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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자살률 세계 1위, 교회의 역할: 나는 하느님의 작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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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26 ㅣ No.659

[경향 돋보기] 자살률 세계 1위, 교회의 역할 - 나는 하느님의 작품인데

 

 

지난 9월 18일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26.1명이었다. 자살자는 하루 평균 33.8명으로 5년 연속 증가하고 있으며 자살률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 1위에 해당한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생명의식 부재를 의미하며 교회 차원에서 생명운동의 일환으로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시기임을 알리는 지표다.

 

 

자살의 다양한 원인

 

사회학자인 에밀 뒤르켐은 자살의 원인을 사회과학적 차원에서 분석하면서, 자살을 크게 자기본위적 자살, 이타적 자살 그리고 아노미적 자살로 분류한다. 자기본위적 자살은 개인의 개성이 집합체의 개성보다 강하게 작용하여 개인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립되면서 일어나는 반면, 이타적 자살은 개인이 집단 속에 지나치게 몰입하여 집단의 목적이나 정체성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발생한다. 특정 종교단체의 이단적 신념에 기인한 집단적 자살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와는 다르게, 아노미적 자살은 현대사회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자살의 형태로 개인의 사회적 위치가 갑자기 변하면서 자신이 이에 대처할 수 없을 때 일어난다. 부모나 사랑하는 이의 갑작스런 죽음을 감당하지 못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그 외에도 ‘사회고발형’ 자살로서 현실질서에 불만을 품고 개혁을 주장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발생한다. 예로써, 중공업회사 노동자가 “손배 가압류로 생활이 어렵다.”는 유서를 남기고 온몸에 신나를 뿌리고 자살하는가 하면, 농업개방에 반대하며 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장 앞에서 자살한 어느 농민의 경우를 들 수 있다.

 

한편, 우리 사회의 빈부 양극화라는 모순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생계형’ 자살이 꾸준히 늘어나는 사실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홀어머니의 병 악화와 빚을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15세 소녀가장의 자살, 카드 빚에 시달리던 30대 주부가 세 자녀를 고층 아파트에서 떨어뜨린 뒤 자신도 투신한 사건, 아들의 카드 빚을 감당하지 못해서 농약을 먹은 40대 부부 등 이러한 형태의 자살은 지난 IMF 외환위기 이후 계속 남아있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모습이다.

 

 

자살에 대한 교회의 태도

 

자살예방 센터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생명존중 의식’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들 사이에서 자살도 선택의 문제로 여기는 경향이 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자살예방 센터의 나선영 실장은 이러한 의식의 변화에 대하여 “개인주의 성향이 퍼져가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였다.

 

하지만 자살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입장은 명백하다. “자살은 살인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서 죄이며 항상 부당한 행위이다”(생명의 복음, 66항 참조). 그 이유는 첫째, 십계명 중 제5계명인 ‘살인해서는 안 된다.’를 어기는 행위이다. 제5계명은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을 죽이는 행위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둘째, 인간의 생명에 대하여 하느님만이 결정권을 가진다는 신성불가침 원리에 위배된다(지혜 16,13; 토빗 13,2; 신명 32,39 참조). 셋째, 자살은 자기를 사랑해야 하는 자연법 의무를 위반하는 것이며, 자기완성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거부하는 행위이다.

 

하지만 자살은 단순히 윤리적 당위만으로 접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한국사회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자살은 개인이 스스로 죽음을 택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 사회적 상황과 결코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 자살을 부추기는 원인을 파악, 분석하고 자살을 방지할 대책을 함께 찾는 일이다.

 

 

자살방지를 위한 대책

 

자살방지를 위해 먼저 교회 또는 지역사회 내 상담소 설치가 시급하다. 서울시내 한 대학에서 교내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자살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2006년)에 따르면, 응답한 290명 중 43.1%에 해당하는 125명이 자살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고 응답하였고, 자살충동을 느낀 학생들 중에서 14.4%인 18명은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으며, 9.6%인 12명은 현재도 자살충동을 느낀다고 답하였다. 그리고 자살충동을 느낀 학생 가운데 74.4%인 93명은 갈등원인에 대하여 상담할 만한 곳을 찾지 못하였다고 응답하였다. 그래서 그들 대부분은 혼자서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이들 중 상담소를 통해 자살충동을 해결한 사람은 24%에 불과했다.

 

이 조사결과가 알려주는 것처럼, 우리 주위에서는 자살충동을 느끼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상당히 많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장소를 사회 안에서 찾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심각한 문제다. 자살이란 대개의 경우 어느 순간에 갑자기 발생하는 행위라기보다는 지속적으로 축적된 ‘평형상실의 정서’가 그에 대한 마지막 해결책으로 자신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은 결과다.

 

프로이트는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 자기애의 손상, 격화된 감정 등으로 자기방어 능력이 붕괴되고 그에 따르는 파괴적 본능 에너지가 증가하면서 자기 자신을 처벌의 대상으로 삼게 된다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현대 정신의학에서 자살 연구에 크게 공헌한 링켈 교수는 자살이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행위라기보다는 파괴적 본능이 며칠 또는 몇 개월 전부터 본인 마음 안에서 싹트면서, 세상에 대한 무능감 체험이 자아 협소증으로 발전하고 이것이 다시 자기를 향한 공격성과 더불어 자살환상으로 발전하게 된다고 말한다.

 

 

생명존엄과 가치에 대한 교육이 중요

 

이처럼 자살이 순간적인 행동이 아니라 지속적인 과정의 결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자살충동을 느끼는 사람들을 상담을 통해 충분히 도와줄 수 있다고 본다. 더욱이 이러한 상담에 가톨릭교회가 큰 힘이 되어 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교육이다. 인간은 이미 알고 있는 존재가 아니라 ‘알아가는’ 존재이기에 교육은 한 인간의 인격과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생명존엄과 가치에 대한 올바른 의식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

 

옹기장이가 옹기를 만들려면 흙을 고르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옹기를 만들기에 가장 적합한 흙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가장 적합한 흙을 선택하셔서 나를 지으셨다(이사야 45,7-13 참조). 그래서 “내 삶과 전 존재는 하느님의 작품이다”(에페 2,1-10 참조). 이렇게 하느님의 마음과 정성을 모두 담고 있는 나는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 “네가 나의 눈에 값지고 소중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이사 43,4). 나는 하느님에게 사랑받는 존재이다. 하지만 “자살에는 이러한 자기애의 거부가 담겨 있으며, 이웃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들과 전체 사회를 향한 정의와 자비의 의무 포기가 담겨있다”(생명의 복음, 66항).

 

* 우재명 도미니코 - 예수회 소속 신부로 서강대학교 생명문화연구소 소장이며 같은 대학 신학대학원 교수로 일하고 있다.

 

[경향잡지, 2006년 11월호, 우재명 도미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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