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0일 (일)
(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강론자료

2011-0116.....연중 2 주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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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1-01-15 ㅣ No.976

연중 제 2 주일 (가해)
이사 49,3.5-6 1코린 1,1-3 요한 1,29-34
2011. 1. 16. 등촌3
주제  :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살아가기

올 한 해도 보름을 지냈고 다시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누구에게나 시간이 흐르는 속도는 똑같겠지만, 그렇게 똑같이 흐르는 시간을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삶의 모양은 다를 것입니다. 이렇게 당연한 진리(?)를 말씀드리지만, 모든 사람이 자기들 삶에서 그 당연한 진리를 삶의 친구로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친구라는 표현은, ‘가깝게 오래 사귄 벗이라는 뜻으로 아는 아주 쉬운 낱말입니다. 하지만 내가 그 낱말의 뜻을 안다고 해서, 사람들 누구에게나 친구로 드러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친구가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인지 당연히 뜻도 알아야 하겠지만, 아는 것 이상의 다른 과정도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필요하겠습니까?

 

오늘은 연중시기 2번째 주일입니다.

연중시기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내 삶을 통하여 하느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내 몸으로 드러내는 시기입니다. 오늘 연중 2번째 주일 복음에서 우리는 하느님에게서 받은 사명을 성실하게 드러냈던 세례자요한의 선언을 들었습니다. 오늘 복음의 상황은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기 전후의 상황이 구별하기는 힘들게 섞여 있습니다. 즉 예수님이 다가오시는 모습과 세례를 받으신 후 자기를 떠나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요한이 자기 신앙을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세례자요한의 신앙고백을 들으면서 우리는 무엇을 본받을 수 있겠습니까?

 

세례자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라고 선언했습니다. 물론 세례자요한이 이렇게 말했다고 해서, 예수님이 갑자기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바뀐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렇게 신앙을 고백한 세례자요한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겠는지 생각해보고, 우리도 현실에서 그러한 행복에 어떻게 하면 참여할 것인지를 묵상할 일입니다.

 

신앙생활은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에게 의무일까요? 아니면 권리일까요? 부분적으로 이야기하면 두 가지 표현 모두 다 옳게 말할 내용의 부분이 될 수 있습니다만, 우리가 두 가지 중에 어느 쪽을 먼저 생각하는지에 따라 우리 몸이 향하는 삶의 방향은 아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권리를 먼저 생각해야 할까요? 아니면 의무를 먼저 생각해야 할까요?

 

세례를 받으신 다음, 자기를 떠나서 가시는 예수님을 보고, 세례자요한은 자기 제자들에게 엄청난 신뢰를 담은 고난도의 선언을 합니다. 그 내용인 즉, ‘저분은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서를 통해서 잔잔하게 들은 내용은 과연 폭탄선언과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까요? 어디까지나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다만 그 선택에 따라서 우리가 하는 행동양식은 달라질 것입니다.

 

세례자요한이 말하는 하느님의 어린양은 인간세상의 죄를 없애주시는 분이고, 죄를 거두시는 분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그 목숨에 끝이 있는 존재로서 갖는 한계가 바로 죄와 더불어 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존재가 하느님의 힘으로 죄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사람이 예상할 수 없는 엄청나게 큰 은총입니다. 물론 은총으로 느끼는 것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나 내려오는 것이겠지만 말입니다.

 

세례자요한이 말한 하느님의 어린양은 구약성경 레위기 168절에 처음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공동체가 고백한 죄를 짊어지고, 광야로 가야했던, 죄를 없애던 어린양이나 염소에 관한 내용이 바로 그 시초입니다.

 

세례자요한이 율법학자도 아니면서 구약성경을 어떻게 공부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예수님에게서 세례를 주고서 예수님을 가리켜서 그러한 어린양이라고 고백했다면, 우리는 과연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고백하고 있는지,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행동을 보고서 과연 우리를 가리켜서 세상의 죄를 없애는 어린양!!’이라고 하겠는지 묵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옳은 소리는 세상에서 누구나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소리가 정말로 말하는 사람의 삶에는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지 그 차이가 기적일 뿐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가리키면서, ‘저 사람은 세상의 죄를 없애는 어린양이라고 알려주는 일보다 내가 그러한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면서도 필요한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세례자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서 신앙고백을 한 말을 들으면서, 우리는 과연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올바르게 신앙고백하고 사는 것은 아무나, 아무 때나 마음먹는다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이사야예언서, ‘두 번째 주님의 종의 노래에 나오는 것처럼, 하느님께서 늘 내 곁에 머무르시도록 준비하고 사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느님을 떠나지 않는다면, 내가 하느님을 거부하지 않는다면 하느님께서 내 삶에서 떠나실 일은 없는 법입니다.

 

정말로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 우리가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은총과 평화안에 머물도록 해야 할 일입니다. 말과 생각만으로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욕심만 앞세울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하느님의 자녀로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알려주면서 말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잠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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