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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왜 사형제도는 폐지되어야 하는가? - 사형 제도 폐지 운동의 전략과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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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3 ㅣ No.278

왜 사형 제도는 폐지되어야 하는가? - 사형 제도 폐지 운동의 전략과 전망

 

 

1. 서론

 

세계적 인권 단체인 앰네스티, 곧 국제 사면 위원회는 1989년을 '사형 폐지의 해'로 선정하고 활발한 캠페인을 벌인 바 있다. 앰네스티가 이처럼 1989년을 사형 폐지의 해로 정하고 전세계적 캠페인을 벌였던 의의는 자못 깊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1989년 당시 전세계 약 170개 국가 중 반이 넘는 90여 개 국가가 사형 제도를 존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류 사회가 진보를 믿는다면 사형은 지구상에서 궁극적으로 폐지되어야 하지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앰네스티는 이 캠페인을 벌여 한 해만이라도 사형의 집행을 연기해 보자는 프로그램을 추진했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해에 국제 연합은 이른바 사형 폐지 조약, 곧 "사형의 폐지를 목적으로 하는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제2 선택 의정서"를 채택하고 1990년에 발효하였다.

 

한편, 눈을 안으로 돌려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사형 제도는 아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고조선 시대에 벌써 '8조 법금'에 형벌로서 사형이 나타나고 있고 삼국 시대, 고려 시대, 조선 시대는 물론 일제 식민지 시대를 거쳐 해방 후 문민 정부에 이르기까지 사형은 가장 대표적이고 무거운 극형으로서 우리 사회에 굳게 자리잡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는 사형의 선고와 집행률도 놀랄 정도로 높다.

 

더 안타까운 것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우리는 사형이 집권 세력에 의하여 정치적으로 악용되어 온 사례를 무수히 목격해 왔으면서도, 사형의 존폐를 놓고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진지한 성찰과 반성을 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대학의 강단에서나 유명 인사의 옥중 수기 속에 간헐적으로 사형의 존폐가 거론되고 있었으나, 이 문제가 대학 강단을 벗어나 사회적 관심사로 등장한 일이 없거니와 폐지를 위한 조직적인 운동도 시도된 일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국제 연합과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의 움직임에 자극받아 뒤늦게나마 사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고 폐지를 위한 사회 운동이 시작된 바 있다.

 

1989년 5월 3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종교계, 법조계, 학계, 언론계 등 사회 각계 저명 인사 500여 명이 발기인이 되어 '사형 폐지 운동 협의회'를 발족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 사형 폐지 운동 협의회는 2001년 5월 30일 창립 12주년이 되는데 그동안 세미나, 토론회 그리고 사형수에 대한 교화 사업, 법률 구조 사업 및 사형 폐지를 위한 헌법 소원 등을 줄기차게 전개하여 사형 제도의 비인도성, 반인격성에 관하여 어느 정도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한편 2001년 1월 19일에는 천주교, 기독교, 불교 단체 등 종교인이 연합하여 '사형 제도 폐지를 위한 범종교 연합'을 결성하여 본격적인 사형 폐지를 목적으로 하는 시민 운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위와 같은 사형 폐지 운동을 염두에 두고 '사형은 왜 폐지되어야 하는가'를 다루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먼저 사형의 존폐론, 세계 각국의 존폐의 경향, 우리나라의 사형에 관한 법제와 실태를 살펴본 다음 우리나라의 실정에 가장 효과적인 사형 폐지의 방법론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2. 사형의 존폐론에 관한 고찰 

 

1) 사형의 존치론과 폐지론

 

1764년 이탈리아의 형법학자인 체자레 벡카리아가 그의 저서 [범죄와 형벌]에서 잔인한 형벌인 사형의 폐지를 주장한 이래 지금까지 세계의 형법학계는 사형의 존폐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을 전개해 왔다.

 

20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이 논쟁은 학문적 입장에서는 대체로 폐지론의 승리로 귀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존치론의 목소리는 아직도 높다.

 

이들에 따르면, 사형은 첫째 흉악 범죄를 예방하고 억제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장치라는 것이고, 둘째 이러한 흉악범에 대한 가장 확실하고 적절한 응보라는 것이며, 셋째 그것의 존속을 원하는 것이 대부분의 여론이며 정의 관념에 합치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사형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폐지되어야 한다.

 

첫째, 사형은 존치론자들이 고집하는 것처럼 범죄 예방이나 억제의 효과가 없다.

 

곧 사형에 위하력이 없음은 사형을 폐지한 국가에서 사형에 해당하는 흉악 범죄가 증가하지 않았다는 사실로 입증된다.

 

지난 20세기를 통하여 유럽 어느 나라에서도 사형을 폐지했기 때문에 살인 사건이 증가하였다는 기록은 없다. 미국은 사형이 없는 주가 12개 주와 1지구(1997년 현재)가 있지만 인구 1인당 살인율이 사형 존치 주인 38개 주와 그 연방보다 높지 않다.

 

사형에 위하력이나 범죄 억제력이 없다는 폐지론의 구체적 논거로는 첫째 살인범에는 정신 병자가 대단히 많고 사형으로써 위하한다(겁준다) 하여도 살인 행위를 저지할 반대 동기가 되지 않으며, 둘째 생명을 부정하는 자에 대하여서도 사형은 위하력이 없고, 셋째 격정범의 경우에서도 그 감정은 죽음보다도 강하며, 넷째 범죄자는 발각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고 범행을 저지른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오히려 사형 해당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게 겁주는 장치로는 형벌의 경중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범죄자에게 범행은 꼭 발각되고야 만다는 것과 반드시 형사 소추가 뒤따르고 그에 대한 처벌이 신속하게 이루어진다는 인식을 심어 주는 것이 더 실효성이 있다고 할 것이다.

 

둘째, 사형은 인도적인 이유로도 마땅히 폐지되어야 한다.

 

사람의 생명은 우주의 무게보다 무겁고 이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따라서 국가가 사형이라는 형벌 제도를 통해서 비록 극악한 흉악범이라고 해도 귀중한 인간의 생명을 박탈하는 것은 야만적이고 잔인하여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사형이 잔악한지의 여부에 대하여는 두 가지 측면에서 논의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형벌 수단이 잔학한가의 여부이다. 잔학한 형벌이 금지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역사적으로 1689년 영국의 '권리장전'에서 시작되어 1776년 미국 버지니아의 '권리선언'에서 받아들여졌고 다시 미국 헌법 수정 제8조에서 채용되었다.

 

이리하여 "잔악하고 이상한 형벌을 금지한다."라는 취지가 미국에서는 육체적으로 고통이 큰 사형 집행 방법이 잔학하여 허용되지 않지만 교수형이나 가스살(殺), 전기살(殺)에 따른 사형은 집행 방법이 이상하지 않기 때문에 위헌이 아닌 것이 되었다.

 

이슬람 형법은 오늘날에도 형벌 수단으로 손가락을 자르거나 귀를 자르는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 같은 형벌은 야만이라고 누구나 생각한다.

그런데 사형은 신체의 일부가 아니라 생명이라는 한 인간의 전부를 빼앗는 형벌이다. 이보다 더 잔학하고 야만적인 형벌이 어디 있겠는가?

 

교수형의 실제는 상상만 하여도 잔학하다. 특히 교수형은 그것을 집행하는 교도관이 목에 밧줄을 걸고 수갑을 채우는 등 직접 관여하는 면이 그 밖의 가스살이나 전기살보다 많다.

 

직무상 어쩔 수 없이 처형을 담당하게 되는 교도관으로서는 신앙의 자유, 양심의 자유와도 관계되는 면이 없지 않다. "양심에 반하여 직무상 어쩔 수 없이 사형의 집행에 관여하는 자들의 양심의 자유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비인간적인 형벌 제도"(헌법 재판관 김진우의 의견)가 사형이다. 날뛰는 사람의 목에 밧줄을 거는 불쾌감, 회개한 사형수를 죽이는 모순, 어느 하나를 들더라도 사형 집행인의 인권 문제가 있기 마련이나, 오늘날의 교정 행정은 '교육 행형'이라고 교도관들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훈련을 받고 있는 터인데 그 스스로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모순이 현실인 것이다.

 

사형의 잔학성은 처형의 순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잔혹한 것은 처형될 때까지 긴 세월에 걸친 사형수의 고통이다.

 

"사형수는 매일 아침에 죽는다."라는 말이 있다. 사형이 확정된 때부터 죽음보다도 가혹한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몇 년이고 죽음의 어둠에 쌓인 미결의 나날이 오랜 기간 계속된다는 사실이다.

 

셋째, 사형은 오판의 가능성 때문에 폐지되어야 한다.

 

사형을 구형하거나 선고하는 것도 인간이 하는 것이므로 인간의 한계로서 오판의 위험은 언제나 존재한다. 이러한 오판으로 사형이 선고되고 집행되어 버린 경우 진범이 체포되더라도 이를 회복하거나 구제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이다. 오판은 종교적 광기, 인종적 편견, 이데올로기적 편견 등 각종 편견이 구조적인 배경이 되어 발생한다. 무엇보다도 형사 사건에서 원용되고 있는 증거의 불확실성이 오판을 낳게 하는 주범이다.

 

증거로 널리 쓰이는 것은 피고인의 자백, 목격자의 증언 그리고 과학적 감정이다. 그런데 피고인의 자백이 고문에 따른 강압적 수사에 연유한 경우 또는 심리적 곤경의 산물인 경우가 적지 않다. 그 밖에는 회유에 따른 자백, 진범을 은폐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하는 허위 자백의 경우도 있다. 목격자의 증언의 경우 그 목격 사실의 확실성이 종종 의심받기도 하고 또 왜곡되어 해석되기도 한다. 과학적 감정의 질도 때로는 의심받는다. 검시 과학의 발전 수준에 따라 유죄의 증거이던 것이 증거로 삼기 곤란한 경우도 생기고, 전문가에 따라 다른 감정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위와 같은 피고인의 자백과 목격자의 증언 그리고 감정을 종합하여 유죄가 선고된 자도 나중에 진범이 밝혀져 무고함이 드러날 수 있다. 이럴 때 인간의 생명을 돌이킬 수 없게 훼손하는 사형 제도에 대하여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일본의 경우 과학적 감정 방법의 진보로 35년 동안 복형하던 사형수가 무죄가 된 사례가 있음을 지적하여 두고자 한다.

 

넷째, 사형은 악용되었고 또한 악용 가능성 때문에 폐지되어야 한다.

 

사형 제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독재자가 정적을 제거하고 반대자를 침묵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악용하였던 사실을 우리는 부인할 길이 없다. 특히 지난날 정치적 이유로 사형당한 자들 중 대다수는 지금의 시점에서는 사형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한국전쟁 당시 한강 인도교 조기 폭파 혐의로 처형된 최창식 공병감은 전시하 사회적 비난 여론에 대한 속죄양이었는데 1964년도에 재심에서 무죄 판결이 있었다. 조봉암, 조용수, 인혁당, 남민전 등 사건도 오늘날의 시대 상황에 비추어 본다면 처벌 가치가 없는 사건이었는데 그들은 모두 돌이킬 수 없는 사형이 집행된 점을 지적하여 둔다.

 

그 밖에, 개선 가능성과 관련하여 흔히 사형 해당 흉악 범죄자를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라고 매도한다는 사실이 과연 올바른 사고냐 하는 문제가 있다.

 

흉악 범죄자라 할지라도 그들도 존엄한 생명을 갖고 있는 존재이고 그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한다고 표명하고 있지는 않다. 위와 같은 표현은 무책임한 것임에 다름아니다.

 

교도소에서 나오면 또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말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흉악범에게도 개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실제로 필자가 교도소에 수감 중에 있던 사형수가 재감 중에 선행을 하며 다른 범죄자가 재범을 하여 교도소에 입소를 하면 이를 훈계하고 타이르고 하여 그의 별명이 '생불'(산 부처)이라고까지 불리는 것을 본 일이 있다.

 

흉악범이라 할지라도 스스로 범한 죄에 대하여 회개할 자리를 마련하여 주고 조금이라도 피해자에게 용서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새로운 인간으로 탄생'하도록 하는 것이 오늘날의 형벌 의의에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 사형의 존폐에 관한 세계 각국의 현황

 

인권 옹호를 세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앰네스티 인터내셔널'(본부 런던)의 조사에 따르면 1999년 4월 1일 현재 세계 195개국(식민지 등 포함) 가운데

 

(1) 모든 범죄에 대하여 사형을 폐지하고 있는 나라는 68개국이다. 이 중 주요한 나라로 호주, 덴마크,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뉴질랜드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세계에서 가장 먼저 사형을 폐지한 나라는 베네수엘라로 1863년이었다.

 

(2) 전시 같은 예외적인 상황 아래, 또는 군법으로 사형을 남겨 두기는 하였지만 보통 범죄에서 사형을 폐지하고 있는 나라는 14개국이 있다. 이에 속하는 나라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이스라엘, 멕시코, 영국 등이다.

 

(3) 사형은 존치하고 있으나 과거 10년 이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나라가 23개국 있다. 알바니아, 콩고, 마다가스칼, 세네갈, 터키 등이다. 또 미국은 주에 따라 다르고 폐지한 주가 13개 주이다.

 

이처럼 사실상의 폐지 국을 포함하면 세계의 105개국이 사형 제도를 폐지한 셈이다. 그 수는 세계의 54%가 된다. 또 현재 사형을 존치하고 있는 나라로서 이른 장래에 폐지하기 위하여 법안을 작성하고 있는 나라도 몇 있고, 1975년이래 적어도 해마다 2개국이 사형을 폐지하고 있다. 현재 사형을 존치하고 있는 나라가 90개국인데 일본을 비롯하여 중국, 미국 등이 있다.

 

서유럽에는 1981년에 프랑스가 길로틴을 폐지하여 사형 존치국이 모두 없어졌다. 또 동유럽 제국에서도 1987년에 동독, 1989년에 루마니아, 1990년에 체코슬로바키아가 폐지하였다. 이 점에서 아시아가 늦고 있다고 말하지만 필리핀이 1987년, 캄보디아가 1989년에 폐지했다.

 

그런데 사형을 폐지하는 경위는 물론 그 나라 사정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어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다. 세계적으로 국제 연합 등의 사형 폐지에 대한 작용이 직접 또는 간접으로 강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러나 세계의 추세는 폐지 쪽으로 가고 있으며 이것은 민주화, 선진화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3) 우리나라 사형 제도의 실태

 

해방 후 우리나라는 건국 과정에서 사형 제도에 대한 아무런 비판이나 검토 없이 이를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 오늘에 이르러 현재 사형이 법정 형으로 규정된 범죄는 형법에서 살인죄 등 15개 죄, 특정 범죄 가중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서 미성년자 약취 유인 살해죄 등 16개 죄, 군 형법에서 반란죄 등 약 33개 죄가 있으며, 개폐에 관하여 논란이 되고 있는 국가 보안법에서도 반국가 단체 구성죄 등 4개 죄에 사형이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사형이 인정되는 범죄도 많지만 그 선고율도 아주 높은 편이다. 곧 군사 법원의 실태는 외부에 발표되지 않고 있으나 상당수에 이를 것으로 짐작되고 있으며, 일반 법원에서는 해마다 평균 약 20건의 사형이 선고되고 있는 형편이다.

 

한편 제1공화국에서 문민 정부에 이르기까지 사형이 집행된 사형수는 900여 명에 이르고 있는 데 비하여 국민의 정부는 사형의 집행을 한 건도 하지 않고 있음은 사형 폐지론자를 고무시키고 있으며 많은 기대를 걸게 하고 있다. 특히 남북 평화 통일이 이루어질 때 제정될 통일 헌법에 사형 폐지에 관한 규정이 마련되기를 바란다. 

 

 

3. 사형 폐지의 전략

 

사형을 어떻게 하면 폐지할 수 있겠는가?

 

사형의 폐지에는 대체로 일거에 완전히 폐지하는 방법과 점진적,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고, 폐지 운동도 이에 따라 역시 두 가지 노선이 있을 수 있다.

 

전자를 완전 폐지론(또는 전략)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단계적 폐지론(또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1) 완전 폐지론과 전략

 

이것은 사형을 일시에, 전부 폐지하자는 주장이다. 그 전략으로는 다음 두 가지를 고려할 수 있다.

 

(1) 사형 폐지 법안의 제출 통과

 

이것은 수많은 형벌 법규에 존재하는 사형을 일일이 해당 법규를 개정하는 방법으로 폐지하는 것의 어려움과 번잡함, 그리고 시간의 낭비를 고려하여 특별법으로서 모든 형벌 법규상의 사형을 폐지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사형 폐지 법안을 국회에 청원하여 처리, 통과시키는 것이다.

 

1999년 12월 27일에 유재건 의원 등 여야의 국회 의원 92명이 '사형 폐지 특별법' 안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위 법안은 정기 국회 회기가 끝나서 심의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폐기된 바가 있는데 그 내용은 형법, 특별 형법, 군 형법 등의 사형 규정을 삭제하고, 위 특별법 시행 전에 사형 확정 판결을 받았으나 집행되지 않은 죄수는 무기 징역 판결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도록 하고 있다.

 

위의 특별법안 제출에 때맞춰서 한국 사형 폐지 운동 협의회는 이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결의 대회를 1999년 12월 10일 서울 지방 변호사회 대강당에서 개최하고 관계 요로에 특별법 제정을 호소하는 결의문을 전달한 바 있다.

 

(2) 위헌의 제소 또는 헌법 소원의 제기

 

이것은 형벌 법규에 규정된 사형이 헌법이 선언하고 있는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 기본권으로서의 신체의 자유, 생명권에 대한 침해임을 들어 대법원에 제소 또는 헌법 재판소에 소원을 제기하는 방식이다. 1972년 미국의 대법원이 사형을 "잔혹하고 이상한 형벌"로 규정하여 위헌임을 선언함으로써 그후 약 10년 동안 미국 전역에서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일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이 방법을 적용해 보자는 것이다.

 

한국 사형 폐지 운동 협의회는 1995년 1월 3일 고등 법원에서 사형이 선고되어 대법원의 상고심 계류 중인 정석범 피고인에 관하여 헌법 재판소에 사형 제도의 위헌 심판 청구의 소를 제기하였고 이에 대하여 헌법 재판소는 1996년 11월 28일 사형 제도는 없어져야 할 제도이지만 한국의 현 실정에서는 시기 상조라는 취지의 사형제 합헌의 결정을 내렸다.

 

만일 헌법 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내려졌다면 사형을 규정한 모든 형벌 법규는 효력을 잃게 됨으로써 우리나라도 사형 완전 폐지국의 대열에 들어설 수 있었을 것인데 유감스럽게도 좋은 기회를 놓쳤다.

 

이에 한국 사형 폐지 운동 협의회는 사형 폐지의 전략을 대국민 홍보와 사형에 대신할 대체형인 종신형 또는 징역 100년도 가능하게 하는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그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온 힘을 다하고 있다. 

 

2) 단계적 폐지론과 전략

 

이 주장과 방법은 사형을 일거에 폐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단계적으로 사형을 축소, 억제해 나감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완전 폐지에 이르겠다는 생각인 것이다.

 

단계적 폐지론 가운데서 우리나라에서 채택될 가능성이 있는 대안으로는 다음의 몇 가지를 들 수 있겠다.

 

(1) 사형 범죄의 종류와 수를 줄여야 한다.

 

법무부의 형법 개정 심의 위원회에서도 "사형 범죄는 가능한 한 줄인다."라고 결의하였으므로, 형법 개정 작업 과정에서 형법 제정 이후 사형 범죄 가운데 한번도 적용된 일이 없는 경우, 사형을 법정 형에서 삭제해 나가도록 해야 하며, 특별 형벌 법규도 마찬가지로 조사, 삭제하여야 한다.

 

(2) 사형의 구형과 선고를 억제하여야 한다.

 

사형은 검사의 구형과 법관의 선고로써 형벌로 응징되고 구체화되는 것이므로, 사형 제도의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판검사가 사형의 구형과 선고를 쉽사리 내리지 못하도록 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 반드시 사형을 구형한 검사가 사형의 집행자가 되게 하고, 이를 선고한 판사가 그 입회인이 되게 제도화하는 것도 사형에 대한 심리적 억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사형의 선고는 법관의 만장일치제로 하고, 상급심(고등 법원, 대법원)에서 제1심의 유기형 또는 무기형의 선고 결과를 파기하여 사형을 선고하는 일은 금지시켜야 할 것이다.

 

(3) 사형수에게 재심의 길을 폭넓게 열어 주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재심 제도는 원래 그 이름에도 불구하고 재심 억제 또는 재심 불허의 속성과 구조를 갖고 있고 운영되는 면도 그러한데, 사형이 확정된 자에게는 예외적으로 재심 사유를 폭넓게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무죄를 호소한 자에게는 재심의 기회를 보장하여야 할 것이다.

 

(4) 사형의 집행을 신중히 하여야 한다.

 

사형은 오판 또는 악용 가능성이 많은 제도이고, 특히 사형수가 억울함을 주장할 때에는 그 집행이 더욱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경우 사형 집행을 상당 기간(예컨대 확정 후 5년 정도) 유예하여 정세의 변화, 진범의 체포, 재심에 따른 번복 등 사정 변경을 기다려 주어야 한다.

 

재심이 신청되어 개시된 경우에는 필연적으로 집행이 정지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5) 더 나아가서 재심의 신청이나 개시가 없더라도 사형 확정 후 상당 기간 집행을 유예 또는 연기해 줌으로써 개과천선의 여부를 살펴 그후 집행 여부를 판정하도록 하여야 한다.

 

(6) 마지막으로 사형을 대신할 만한 대체형이 고안되어야 한다. 이것은 완전 폐지론에서도 반드시 고려할 사항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국민, 정치인, 정책 실무가들이 주저함이 없이 사형을 폐지하는 데 동의할 수 있도록 대체형이 개발되어야 한다.

 

그것의 예로서 특사, 감형 불허의 종신 구금형(중무기형)이 고려될 수 있고, 영미법계 국가처럼 예컨대 징역 100년 이상을 선고할 수 있도록 경합범 가중 한도를 철폐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한편 한국 사형 폐지 운동 협의회는 '사형 폐지에 타협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지금까지 주장하였고 지금도 이것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사형 폐지 운동은 이론과 함께 한편으로는 실천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사형을 대체하는 제도를 감히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가석방이나 감형이 없는 종신형은 오히려 사형보다 잔학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생명을 말살하는 사형과 종신형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

 

종신형에 대한 다른 비판의 하나는 구금 비용의 문제이다. 그렇지만 사형 자체가 악이라면 그것에 대신하는 제도에 비용이 들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람의 생명은 돈으로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사형 폐지 운동 협의회는 사형 폐지가 이루어진 다음에 오는 국민의 불안 요소를 최소화한다는 의미에서 사형에 대체할 형벌로 가석방, 감형이 불허되는 종신형 또는 평생 종신형(평균 생명표상의 평균 여명의 3분의 2 상당 기간을 종신형으로 복형하게 하고 나머지 기간은 가석방하는 제도) 제도의 도입을 주장하는 세미나를 2000년 10월 16일 세종문화회관 컨퍼런스 홀에서 개최한 바가 있다. 

 

 

4. 결론에 가름하여 - 사형 폐지의 전망 

 

이상의 고찰을 통하여 우리나라에서 사형이 아주 폭 넓게 인정되고 있으며, 사형의 선고율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는 부끄러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1999년 12월 7일 한국일보사와 한솔 pcs가 전화 여론 조사를 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가운데 55.1%가 사형 제도를 지지하고 있고 사형 제도 폐지 주장도 44.9%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사정을 종합해 보면 우리나라에서 사형 폐지 주장과 운동이 얼마나 어려운 조건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사형 폐지 운동이 본격화된 1989년 당시 국민의 약 77%가 사형 제도를 지지한 것과 대비하면서 우리는 장래를 낙관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형은 "부적절하고, 불필요하고, 부당하며, 또 하나의 악"임이 틀림없으므로 폐지되어야 하고, 인류는 마땅히 폐지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신념을 전제로 하고 사형 폐지의 방법론을 검토해 본 것이다.

 

결국 사형의 폐지란 흉악범, 인신 매매범 등에 대해 분노하여 극형을 주장하는 국민들, 인기 없는 사형 폐지 법안에 선뜻 찬성하지 않으려는 정치인들, 사형의 필요를 신앙처럼 믿고 역설하는 정책 실무자들을 설득하는 끈질긴 작업의 소산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사형 폐지에 호의적이지 않는 현 단계에서는 이를 일거에 폐지하겠다는 완전 폐지론보다는 단계적 폐지론이 더 현실적인 전략으로 평가될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영국처럼 오판에 따른 사형 집행 사건이라는 특정한 계기가 있어 완전 폐지로 돌아선 경우도 있을 수 있으므로, 사형 폐지 운동 세력은 단계적 폐지 전략을 착실하고 꾸준하게 실천해 나가면서 기회를 엿보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하겠다.

 

결국 사형 폐지 문제는 현재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민주화, 인간화, 선진국화의 커다란 흐름 속에서 이들과 속도와 성패를 함께할 것이라고 보이며, 구체적으로는 우리의 당대에 실현되리라고 기대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형의 야만성, 비효율성, 악용 가능성에 눈을 뜨고 살인범과 같은 흉악범마저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생각으로 이들의 생명도 포용해 주는 성숙한 의식을 가지고 사형 폐지 운동에 동참하려는 학생, 주부, 직장인 등 모든 시민의 인간애가 결국은 이 운동의 성패를 가름할 것이다.

 

[사목, 2001년 7월호, 이상혁(한국 사형 폐지 운동 협의회 회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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