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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사목 인터뷰: 생명 31운동 책임주교 이기헌 주교 - 생명 하나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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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5-01-06 ㅣ No.490

[사목 인터뷰] ‘생명31운동’ 책임주교 이기헌 주교 - 생명 하나 더!

 

 

봄, 흔히들 봄은 ‘생명이 움트는 계절’이라고 한다. 겨우내 땅속에서 지냈을 풀들이 파릇파릇 그 모습을 드러내고, 긴 겨울잠에 빠졌던 동물들도 이제 기지개를 켠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요즘 출산율 1.17%의 ‘저출산’ 위기에 봉착했다. 그리고 위기를 극복해 내지 못한다면 장차 노동력이 부족해지고, 고령사회가 촉진되며 국가 경쟁력 면에서도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여기저기에서 입을 모은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가 부각되기 전부터 교회에서는 ‘낙태는 분명한 살인 행위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인명 경시 풍조의 근원’임을 천명하면서 낙태 반대와 모자보건법 폐지를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생명 존중의 당위성을 피력해 왔다. 그리고 좀 더 본격적으로, 체계적으로 생명운동을 벌인 지 꼭 1년이 지났다. ‘생명31운동’이 그것이다. 지난해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에서 ‘생명31운동’ 책임주교로 선임되어 생명을 살리고 소중히 여기는 이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이기헌 베드로 주교를 만났다.

 

 

1. 군종교구장으로서, 주교회의 가정사목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작년부터는 ‘생명31운동’ 책임주교로서 역할을 수행하시느라 무척 분주하시리라 짐작됩니다. 특별히 생명31운동의 책임주교라는 자리가 주교님께 어떻게 다가오는지 그리고 주교님의 요즘 근황은 어떠신지 듣고 싶습니다. 

 

요즘은 어느 학교나 졸업과 입학을 준비하느라 바쁠 때지요. 사관학교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저도 육 · 해 · 공군 사관학교 졸업미사와 입학미사에 참석하느라 좀 바쁘지요. 이런 자리에서 저는 군인으로서, 신자로서 열심히 살아달라고 당부합니다. 

 

최근에는 80명의 군종신부가 ‘아론의 집’에서 정기 피정을 했어요. 이번에는 서울대교구 이한택 주교님을 모시고 「본당 공동체의 목자이며 인도자인 사제」라는 책을 중심으로 사목자의 신원과 본당신부로서 해야 할 일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했지요.‘생명31운동’에 대해 말하자면 책임주교를 맡기는 했지만, 참 부담이 많아요. 이 일이 의식운동 또는 문화운동이라 다양한 행사도 많을 뿐만 아니라 결실이 금방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꾸준히 이루어나가야 할 일이라서 더욱 힘들다는 생각이 드네요.

 

 

2. 지난해 3월부터 5개년 계획으로 펼쳐오고 있는 ‘생명31운동’에 대해 여쭙겠습니다. 우리 가톨릭 신자이건 믿지 않는 사람이건 누군가 주교님께 “도대체 우리 교회가 벌이고 있는 ‘생명31운동’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면 한두 마디로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우리 교회의 생명운동은 낙태 반대로 불을 붙였지만 궁극적으로 목표로 하는 것은 환경을 포함하여 모든 생명을 소중히 생각하고 아끼고, 존중하고 사랑하자는 운동입니다. 그래서 광범위하고 추상적일 수도 있지요. 여기에는 태아를 중시하는 출산 문제라든가 어린이 학대?유괴 문제, 사형제도 문제들이 포함된다고 볼 수 있어요.

 

 

3. 5개년 계획으로 ‘죽음의 문화’를 타파하고 ‘생명의 문화’를 창출하자는 것이 이 운동의 목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제 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의 활동성과를 점검해 주시고, 앞으로 전개할 활동계획의 요지를 말씀해 주십시오.

 

지난 1년 동안은 주로 홍보 위주로 활동을 했어요. 열린 음악회, 거리 캠페인, 스티커 배포, 신문 광고 등을 통해 널리 알리려고 한 것이지요. 그런데도 아직까지는 모든 것이 미비해요. 지금까지 뿌리내리는 작업을 했다면 이제는 더 굳건한 뿌리를 바탕으로 줄기를 만들어나가야 할 텐데 이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다는 의견을 모았어요. 그래서 앞으로도 홍보에 치중을 하지만, 운동본부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전국 각 교구에서 홍보하고 교육하고, 활동해 나갈 계획이에요. 그래서 각 교구마다 ‘생명31운동’ 담당 신부님을 임명했지요. 1월 15일에 그 첫 모임을 가졌어요.

 

앞으로는 평신도 단체장을 소집하여 ‘생명31운동’의 의미도 정확히 짚어주고, 각 단체에서 이 운동을 펼치고 몸소 실천할 수 있도록 교육하거나 교구에서 발행하는 잡지나 신문, 주보 등을 통해 홍보하고 교육하는 데 치중할 계획입니다. 지금 계획하고 있는 5개년이 지나면 그 후속 계획도 다시 세워야 하겠지요.

 

 

4. 많은 사람은 현대사회 위기의 근본 요인이 무엇보다도 가정 해체에서 비롯된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일 것입니다. 그래서 오는 8월에 우리나라에서 개최될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FABC) 제8차 정기총회의 주제도 ‘가정’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정사목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이러한 점을 누구보다도 깊이 느끼시리라 믿습니다. 현대 가정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들, 다시 말해 가정에 내재하고 있는 반생명적인 요소들 가운데 무엇이 가장 심각하게 와 닿습니까?

 

어떤 가정학자의 말에 따르면, 우리나라 1960년대 가정의 모습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가정 형태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지금은 우리나라 이혼율이 세계에서 두 번째라고들 말하지요. 불과 40년 만에 이렇게 바뀐 이유는 무엇보다도 부부의 사랑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화가 단절되면서 사랑이 없어지고, 사랑의 단절은 폭력을 낳게 되지요. 이는 부부의 문제만이 아니라 가족의 문제이기도 하고요. 여성 폭력이나 아동 학대, 노인 학대 등이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라고 들었어요. 이러한 결과가 이혼이고요. 이혼은 그 자체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청소년 범죄나 탈선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요.

 

 

5. 최근 들어 정부에서는 출산율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높이면서 출산 장려책을 강구하고는 있으나 그 출발부터 국민들에게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구 억제 정책을 강력하게 펴오던 것이 엊그제였으니 많은 사람이 격세지감을 느낄 것입니다. 최근 ‘생명31운동’ 본부는 보건복지부와 함께 ‘생명 하나 더’라는 표어 아래 출산 장려 운동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부 입장에서 보면 최근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이 자업자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거예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표어로 국민들의 의식을 바꾸는 데 성공한 것이 오늘날의 결과일 수도 있으니까요. 

 

실은 최근에 보건복지부 장관을 만났어요. 담당 신부님과 신자 대표 몇 분이 동행했지요. 정부 측에서는 앞으로의 국력이나 국가 경쟁력을 생각하면서 상당히 당황하고 있고, 위기감을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우리가 하는 ‘생명31운동’에도 기대를 많이 걸고 있고요. 이 운동은 가톨릭 신자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해당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출산 장려 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려면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요. 낙태 문제를 국가 정책으로 해결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낙태를 안 하는 의사들이 재정적인 걱정을 하지 않으면서 일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것이지요. 

 

보건복지부에서도 이러한 일을 해나가는 데는 정부 혼자만의 힘보다는 종교나 시민 단체와 손잡는 것이 효과가 크다고 생각하고 있더군요. 생명운동을 벌이는 데 장애가 되는 문제를 현실적으로 고쳐나가겠다는 포부도 있고요. 저희가 벌이는 행사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겠다고 했어요.

 

 

6. 우리 교회는 혼인의 목적을 ‘부부 사랑과 자녀 출산’이라는 두 가지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교회는 인구억제 수단으로 무분별한 피임을 권장하고 낙태를 묵인해 온 정부의 인공적인 산아 제한의 비윤리성을 거듭 경고하면서 인간에게 주어진 생명 전달의 숭고한 임무를 확고하게 천명해 왔고, 구체적으로 1992년에는 낙태 반대 100만인 서명운동을, 2000년에는 모자보건법 폐지 100만인 서명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습니다. 주교님께서는 아무래도 혼인성사를 주례할 기회가 많으실 텐데 이와 관련하여 혼인하는 청춘 남녀들에게 어떤 점을 자주 당부하십니까?

 

참 오래된 얘기이지만, 제가 명동성당 보좌신부로 있을 때 혼인 담당이라서 혼인 강좌도 많이 하고 혼인 주례도 많이 했네요.

 

저는 먼저 부부의 사랑을 맺어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라고 당부하지요. 그리고 나를 선택해 준 상대 배우자에게도 감사하라고 말해요. 세상에는 수많은 여자가 있고, 남자가 있는데, 그 가운데 바로 나에게 다가와 나를 인생의 동반자로 선택해 준 것이야말로 감사할 일이겠지요. 그리고 이러한 감사를 사랑으로 표현하고, 지속시키라고 당부해요. 이러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지켜나가려면 서로 격려하고 희생하는 자세가 필요하겠지요. 그리고 앞으로 생길 자녀들이 올바른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하고, 무엇보다 신앙교육에 소홀하지 말라고 합니다. ‘생명31운동’을 맡고부터는 생명의 소중함도 자연스럽게함께 이야기하게 되더군요.

 

 

7. 우리나라에서는 한 해 동안 150만 명의 태아가 어머니 뱃속에서 살해당하고 있습니다. 이는 정상 출산의 두 배가 넘는 수치라고 합니다. 그래서 ‘낙태 천국’이라는 오명을 입고 있기도 하지요. “낙태는 분명히 살인 행위”라고 교회가 가르치고 있으나 낙태 경험에 대해서는 신자들도 믿지 않는 사람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낙태와 관련된 주교님의 사목 경험담이 있으면 들려주십시오.

 

저도 낙태에 관한 의식조사 결과를 보면서 조금은 놀랐습니다. ‘낙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가운데는 다른 종교보다 천주교 신자가 월등히 많습니다. 그런데 ‘낙태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천주교 신자나 다른 종교 신자나 비슷하더군요. 결국 머릿속으로는 낙태를 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행동으로는 지키지 못한다는 것이죠. 

 

제가 서울대교구 석관동본당 주임신부로 있을 때였어요. 그러니까 15년이 훨씬 지났네요. 어느 날 한 부인이 찾아왔더군요. 임신을 했는데, 그 사실을 모르고 약물을 복용했고, 그래서 아무래도 장애아가 나올 확률이 많아 낙태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고 하더군요. 그 부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래도 ‘이 신자의 마음에는 아직 희망이 남아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한테까지 찾아온 것을 보면 나름대로 신앙적인 고민을 많이 했고, 낙태를 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강하게 남아있다는 것이니까요. 만일 낙태에 대해 죄의식이 없었다면 벌써 병원에 갔겠죠. 

 

부인의 이야기를 다 듣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부인을 설득했어요.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인데, 설사 장애아로 태어나더라도 버릴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명에 대한 권한은 하느님께만 있는 것이라고 말했지요. 이렇게 얘기하면서도 사목자로서 이러한 상담을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힘든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행히 부인이 아기를 낳아보겠다고 하더군요. 

 

그러고 나서 나중에 아기를 안고 찾아왔어요. 부인의 예상대로 정상아는 아니었지만, 아기를 제게 인사시키면서 부인의 눈시울이 붉어지더군요. 안 그래도 불쌍한 아기를 내 손으로 없앴다면 더 마음이 아팠을 것이라며 아기에게 아직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어요. 저도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8. 한 산부인과 의사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고자 낙태수술을 하지 않고 병원을 운영하다가 현실적으로 적자폭이 너무 커서 결국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이렇듯이 낙태수술은 산부인과에 돈벌이 수단으로 완전히 고착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그 의사의 말에 따르면, 뱃속의 아이를 지우려 산부인과를 찾는 임부 열 명 가운데 한둘은 의사의 설득에 따라 낙태수술을 하지 않고 분만을 선택한다고 합니다. 산부인과에서 낙태수술을 하지 않고 분만을 유도하는 데 교회가 구체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없겠습니까? 

 

사실은 저도 그 의사를 알고 있고, 얼마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만날 때 동행했어요. 본인이 겪은 어려움을 비롯해서 낙태를 안 하는 의사도 재정적으로 보호해 줄 것을 건의하는 등 많은 이야기를 하더군요. 물론 그러한 의사를 끝까지 지원하고 보호하는 방안도 마련하고, 모자보건법을 폐지해 줄 것을 정부에 소리 높여 요구해야겠지만 그러기에 앞서 교회에서 사람들 마음속에 낙태를 하지 않으려는 의식을 심어주면 더욱 좋겠지요. 그러려면 예비신자 교리나 혼인강좌를 통해서 낙태교육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우리 교회에서 낙태 시술을 하지 않는 병원을 상징적으로라도 하나 가지고 있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해요. 또 낙태 시술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들을 위해서는 교회에서 운영하는 종합병원 가운데 산부인과를 좀 더 확장하여 더 많은 의사들이 일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는 방안도 있겠지요.

 

 

9. 무엇보다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이 선행되어야겠지만 현실적으로 육아에 대한 부담 때문에 출산 자체를 기피하는 경우가 많다고 봅니다. 그래서 직장 내에 보육시설을 설치해 달라는 요구도 많습니다. 이러한 보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특히 종교단체에 거는 기대가 큰데 이러한 면에서 우리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겠습니까?

 

그동안 교회에서는 자녀 양육에 대해서 사목적으로 관심을 갖지 못한 것이 사실이에요. 그러나 이제 저출산 문제나 가정 문제와 연관시켜 교회에서도 맞벌이 가정 아이들을 위한 육아에 대해 고민하고 대안을 마련할 때입니다. 지역 주민을 위해 교회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10. 이 기회에 우리 교회의 생명운동과 관련하여 전국의 사목자들과 신자들에게 당부하시고 싶은 말씀을 해주십시오.

 

교회도 역시 사회가 처한 문제나 어려움을 안고 살아가지요. 특별히 한국사회의 생명경시사상은 참으로 심각한 상태입니다. 이러한 사회의 위기감이 고조에 달해 생겨난 운동이 바로 ‘생명31운동’이에요. 따라서 이 운동은 신자들뿐만 아니라 사목자도 함께 공감하고 참여해야 성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올해에 표어로 내세우는 ‘생명 하나 더’에는 아기를 하나 더 낳자는 의미와 아울러 생명을 하나라도 더 소중히 여기고 아끼자는 의미가 있어요. 교구 차원에서, 본당 차원에서, 신심단체 차원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협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신자들 마음속으로, 모든 국민들 마음속으로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의식이 파고든다면 자연히 죽음의 문화, 반생명 문화가 점점 사라지겠지요.

 

[사목, 2004년 3월호, 인터뷰 · 사진 김진복(본지 편집장), 정리 한상화(본지 편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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