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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생명칼럼: 영양 공급과 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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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01-10 ㅣ No.585

[생명칼럼] 영양 공급과 수화

 

 

『 … 전 교회 차원에서 생명 옹호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가톨릭 교회 교리서]가 “지나친 치료”(2278항 ‘생명의 복음’, 65항 참조)의 거부라고 설명하는 부담스럽고 위험하며 기대되는 결과에 비하여 과도한 의료 시술의 중단과 영양 공급과 수화, 정상적인 치료와 같은 일상적인 생명 유지 수단을 박탈하는 것 사이의 실질적인 윤리적 차이를 규명하고 가르치기 위한 큰 노력이 요구됩니다.

 

미국 주교회의 생명위원회에서 펴낸 성명서 ‘영양 공급과 수화 : 윤리적 사목적 성찰’은 환자의 죽음을 야기할 의도로 이루어지는 영양 공급과 수화의 중단은 거부되어야 하며, 관련된 모든 요소를 신중하게 고려하면서 가급적이면 영양 공급과 수화를 필요로 하는 모든 환자에게 의학적 보조를 통해 이를 제공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야 한다고 적절하게 지적하였습니다. 이러한 구분을 명확하게 지키지 않는 것은 수많은 불의와 불필요한 큰 고통의 근원이 되며, 질병이나 노령으로 인한 약화로 이미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칩니다.』<문헌 1- 출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캘리포니아, 네바다, 하와이 주교들의 사도좌 정기방문 때 한 연설, “생명의 문화건설”(1998.10.2), Origins 28:18호(1998.10.15.), 316면>

 

 

의학적 보조를 통한 영양 공급과 수화에 관한 문제들

 

『의학적 보조를 통한 영양 공급과 수화를 보류하거나 중단하는 것은 언제나 즉각적인 죽음을 의미하는가? 이 문제에 답할 때 두 가지 극단을 피하여야 한다.

 

첫째, 이러한 행위는 적극적인 행동이 아니라 부작위의 문제라는 이유만으로 살인의 문제가 될 수는 없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사실 고의적인 부작위, 특히 질병으로 쇠약해진 사람의 경우 유효하고 확실한 살인 방법이 될 수 있다. 가톨릭의 가르침은 ‘모든 고통을 제거하기 위하여 저절로 또는 고의로 죽음을 초래하는 행위 또는 부작위(不作爲)’인 안락사를 단죄한다. 따라서 ‘안락사는 적극적인 안락 살해뿐만 아니라 환자의 죽음을 야기할 목적의 치료 태만도 포함한다.’

 

둘째, 우리는 의학적 보조를 통한 영양 공급과 수화를 보류하거나 중단하려는 모든 또는 대부분의 결정이 죽음을 야기하기 위한 시도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확실히 어떤 환자는 영양 공급과 수화를 모두 중단하면 죽게 될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다른 원인들이 있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그 환자는 이미 죽음에 임박해 있어서 영양 공급을 하든지 하지 않든지 분명히 죽게 될 수도 있다. 또한 그러한 부작위의 예측할 수 있는 결과 가운데 하나가 환자 생명의 단축인 경우에도 그 부작위의 진정한 목적이 환자에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거나 환자와 그 가족이나 그를 돌보는 사람들에게 과도한 부담이 되는 어떠한 절차를 덜어주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결정은 살인이나 자살과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

 

가혹한 현실은 어떤 환자에게서 영양 공급과 수화를 중단할 것을 제안하는 사람은 환자를 죽게 하려는 직접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는 그들이 생각하기에 죽음을 야기하는 더욱 ‘간편하고 고통 없는’ 수단을 허용하는 법의 수정을 바랄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때로는 환자가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환자가 죽어가고 있지(또는 빨리 죽어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영양 공급과 수화(구강 투여이든 의학적 보조를 통해서든)가 중단되며, 또한 일반적으로 그 환자의 ‘생명의 가치’가 매우 낮거나 환자가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을 준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의학적 보조를 통한 영양 공급과 수화 또는 다른 형태의 생명 연장을 보류하거나 중단할지를 결정할 때 우리는 우리의 윤리 전통에 따라 스스로 자문해 보도록 요청 받는다. 내 결정이 이 환자에게 어떤 도움이 될 것인가? 이렇게 함으로써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 목적 자체로서든 고통 경감과 같은 다른 목적의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서든 환자의 죽음을 야기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 아님을 확실히 하여야 한다.』<문헌2-출처:미국 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위원회, “영양 공급과 수화:윤리적 사목적 성찰”, Origins 21:44호(1992.4.9), 705-12면>

 

 

기본적인 윤리 원칙들

 

『 … 생명은 언제나 선이지만, 생명을 유지할 의무가 줄어들거나 면제되는 상황들이 있다. … 어떠한 수단을 사용했을 때 환자에게 합리적으로 기대되는 혜택이 환자나 다른 이들에게 지워지는 부담보다 훨씬 더 큰 경우, 그러한 수단의 사용은 윤리적 의무가 된다. … 생명유지 절차의 포기와 중단 사이의 윤리적 구분은 없다. … 생명 연장을 위하여 사용되는 수단이 환자에게 돌아갈 혜택과 비교하여 지나치게 큰 부담이 될 때, 그러한 수단을 반드시 사용할 필요는 없으며 윤리적 선택 사항이 된다. … ‘안락사에 관한 선언’과 교황 비오 12세의 가르침은 그러한 수단의 포기나 중단은 자살 행위가 아니며, 인간 조건을 받아들이고 자연에 순응하는 것으로 여겨야 한다고 명시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생명유지 수단(인공호흡기든 심장박동 조절장치이든 신장투석기든 인공영양공급과 수화이든)의 사용이 윤리적 의무가 아닌 상황에서는 그러한 수단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용납될 수 있다. 그러한 타당한 상황에서 의사 결정자는 살인이나 자살, 자살 방조의 죄가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근원적인 질병의 정상적 경과를 지체시키는 것이 윤리적 의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망의 물리적 원인은 궁극적으로 애초에 그러한 수단의 사용을 필요로 했던 질병이다.』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의 경우에 대한 적용

 

『 …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 또는 회복할 수 없는 혼수상태에 있는 것으로 정당하게 진단을 받은 환자들도 여전히 인간이다. 그러나 그러한 환자들은 인위적인 영양공급과 수화가 없으면 죽음에 이르게 될 치명적인 병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 지속적인 무의식 상태에 있는 환자에게서 인위적인 영양 공급과 수화를 윤리적으로 타당하게 포기 또는 중단하는 것은 그 사람을 유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그 사람이 이 세상 여정의 마지막에 이르렀으며 마지막 발걸음을 내딛는 것을 방해받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인위적인 영양공급과 수화의 포기 또는 중단은 가능한 한 최선의 의학적 개인적 정보를 바탕으로 충분한 숙고를 거친 다음에만 이루어져야 한다.』<문헌3-출처:텍사스 가톨릭 주교 16명(총 18명 가운데)과 텍사스 가톨릭 의료시설협의회의 공동성명, “인공영양 공급과 수화 중단에 관하여”, Origins 20:4호(1990.6.7), 53면>

 

 

정리

 

가톨릭의 윤리신학은 환자의 건강을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 ‘일반적인 치료 수단(ordinary means)’을 사용하는 것은 의무이다. 그러나  ‘특수한 치료 수단(extraordinary means)’의 사용이 정당하기는 하지만 항상 의무는 아니라고 가르친다. 이것은 치료 방법(일반적 치료 수단에 의한)을 정상적 치료 방법(특수한 치료 수단에 의한)과 예외적 치료 방법으로 구분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정상적 치료 방법과 예외적 치료 방법을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이 기준들은 각기 구체적인 경우에 따라서 적용되어야 하는데, 그 중의 일부는 객관적 기준이다. 예를 들어 주어진 요법의 관용이 얼마나 되는가, 그런 요법을 이용하는 것이 적당한가, 그런 요법을 이용하는 문제에 있어서 정의의 대안은 무엇인가 등 요법의 본성에 관한 것들이다. 그 밖의 기준은 주관적 기준이다. 예컨대 어떤 환자에게는 심리적 충격이나 불안이나 불편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 등이다. 치료 방법을 결정할 때에 어느 정도로까지 그 수단을 사용하고 그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적당한가를 확정한다는 것은 언제나 문제가 된다.

 

어쨌든 따라야 할 원칙은 예외적 요법을 실시할 윤리적 의무가 항상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의사는 환자가 그러한 예외적 요법을 거부할 경우 환자의 뜻에 따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이른바 ‘최소한’이라고 부르는 환자를 위한 일반적인 치료 수단을 적용할 의무는 언제나 남아있다. 즉 생명의 유지를 위하여 정상적이며 습관적으로 사용되는 그런 수단, 예를 들어 영양공급이라든가 수혈, 주사 등은 언제나 마땅히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이와 같은 최소한의 치료 수단마저 중단한다는 것은 곧 환자의 생명을 사실상 중단시켜버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간 생명을 보호해야 할 의사의 의무에 관해서 말할 때, 인간 생명이란 단순히 생물학적 생명이 아니라 존엄성을 지닌 인간으로서의 생명이다.”라고 말한 어느 윤리 신학자의 말이 떠오른다. 

 

[월간빛, 2004년 10월호, 이창영 바오로 신부(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사무국장,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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