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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생명의 문화: 의료계의 연명치료 중단 지침(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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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9-28 ㅣ No.690

[생명의 문화] 의료계의 연명치료 중단 지침(안)


할머니의 인공호흡기가 준 교훈, 뇌사 상태라도 심폐사 때까지 연명치료 계속 필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입원중인 76살 김 할머니는 인공호흡기의 도움 없이 석 달째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언론 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진 대로, 대법원 판결에 따라 지난 6월 23일 할머니의 인공호흡기가 제거됐다. 당초 병원 측은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고 짧으면 30분, 길어도 3시간 이내에 할머니가 사망할 것으로 예상했다.

 

김 할머니의 사례는 1975년 미국의 카렌 퀸란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인공호흡기가 제거되면 곧 사망할 것으로 여겼던 당시 21살 백인 여성 카렌은 놀랍게도 사망하지 않았고, 1976년부터 1986년까지 무려 10년 동안 생존했다. 그 기간에 카렌은 관(管)을 통해 물과 음식물을 공급받았고 현재의 김 할머니도 그런 상태에 있다.

 

두 사례는 가톨릭교회의 가르침과 부합한다. 주입되는 영양분, 수분을 소화시키고 흡수할 생리적 기능이 있다면 그 환자가 의식이 있든 없든, 영양 공급과 수분 공급은 지극히 자연적인 수단이 되므로 이때에 영양과 수분 공급의 중단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가톨릭교회 입장이다.

 

김 할머니 사례가 공론화되자 영양 및 수분 공급의 중단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필자가 관측하기로, 이 쟁점에 관해 가톨릭교회와 의료계가 서로의 입장 차이를 점차 좁혀가고 있는 것 같다.

 

지난 6월 '서울대학교병원의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판정 지침(안)' 내용이 공개됐다. 지난 달에는 대한의사협회ㆍ대한의학회ㆍ대한병원협회 3개 단체가 공동으로 마련한 '연명치료 중지에 관한 지침(안)'이 국회에서 공청회에 부쳐졌다.

 

내용을 살펴보면 두 지침(안) 모두 의료진이 말기 환자의 영양과 수분 공급을 중단하는 것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말기환자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의료계와 가톨릭교회 사이에 근본적인 입장차가 없음을 김 할머니 사건을 통해 이미 확인한 바 있다.

 

이러한 진전에도 불구하고 이견들이 말끔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두 지침(안)이 병원윤리위원회에 많은 짐을 떠넘기고 있음이 엿보인다.

 

말기 환자, 그 중에서도 식물상태의 환자에 대해 서울대병원의 지침(안)이 병원윤리위원회의 결정으로 인공호흡기 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하고, 의사협회 등의 지침(안)이 병원윤리위원회가 동일한 상태 환자의 영양 및 수분 공급 중단마저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점 등이 그것이다.

 

한편, 서울대병원 지침(안)에 명시된 대로 영양공급 등 '통상적' 연명치료에 의존하는 식물상태에 대한 연명치료 결정을 위해 의료진이 법원의 판단을 따로 구한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실제로 1980년대 미국에선 법원이 식물상태의 환자에게 물과 음식물 공급을 중단할 것을 허용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낸시 크루잔의 사례가 있었고, 2005년에는 법원 판결로 환자의 급식 튜브를 제거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테리 시아보의 사례가 있었다. 이 두 판결에 대한 로마 교황청과 미국 가톨릭교회의 입장은 분명한 '반대'였다.

 

지난 5월 김 할머니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윤리적으로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는 견해를 밝혔던 한국 가톨릭교회지만, 우리 법원이 미국 법원처럼 말기 환자의 영양 및 수분 공급을 중단할 것을 명령한다면, 가톨릭교회는 불가피하게 법원과 판단을 달리하게 될 것이다.

 

사족(蛇足) 한마디 덧붙인다. 앞서 언급한 두 지침(안)은 연명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질환 상태로 말기 암 뿐 아니라 뇌사 상태도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현행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은 뇌사를 사망으로 간주하지 않고 오직 장기 기증을 할 경우에 한해 이식용 장기를 적출한 후 뇌사자에게 사망을 선고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므로 현행법에 따르면 의학적으로 뇌사 상태에 이른 환자라 할지라도 장기 기증을 하지 않는 한 그가 심폐사에 이를 때까지 인공호흡기 등의 연명치료를 계속해야만 한다.

 

이렇게 놓고 볼 때, 의료계의 지침(안)은 현행 법률을 무력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인 바 앞으로 논란의 불씨가 되지 않을까 저어된다.

 

[평화신문, 2009년 9월 27일, 구영모 교수(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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