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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시장경제와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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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5-01-06 ㅣ No.494

시장경제와 윤리

 

 

“현대 시장경제에서 도덕성의 주요한 장소는 구조이다”(K. 호만)

 

최근 독일에서는 경제윤리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독일경제연구소가 수여하는 ‘막스베버 경제윤리상’의 올해 수상작은 “권력과 도덕성 사이에 선 경영자(Managers between power and morality)”를 주제로 하고 있다. 경제윤리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이유는 진보에 대한 종래의 소박한 신념이 점점 더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거의 모든 문제가 정치적 경제적 과학적 수단을 통해 해결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오늘날 저발전, 실업, 환경오염과 같은 문제들은 점점 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

 

1989년 이후 진행된 중부유럽과 동유럽의 정치적 사회적 격변 속에서, 상당수의 사람들은 ‘시장경제-사회적 시장경제(Market Economy-Social Market Economy)’를 ‘희망의 길’로 인식하였다. 필자는 1989년의 “평화혁명” 기간에 (그리고 이후에도) 동독에서 울려퍼졌던 하나의 구호를 기억한다. “만약 마르크화가 우리에게 오지 않으면, 우리가 마르크화로 갈 것이다(If the DM does not come to us, we shall move to the DM)”. 그러나 이런 와중에서 승리에 찬 시장경제는 18세기와 19세기의 괴물 같은 자본주의를 연상시키는 점이 많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경제, 시장과 윤리’라는 주제는 독특한 중요성을 갖고 있다.

 

이 글에서는 먼저 경제적 경쟁과 도덕성 사이의 모순을 간략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왜 시장의 자유와 사회정의가 서로 배타적인 것처럼 보이는가? 필자는 주로 제도와 구조의 윤리로서 경제윤리를 이해하는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할 것이다. 이런 윤리적 접근법에 따르면, “구조는 현대 시장경제에서 도덕성이 자리하고 있는 주요한 장소이다(The main place of morality in modern market economy is the framework).” 이 명제는 그 구조가 경쟁과 도덕성 사이의 충돌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세 번째 부분에서 필자는 7단계로 이 명제를 설명하고 그 이유를 제시할 것이다.

 

 

1. 시장경제와 도덕성 사이의 충돌

 

학문적인 토론, 나아가 경제정책과 모든 경제생활 영역에서 두 가지 대조되는 입장이 자주 충돌하였다. 그것은 경제의 자율성과 윤리의 우위성을 내세우는 입장이다.

 

1) 경제의 자율성

 

이 입장은 ‘경제 세력들’의 자율성, ‘경제 법칙들’의 자율성, 그리고 그와 같은 경제의 자율성을 절대화한다. 그들은 경제영역에서 윤리법칙을 따르는 것은 나쁜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시장경제 안에서 개별 경제주체는 가능한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고자, 자신들이 생산하는 생산물에 대한 비용을 최소화하고, 판매수입을 최대화하려고 한다. 이러한 수익성(profitability)의 원리는 경쟁의 원리를 통해 보완된다. 곧 다른 경쟁자 역시 자기 생산물의 비용을 최소화하고 수입을 최대화하고자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경쟁자들은 가능한 많은 생산물을 팔고자 하기 때문에 비용과 가격을 억제한다. 따라서 시장 경제의 핵심은 경쟁이고, ‘시장 세력들의 자유로운 활동’이며, 이 활동의 핵심 조건은 개별 경제 주체들에 의한 결정의 자유이다.

 

아주 잘 준비되었다고 하더라도 경제 영역 밖에서 오는 윤리 규범은 결과적으로 경제에 어울리지 않는다. 낯선 윤리 규정이나 사고의 승낙은 이런 자유를 제한하고, 부가 비용을 발생시키며, 자유 시장의 운행을 방해할 것이다. 그러므로 윤리 규정의 수용은 경제 효율성을 방해하고 부정적이고 좋지 않은 결과를 양산할 것이다. 이 때문에 사회적 고려와 도덕성은 ‘시장 세력의 이런 활동’ 속에서 자리를 잡을 수 없을 것이다.

 

2) 윤리의 우선성

 

이 견해는 경제를 넘어선 윤리의 절대적 우위를 주장한다. 경제와 시장은 그 자체로 어떠한 목적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와 그의 필요에 봉사하는 것이어야 한다. 경제의 목적은 시장 참여자들이 가능한 높은 이익을 창출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능한 최선의 방법을 통해 모든 이에게 공급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경제보다 중요한 많은 것이 있다. 이익은 낮은 우선성을 갖는다. 거기서 경제는 이러한 필요와 가치를 제공한다. 따라서 경제는 어떠한 경우라도 도덕성에 종속되어야 하고, 윤리에 절대적인 우선성을 부여해야 한다. 이러한 도덕적 확신을 지닌 사람들은 특정한 경제 상황이나 경제적 필요를 고려하지 않은 채, 종종 경제 참여자들에게 도덕적이기를 호소한다. 이 때문에 사업하는 사람들은 이런 호소를 귀담아듣지 않고, 단순히 거부하곤 한다.

 

이렇게 상충된 두 견해는 경쟁적인 경제에서는 어떤 추가적 노력, 곧 사회적 생태적 목적이나 인간적 도덕적 목적 그 자체를 위한 노력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는 데서는 일치하고 있다. 무슨 목적을 지녔든지 어떤 노력은 비용과 관련되어 있다. 시장경제 안에서 추가적인 노력은 추가적 지출을 가져오고, 이것은 이런 부가적 비용을 감당할 필요가 없는 경쟁자를 이롭게 할 것이다. 그리고 만일 한 기업의 비용이 더 긴 시간 동안 그 경쟁자의 비용보다 더 많이 지출된다면, 이 기업은 파산하고 시장에서 도태될 것이다. 여기선 경쟁과 도덕성은 양립할 수 없고 상호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

 

 

2. 구조를 통해 경쟁과 도덕성 사이의 충돌을 해결하기

 

한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이 그 기업의 경쟁자의 비용을 항상 초과하게 된다면, 그 기업은 파산하고 시장에서 도태될 것이다. 따라서 이 수준에서 경쟁과 도덕성은 서로 배타적이다. 경쟁과 도덕성은 서로를 배제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이때 경쟁과 도덕성은 그런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가? 그것은 실질적인 딜레마이다. 현대의 경제윤리는 대체로 경쟁과 도덕성의 충돌이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근본적으로 제도와 구조의 윤리로 경제윤리를 이해하는 접근법은 이를 시도하고 있다. 아래에는 이 경제윤리적 접근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겠다.

 

만일 친구들과 등산을 할 때 한 친구가 도시락을 놓고 왔다면, 여러분은 분명히 그와 음식을 나눌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세 번, 네 번 일어난다면 여러분은 아마도 다음 여행을 떠나기 전에 그의 짐을 점검할 것이다. 이런 대면적 관계는 이상한 행동을 발견하고 바꾸는 것을 용이하게 한다. 그러나 가게에서 산 식사용 잼이 점점 맛이 없어질 때에, 이것을 같은 방식으로는 통제할 수 없다. 대신에 다른 상표의 잼을 산다. 만일 많은 소비자들도 이와 같이 한다면, 잼의 생산자는 판매 부진을 확인할 것이고, ‘자기 이익을 위해’ 그 원인을 찾아서 제거하고자 할 것이다.

 

우리는 현대 대중사회에서 소규모의 친밀 집단과는 다른 방식, 곧 대면관계 없이 작동하는 통제 기제를 인식한다. 이러한 경험과 통찰이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명제를 도출한다. “구조는 시장경제에서 도덕성이 자리하고 있는 (유일한 장소가 아니라) 주요한 장소이다.”

 

 

3. 구조:시장경제에서 도덕성의 주요 장소

 

아래 7단계에서는 왜 구조가 현대 시장경제 안에서 도덕성의 주요한 장소인지 설명하고, 그 이유를 제시하고자 한다.

 

1) ‘행위를 위한 개인적 동기’와 ‘행위의 국가경제적 결과’의 구분

 

기업과 개별 경제주체는 정당하게 이윤을 창출하려 한다. 심지어 가능한 많은 이익을 얻으려는 것도 합법적인 목표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욕구, 목표, 목적을 실현시키고 만족시키고자 일한다. 대체로 이기심은 행위의 동기이다. 이 주된 경제적 동기는 다른 동기들을 배제하지 않는다. 가령 어떤 아버지는 자연스럽게 가족을 위해 가능한 최고 수준을 공급하고자 한다. 그는 이것을 자신의 도덕적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것을 실현하고자 적절한 소득을 얻으려고 노력한다. 따라서 큰 범위에서 경제 활동은 개인의 경제적 이익에 따라 고무되고 동기가 부여된다. 곧 넓은 의미에서 ‘자기 이익’`─``이것은 결코 이기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은 경제활동의 추진력이며 자극제이다. 게다가 시장 참여자가 오랜 기간 이익을 창출할 수 없고, 손실을 입게 되고, 적자를 보게 된다면, 시장은 그러한 기업을 도태시킬 것이다. 그런 기업들은 살아남을 수 없고, 기업의 일자리는 사라진다.

 

이른바 국가경제와 관련해서는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국가경제의 과제는 최선을 다해 모든 사람에게 자원의 공급을 보장하는 것이다. 곧 시장과 경쟁의 사회적 목표와 대상은 이른바 그리스도교 사회교리가 ‘공동선’이라고 부르는 만인의 복지, 공공복리이다. 이런 ‘개인적 동기의 수준’, 각 경제 참여자와 그들의 목표 수준 그리고 ‘국가경제 체제의 수준’, 국가경제와 그 과업 수준의 차이는 결정적인 것이기에 간과되거나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고전적 자유주의 경제학의 창시자였던 아담 스미스는 이미 『국부론』에서 개별적 경제 참여자들과 그들의 동기, 그리고 국가경제와 그 임무를 분리시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가 기대하는 음식들은 정육점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제빵사의 호의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의 욕구를 이야기하지 않고, 그들의 이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2) ‘행위에 필요한 구조’와 ‘구조 안에서 벌어지는 행위’의 차이점

 

그러나 개별 경제주체의 행위가 모든 사람에게 가능한 최상의 공급, 곧 공공의 이익을 자동적으로 실현시키지는 않는다. 역사의 경험과 현대 경제학은 이 점을 가르치고 있다. 개별 경제주체들은 충분한 구조, 적절한 질서 안에서만이 공공의 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행위에 필요한 구조’와 ‘구조 안에서 벌어지는 행위’를 구분해야 한다. 행위에 필요한 구조에는 헌법, 경제 법칙, 경쟁에 관한 법질서, 그리고 경제 공동체의 정치적 경제적 신념이 지니는 본질적 특성이 모두 포함된다. 이러한 구조는 국가의 책임 영역이며, 우리 시대에는 전 세계적 제도의 영역이기도 하다. 구조 안에서 벌어지는 행위란, 예를 들어 기업가의 투자 정책, 구매와 판매 전략, 가격 정책 같은 것이다. 이러한 행위들의 영역은 개별 시장 참여자들의 사업 부문과 같다.

 

축구 경기에 비유한다면, 선수들이 지켜야 할 ‘경기 규칙’과 선수 각자의 기술에 따라 ‘경기에서 벌어지는 동작’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 더욱 정확히 말하면 입법자는 일정한 법률적 구조를 마련하여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개별 경제주체들이 모든 이의 풍요로움에 부응하는 바에 따라 경제생활을 영위하게 해야 한다. ‘경제라는 경기의 선수들’, 곧 모든 개별 시장 참여자는 자신의 활동, 그리고 하나의 전체로서 경제에 부여된 이러한 구조의 규율을 준수해야 하며, 국가는 이 규율이 잘 지켜지도록 힘써야 한다.

 

3) 시장의 도덕성 : 희소한 경제 자원의 이상적 활용

 

시장과 경쟁이 필수적인 것은, 그것들이 희소하고 제한된 경제 자원을 최상의 방법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며, 이는 역사의 경험상 지금까지 알려진 다른 어떤 경제제도보다 우월하다. 인간의 필요에서 볼 때 물질 자원은 공급 부족 상태에 있다. 그러므로 연대의 명령은 충분한 물질적 재화가,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이용될 수 있도록 요구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우월한 경제 시스템인 시장과 경쟁은 희소하고 한정된 자원을 최상의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으며, 따라서 전반적으로 볼 때, 생산 활동을 더욱 촉진하게 된다. 이에 비해 우리 시대에 이미 붕괴한 사회주의는 많은 경제적 비효율과 자원의 낭비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삶에 필요한 재화의 양이 늘어나더라도, 그와 더불어 이러한 재화를 생산하는 데에 필요한 자원의 소비가 줄어들면, 그만큼 미래 세대의 생존 조건은 부담을 덜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경쟁과 시장 경제의 도덕성과 가치는 무엇보다도, 희소하고 한정된 경제 자원을 이상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에 달려있다. 동시에 이것은 ‘시장 경제인가, 아니면 중앙 계획 경제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그리스도교 사회교리의 답변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 국가는 단지 필요한 만큼 권위와 압력을 행사해야 하며, 개인에게 가능한 한 많은 자유를 주어야 한다. 그리스도교 사회교리는 더욱 정확하다. 사회교리의 기본 원리 가운데 하나인 ‘보조성의 원리’는 개인들 스스로 경제 분야의 능동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개인은 흔히 국가와 같은 경제 집합체의 단순한 기능적 요소들이 아니다. 곧 누구든지 개인이 스스로 수행하고 성취할 수 있는 것을 그에게서 박탈하여 공동체에 위탁해서는 안 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신자유주의와 가톨릭 사회교리는 완전히 일치한다.

 

4) 시장경제의 장점과 단점

 

경쟁과 시장은 경제활동을 위한 강력한 자극이 된다. 이때 각 경제 주체는 이익을 창출하고자 노력한다. 동시에 시장과 경쟁은 비용과 가격에 압력을 행사한다. 곧 생산자는 각자 동료 경쟁자들에게 밀려나지 않으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그 결과는 “풍요의 보편적 증대”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쟁과 시장의 장점은 개인들에게 인지될 수 없다. 경제 공동체는 전체적 존재로서 풍요의 증대에서 오는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시장과 경쟁의 부담은 때로는 개별 국민, 단일 집단, 단일 산업 부분에 영향을 끼치고 타격을 준다. 일례로 지난 수십 년 동안 유럽에서 벌어졌던 농민과, 목축업자, 광부들의 경우가 그러하다. 한정된 경제 자원을 이상적으로 활용하려면 비경제적인 생산활동과 더 이상 수요가 없는 상품의 생산을 중단해야 한다. 보조금으로써 더 이상 수요가 없는 품목을 보호하거나 산업의 특정 분야에 대하여 영구한 보호정책을 쓰는 일은 경제적으로나 도덕적으로도 해롭다.

 

그러한 영구 보조금과 특정 분야에 대한 영구적인 보호 정책은 공동체의 복지에 부담과 손상을 주며, 그 공동체는 이러한 보조금을 감당하고 그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수단들은 공공 복리를 손상시킨다. 지속적인 구조의 변화, 곧 “창조적인 파괴의 과정(process of creative destruction)”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국 경제학자였던 요셉 슘페터(Joseph A. Schumpeter)가 주장했던 것처럼, 공동선을 위하여 치러야 하는 시장의 경제적 가격이다.

 

5) 경제적 구조의 필요성

 

이제 문제는 공동체가 시장경제의 구조 안에서 공공복리에 드는 비용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곧 공동체가 구조 변화의 부담을 감당해야 할 개인들을 위하여 어떠한 보호정책을, 그리고 어떠한 구조를 마련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시장과 경쟁은 오로지 “창조적 파괴의 과정”으로 피해를 입는 개인들 - 특히 ‘시장에 저항할 수 없는 이들’로 불리는 사람들, 곧 시장이 요구하는 수단으로는 자기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이들 - 에게 충격을 완화해 주고 지원하고 ‘돌보아’ 주는 문제만을 책임지고 수용할 뿐이다. 다시 말하면 경제 구조는 모든 사람의 복리, 곧 모든 존재의 복리의 요구에 따라 형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관점을 국가와 정치는 자기 역할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국가와 정치의 과제는 시장과 경쟁의 작동을 가능하게 하고 보호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 사회적으로 나타나는 해로운 결과들을 교정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어린이가 물에 빠지도록 방치한 다음에 물에서 건져내는 것은 좋은 게 아니다. 초기 단계부터 사회적 차원이 모든 경제활동에 본질적이고 동등한 비중을 갖는다는 인식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똑같은 비유를 사용해서 말하자면, 어린이는 처음부터 물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와 정치는 그러한 전제와 조건들을 제시하여야 하며, 사회적으로 적합한 경제 과정을 기획하고 그것이 공정한 사회적 결과가 되도록 감시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 환경의 인간화’를 통하여 노동자가 생산 과정의 굴레에서 억압받지 않게 하며,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요청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산업의 여러 부문과 일자리가 감소하기 이전에 경제구조를 변화시킴으로써, 새롭고도 지속성 있는 일자리 창출에 필요한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회칙 『백주년』이 강력하게 선언하고 있는 것처럼, “시장의 힘만으로 보호될 수 없는 자연과 인간의 환경과 같은 공동 재화를 옹호하고 보호하는 것”(40항)도 국가의 의무이다.

 

그리고 정당한 수입의 분배를 요구한다. 국가 경제의 생산물을 할당하여 여러 집단의 사람들에게 돌아가게 함으로써 수입과 재산의 분배가 적절하고 공정한 것이 되도록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경쟁과 시장은 오늘날까지 알려진 그 어떤 경제제도보다도 우월하게, 희소하고 한정된 경제적 잠재력을 최상의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비인간적인 노동 조건 아래에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 수입은 공정하게 분배되어야 하며, 모든 이가 정당한 몫을 얻어야 한다. 그것을 위하여 우리에게는 일정한 구조가 필요하며 시장에 참여하는 이들은 그 구조를 준수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이의 복리와 공동선을 지지하는 입법자들에게서 나와야 하고, 국가의 정책을 통하여 실행되어야 한다.

 

6) 사회적 시장경제와 그 구조

 

주로 자기 이익에 따라 이루어지는 개별 경제주체들의 활동은 본질적이지만, 그들의 활동이 자동적으로 모든 사람의 복지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경제활동은 오로지 적합한 구조, 적절한 질서 안에서 효과적인 것으로 드러난다. 이런 통찰이 바로 이른바 ‘사회적 시장경제(Social Market Economy)로 알려진 개념의 토대이다. 제2차 세계대전 뒤에 유럽, 특히 독일의 경제학자와 정치가들은 국가 사회주의와 그 계획·조절 경제에 반대해서 이 개념을 고안하고 이 이론을 정치적 경제적 실천으로 표현했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시장 자유의 원칙과 사회 정의의 원칙을 결합한 경제 체제이다. 이 모델에 따르면, 경쟁은 현대 대중사회를 조직하는 데 필요 불가결한 수단이지만, 이 경쟁은 투명한 구조와 강력한 법적 규제에 의해서만 작동된다. 사회적 시장 경제의 중핵은 결과와 효율성의 참된 성취에 토대를 둔 경쟁이다. 경쟁은 경제적 효율성과 생산성을 증진하고 보호한다. 참된 경쟁은 경제 세력들의 자유로운 활동에서 자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국가는 경쟁을 가능하게 하고, 확립하고 증진할 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이익이 가장 효과적으로 보호되도록 독점과 담합을 조절해야 한다. 그러므로 독점법과 독점위원회는 사회적 시장경제의 기본법이며 핵심이다.

 

요약하자면, 사회적 시장경제의 핵심은 국가와 정치에 의해 확립되고 투명한 구조에 의해 보호되는 ‘성과에 의한 경쟁’이다. 이것은 소비자에게 유익한 서비스를 제공함을 기준으로 두고 이뤄지는 경쟁이며, 여기서 ‘성과(Leistung)’는 공급자 입장이 아닌 소비자 입장에서 이익이 되게끔 하는 과정이나 결과를 의미한다. 이 규제된 경쟁은 경제 효율성을 증진하고 보호한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사회적 시장경제의 모델은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야만 했다. 국가경제가 세계적으로 점점 더 상호의존적이 되면서, 교황 요한 23세의 『지상의 평화』가 말하는 것처럼 “각국의 경제는 세계경제의 한 부분”이 되었고, 세계경제는 국가 안에서 국내적 또는 국가적 구조에 대응하는 전 세계적인 구조를 결여하고 있다.

 

교회 안팎에서 많이 토론된 세계화는 경제 참여자들, 특히 초국적 기업들을 더욱더 어떤 구조 밖에서 행동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잘 작동하고 있는 구조는 사회적 시장경제의 개념에 본질적이다. 국제 경제 질서의 ‘뜨거운 감자’는 구조의 결핍에서 나온다. 국제연합과 그 단체들의 존재는 기껏해야 첫 단계에 있다. 유럽은 유럽연합(EU)을 결성함으로써 지역 구조를 구체화하기 시작했는데, 장기적으로는 전 세계적인 구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7) 구조와 개별 윤리행위

 

“시장경제에서 도덕성이 있어야 하는 주된 장소는 구조이다.”라는 말은 개별적 윤리 행위를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개별 경제주체들은 총괄적으로 경제를 규율할 뿐 아니라 경제 게임 안에서 그들의 움직임들, 그들의 경제활동들을 규율하도록 규정된 그 구조의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이것은 종종 커다란 도덕성을 요구할 수 있다. 사업하면서 정직해지고, 정당한 임금을 제공하는 것 등은 늘 쉬운 것만은 아니다. 이에 반해 시민으로서 피고용인과 고용인은 그들의 정치적 도덕적 신념에 기여할 뿐 아니라 이 구조를 구체화하는 데 기여하고 정치적 도덕적 책임을 다한다. 예를 들면, 선거에 의해서 말이다. 민주주의는 국민 스스로 윤리적 책임을 져야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수는 그 구조의 내용을 결정하고 구체적 내용을 결의한다.

 

그러므로 가능한 많은 사람들은 자기 양심에 귀 기울여야 하고, 기본적 원칙의 문제에 투표권이 반응하게 해야 한다. 마침내, 경쟁 상황임에도 개별적인 시장 참여자들의 구조 안에서 사회적 생태적 도덕적 목적을 위한 추가적인 노력들이 이루어질 수 있다. 경쟁자들이 이런 성과들을 활용할 수 없는 한, 이 노력들은 지출이나 비용과 관련되어 있으나 아마도 더 높은 도덕적 기준으로 나타날 것이다. 미래에 회사들은 주식 가치뿐 아니라 스스로의 사회적 도덕적 가치에 따라서도 평가될 것이다.

 

경제적 성공과 사회적 책임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양자는 서로 의존한다. 그러므로 구조의 커다란 중요성은 간과되지 않아야 한다. 도덕적 호소는 가족이나 친구관계에서처럼 대면관계에서 가장 잘 작동한다. 시장경제에서 도덕성의 주요 장소가 구조라는 말은 개별 인격의 양심이 제도의 파산을 보충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19세기에 그리스도교 사회교리와 (독일) 가톨릭 사회운동은 자기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사고방식의 개혁뿐만 아니라 사회구조의 개혁 또한 중요함을 무의식적으로 제안하였고, 이를 문제해결의 기준으로 삼았다.

 

 

4. 결론

 

경제, 시장과 도덕성이라는 주제는 우리 관심의 초점이다. 현대 시장경제에서 도덕성의 주요 장소는 어디인가? 현대 대중사회에서 경제 정책과 경제윤리, 그리스도교 사회교리는 대부분 그리고 근본적으로 제도와 구조에 대한 정책이며 윤리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공동선에 부응하는 정치에 의한 구조의 형성과 개별적인 시장 참여자들에 의한 규칙의 의식적 준수는 경제적 경쟁과 사회정의, 시장경제와 도덕성을 서로 다른 수준에서 효과 있게 하고 서로를 보완한다. 동시에 양자는 사회적 시장경제의 성공에 본질적 기여를 한다.

 

* 이 글은 독일 출신 프란츠 J. 슈테그만 신부님의 논문, “Economy, Market and Morality”를 편집부에서 편역한 것이다. 지면관계로 전문을 다 게재하지 못한 데 대해 슈테그만 신부님께 감사함과 아울러 송구스러움을 전한다. - 편집자 주.

 

[사목, 2004년 7월호, 프란츠 J. 슈테그만(남아프리카 공화국 베들레헴 사회교육원 교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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