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신학ㅣ사회윤리

[사회] 비정규직 문제 해결과 사회연대 실현을 위한 성찰과 실천 과제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3-12 ㅣ No.715

[주교회의 위원회 세미나] 비정규직 문제 해결과 사회연대 실현을 위한 성찰과 실천 과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20개의 주교위원회와 4개의 소위원회를 설치 · 운영합니다. 각 위원회는 교회 안팎의 문제들과 관련하여 사안별로 연구하며 문제 개선을 위해 제안하는 활동도 합니다. 새해에 경향잡지는 각 위원회가 사회적인 현안이나 교회의 쟁점들에 대한 연구로 심포지엄이나 포럼 또는 세미나, 토론 형식으로 발표하는 내용들을 요약 · 정리하여 싣습니다(편집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최기산 주교)는 2009년 10월 16일, 서울 신수동 예수회 사도직 센터에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과 사회연대 실현을 위한 성찰과 실천 과제: 사회와 교회의 역할’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는 예수회 김정대 신부의 진행으로,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김성희 소장의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의 과제’와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오기백 신부의 ‘비정규직 문제와 천주교회의 성찰’이라는 발제 발표에 이어, 민변 노동위원회 부위원장 강문대 변호사, 한국경영자총협회 최재황 홍보이사, 한국노총 · 한국비정규연대회의 의장 이상원 부위원장, 민주노총 김경란 정책국장, 한국순교복자수도회 양운기 수사의 토론으로 이어졌다.

 

우리 사회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는 단연코 확산되는 비정규직 문제일 것이다. 꾸준히 증가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비례해 대한민국 노동자들의 삶의 질은 현재진행형으로 떨어지고 있다. 같은 노동조건에서 비정규직의 노동시간은 정규직 노동시간보다 높아, 일은 더 많이 하고도 임금은 적게 받는다. 그런가 하면 고용지위도 열악해 각종 고용 관련보험에서도 제외되고 극심한 고용불안을 느낀다. 노동자로서의 정당한 분배에서 소외되고 불평등한 것은 물론, 사회적 위험과 불안에 그대로 노출된 비정규직 노동자들. 교회는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어떻게 응답을 하고 있는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의 과제(발표: 김성희 소장)

 

정규 노동자의 기본적인 특성을 규정한 다음 그러한 특성에서 벗어나는 경우의 노동자를 비정규 노동자로 정의한다.

 

2008년 6월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임금노동자 1,610만 2천 명 가운데 정규직은 772만 9천 명(40.8)%, 비정규직은 837만 4천 명(52.0)%이다. 통계 집계가 시작된 2000년 이후 절반을 넘는 비정규직 수치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2008년 8월 현재 전체 임금 노동자들의 월 평균임금은 185만 원이며 정규직 노동자들의 월 평균임금은 250만 원, 비정규직의 월 평균임금은 124만 원이다. 2000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73만 원 정도였으나, 2008년의 경우 둘의 임금 격차는 126만 원으로 계속 커지고 있다. 정규직 임금을 100으로 놓고 보면 2008년 3월 비정규직의 평균임금은 정규직 월 평균임금의 절반인 50.2% 수준이다.

 

이렇게 비정규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에서 절반이 넘는다면, 절반밖에 안 되는 임금 격차로 극심한 차별문제가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낸다. 그런가 하면 비정규직 노동자는 복지에서도 배제되어 사회보험(국민연금 · 건강보험 · 고용보험) 적용률은 35% 수준에 머물고 법정복지인 퇴직금은 26.3%가 적용받는 실정이다.

 

2006년 11월 30일 국회에서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 제정과 ‘파견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과 차별금지 조항을 담은 노동위원회법 개정안 등 소위 비정규 3법이 통과되었다. 그러나 실제 현장의 비정규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노동기본권의 보장이다. 이와 관련한 내용이 비정규 ‘보호법’에는 빠져있다. 아울러 비정규직의 노동조합 가입률을 보면 2.8%로 정규직 21.6%에 훨씬 못 미치는데, 비정규직 조직화의 걸림돌이 바로 노동기본권의 배제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특수고용 노동자의 경우에는 노동자성조차 부인되고,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고용에 관한 책임과 권한이 있는 원청의 사용자 책임이 부인됨으로써, 실질적으로 노동기본권이 부정되는 현실이다.

 

다른 한편으로 성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비율을 살펴보면 남자는 전체 임금 노동자 가운데 56.9%, 비정규직이 43.1%이나 여자의 경우 정규직이 35.6%, 비정규직은 64.4%로, 비정규직 여성은 절반을 넘어 다수를 차지하면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는 이중의 질곡을 안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 구성 비율이 가장 높은 연령층은 청년과 중고령자 층으로, 25세 미만과 40세 이상에서 비정규직의 비율이 높게 나타나고 있어, 노동시장에서 청(소)년층과 중고령층이 고용의 취약지대임을 알 수 있다.

 

전체 비정규직을 기업규모별로 보면 30인 미만 사업장에 77.2%, 100인 미만 사업장에 91.0%가 분포해 있다. 이는 비정규직보다 열악한 중소 영세기업의 또 다른 정규직 문제가 있음을 내포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듯 한국 사회의 비정규직의 확대는 차별적인 저임금과 심각한 고용불안을 겪는 노동시장의 불평등구조의 반영일 뿐 아니라, 빈곤의 확대와 양극화를 구조화시키는 주요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는 ‘양극 분해된 사회’의 비극을 초래하는 심각한 사회 병리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복지제도를 ‘생산적 복지’라는 이름으로 제한된 형태로 시행하고, 동시에 비정규 고용의 확대와 재분배 기능이 전무한 최저임금제를 유지하는 유연화 일변도의 노동시장 정책과 결합되면서 빈곤의 악화 현상을 제어하지 못한 결과이다. 저임금 노동자를 유지, 확대하는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으로는 고용도 빈곤의 성공적인 탈출구가 되지 못한다.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절망감은 모든 사회 구성원의 극단적 개인주의와 지위의 상승이나 우울한 지위를 유지하려는 저열한 물신주의를 낳고 있으며, 여기에서 배제된 다수의 절망을 해결할 방안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양극 분해된 사회의 비극을 향해 치닫는 절망과 물신의 롤러코스터를 멈출 방안은 없는가? 과연 우리는 양극 분해된 ‘이중 구조화된 사회’의 비극을 벗어나지 못하는가?

 

이러한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는 주체 스스로의 선택과 의지가 핵심적인 요소이다. 그리고 변화를 열망하는 의식적인 연대와 지지가 그다음 조건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불문하고 노동운동은 고용불안정을 강요하는 사회 경제 질서의 근본적 재편을 위해 ‘사회운동’으로서 자기 방향을 정립해나가야 한다. 사회 전반의 불평등 구조를 개혁하기 위한 노동운동의 대사회화 전략, 전체 노동자 · 연대 전략을 축으로 전국적 수준에서나 개별 기업 수준에서나 비정규직과 연대하는 새로운 노동운동의 방향, 사회적 과제로서 비정규 문제의 해결을 주체적으로 떠맡는 사회연대적,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의 길로 나갈 때 노동의 새로운 희망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와 천주교회의 성찰(발표 : 오기백 신부)

 

산업혁명이 시작된 후 교회는 산업화된 사회를 성찰해 왔으며, 이 과정에서 사회교리를 발전시켜 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는 이 시대에 교회의 가르침은 “참된 가치는 무엇인가?” 식별하고자 하는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교회의 출발점은 바로 창세기의 말씀에서 시작된다. 바로 “하느님은 우주를 창조하시고 노동하시는 분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모습대로 만들어졌다.”는 성경의 통찰력이다. 그뿐 아니라 우리 인간에게 지구를 함께 돌보자고 초대하신다. 이로써 인간은 하느님의 존엄을 지니게 되고 노동은 신성한 작업이 된다. 하느님은 우리를 노동하는 인간으로서 창조하시고 노동의 사명을 우리들한테 주셨는데 예수는 그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그분은 “나자렛 요셉처럼 노동하는 인간이셨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노동은 인간 존재의 기본적인 특성이며 노동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이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는 고유한 특징이라고 말한다. 노동을 통해서 우리가 스스로 인간 존엄성을 실현할 수 있고 자신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 노동에 관한 모든 권리를 보호하고 보장하는 것이 필수이며 정당한 임금을 받는 것은 노동의 핵심 권리이다.

 

최초의 산업화된 사회에서는 정당한 임금이란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 곧 의식주 문제를 확보할 수 있는 임금으로 정의되었다. 이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더 구체적으로 발전시켰는데, 가정을 꾸리고 적절한 수준을 유지하기에 충분하고 가정의 장래를 보장하기에 충분한 보수를 의미한다.

 

가톨릭교회는 지상재화의 보편적 목적의 원칙에 대해 가르친다(“백주년”, 31장 참조). 지상재화는 지구상의 모든 피조물들을 위한 선물로 주어진 것이다. 산업사회에서 사람들이 이러한 재화를 취할 수 있는 정상적인 방법은 정당한 보수를 받는 노동을 통한 것이다. 따라서 생산 수단의 소유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합법적인 소유권은 그 소유가 노동을 위한 것일 때만 인정이 된다고 가르친다.

 

교회는 1891년 발표한 “새로운 사태”에서 “노동자들의 인권이 침해되고 있다면 국가가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개입해야 한다.”(52항)고 가르친다. 100년 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국가는 공동재화를 보호할 의무가 있는데, 이것들이 시장의 메커니즘만으로 보호될 수 없는 자연과 인간의 외적 환경이다.”(“백주년”, 40항)라고 말한다.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노동자들의 연대활동을 제안한다. 한마디로 모든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는 권리, 곧 단결권을 갖게 된다(20항). 교황은 이 운동을 사회정의를 위해서 필수적이고, 투쟁하는 그런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과 반대 성격을 드러낸다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이는 사회정의의 선을 지향하는 것”(20항)이라고 한다. 교회는 이런 운동을 적극 지지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가르침을 실현하기 위해 한국 교회는 어떻게 응답을 해왔는가? 1967년 12월에 있었던 강화도 심도직물 사건은 가톨릭교회가 한국 산업사회에 개입한 첫 번째 사건으로 기록한다. 그 당시 가톨릭노동청년회(JOC)의 담당 주교였던 김수환 추기경은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노동자들의 권익을 수호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발효하였다.

 

1990년대를 지나면서 노동조합과 같은 사회단체가 등장하면서 교회는 차츰 뒷전으로 물러나게 된다. 이 시기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 유입되기 시작한다. 외국인 노동자 대다수는 법적 지위도 없이 주로 3D 업종의 일을 했다. 외국인 노동자는 이 시기 교회 사목의 중심이 된다.

 

한국 전역에서 노동운동이 활발했다. 그러나 대기업의 노동운동이 활발할 때도 영세기업의 많은 노동자들의 조건은 여전히 열악했으며, 1990년 후반기에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등장을 한다.

 

교회는 이러한 과제를 노동조합이나 사회단체들에게 맡기며 이러한 노동문제에 직접 개입하는 것을 꺼리는 실정이다. 한국 가톨릭교회의 위상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칠팔십 년대와는 달리 가톨릭교회는 이제 한국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주요단체가 되었다. 가톨릭교회는 같은 업종의 대학과 병원들과 경쟁을 하는 한국 사회의 주요한 기관을 운영하는 주체가 된것이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을 포함하여 다른 일반 단체의 노동관행들의 많은 부분을 도입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교회에 새로운 도전을 던진다.

 

이 새로운 도전에 교회가 가르침대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강하게 이야기하고 노동자들의 연대를 지지한다면 정부와 대립적인 관계를 맺게 될 뿐 아니라, 같은 교회 내에서 큰 힘을 가진 그룹들과 권력자들과 대립할 것이다. 그럼에도 2008년 2월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비정규직 보호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그 내용은 노동자의 노동 가치와 권리를 존중해야 하고 비정규직과 정규직 노동자들 간의 차별을 없애고, 교회 내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말보다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행동으로 증언하는 것이 복음 말씀을 전하는 첫째 방법이기 때문이다.

 

[경향잡지, 2010년 1월호, 편집부]



706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