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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생명의 문화: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도전으로 새롭게 떠오른 낙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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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3-29 ㅣ No.716

[생명의 문화]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도전으로 새롭게 떠오른 낙태 문제


산부인과 의사들의 신선한 반란, 생명 문화 시대 여는 계기 되길

 

 

2009년 10월 '진오비'라는 젊은 산부인과 의사들 모임이 낙태근절운동을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모두가 놀랐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의 '낙태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낙태가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간단히 낙태할 수 있는 환경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생명을 죽이는 낙태로 손쉽게 돈을 버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있었다.

 

 

현실의 모순 개혁하고자

 

진오비는 그동안 쌓여온 산부인과의 많은 문제들을 풀어나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매듭은 바로 불법낙태 시술을 중단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스스로 자정 노력을 기울인 후 산부인과를 둘러싼 현실의 모순을 개혁하고 의료수가 조정 등 정책을 바꿔달라는 요구도 당당히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09년 11월 1일 낙태근절운동 선포식에서 심상덕 진오비 회장은 "우리는 매일같이 초음파 검사를 하면서 뱃속의 태아가 어떤 혹덩어리가 아니라 심장이 뛰고 있는 인간임을 직접 눈으로 보고 알고 있었지만 그 진실을 외면했었다"며 낙태시술을 해온 과거를 반성했다. 이런 젊은 의사들의 용기에 대해 우리 교회는 박수를 보냈다.

 

진오비는 시작부터 지속적인 낙태근절운동을 위해 낙태를 하지 않는 산부인과 명단을 공개하고, 2010년부터는 불법낙태시술 의사를 고소 고발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2010년부터는 진오비와 구분하여 다른 전공의사들과 그동안 생명운동을 해왔던 일반 시민 종교단체도 참여하는 '프로라이프 의사회'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프로라이프 의사회는 지난 2월 3일에는 약속대로 불법낙태 시술 세 건을 고발했다. 그들은 이번 고발이 그동안 낙태를 방치해 온 정부와 검찰에게 단속 책임을 촉구하는 의미가 강하다고 밝혔다. 특히 낙태근절운동 선언 이후에도 버젓이 불법낙태를 지속하는 의사들에게 낙태 수요가 몰리면서 오히려 그들이 이익을 보게 되는 현실에서 고발을 하지 않으면, 낙태근절을 다짐했던 의사들의 결심과 노력이 헛된 것처럼 되어버리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고 했다.

 

이들의 낙태근절 노력에 대해 비난하는 일부 단체 중 여권주의 단체들은 낙태는 여성의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이라고 주장하면서 낙태를 자유롭게 허용하라고 한다. '대책없는' 낙태근절운동은 낙태를 음성화하여 여성의 건강과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고, 장애아나 미혼모 등 출산 이후 산모와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보호 시스템이 미비하기 때문에 잘못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이런 비난의 근저에는 오직 '이미 태어난', '힘있는' 여성들의 편의와 권리 주장만 있을 뿐, 무고하게 희생되는 어린 생명의 권리에 대한 도덕적 인식과 공감의 마음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리고 사회적 보호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옳지만 그것이 아직 부족하다고 태어나기 전에 그 생명을 죽이는 것이 과연 올바른 태도일까?

 

뜻있는 일부 산부인과 의사들의 희생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40년 동안 형성된 자유로운 낙태시술의 정서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문제 제기를 계기로 우리 사회는 낙태 위기에 있는 약한 생명에 대한 우리 사회의 도덕적 인식과 연대적 책임감이 어느 수준인지 다시 돌아볼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즉 왜곡된 생명 인식으로 소중한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죽음의 문화를 벗어버리고, 생명존중 문화를 만드는 차원에서 낙태문제를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생명이라고 해서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서 살아가야 할 동등한 권리와 존엄성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아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책임 있고 신중한 성관계를 해야 하고, 일단 임신을 한 후에는 그 생명을 받아들이고 당연히 낳고 키워야 한다는 인식이 보편화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중고등학생들에게는 성이 유희가 아니라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행위임을 가르치는 성교육과 함께, 미혼모가 된 학생들도 끝까지 학업을 마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미혼모에 대한 정서적, 경제적 지원도 뒤따라야 하며, 입양은 물론 장애아도 인간 생명으로서의 존엄성을 누리며 보호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생명의 꽃 피우도록

 

현재 우리 사회는 낙태문제에 대해 획기적 전환점에 서 있다. 프로라이프 의사들의 '신선한 반란'을 계기로 낙태없는 사회로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어른들의 무책임한 성관념과 편의주의로 말미암아 한 해 수십만 명의 어린 생명들이 꽃도 피우지 못하고 세계 최고 수준으로 낙태되는 사회를 유지하든지 말이다.

 

[평화신문, 2010년 3월 7일, 박정우 신부(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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