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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의사윤리지침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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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6 ㅣ No.360

의사윤리지침 논평 

(한국의료윤리교육학회 2001가을학술대회, 2001년 11월 28일)

 

 

대한의사협회의 의사윤리지침 제정의 필요성에서부터 그 성격과 내용의 기초, 그리고 제정 과정에 대해 들으면서 이 지침이 갖는 일차적 성격이 윤리적 성격이라고 이해하게 되었다. [의사윤리선언]과 [의사윤리강령]을 바탕으로 의사들이 보다 자신있게 윤리적인 인술을 펼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하여 [의사윤리지침]을 제정하게 되었다는 취지에서 볼 수 있듯이 대한의사협회의 [의사윤리지침] 역시 기원전 4,5세기경부터 2,500년 가까이 모든 서양 의사의 윤리규범이 되어온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정신을 우리나라 의사들도 그대로 계승하기를 희망하면서 제정한 지침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통해 모든 의사가 스스로 의사로서의 숭고한 사명을 약속하는 것처럼 의사는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보전하고 증진하는 지고의 사명을 늘 인식하면서 자신의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모든 의사의 본질적 사명이며, 따라서 대한의사협회의 [의사윤리지침]도 의사들의 그러한 사명을 고무하고 도와주기 위한 일종의 윤리규범집이라고 이해하고 싶다. 왜냐하면 [의사윤리지침]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이 지침은 "국민의 생명권과 건강권과 인권을 신장하는데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1조), 의사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의학실력과 윤리수준으로 의술을 시행할 것(6조)을 정중하게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의사는 자신들의 숭고하고 명예로운 사명을 인류와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았음을 명시하여 모든 의학 지식과 기술을 오직 인류와 국민의 복리 증진을 위하여 사용할 것"(5조)을 요청하는 [의사윤리지침]이라고 할 때 이 지침의 가장 중요한 성격은 의사들이 [의사윤리선언]과 [의사윤리강령]의 기본정신을 따르는 윤리적 의술을 펼치는데 도움을 주는 윤리 지침을 제공하는데 있다고 하겠다.

 

[의사윤리지침]의 이러한 성격이 충분히 반영되는 지침이 되기 위한 노력의 흔적은 이 지침의 제정 과정에 잘 드러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본 지침의 제정을 위한 과정에 있어서 연구팀 구성이라든가 의료윤리 문제에 대한 의사들의 의식조사 그리고 시안 작성 후 3차례의 공청회 등 최종 시안이 나오기까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려던 의도와는 달리 그 실제에 있어서 의사윤리에 관한 각계의 관심은 충분히 전달되지 않은 것 같다. 비록 의사들의 윤리 문제를 다루는 [의사윤리지침]이지만 이 내용의 중심에는 언제나 인간 생명의 문제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생명 문제의 또 다른 전문가 그룹이라고 할 수 있는 신학과 철학 분야에서의 적극적인 도움도 필요했었다고 여겨진다. 실제로 이 지침의 시안이 마련된 후에 있었던 몇 차례의 공청회에 참여한 분들은 대부분 의사들이었다는 점에서 다른 분야에서의 의견이 개진될 수 있는 가능성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본 지침의 연구팀은 [의사윤리지침]의 필요성과 제정 방향에 대해 "새로운 의료윤리적 문제", "의료윤리에 대한 국민들의 기본적 요구의 충족", "의사들이 보다 자신있게 윤리적인 인술을 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자율 징계권 확보를 위해" 라고 밝히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지침의 방향성이 환자 중심이 아니라 의사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다.

 

이 지침은 2001년 4월 대한의사협회 이사회에서 채택된 후 몇몇 언론기관과 시민단체, 종교단체 등에서 문제제기가 있었다. 또 같은 해 5월 이사회의 확정, 그리고 11월 공포의 과정에서 주위의 의견들을 충분히 들을 수 있었고, 그 의견들을 이 지침에 반영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데도, 의견 수렴이나 그에 따른 수정, 변화 없이, 오히려 더 강하게 밀어붙이기 식으로 발표한 데에는 어떤 의도가 있는지 궁금하다.

 

이제 [의사윤리지침]의 몇몇 조항에서 발견되는 윤리 문제에 대해 말하겠다.

 

1. 28조의 1항과 2항은 생명이 위급한 환자가 의사의 의학적 판단과 충고에 반하여 환자나 그 대리자 등이 생명유지치료를 비롯한 진료의 중단, 퇴원을 문서로 요구할 때 의사는 그 요구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미로 알아듣게 되는데, 이는 생명의 존엄성을 가진 환자의 최소한의 권리인 치료받을 권리까지도 박탈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되기도 한다. 의사의 의학적 판단과 충고에 반하는 요구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의사의 직업윤리를 거스르는 일일 뿐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의사의 정체성을 크게 벗어나는 행위가 아니겠는가? 이는 의사로서의 직무 유기의 측면이 매우 강하게 부각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28조 3항은 [의사윤리지침]이 소극적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대목이다. 의식불명에 빠진 환자에게 환자를 살리기 위한 의사의 충분한 설명과 설득이 있은 다음에도 그 환자의 가족 등 대리인이 환자에게 행해지고 있는 생명유지치료 및 진료를 중단하도록 문서로 요구할 때 그것을 허용하는 의사의 판단 기준이 환자의 이익과 의사라는 것은 이어령비어령 식의 매우 애매모호한 기준이 아닐 수 없다. 이익의 기준이 무엇인가? 정신적인 것인가? 아니면 물질적인 것인가? 환자 치료의 기준은 환자의 생명을 존중하는 것이어야지 해석이 애매모호한 '이익'이 의사들의 윤리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2. 30조에서 언급하고 있는 회복불능 환자의 치료중단 문제와 관련해서는 의사의 그러한 결정을 뒷받침해주는 전문성과 양심문제가 바탕이 되는 결정이라는 측면이 강조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의사로서의 전문적인 지식과 의료기술이 모두 베풀어진 다음에 이제 더 이상의 치료방법은 없다는 의사로서의 지성과 양심에 입각한 단순한 의미의 연명치료 중지 결정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환자를 죽게 내버려두는 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환자에게 다가온 실존적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환자를 도와주는 일일 것이다. 물론 환자나 가족 등 대리인의 명시적 동의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의사의 그러한 양심적 판단으로 환자에게 당장 필요한 일반적인 치료행위나 간호행위, 영영공급 등이 중단되어서는 절대로 안될 것이다.

 

3. 54조 1항은 인간 생명은 수태된 순간부터 온전한 생명이라고 명시하면서 그 생명의 보전과 건강 증진에 최선을 다할 것을 의사에게 요구하고 있는데, 낙태(54조 2항), 인공수태시술(55조), 대리모(56조 2항)에 관한 지침에서는 생명의 파기를 일부 허용함으로써 온전한 생명의 보호라는 이 지침의 기본 요구와는 서로 모순된다.

 

4. 54조 2항은 사실상 낙태를 허용하고 있는 대목인데, 생명권을 보호하는 것이 이 지침의 목적이라고 명시하고 있는 [의사윤리지침]이 스스로 보호할 수 없고 약한, 그야말로 타인의 보호에 맡겨져 있는 소중한 생명을 상황에 따라서는 죽일 수도 있다는 입장을 보이는 것은 이 지침이 윤리지침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의사들의 행동지침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수 있도록 하는 대목이다. 게다가 낙태의 판단이 의사들의 신중한 판단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을 제시한다는 것 자체가 현재 의료계 일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낙태의 현실을 합리화시키려는 의도까지 담겨져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5. 54조 3항에서 허용하고 있는 의학적으로 필요한 경우의 태아성감별은 어떤 의미로 이해해야 하는가?

 

6. 56조 2항은 대리모와 관련하여 대리모 출산을 기정 사실화하여 받아들일 것을 은근히 주장하고 있다. 더구나 대리모 출산의 윤리적 기준을 단순히 금전적인 거래에만 두고 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대리모 시술이 인간을 도구로 전락시키고 여성의 몸을 인큐베이터로 비하시키는 비인격적 행위라는 점, 그리고 대리모 출산에 따르는 여러 문제들이 가정 및 사회의 질서라든가 전통적인 가족 관계를 온통 혼란에 빠뜨리게 된다는 점에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생물학적 혈통을 잇는 것만이 중요하다는 일방적인 주장에 편승했다는 의구심을 들게 한다.

 

7. 57조 2항은 [의사윤리지침]이 적극적 안락사를 지지하고 있는듯한 대목이다. 물론 58조에서 안락사를 금지하고 있지만 57조에서는 환자가 품위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의사는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명시함으로써, 1999년 잭 케보키언이라는 미국 의사가 어느 말기 환자의 품위있는 죽음을 표방하면서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안락사를 시술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미국 법정은 그에게 유죄평결을 내렸고 그 의사는 2급 살인죄로 구속수감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케보키언의 확신은 환자의 품위있는 죽음을 위한 의사로서의 도움이었고, 이는 곧 적극적 안락사의 시술이 아니었는가?

 

8. 58조 1항은 안락사의 개념을 설명하고 있는데 소위 적극적 안락사만을 안락사로 정의하고 있다. 비록 말기 환자라 하더라도 그 환자에게 당연히 베풀어져야할 정상적인 치료 방법이라든가 간호가 의도적으로 중단되는 것, 혹은 환자 자신이 거부하는 것까지도 소극적 안락사로서의 안락사 개념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의사윤리지침]이라면 그야말로 인간의 인간다운 삶과 생명 존중을 위한 의료인들의 소명에서 결코 간과될 수 없는, 곧 생명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보호되어야 한다는 철저한 윤리의식이 그 기초가 되어야 한다. 히포크라테스는 "나는... 순수하고 성스럽게 나의 인생과 의술을 지키겠다"는 그 유명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후배 의료인들에게 남겼으며, 오늘날 모든 의료인은 이 선서를 자신들의 직업윤리의 기본으로 삼고 있다. 만일 [의사윤리지침]에서 이 숭고한 직업윤리의식을 찾지 못할 때, 그럼으로써 이 사회에 중대한 윤리적 오류가 횡행한다면 의사는 더 이상 생명의 봉사자가 되지 못할 것이다.

 

[이동익 신부 /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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