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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생명칼럼: 인간 복제 어떻게 볼 것인가? - 아버지와 똑같은 아들, 엄마와 똑같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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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01-10 ㅣ No.566

[생명칼럼] 아버지와 똑같은 아들, 엄마와 똑같은 딸 (1) 인간 복제 어떻게 볼 것인가?

 

 

미국 현지시간으로 2002년 12월 26일 오전 11시 55분에 태어난 것으로 알려진 인류 최초의 체세포 복제 인간인 이브(Eve)가 전 세계에 가져다 준 충격은 매우 심각하다. 아직까지 인간의 체세포 복제 방법을 통해서 탄생했는지에 대한 객관적 증거 자료는 없는 상태이다. 그러나 생명공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복제 인간을 만드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여러 가지 기술적 문제로 인해서 성공률은 매우 희박하다고 한다. 더구나 이 인간 복제를 주도한 단체가 라엘리언(Raelian)이라고 하는 유사종교집단이어서 그 신뢰성은 더욱 의심이 가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 복제의 가능성은 오래 전부터 예견되어 왔고, 더욱이 올해에는 더 많은 복제인간이 탄생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어서 상황은 더욱 더 심각하다. 이미 인간 배아 복제 문제로 세계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비록 많은 사람들이 인간 복제를 비난하고 있지만, 이제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체념의 분위기와 더불어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서 상업적 이윤을 추구하고자 하는 경향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 가톨릭 교회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인간 복제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를 꾸준히 그리고 진지하게 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일부 생명공학자들이 이러한 혼란을 야기시키는 일을 행한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 복제의 근본적 문제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대중을 상대로 그릇된 신념을 전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 복제가 우리 사회에 끼치는 영향

 

우리 사회에 있어서 가장 기초적이고도 근본적인 문제는 인간 복제라는 매우 심각한 문제에 대한 사회적인 문제의식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문제 해결에 대한 방안 마련의 시작이 매우 어렵게 되었다. 인간 복제를 시도하는 사람들의 논거는 명료하다. 인간 복제를 통해서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으며, 또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 즉 불임부부나 동성애자들에게 아기를 제공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목적이 선하다고 해서 그 방법이 악해도 좋다는 논리는 결코 성립될 수 없다. 그리고 인간 복제에 대한 명확한 사회적 일치 내지는 합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행위를 지속하는 것은 오만이며 이러한 오만은 사회적 편견과 혼란을 조성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오만과 편견은 현대 후기산업사회가 추구해야 할 공동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인간 복제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 행위를 통해 불행한 사람들에게 기여할 수 있는 바가 있다고 주장한다. 즉 무정자증의 남편을 가진 아내가 자신만의 아이를 원할 경우 체세포 복제를 통해 그 소원을 들어 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선천적인 유전자적 결함(백혈병이나 암 환자 등 난치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고통을 받고 있는 환자의 치유를 위해 복제 인간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모두 반생명적이고도 반윤리적인 사고방식에서 기인한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결코 도구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재 인류의 기술 수준으로는 그 실패율이 매우 높아서 결국 끊임없이 인간의 생명을 실험 대상으로 삼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근본적으로 우리와 똑같은 인간생명체인 인간배아 복제나 배아를 이용한 실험과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다. 왜냐하면 엄격히 말해서 인간배아 복제 및 연구는 인간복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곧바로 인간복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 배아 복제 및 실험연구 허용은 인간 복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인간 복제는 또한 가치질서의 붕괴를 야기 시킬 뿐 아니라 인간의 현실적인 사회적 관계의 기초인 가족관계도 파괴시킨다. 즉 성인의 체세포를 복제하여 아기가 태어날 경우 그 아기는 생물학적인 아버지가 없다. 그 뿐 아니라 클로네이드사가 주장하는 복제 인간인 이브(Eve)의 경우를 보더라도, 자기 자신의 체세포를 복제하여 스스로 아이를 낳은 사람은 자기가 자기를 낳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그래서 이 아기가 기존의 가족 질서에 편입되는데 커다란 혼란에 직면하게 되고, 이는 단순한 법적 차원에서의 문제 이상의 어려움을 사회에 가져다 주게 된다.

 

인간 복제의 경제 정의적 차원에서의 문제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기술적 어려움으로 인간 복제뿐 아니라 그 이전의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인공 수정의 경우도 성공률이 매우 낮아, 이것이 성공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만큼 많은 투자비용이 들어갈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인간 복제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일이라 하더라도 그 기회를 활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경제적 여유를 확보한 소수층에 머물게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래서 결국 인간 복제는 부유한 소수 사람들이나 특권층에 해당되는 사람들의 행복만이 보장되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인간 복제의 방법을 통해 태어난 인간이 성인이 되고 난 후에 벌어질 일을 예견해 보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커지게 된다. 인간 복제가 동일한 DNA를 가진 인간의 존속을 주 목표로 하여 무성생식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이해해 볼 때 이러한 사람들과 전통적인 방법, 즉 유성생식을 통해 탄생한 ‘보통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갈등은 치유가 거의 불가능한 사회적 분열을 야기 시킬 것이 자명하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브리지트 보아셀리 박사가 계획한 대로 생물학적 특성뿐 아니라 기억력과 성격까지도 복제가 가능하게 된다면 인류가 맞이하게 될 사회는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한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고, 결국 이러한 사회는 궁극적으로 인류를 파멸로 이끌게 될 것이다.

 

 

인간 복제는 하느님께 대한 도전

 

사실 인간 복제는 그동안 교회가 꾸준히 문제 제기를 해온 인간배아 복제 문제의 연장선상에서 이해 할 수 있는 문제이다. 교회에서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인간에게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할 수 있는 능력을 인간의 선을 위해 스스로 자제하고 통제하는 윤리적 결단을 내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역설해 왔다.

 

무엇보다도 인간 복제는 생명의 신비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기 때문에 신학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된다. 즉 인간복제의 시도는 하느님께 절대적으로 유보되어 있는 생명권에 대한 도전이며, 이는 곧 하느님의 고유한 소관 사항인 창조사업을 인간이 떠맡으려고 하는 것이다.

 

자연과학이 새로운 종교가 되고 자연과학자들이 새로운 제사장이 되어 인간의 가장 본질적이면서도 심오한 문제에 대한 판결을 내리려고 한다면 그 결과는 인류 전체에 대한 재앙이 될 것이다. 단순한 기술적 한계의 결과로 초래되는 사회적 혼란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그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인류를 바른 길로 인도해주는 하느님이 가르쳐 주신 ‘진리의 길’이 아니라 자기파괴를 낳을 그릇된 길로 이끌어 궁극적으로는 하느님께서 세워주신 질서를 파괴시키는 것이다.

 

정신과 영혼은 인간에게 속한 모든 실체 가운데 가장 본질적인 구성요소이다. 즉 인간의 생명은 부모가 창조해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신 가장 큰 선물이자 은총이다. 더구나 인간 복제는 인간을 생물학적으로만 복제 할 뿐 존재론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완전히 똑같은 인간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소위 우생학적인 차원에서 ‘보다 더 나은’ 인종을 인간이 선택하여 보존하려고 시도한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 자체를 파괴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신학적으로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공평하고 크신 사랑 안에서 태어났다. 그렇기 때문에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 비해 더 나은 것이라는 평가와 판단은 분명 그릇된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본질적 평등을 무시하고 차별적인 인간관을 가지고 행동할 때 초래되는 비극은 이미 2차 세계대전 때 인류가 경험한 바 있다. 한마디로 인간 복제는 이러한 유일무이한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고 무시하는 행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다 더 나은’ 인간을 만들어내려는, 즉 designer baby를 ‘생산’하려는 시도들은 보다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사실 여기 지금이라는 시공간 내에서 우수하다고 판명된 사람의 형질이 다른 시공간 내에서도 동일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현재 어떤 사람이 우수하다고 하는 것은 주어진 환경에서 잘 적응하기 때문에 가장 적합하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이 반드시 선한 사람이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이런 위험을 내포한 실험, 조작이 인간 생명에게 자행될 경우 인간의 자연권적인 존엄성의 파괴는 명약관화한 일이 될 것이다.

 

최초의 복제 인간인 이브를 탄생시켰다고 주장하는 클로네이드사는 단순히 불임이나 치유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인간 복제를 통해 인간이 영원한 삶을 추구 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모든 인간은 누구나 죽지 않고 영원한 삶을 살고자 희망한다. 그리고 그러한 희망과 갈망은 보다 인간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 영생을 단순히 생물학적인 생명의 연장으로 이해하는 것은 진리에 대한 무지에서 나오는 편견일 뿐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단순히 생물학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관계를 맺는 영혼과 더불어 영원을 바르게 이해하는 정신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 복제 행위는 하느님의 모상으로서의 인간의 존엄성을 그 근본에서부터 부인하는 것이다. 인간 복제를 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난자와 자궁이 필요하다. 그리고 핵치환을 위한 DNA와 착상을 위한 인간 배아 줄기 세포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자신이 임신 불가능한 경우에는 대리모의 자궁도 필요하게 된다. 이처럼 인간 복제를 위해서는 한 인간의 일부분만을 필요로 하여 인간을 그러한 부분으로 환원시켜 이해하는 관점을 조장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인간 복제는 자기애의 극단적 표현이라는 점에 있어서 신학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리스도교의 사랑은 바로 이웃에 대한 사랑이며, 궁극적으로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라는 목표를 향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 복제는 남이 아닌 나 자신의 생물학적 영생을 추구하는 목적을 가진 것으로 그리스도교적인 사랑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특히 기능이 분화되고 개인의 권리와 자유가 강조되는 현대 후기산업사회에서의 이기적 사랑은 선이 실현되는 장으로서의 사회의 공동선을 실천하는데 있어서 가장 커다란 장애 요소 중의 하나이다. 원래 자기애는 자기보호본능에서 나온 것이고 이러한 자기애의 목표는 바로 생존이다. 그러나 오늘날 자기애만을 추구할 경우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자기 파멸 그리고 나아가 인류의 파멸만을 초래할 뿐이다.

 

* 2003년 1월 7일 국회공청회 때 발표한 내용임. [월간빛, 2003년 3월호, 이창영 바오로 신부(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사무차장,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총무)]

 

 

[생명칼럼] 아버지와 똑같은 아들, 엄마와 똑같은 딸 (2) 인간 복제 어떻게 볼 것인가?

 

 

생명공학자들은 무엇하는 사람들인가?

 

하느님은 인간을 사랑하셔서 자유를 선물로 주셨다. 그런데 인간은 그런 하느님의 선물을 오용하여 하느님과 대등한 존재가 되려고 하는 죄를 지었다. 그런데 이제 다시 자유의 개념에 대한 혼란으로 인간은 커다란 죄의 유혹에 넘어가고 있다. 인간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해서 무엇이든지 다 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는 아닐 것이다. 인간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결코 하지 않을 수 있는 진정한 자유를 실현해야 한다.

 

자연과학의 눈부신 발달의 성과를 교회도 인정하고 있다. 오늘날 인류는 유사 이래로 고도로 발달한 물질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있으며 이에 자연과학은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병을 치료하고 고통을 덜어주며 영양실조로 생기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지구 자원을 더 잘 활용하는 방향으로 과학 연구가 진행될 때, 인간에게 유익을 주고 인류의 희망을 대변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물질적 풍요가 인간 정신의 풍요를 직접 이끌지 못한다는 사실은 자명한 사실이다. 현대 사회의 인간소외 현상이 기술문명이 발달한 선진국에서 오히려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인간 복제를 추구하는 생명 공학자들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성의 파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일을 도모하고 있다.

 

자연의 파괴와 마찬가지로 인간성의 파괴는 하느님의 창조사업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돌이킬 수 없는 가장 큰 죄악이다.

 

또한 문제가 되는 것은 순수한 학문 연구가 상업주의에 물들어 이윤 추구의 수단으로 전락하였다는 사실이다. 후기산업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는 더 이상 하나의 경제 체제가 아니라 시대정신을 보여주고 이끄는 가장 큰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자연과학자들의 구체적인 삶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윤의 추구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현대 후기산업사회에서 팽배해 있는 맹목적인 이윤추구는 가치전도의 현상을 보이고 있다. 즉 목적이어야 할 인간이 수단이 되고, 수단이어야 할 이윤이 궁극적 목적이 되는 것처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인간배아 복제에 관한 기술을 특허 내어서 상업적 이익을 독점적으로 추구하려고 한다는 것은 패륜적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인간이 수단화되었을 때 파생되는 개인적, 사회적 문제의 심각성은 매우 크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이러한 인간 가치에 대한 몰이해는 인간의 자기 파괴를 이끄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 복제를 포함해 근원적으로 인간 생명 수호라는 차원에서 볼 때 현재 자연과학 특히 물리학과 생물학에서 파악하는 인간 생명에 대한 근원적 이해의 편협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자연과 자연법을 형이상학적으로 바라보는 보다 근원적인 관점을 결여한 이러한 자연과학적 세계관은 궁극적으로 인간 사이의 대화의 단절을 야기시켜 모든 인류를 위한 본질적이며 보편적인 선을 구현하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이번에 복제인간 탄생에 대해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브리지트 부아셀리 박사는, “자연과학의 발전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과연 자연과학의 발전이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위한 것인지에 대한 근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 결여된 채 이루어진다면 그 결과에 대해 오히려 두려움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인간 복제를 할 능력이 있다고 해서 그 일을 반드시 실행에 옮겨야 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 전에 반드시 자연과학적 이유뿐 아니라 모든 인간의 선을 위한 보다 근원적인 형이상학적 타당성을 제시할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흔히 자연과학과 형이상학은 서로 별개의 범주에 속하는 학문으로 상호 간섭이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그 어떤 학문이든 관계없이 궁극적으로 인간의 선을 증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것이 자명하고, 현대 후기산업사회 속의 인간의 다양한 욕구의 사회적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개별적인 학문이 단독적으로 자기 자신만의 작은 영역에 머무는 세계관을 고집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즉 자연과학의 존재 이유가 자연과학만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되고 궁극적으로는 모든 인간을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정리

 

무엇보다도 우선하여 생명윤리에 관한 올바른 법률을 신속히 제정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교육을 조기에서부터 보다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올바르게 시행해야 할 것이다. 물론 현재 가칭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안)」이 마련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입안 과정과 내용에 있어서 우려되는 바가 많다.

 

법률(안)이 입안될 때 공청회를 거쳐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해서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바른 절차이기는 하다. 그러나 생명의 존엄성과 같은 문제는 다수결 원칙에 의해서 결정될 사항은 결코 아니다. 만약 이 문제가 다수결에 의해 그리고 대중의 선호도에 따라 결정될 수 있는 것이라면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인간 복제를 선호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더 많아질 경우 인간 복제를 합법적으로 허용해야 하는 불행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안)」에 있어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인간 생명의 시작점에 관한 것이다. 많은 자연과학자들과 정치가들은 인간 생명의 시작이 수정 후 3-4일, 혹은 14일 등에서 이루어지는 현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신학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생물학적인 차원에서도 그릇된 견해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 교회에서는 정자와 난자가 수정된 그 순간부터 인간의 생명은 시작되는 것이라고 계속 주장해 왔다. 그런데 적지 않은 자연과학자들은 이러한 교회의 입장을 자연과학적 증거가 없는 것이라고 치부해 왔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유수한 논문이 게재되는 저명한 자연과학 잡지인 지에서는, 2002년 7월 4일자에 논문을 기고한 헬렌 피어슨(Helen Pierson) 씨가 난자와 정자가 수정된 지 24시간 이내에 지금까지는 원시 선이 나타난 이후에 결정되는 것으로 간주된 현상이 결정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즉 수정된 배아의 어느 부분에서 머리와 다리가 생기며, 또한 어느 면이 등이 되고 배가 될 것인지는 정자와 난자가 결합한 지 수 분 내지 수 시간 내에 결정되는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러므로 원시 선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수정된 지 14일 이후에야 인간 배아가 생명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할 것이라는 종래의 주장은 비윤리적일 뿐만  아니라 비과학적인 것이다. 오히려 자연과학적 증거가 나오기 이전부터 인간 생명의 시작점을 수정의 순간으로 본 교회의 가르침이 더 과학적인 것으로 밝혀진 셈이다.

 

인간 생명의 시작점이 언제인가는 지금까지 인간 배아 복제에 대한 조작의 근거를 마련하는데 좋은 구실이 되어 왔다. 즉 원시 선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수정 14일 이전의 수정란은 생명이 아니라 세포이기 때문에 다른 실험용 세포와 마찬가지로 생산, 활용, 조작, 매매, 폐기가 가능하다는 견해가 자연과학자들 간에 널리 퍼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그러한 ‘과학적’ 견해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생명의 시작점에 대한 일부 자연과학자들의 주장과 생각은 이제 비과학적인 것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따라서 자연과학자들은 이제 교회의 가르침을 단순한 종교적 도그마나 신학적 주장이 아니라 바로 진리 자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자연과학자들 사이에서는 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몰이해와 오해가 많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생명의 신비에 대한 바른 지식의 함양도 필요하지만 교회의 가르침 속에 있는 진리를 깨닫는 것이 더욱 더 중요하다. 물론 이 진리를 전파하는 데는 교회의 노력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인간 생명은 발명품도 아니고 상품은 더더욱 아니다. 생명은 바로 하느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은총 속에서 인간에게 선물된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다 해도 된다.”는 것이 과연 과학이 가지고 있는 신념인가를 묻고 싶다. 무엇인가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해서, 그것이 언제나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기술의 진보가 반드시 더 좋은 것만은 아닐 수 있고, 오히려 윤리의 퇴보일 수 있다. 결국 윤리를 상실한 과학은 죽음과 파멸을 초래케 할 뿐이다. 무엇보다도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두말 할 나위 없이 ‘생명’일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나아가서는 전 세계가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그래서 인간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아 하루빨리 생명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곧 입법화 될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생명의 소중함을 가장 중요시하는 올바른 법으로 제정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 이 글은 2003년 1월 7일 국회공청회 때 발표한 내용임. [월간빛, 2003년 4월호, 이창영 바오로 신부(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사무차장,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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