십주년』, 48항.

 

[사목, 2004년 9월호, 김춘호(수원교구 원천동본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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