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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생명의 문화: 생명 문화 만들기는 의식의 변화에서부터 - 사회 유용성에 밀리는 생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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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11-14 ㅣ No.700

[생명의 문화] ‘생명 문화 만들기’는 의식의 변화에서부터


사회 유용성에 밀리는 생명권, 생명의 존엄성이 가장 우선이라는 가치관 형성 필요

 

 

필자는 채소를 좋아한다. 오래전부터 채소에 아무런 드레싱도 얹지 않은 채 한 사발씩 아침식사로 먹곤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식사를 거의 마칠 무렵 채소를 담은 그릇에서 배추벌레 한 마리를 발견하곤 소스라치듯 놀란 적이 있다. 순간 필자의 평화로운 아침식사를 감히 방해한 이 훼방꾼에 대해 분노(?)를 느끼며 결국 죽이기로 마음 먹었다.

 

하지만 배추벌레를 죽이려는 순간, 다시 생각해보니 아침식사를 침범한 것은 배추벌레가 아니라 필자 자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추벌레 입장에서 보면, 필자는 분명 그의 아침식사의 침범자요 훼방꾼이었을 것이다. 생각을 바꾸어보니 이렇게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우리는 늘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보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상상하는지 중요하다. 옛날에 어느 스님이 중국으로 공부를 하러가던 중, 밤은 깊고 몸은 극도로 지친 상태에서 우연히 빈집을 발견하곤 그곳에서 하루 밤을 신세지게 되었는데, 마침 집 한 구석에 있는 바가지에 가득 담긴 물을 발견하곤 그 물을 아주 달게 마셨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것은 해골에 담긴 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구토를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마음먹기에 따라 이렇게 동일한 물이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신학자 로노건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현실사회에서 보고 있는 것은 진리에 가까운 것일 뿐 그것이 진리는 아니다. 그래서 내가 보고 있는 것 혹은 알고 있는 것은 늘 그것이 과연 진리인지를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진리에 접근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바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효용성 혹은 유용성이라는 공리주의적 논리에 익숙해져 있는 듯하다. 그래서 어떤 행위가 비윤리적인 것을 알면서도 그것이 사회 유용성을 산출할 수 있다면 대체로 허용하는 분위기이다.

 

낙태를 예로 들어보자. 낙태는 과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밝힌 2005년 통계만 보더라도 임신한 기혼여성 3명 중 1명이 낙태를 택할 정도로 우리사회의 생명경시풍조는 심각하다. 더욱이 비밀리에 낙태가 행해져 통계에 잡히지 않은 경우를 포함한다면 실제는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할 수 있다.

 

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15~44살의 유배우자를 대상으로 한 '선별적 인공유산에 대한 의식조사'(2003년)를 보면, 기혼여성의 80.52%가 낙태를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낙태유경험자는 40.4%였으며, 그 중 2회 이상 낙태 경험이 있는 사람도 15.8%였다. 이는, 낙태는 해서는 안 되는 행위로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내 문제가 될 때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낙태를 선택하는 모순을 보이는 것이다. 결국, 태아의 생명이 산모의 생명과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자리 잡고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높은 낙태율은 전염성 질환, 우생학적 혹은 유전학적 질환, 친족 간의 임신, 성폭력에 의한 임신, 모체의 건강 등의 이유로 낙태를 허용하고 있는 모자보건법과도 무관하지 않다. 최근 개정된 모자보건법 시행령(2009년 7월 8일 시행)에서는 낙태수술 허용기한을 임신 28주 이내에서 24주 이내로 단축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낙태를 합법화하고 있다는 면에서는 달라진 것이 없다.

 

모자보건법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의식을 살펴보면, 동법 제14조가 앞에서 열거한 5가지의 특수한 경우로 낙태시술을 한정하고 있다는 것은 태아의 생명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의식을 내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형법 269조, 270조에서도 낙태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으니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모자보건법이 이러한 5가지 특수한 경우에 낙태를 허용하다는 것은 태아의 생명은 중요하기는 하지만, 임신이 유전질환, 친족 간의 임신 등의 이유로 사회에 해악이 된다면 사회 유용성 차원에서 태아의 생명을 희생시켜도 좋다는 의미이다.

 

생명의 존엄에 대한 의식전환이 절실히 요구된다. 생명은 신성하고 존엄한 것으로서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본래적 가치이다. 따라서 태아의 생명은 결코 사회 유용성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 생명존엄에 대한 의식화 작업은 학교의 기본교육에서 출발해야 한다. '생명존엄과 가치'라는 주제로 많이 토론해보고, 글을 써 봄으로써 생명존엄이 사회의 공동의식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평화신문, 2009년 11월 15일, 우재명 신부(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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