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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생명문제를 보는 그리스도인의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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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5-23 ㅣ No.651

[경향 돋보기] 생명문제를 보는 그리스도인의 시각

 

 

그리스도교가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회를 희구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생명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교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현 산업문명은 자연과 생명을 보는 시각을 편협하게 잘못 조성해 왔다.

 

 

현대인이 생명윤리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97년 초 세계적 과학잡지 “네이처”에 실린 한 편의 논문에서 비롯된다. 영국 로슬린연구소 이안 윌머트 박사팀이 체세포 핵이전 기법에 의해 ‘돌리(Dolly)’라고 명명한 복제 양을 탄생시킨 내용이 논문으로 발표되면서 세상에 회자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태풍의 눈으로 부상한 연유는 여기서 사용된 과학적 방법을 이용하여 불치병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같은 기법을 인간에게 적용하면 복제 인간을 탄생시킬 수 있다는 것 때문이다.

 

 

생명공학과 생명윤리

 

복제 양 돌리의 탄생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과학적 연구에 대한 일반적 평가와는 달리 좀 더 분명하게 찬반양론으로 갈린다. 의료계를 포함한 과학계 일반에서는 이 연구를 적극 환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같거나 비슷한 연구 방법을 채택하여 인간 사회에 응용할 수 있는 방도를 찾고 있다. 이미 생명공학이 출범하여 전개되었는데, 복제 양 돌리의 성공을 계기로 선진국은 생명공학을 최대의 국책사업으로 선정하여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에 반해 사회와 종교계는 비슷한 연구에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실험실에서 복제하는 형태로 인간을 생산하는 것은 공장에서 제품 만들 듯이 인간을 찍어내는 것과 같기 때문에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행위일 뿐 아니라, 자칫 사람의 생명 유지와 확장을 위해 인조인간을 장기 부품으로 전락시키는 등 여러 가지 윤리적 문제를 낳을 수 있다. 그러한 이유로 동식물을 연구하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인간복제로 이어지는 연구는 엄격히 제약을 해야 한다는, 선택적으로 반대하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특히 그리스도교는 태도가 더욱 선명하다. 어떤 형태로든 인간생명의 도구화를 거부한다. 더욱 구체적으로 실험실에서 배아줄기세포를 확보하여 불치병 등을 고치는 연구를 수행하면서 빈번하게 배아를 복제하거나 폐기하는 일을 반복하게 되는데, 배아 자체가 이미 생명체이기 때문에 인간 생명을 죽이는 연구는 결코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의학계에서 진행하는 질병 치료 연구를 중단토록 요구하는 것이 아님을 밝히면서, 그 대안으로 어렵더라도 성체줄기세포를 확보하여 실험과 질병 치료에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생명조작 연구를 둘러싼 사회 논란은 마침내 우리나라에서 2005년에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제정으로 이어졌고, 여전히 문제가 있어서 개정을 추진하던 중, 최근에 오히려 일부 조항이 개악되는 사태에 이르고 말았다. 개악된 법률은 인간 생명을 파괴하는 체세포 복제배아 연구를 승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난자 기증자에 대한 실비 보상을 허용함으로써 모성의 원천인 난자 매매까지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이에 그리스도교는 인간 생명을 조작하고 파괴하며 말살하는 생명공학적 연구를 윤리적 차원에서 적극 규제하는 데 지속적 노력을 경주해야 할 힘든 노정에 들어선 것으로 여겨진다.

 

 

유전자 조작에 대한 우려

 

그리스도교가 인간 생명체로 간주되는 것을 죽이는 어떤 형태의 연구에도 반대하는 태도를 천명하는 것은 전적으로 옳다. 그러나 그 폭을 매우 좁혀서 인간 생명체의 복제와 직접적 조작만을 분명하게 거부할 뿐이지, 그 외에 생명공학이 수행하는 각종 동식물 생명체의 유전자 조작에 대해서는 다소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편이다. 가장 원칙적 태도를 견지하는 그리스도교조차 이와 같다면, 유전자 조작에 주력하는 현대 생명공학의 연구와 이것의 산업적 활용을 원천적으로 제어할 길이 거의 없다. 결국 생명공학이 가장 효율적으로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도로서 동식물간의 유전자 조작, 인간과 동식물 유전자의 혼합적 조작, 인간 배아의 복제와 조작 등을 일삼게 될 것이다.

 

올해 초 다른 유명 과학잡지 “사이언스”에 또 다시 세인의 관심을 끌 논문이 게재되었다. 크레이그 벤터 연구소가 58만여 개로 구성된 박테리아 DNA를 조각내었다가 다시 합성하는 데 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 박테리아는 성병을 일으키는 것인데, 전염성을 갖는 것 하나만을 제거하고 효모를 이용하여 다시 결합하는 방식으로 실험실에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인공 DNA 합성에 해당한다. 이것은 생명체 창조의 두 번째 단계에 해당하는데, 이런 인공 게놈을 살아있는 세포에 주입해 활동하게 만들면 인간이 자신의 의도에 따라 인위적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단계로 이행하게 되는 것이다.

 

이 연구를 주도한 크레이그 벤터 박사는 미국에서 게놈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학자이고, 그는 1998년에 국책연구기관에서 뛰쳐나와 퍼킨 앨머사와 함께 셀레라 제노믹스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2002년에는 이 회사 사장 자리도 박차고 나와서 자신만이 주도하는, 그래서 자신의 이름을 딴 연구소를 차렸다. 왜 이런 행보를 취한 것일까? 한마디로 독점적으로 떼돈을 벌려는 것이다.

 

이미 그는 2002년에 향후 병원서 신생아를 맞이한 부모가 아이의 유전정보를 담은 CD 한 장씩을 들고 퇴원수속을 받을 것이라고 공표한 바 있다. 물론 공짜로 받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당시 그것은 한 장에 우리 돈 8억 6천만 원에 해당하는 액수로 추정되었다. 여기서 더 발전하면, 잠재적 질병 유전자를 제거했거나 똑똑한 유전자를 주입한 맞춤형 아기를 맞이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이다. 부자는 이런 모든 것을 구비한 후손을 맞춤형으로 주문하여 맞이하게 되겠지만, 가난한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이 될 것이다. 결국 이런 구도대로 간다면, 사회는 열성과 우성 유전자를 지닌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유전적 양극화 상태로 이행하게 될 것이다.

 

 

슈퍼인류독감이 유행하게 된다면?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유전자 조작 기법과 생명공학을 탄생시킨 현대 과학기술이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작동하면서 환경문제를 일으키고 있는데, 이것이 점차 위기로 증폭되고 있다는 점이다. 캐나다 실험실에서 유전자 조작을 통해 생산된 슈퍼연어가 일반 연어에 비해 무려 36배나 커졌지만 헤엄도 못 치면서 몰골은 흉측하게 일그러진 기형으로 바뀌어서 폐기된 적이 있다. 복제 양 돌리도 평균연령의 절반에 해당하는 6년 만에 죽었다.

 

다국적기업 몬산토의 유전자조작 제품인 제초제 라운드업을 밭에 뿌린 뒤에 세계 곳곳에서 슈퍼잡초가 발견된다는 보고가 잇따르고 있다. 2003년 1월 “뉴욕타임스”는 라운드업 내성 콩을 재배하는 밭에서 잡초인 쥐꼬리망초를 발견해서 라운드업을 뿌렸지만 죽일 수 없었다는 농부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런 일이 미국 전역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한국에서도 최근 조류독감이 발생하였는데, 그 전개 양상이 매우 우려스럽다. 보통은 추운 계절에 발생하여 따뜻해지는 봄이 되면 점차 소멸 과정을 거치는데, 오히려 봄에 발생하여 초여름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조류독감이 발생하면 모든 가금류를 집단적으로 죽이는 살처분을 감행하게 된다. 그런데 만일, 정말 이런 일이 발생하면 안 되는데, 치료백신을 개발하기도 전에 슈퍼인류독감이 유행하게 된다면,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이런 걱정이 한갓 기우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배아줄기세포의 조작과 맞춤형 유전자 아기의 탄생, 슈퍼연어와 슈퍼잡초의 출현, 그리고 지구온난화를 필두로 한 환경재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현 문명의 가치관과 사회제도, 생활양식 등 구조적 요인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안적 가치관과 생명관 모색

 

그리스도교가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회를 희구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생명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교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현 산업문명은 크게 다음 두 가지 점에서 자연과 생명을 보는 시각을 편협하게 잘못 조성해 왔다.

 

첫째, 인간 사회와 자연이 존재론적으로 분리되어 있다. 둘째, 자연과동식물 생명체는 인간의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여기에 자본주의 체제는 하나를 더 첨가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건강한 생명 유지와 연장을 위해 인간이든 인간 이외의 생명체이든 시장 기능에 따라 도구적 조작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접근은 인도적 노선에서 벗어난 것일 뿐 아니라 자연의 이치에 역행하는 것으로서 자연의 역습을 자초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류가 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하면서 인도적인 사회를 구현하려면, 대안적 가치관과 생명관을 모색해야 한다. 그것은 동료 인간뿐 아니라 자연 생명에 대해서도 호혜적인 유기적 세계관이어야 한다. 곧, 인간 사회와 자연은 존재론적으로 유기적 연결 관계에 놓여있고, 자연은 인간에게 도구를 넘어선 가치(고유한 가치)를 지닌 것이며, 그리고 생명은 어느 것이든 소중한 것이어서 함부로 조작의 대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이다.

 

인간의 경우 어떤 경우에도 생명을 조작하는 일이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인간이면 누구나 존엄한 존재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자상한 배려가 사회제도로 구축되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이 사회적 존재로서 필요한 산물을 자연에서 얻을 때도 그것이 자연의 생명 에너지 흐름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다시 말해서 자연의 생명부양 체계를 유지하는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과학(기술)도 자연을 수탈하고 생명을 조작하는 강경한(strong) 것에서 모든 인간에게 이로운, 그러면서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부드러운(soft)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창조원리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광우병 사태가 사회적 파장으로 번지고 있는 요즈음 미국산 소를 월령과 부위에 관계없이 수입하는 것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극도로 위협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한 가지 방도는 30개월 미만의 살코기로 수입을 제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원천적 해법일까?

 

아니다. 일본에서는 22개월 된 소에서도 광우병이 발생한 바 있기 때문이다. 광우병이 초식을 하는 소에게 비위생적 잡식을 강제한데서 비롯된 것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에 근본적 방도는 소를 비롯한 가축을 자연의 이치에 따라 기르는 것이다. 이때 자연의 이치나 생명부양 체계는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은 우주를 창조하실 때 설정했던 원리인 셈이다.

 

인간이 지속적으로 건강한 생명을 이어가려면, 큰 틀에서 창조원리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운영원칙을 정하여 따라야 한다. 자연에 의지하는 인간 사회의 물질적 성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인간도 자연친화적인 소박한 생활양식에 의거하여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새로운 문명사회를 창조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은 이것을 선도할 책무가 그리스도인에게 있음을 인식해야 할 때이다.

 

* 한면희 프란치스코 - 전북대 연구교수이며, 주교회의 환경소위원회 위원으로 있다.

 

[경향잡지, 2008년 7월호, 한면희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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