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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앙 유산: 새로 세운 윤리의 기준 - 척죄정규(滌罪正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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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06 ㅣ No.359

[신앙 유산] 새로 세운 윤리의 기준 : 척죄정규(滌罪正規)

 

 

머리글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많은 관계를 맺는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람과 자연의 관계, 사람과 하느님의 관계 등은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여정에서 맺어지는 관계인 것이다. 이 관계를 우리는 윤리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윤리는 삶과 더불어 자연 발생으로 존재하게 마련이며, 윤리는 인간관이나 자연관 그리고 신관(神觀)과 긴밀한 연결을 맺는다.

 

우리의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우리한테는 삶의 태도와 인간에 대한 이해가 우리의 문화가 있다. 이러한 전통적 태도에서 우리의 윤리관은 형성되어 왔다. 그리고 이 윤리관의 형성 과정에는 불교나 유교를 비롯한 종교의 영향을 매우 크게 받았다. 우리 나라에 천주교 신앙이 들어오던 18세기 당시 지배층이 존중하던 윤리관은 성리학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앙이 전래된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새로운 윤리관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 새로운 윤리의식은 위로는 최고급 지식인으로부터 밑으로는 농투성이 민인(民人)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지지자를 확보하게 되었다. 천주교 신앙운동이 전개되고 그 천주교 신앙인의 삶이 실천되는 것은 바로 이 새로운 윤리의 보급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천주교 선앙은 이땅에서 유교 윤리의 기준을 바꾸어 천주교 윤리관을 실천하도록 하고 있었다. 이는 천주교 신앙이 제시하고 있는 새로운 인간관과 신관 등으로 체계화할 수 있는 것이다.

 

조선후기 우리 사회에 새로운 윤리관을 심어준 책자 가운데는 “천주십계”를 비롯한 각종 윤리서를 주목할 수 있다. 그리고 고해성사나 양심성찰을 이끌어주는 책자들도 그리스도교 윤리관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여기에서 논하고자 하는 “척죄정규”(滌罪正規)도 그리스도교 윤리관을 제시해 주는 책이다.

 

 

지은이는 누구인가?

 

“척죄정규”를 지은 이는 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알레니(Jule Aleni, 艾儒略, 1582-1649년)이다. 그는 ‘알레니’라는 성의 첫글자를 따서 중국식으로 ‘아이’[艾]라는 성을 취했고, 세례명 ‘율리오’의 중국식 발음인 ‘유루어’[儒略]를 이름으로 삼았다. 그는 중국의 관습에 따라 성명 이외에 자(字)를 취했다. 그의 자는 ‘스치’[思及]였다. 그가 중국식 성명과 자를 가졌다는 것은 중국문화에 대한 이해가 그만큼 깊었고, 중국의 문화와 그리스도교의 관계에 마테오 리치와 같은 적응주의 방법을 취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알레니는 중국에 나온 선교사 가운데 중국 학자로부터 가장 큰 환영과 존경을 받은 인물이다. 일찍이 마테오 리치도 그처럼 높은 존경을 받은 적이 없다. 그는 천주교 선교사로서 신앙을 전했을 뿐만 아니라, 유럽의 과학기술을 중국에 전파했고, 중국의 문물에도 정통했다.

 

그는 16세기 말엽 이탈리아 베니스 지방에서 태어났다. 1600년 예수회에 입회한 그는 사제서품 뒤 중국에 선교사로 파견되었다. 1610년 마카오에 도착한 그는 중국 본토 선교를 하려다가 1613년에 중국의 내지로 진출할 수 있었다. 그는 중국 선교 초기에 양주(楊州)에 머물면서 그곳의 고위관리에게 수학을 가르치며 지냈다. 1630년대 그는 복건성(福建省) 일대에서 성당 8개소와 경당 15개소를 지었고, 해마다 신입교우의 숫자도 팔구백 명에 이르렀다. 그런데 당시는 중국 대륙의 정세에 일대 변동이 진행되던 때였다. 명(明) 나라가 망하고 청(淸)이 등장했다. 그는 만주족이 복건성 일대를 침공해 올 때 양주를 떠나서 연평(延平)으로 피신해 지내다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파리 국립도서관에는 “희조숭정집”(熙朝崇正集) 이 소장되어 있다. 여기에는 71명에 이르는 당대의 대표적 지성들이 알레니를 위해서 지어 보낸 시(詩)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 자료를 검토할 때 그가 당시의 중국인들에게 얼마나 존경을 받았는지를 알 수 있다. 당시의 중국인들은 그를 ‘서래공자’(西來孔子)라고 불렀다. 중국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성인(聖人)인 공자의 칭호를 그에게도 붙여주었다.

 

그가 이러한 찬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두드러진 학문활동 때문이다. 그는 “서학범”(西學凡)이나 “직방외기”(職方外紀)와 같은 서학서를 지어서 서양의 학술과 지리지식을 중국인들에게 전해주었다. 그리고 “만물진원”(萬物眞源)과 같은 철학서를 비롯하여 그밖에 많은 교리서를 저술해서 서양의 사상을 중국에 소개했으며. “천주강생언행기략”(天主降生言行紀略)과 같은 4복음서 발췌본을 번역 편찬해서 중국인들에게 복음의 정수를 전해주었다.

 

 

이 책은 어떠한 책인가?

 

“척죄정규”는 고해성사와 관련하여 양심을 성찰하고 윤리덕(倫理德)을 키우는 데 목적을 두고 저술한 책자이다. 이 책의 제목을 번역하자면 ‘죄를 씻어 없애는 정확한 방법’으로 풀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자의 저술연도는 명확하지가 않다. 추정해 보건데 이 책은 그가 저술활동을 가장 활발하게 벌이던 17세기의 30년대를 전후하여 저술 간행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책은 이미 18세기 후반에 우리 나라에 전파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1801년 신유박해 때 서울에 살던 한신애(韓新愛)의 집에서 압수된 서적 가운데에는 이 책의 제목이 나타나고 있다. 이 책은 1849년 중국에서 마레스카 주교의 감준으로 다시 간행되었다. 이 책의 한글번역이 언제 이루어졌는지는 확실하지 아니하나, 지금 이 책의 한글번역본은 한국교회사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필사본으로 남아있는 이 한글번역본은 지질 등을 감안할 때 아마도 19세기 후반에 한문으로 된 원본으로부터 한글로 번역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 책의 한글번역본은 필사본으로 남아있지 간행되지 아니했다.

 

이 책의 첫째권에서는 먼저 말과 일과 결함에 대한 성찰의 중요함을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천주십계를 제시하면서 각 계명별로 저촉되는 죄의 종류를 제시해 주고 있다. 그리고 사람이 자의에 따라 범하게 되는 모든 죄의 일곱 가지 근원인 ‘칠죄종’(七罪宗)을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특히 여기에서 제시되고 있는 바와 같이 계명별로 성찰을 유도하는 방법은 1864년에 간행된 “성찰기략”과 같은 박해시대의 양심성찰서에도 직접 영향을 미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책의 두번째 권의 앞부분에서는 ‘성찰’에 관하여 자세히 논하고 있다. 그리고 ‘회죄경’(悔罪經)과 성찰에 관계되는 여러 일들을 문답식으로 제시해 주고 있다. “척죄정규” 제2권의 후반부는 개과(改過)에 관해서 논하고 있다. 그리고 개과하기 위해서 가져야 할 12가지의 생각들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제3권에서는 통회와 정개(定改)에 대해서 그 구체적 방법을 설명해 주면서 완벽한 고해성사를 위한 준비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인 제4권에서는 고백과 보속에 대해서 설명한다. 이러한 내용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은 박해시대에 우리 나라에 소개되었던 고해성사와 관련된 책자 가운데에서는 가장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이 책은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윤리의식을 이땅의 사람들에게 심어주고 있었다.

 

 

맺음말

 

윤리의식은 인간이나 사회에 관한 생각과 직접 연결된다. “척죄정규”를 통해서 제시된 그리스도교의 윤리는 유교 가치관에 입각한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는 상당한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도들은 “척죄정규”를 비롯한 교회의 윤리서에 근거하여 윤리기준을 새롭게 정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윤리를 실천해 가면서 봉건주의의 병폐에 찌든 사회를 바꾸어보려 한 것이다.

 

박해시대의 신도들은 그리스도교 윤리를 통해서 인간의 평등성을 실천해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드러나는 결과만을 가지고 선(善)이나 악(惡)을 가늠하지 않고, 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윤리성을 발견하는 지혜에 관하여 새롭게 일깨울 수 있었다. 선과 악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전통윤리에서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박해시대 신도들이 실천한 그리스도교 윤리는 이땅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인간관과 사회관 그리고 하느님에 대한 인식을 제시했고, 이를 강화시켜 주었다. 박해시대 당시의 그리스도교 윤리는 결코 근대적 가치만을 함축하고 있는 윤리는 아니었다. 오늘날 윤리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서양의 중세 신학 사조에서 파생된 박해시대 당시의 그리스도교 윤리를 죄론(罪論, peccatology)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당시 그리스도교 윤리에 근대적 요소가 많지 않았다 하더라도, “척죄정규” 등을 통해서 제시된 그리스도교 윤리가 유교 지상주의 조선사회에 미친 영향은 대단히 컸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국교회사의 연구자뿐만 아니라 한국 철학이나 한국 윤리학을 연구하는 이들도 이 책을 면밀히 검토해 나가야 할 것이다.

 

[경향잡지, 1995년 6월호, 조광 이냐시오(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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