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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그리스도인의 경제생활: 그리스도교 신앙과 경제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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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2-26 ㅣ No.712

[그리스도인의 경제생활] 그리스도교 신앙과 경제생활

 

 

“경제생활은 우선적으로 인간에게, 인간 전체에, 인간 공동체 전체에 도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426항). 이렇듯 그리스도인의 경제생활은 개인의 이익 추구만을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이에 새해부터 정희완 신부님께서 ‘그리스도인의 경제생활’은 어떠해야 하는지 사회교리에 비추어 이끌어주십니다(편집자).

 

 

우리 시대를 규정하는 키워드는 무엇일까? 경제(물질)와 욕망(쾌락)이란 단어가 아닐까? 이 사회는 경제 중심의 사회다. 모든 것을 경제 가치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평가한다. 경제적 풍요가 삶의 목표가 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욕망의 실현과 충족이, 쾌락의 극대화가 우리 삶의 질과 행복의 척도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이 경제중심주의, 욕망중심주의 세상에서 과연 신앙은, 종교는 어떤 역할을 할까. 성과 속의 분리를 주장하는 근현대 세속국가 안에서 신앙은 그저 좁은 의미의 종교행위의 울타리 안으로 퇴행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신앙이 더 적극적으로 경제와 욕망의 중심주의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사회교리에 담긴 신앙에 대한 이해

 

그리스도교 신앙은 언제나 종교행위(전례 성사적 행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사실 현대 신앙의 위기는 불신앙의 문제라기보다는, 신앙이 원래의 의미를 획득하지 못하는 것, 곧 신앙이 삶의 모든 부분을 포함하는 총체적인 것임에도, 내면의 심리행위로 축소되는 경향이 문제인 것이다. 신앙은 삶의 전체성을 얻게 하는 해방적 힘이며, 영성의 눈으로 사물을 새롭게 깨닫게 하는 하나의 비전이며, 이 지상에 하느님 나라를 실현해야 하는 하나의 실천적 행위이다. 신앙은 개인적인 측면과 사회적 측면을 모두 포괄하는 총체적인 것이다.

 

총체성으로서 신앙, 사회적 실천으로서 신앙은 언제나 모든 사회적 문제를 도덕과 영성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새롭게 접근할 의무와 필요성을 가진다. 이런 의미에서 생각하면, 사회교리는 신앙의 총체성을 회복시키려는 교회의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경제중심주의

 

오늘날은 경제가 우리의 삶과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적 수단과 능력이 있으면 다른 모든 것을 곁들여 가질 수 있는 세상이다. 예를 들어, 돈이 있으면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고 건강을 위한 의료혜택을 충분히 누릴 수 있으며, 사람들의 존경과 부러움을 얻을 수 있다. 우리 사회에 교육열이 높은 이유 가운데 하나도 학력이 경제적 부와 물질적 안정과 풍요를 얻는 데 큰 몫을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경제 외적인 일들도 최종적으로는 경제적 목적을 겨냥하고 있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정치와 사회와 문화적인 모든 것이 모두 경제(또는 경제적 규범과 목적)에 종속되고 규율되고 있다.

 

 

그리스도교와 경제

 

좁은 의미에서 경제는 물적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과 분배와 소비의 문제와 결부된 사회제도다. 하지만 경제적 이슈들은 모든 그리스도교 신앙인의 하루하루의 개별적 삶에 영향을 미친다. 신앙인의 삶의 많은 부분들이 경제와 긴밀히 맞물려 있다. 사실, 넓은 의미에서 경제는 인간의 번영과 삶의 질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경제가 개개인의 삶과 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개인과 사회의 모습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라면,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도교 신앙은 경제에 대해 무언가를 말해야 하고 어떤 방향과 비전을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오늘날 경제는 그 자체의 중립적 규범들에 지배되는 독립적이고 자율적 영역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부분의 학자들은 동의한다. 경제의 영역 안에도 어떤 정치적 힘들이 여러 다양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하나의 경제 체제 안에는 철학적, 신학적, 형이상학적 전제들이 깔려있다는 것을 많은 학자들이 지적한다. 곧, 하나의 경제 체제 안에는 숨겨진 이데올로기가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경제 체제 안에 가치 판단적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는 이상, 이 경제 가치들은 언제나 신앙의 가치에 비추어 분석되고 점검되어야 한다. 결국, 경제 역시 가치관의 문제로 환원될 수 있다. 따라서 경제 체제 안의 전제들과 숨겨진 이데올로기들은 언제나 신앙의 관점에서 재조명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교 역사를 보면 그리스도교는 항상 경제적 행위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려고 노력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교는 성서적, 신학적 전통 속에서 경제 문제들에 관여해 왔다.

 

경제적 주제들은 성경 안에 다양한 방식으로 언급되고 있다. 남미 신학자 보니노는 성경 안에 네 개의 주요한 경제적 테마들이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 가난은 언제나 신앙의 도전이다. 둘째, 경제생활은 항상 공동체의 문제를 포함한다. 셋째, 하느님은 정의를 요구하신다. 넷째, 경제적 힘에 대한 욕망은 사람들을 이웃에 대해 무관심하게 하고 물질의 우상에 빠지게 할 위험이 있다.

 

그리스도교 신학의 역사 안에서도 경제 문제는 언제나 다루어져 왔다. 많은 신학자들은 신앙의 관점에서 경제적 부의 적절한 사용과 가치들에 대해 분석하였다. 중세 유럽에서는 고리 대금의 도덕적 상태와 상업적 삶에 그리스도인들의 참여하는 데 대한 신학적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근대 초기에는 새로 등장한 산업 자본주의가, 20세기 후반에는 시장경제가, 금세기에는 경제적 세계화가 신학자들에게 하나의 도전이 되어왔다.

 

 

신학과 경제학

 

신앙과 경제의 문제들이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믿는 신학자들은 신학과 경제학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경제학 안에 그리스도교적 세계관을 통합하지 못하면 경제가 지배하는 오늘날의 사회 안에 그리스도교적 전망은 그 자리를 찾지 못할 것이다.

 

신학자들은 신학의 관점에서 경제학의 기초들 안에 내재되어 있는 철학적 전제들을 평가하고, 경제학 안에 포함되어 있는 다양한 윤리적 입장들을 점검해야 할 의무가 있다. 물론 신학적 통찰과 경제학의 과학적 주장들을 결합하는 일은 쉽지 않다. 사실, 신학과 경제학의 학문 간 경계를 넘어서려는 노력은 최근의 일이다.

 

신학과 경제학을 관련시키려는 최근의 노력에는 세 개의 흐름이 있다.

 

첫 번째 그룹은 경제학의 윤리학적 뿌리에 초점을 맞추는데, 사실 경제학은 윤리학적 관점에서 출발한 것으로 인간의 사회적 삶에 대한 문제를 다루려는 것이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경제학에서 덕(德, virtue)의 역할이 강조되어 왔다. 경제학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가 도덕 철학자였다는 사실은 매우 시사적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아마티야 센은 현대 경제학의 불행은 경제학과 윤리학의 분열에서 야기되었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 그룹은 경제 이론들 안에 숨겨진 이데올로기(일종의 신학)를 폭로하는 데 초점을 둔다. 경제학은 가치중립적 학문이 아니라, 그 자체 안에 신학적 요소를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대 경제 체제는 종교적 형태를 지닌다고 비판하는데, 브라질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신학자 성정모는 현대 경제학 이론들 안에 그리스도교적 가치들이 왜곡되어 차용되고 있다고 고발한다.

 

예를 들어, 신의 주권은 시장의 합리성에, 종말론적 약속들은 경제 성장의 신화로 대체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로버트 넬슨 또한 근대 경제 사상은 그리스도교 전통의 세속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죄의 원인은 경제적 궁핍이고, 따라서 궁핍을 없애는 것이 죄를 없애는 것이며, 경제적 진보로 천국을 지상에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 그룹은 현대 경제 체제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일종의 신학적 경제학을 제시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그리스도교가 자신의 고유한 경제적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고 믿는다. 독일 신학자 울리히 두크로는 사회 역사적 주석을 토대로 성경에 나타난 경제적 관점을 분석한 후 현행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소규모로 연결되는 경제(a small-scale networked economy)를 제안한다. 곧, 세계시장 체제에 반대하는 일종의 지역시장 체제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케트린 타너 또한 선물(gift)과 은총(grace)의 논리에 기초한 신학적 경제(economy of grace)란 개념을 통해 대안적 경제 체제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려고 노력한다. 현 교황 역시 이와 비슷한 원칙을 제시한다. “상거래 관계에서 형제애의 표현인 무상성의 원칙과 은총(증여)의 논리가 통상적인 경제 활동에 자리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진리 안의 사랑”, 36항). 물론, 이 세 번째 그룹의 노력은 아직 이론적 탐구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가톨릭 사회교리와 경제

 

거칠게 말하면, 사회교리는 경제문제들을 다루는 데 첫 번째 흐름을 주로 따르는 경향이 있다. “경제는 인간 활동의 일부이고, 바로 인간적인 것이기 때문에 경제 구조와 운용은 윤리적이어야 합니다”(“진리 안의 사랑”, 36항). “교회의 사회교리는 경제 활동의 모든 측면에 정의가 있어야 한다고 늘 강조해 왔습니다”(“진리 안의 사랑”, 37항). 이 두 진술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교리는 그리스도교 윤리와 정의의 관점에서 경제 문제들을 분석하고 평가해 왔다. 하지만 경제에 대한 사회교리의 입장은 자칫 윤리적이고 당위적인 명제들을 선언하는 수준에 머무를 위험을 안고 있다.

 

사회교리의 원칙들에 바탕을 두면서, 경제 문제들에 대한 좀 더 분명하고 실천적인 신학적 비판을 수행하려면 경제 문제와 경제 행위들 안의 이데올로기적(유사-신학적) 측면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개개인들의 경제 행위 안에 숨겨진 무의식적 욕망과 그 경제적 행위들 안에 내포된 감추어진 사회적 가치관에 대한 정치(精緻)한 분석과 교회의 경제 행위들에 대한 정직한 평가들을 통해서만 우리는 경제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참 비전을 제시할 수 있고, 일종의 대안적 경제체제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이러한 맥락에서, 다음 호부터는 신앙인 개개인들의 경제 행위들과 교회 공동체의 경제 행위들 안에 숨겨진 욕망체계와 가치체계를 사회교리적 관점에서 분석해 보고자 한다).

 

* 정희완 요한 - 안동교구 신부. 미국 버클리 예수회 신학대학원에서 ‘신학, 교회, 그리고 경제적 세계화’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문경 모전동성당 주임으로 있다.

 

[경향잡지, 2010년 1월호, 정희완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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