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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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인간배아의 복제허용 입법을 반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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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6 ㅣ No.303

인간배아의 복제허용 입법을 반대하면서

 

 

몇 년 동안 우리 사회는 생명과학의 눈부신 발전과 그에 따른 윤리 문제들에 대해 각각의 분야에서 함께 고민해 왔습니다. 생명과학의 발전은 인류의 삶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 주었고, 이제 많은 사람들은 인류의 미래가 생명과학의 발전에 달려 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다른 편으로 생명과학의 발전 이면에 숨어 있는 반생명의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생명윤리 관련법의 제정 문제로 인간배아 복제의 허용 여부를 놓고 열띤 토론을 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관련 부처들은 이 문제에 대해 서로 의견이 분분하고, 관련 학계나 기업, 시민단체, 종교계 그리고 개인들까지도 서로의 이해 관계에 따라 찬반 격론을 벌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토론에서 주장되는 가치들, 곧 인류의 건강, 생명의 연장, 국가의 부(富), 인간의 존엄성 등 매우 거창한 가치들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먼저 모든 사람이 함께 인정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해 성찰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97년 2월 복제양 돌리의 출생은 세계를 경악시켰습니다. 1930년대 이래 수정란 분할 및 증식 등의 방법으로 생명의 인위적인 복제 연구가 꾸준히 계속되어 오긴 하였지만 복제양 돌리의 출생 사건은 이전까지의 생명복제와는 전혀 다른 형태인 체세포 핵이식 방법에 의한 복제였다는 점에서 그 놀라움은 더욱 컸습니다. 생명복제 기술의 발전이 이제 단성(單性), 무배우자(無配偶者) 생식을 가능하게 하였고, 더 나아가 체세포를 제공한 사람과 똑같은 개체인 복제인간까지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생식에 관한 기존의 상식은 이제 완전히 뒤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놀라운 생명공학 기술은 이제 매우 구체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세계 도처에서는 배아줄기세포 추출을 위한 연구가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기도 하고, 심지어 세계 최초의 복제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도 자주 언론에 보도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이 우리나라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미 3년여 전에는 체세포 핵이식 방법으로 복제소가 탄생하였고, 또 며칠 전에는 같은 방식의 복제 돼지가 태어났습니다. 이제 일부 생명과학자들은 인간배아의 복제도 법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아주 강하게 주장하고, 정부도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여 그러한 방향으로 입법을 추진하는 듯합니다. 복제 배아를 통해 신체 조직과 장기를 양산하고 난치병을 치료하는 등 인류의 건강과 생명에 획기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기술을 보건 산업에 접목시킴으로써 국가 경쟁력을 한층 더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인간배아 복제는 반드시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주장에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인간 배아를 복제한다는 것은 인간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조작하여 생산해 낸다는 의미로서, 이는 인간의 생명을 창조주 하느님의 거룩한 창작품(창세 1,26-28;2,7 참조)으로 믿는 우리의 신앙에 대립하기 때문입니다. 인간배아의 복제는 생물학적으로 볼 때 체세포 제공자와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을 만드는 행위이며, 이렇게 생겨난 복제 배아는 당연히 생명을 가진 인간 존재입니다. 또한 복제 배아는 인간 생명이기 때문에 인간배아에 대한 연구, 조작 역시 인간의 존엄성을 거스르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복제된 인간 배아를 이용하여 의약품을 만들고, 난치병을 치료하는 등의 일이 비록 그 자체로 선한 일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는 명백히 인간 배아의 파괴를 전제로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결코 허용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인간 생명을 의학의 발전과 인류의 건강 증진이라는 미명으로 마음대로 처분해 버릴 수 있는 단순한 생물학적 재료 수준으로 격하시키거나 인간배아를 한 번 쓰고 버릴 생물학적 재료로 사용하려고 생산하는 것이 얼마나 비윤리적이고 또한 비인간적인 행위인지 깊이 숙고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배아 복제의 문제는 결국 줄기세포 생산과 활용의 분야와 매우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인간배아 복제 허용의 주장은 결국 배아 줄기세포 생산과 활용을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분야가 일부 생명과학계가 주장하는 것처럼 인간의 생명과 건강 증진에 획기적인 진전을 가져다 주리라는 기대를 갖게 하지만 우리가 이미 언급한 심각한 윤리 문제를 고려한다면 인간배아 복제는 결코 허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생명과학계가 주장하는 것처럼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가 인류 생활의 질을 획기적으로 상향시킬 것이라고 한다면 그들의 주장처럼 반드시 인간배아 줄기세포만이 만능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 안전성이나 활용 범위 그리고 윤리적 정당성의 문제에 더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성체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가 배아 줄기세포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생명과학 분야에 대한 우리 가톨릭 교회의 관심은 지대합니다. 왜냐하면 생명과학의 올바른 발전이 인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도 있으나, 자칫 인간의 삶을 위협하고 파멸로 이끌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심과 함께 최근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생명윤리법안과 관련하여 일부 생명과학계와 정부 일각에서 추진하고자 하는 체세포 핵이식에 의한 인간배아 복제 허용 문제에 대해 가톨릭 교회는 심각한 우려를 표할 뿐 아니라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밝힙니다. 앞으로 제정될 생명윤리 관련법이 인간배아 복제를 허용함으로써 이 땅에 인간 생명을 위협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거스르게 되는 반생명적 악법이 태어나지 않기를 기대합니다.

 

"선을 이루기 위해 악을 행할 수는 없습니다" (로마 3,8).

 

2002년 7월 22일

안명옥 주교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위원장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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