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0일 (일)
(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강론자료

2011-0113.....연중 1 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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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1-01-13 ㅣ No.974

연중 제 1 주간 목요일 - 홀수 해
히브리서 3,7-14 마르코 1,40-45
2011. 1. 13. 등촌3
주제 : 사람이 이해하는 하느님
사람들이 드러내는 지혜는 아주 많습니다. 좀 더 과장해서 말한다면, 무궁무진하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자신감이 이제는 하느님의 영역에도 도전하고, 사람의 몸에 생긴 병을 치료하는 단계를 넘어서서 생명의 조작이나 창조까지 다다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정말로 사람이 그 영역에 도달하면 어떨까요?
 
며칠 전 어떤 영화를 하나보다가 말았습니다. 지금 성당에 들어와 있는 사람은 해당사항 없겠지만, 2095년쯤 되면 사람이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이 개발돼서 죽지 않는다는 장면을 설정한 미스터 노바디라는 영화였습니다. 사람들이 영원히 살기 위해서 세포를 재생시킬 수 있다고 하는 돼지 한 마리를 껴안고 살며, 인공적으로 세포 재생을 하지 않는 117살이나 먹은 노인에게 다가온 죽음의 순간을 중계하는 장면도 나오는 영화였습니다. 영화의 내용이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사람이 하지 못할 없다고 보면, 과연 세상이 어찌될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에 큰 영향을 받고 삽니다. 그리고 내 피부에 와 닿는 것들의 영향을 더 크게 생각하지요. 예수님도 그러한 사정을 느끼셨을 것이기에, 나병환자 한 사람을 고쳐주신 다음에 내가 네 몸에 기적을 일으켜서 깨끗하게 해줬어. 어때 감사하지......’하고 말이나 행동을 요구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던 하느님께 감사의 마음자세를 봉헌하는 방법을 알려주신 것이었습니다. 사람으로서 가졌다는 능력을 드러내는 것치고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습을 달리 드러낸 그런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런 마음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요?
 
히브리서가 전하는 말씀은 고집 센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물론 편지를 읽는 사람들이 드러낸 삶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1500년 이전의 사람들이 드러낸 삶의 모습이었지만, 그 사실을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 누구도 말해주기가 쉽지는 않아도, 세월이 흘렀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보였던 똑같은 삶의 모습이 요즘에도 그대로 반복된다는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의 지혜가 늘어갈수록 어리석은 일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 같아 보여도, 실제로 사람들은 어리석은 행동을 합니다. 자기 자신만 절대로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여기지 않는 것이 문제일 뿐입니다. 세상에 똑똑한 사람들이 하나 둘 이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들이 정말로 똑똑한 행동을 하고, 현명한 행동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이론이 아니고, 현실이어야 하는 일입니다. 사람이 하느님에게서 시작됐는데, 그 사람이 하느님을 무시하고 인간의 생각만 하면서, 얼마나 현명한 행동을 할 수 있는지 돌이켜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지혜는 어디에 있고, 우리는 그 지혜를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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