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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생명칼럼: 장기 기증과 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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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01-10 ㅣ No.584

[생명칼럼] 장기 기증과 이식

 

 

1. 회칙 「생명의 복음」

 

『전적으로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생명의 복음을 선포하는 이러한 영웅적인 행위들은 생명의 복음에 대한 가장 장엄한 경축입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사랑의 가장 높은 단계가 찬란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신비에 참여하는 것이며, 예수님께서는 그 신비 안에서 모든 사람들의 가치를 보여 주시며, 생명이 진지하게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어떻게 그 충만함을 얻게 되는지를 보여 주십니다. 이러한 특출한 순간들보다 훨씬 위에 매일의 영웅적 행위가 있습니다. 이 영웅적 행위는 크고 작은 나눔의 행위들로 이루어지며, 이러한 행위들이 진정한 생명의 문화를 이룩해 냅니다. 이러한 행위들 중에서 특히 칭찬할 만한 예는 바로 윤리적으로 합당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장기 기증입니다. 이것은 때로는 다른 희망이 전혀 없는 환자에게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 심지어 삶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 행해지는 것입니다.』<출처: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생명의 복음’(1995.3.25), Origins 24:42호( 1995.4.6), 718-719면>

 

 

2. 혈액과 장기 기증자들

 

『…저는 여러분의 이러한 솔선수범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러한 행동은 이렇게 나아갈 수 있도록 여러분의 마음을 움직인 활력과 용감한 정신을 보여줍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여러분이 이렇게 한데 모여 하나가 될 수 있게 한 목적, 말하자면 장기를 필요로 하는 형제자매들에게 혈액과 장기를 기증하려는 숭고하고도 칭찬받을 만한 행동을 증진하고 장려하려는 목적을 높게 평가합니다. 그러한 행동은 여러분이 세속적인 이득이나 목적을 바라서가 아니라, 마음에서 기꺼이 우러나서 또한 인간적 그리스도교적 연대를 위하여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칭찬받을 만한 것이 됩니다. 그러한 연대는 복음 메시지의 감동적인 주제이며 실제로 새로운 계명으로 정의되어 온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출처: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혈액과 장기 기증자들’(1984.8.2), The Pope Speaks 30:1호, 1985년, 1-2면>

 

 

3. 여러 윤리적, 법적, 사회적 문제들이 더욱 깊이 있게 검토되어야 합니다.

 

『현대 의학의 눈에 띄는 여러 업적들 가운데 면역학과 외과 수술 기술의 발전은 장기와 조직 이식이 치료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1) 무엇보다도 이러한 형태의 치료는 기증이라는 인간 행위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사실 이식에는 기증자나 일반적으로 그의 가장 가까운 친인척이 되는 기증자의 합법적 대리인의 명시적이고 자유로우며 의식적인 결정이 선행될 것을 전제로 합니다. 장기 기증은 아무 대가 없이 자신의 신체 일부를 다른 사람의 건강과 행복을 위하여 주려는 결정인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기증자의 행동은 이식이라는 의료 행위를 통하여, 사랑과 친교에 대한 우리의 본질적인 소명을 표현하며 자신을 성실히 내어 주는 자기 증여의 행동이 됩니다.

 

사랑과 친교, 연대, 인간 존엄에 대한 절대적 존중만이 장기 이식의 합법적 배경이 됩니다. 개인이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고 이를 완성하는 윤리적 규범들을 준수하면서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자신의 일부를, 자기 몸의 일부를 내어 주려는 자유롭고 의식적인 결정을 할 때 관련되는 윤리적 영적 가치들을 무시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2) 사실상 신체는 언제나 개인의 몸, 인간의 몸입니다. 신체는 단순한 육체적 생물학적 존재로 다루어질 수 없으며, 그 장기나 조직이 판매나 교환의 대상의 되어서도 안 됩니다. 또한 개인은 정당하고 적절한 목적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이나 인격적 완전성에 심각한 위험이나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없이도 살아갈 수 없는 부분만을 기증할 수 있습니다. 생명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장기는 사후에만 기증할 수 있다는 사실은 명백합니다. 그러나 살아서 신체의 일부를 기증하는 것, 곧 사후에 자신의 장기가 사용될 수 있도록 미리 기증하는 것은 이미 여러 경우에 생명을 남에게 내어 주는 위대한 사랑의 행위가 되어 왔습니다.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와 비슷하게 죽어 가는 과정에서 죽음이 어느 모로 극복되고 생명이 회복됩니다.』<출처: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여러 윤리적, 법적, 사회적 문제들이 더욱 깊이 있게 검토되어야 합니다.’(1991.6.20), Dolentium Hominum 3호, 바티칸 출판사, 1992년, 12-13면>

 

 

4. 정리

 

우리나라에서의 장기 이식 수술은 1960년대 후반 처음 시작되어 점차 증가하여 최근에는 연간 1,000여 명 이상이 다른 사람에게 장기를 이식받고 있다. 앞으로도 장기 이식 수술을 희망하는 사람은 점차 많아질 것이다. 이제 장기 이식 수술은 더 이상 특수한 어떤 시험적인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치료의 개념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수술을 희망하는 사람은 많은 반면 공여자가 적기 때문에 기다리다가 사망하는 사람의 수도 적지 않다. 따라서 병원이나 장기 이식 담당 기관에서는 더 많은 장기를 확보하기 위하여 다양한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 존중의 차원에서 장기 공여는 어디까지나 이타주의적 동기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당사자의 자율적인 결정에 근거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장기 확보를 위한 다양한 전략들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모든 장기 이식 수술은 자유로이 수여를 결정하는 공여자와 사랑의 이름으로 받아들이는 수령자 모두에게 선(善)의 견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때 의사는 그가 부딪히게 될 위험, 곧 수술 중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위험과 수술 후의 모든 부작용의 가능성에 대해 알려 줄 의무가 있으며, 현명한 결정을 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장기 이식을 위한 중요한 기준은 인간 자유의 진전과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존경을 지닌 외과 의사의 가능한 결론에 관계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정체성은 생명 연장이나 이식에서 야기되는 가능한 위험들을 능가하며 증진된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장기 이식의 형태는 일반적으로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되는데, 자가 이식(autograft)과 동종 이식(allograft) 그리고 동인자형 이식(isograft)과 이종 이식(xenograft)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자가 이식의 경우에는 적출할 장기가 기증자에게 심각하거나, 회복 불가능할 정도의 손상을 끼치지 않는 것일 때에는 정당하다. 그런데 동종 이식의 경우에는 더 이상 살아 있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시신과 관련된 것이다. 시신은 항상 인간의 사체로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주체자로서의 존엄성과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의 궁극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다. “사체는 용어의 본래 의미상 유일한 권리의 주체인 인격성이 제거된 상태이므로 더 이상 권리의 주체가 아니다. 따라서 그것을 유용한 목적으로, 도덕적으로 하자 없고 고상하게 사용하는 것은 단죄 받을 일이 아니라, 정당화될 수 있는 일이다.” - 1956년 5월 14일, 교황 비오 12세가 이탈리아 각막협회와 맹인연합회 대표들에게 한 훈화 중에서.

 

그러나 장기 적출이 죽음을 유발하거나 재촉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하려면, 장기 적출 대상이 시신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곧 시신으로부터 장기를 적출하는 것은 기증자의 확실한 죽음이 확인되었을 때에만 합법적이다. 따라서 장기 기증자가 시신으로 간주되려면 그 사람이 뇌사 상태, 곧 “모든 뇌의 활동이 회복 불가능한 정지 상태인지를 충분히 확인해야 한다. 완전한 뇌사임을 충분히 확인하면 필요한 시험을 거친 후에 장기들을 적출하고 또한 이식을 위해서 그러한 장치들이 살아 있도록 하기 위해 인공적인 장치를 다는 것은 합법적이다.”- 교황청과학원, 인공적 생명 연장과 죽음의 정확한 순간의 결정에 관한 선언, 1985. 10. 21

 

한 생애 동안 모든 인간의 건강과 생명 자체가 이웃에 대한 봉사를 실행하면서 위험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죽은 후에라도 생명은 이식된 장기의 형태로서 타인을 위한 봉사에 계속적으로 헌신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죽은 후 자신의 장기를 제공할 수 있는 자유의 존중, 장기의 유용성 그리고 가족들의 권리와 그와 관련된 법적인 문제들은 해결되어야 하지만, 윤리적인 견해에서 우리 지상 생활의 마지막이 올바르게 끝을 맺어야 한다면 우리의 장기가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데 사용되는 것을 막을 만한 어떠한 장애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월간빛, 2004년 9월호, 이창영 바오로 신부(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사무국장,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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