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신학ㅣ사회윤리

[환경] 생태 영성: 하늘로부터 오는 힘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4-06 ㅣ No.724

[생태 영성] 하늘로부터 오는 힘

 

 

100년 만의 추위

 

몇 년 동안 지구온난화로 겨울 기온이 상승하여 해마다 기록을 갱신하였다. 겨울이 되어도 장갑이나 모자는 거의 무용지물이 될 지경이었다. 그런데 이번 겨울은 전혀 달랐다. 폭설과 한파가 기승을 부리고 기상 관측 이래 가장 추운 겨울이라고 한다. 지구를 생명체로 보는 일각에서는 지구가 스스로 체온 조절을 하기 위함이라고도 한다.

 

이유야 무엇이든 기록적인 한파는 우리나라 전력 사용의 최대치를 수차례 갈아치우기를 반복했다. 석유보다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드는 전기 난방이 급증한 때문이라고 한다. 석유값이 오른 것은 매장량의 한계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전기는 그렇게 계속해서 싼 가격으로 공급될 수 있을까? 석유값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할 수는 있겠지만 전기의 원료가 제한된 자원이라면 전기료의 가파른 상승도 목전의 일이다.

 

 

원전수주의 쾌거?

 

추운 겨울 에너지 걱정은 지난해 마지막 주간을 떠들썩하게 장식했던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수주 사건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방송들마다 대통령의 노력으로 원전수주에 성공하여 엄청난 경제적 효과를 초래하였다고 대서특필하였다. 그러나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로 떠나기 이미 2주 전에 수주가 확정되었고, 수주액 400억 달러도 두 배로 부풀려졌다는 등의 사실이 나중에 밝혀지면서 정부와 언론의 부적절한 의도에 대해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씁쓸한 정치적 해프닝보다 정작 더 큰 문제는 원자력 발전 그 자체가 안고 있는 문제를 간과하는 정부와 언론, 국민들의 안이한 문제의식이다.

 

미국 스리마일 섬(1979년), 구소련 체르노빌(1986년)의 원전 사고를 겪으면서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은 원전의 연구, 개발, 건설을 사실상 중단해 왔다. 핵의 위험성뿐 아니라 과다한 건설비용, 핵폐기물 처리의 안전성과 비용 문제, 유한한 매장량 등을 고려할 때 원전은 결코 경쟁력 있는 산업이 되지 못한다. 그리하여 세계 주요 원자력 관련 업체들은 원자력 시장에서 철수하고 가스터빈으로 세계 발전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국제사회 또한 원자력을 온실가스를 줄이는 청정에너지로 인정하지 않는다. 원자력을 통해 온실가스를 일부 줄인다고 해도 개발도상국에선 인센티브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유럽 국가들은 일찍이 원자력보다는 재생가능 에너지 개발에 주력해 온 것이다.

 

국제사회의 추이가 이러함에도 ‘녹색성장’을 기치로 내걸고 있는 우리 정부는 원전을 고집스럽게 청정에너지로 여기며 원자력에 올인하고 있다. 정부는 원전의 비중을 2030년까지 37%로 확대하는 목표 아래 앞으로 수십 기의 원전을 더 지으려 계획하고 있다.

 

 

바티칸, 하느님께서 주신 태양으로 돌아서다!

 

바티칸은 재생가능 에너지 정책에 대한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 1999년에는 대희년 준비의 한 부분으로 성 베드로 대성당의 전체 조명을 전기 효율이 높은 것으로 업그레이드하여 에너지 소비의 40% 가량을 줄였다. 또한 2000년에는 전기로 움직이는 휠체어, 스쿠터, 자동차를 충전시킬 수 있는 전기 자동차 충전소를 세웠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취임 이후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문제에 많은 관심을 표명해 왔으며, 이는 친환경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관심과 실천으로 이어졌다. 2007년 세계 평화의 날 메시지에서, 교황은 “에너지 공급의 심각한 문제가 증가하고 있음”을 직시하며, 그러한 사실은 지구 자원에 대한 “선례가 없는 경쟁”(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이끌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4월 바티칸에서 열린 기후변화회의에서 “기후변화와 환경파괴는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임을 천명하였다.

 

또한 2008년 11월부터는 바오로 6세 강당 지붕에 2,700개 태양 전지판을 설치하여 강당의 모든 조명과 냉방, 난방 전력을 태양열로 공급하기 시작하였다. 2009년 4월 바티칸은 유럽에서 가장 큰 100메가와트 급의 대규모 태양광 발전소를 세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2014년 발전소가 완공되면 4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양으로 바티칸 전체가 사용하고도 남으며, 이것으로 연간 9만 1천 톤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감소하는 효과를 얻게 된다. 바티칸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가 유럽에서 가장 큰 태양발전소를 세우고, 세계 최초로 태양에너지만으로 모든 전력을 수급하는 국가가 될 것이다.

 

또한 바티칸은 자신들의 탄소 배출량에 상응하는 삼림을 헝가리에 조성해 세계 최초의 ‘탄소 중립(Carbon Neutral-이산화탄소의 배출을 최대로 줄임과 동시에 발생하는 탄소를 흡수할 나무를 심거나 이에 상응하는 돈을 지불하여 탄소의 실질 배출량을 완전히 없앤다는 개념)’ 국가를 실현할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바티칸의 식당에 태양에너지를 이용한 온수 시스템과 에어컨 시설을 설치하고 있다. 교황이 전기자동차를 사용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으며, 여름별장에도 가축의 배설물을 이용한 메탄가스 시설을 설치하고 있다.

 

 

바티칸에서 배우다

 

AP통신은 바티칸의 이러한 움직임을 보도하면서 “바티칸이 곧 하늘로부터 힘(power)을 받게 될 예정이다.”(2008년 9월 30일)라는 의미 있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하느님을 믿은 국가가 하늘로부터 힘을 얻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아버지의 힘으로)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나의 힘으로) 살 것이다”(요한 6,57)라는 예수님 말씀의 실천이라 할 수 있다.

 

하느님은 태초부터 모든 창조물이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넘치도록 주고 계신다. 바로 물과 바람과 태양이다. 쓰레기를 남기지 않고, 아무리 사용해도 줄지 않아 빈부의 차별이 없고 착취가 없는, 그래서 깨끗하고 평등하고 평화로운 하느님이 주신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하느님이 주신 에너지만으로 살아가는 창조물들은 무지막지한 파괴적인 전쟁을 하지 않고서도 하늘을 날며 물속을 유유히 헤엄쳐나간다. 물과 바람과 태양에너지는 생태 파괴, 저개발, 전쟁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창조보전, 발전, 평화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임에 틀림없다.

 

 

외적 에너지의 위기는 내적 에너지의 위기

 

우리를 움직이는 에너지원은 물질과 같은 외적 에너지만이 아니다. 정신과 영혼 같은 내적 에너지도 우리를 움직이는 에너지의 중요한 원천이다. 내적 에너지를 발산하려면 외적 에너지를 사용하고, 내적 에너지는 외적 에너지로 표출되므로 이 두 에너지원은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작금의 외적 에너지의 위기는 곧 내적 에너지의 위기이기도 하다. 사실외적 에너지의 위기는 내적 에너지의 위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만족을 모르는 욕심을 채우고자 외적 에너지를 너무나도 많이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마치 그 모든 자원이 인간의 욕심을 채우려고 있는 것인 양 마구 남용해 왔다.

 

그러한 과정에서 편리와 안일만을 추구하는 인간은 생명의 원천이며, 생명을 유지하는 모든 에너지를 주시는 하느님을 외면하고 인간의 알량한 기술에 더 많이 의존해 온 것이 사실이다.

 

사순시기는 희생과 극기를 통해 예수님의 부활을 우리의 것으로 체험하고자 준비하는 때이다. 욕심을 죽이고, 편리하고 안이함을 죽이면,  거기서 부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세상의 빛으로 오시어 부활하신 구세주 예수님은 바로 우리의 내적, 외적 에너지원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이야말로 이 시대의 에너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이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빛인 까닭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바티칸을 선두로 하여 전 세계 가톨릭 건물들이 태양열로 모든 전력을 수급하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는 종교임을 대내외적으로 표방하는 것이며, 가톨릭교회가 영혼만 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를 구하는 것으로 그 사명을 확장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표지가 될 것이다.

 

* 이동훈 프란치스코 - 제천 남천동성당 주임신부.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생태신학을 전공하였다. 생태영성연구원 공동대표이다.

 

[경향잡지, 2010년 3월호, 이동훈 프란치스코]



553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