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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회칙 사십주년: 사십주년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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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29 ㅣ No.669

[문헌 풀어 읽기] “사십주년” - “사십주년”의 재발견

 

 

오늘의 세계적 금융위기와 실물경제 위축의 적신호는 비오 11세 교황께서 회칙을 발표하시던 시기와 아주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회칙 “사십주년”(1931년 5월 15일, 비오 11세) 은 교회의 첫 사회회칙인 “새로운 사태”(1891년 5월 15일, 레오 13세) 반포 40주년을 기념하고자 발표한 문헌이다. 그럼에도 두 번째 사회회칙 “사십주년”은 “새로운 사태” 못지않은 위대한 문헌으로 평가되고 있다. “사십주년”은 첫째, 신학적으로 40의 의미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둘째, 정치적으로 공산주의, 나치, 파시스트 등 전체주의의 발흥을 경계하고 있고, 셋째, 경제적으로 1929년의 세계대공황의 원인과 의미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대성을 인정받고 있다.

 

 

현 위기에 “사십주년”은 최적의 교과서

 

이른바 미국발 세계금융위기의 실상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강구하는 데 “사십주년”의 내용을 이해하여 현 위기에 대처하는 것보다 더 현명한 길은 없다. 첫째, 세계적 금융위기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편승하여 더 빠르게, 더 넓게 퍼져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둘째, 이미 일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축통화 쟁탈전이나 공권력 개입의 정도를 둘러싼 갈등은 저마다 나름대로의 처방 제시와 함께 진정한 해결책 모색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셋째, 1929년의 경제대공황 역시 처음에는 은행 등 금융기관의 파산에서 시작하여 생산과 소비의 위축, 기업 도산과 노동자 실업으로 이어졌으며, 이것이 급격한 실물경제 위축을 초래하여 경제대공황의 재앙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사십주년”은 최적의 교과서이기 때문이다.

 

이미 세계적 차원에서 폭넓은 신용위기의 소식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으나, 일부 민감한 분야에서의 실물경제 둔화의 징표 역시 연이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같은 악순환의 고리는 예외 없는 모두의 재앙임을 우리는 1929년의 경험에서 배워야 한다.

 

고삐 풀린 자유시장 경제의 잘못을 교회는 항상 경계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것이 신자유주의의 탈을 쓰고 통제를 모르는 시장경제로 재현되고 있다. 경제의 속성은 변화인데 통제를 모르는 세계화는 이 변화의 정도를 증폭시켜 예측불가의 파국을 초래하였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그처럼 만병통치약으로 주장되던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기치에 편승하여 순식간에 세계를 금융위기의 재앙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앞으로 현실화될 실물경제의 파탄과 그로 인한 가공할 혼돈이다.

 

교회의 가르침은 자유와 이기심에 바탕을 둔 시장경제와 평등과 사유재산 철폐를 바탕으로 한 배급경제를 모두 거부한다. 이러한 기본입장에서 회칙 “사십주년”은 처음으로 경쟁 ? 임금 ? 이윤 등에 입각한 시장경제가 비록 원칙적으로는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나지만 제대로 통제된다면 그런대로 교회의 가르침과 공존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몇 가지 단서를 전제하고 있지만 처음으로 경제현상을 인정하고 시장경제의 장점을 평가한 것이다.

 

 

교회가 제시하는 보조성의 원리

 

사람들은 각기 다양한 신념과 다양한 방식으로 살고 있다. 한 극단은 나만이 중심이며 다른 사람이나 사회단체는 오로지 나만을 위해 존재할 때 의미를 가진다는 주장이고 다른 극단은 집단만이 최우선이며 개인은 집단을 위해 존재할 때 비로소 의미를 지닌다는 주장이다. 첫째 유형을 개인주의라 부르며, 두 번째 유형을 집단주의라고 부른다. 경제 영역에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사회주의 배급경제로 구별되기도 한다.

 

앞에서도 보았듯이 대조적인 두 이념 체계는 교회가 근본적으로 모두 거부하고 있다. “사십주년” 회칙은 ‘보조성의 원리’를 정리함으로써 전혀 차원이 다른 해결책을 제시한다. 교회는 인간 사회의 구조를, 바탕에는 개인이, 꼭짓점에는 국가가, 그리고 그 사이에는 단계적으로 가정,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의료, 종교단체 등 자생적인 중간 사회집단이 자리하는 피라미드형으로 파악하고 있다.

 

보조성의 원리에 따르면 이 같은 사회구조 안에서, 첫째, 개인이나 가정 등 기저변에 더 작은 사회단체가 최우선적 결정권을 가진다. 둘째, 더 작은 사회단체가 스스로 처리할 능력이나 의사가 없을 때 비로소 더 큰 사회는 더 작은 사회단체의 현안에 개입할 수 있다. 셋째, 더 작은 사회단체가 스스로 처리할 능력이나 의사를 갖추게 될 때 그 즉시 더 큰 사회의 개입은 중단됨으로써 더 작은 사회단체의 독자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이것이 생명의 역동성을 북돋는 길이요, 인간 존엄성을 제대로 대접하는 길이며, 진리와 정의를 바탕으로 인간사회를 건설하는 질서이기 때문이다.

 

 

경제와 윤리의 관계

 

경제와 윤리는 상호무관 내지 상호배척 관계로 이해하고 있으나, 실상을 알고 나면 그 직결성은 쉽게 수긍된다. 예를 들면 상품의 가치는 공장에서 생산된 순간이나 진열대에 전시될 때가 아니라 사람이 그 상품을 사용할 때 비로소 실현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상품의 사용목적의 윤리성에 따라 가치는 실현되는 것이다. 부엌칼의 진가는 주부가 가족의 식단을 마련하려고 쓸 때 나타나지만 강도가 흉기로 사용할 때는 오히려 그 진가는 파괴되는 것이다. 곧 경제 재화와 용역의 진가는 인간이 사용할 때, 그리고 윤리적으로 정당한 목적에 사용할 때 비로소 실현되는 것이다. 이처럼 경제와 윤리의 관계는 절대적이다.

 

모든 상황이 건실하고 윤리적으로 정당함에도 위기는 초래될 수 있다. 근거 없는 소문이나 심리적 요인으로 공황상태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이 하나의 예이다. 심리적 불안은 신뢰성 회복으로 치유될 수 있으며 근거 없는 소문은 윤리성의 회복으로 진정될 수 있다. 신뢰성과 윤리성의 적절한 치유책을 마련하고 제시하는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은 따라서 최적의 해결책일 수밖에 없다.

 

투자의 귀재, 세계 최고의 부자 등으로 알려져 있는 워렌 버핏은 평생 검약과 절제의 삶을 살고 있다. 또 최근 외신에 따르면 하버드 대학 경제학과 신임교수들 대부분이 행동경제학 전공자들이라는 소식이다. 인간을 무시하거나, 인간을 모르고 어떻게 경제를 이해할 수 있는가에 대한 반성의 결과이다. 교회의 가르침은 시종일관 인간이 경제의 내용이며, 목적이고, 주체라고 강조하고 있다.

 

 

정직은 신뢰의 바탕

 

외신까지도 지도자의 신뢰성 회복을 걱정하는 시점이다. “한미 통화 상호교환협정(10월 30일)”이 정부가 주장하는 외환보유고의 1/8에 불과한 300억 달러임에도 외환과 주식시장의 동요를 진정시킨 사실로 볼 때 현 경제시국을 단순히 일부의 오판이나 그릇된 소문에서 비롯된 결과로 치부하기에는 현 정부에 대한 국내?외 불신이 너무 깊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신뢰는 정직을 바탕으로 성립하며, 정직성은 언행이 일치할 때 비롯하는 것이다.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오늘의 경제위기는 경제질서가 인간에 봉사하는 본래 위치를 회복할 때 치유될 수 있다. 인간이 재산축적의 수단이 되거나 이념적 우월성 입증의 방편으로 전락할 때 참된 사회질서 재건은 불가능해질 뿐이다. 경제와 사회질서가 인간에게 봉사하는 역할을 수행하려면, 더불어 그리고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책임을 완수할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곧 연대성과 보조성을 바탕으로 인간의 존엄성은 수호되며 공동선이 구현되는 것이다.

 

시시각각으로 급변하는 경제현황을 고려할 때, 이 글을 준비하는 시점과 활자화되어 읽혀지는 시점의 차이 때문에 자칫 이 글이 시의성 없는 비현실적 내용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진단과 해결방안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이 시공을 초월한 진리임을 알기에 그 같은 가정은 기우에 그치리라 믿는다.

 

* 김어상 토마스 데 아퀴노 - 서강대학교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위원,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노동사목위원회 전문위원, 사회정의시민행동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노동의 인간화”, “사회교리”가 있다.

 

[경향잡지, 2008년 12월호, 김어상 토마스 데 아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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