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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교회와 생명: 자살의 급등과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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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9-23 ㅣ No.687

[경향 돋보기 - 교회와 생명] 자살의 급등과 원인

 

 

지난해 말 고 최진실 씨 등 유명 연예인의 잇단 자살로 온 나라가 발칵 뒤집어졌고 날마다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에 이들의 죽음과 원인을 둘러싸고 각종 추측이 난무하였다. 그런데 여기에 올 4월 유명인 중의 유명인, 지고의 지도자이셨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신 것이다. 전대미문의 너무나 비극적이고 충격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냉철하게 말하자면 유명인 개개인에 대한 이러한 반응은 호들갑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이들 유명인들이 자살한 날을 포함하여, 날마다 33명의 국민이 목숨을 끊었고 해마다 모두 1만 2,000여 명의 자살자가 있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자살이 우리 국민의 네 번째 사망원인으로 부상했고 우리나라 자살률(인구 10만 명당 24.8명)이 OECD 국가 가운데 제일 높다는 것이다. 지난 몇십 년 동안 세계 1위를 고수했던 헝가리보다, 자살이 매우 높은 나라로 알려진 일본보다 높다니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1990년대 초만 해도 자살률이 인구 10만 명당 10명 미만이던 것이 2007년에는 24.8명으로 치솟았고, 1년에 3,000여 명이었던 자살자 수가 4배로 뛰었으니 가히 자살왕국이라 불릴까 두렵다. 참으로 애통하고 소름끼치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연령별 지역별로 보면

 

연령별 자살통계에서 두드러진 것은 자살 사망자가 40대와 노년기에 제일 많다는 것이다. 가장 활동적인, 가장 생산적인 40대의 정신건강 문제, 가장 높은 직업상 스트레스와 자아능력의 특별한 취약성이 의심되며, 노인인구의 급증과 이에 따르는 노인문제에 대한 효과적 대책의 결여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

 

자살의 지역별 분포에서 의외의 소견은 울산, 서울, 광주 등 광역시는 낮았고, 강원, 충남, 충북 등 지방과 농촌이 높게 집계된 것이다. 이는 아마도 노인인구가 지방에 많다는 점과 우리나라 자살방법으로 두 번째인 농약에 의한 자살이 농촌지역에서 쉽게 일어나는 것과 관계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흔한 자살방법은 목맴이고 세 번째는 투신이다.)

 

 

자살 급등을 어떻게 이해할까?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여 잘살게 되었고 세계가 주목하고 부러워하는 성공사례가 아니던가. 아이러니컬하게도 바로 이 성공신화가 자살률의 급격한 상승의 원인이라는 점이다. 우리 사회는 지난 40-50년간 서양 사회가 300여 년에 걸쳐 이룩한 근대화를 따라잡았을 뿐 아니라, 고도의 정보기술 사회로 앞서나가면서 기적적인 경제성장과 사회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런 초고속 성장에 수반하는 사회문화적 변화는 몇 가지 중대한 문제를 야기하였다.

 

첫째, 우리의 가치관을 바꾸어놓았다. 황금만능주의, 향락지상주의, 외형적 가치추구는 우리 삶의 목적과 의미, 우리의 정체성을 찾기 힘들게 만들었다. 따라서 경제적 실패나 사회적 성공을 이루지 못하면 곧바로 절망과 삶의 포기로 이어진다.

 

둘째, 경쟁적 성취위주 사회로의 전환은 우리 모두 극심한, 때로는 견딜 수 없는 스트레스를 경험하게 하였다.

 

셋째, 가족제도가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변화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혼율의 증가로 핵가족마저 해체되고 있다. 가정이 정서적 사회적 지지의 기능을 잃고 있는 것이다.

 

넷째, 부모들은 자녀들의 좌절과 고난을 견디어내는 인내력, 의지력, 분노조절 능력을 길러주지 못하고 있다. 심약하고 자기중심적이어서 조그만 위기와 좌절에도 화내고 절망하고 포기한다.

 

다섯째, 생명에 대한 경외감과 존중감이 약화되었다. 고난이나 불행에도 ‘악착같이 살자.’ 같은 삶에 대한 집착이나 ‘이게 다 내팔자지.’ 같은 운명론적 수용태도도 자취를 감추었다.

 

여섯째, 최근 우리나라가 IT강국이 됨으로써 대중매체는 신속하고 자세하게 자살보도를 전하며 특히 청소년층에서 모방자살을 일으키고, 인터넷의 각종 자살 사이트는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쉽게 자살시도를 유도하거나 ‘동반자살’을 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일곱째, 우리나라의 급속한 고령화는 노인세대를 새로운 세대로 부상시켰고 이들의 생활을 보장해 줄 복지제도의 미비와 핵가족화로 인한 가족으로부터의 소외는 자살 위험성이 가장 높은 연령군으로 만들었다. 노인인구는 전체인구의 10%이나 노인이 자살자의 30%를 차지한다.

 

이상의 우리 국민의 가치관, 태도의 변화, 경제-사회구조의 급속한 변화는 우리 사회가 분명 잘사는데도 행복지수는 떨어지고 급격한 자살률 증가의 토양이 된 것으로 보인다.

 

 

자살 시도자의 심리적 동기는?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의 심리적 동기는 다음의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째, 견딜 수 없는 고통과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로부터 도피성 자살이다. 둘째, 풀기 힘든 문제의 해결책으로서 자살이다. 셋째, 대인분노와 보복심리에 따른 자살이다. 넷째, 실패와 욕구좌절, 자존감의 상처에 대한 자기처벌로서 자살이다. 다섯째, 가까웠던 죽은 친족과의 재결합을 위한 자살이다. 여섯째, 생물학적, 정신의학적 원인에 따른 자살이다.

 

이상에서 몇 가지 흔한 자살심리를 나열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자살심리가 모든 자살 시도자의 심리를 다 설명하지 못하며 서로겹쳐질 수도 있다. 공통적인 심리상태는 절망과 무기력이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와 ‘내 힘으로 해결할 길이 없다.’는 심리이다.

 

중요한 것은 자살심리의 대부분은 인지적 왜곡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의 판단은 매우 주관적인 입장에서 내린 잘못된 판단들이다. 또한 그들은 충분히 다른 문제해결 방법을 모색하거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거나, 전문가의 도움을 활용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그들의 자살심리가 이해할 만하다고 해서 자살이 정당화될 수 없다. 실제 자살시도의 동기와 심리가 어떻든 간에 자살시도는 ‘도움을 청하는 절규(A cry for help)’다. 그들이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도록, 힘들어도 참고 견딜 수 있도록, 고통과 절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도록, 생명은 어떤 위기에서도 어떤 역경에서도 지켜야 할 고귀한 것임을 깨닫고 실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자살예방이다.

 

 

자살행동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자살행위의 일반적 현상과 원인은 다면적 복합적이어서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자살의 원인을 단 하나의 사건이나 한 요인에서 찾기란 불가능하며 그러한 노력은 오히려 잘못된 결론을 가져올 수 있다. 그만큼 자살은 다양한 원인적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얻어진 결과이기 때문이다.

 

생활사건-상황적 요인 : 자살행동의 시작은 우선 개인이 당면한 충격적 사건이나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생활의 변화이다. 그것은 친지의 사망, 실직, 성폭력, 입시실패 등 충격적 사건일 수 있고, 대인관계의 어려움, 특히 애인의 배신, 배우자와의 불화, 결별, 이혼 등일 수 있으며, 직장, 학업 등에서 오는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와 극심한 피로 등일 수 있다. 때로는 이러한 촉발사건들을 발견할 수 없어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이 의아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주위 사람들의 관심 부족이거나, 내적인 갈등 또는 정신과적 장애가 서서히 진행되어 알기 어렵고 특별한 외형적 사건이 없이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 심리적 요인 : 어떤 사람이 충격적 사건이나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이에 대한 평가를 하고 그 사건이 본인에게 무엇을 의미하며,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 필요하다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청하여야 한다. 이런 일련의 대처방식과 문제해결 능력에 따라 어떤 사람은 쉽게 상황을 극복하지만, 해결능력의 부족, 자신감의 부족, 좌절과 어려움에 인내심이 약한 사람들은 당황하고 무기력해진다. 더구나 충동적이고 분노 조절력이 부족한 사람은 사건을 잘 처리하기보다는 더 크게 만들고 깊은 좌절과 절망에 빠질 수 있고 자살충동을 느낄 때 자살행동을 충동적으로 실행할 가능성이 높다.

 

충격적 사건이나 어려운 상항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자아능력-자아 강건성은 어린 시절 부모의 적절한 양육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이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면 자아능력 발달이 크게 손상된다. 특히 아동기나 청소년기에 시작된 정서적, 행동적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성인기까지 영향을 주고 성격적 결함으로 남을 수 있다. 사건이나 자신의 장래에 대해 부정적, 염세적 성격, 충동적이고 폭력적인 성격, 남의 비판에 너무 민감하고 자존심이 강한 성격 등이 특히 자살 위험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생물학적-정신의학적 요인 : 자살 사망자를 자세히 조사하면 60% 이상 심지어는 90%에서 정신과적 진단이 가능하다고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이 통계는 사후 추정해 보니 그럴 수 있다는 것이고, 반드시 자살자의 80-90%가 정신질환 때문에 자살했다는 것은 아니다. 실제 정신질환이 있다고 해서 다 자살로 사망하지는 않는다. 다만 일반인보다는 높은 자살행동을 보인다는 것이다.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이 생활상의 충격이나 어려움에 당면하면 일반인보다 더 극복하기 힘들고 자살충동을 갖게 된다. 특히 우울장애, 알코올 중독, 성격장애, 정신분열에서 자살률이 높은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들 장애는 유전적, 생물학적 원인요소가 강하며 생물학적 취약성이 있는 사람이 감당하기 힘든 생활 사건에 부닥치면 발병이 촉발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회-환경적 요인 : 개인은 그가 몸담고 있는 사회-환경의 직접 간접 영향을 받으며 문제가 되는 사건이나 어려움도 결국 그가 살고 있는 가정, 사회 안에서 일어난다. 따라서 그 사회의 구조와 기능이 제대로 돌아가는가, 특히 정서적 지지기능이 잘 되고 있는가, 사회전체의 변화나 혼란이 없는가 등이 자살의 증가 또는 감소를 결정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이루어진 우리나라의 민주화, 산업화, 자본주의화 등에 따른 급격한 사회변화와 가족제도의 변화, 이혼율의 증가는 지지체계의 약화를 가져왔다, 자살충동을 느낄 때, 도움을 청할 가족도 친지도 없게 된 것이다. 사회적 가치관의 혼란과 성취위주, 물질주의의 범람으로 스트레스의 증가, 조절의 역치가 낮아졌다. 참고 견디지 못하고 쉽게 좌절하고 쉽게 자신의 생을 포기하는 성향이 높은 분위기다. 생명존중 사상은 엷어지고 생명경시 풍조가 팽만하다.

 

생물학적-심리적-사회적 원인의 통합 : 경쟁적, 물질주의적, 각박한 사회-환경에서 살고 있는 어떤 사람이 큰 곤경을 당했을 때, 인내심이나 문제대처 능력의 부족과 겹쳐지면 그 사람은 쉽게 절망하고 자살충동을 느끼고, 더구나 상의하고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으면 자살시도를 하게 되고 몇 차례의 시도에도 구원의 손길이나 방법이 없으면 자살에 ‘성공’하게 된다. 이러한 자살로 이르는 과정은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이 있을 경우 특히 더 쉽게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

 

 

자살을 예방하려면

 

심각한 우리나라의 자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첫째, 일반 국민의 자살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온 국민이 생명의 수호자가 되어야 한다. ‘자살은 결코 문제해결의 방법일 수 없다.’ ‘생명은 소중하다. 어떤 위기에서도, 어떤 역경에서도 지켜야 한다.’ ‘우울증은 치료가 가능하다. 치료받기를 주저하지 말자.’ 등 범국민적인 캠페인과 각종 대중교육 활동을 전개하여야 한다. 모든 국민이 주위 친구와 친지들의 자살 위험성을 알아내고 돕는 생명 지킴이가 되어야 한다.

 

자살도 일종의 살인이다 어떤 형태로든 자살을 미화하거나 수용해서는 안 된다는 생명사랑 운동이 전개되어야 한다. 이러한 시민운동의 가운데 종교계의 선도적 역할이 중요하다. 생명의 존엄성과 자살불가론에 대한 설교와 토론회 등이 모든 종교 모임과 교육활동에서 실시되기를 바란다.

 

둘째, 각종 정신건강 관련 전문가들의 자살예방과 치료역량을 강화하여야 한다. 자살위험이 높은 사람들을 위한 상담, 치료, 예방활동을 효과적으로 능력 증진하고 각종 전문기관 간의 연계망을 수립하여 자살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돕는 것이다.

 

셋째, 정부는 범정부적으로 자살예방법을 추진해야 한다. 기존 전문시설의 자살예방과 치료기능을 강화하고 광역시와 도에 자살예방 센터를 설립해야 한다.

 

자살은 그 자체가 질병이 아니고 여러 가지 개인적,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원인요소에 따라 결과되는 인간 특유의 행동이다. 자살은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원인이 복잡한 만큼 예방과 치료도 복잡하며 왕도는 없다. 그래서 원인분석과 치료에 대한 꾸준한 연구와 노력, 새롭고 효과적인 위기개입과 치료방법의 개발이 필요하다. 자살자 가족의 고통과 후유증을 어루만져 줄 배려도 있어야 한다. 일반 시민들의 자살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가족의 정신건강을 우선시하는 문화적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생명의 소중함과 고통과 역경을 이겨내는 의지와 감내력이 함양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 개인의 자살시도가 도움을 청하는 절규인 것처럼, 우리나라 자살률의 급등은 우리 사회가 정신건강의 총체적 위기에 처해있고, 일반 국민, 전문가, 정부가 함께 참여하는 범국민적 예방, 구조 활동을 시급히 요청하는 절규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 홍강의 미카엘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분당병원 외래교수이며 한국자살예방협회 회장이다.

 

[경향잡지, 2009년 9월호, 홍강의 미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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