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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교회와 생명: 생명 그리고 사형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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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8-21 ㅣ No.679

[경향 돋보기 - 교회와 생명] 생명 그리고 사형폐지

 

 

한국은 이미 사형폐지국

 

1997년 12월 30일의 사형집행을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우리나라에는 사형집행이 없습니다. 법률상으로는 사형제도가 있지만, 과거 10년 이상 집행하지 않는 국가를 ‘사실상의 폐지국’이라고 합니다. ‘사실상’ 사형을 폐지한 국가나 다름없다는 뜻입니다.

 

국제 앰네스티는 전 세계의 사형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 통계에 따르면, 지금 ① 모든 범죄에 대해 사형을 폐지한 국가가 92개국, ② 전쟁과 테러 관련 범죄에만 사형을 집행하고 나머지 범죄에는 사형을 폐지한 국가가 10개국, ③ 과거 10년 이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국가가 36개국, ④ 사형을 존치하고 있는 국가가 59개국입니다.

 

사형 폐지국가가 70%이고 존치국가는 30%로 폐지국이 압도적입니다. 20년 전인 1989년 100개국이던 존치국이 지금은 59개국으로 줄었습니다. 그마저도 2007년에 사형을 집행한 국가는 24개국뿐입니다.

 

유엔은 2007년과 2008년 연속해서 전 세계의 사형집행 정지를 요구하는 결의를 채택했습니다. 사형폐지는 돌이킬 수 없는 국제적인 흐름입니다. 여기에 우리도 동참한 것입니다.

 

 

여론과 사형

 

국제적인 흐름과는 달리 사형폐지에 대한 국내 여론은 아주 안 좋습니다. 법무부가 연쇄살인범 강호순 사건 직후 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존치의견 64.1%, 폐지의견 13.2%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존치의견이 압도적입니다. 그런데 전문가들의 의견은 일반 국민과 상당히 차이가 납니다.

 

2004년 3월의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매스컴 관계자와 법관, 변호사, 국회의원은 50~60%가 사형폐지에 찬성이고, 죄수의 교화를 맡는 교정위원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80% 이상이 사형폐지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3월 형사법 담당 대학교수 132명이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전국의 형사법 전공교수가 160명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형사법 교수가 사형에 반대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프랑스는 미테랑 대통령 정권에서 사형을 폐지했습니다만, 당시 국민의 62%가 사형폐지에 반대했습니다. 사형폐지를 주도한 법무장관 바댕테르 씨는 “민주주의와 여론조사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여론에 따르는 것이 아니다.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확실하게 내걸고, 선출된 뒤에는 돌진할 필요가 있다. 여론을 따르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현재의 프랑스 여론은 사형을 폐지하기를 잘했다는 의견이 3분의 2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사형이 흉악범죄를 막는다?

 

사형을 존치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근거는 몇 가지 있지만, 가장 강력하게 내세우는 것은 범죄 억제효과입니다. 하지만 살인을 저지를 때 ‘사형당할는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범행을 그만둘까요? 사형이 흉악범죄를 억제하고 예방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순진한 생각입니다. 사형제도가 있다고 해서 범행을 그만둘 만큼,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200여 년 전 영국에서는 절도범에게도 사형을 선고하고 공개처형을 했습니다. 공개처형 장면을 구경하려고 사람들이 운집했습니다. 그런데 그 현장에 수많은 소매치기가 활약했다고 합니다. 눈앞에서 절도범이 처형당하고 있고, 체포되면 자신도 죽게 될 것을 알면서도 범행을 저지르는 것, 이것이 인간입니다.

 

재작년 12월 사형제도를 존치하던 미국 뉴저지 주에서 사형제도를 폐지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의 하나로 사형에 범죄 억제효과가 특별히 없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유엔이 위탁해 실시한 조사에서도 사형이 범죄 억제효과를 갖고 있다는 것은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사형을 폐지한 유럽연합(EU)의 모든 국가에서도 흉악범죄가 급증했다는 보고는 없습니다. 오히려 미국에서는 과거 10년간 사형을 폐지한 주의 살인범죄율이 존치한 주보다 훨씬 낮다고 합니다.

 

흉악범죄 때문에 사형제도를 두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구 10만 명당 살인사건의 발생건수를 보면 우리나라(1.6명)는 미국(9.8명)의 1/6, 프랑스(4.6건)의 1/3, 독일(3.4명)의 1/2에 불과합니다. 일본(1.0명)에 뒤이어 세계 제2위의 치안국가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흉악범죄로 보면 한국은 이미 사형을 폐지했어야 합니다.

 

 

사형의 ‘잔인화 효과’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동안에 살인범죄가 38%나 증가했다.”는 어느 지방신문의 보도를 보았습니다. 실제로 1997년에 789건이던 살인건수가 2007년에 1,124건으로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살인범죄가 증가한 것은 사형집행을 안 한 때문일까요?

 

1997년에 23명을 처형할 때, 모든 매스컴이 보도할 정도로 떠들썩했습니다. 만일 사형이 범죄를 억제한다면, 다음 해인 1998년만큼은 살인사건이 감소했어야 옳겠지요.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1997년 789건이던 살인건수가 1998년에 966건으로 늘어났습니다. 줄기는커녕 반대로 1년 만에 20%나 늘어난 것입니다. 사형을 집행하던 1977년(505건)부터 1997년(789건)까지 20년 동안에도 무려 56%나 증가했습니다. 사형이 오히려 살인을 조장한다는 의미에서 미국에서는 이것을 ‘잔인화(brutalization) 효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국민들은 폐지론보다 존치론이 훨씬 잘 통합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원리가 양심에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극히 당연한 진리로 보이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원리가 과연 옳을까요? 칼로 찔러 상해를 입힌 범인에게 칼로 찌르는 형벌은 주지 않습니다. 주먹을 휘둘러 폭행한 범인에게 주먹으로 패는 형벌을 가하지는 않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원리는 오직 살인에서만 주장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도 나는 사람을 죽인 녀석은 죽여야 한다고 생각해!” 기껏 설득해 놓았더니, 끝에 가서 듣는 말은 결국 도로아미타불! 하지만 끝까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고집하는 사람들은 모순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오판문제입니다.

 

1974년 중앙정보부는 “일부 세력이 인혁당을 다시 세워 북한의 지령을 받아 유신체제를 반대하는 민청학련을 조종해 국가를 뒤엎으려 했다.”면서 23명을 구속했습니다. 그중 8명이 비상보통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1975년 4월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사형판결로부터 18시간 만에 전격적으로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바로 ‘인혁당 사건’입니다. 그로부터 32년이 지난 2007년 1월 23일, 서울중앙지법은 인혁당 사건 재심선고 공판에서 피고인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관철한다면, 당시 사건을 조작한 중앙정보부 관계자와 수사관, 사형을 구형한 검사와 사형판결을 내린 판사들은 모두 사형시켜야 합니다. 무고한 사람을 법이라는 이름으로 죽인 ‘사법살인’의 주동자들이니까요. 과연 존치론자들은 이 사람들을 죽이자는 것일까요?

 

 

살인 피해 유족을 위한 길과 사형

 

소중한 가족을 잃은 피해 유족이 살인범을 죽이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에게 어머니와 부인, 4대 독자를 잃은 고정원 씨처럼 가해자를 용서한 사람도 있지만,  이것은 예외 중의 예외입니다. 그렇다면 피해 유족의 감정을 감안한다면 사형제도를 존치해야 할까요?

 

그동안 우리는 피해 유족의 아픔을 공감하고 지원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했습니다. 국내에서 피해자를 위한 활동은 서울대교구 교정사목위원회(위원장 이영우 신부)가 매달 한 번씩 피해 유족과 함께 모임을 갖고 있는 것이 유일합니다. 교정사목위원회는 사형폐지운동을 하고 있는 곳인데, 이곳에서 피해 유족을 지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사형제 존치론자 가운데 피해자 지원활동을 하는 사람을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최근 법무부는 범죄 피해자 센터를 전국적으로 설립하고 피해자보호법을 제정하는 등, 피해자를 위한 지원정책을 본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수준은 대단히 열악합니다.

 

범죄 피해자 구조금 제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가해자가 누구인지 모르거나 재산이 없어 손해배상을 못 받을 경우에, 국가가 피해자에게 지원금을 주는 제도입니다. 그런데 살인 피해 유족이 받을 수 있는 그 지원금은 기껏 1천만 원에 불과합니다. 이에 비해 이웃 일본에서는 금액이 최저 872만 엔에서 최고 2,964만 엔에 달합니다. 요즘 환율로 계산해 보니 약 1억 1,500만 원에서 최고 3억 9,000만 원입니다. 경제력과 물가 등을 감안하더라도 격차가 너무 심합니다. 국내에도 좋은 제도가 있습니다. 뺑소니 교통사고에 대한 보험제도가 그것입니다. 현재 뺑소니 교통사고 피해자에 대해서는 사망의 경우에 유가족에게 최대 1억 원을 보상해 주고, 생계가 어려운 유자녀에게는 학자금과 생활비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홍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해 매스컴이 성금을 모금하는 모습을 봅니다. 하지만 우리는 흉악범죄가 발생할 때에 범죄자를 비난하기에 급급할 뿐, 유가족을 위한 관심은 전혀 기울이지 않습니다. 정부도 사형집행에만 관심을 가질 뿐 유족을 위로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습니다. 살인 피해 유족에 대한 지원금을 대폭 상향하고 일정기간 세금을 감면해 주며, 유자녀에게 교육비를 지원하는 방안은 국가의 재정상태에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도 말입니다.

 

사형을 존치하는 것만이 피해유족을 배려한 것이 아니며, 사형을 폐지한다고 해서 피해자의 감정을 해치는 것도 아닙니다. 피해 유족에 대한 지원은 사형의 존폐와는 관계없이 우리 모두가 추진해야 할 과제입니다.

 

 

왜 ‘종신형’인가?

 

사형을 폐지하자고 하면, 범죄자를 석방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사형 대신에 종신형 제도를 도입하자고 할 뿐입니다. 가톨릭도 ‘종신형’을 공식적으로 지지하고 있습니다.

 

종신형이라고 하면 삶의 희망 없이 어두운 감방에 갇혀 평생을 보내는 모습을 연상합니다. 종신형이 사형보다 더욱 가혹하다면서 사형을 존치해야 한다는 궤변도 있습니다. 정말 종신형이 사형보다 더 가혹할까요?

독일의 한 학자가 종신형에 대해 ‘손목을 자르는 가혹한 형벌’이라고 혹평했습니다. 그러나 사형은 ‘목’을 자르는 형벌입니다. 압도적으로 사형 존치에 기울어있는 국민여론의 현주소를 감안할 때, 국민들을 설득할 방안은 종신형밖에 없습니다.

 

지금 종신형이 가혹한 형벌이냐 아니냐를 따질 때가 아닙니다. 언제 집행당할지 모르는 목숨을 구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종신형이 가혹한 형벌인지 아닌지는 사형을 폐지한 뒤 차분히 논의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혹한 형벌이면 그때 폐지하면 됩니다.

 

 

사형폐지와 가톨릭의 역할

 

사형폐지 운동에서 가톨릭은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우리나라의 사형폐지 운동은 서울구치소 교화협의회 회원이 1989년에 결성한 ‘한국사형폐지운동협의회’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1999년 12월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가 사형폐지를 호소하고 사형폐지소위원회를 두어 본격적으로 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개신교도 한국기독교협의회를 중심으로 사형수의 교화와 사형폐지 홍보활동에 함께합니다. 2001년에는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범종교인연합’이 결성되어 사형폐지법안을 작성하고 사형폐지를 청원하는 활동을 하게 됩니다. 특히 서울대교구 교정사목위원회는 사형폐지 운동을 주도합니다.

 

하지만 사형폐지 운동의 정신적 지주는 김수환 추기경입니다. 1997년 사형집행 소식을 듣고 이를 막으려고 청와대를 방문해 집행하지 말 것을 호소하지만 실현이 되지 않자, 이 일을 계기로 사형폐지 운동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게 됩니다. 수차례 구치소를 방문하여 사형수를 만나 위로를 하기도 합니다. 지난 강호순 연쇄살인사건을 계기로 이명박 대통령이 사형집행을 모색했지만 결국 집행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김수환 추기경님의 선종이 가장 컸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죽음으로 사형수들의 생명을 구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전의 한 수도원에서 계단을 따라 붙여진 ‘○자로 된, 아름다운 말’이라는 제목이 붙은 글귀를 읽었습니다. 그 가운데 ‘여덟 자’로 된 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였으니 죽어라.’는 인과응보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이지 말자는 사랑과 자비의 정신! 이것이 바로 궁극적인 사형폐지의 근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박병식 유스티노 - 동국대학교 법학과 교수.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이사로 출소자의 사회복귀를 돕는 한편, 서울대교구 교정사목위원회를 통해 사형제폐지 활동을 하고 있다.

 

[경향잡지, 2009년 8월호, 박병식 유스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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