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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생명의 문화: 인구시계탑과 낙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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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3-31 ㅣ No.717

[생명의 문화] 인구시계탑과 낙태 - 정부의 인구 출산 정책 갈팡질팡, 낙태에 대한 윤리마저 이리저리

 

 

서울 청량리역 광장에 덩그렇게 서 있던 인구시계탑을 기억하는가. ‘인구시계탑’은 인구 수를 시각과 함께 표시하는 직립 구조물인데, 이 탑의 시계는 매분의 시각을 표시하고 시각의 흐름과 1명씩의 인구가 증가하는 것을 전광판에 나타내 보이도록 만들어졌다. 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 인구가 4000만 명을 넘어선 1983년 경남 창원에 처음 세워졌다고 하고 부산, 인천, 대전, 광주 등지에도 있었다고 하니 독자들도 더러 본 적이 있을 것이다.

 

200여 년 전 경제학자 맬더스가 인구 증가로 인한 인류의 위기를 경고했지만, 오늘날 우리는 출산율 저하에 따른 인구 감소를 걱정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인구가 안정되려면 합계 출산율(여성 1명이 낳는 평균 출생아 수) 2.1명을 유지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2008년 합계 출산율은 1.18명으로, 역대 최저치였던 2005년(1.08명)이나 2006년(1.12명)에 비해 미세하게 상승했다. 이마저도 지난해엔 1.15명으로 다시 떨어졌다.

 

 

출산율 저하, 세계적 추세

 

출산율 저하는 전지구적 추세다. 유엔은 2050년에 전세계 출산율이 여성 한 명당 평균 2.05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세계 44개 선진국의 현재 출산율은 1.6명인데, 이는 이들 나라에서 인구가 이미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다. 중진국의 출산율도 2.9명 이하이며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심지어 저개발국가도 6.6명에서 5.0명으로 떨어졌고 2050년에는 3.0명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21세기에는 아이를 적게 낳으려는 경향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사정이 이럴진대 해외 이민으로 한 사회의 노동력 부족분을 채우려는 시도 역시 쉽지는 않을 것이다.

 

전국 각지에 인구시계탑을 세워 국민들을 계도했던 대한가족계획협회는 언젠가부터 인구보건복지협회로 탈바꿈하더니 이제는 ‘태아는 이미 숨쉬고 있는 소중한 생명입니다’라는 홍보물을 지하철에 버젓이 붙여놓는다. 단박에 180도 바뀐 정부의 인구정책 앞에 혼란을 느끼지 않는 시민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많이 낳는다고 야만인 취급할 때는 언제이고 이제와선 아이를 더 낳으라고 젊은 부부들을 압박하다니….

 

지난 2월 3일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낙태시술을 하는 산부인과 병원 세 곳을 고발하자 이에 맞서 한국여성민우회 등 10개 여성단체가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여성단체들은 성명에서 “여성을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권 및 재생산권의 주체로 존중하지 않고 여성의 몸과 자율권을 통제하려는 반인권적 발상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여성단체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는 필자이지만 낙태 금지를 반인권적 형태로 보는 그들의 시각에 공감한다. 왜냐하면 1960-1990년대 낙태가 인구 조절의 수단으로 오용 ? 남용되던 그 시절에 우리 정부와 사회가 낙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 삶의 사회적 ? 경제적 조건들을 철저히 외면해 왔다는 점을 그들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저출산이 염려되니 낙태를 금하겠다고 하면 여성은 자녀 낳는 도구에 불과하단 말인가.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면 그때는 다시 또 낙태를 계속해도 좋다는 발상인가.

 

 

불편한 진실 외면

 

프로라이프 의사회는 산부인과를 고발함으로써 낙태 문제를 이슈화하는 데 성공했다. 필자는 한 방송사의 토론프로그램에 산부인과 의사회를 대표한 출연자가 “우리 산부인과 의사들은 사회적 요청에 응해서 낙태시술을 해온 것”이라는 요지의 발언을 하는 걸 지켜보면서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행해지는 낙태 시술의 90% 이상이 불법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산부인과 의사들이 저지른 그간의 불법 해위에 대해 면죄부를 달라는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 요청이 있는 한, 산부인과 의사들은 불법 낙태 시술을 계속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인가. 그 어느 쪽도 말이 되지 않는다. 전문직 종사자로서 의사의 사회적 지위란 결코 저절로 주어지거나 유지되는 게 아니기에 하는 말이다.

 

청량리역 광장의 인구시계탑은 5년쯤 전에 철거돼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갈팡질팡하는 정부의 인구정책이 저출산 문제의 해법을 적시에 찾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중동에서 폭탄 테러로 수십 명이 사망했다는 외신 보도에 매일 놀라는 우리는 사실, 전국 1697개소의 산부인과 의원의 80%에서 매일 1000명이 넘는 태아가 낙태되는 불편한 진실을 대개 망각한 채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평화신문, 2010년 3월 14일, 구영모 교수(울산의대인문사회의학교실,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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