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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성경의 주거권과 한국 부동산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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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26 ㅣ No.660

[경향 돋보기] 성경의 주거권과 한국 부동산 문제

 

 

성경의 주택법

 

성경의 주택법은 대상을 성 안의 도시 주택과 성 밖의 농촌 주택, 그리고 레위인의 주택으로 나누어 규정한다(레위 25,29-33 참조). 먼저 성 안의 도시 주택은 사고 판 지 1년 안에 판 자가 무르지 않으면 영원히 산 자의 소유로 확정된다. 이 규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으나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은, 나그네들과 이방인 개종자들의 정착을 장려하고 그들의 주거권을 보장하고자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나그네들과 이방인 개종자들은 약속의 땅에서 ‘토지 무르기법’과 ‘희년의 토지 회복법’에 따라, 이스라엘 지파들의 각 가족들한테서 토지를 사더라도 도래하는 다음 희년까지만 한시적으로 살 수 있었고, 또 희년 전에 언제든지 판 자의 가까운 친족이나 판 자 자신이 토지 계약을 무를 것을 요구하면 반드시 토지를 물러주어야 했기 때문에 한마디로 토지를 영원히 살 수 없었다. 그래서 나그네들과 이방인 개종자들은 성 밖의 넓은 토지가 필요한 농경과 목축은 할 수 없었을 것이고, 상업과 수공업 등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주택은 상업과 수공업에 대한 수요가 큰 성 안의 도시 주택이었을 것이다.

 

이 경우 그들의 도시 주택은 주거공간이면서 동시에 상업과 수공업을 할 수 있는 노동의 공간, 곧 일터가 된다. 그런데 만약 이 도시 주택마저도 토지법의 규정과 마찬가지로 무르기법과 희년의 회복법이 적용되어, 도래하는 다음 희년까지만 주택을 살 수 있고, 또 희년 전에 언제든지 무르기 계약을 요구받을 때 물러주어야 한다면, 그들의 정착과 주거는 크게 위협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그네들과 이방인 개종자들의 정착을 장려하고 그들의 주거권을 보장하고자 성 안의 도시 주택은 무를 수 있는 유효기간을 오직 1년으로 제한하고, 1년 안에 무르지 못하면 희년이 오더라도 판 자에게 돌려주지 않고 영원히 산 자의 소유로 확정한 것이다.

 

그 다음 성 밖의 농촌 주택과 레위인의 주택은, 토지와 마찬가지로 도래하는 다음 희년까지만 한시적으로 사고 팔 수 있고, 희년이 오기 전에 언제든지 무르기가 가능하다. 이것은 성 밖의 토지를 평균 분배받은 이스라엘 12지파와 이 토지 평균 분배에서 제외된 레위 지파의 주거권을 보장하려는 규정이다. 또한 성경에는 이와 같은 주택법 직후에, 극빈층을 홈리스 상태에 내버려 두지 말고 맞아들여 주택을 제공하고 함께 살라는 규정이 등장한다(레위 25,35 참조).

 

성경의 주택법은 나그네들과 이방인 개종자들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성 안) 도시 주택법’, 이스라엘 12지파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성 밖) 농촌 주택법’, 레위인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레위인 주택법’, 그리고 극빈층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극빈층 주택제공법’으로서, 한마디로 만민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규정이다.

 

그런데 주거권을 넓은 의미에서 주택에 대한 권리를 넘어 경제적 생산활동을 할 수 있는 일터에 대한 권리까지 포함한다고 본다면, 성경에서 주거권의 기초는 바로 토지권이라고 할 수 있다. 땅이 있으면 집을 짓기가 쉽고, 또 자영 노동을 하여 경제적 자립을 이룰 수 있다. 반면에 땅이 없으면 집을 지을 수도 없고, 생계를 위해 다른 사람 밑에 품꾼으로 들어가 품삯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경제적 자립을 이루기는 매우 어렵다. 그럼 이와 같이 주거권의 기초가 되는 성경의 토지법을 자세히 살펴보자.

 

 

성경의 토지법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토지를 분배해 주실 때, 지파별 · 가족별로 그 수를 따라 수가 많으면 그만큼 많은 토지를, 수가 적으면 그만큼 적은 토지를, 곧 1인당으로 환산하면 거의 균등하게 분배하셨다(민수 33,54 참조). 곧 토지를 평균 분배해 주셨다. 그리고 토지의 평균 분배 상태를 보호하려고, 사회적 약자의 토지를 빼앗아 지계표(地界標, landmark : 평균 분배받은 땅의 경계를 표시하려고 세운 돌이나 나무)를 옮기는 것은 저주받을 죄악임을 경고하셨다(신명 27,17 참조).

 

그리고 토지의 영구 매매를 금지하시며(레위 25,23 참조), 다만 토지 사용권을 다음 희년까지만 한시적으로 매매하는 것을 허용하셨다(레위 25,14-17 참조). 토지 사용권을 다음 희년까지 한시적으로 팔았을 경우에도, 희년 전에 언제든지 가까운 친족의 도움으로 또는 자신의 힘으로 토지를 무를 수 있게 하셨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도 최후에는 도래하는 희년에 토지권을 회복할 수 있게 하셨다(레위 25,24-28 참조). 이 모든 것은 토지의 평균 분배 상태를 회복하고 보호하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하느님의 뜻을 무시하고 힘있는 자들이 탐욕 때문에 토지와 주택을 독점하는 것은 하느님의 심판을 받을 중대범죄였다. 그래서 구약시대 유대왕국의 부동산 소유 양극화 현실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불행해라, 빈 터 하나 남지 않을 때까지 집에 집을 더해가고 밭에 밭을 늘려가는 자들! 너희만 이 땅 한가운데에서 살려 하는구나.”(이사 5,8)라고 선포한 것이다. 요컨대 성경의 토지법은 토지 소유 양극화를 부정하고 토지 평균 분배를 지향한다.

 

 

예수님의 ‘초과 소유 부동산 환원 명령’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의 길을 묻는 부자 청년에게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이때 “그 사람은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마르 10,22). 여기서 ‘재물’로 번역한 그리스 원어는 ‘크테에마’(κτημα)인데, 이 단어는 하나니아스와 사피라가 팔아 그 판 값의 일부를 감추었다고 할 때 바로 ‘땅’으로 번역된 단어이다(사도 5,1 참조).

 

당시에 재물의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바로 토지였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고 하셨기에 돈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 ‘재물’은 팔 수 있는 것, 대표적으로는 토지이고, 그 밖에 주택 등을 포함할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 율법을 무시한 분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할 때, 자기 몫을 초과하는 토지, 고가 다주택의 초과 소유 주택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는 말씀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말씀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문제(마르 10,23-25 참조)와 내세에 영원한 생명을 받는 문제(마르 10,29-30 참조)와 곧바로 연결된다. 신자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가 이 문제라고 한다면, 예수님의 ‘초과 소유 부동산 환원 명령’은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어떤 신학자는 이 명령은 특수하게 그 부자 청년에게만 주신 것이지 모든 부자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것은 결코 아니니까 안심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부동산 부자 그리스도인들이 이 명령을 알지 못하거나 자신한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해석해서, 또는 제대로 알더라도 소유욕 때문에 이 명령에 불순종해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내세에 영원한 생명을 받지 못하게 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부동산 부자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안전한 길은 초과 소유 부동산 환원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 이것은 필자가 부동산 부자들을 시기하고 증오해서 하는 말이 결코 아니다. 하느님 나라와 영원한 생명이 절대적인 것이지, 재산은 그 앞에서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다. 소유에 집착하여 하느님 나라와 영원한 생명을 놓치게 된다면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이것을 부동산 부자 그리스도인들에게 알려야 한다.

 

이 메시지는 부동산 부자 그리스도인들이 싫어할 수 있기 때문에 설교자로서는 큰 부담이 따를 수 있다. 그러나 부동산 부자 그리스도인들을 진실로 사랑한다면 반드시 전해야 한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이 명령을 전한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사도 2,42), 순종하였다. “그들 가운데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소유한 사람은 그것을 팔아서 받은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고,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곤 하였다”(사도 4,34-35). 이 과정에서 사도들은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주셨다”(사도 2,47).

 

 

한국 부동산 문제와 그 대안 헨리 조지의 ‘지대조세제’

 

주택과 토지가 본연의 목적인 주거와 생산의 공간이 되지 않고 투기의 장으로 전락하는 현실은 서글프다. 매우 심각한 한국 부동산 문제의 대안을 찾으려면 원인을 먼저 규명해야 한다. 대안은 바로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부동산 문제는 크게 소유 양극화와 투기, 버블(거품가격)이라는 3대 문제로 집약된다. 부동산 불로소득은 바로 이 3대 문제의 핵심원인이다.

 

부동산 불로소득이 존재하면 많은 사람이 이를 노리고 부동산 매입에 나서는데, 이때 기존에 많은 부동산을 소유한 계층이 그렇지 못한 계층에 비해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더 쉽게 받아 부동산을 매입할 수 있기 때문에 부동산 소유 양극화가 더욱 악화된다. 이 과정에서 부동산 투기가 심화되고 정상가격을 초과하는 거품가격, 곧 부동산 버블이 발생한다. 이처럼 부동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대안은 한국 부동산 3대 문제의 근원인 부동산 불로소득을 근절하는 것이다.

 

그런데 부동산 불로소득의 본질은, 토지는 물론이고 아파트와 같은 주택의 경우도 바로 토지 불로소득에 해당된다. 아파트 투기의 진정한 원인은 건물이 아니라 건물이 입지한 토지에 있다. 일반적으로 건물은 시간이 지나면서 낡아가므로 가치가 떨어지는 반면, 건물 아래 토지는 인구증가와 사회발전으로 가치가 상승하는데, 아파트 투기는 바로 이 상승하는 토지가치를 불로소득으로 얻으려는 데서 일어나는 것이다. 부동산 불로소득은 바로 토지 불로소득인 것이다.

 

부동산 정책의 핵심이 토지 정책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토지불로 소득을 제거하는 최선의 정책은 ‘토지보유세’이고, 토지보유세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은 ‘지대세’이다. 토지공개념의 원조인 헨리 조지(1839-1897년, 미국)는 대표작 “진보와 빈곤”(Progress & Poverty, 1879)에서, 지대(地代, 1년간 토지사용료)를 과표(과세표준)로 하고 세율을 거의 100%로 하는 지대세를 징수하는 대신, 경제활동을 위축시키는 다른 세금은 그만큼 감면하는 ‘지대조세제’라는 성경의 제도를 주장하였다.

 

지대조세제를 한국에서 실행하여 1년간 약100조 원으로 추정되는 지대를 세금으로 걷는 대신, 100조 원만큼 경제활동에 대한 세금, 예컨대 취득 · 등록세, 양도소득세, 부가가치세, 소득세 등을 감면한다면, 부동산 불로소득을 근절하여 한국 부동산 3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침체된 경제를 활성화시켜 일자리를 창출하여 실업과 비정규직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부동산 불로소득을 얻으려고 부동산 투기를 해서는 안 된다. 성경의 주택법과 토지법의 정신을 구현하여 만민의 주거권을 보장하고, 부동산 소유 양극화 현실을 타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부동산 부자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초과 소유 부동산 환원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나아가서 우리 사회에 지대조세제와 같은 성경적인 제도가 구현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경향잡지, 2007년 1월호, 박창수(‘성경적 토지정의를 위한 모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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