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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좌담 - 그리스도의 부활과 생명 문화의 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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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6-02-05 ㅣ No.500

[좌담] 그리스도의 부활과 생명 문화의 진작

 

 

일   시 : 2005년 1월 19일 수요일 오전 11시 

장   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소회의실 

참석자 : 김일수(고려대학교 법학과 교수 · 기독교 생명윤리단체협의회 공동대표)

참석자 : 이창영(주교회의 사무국장 ·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위원 · 신부) 

사회자 : 엄재중(본지 기자)

사   진 : 김민수(경향잡지 기자)

 

 

지난 연말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펴낸 「2004년 인권 백서」의 생명권에 대한 이해는 상당히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백서는 생명권에 대한 종교계의 입장을 윤리주의라 칭하고, 이와 정반대편에 있는 과학주의와 같은 정도의 무모함을 갖고 있다고 하면서, 결과적으로는 양자의 입장을 절충한 개념인 규율주의나 공리주의가 합리적이라고 추천하는 것 같은 인상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결국, 종교계의 관점을 일면 긍정하는 듯하면서도 현실적 차원에서는 수용하기 어렵거나 그것이 인권을 더욱 억압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일수 : 국가인권위의 공식 문건에서 생명권에 대한 상이한 입장들을 ‘…주의’로 분류하거나 명명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의’라는 것은 어떤 사물이나 사건을 일정한 관점에서 보려는 하나의 색깔이라고 볼 수 있는데, 사실 생명이라는 것은 어느 특정한 색이 아닌 본원적인 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시대적 흐름과 함께 생명권에 대해 일정한 시각의 변화가 있어왔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습니다. 백 년 전만 해도 모든 윤리와 법질서 가운데서 생명을 신성하다고 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생명공학이 국가경쟁력 제고의 첨단에 서게 되고, 이것을 통해서 인류가 숙명으로 생각해 온 불행까지도 치유할 수 있다는 현실 속에서 생명의 신성성보다는 상대적 가치와 같은 세속화의 물결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윤리주의라고 칭하는 종교계 내부에서조차도 식자들에 따라서 입장 차가 있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생명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어떤 이데올로기에 따른 것이 아니라 더욱 근본적인 가치에 대한 결단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 혹자들이 생각하듯이 윤리주의와 과학주의의 절충으로서 규율주의나 공리주의를 내세우는 것을 제3의 절충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과학주의처럼 무모한 또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용이라는 것도 자기가 갖고 있는 일정한 관점에서 모자람과 부족함을 고백하면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무엇을 얻을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지, 양자의 중간 지점에서 적당히 타협하는 것을 중용이라고 하는 것은 천박한 시각입니다. 

 

생명 문제에 대해서는 확실히 납득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기 전까지는 실험하거나 무모하게 대들지 말고 생명의 가치 편에서 사고하는 것이 원칙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규율주의나 공리주의와는 다른 것으로서, 한 생명을 위해 또 다른 생명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관점입니다. 이것을 보수적이라고 한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무슨 주의라고 부르면서 선택적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창영 : 교수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인류의 역사 이래 인류에게 가장 큰 문제는 생명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동서를 막론하고 생명의 신성함, 곧 천명이라는 것이 현대에 와서 반생명적 사고, 또 그런 문화 현상 때문에 많이 변화되었습니다. 생명의 문제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합니다. 생명의 문제는 절충이나 합의의 영역이 아니라 진리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무슨 주의로 생명 문제를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담을 수 없는 그릇으로 자꾸 담으려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형제 폐지 운동은 현재 ‘감형 없는 종신제’로 방향을 잡은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교도소 수용 인원의 증가와 그에 따른 국가 비용의 증가, 과도한 수용 인원에 따른 교화의 부실, 종신형 죄수의 자포자기, 재판에서 종신형의 양산 가능성 등을 들어 반대 의견을 표명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창영 : 먼저 사회자의 말씀 가운데 한 가지 수정할 사항이 있는데 현재 175명의 국회의원들이 제출한 관련 법안에는 일단 “감형 없는”이라는 표현을 빼고 그냥 종신형으로 했습니다. 일단 종신형이 받아들여진 뒤에 대안 부분을 논의하기로 한 것입니다. 

 

김일수 : 사형제에 관해서는 누구도 절대적으로 사형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사형제 폐지에 반대하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시기상조론입니다. 이런 단계에서는 우리의 시각을 세계적 차원으로 넓혀볼 필요가 있습니다. 국제사면위원회가 대변하고 있듯이 사형제와 관련한 문명의 시각은 사형 없는 형법입니다. 유엔도 현재 이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소 유토피아적인 꿈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기상조론이라는 것은 아직 어둠이 내리지 않았으니, 어둠이 오기 전까지는 부엉이를 날려 보낼 수 없다는 시각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현 가능한 유토피아적 사고입니다. 에른스트 블로흐가 말했듯이 사형제 폐지는 구체적인 유토피아(concrete utopia)입니다. 분명히 우리 사회에도 흉악한 범죄가 이어지고 있지만, 사형제를 없앤 사회는 모두 그러한 현실 속에서 문명을 위해서, 생명을 위해서, 국가 형벌권의 도덕적 우월성을 위해서 한 단계 모험을 감행한 것입니다. 비교문화적으로 평가해 볼 때 그런 나라들이 오히려 일찍이 형사정책이 안정되었습니다. 네덜란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 독일 등이 그러합니다. 

 

우리 사회 역시 시기상조라는 말을 10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읊조리지 말고 이젠 창조적인 모험을 해볼 때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6대 국회에서도 다수의 국회의원들이 법안 상정을 했지만, 법사위에서 통과되지 않아 무산되었습니다. 이번 17대 국회에서도 지난해 175명의 국회의원들이 이 사형폐지 법안을 제출해서 사형 없이 종신형이 있는 형법으로 우리 법문화가 바뀔 직전에 놓여있습니다. 이에 대해 위의 반대 의견에서도 나타나듯이 교도소의 과부하가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은 단기적이고 오히려 국가가 자기 위험성 속에서 생명 가치의 존엄성을 고백하고 선도하는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생명 가치를 존중하는 생명질서를 고양시키고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구체적 유토피아를 향한 창조적 도약이며 모험입니다. 

 

 

개신교가 추진하고 있는 민영교도소는 현재 어떤 단계에 와있습니까? 

 

김일수 :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2007년에 개소할 예정입니다. 경기도 여주에 6만여 평을 확보해서 현재 설계 작업을 마친 상황입니다. 다만 여주에 이미 국가교도소가 들어와 있는데 여기에 민영교도소까지 들어서는 것에 대한 민원이 있어서 군 의회와 군수 등 민영교도소 설립에 긍정적이던 분들이 소극적인 입장으로 돌아섰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여주 군민의 인권의식과 문화의식을 제고하고, 여주를 국제적 명성을 갖는 도시로 만들 수 있으며, 일자리 창출과 같은 현실적 이익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득하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시행할 프로그램, 이른바 화해를 위한 교정 프로그램에 관해 이미 수년 전부터 연구해 왔습니다. 범죄인들이 자기를 미워하고, 사회와 피해자를 미워하고, 우리를 선하게 지으신 하느님을 외면하는 삼중의 불화 가운데서 이런 범죄를 저질렀다고 보고, 교정 프로그램 안에서는 하느님, 피해자, 자기 자신과 화해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입니다. 내면적인 변화를 수년간 연구하고, 외국의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만든 이 교정 프로그램을 금년 중에는 국가교도소 1실을 지원받아서 적용할 계획입니다. 교도소의 노역 대신 이 프로그램을 실시함으로써 내적 변화가 가능한지 검증하는 작업을 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시행착오를 교정해서 개소 때에는 더욱 충실한 프로그램을 만들 생각입니다. 가능하면 여러 종교기관에서도 이 작업에 동참했으면 합니다. 

 

이창영 : 생명공학도 문제지만 사형제를 보면 우리나라가 과연 인권국가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신임 위원장이 올해 새로운 과제로 사형제 문제와 생명윤리법을 인권 측면에서 주요 주제로 검토한다고 한 바 있습니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지금 개신교에서 추진하고 있는 민영교도소와 그 프로그램은 이미 외국에서 검증된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우리 실정에 맞는지 검토하는 단계를 거쳐야 하고 일부 시행착오는 있겠지만 성공하리라 봅니다. 재소자들을 정화를 통한 새 삶으로 이끄는 교정교육 프로그램에 종교계가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합니다. 결국 이것은 특정 종교나 교단 차원의 일이 아닌 것입니다. 

 

누누이 말하지만, 예전에는 사형제 문제에서 사형수와 사형수 가족에게만 초점이 맞추어졌지만 이제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보상 문제가 큰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특히 국가의 정책적 차원에서도 배려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피해자 가족의 붕괴나 해체와 같은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 특히 종교계에서도 이와 관련한 대안 마련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서 사형제의 부당성을 더욱 알리고 범죄의 피해자를 우리 사회가 적극적으로 끌어안을 수 있다고 봅니다. 

 

김일수 : 신부님께서 좋은 지적을 하셨는데, 1987년에 헌법이 개정될 때 피해자의 권리가 여기에 명시되었습니다. 이것은 헌법사적으로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제야 피해자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이 생기고, 법원과 검찰에서도 피해자 보호에 많은 신경을 쓰는 단계에 와있습니다. 현재 민영교도소 작업에서도 피해자와 가해자를 연결하고, 두 가족의 만남을 주선하여 화목케 하는 것도 이 관점에서 보면 진일보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창영 : 과연 가해자를 죽임으로써 피해자와 그 가족의 권리가 회복되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다른 방향에서, 예를 들면 피해자들의 정신적 충격 등을 해소시켜 주기 위한 국가 정책이나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방향에서 논의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배아복제 문제와 관련해서 정부에서는 이것을 일종의 산업적 측면이나 경제적 가치로 평가하여 지원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매스미디어에서는 이것에 난치병 치료나 민족주의 정서를 동원해서 미화하고 있습니다. 배아복제를 실천적으로 규제하기 위한 법적 대응 이외에 이런 사회문화적 분위기나 여론에 대한 대응도 굉장히 중요할 것 같은데 어떤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겠습니까? 

 

김일수 : 지금 황우석 교수로서는 개인적으로 절정의 기쁨을 맛보는 시기일 것입니다. 평등권에 대한 시비를 불러일으켜도 할 말 없을 정도로 현재 국가는 한 개인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시기에 황 교수에 대한 비판은 많은 반발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배아복제 문제, 인간의 생명권을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하여 문제를 오도하는 미디어나 정책 입안자들, 그리고 연구자에게 경고 사인을 보내야 합니다. 배아줄기세포와 같은 만능세포를 통해서 인간의 불치병과 난치병을 치유할 수 있지만 그 방법이 문제인 것입니다. 생명공학을 통해 갈 수 있는 길 가운데 어떤 길은 생명윤리와 근본적으로 충돌하는 길이 있고, 어떤 길은 더디 가도 윤리에 부합하는 길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에 있는 두 명의 교수를 통해서 이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한 교수는 배아복제 연구로 스타덤에 올라있고, 윤리에 부합하는 성체줄기세포를 연구하는 또 다른 교수는 그늘에 가려서 연구비조차 얻어내기 어려운 곤경에 놓여있습니다. 바로 이것을 문제 삼아야 합니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만능세포인 배아줄기세포를 활용하더라도 불치병을 치유하려면 10년이 걸릴지 그 이상이 걸릴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일반 국민들에게는 마치 지금 당장 실현 가능한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산업자원부나 과학기술부의 정부 정책 입안자들도 여기에 환상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성체줄기세포의 의료적 가능성에 대한 연구 실적이 활발하게 발표되고 있습니다. 이 연구를 하는 사람들에게도 황우석 교수 정도의 지원을 해준다면, 누가 먼저 성공할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선진국에서 이와 관련된 논의를 하면서 입법적 무모함을 선택하지 않고 배아를 생명권의 주체로 인식하기도 한 것은 더디 가도 생명의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이런 문화적 배경 없이 국가경쟁력 제고, 그리고 생명공학이 일종의 황금알을 낳는다는 환상 속에서 무모하게 추진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 상황에서 누군가 반대하지 않는다면 비탈길 논리처럼, 그리고 댐 논리처럼 수습할 수 없게 됩니다. 사실 배아줄기세포를 얻기 위한 배아복제와 잉여수정란 폐기 문제는 생명 가치에 대하여 우리 사회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가톨릭과 개신교에서 가르치고 있듯이 인간 생명은 수정된 순간부터 목적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지 무엇을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인간 생명은 하느님의 섭리로 있는 것이기에 인간들이 거기에 함부로, 그리고 인위적으로 개입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죽어가는 노인과 행려병자들의 장기 등도 선한 목적을 위해서 함부로 폐기처분될 수 있다는 논리도 가능해질 것입니다. 

 

이창영 : 교수님께서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생명공학을 일종의 산업으로, 곧 생명산업으로 인식하고 경제적 부가가치나 국익 우선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수님께서도 지적하셨듯이 생명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배아복제 연구의 미래적 가능성은 논란이 분분한 실정입니다. 현재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임상실험조차도 안 된 상태입니다. 이에 비해 성체줄기세포 연구는 임상실험을 거치면서 그 실제적 효과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임상실험을 거치려면 7-10년은 걸린다고 합니다. 실험이 성공할지도 모르고, 성공하더라도 넘어야 할 장벽이 아주 많습니다. 실질적으로 환자에게 적용하려면 앞으로 20년은 지나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20년 뒤에 인간생명이 수정란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확증된다면, 20년 동안 국가가 주도해서 초기 인간생명인 배아를 살해한 것을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이 물음에 대해서 정부나 황우석 박사와 같은 일부 생명공학자들이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좋은 자동차라도 브레이크가 없으면 사고가 납니다. 윤리는 우리 사회에서 바로 이런 역할을 합니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인 과학주의는 불행한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수정 뒤에는 어머니의 것도, 그리고 아버지의 것도 아닌 46개의 염색체, 그 고유한 인격체가 불치병과 난치병의 치료나 경제적 가치 때문에 살해되고 실험되는 것은 우리 시대의 비극입니다. 

 

김일수 : 20년 뒤에 지금과 다른 과학적 결과가 나올 때 국가가 어찌할 것인가라는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지금의 배아연구는 일종의 우상입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그모스 신처럼 어린애를 불태워 먹는 우상, 생명을 먹는 우상입니다. 당시 그 이방의 우상들이, 가나안의 우상들이 아이들을 제물로 바치는 것에는 나름대로 어떤 신성한 의미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를 싫어하셨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수정란 하나가 하느님께서 점지해 주신, 바꿀 수 없는 하느님의 목적 의지가 깃들인 고유한 생명체라고 한다면 어떤 목적을 위해서 처분 대상으로 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실험 행위는 그모스 신의 우상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창영 : 과거에 우리 정부는 국가 정책으로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을 폈습니다. 인구가 많으면 경제적으로 파탄이 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출산장려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배아복제 연구에서도 분명히 이런 일이 되풀이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더 큰 재앙을 몰고 올 것입니다. 

 

김일수 : 여담이지만 지난 시절에 산아제한을 하면 안 된다고 제가 얘기할 때 당시 중학교 다니던 저희 아이들도 학교에서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아빠를 시대착오적인 사람으로 보더군요.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것은 당시에 이 산아제한 정책의 선두에 섰던 보건복지부 산하 가족계획협회가 최근에는 저와 함께 출산장려 홍보활동을 했습니다. 

 

개신교에서는 현재 기독교 생명윤리단체협의회를 결성해서 신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사회적인 이슈와 공론의 장을 마련하려고 금년에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대한 헌법소원을 내려고 합니다. 결과는 낙관도 비관도 할 수 없지만, 이 법률에 반대한 사람들의 목소리와 이 시대에 헌법재판소의 법적 판단은 어떠했는지를 기록으로 남기는 데 노력할 것입니다. 

 

생명윤리에 대해서 개신교가 너무 소극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저도 장로이지만 한 번도 저희 교회에서 가정의 달인 5월에도 생명에 관한 설교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또 낙태가 죄라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아마 낙태를 한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지금은 우리가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합니다. 잘못되었기 때문에 새롭게 각오하고 출발해야 합니다. 

 

이창영 : 생명31운동, 생명윤리연구회, 한마음한몸운동 등은 가톨릭의 주요 한 생명운동 단체입니다. 지금까지는 원론적인 입장에 대해서 많이 강조했지만 운동의 결과가 그리 가시적이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최근에 낙태 시술을 하지 않는 의사들과 면담도 했지만, 낙태 시술을 하지 않아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병원들이 문을 닫는 것에 대해 어떤 도움도 주지 못했습니다. 대안이 없었습니다. 원론적인 단계에서는 생명에 대한 교리교육이 없고는 우리의 문화가 생명의 문화로 가기 힘들다고 봅니다. 유치원에서부터 초·중·고와 대학에 이르기까지 생명문제에 대한 교육이 절실합니다. 공교육에서 이것을 하도록 의무화해야 합니다.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를 보면 당초 선거의 핵심 쟁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라크 전쟁이나 경제 문제보다도 오히려 이른바 “도덕적 가치”라고 불리는 생명 문제 사안이 선거 결과에 크게 영향을 준 것으로 보도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개신교와 가톨릭 신자들이 거의 동일한 투표 성향을 보여준 바 있는데, 미국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대선이나 총선에서 이와 같은 움직임을 거의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국의 개신교와 천주교도 중요한 정치적 국면에서 이런 문제들을 정치적 의제로 만들어서 신자들에게 구체적인 선택 기준을 제시할 필요는 없을까요? 

 

김일수 : 개신교에도 최근 교회의 정치세력화 논의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정당 설립과 같은 적극적인 흐름도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정당 정치에 끼어든다고 해서 큰 유익이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유럽에도 기독교 정당이 있지만 거의 다 기독교적 색채를 벗어버렸습니다. 한국과 같은 사회에서 이에 대한 유익이 있을지에 대해선 확신이 안 섭니다. 그럼에도 구체적인 국면에서 정책 대결을 유도하면서 첨예한 생명문제에 대해서는 각 정당과 후보자의 입장을 수집하고 조사 연구해서 전국의 신자들이 후보 선택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도록 자료를 제시할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그런 네트워킹이 필요합니다. 

 

다만 한계가 있다면, 우리 정당들이 주로 지역 연고를 바탕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정책 대결이 제대로 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지난 대선에서 후보자들을 초청해서 민영교도소 문제를 갖고 토론을 했는데 모두 거의 같은 답변을 합니다. 또 기독교 신앙인들도 종교적 가치보다는 지역 연고에 따라서 투표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정책을 통한 투표를 하기엔 참 취약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이것을 넘어서 정책을 갖고 투표를 하는 작업에 교회가 함께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교회의 각급 단체들이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하고, 이를 통해 한국 정치의 전근대성을 뛰어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한국의 근대화에 기독교가 많은 기여를 했는데, 이제는 정치에도 생명 문제를 고리로 해서 근대를 정착시키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지역 연고주의나 혈연, 학연과 같은 전근대성에서 벗어나서 정책과 가치를 중심으로 투표하는 정치의 근대화와 선진화에 기여해야 합니다.

 

이창영 : 지난 대선에 『사목』에서도 각 정당의 후보자들에게 생명 문제 등을 비롯한 몇 가지 질의를 하고 그 답변을 받아서 게재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후보가 어떤 정책을 갖고 있는지 신자들에 알려주려고 노력한 것입니다. 종교적인 관점, 곧 복음적이고 생명 중시적인 관점에서 이런 노력들이 더 많이 이루어지면 좋을 것입니다. 정치적인 문제가 나오면 신자들이 늘 갈등을 겪습니다. 또 이에 대해 문의하는 신자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직에 나서는 후보자의 사고방식과 정책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종교인들이 해야 할 몫이 있고, 그만한 큰 가치가 있습니다. 

 

 

외신을 보니 미국에서는 현재 부시 2기 정권의 출범과 함께 낙태 금지와 관련한 찬반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고 합니다.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가시적인 것은 없는 상태라고 볼 수 있는데, 오늘날 한국에서 낙태 반대 운동은 어떤 상태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까? 

 

김일수 : 모자보건법은 신부님께서도 언급하셨듯이 국가가 개발독재 시대에 인구조절을 통해서 GNP와 GDP를 올리려는 잘못된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며, 윤리적인 검증을 충분히 거친 국론을 통해 시행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장기화되다 보니 산모나 가정의 편의를 위해서 인간 생명을 희생시키는, 원치 않는 임신 같은 경우에 한 가정의 짐으로 만드니 차라리 낙태시키는 것이 낫다는 아주 위험스런 사고방식을 사람들에게 심어준 법입니다. 국가시책 속에서 우리의 잘못된 의식과 교육으로 그냥 당연시되어 왔는데 여기에 대해서 우리의 잠자는 의식을 일깨우고 새로운 생명문화를 일궈갈 때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선진국에서도 이에 대한 논쟁이 선거 때마다 벌어지고 있습니다. 낙태가 어떤 상황에서 불가피하다고 하더라도 몇 겹의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여기에 생명윤리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들을 접목해야 합니다. 개신교와 가톨릭이 국회 앞에서 데모도 하고 청원서도 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제 낙태 문제가 한 정치인을 선택하는 데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되는 그런 정치 문화가 이룩되었으면 합니다. 

이창영 모자보건법 자체는 좋은 법입니다. 다만 그 안에 일부 독소조항이 문제입니다. 지극히 제한적인 개정안이 나와야 합니다. 실정법을 어겼을 때 엄격한 처벌 규정이 삽입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실제로 불법 행위를 해도 그냥 다 넘어갑니다. 여성의 선택권·행복추구권과 생명권이 충돌할 때 후자를 지지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에 대해 미디어를 통한 토론의 장이 많아져야 하고, 이 장을 생명의 우월성을 강조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피임과 낙태의 인과성도 문제입니다. 현재 응급 피임약의 하나인 노레보정의 부작용 사례가 계속해서 보고되고 있습니다. 피임과 낙태는 동일선상에서 논의될 수는 없지만 인과관계로서는 작용한다고 봐야 합니다. 예를 들면 피임약의 실패는 곧이어 낙태로 이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톨릭 교회는 피임마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배아복제 연구가 생명 존엄성의 차원에서 인정될 수 없다면 피임 낙태 등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바로 이런 부분이 국가와 종교의 정책을 통해서 얘기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현재 준비되고 있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대한 헌법소원에서의 핵심 쟁점은 무엇이고, 이 문제에 대해 개신교와 천주교가 어떻게 연대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김일수 : 모자보건법과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헌법소원의 주관심사입니다. 현재 상태에서 헌법소원으로 넘어가려면 세 가지 헌법재판소 법의 방안들이 있습니다. 먼저, 모자보건법은 산모가 낙태를 원하지 않는데 가족이나 주위에서 낙태를 강요하는 경우에, 그것이 현재 모자보건법에서 보면 낙태를 할 수 있는 조건임에도 산모 스스로가 낙태를 원치 않을 때 헌법소원을 할 수 있는 주체가 되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바로 이런 경우에 계신 분들을 주체로 해서 헌법소원을 하려고 합니다. 결과에 대해서는 속단할 수 없지만, 헌법재판소가 우리의 아우성에 어떻게 응답하는지를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금년 안에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얼마 전에 환경단체에서 시도한 소송에서 도롱뇽을 소송 주체로 하는 것이 인정되지 않았듯이, 과연 우리의 헌법소원에서 수정란이 소송 주체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 쟁점일 것입니다. 아마 우리 헌법재판소법이 민사소송을 준용하기 때문에 법적인 상식으로 보면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황우석 교수에 대한 지원정책이 구체화되고 잉여 수정란을 실험대상으로 하는 단계가 되면 불임수술을 받고 잉여 수정란을 갖고 있는 여성들이 이해관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여성들의 인권이 직접적으로 침해됐다고 볼 수 있는가 하는 점이 판단 대상이 되지만,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이 연계될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침해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분들을 주체로 해서 헌법소원을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황우석 교수에 대해 잉여 배아를 사용해도 좋다는 생명윤리위원회의 결정이 내려졌을 때 행정소송을 하는 것입니다. 그 행정소송에서 처분이 전제가 된 이 법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사를 해달라는 신청을 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지면 재판부가 바로 소송을 중단하고 헌법소원 법률심사를 헌법재판소에 제기할 수 있습니다. 단체의 신청이 기각되면 우리가 직접 헌법소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가능성도 금년에 열려있습니다. 

 

개신교 단체인 기독교 생명윤리단체협의회도 이와 관련해서 한 달에 두 번 정도 포럼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외국의 사례들을 검토하면서 이해관계인들을 찾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이 문제를 이슈화하고 법적으로 쟁점화하는 작업을 병행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점진적으로 가톨릭과 함께한다면 더 큰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창영 : 우선 개신교와 공동 세미나를 하려고 합니다. 이 문제를 사회적으로 많이 알리자는 취지입니다. 일회적으로 끝나지 않고 어느 정도 지속적으로 할 계획도 있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법 조항에 대한 것은 아니지만, 여성의 난소에서 난자를 채취하는 문제가 인격의 모독은 아닌가, 인격의 상업화는 아닌가 하는 것도 문제제기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어서,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구성에 대한 논의도 필요할 것입니다. 지금 정부에서는 생명공학자와 정부 관료들까지 위원회에 참여시키려고 하는데, 이렇게 정부 주도로 이루어진다면 이 위원회가 어떻게 브레이크 구실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단지 배아복제 연구를 가능하게 하는 구성일 뿐입니다. 외국의 경우에도 생명공학자는 이런 성격의 위원회에는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일수 : 배아의 생명보호에 대해서 선진국에서도 생명 가치를 존중하는 정책에서부터 국가경쟁력을 제고하는 안까지 아주 다양합니다. 우리는 생명윤리법이 배아의 생명을 보호하는, 윤리적으로 좀 더 철저해 보이는 입법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데 방향을 맞추고 있습니다. 차선책으로는 지금보다는 더 생명윤리에 충실한 검증과 통제장치를 갖는, 생명윤리와 갈등이 없는 정책으로 나갈 수 있도록 법안 손질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 나라의 배아복제 연구 법안이 번역되어 있고, 개신교와 가톨릭이 모두 입법청원도 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현재의 헌법재판소법은 문제가 많습니다. 외국 같으면 법률 자체가 악법이면 국민이라면 누구나 위헌 소송을 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도롱뇽 소송을 봐도 그렇습니다. 이것은 변화된 상황에 법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해관계인도 모집하고 행정소송도 하는 등 돌아서 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는 헌법재판소법을 바꾸는 투쟁도 해야 합니다. 헌법 이념에 반하는 법률을 바꾸는 운동도 해야 하고, 객관적인 인권질서를 높이는 투쟁도 해야 합니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법률가들이 주축이 되어 이런 운동을 해야 할 것입니다. 

 

[사목, 2005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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