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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주교회의, 존엄사법 제정 반대 표명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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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8-01 ㅣ No.673

존엄사법, 안락사에 면죄부 주는 악법


주교회의, '존엄사법 제정 반대 표명' 해설

 

 

- 이기락(주교회의 사무처장) 신부가 8일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강당에서 존엄사법 제정에 반대한다는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주교회의가 존엄사법 제정에 반대한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표명한 이유는 식물인간 상태의 김 할머니가 대법원으로부터 인공호흡기 제거를 판결받은 이후 우리 사회에 가열되고 있는 존엄사 논란에 대해 가톨릭교회의 분명한 입장을 밝히기 위해서다.

 

대법원의 판결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라는 것이었을 뿐 죽음을 의도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대다수 언론과 의료계는 이를 존엄사로 받아들이고, 인공호흡기 제거를 존엄사 시행이라고 간주했다.

 

그러나 이들의 예상과 달리 김 할머니는 인공호흡기를 제거한지 20여 일이 지난 현재(7월 13일 현재)까지 생명을 유지하고 있고,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은 '김 할머니가 왜 빨리 죽지 않고 살아 있느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죽어야 하는데 안 죽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존엄사를 죽음을 목적으로 하는 안락사와 다르지 않게 이해하고 있는 우리 사회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교회가 존엄사법 제정 움직임에 제동을 거는 것은 이같은 현실에서 존엄사법 추진은 겉포장은 어떨지 몰라도 결국은 안락사를 조장하는 방향으로 흐를 소지가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은 어떤 경우에도 끝까지 존중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확고하게 자리잡지 못한 현실에서 추진되는 존엄사법은 여러 가지 이유를 빌미로 결국에는 안락사에 면죄부를 부여하는 악법으로 전락하기 쉽다는 것이 교회 입장이다.

 

 

국내 존엄사법 추진 현황

 

현재 국회에 제출된 존엄사 관련 법안은 두 개다. 하나는 신상진(한나라당) 의원이 지난 2월에 발의한 '존엄사법안'이고, 또 하나는 5월에 김세연(요한, 한나라당) 의원이 발의한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권리에 관한 법안'(이하 '자연사법안')이다.

 

존엄사법안은 △ 말기환자에 대한 정의 △ 국가의료윤리심의위원회 설치 △ 말기환자의 연명치료 선택권 △ 연명치료 보류 또는 중단의 이행 △ 연명치료 등에 참여한 의료진의 책임 면제 △ 적극적 안락사 등 처벌 △ 말기환자의 자기결정에 반하는 연명치료 등 내용을 담고 있다. 자연사법안은 존엄사법안에 비해 연명치료 중단 요건을 좀 더 구체화하고, 미국 오레건주의 존엄사법이 안락사를 미화한다는 지적에 따라 존엄사와 안락사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다.

 

쟁점이 되는 안락사 부분을 살펴보면, 존엄사법안은 말기 환자 뜻에 반해 연명치료를 중단하거나 보류하는 경우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 안락사 금지 규정을 포함시키지 않는 반면 자연사법안은 약물 주사, 물리적ㆍ화학적 방법을 사용해 환자가 자살토록 돕는 행위(안락사)를 금한다. 존엄사법안은 안락사 금지에 소극적이라는 인상을 줄 여지가 있는 것이다.

 

또 존엄사법안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반해 의사가 연명치료를 계속하는 경우 처벌한다는 규정을 담고 있다. 이는 의료진이 양심적 판단에 따라 연명치료 중단을 거부해도 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이는 환자 생명권을 지키려는 의사의 양심을 억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자연사법안은 그와 같은 조항이 없다.

 

 

이탈리아의 '인간 죽음에 관한 법안'

 

지난 3월 이탈리아 상원을 통과한 '인간 죽음에 관한 법안'은 말기환자의 죽음이 아닌 생명 존엄성을 지향하는 내용으로 눈길을 끌었다.

 

이 법안은 먼저 과학 발전과 사회 이익 앞에서 인간 존엄성과 인간 생명의 불가침성을 선언한다. 이 법안에 따르면 환자는 사전지시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표명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말기 환자에 대한 의사의 임무는 '치료'뿐이다. 의사는 안락사나 자살에 도움이 되는 행위를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환자 또한 그런 행위를 의사에게 요구할 수 없다. 환자는 지나치거나 실험적인 치료는 거부할 수 있으나 수분과 영양 공급 등의 중단을 요구할 수는 없다.

 

사전지시는 서류로 작성해야 하고, 5년간 유효하며 갱신할 수 있다. 환자 뜻에 따라 언제든 전체 또는 부분적으로 내용을 바꿀 수 있다. 환자는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대리자를 지명할 수 있다. 대리인들은 오직 환자의 건강을 위해서만 지명돼야 한다. 대리인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환자에게 가장 좋은 완화치료를 공급하게 하는 것이고, 의료 집착과 치료 중단 그리고 안락사를 막는 것이다. 응급사태의 경우 사전지시는 유효하지 않다.

 

결론적으로 이 법안은 인간 생명을 인위적으로 끊을 수 있는 모든 길목들을 차단하고 있다. 환자는 자살이나 안락사를 요구할 수 없으며, 모든 의료행위는 환자 생명을 위해서만 허용된다. 그 누구도 인위적으로 인간 생명에 종지부를 찍지 못하게 한 것이다.

 

 

가톨릭교회의 대안

 

교회가 존엄사법 제정을 반대하는 또다른 이유는, 죽음이 임박한 말기 환자에 대한 치료 여부를 일반 법률 규정으로 정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환자 개개인의 상태는 너무나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법이 아무리 정교하다 하더라도 환자 개개인에게 적용될 수 있는 조문을 다 담을 수는 없다. 의료계 일각에서 '복잡하고 다양한 변수를 지닌 의료행위 관련 법률은 가급적 선언적 원칙만 세우고, 구체적 대응은 일선 현장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

 

의료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의사의 전문성과 양심이다. 환자의 상태에 관해 가장 잘 알고 환자를 위해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이들은 의료진이므로 무엇보다 이들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의료진조차도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여부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때 필요한 것이 담당 의료진과 환자 보호자, 원목팀, 법률팀, 사회복지팀 등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병원 생명윤리위원회다. 법률에 의지하기보다 병원 생명윤리위원회를 활성화하자는 것이 교회 입장이다. 위원회 결정은 환자가 자연 수명을 다할 때까지 생명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내려져야 함은 물론이다.

 

교회가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과 관련된 법 제정을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죽음을 전제로 하는, 죽음을 의도하는 존엄사법은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생명의 훼손이 아닌 생명 존엄성 존중에 토대를 둔 법이라면 긍정적으로 검토해볼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면 앞서 언급한 이탈리아 법안이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

 

이동익(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총무) 신부는 "죽음을 의도하는 내용의 사전의료지시서가 주류를 이루는 상황에서 존엄사 논의는 곧 안락사 논의나 마찬가지"라며 "안락사를 조장하는 존엄사법 제정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평화신문, 2009년 7월 19일, 남정률 기자]

 

 

'존엄사' 용어 대신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써야 - 한국보건의료연구원 토론회서 제안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과 '존엄사'라는 용어가 혼용되면서 발생하고 있는 사회적 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존엄사'라는 주관적 용어 대신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이라는 객관적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원장 허대석)이 10일 서울 종로구 원남동 연구원 대회의실에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개최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존엄사는 이른바 안락사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오해될 소지가 크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이같이 주장했다.

 

'개념 및 용어 통일'이라는 부제로 열린 이날 토론회는 김 할머니 인공호흡기 제거 이후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존엄사 문제가 상당 부분 용어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인식에 따라 용어 사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자 마련된 자리이다.

 

배종면(한국보건의료연구원) 실장은 발제를 통해 "많은 언론에서 사용한 것과 달리 김 할머니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는 존엄사라는 표현이 없다"고 지적하면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과 관련된 쟁점 개념으로 △소극적 안락사 △존엄사 △자연사 △연명장치 유보와 제거 등 4가지를 들었다.

 

배 실장은 "소극적 안락사와 자연사라는 용어는 혼란을 가중시키기에 더 이상 사용해서는 안 된다"며 "존엄사는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으로 표현할 때 용어의 의미를 분명하게 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진교훈(토마스 데 아퀴노) 서울대 명예교수는 토론에서 "소극적 안락사 역시 정도의 차이일뿐 살인이기는 마찬가지이기에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죽음을 앞당길 수도 있는 행위까지 존엄과 연계시키는 존엄사라는 용어는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김철중(조선일보) 의학 전문기자는 "존엄사는 '품위 있는 죽음'을 통칭하는 말로, 개인 가치관에 따라 약물 투여 등으로 조기 사망에 이르는 것도 존엄사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며 존엄사라는 용어를 쓰지 말 것을 제안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이날 1차 토론회에 이어 '생명윤리'와 '의사결정 절차'를 부제로 2차(17일) 및 3차(24일) 토론회를 개최한 후 토론회 결과를 보고서로 제출할 예정이다. [평화신문, 2009년 7월 19일, 남정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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