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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현대 실용주의의 도전과 회칙 생명의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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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27 ㅣ No.663

[문헌 풀어 읽기] 현대 실용주의의 도전과 “생명의 복음”

 

 

요즘 한국 사회 안에서 부쩍 ‘실용’, ‘실리’ 같은 단어들이 자주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린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는 자국 농민들의 경제적 희생을 어느 정도 감수하더라도 자동차, 전자제품 등의 수출을 통해 이득을 취하는 것이 더 실용적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최근 무리하게 진행되었던 미국과 맺은 쇠고기 통상협정도 한국의 입장에서 ‘실리’를 취할 것을 기대하면서 한미 FTA를 성사시키기 위한 대안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실용’이라는 것이 인간복지에 언제나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만은 아니다.

 

 

실용, 국익의 이름으로?

 

몇 년 전, 황우석 박사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사회 구성원 간의 거센 찬반 논쟁에서도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던 단어는 ‘국익’이었다.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생명체를 해치는 윤리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치료제 개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을 생각하면 충분히 허용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어떤 이들은 심지어 “윤리가 국익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기까지 하였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회칙 “생명의 복음”(1995년)에서는 카인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이기심이 얼마나 잔인한 결과를 산출하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네가 무슨 짓을 하였느냐?”(창세 4,10) 카인에 대한 하느님의 이 물음은 하느님께서 선물로 주신 생명을 ‘실용’과 ‘국익’의 이름으로 스스로 파괴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에게 되물으시는 질문이기도 하다.

 

얼마 전,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연말부터(일부 조항은 2010년부터) 시행된다는 보도가 있었다. 개정안을 보면, 한편으로는 이종 간 핵이식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등 긍정적인 면이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줄기세포주 사용을 완화하고, 난자 제공자에게 보상금, 교통비 등의 실비보상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자칫 난자 매매를 가능하게 할 위험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등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이는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2년 가까이 심의하여 연구용 난자 기증을 금지하도록 의결한 사항을 무효화하는 조항인데다가, 목적 자체로 존중되어야 하는 인간이 난자 매매로 수단화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과연 이러한 개정이 인간의 생명 안전을 더욱 보호하고 생명 윤리를 추구하기 위한 개정이었는지 의문이 든다. 이것 역시도 효용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실용주의의 산물은 아닌지 질문하고 싶다.

 

 

생명을 위협하는 요소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생명의 복음”은 오늘날 우리 사회 안에 만연한 ‘죽음의 문화’를 경고하고 있다. 회칙 서론에서는 예수님께서 전하신 메시지의 핵심이 생명이며, 교회의 사명은 바로 이 생명의 복음을 모든 시대와 문화에 속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으로 전하는 것임을 천명한다. 하느님은 인간을 사랑으로 창조하셨고, 그에게 하느님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생명을 선물로 주셨다.

 

우리는 선물로 받은 이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체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궁둥이를 뒤뚱이며 걸어가는 어린 오리 떼, 떼 지어 발빠르게 움직이며 어미 품을 찾는 노랑 병아리들, 그리고 갓 태어난 조카의 귀여운 얼굴을 들여다보며 생명이 얼마나 아름답고 신비로운 지를 새삼 체험하게 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 주위에는 이러한 생명을 위협하는 요소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 위협은 생명이 약하고 자기 방어력이 없는 곳에서 더욱 심각하게 증대되고 있다. 빈곤, 기아, 질병, 폭력, 전쟁 등의 사회 외부의 위협에서 배아 파괴, 낙태, 안락사, 자살에 이르기까지 생명 자체를 거스르는 위협이 우리 주위에서 발생하고 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를 ‘죽음의 문화’라고 한다.

 

최근 낙태, 안락사 등에서 보는 것처럼, 인간 생명에 대한 위협은 점차 새로운 형태를 띠면서 그러한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안락사를 환자의 권리로, 낙태를 여성의 권리로 주장하는가 하면, 일반 여론은 이러한 행위를 생명권에 대한 직접적인 침해 행위라기보다는 ‘권리’로 주장하기도 한다(11항).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러한 배경 안에 근본적인 문화의 위기가 발생하고 있음을 본다. 이러한 문화의 위기는 결국 윤리 자체에 대한 회의주의를 유발하며, 이러한 회의주의는 인간의 존재 의미가 무엇이며 진정한 인간의 권리와 의무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결국 이러한 현대사회 구조 안에서 작용하는 강력한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은 인간을 효율성에만 관심을 기울이게 하면서 죽음의 문화를 더욱 재촉하고 있다는 것이다(12항).

 

 

생명의 복음을 증언하는 삶

 

정작 생명을 살려야 하는 의술이 낙태수술을 시행하는가 하면, 더 큰 포용력과 사랑의 보살핌이 절실히 요구되는 무의식 환자,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 유전질환을 가진 태아 등을 무의미한 생명으로 간주하여 그 생명을 단축시킬 것을 주장하기도 한다. 회칙 “생명의 복음”은 이러한 죽음의 문화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하느님 의식과 인간 의식의 실종에 기인한 세속주의로 본다(21항).

 

이러한 세속주의는 오늘날 개인주의, 실용주의, 쾌락주의로 발전하고 있으며, 여기서는 경제적 효용성과 사회적 유용성이 행위 결정의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죽음의 문화를 극복하고 생명의 문화를 회복할 것인가? 필자는 생명의 가치를 우선하는 ‘의식의 전환’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본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나 할까. 공기를 마시면서도 공기의 존재를 느낄 수 없듯이, 우리는 스스로 생명을 지니면서도 생명의 신성함과 그 소중함에 대해 잘 느끼지 못하는 때가 있다. 키우던 애완견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생명체인 배아의 실험이나 태아의 제거, 곧 낙태에 동의하기도 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생명의 신성함과 불가침성에 대한 인식이 아닌가 싶다. 선택에서 어느 것과도 비교될 수없는, 그래서 효용성, 유용성으로 제거될 수 없는 가치가 생명이라는 확고한 인식이 필요하다.

 

생명은 신성하다. 생명은 하느님께서 숨을 불어넣어 주셨고(창세 2,7), 인간을 당신의 모습에 따라 지어내신(창세 1,26-27) 하느님의 선물이기에 신성하고 존엄하다. 죽음의 문화가 효용성, 가능성, 유용성을 근거로 배아연구, 낙태, 안락사 등을 허용한다면, 생명의 문화는 생명 존엄과 가치, 그리고 생명의 불가침성에 근거하여 이를 반대한다.

 

신앙의 핵심은 실천에 있다. 미사성제 안에서 성체성사를 통해 예수님과 일치를 이룬 그리스도인들은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과 함께 파견된다. 파견은 실천 신앙의 핵심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전하고자 오셨듯이, 우리도 세상에 생명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우리는 한 백성으로 파견되었습니다. 각자는 생명에 대하여 봉사할 의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은 완전히 ‘교회적인’ 의무이며, 이 의무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과 모든 분야의 일치되고 풍요로운 활동을 요구합니다”(79항). 현대 실용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바로 실천으로써 ‘생명의 복음’을 스스로 증언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효용성을 앞세운, 또는 ‘국익’을 앞세운 공리주의적 주장들이 반생명적일 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삶, 정의를 정면으로 대하고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보여주는 삶이 진정으로 생명의 복음을 실천하는 삶이 아닌가 싶다.

 

* 우재명 도미니코 - 예수회 신부. 교황청 라테라노 대학 알폰소 신학대학원에서 윤리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강대학교 생명문화연구소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원장이며, 서강대학교 기간생명윤리심의위원,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학술연구위원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08년 7월호, 우재명 도미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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