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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생명 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은 반드시 개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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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6-02-05 ㅣ No.501

‘생명 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은 반드시 개정되어야 한다

 

 

1. 들어가는 말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은 참으로 눈부시고 놀랍다. 몇 년 전에는 생식세포의 복제를 통해서 인간복제가 가능하다고 보도되었는데 이제는 생식세포와는 전혀 상관없이 체세포 복제를 통해서도 무성생식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인체에 장기를 이식할 때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제거한 이른바 ‘녹아웃(knock out) 돼지’를 복제하는 데 성공했다는 기사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곧 사람 몸에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원인 유전자를 제거해 거부 반응 없이 사람에게 장기를 이식할 수 있는 복제 돼지가 처음 태어난 것이다.

 

이러한 놀라운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은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생명공학 육성이라는 정부의 방침 아래 의학계는 물론 기업들의 막강한 후원과 협력으로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작년 2004년 2월 12일자 국내 주요 일간지 일면에 “장기(臟器) 복제 길 한국인이 열었다.”라는 기사가 큼직하게 보도되었다. 국내 과학자들의 힘으로 세계 최초로 인간의 체세포와 난자만으로 인간배아 줄기세포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동안은 난치병을 위한 줄기세포를 배양할 때 동물의 난자에 체세포의 핵을 이식하는 방법이 사용되어 왔는데 인간의 세포와 난자를 이용해서는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필자가 말하는 ‘놀라운 일’이란 생명공학의 새로운 획기적인 개발 또는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놀라운 일’이란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질렀다는 뜻이다. 실로 경악을 금치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또한 최근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보고 듣게 되는 이야기들 중에 참으로 기가 막힌 것이 있다. 한때 윤리적 논란 때문에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중단했던 몇몇 생명과학자들이 연구를 재개했다는 기사다. 더 이상 난치병, 불치병 환자들을 두고 볼 수 없어서 인간배아복제를 이용한 줄기세포 연구를 다시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한 생명과학자는 “줄기세포 연구, 나를 막지 말라.”(「한겨레 21」 2004년 11월 18일자)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쓰기도 했다. 심지어 정부에서는 2005년에 그 생명과학자에게 자그마치 2백65억 원을 지원한다고 한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종교계가 윤리적 문제를 들고 일어나 난치병, 불치병 치료제 연구에 커다란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언제 종교계가 난치병, 불치병 환자들을 위한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무조건 반대했다는 말인가? 마치 종교가 난치병, 불치병 환자들을 외면하고 아집에 빠져 무조건 반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참으로 어이가 없다.

 

 

2. ‘생명 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지난 4년간 정부 관련 부처는 물론 생명공학자들, 시민 단체, 종교계 등이 오랜 진통을 겪은 끝에 ‘생명 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2003년 12월 29일). 이 법안은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고자 여러 차례의 공청회를 거치고 오랜 논의 끝에 나온 우리나라 최초의 생명 윤리 법안으로서 2005년 1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듯하게 민주적인 절차와 다양한 의견 수렴으로 올바른 법률안이 만들어진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이 법률안이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수호할 법안인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과정이야 어떻든 간에 이 법안이 과연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밑바탕으로 하는 참된 법안인가 하는 것이다. 필자가 볼 때는 많은 부분에서 그렇지 않다. 참으로 경악을 금치 못할 독소 조항들이 너무나 많다. 인간 생명을 수호하기는커녕 오히려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근본적으로 훼손하거나 아예 실험이나 조작의 도구로 사용될 위험성이 너무나 많다.

 

언뜻 보기에는 ‘생명 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의 내용들이 인간 삶의 질을 한층 더 높여주는 것으로, 특히 불치병이나 난치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으로 선전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와 똑같은 인간 생명체인 배아를 복제해서 치료로 이용한다는 것은 결국 인간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조작하여 한 인간을 다른 인간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곧 근본적으로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이며 인간의 존엄성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잔인한 행위인 것이다.

 

인간복제란 핵을 제공하는 원본 인간과 같은 유전자를 가진 새로운 인간개체를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인간배아복제 또한 그와 다른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한마디로 인간배아복제란 곧 인간개체복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결국 같은 말이다. 인간복제라는 말과 배아복제라는 말이 사실 그 의미에서 전혀 차이가 나지 않지만 굳이 표현을 달리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인간복제보다는 배아복제라는 표현이 사람들에게 좀 더 부드럽게 들릴 수 있고, 그래서 인간의 기본적인 양심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려서 결국 인간배아를 생명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도 때문일 것이다. 배아를 인간 생명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부 생명공학자들의 의견은 결국 인간 생명을 발달 단계에 따라서 판단하게 된다. 그래서 배아가 태아보다, 태아는 어린이보다, 어린이는 성인보다 가치가 없는 존재로 인정하게 되는 크나큰 모순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또한 배아복제 과정을 통해서 수많은 인간배아들이 손상받게 될 것이며, 상당 부분의 배아들은 쓰레기처럼 폐기처분될 것이 뻔하다. 결국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작은 인간 생명체들이 현미경 아래서 갖은 폭력을 당하며 무참히 살해되는 셈이다. 생명윤리학자들이 21세기를 현미경적 폭력의 시대라고 이미 예고한 바와 같이 항거할 수 없는 나약하고 연약한 인간배아는 거대한 폭력 앞에 노출되어 희생될 수밖에 없다.

 

필자는 이러한 법률안이 통과된 데 대해 경악과 허탈감을 느끼면서 이 법률안이 가지고 있는 지극히 잘못된 점들을 몇 가지 분명히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생명 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제1조에서 밝히고 있는 목적이 불분명하다. 이 법률은 제1조에서 입법 목적으로 “국민의 건강과 삶의 질 향상” 그리고 동시에 “생명 윤리 및 안전을 확보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고 너무 광범위하게 진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률은 무엇보다도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생명 윤리 및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그 분명한 목적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률 전반에 걸친 재검토가 필요하다.

 

둘째,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제7조)의 구성이 잘못되었다. 아울러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운영 규정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제7조에 따르면 구성원 중 3분의 1이 정부 부처의 장관(처장)으로 위촉 또는 임명된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이 위원회의 모든 운영권을 정부의 의도대로 주도하겠다는 뜻으로밖에는 달리 해석될 수 없다.

 

무엇보다 정부 관료들은 이 위원회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 또한 심의 대상인 연구 및 시술에 관여하고 있는 사람들도 심의위원의 자격을 가질 수 없다는 규정도 반드시 필요하다. 유럽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에서는 정부 관료들은 물론 생명공학산업계 해당자들은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셋째, 인간배아 등의 생성과 연구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제11조 이하의 내용은 당연히 삭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배아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 생명으로 존중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유수한 논문이 게재되는 저명한 자연과학 잡지인 Science지(2002년 7월 4일자)에서 헬렌 피어슨(Helen Pierson)은 난자와 정자가 수정된 지 24시간 이내에, 지금까지는 원시선이 나타난 이후에 결정되는 것으로 간주된 현상이 결정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곧 수정된 배아의 어느 부분에서 머리와 다리가 생기며, 또한 어느 면이 등이 되고 배가 될 것인지는 정자와 난자가 결합한 지 몇 분 또는 몇 시간 안에 결정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따라서 원시선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수정된 지 14일 이후에야 인간배아가 생명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할 것이라는 종래의 주장은 비윤리적일 뿐만 아니라 비과학적인 것이다.

 

인간 생명의 시작점이 언제인지는 지금까지 인간배아복제에 대한 조작의 근거를 마련하는 데 좋은 구실이 되어왔다. 곧 원시선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수정 14일 이전의 수정란은 인간 생명이 아니라 단지 세포이기 때문에 다른 실험용 세포와 마찬가지로 생산, 활용, 조작, 매매, 폐기가 가능하다는 견해가 생명공학자들 간에 널리 퍼져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그러한 ‘과학적’ 견해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왔던 것도 사실이다.

 

과연 그럴까? 인간배아는 단지 세포일까?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제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혹 배아가 성장하면 인간이 안 될 수도 있는가? 곰이 된다든가 원숭이가 된다든가, 아니면 소나 돼지나 개가 되는 것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인간배아가 성장하면 오로지 인간밖에는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배아가 세포라서 마음대로 실험하고 조작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일부 생명공학자들, 그 자신은 배아에서부터 성장한 것이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면 그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단 말인가? 혹 화성이나 목성에서 왔는가. 그들은 정말 외계인일까?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넷째, 유전자 검사기관(제24조)과 유전자 검사기관에서 실시하는 유전자 검사에 관한 내용(제30조) 또한 우려되는 바가 크다. 왜냐하면 제24조에서는 유전자 검사기관의 설립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그저 신고하는 것으로 허용하고 있다. 이는 상업화를 비롯한 인권 침해의 위험성이 매우 높을 뿐만 아니라 유전자 검사 또한 그 부작용(친자 확인 유전자 검사에 따른 가정불화, 가정파탄 등)이 매우 심각하다.

 

또한 제32조의 유전자 은행은 국가 차원에서 공공성을 가지고 관리하여야 한다. 유전자 은행이 결코 민간 차원에서 이루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자칫 정보의 남용과 인권 침해, 상업화 등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나오는 말

 

전체적으로 볼 때 이러한 법률이 시행되고 있는 지금, 무고한 생명(수정란, 배아)이 희생될 것은 뻔한 일이다. 법률이 입안될 때 공청회를 거쳐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하고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바른 절차이기는 하다. 그러나 생명의 존엄성과 같은 문제는 다수결 원칙으로 결정될 사항이 결코 아니다. 만약 이 문제가 다수결로 그리고 대중의 선호도에 따라 결정될 수 있는 것이라면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인간복제를 선호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더 많아질 경우 인간복제를 합법적으로 허용해야 하는 불행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양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생명 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개정을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한 가지 더 지적하고 싶은 것은 생명공학의 ‘상업적 이윤 추구’이다. 곧 인간을 위한 봉사가 목적인 과학과 기술이 상업주의에 물들어 이윤 추구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생명공학의 상업적 이윤 추구는 가치전도의 현상을 낳고 있다. 곧 목적이어야 할 인간이 수단이 되고 수단이어야 할 이윤이 궁극적인 목적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배아복제에 관한 기술을 특허 내어 상업적 이익을 독점적으로 추구하려고 한다면 이것은 패륜적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일부 생명과학자들과 언론들 나아가 정부의 과학기술부에서는 마치도 인간배아가 생명이든 아니든 아무런 문제를 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단지 난치병, 불치병 치료제 개발에만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방법과 수단이야 어떻든 간에 목적(치료제 개발)만 달성하면 된다는 식이다. 도대체 윤리성이 있는지, 도덕성이 있는지 묻고 싶다. 상업적 이윤이 전제된다면, 경제적 부가가치만 있다면 어떤 일이든 해도 된다는 것인가? 국가적 이익이 우선이라면, 인간 생명인 인간배아를 죽여서라도 치료제 개발만 할 수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인가? 인간배아를 실험하고 복제하고자 하는 일부 생명과학자들과 과학기술부 책임자들에게 꼭 묻고 싶다.

 

그리고 이미 저지른 일들, 곧 인간배아를 무수히 실험하고, 조작하고, 폐기했던 끔찍한 일들에 대해 책임지고 양심선언을 해주기 바란다. 앞으로는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을 하지 않기를 진정으로 부탁하고 싶다.

 

[사목, 2005년 2월호, 이창영(주교회의 사무국장,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위원,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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